교회증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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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제 32 호 - 교회증언

-2장 -

복음 교역자의 사업

249 아파 콜럼비아와 노스 패시픽 합회들*에는 바로잡을 필요가 있는 많은 것들이 있다. 창조주께서는 거기에 있는 형제들에게, 그들이 받은 빛과 특권에 비례되게 열매맺기를 기대하셨다. 그러나 이 점에서 그분은 실망하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온갖 편의를 제공하셨지만 그들은 온유와 경건과 덕행을 통하여 그것들을 이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창조주를 가장 영화롭게 하고, 그들 자신을 고상하게 하고, 그들을 동료 인간들의 축복이 되게 해 줄 그 생애의 길을 따르지 않고, 그 품성을 드러내지도 않고 그 감화를 발휘하지도 않았다. 이기심이 그들의 마음에 존재해 있다. 그들은 그들의 고집대로 하고, 더욱 풍부하고 세련된 형태로 그들 자신의 안락과 영광과 부와 쾌락을 구하기를 좋아한다. 만일 우리가 세상의 길을 좇고 우리 자신의 마음의 경향을 따른다면, 그 일이 우리의 최선의 것이 될 것인가?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서 더 좋은 무엇인가를 기대하지 않으시는가?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엡 5:1).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같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그분께서 소유하셨던 것과 동일한 정신을 소유하고 동일한 감화를 발휘하고, 동일한 도덕적 탁월성을 가져야 한다.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과 마음이 부패한 자들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교만하고 독선적인 자들은 자아를 버리고 온유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겸손해져야 한다. 세속적인 마음을 가진 자들은 마음의 덩굴손을 그들이 감고 있는 세상의 쓰레기에서 분리시켜 하나님을 감아야 한다. 250 그들은 영적인 마음으로 바뀌어져야 한다. 부정직하고 불성실한 자들이 의롭고 진실해져야 한다. 야망적이요 탐욕적인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 숨겨지고, 그들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그분의 영광을 구해야 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거룩함을 실시하고 그들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야 한다. 기도하지 않던 자들이 은밀한 기도와 가족 기도의 필요를 느껴야 하고. 그들의 탄원을 큰 열성으로 하나님께 상달시켜야 한다.

우리는 참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로서 우리가 가진 빛과 특권에 상응하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천지의 주님 대신에 우상들을 섬기고 있다. 주님을 사랑하고 완전히 그분을 신뢰하는 대신에 사람들이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은 무엇이나 우상이 되며 하늘의 책들에는 그렇게 기록된다. 심지어 축복도 때로는 저주로 바뀐다. 발휘함으로 강화되는 인간의 동정심은 때때로 왜곡되어 마침내 올무가 된다. 사람이 책망을 받을 때는 언제나 그를 동정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생애와 품성이 모본되시는 그리스도의 생애와 품성을 전혀 닮지않은 자의 그릇된 영향으로 하나님의 사업에 끼쳐진 손해를 완전히 간과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에게 기별을 주셔서 그들을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라고 공언하는 백성들에게 보내신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름만으로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 경고를 거절한다.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방법으로 사람에게 추리력을 주셨다. 나무가 훌륭한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해주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의의 귀중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하셨다. 그분은 사람을 당신의 정원에 심으시고 그를 친절하게 돌보셨다. 그분은 그에게 열매맺기를 기대하신다. 무화과나무의 비유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삼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눅 13:7)였다고 말씀하신다. 2년 이상 주인께서는 열매를 찾으셨다. 그분은 이 합회들에게서 그렇게 기대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분께서 찾으시는 일은 어떻게 보답되었는가? 우리는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유망한 나무와 식물을 관찰하고, 그것이 봉오리와 꽃과 열매를 맺음으로써 우리의 보호에 보답하기를 기대하고 있는가. 그러나 거기서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할 때 우리는 얼마나 크게 실망하게 되는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더 큰 열망과 부드러운 관심으로,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그들을 건져내고, 고상하게 하고,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그분의 아들을 주시기까지 하신 자들의 영적 성장을 주시하고 계시는가.

251 주님께서는 오류와 배교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대항할 수 있는 당신의 택한 대리자들을 갖고 계신다. 그분의 사자들은 그들의 잠자는 상태를 깨워 주고 귀중한 생명의 말씀인 성경을 깨닫게 해주기 위하여 보내심을 받는다. 이 사람들은 단순히 전도자들일 뿐만 아니라 목사들이요, 빛을 비추는 자들이며, 임박한 위험을 깨닫고 백성들을 경고할 성실한 파수꾼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열성에 있어서, 그들의 신중한 기지에 있어서, 그들의 개인적 노력에 있어서-한 말로 말해 그들의 모든 봉사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닮아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과 산 연결을 이루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보고에서 새것과 옛 것을 꺼낼 수 있는 구약과 신약의 예언들과 실제적 교훈에 정통해야 한다.

목사들 중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설교를 준비하는 일에 실수를 범한다. 그들은 모든 사소한 것까지 너무도 정확하게 배열해 버리므로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지도하고 감명시켜 줄 여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모든 점들이 정해지고, 그대로 고정되어 버리기 때문에 그들은 선을 그어 놓은 계획에서 떠날 수 없다. 이런 길이 계속되면, 그들은 좁은 마음을 갖게되고, 그들의 견해 안에 갇혀 버리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미구에 그들은 길보아산의 이슬과 비처럼 생기와 정력이 결핍된 자가 될 것이다. 그들은 심령을 열고 성령께서 마음에 영향을 끼치시도록 그것을 소유하시도록 해야 한다. 모든 것이 사전에 설계되어 있으므로 그들은 이 고정된 설교를 수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 효과는 설교를 읽어 줌으로 나타나는 것보다 더 나을 것이 별로 없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목사들이 당신을 완전히 의지하기를 바라신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모든 선한 일을 하기에 온전케 되어야 한다. 어떤 주제도 모든 회중 앞에서 같은 방법으로 다루어 질 수 없다.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역사하도록 허용되실 것 같으면, 도움이 필요한 자들의 상황에 알맞는 사상으로 마음을 감명시키실 것이다. 그러나 설교단에 나가는 많은 사람들의 무기력하고 형식적인 설교는 그 속에 생기를 주는 성령의 능력이 거의 없다. 그런 설교의 습관은 목사의 유용성과 능력을 효과적으로 파괴할 것이다. 252 그렇기 때문에 _______과 _______에 있는 교역자들의 활동에 더 큰 성공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설교단에서 마음에 감명을 주는 일에 있어서 하셔야 할 일이 너무도 없으셨다.

이 합회들의 실패의 또 하나의 원인은 하나님의 기별자의 활동의 대상이 된 백성들이 기별자의 사상이 그들의 사상에 따라 꼴 지워지고 그가 마땅히 해야 할 말을 그의 입에 넣어 주기를 원하는 데 있다. 하나님의 파수꾼들은 백성들을 어떻게 기쁘게 해야 할 것인지 연구해서도 안 되고, 그들의 말을 듣고 그것을 말해서도 안 되며, 주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것, 백성들에게 주는 그분의 말씀이 무엇인지 들어야 한다. 만일 그들이 여러 해 전에 준비한 설교에 의존할 것 같으면, 그들은 그 상황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마음은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감명을 줄 수 있도록 열려 있어야 한다. 그리하면 하늘에서 온 귀중한 진리를 뜨거운 그대로 백성들에게 줄 수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주신 능력을 순간적인 것에 바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사람들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 가운데서 자라나지 못하는 좁은 마음을 가진 목사들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그분의 목사들이 넓은 마음과 참된 도덕적 용기를 소유하기를 바라신다. 그런 사람들은 반대에 대처하고 어려움을 극복할 준비를 갖추고, 하나님의 양떼들에게 이끌려 가는 대신에 그들을 이끌게 될 것이다.

파수꾼들의 활동에 있어서 하나님의 성령과 능력이 너무 부족하다. 오순절 날의 놀라운 집회를 특징지은 성령께서는 오늘날 하나님의 대사들로 산 자와 죽은 자들 사이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 능력을 나타내고자 기다리고 계신다. 1884년의 운동에 그처럼 힘있게 사람들을 감동시켰던 그 능력은 다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셋째 천사의 기별은 속삭이는 음조로서가 아니고 큰 음성으로 전해질 것이다.

큰 빛을 가지고 있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붙인 불꽃 가운데서 걸어가고 있다. 그들은 감동받은 사람들처럼 진리를 전하기 위하여 제단에서 취한 핀 숯으로 입술을 지져야 할 필요가 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 안에 하늘에서 온 빛이 없는 기계적 설교를 가지고 설교단으로 나간다.

253 모든 교단들의 목회에는 자아가 너무 많고 예수님은 너무 적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기별을 선포하기 위하여 겸손한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왕의 위엄을 가지고 지상의 위대한 사람들이 갖추는 화려함으로 오셨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영접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님은 외관상 영광을 과시함으로 감각을 현혹시키지 않으시고 이것을 그들의 존경의 근원으로 삼지 않으셨다. 그분은 인류의 구속주는 물론이요 교사와 모본자가 되시기 위하여 겸손한 사람으로 오셨다. 만일 그분이 화려한 것을 장려하고 지상의 위대한 사람들을 수행원으로 데리고 오셨다면, 어떻게 그분이 겸손을 가르치실 수 있었겠는가? 그분께서 산상에서 하신 설교에서처럼 그렇게 빛나는 진리를 어떻게 제시하실 수 있었겠는가? 그분의 모본은 그분께서 그분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본받기를 원한 그런 것이었다. 만일 그분께서 고상한 지위로 오셔서 지상에서 왕으로 거하셨을 것 같으면 신분이 천한 자들의 희망은 어디에 있었겠는가? 예수께서는 그들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세상의 필요를 더 잘 아셨다. 그분은 하늘의 멋진 의상을 입은 천사로 오지 않으시고 하나의 인간으로 오셨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분을 사랑하고 있는 동안 그들을 놀라게 한 천성적 능력과 위엄은 그분의 겸손과 결합되었다. 그와 같은 사랑스러움, 그처럼 겸손한 외관을 소유하고 있을지라도 그분은 하늘에서 온 왕의 위엄과 능력을 가지고 그들 사이에 거니셨다. 사람들은 놀라고 당황했다. 그들은 그 문제를 풀어 보고자 애를 썼다. 그러나 그들 자신의 사상을 버리고자 하지 않고, 의심을 극복하지 못하고, 세상의 위엄을 갖추고 오실 구주에 대한 전통적 기대를 고집하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산상에서 설교하셨을 때, 그분의 제자들은 그분 주위에 가까이 모였고, 강한 호기심으로 충만해 진 무리들 역시 할 수 있는 대로 가까이 몰려왔다. 보통과 다른 무엇인가를 기대했다. 열띤 얼굴들과 듣고있는 태도들은 깊은 홍미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모든 사람들의 주의는 연사에게 고정되었다. 그분의 눈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으로 빛났고, 그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늘의 표정은 하신 바 모든 말에 의미를 부여했다. 하늘의 천사들이 듣고 있는 그 무리들 가운데 있었다. 거기에는 또한 영혼들의 원수가 악한 천사들과 함께 나타나서 할 수 있는대로 하늘에서 온 교사의 영향을 소멸시켜 버리고자 하고 있었다. 254 거기서 제시된 진리들은 각 시대를 통하여 전해 내려와 오류의 전반적 흑암속에서 빛의 역할을 해왔다. 많은 사람들은 그 진리들을 통하여 영혼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 곧 믿음과 행위의 분명한 기초를 발견했다. 그러나 세상에 지금껏 알려진 가장 위대한 교사께서 하신 말씀에는 인간적 웅변의 과시가 없었다. 언어는 평범하고, 사상과 감정은 가장 위대한 단순으로 특징지워져 있다. 가난한 자, 무식한 자, 가장 단순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도 그것들을 이해할 수 있다. 하늘의 주님께서는 자비와 친절로써 당신이 구원하러 오신 영혼들에게 말씀하고 계셨다. 그분은 권위를 가진 분으로서 그들을 가르치시고 영생의 말씀을 하셨다.

모든 사람은 할 수 있는 대로 가까이 모본되시는 분을 본받아야 한다. 그들이 예수님이 소유하셨던 능력을 인식할 수 없는 동안에도 그들은 능력의 근원과 연결됨으로 예수님이 그들 안에 거하시고 그들이 예수님 안에 거하시므로 그분의 영광과 그분의 능력이 그들 안에 나타나게 할 수 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요일 1:7)자.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은 세속적 마음과 이기심이다. 하늘에서 온 기별은 반대를 일으키는 성격에 속한 것이다. 성실한 그리스도의 증인들은 죄를 책망할 것이다. 그들의 말은 부싯돌 같은 마음을 깨뜨리는 망치와 같고, 찌꺼기를 사르어 버리는 불과 같은 것이다. 열렬하고 결정적인 경고의 기별들은 끊임없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의무에 성실한 사람들을 소유하실 것이다. 그분은, 엘리야의 사업과 유사한 사업을 하도록 적당한 때에 당신의 성실한 기별자들을 보내신다.

교육자로서의 목사

_______에 있는 일들의 상태는 크게 유감스런 문제이다. 주님께서 나에게 제시하기를 기뻐하신 것은 나에게 고통을 주는 성격의 것이었다. 이 곳에서나 이후에 ______에서 일을 할 자들은 누구든지 힘든 일을 맡고 무거운 짐을 져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업은 성실하게 수행되지 않고 미진한 상태로 버려져 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것이 더욱 슬픈 이유는 전적으로 그 실패가 세속적인 마음과, 백성들에게 예수님과 진리에 대한 사랑이 결여된 것에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중 대부분은 목사들에게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백성들 사이에서 활동하는 동안 그들의 의무를 현저하게 이행하지 못하였다. 255 그들은 선교 정신을 갖고 있지 못하였고, 그들은 진리가 발판을 얻은 모든 곳에서, 사업의 모든 분야에 관하여 백성들을 철저하게 가르칠 큰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한 영혼을 위하여 철저하게 이루어진 사업은 많은 영혼을 위해서 이루어진 일이다. 그러나 목사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진리를 옹호하고 다른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데 굳게 서야 할 사람들을 교육시키는데 실패했다. 이와 같이 느슨하고, 흐리멍텅하고, 어중간하게 일하는 방법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

어떤 목사는 설교하는 것을 좋아할 것이다. 그것이 좋아하는 사업의 분야이고, 또한 비교적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목사도 설교자로서의 능력에 의하여 평가를 받아서는 안 된다. 더 어려운 부분은 설교단을 떠난 후, 뿌려진 씨에 물을 뿌리는 데서 온다. 관심이 일깨워진 후에 개인적 노력,-방문, 성경 읽기, 성경 연구 방법 교수, 가족들과 흥미를 가진 자들과 함께 드리는 기도 등을 통하여 뒷수습이 이루어지고, 마음과 양심 속에 생긴 감명을 깊게 해주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믿지 않는 이웃 사람들과, 또한 접촉하는 사람들로 더불어 친숙해지고자 하는 욕망을 갖지 않는 자들이 많으며, 그들은 이와 같은 일을 싫어하는 마음을 극복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임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이 가르치는 진리와 예수님의 사랑이, 이 감정을 극복하는 데 그들을 도와줄 큰 능력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심판 때 바로 이 남녀들을 만나야 한다. 그들은 마땅히 말해 주었어야 할 말을 말하지 않고 남겨 두지는 않았는가? 그들은 경고하고, 권유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할 만큼 영혼들에게 충분한 관심을 갖고 그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하였는가? 그들은 열성과 함께 식별력을 가지고,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유 22, 23)라는 사도의 지시에 유의했는가?

목회 사업에서 성공하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이 이루어야 할 중대한 사업이 있다. 나는 사랑하는 형제들, 그리스도의 목사들에게, 백성들을 교육시켜 그 사업의 온갖 다양한 분야에서 하나님의 사업을 추진시키기 위하여 지혜롭게 일하게 하는 그대들의 의무에 실패하지 않도록 호소하는 바이다. 256 그리스도는 교육자이셨다. 그러므로 그분을 대표하는 그분의 목사들도 교육자가 되어야 한다. 그들이 백성들에게 십일금과 헌금에 있어서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의무를 가르치는 일을 등한히 할 것 같으면, 그들은 그들의 주님께서 그들에게 이행하도록 맡겨 주신 중요한 한 부분의 사업을 등한히 하게 되고. 하늘의 책들에 있는 그들의 이름 곁에는 “성실하지 못한 종”이라고 기록된다. 교인들은 이런 것들이 필수적이라면 하나님께서 진리를 제시하도록 그들에게 보냄을 받은 목사가 그들에게 그렇게 말해 줄 것이라는 결론을 버리고. 그들은 의무를 등한히 하고 있으면서도 안전과 평안을 느낀다. 그들은 분명한 하나님의 요구와 반대로 가기 때문에 무기력하고 무능해 진다. 그들은 구원하는 영향력을 세상에 발휘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맛을 잃은 소금으로 대표되었다.

안식일을 지키는 무리들이 많은 곳에서 생겨날 것이다. 흔히 그들은 큰 무리들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등한히 여김을 받아서는 안된다. 그들은 적당한 개인적 노력과 훈련의 부족으로 죽도록 버려져서는 안된다. 너무 일찍 그 사업을 버려 두고 가서는 안 된다. 다른 지역을 위하여 그들을 떠나기 전에, 모든 사람이 진리를 이해하고 있는지, 믿음 안에 굳게 서 있는지, 여러 가지 분야의 사업에 흥미를 갖고 있는지 알아보라. 그리고 사도 바울처럼, 그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기 위하여 그들을 자주 방문하라. 아, 하나님께로부터 그분의 말씀을 전하도록 사명을 받았노라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는 부주의한 사업은 천사들을 울린다.

만일 목사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들과 그들의 사업을 갈라 놓도록 허용하지 않는다면 사업은 모든 분야에서 건전한 상태가 될 수 있으며 또한 그렇게 될 것이다. 단순한 설교자들만 아니고, 두 가지 직무를 반드시 겸한 일꾼들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선교 지역에서는, 설교의 재능이 어떠하든지 간에 만일 활동하는 분야가 등한시 되고, 백성들이 어떻게 일을 하고 어떻게 집회들을 지도하고 어떻게 사람들과 성공적으로 접촉할 것인가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사업은 거의 실패하게 된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안식일 학교 사업에 있어서 또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의무를 깨닫게 하고 그들의 몫을 담당하게 하는 일에 있어서 많은 일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위하여 일하도록 그들을 부르시므로 목사들은 그들의 노력을 지도해야 한다.

257 이 지역들의 사업은 지금보다 여러 해 앞서 있어야 한다는 것은 슬픈 사실임에 틀림 없다. 목사들측에서의 태만은 백성들을 낙담시켰고, 백성들측에서의 사업에 대한 관심과 자아 희생과 존중의 부족은 목사들을 낙담시켰다. “2년 뒤떨어져 있다”는 말이 하늘의 원부에 기록되어 있다. 만일 이 백성들이 그들의 기회를 이용하고 그들의 특권을 최선껏 활용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걸어가지 않고 믿음과 용기로 걸어갔더라면, 그들은 진리의 사업을 크게 발전시키고 여러 지역에서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동시에 그들 자신도 은혜와 진리의 지식 가운데서 자라났을 것이다. 오직 영원만이, 이런 해들 동안에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는지,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이런 상황 속에서 멸망당하도록 버린 바 되었는지 나타내 줄 것이다. 손실은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하나님은 모욕을 당하셨다. 지나온 경로는. 치료하는 데 여러 해가 걸릴 상처를 사업에 남겼다. 범해 온 실수들을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을 것 같으면, 그것들은 분명히 되풀이될 것이다.

이런 사실에 대한 깨달음은 나에게 말할 수 없는 짐을 지워 주고 나의 눈에서 잠을 빼앗아 갔다. 때때로 나의 심장은 찢어지는 것 같았고, 나는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는 동안 나는 큰소리로 울음으로 고민을 터트렸다. 아, 나는 우리 구주께서 너무도 섭섭히 여기시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분께서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 사이에서 열매를 찾으시다가 잎 외에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을 때의 실망이 나의 눈앞에 너무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 같았다. 나도 그것을 발견할 수 없을 것으로 느꼈다. 나는 과거 여러 해 동안 목사들과 백성들측에 나타난 의무 태만에 대하여 변명할 길이 없었다. 나는 무화과나무를 말라 버리게 한 저주가 이 부주의한 자들의 운명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위탁하신 사업의 수행과 사명 완수를 놀랍게 등한히 함으로 우리들 중 아무도 도울 길이 없는 손실을 야기하고 있다. 그것은 생각하기에 너무 무섭고, 우리의 종교 역사의 어느 때에도 모험해 보기에 너무 두려운 일이다. 그러나 특별히 시간이 이처럼 짧고, 이 하나님의 준비의 날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오늘날은 더욱 더 그렇다. 258 온 하늘은 사람들의 구원에 열렬하게 참여하고 있다. 빛은 하나님께로부터 그분의 백성들에게로 와서 그들의 의무를 밝혀 주기 때문에 아무도 바른길에서 어긋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빛과 진리가 경하게 인정되거나 하찮게 취급되게 하고자 보내지 않으신다. 만일 백성들이 부주의하면, 그들은 그분 앞에 이중으로 죄가 있다.

그리스도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을 때, 그분은 감람 산 위에서 예루살렘을 보시면서 억제할 수 없는 슬픔을 터뜨리시고 비통한 말씀으로 부르짖으셨다.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다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눅 19:42). 그분은 자신을 위하여 울지 않으시고 그분의 자비와 오래 참으심과 인내를 멸시하는 자들을 위하여 우셨다. 완고한 마음을 가진 자들과, 운명지워진 도성의 회개하지 않은 자들이 취한 행동은 이 시대에 그리스도께 대하여 취하는 교회와 개인들의 태도와 유사하다. 그들은 그분의 요구를 등한히 하고 그분의 오래 참으심을 멸시한다. 경건의 모양이 있고, 의식적인 예배가 있고, 찬양하는 기도가 있지만 진정한 능력은 없다. 마음은 은혜로 부드러워지지 않고 냉랭하고 감동이 없다. 많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처럼 불신으로 눈이 어두워져서 그들의 심판의 때를 알지 못한다. 진리에 관한한 그들은 온갖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해 동안 그들에게 경고와 책망과 견책을 통하여, 또한 의를 통한 교훈으로 호소해 오셨다. 그러나 특별한 지시들이 오직 멸시의 대상이 되어 왔고, 통속적인 것들과 같은 수준에 놓이게 되었다.

돈을 사랑하는 자들을 꾸짖을 의무

신자로 헤아림을 받는 많은 사람들이 믿음과 원칙에 있어서는 실제로 신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하지 말도록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하고 있다. 곧 그들은 보물을 땅에 쌓아 두기 위하여 애쓰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19-21) 고 말씀하셨다.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을 위협하는 하나의 위험이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적극적인 지시를 순종하지 않는다. 259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진정한 믿음과 확신을 보이지 않는다. 재물을 얻기 위하여 그들은 무거운 짐과 염려를 모아서 마침내 그들의 마음을 그것들에 거의 완전히 빼앗기기까지 된다. 그들은 이들을 위하여 열광하고 상실의 두려움으로 항상 염려한다. 돈과 토지를 많이 소유하면 할수록 그들은 더 많이 얻기 위하여 더 열광한다.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인함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인함이 아니라”(사 29:9). 그들은 이 세상 생애의 염려로 배부르게 되었는데, 그것은 마치 독주가 주정뱅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그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들은 이기심으로 너무 눈이 멀었기 때문에 썩을 재물을 얻기 위하여 밤낮 일을 한다. 그들은 영원한 이익은 등한히 한다. 그런 것에 주의를 기울일 시간이 없다. 그들의 말과 계획과 행동을 통하여 밝혀지는 바와 같이 위대한 진리에 관한 문제는 마음 속에 간직되어 있지 않다. 만일 그들 주변에 있는 영혼들이 그들의 죄악으로 죽는다면 어떨까? 이것은 그들의 세상 재물 만큼 그들에게 그렇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영혼들이 멸망에 빠질지라도, 그들에게는 그들을 구원할 시간이 없다. 세상의 이득을 얻기 위한 계획을 세울 때는 그들이 솜씨와 재간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 귀중한 특성들이 그리스도께 영혼들을 인도하고, 구속주의 나라를 세우는 데는 바쳐지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의 감각은 왜곡된 것이 아닌가? 그들은 취하게 하는 세속의 잔에 취한 것이 아닌가? 이성은 버려지고 이기적 목적과 목표가 지배하는 능력을 장악한 것이 아닌가? 주님의 날에 서기 위하여 자신을 준비시키는 사업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재능을, 한 백성을 그날에 준비시키기 위하여 도와주는 데 사용하는 일은 너무도 재미없고 만족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세상의 구주께서는 부한 자와 가난한 자, 배운 자와 배우지 못한 자들이 종사할 수 있는 가장 유익한 사업을 제시하셨다. 모든 사람은 그들 스스로를 위하여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을 안전하게 쌓아 둘 수 있다. 이것은 그들의 능력을 올바른 편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달란트를 환전자들에게 맡기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주님께 크게 은혜를 입은 부자 농부의 경우를 들어 그분의 교훈을 설명하셨다. 주님께서는 그의 토지를 축복하셔서 많은 수확을 얻게 하심으로 그의 힘으로, 그처럼 크게 축복을 받지 못한 다른 사람들에게 너그러움을 나타내게 하셨다. 260 그러나 그의 토지가 기대 이상으로 너무도 풍성한 수확을 가져온 것을 발견하자 그는 궁핍한 중에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지 계획하는 대신에 모든 것을 안전하게 간직하는 방법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하늘의 선물이 그의 곳간으로 굴러 들어오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관대한 시여자에게 감사하는 말로 심령을 토로하지도 않고, 이 큰 축복이 부가적인 책임을 지워 주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도 않았다. 순수한 그의 본성 그대로의 이기심으로 그는 자문한다.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그 자신의 탐욕적인 마음과 의논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진정한 기쁨의 수단과 영혼의 향상은 활동과 자제와 거룩한 목적에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풍성한 선물을 놓고 제안한 것은 영혼을 타락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 12:17-21).

이 가련한 부자는 세상의 보화를 크게 소유하였지만 진정한 재물에는 가난했다. 오늘날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유사한 이유로 정죄를 받고 있다. 구원의 물줄기는 하나님의 보좌에서 우리에게로 쏟아진다. 물질적인 축복이 주어지지만, 그것들이 인류를 복되게 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이용되지는 않는다. 주님은 우리의 은혜로운 시혜자(施惠者)시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빛과 불멸을 드러내셨다. 분명히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의 모든 축복은 오게 된다. 아, 모든 혀가 크신 시여자를 시인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음성이 분명하고 즐거운 노래로, 예수님을 통하여 미래의 생애, 불멸의 생애가 우리에게 열려져 있고, 모든 사람에게 이 큰 은혜를 받아들이도록 초청이 주어져 있다는 기쁜 소식을 선포하도록 하라. 하늘의 모든 보화는 우리의 손이 미칠 수 있는 곳에 있으며, 우리의 요구를 기다리고 있다. 이 가련한 부자가 영원한 부, 불멸의 생명의 무한한 선물,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에서 돌아서서 멸할 수밖에 없는 지상의 보화로 만족했다는 이유로 어리석은 자라고 불리워졌다고 해서 우리가 놀랄 수 있겠는가?

261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은 이런 방법으로 또 어떤 사람들은 저런 방법으로 시험하신다. 그분은 어떤 사람에게는 당신의 풍성한 선물을 주심으로써,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당신의 은총을 주시지 않고 간직하고 계심으로 그들을 시험하신다. 그분은 부자들이 시여자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는지 보시고자 그들을 시험하신다. 사람이 이 선물들을 올바르게 사용할 때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그에게 더 큰 책임들을 맡기실 수 있다. 주님께서는 이생과 영원, 땅과 하늘에 대한 사람의 비교 평가를 보여 주신다. “재물이 늘어도 거기 치심치 말지어다”(시 62:10). 다른 사람들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될 때 그것들은 가치가 있다. 그러나 어떤 지상의 보화도 그대들의 기업이나 그대들의 신이나 그대들의 구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의 형제들이여, 세상은 그대들이 일시적인 사물에 관하여 적게 이야기하고 영원한 세계의 실존에 관하여 더 많이 이야기하지 않는 한, 그대들의 신앙이 진지하다고 결코 믿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오신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있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 사건이 가까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시된 목적에 그들의 믿음을 고착시킬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한 정열에 완전히 몰두되어 버렸기 때문에 세상의 재물이 하늘의 보화를 가리워 버렸다. 세속적인 것은 홍수처럼 밀려 온 반면에, 영원한 사물들은 별반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서 마음에서 사라져 버렸다. 내가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가장 큰 질문이다. 사람들은 이득에 대한 온갖 희망에는 민감하다. 그들은 수천 가지의 계획과 고안들을 시도하는데, 그 중에는 발명과 특허권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귀중한 금속들을 얻고자 땅을 파고, 어떤 사람들은 은행 주식에 관여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토지를 경작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돈을 버는, 이 하나의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들은 재물을 좇는 일에 정신을 빼앗기고 미치기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불멸의 유업을 확보하는 것의 이익을 깨닫고자 하지는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 그분은 상상력이 세속적 이득에 대한 희망으로 열광하게 된 어떤 사람들과 접촉하셨다. 그들은 결코 휴식하고 있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무엇인가를 하고자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엄청난 기대는 실망을 가져다 줄 뿐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의 욕망을 아셨는데, 그것은 각 시대에 동일한 것이다. 262 그러므로 그분은 그들의 주의를 오직 영원한 부로 향하도록 이끄셨다. 그분은 말씀하셨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마 13:44). 그분은 사람들에게 모든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측량할 수 없는 보화에 관하여 말씀하신다. 그분은 이 보화를 찾는 일에 있어서 그들의 마음을 지도하고자 이 세상에 오셨다. 길은 분명히 드러나 있다. 그분을 따르는 가장 가난한 사람도 세상에서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가장 부요한 사람보다 더 부해 질 수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의 행복을 나누어 줌으로써 더욱 더 부해 질 수 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마 6:19, 20). 이렇게 하는 자들은 손실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하늘에 쌓아 둔 보물은 안전하다. 그것은 우리의 계정에 넣어져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지상에서 씨를 뿌리지만 영원을 통하여 거두게 된다.

그리스도의 목사들이 어디로 가든지 제시해야 할 것은 이 영원한 보화이다. 그들은 백성들이 구원에 대하여 지혜롭게 되도록 권유해야 한다. 그들은 이른바 세상을 사랑하는 기회주의적인 신자들이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주고 그들의 믿음을 약화시키게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개인들이나 교회들이 하나님의 사업에 있어서 좁은 계획들과 제한된 노력을 통하여 돈을 저축하는 방법을 고안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그들의 사명은 아니다. 그렇게 하는 대신에 그들은 사람들에게, 이기심 없이 일을 하여 하나님께 대하여 부해지는 길을 가르쳐야 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영원한 사물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첫째로 삼도록 가르쳐야 한다.

이 두 지역에는 갈렙과 같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 합회들에는 어린아이들이 아니고, 분별력 있게 움직이고 책임을 질 수 있고, 그들의 음성이 반대와 의심과 비평을 나타내는 불성실한 자들의 음성보다 더 크게 들리게 하는 장부들이 있어야 한다. 큰 사업들은 어린이들에 의하여 관리되어서는 안 된다. 신앙적 성장에 있어서 난장이가 되어 있고, 하늘에서 온 지혜가 부족한 성숙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은 교회가 때때로 통과하도록 부름을 받은 치열한 투쟁에 대처할 준비가 갖추어져 있지 않다. 263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사 62:6). 목사가 두려움 없이 진리 전체를 선포하지 않으면, 그가 하나님의 영광만을 바라보고 그의 위대한 구원의 대장의 지시 아래 일하지 않으면, 그가 비난을 개의치 않고 또한 칭찬으로 더럽혀 지지 않고 최전선에 나가지 않으면, 그는 불성실한 파수꾼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_______에는 소년들이 되는 대신에 대장부가 되고 세속적이요 정욕적인 마음 대신에 하늘의 마음을 가져야 할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그들의 영적 시야는 흐려졌고, 구주의 큰 사랑이 그들의 심령을 빼앗지 못했다. 그분께서는 그대들에게 말씀하실 것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대들은 지금 그것들을 감당할 수 없다. 그대들은 성장하는 중에 있는 어린이들이므로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업을 하도록 사람들을 일으키실 때, 그들의 증거가 헌신하지 못한 자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도록 꼴 지워지게 한다면 그들은 맡은 일에 진실하지 못하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을 그 시대를 위하여 준비하실 것이다. 그들은 겸손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고 보수적이요 정략적인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도덕적 자립심을 가지고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가운데 앞으로 전진할 사람들이다. 그들은 친절하고 고상하고 예의 바를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바른길에서 흔들리지 않고, 사람들이 듣든지 듣지 않든지 간에 의의 진리를 선포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성장

나는 진리의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모든 힘을 세속적인 사업에 바치고 있는 자들은 불성실하다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들의 착한 행실로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의 빛을 비추고 있지 않다. 그들의 거의 모든 힘은 세상의 영리하고 재간 있는 사람들이 되기 위하여 바쳐진다. 그들은 그들의 재간이 하나님의 사업을 발전시키는 데 사용되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잊어버렸다. 만일 그들이 의무에 성실했을 것 같으면, 그 결과로 많은 영혼들이 주님께로 인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태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바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뜻을 아는 자들이 그분의 말씀을 행하는 자들이 되기를 요구하신다. 264 연약함과 반신 반의와 우유 부단은 사단의 공격을 야기시킨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특성들이 자라나도록 허용하는 자들은 유혹의 물결에 속절없이 넘어지고 말 것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인의 산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도록 요구를 받고 있다.

우리는 모두, 마치 항해자가 모래톱이나 바위 투성이의 강을 지나갈 때 안내자가 필요한 것처럼 생애에 있어서도 많은 좁은 길로 통과할 때 안내자가 필요하다. 그러면 이 안내자를 어디에서 발견해야 할 것인가?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우리는 그대들에게 성경을 가리키는 바이다.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 거룩한 사람들이 기록한 말씀, 그것은 매우 분명하고 정확하게 노소 모두에게 의무를 지적해 준다. 그것은 정신을 고상하게 하며,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심령에 즐거움과 거룩한 기쁨을 준다. 성경은 완전한 품성의 표준을 제시한다. 그것은 모든 환경에서, 심지어 생의 여행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분명한 안내자가 된다. 그것을 그대의 고문으로, 매일의 생애의 지침으로 삼으라.

모든 은혜의 수단을 부지런히 계발시켜, 하나님의 사랑이 심령 속에 점점 더 풍성해지고,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빌 1:10, 11)지게 하라. 그대의 그리스도인 생애는 활기차고 튼튼한 형태를 취해야 한다. 그대는 성경을 통하여 그대 앞에 제시된 높은 표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자 하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대는 가만히 서 있을 수 없다. 그대는 전진하든지 뒤로 물러가든지 둘 중 하나를 해야 한다. 그대는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엡 3:18, 19) 채워지기 위하여 영적 지식을 소유해야 한다.

진리에 대하여 지적인 지식을 가지고 논증으로 그것을 옹호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우는 데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때때로 만난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인 생애에 있어서 개인적인 체험에 속한 산 간증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거룩한 싸움에서 얻은 새로운 승리를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대신에 그대는 똑같이 판에 박힌 낡은 일, 기도와 권면에 있어서의 동일한 표현을 보게 된다. 265 그들의 기도에는 새로운 특색이 없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일에 있어서 더 큰 지성을 나타내지 않고, 더 열렬하고, 산 신앙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주님의 동산에서 산 식물이 되어 새로운 어린 가지들과 새 잎을 내거나 거룩한 생애의 향기를 발산하지 않는다. 그들은 성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다. 그들은 견해와 계획들이 제한되어 있고, 마음의 확장이 없고, 그리스도인 지식의 보화에 가치 있는 것들이 증가되지 않았다. 그들의 능력은 이런 방면으로 쓰여지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시는 것처럼 사람들과 사물들을 보는 법을 배우지 못했으며, 또 많은 경우에 있어서 거룩하지 못한 동정이 영혼들을 손상시키고 하나님의 사업을 크게 망쳐 버렸다. 편만해 있는 영적 침체는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죄인처럼 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지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형식적 그리스도인 생애를 하고 그들의 죄가 용서되었다고 주장한다.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제한된 그리스도인 성장을 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거룩한 생애에 있어서 건전한 발전을 할 것인가? 영적 건강이 있는 곳에는 성장이 있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남녀의 충만한 분량까지 자라게 된다. 그런 사람의 성장에는 제한이 없다. 하나님의 사랑이 심령 속에서 산 원칙이 될 때, 좁고 편협한 견해는 없어진다. 경고와 책망에는 사랑과 성실이 있고, 무거운 짐을 지고 책임을 감당하려는 열렬한 활동과 경향이 있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즐겨 자아를 부인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책임을 지도록 권유받을 때 진정으로 인내심이 없음을 보여 준다. 그들은 “지식과 경험의 증가가 무엇 때문에 필요한가”라고 말한다. 이런 사실이 그것을 모두 설명한다. 하늘이 그들을 가련하고, 곤고하고, 눈멀고, 벌거벗었다고 선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참된 증인은 말한다.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 3:18). 바로 그대들의 자아 만족은 모든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대들에게 보여 준다. 그대들은 영적으로 병들어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그대들의 의사로서 필요하다.

266 성경에는 피상적인 탐구자에게서 숨겨져 있는 수많은 진리의 보석들이 있다. 진리의 광맥은 결코 고갈되지 않는다. 그대들이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을 연구하면 할수록 그대들의 유익은 더욱 커질 것이며, 그대들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라고 바울처럼 부르짖고 싶어질 것이다. 매일 그대들은 성경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 감추인 보화를 찾듯이 성경을 탐구하라. 성경에는 영생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이 거룩한 글을 깨닫기 위한 지혜와 명철을 구하라. 만일 그대들이 이렇게 할 것 같으면 그대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새로운 미들을 발견할 것이다. 그대들은 진리와 관련된 주제에 관하여 새롭고 귀중한 빛을 받은 것을 느끼게 될 것이며, 성경은 그대들의 평가에 있어서 새로운 가치를 끊임없이 얻게 될 것이다.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심히 빠르도다”(습 1:14). 예수님은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신다(계 22:7, 12). 우리는 이런 말씀을 언제나 마음에 새기고 주님의 오심이 가까웠다는 것과 세상에서는 우리가 순례자요 나그네임을 진정으로 믿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하나님의 교회의 활력 있는 능력은 위대한 자아 개혁의 목적을 위한 적극적인 운동에 바쳐지고 모든 교인들은 하나님을 위한 적극적인 대리자가 되어야 한다.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18-22). 이것은 독특한 사업인데 모두가 조화를 이루고, 성령으로 연합하고 또한 평안의 줄로 매어져 추진해야 할 사업이다. 비평과 의심과 불신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아파 콜롬비아 합회와 노스 패시픽 합회는* 여러 해 뒤떨어져 있다. 마땅히 강해야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굳게 세워져야 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에 대한 이해와 체험적 지식에 있어서 어린 아이와 같다. 267 여러 해의 경험이 있은 후에 그들은 다만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이루고 있는 믿음과 교리의 큰 체계에 대한 첫째 원칙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잘 하였다”는 칭찬을 받을 수 있는 품성의 완성을 깨닫지 못한다.

형제들이여, 그대들의 의무와 행복과 장래의 유용성과 최후의 구원은 그대들의 애정의 덩굴손을 세속적인 것과 부패한 모든 것에서 떼어 버리기를 요구한다. 사랑에 병든 감상주의의 성질이 있는 세속적이요 정욕적인 거룩하지 못한 동정이 있다. 그대들 중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런 것을 극복하고 그대들의 생애의 길을 바꾸는 데 있어서 연약한 노력을 가지고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들은 이스라엘의 능력과 그대들 자신과는 연결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들의 모든 기능들이 연약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그대들은 품성이 변화되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남녀들이 되기 위하여 모든 은혜의 수단들을 이용하는 일에 부지런해지라는 요구를 크게 받고 있다.

우리에게는 얻어야 할 큰 승리가 있다. 그것을 얻지 못할 때는 하늘을 잃어버릴 것이다. 육신의 마음은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 그 경향은 도덕적 부패로 기울어지는 것이고, 그 종국은 죽음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주는 복음의 감화 외에는 아무것도 영혼을 도울 수 없다. 성령의 강력한 능력이 소생시키고, 회복시키고, 변화시키는 능력을 모두 가지고서 전기의 충격처럼 마비된 심령에 임하여 모든 신경을 새 생명으로 전율케하고 세속적이요, 죽은 정욕적 상태에서 영적 완전으로 전인적(全人的)회복을 이루어 주시도록 기도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그대들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 정욕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대들의 심령에는 그대들을 고치기 위하여 채찍에 맞으신 분의 형상이 반영될 것이다.

십일조와 헌금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빌려 주신 재산 중 특정 부분을 십일조와 헌금으로 그분께 돌려주도록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그분께서는 이 헌금들을, 우리측에서의 겸손한 순종과 우리가 누리는 모든 축복에 대하여 그분께 빚지고 있는 사실을 감사한 마음으로 인정하는 하나의 행위로서 받으신다. 268 그러므로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바치고, 다윗처럼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라고 말하도록 하자. 적당한 것 이상으로 움켜쥐고 있으면 가난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모든 사람을 시험하시고 심사하실 것이나, 그러나 그분의 저주는 이기적이요 세속적인 진리의 공언자에게 반드시 따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아시며, 모든 사상과 모든 목적이 그분의 눈에 펼쳐진다. 그분은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삼상 2:30)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누가 축복받을 자이며 누가 저주를 받기에 합당한 자인지 아신다. 천사들이 우리의 모든 행위와 말에 대한 기록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그분은 실수가 전혀 없으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광야에서 성소를 짓고자 했을 때. 여러 방면에 걸친 준비가 필요했다. 비싼 재료들이 수집되었는데, 그 중에는 많은 금과 은이 있었다. 주님께서는 백성들의 모는 재산의 정당한 소유주로서 이들에게서 이런 헌물들을 요구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자원해서 바치는 것들만을 받으셨다.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 여호와의 명하신 일에 쓰기에 남음이 있나이다”라는 말이 마침내 모세에게 전달될 때까지 그들은 즐겨 바쳤다. 그리하여 모든 회중에게 이렇게 공포하게 되었다. “무론 남녀하고 성소에 드릴 예물을 다시 만들지 말라 하매 백성이 가져오기를 정지하니 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더라”(출 36:5-7).

좁은 견해를 가진 어떤 사람들이 현장에 있었다면 그들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을 것이다. 그들은 유다처럼, “무엇 때문에 이렇게 낭비를 하는가, 왜 가장 값싼 방법으로 모든 것을 만들지 않는가”라고 질문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소는 사람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의도되었다. 그분은 어떻게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특별한 지시를 하셨다. 백성들은 그분이 위대하고 위엄 있는 분이시므로 존경과 경외심으로 경배를 받으셔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집은 그분의 품성과 위엄에 걸맞는 것이어야 한다. 269 교인들이 하나님의 사업보다 그들 자신의 관심사를 더 중요시하기 때문에 언제나 작은 규모로 머물러 있게 될 작은 교회들이 있다. 그들이 자신들을 위하여서는 크고 안락한 집들을 소유하여 그것들을 끊임없이 개량해 가면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가 거하시는 하나님의 예배를 위해서는 가장 적합하지 않는 장소를 소유하는 데 만족한다. 그들은 요셉과 마리아가 마구간에서 피신처를 찾을 수밖에 없었고 거기서 구주가 탄생하게 된 것을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예배하는 집이 수치스럽게도 등한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자신을 위하여 재산의 큰 부분을 즐겨 사용하고자 한다. 그들은 자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주어진 여호와의 말씀은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학 1:2, 4)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과 만나시는 집은 아담하고 매력적이어야 한다. 어떤 지역에 소수의 신자들밖에 없다면 아담하면서도 작은 집을 지어서 그것을 하나님께 헌당함으로 예수님이 그대들의 손님으로 오시도록 초청하라. 그분의 백성들이 마음의 욕망대로 편리한 것을 다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창고나 어떤 초라하고 괴상한 건물이나, 어떤 값싸고 버려진 아파트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모이기를 즐겨한다면 그분께서는 그들을 어떻게 보시겠는가? 그대들은 친구들을 위하여 활동하고, 그들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대로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하여 자금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대들을 위하여 모든 것, 그분의 귀중한 생명까지 바치신 분, 하늘의 왕이시며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님에게는 그분의 최초의 집이었던 마구간보다 불과 조금밖에 더 낫지 못한 장소가 지상에서 허락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처럼 이런 것들을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우리의 동기를 시험해 보고 우리가 어떤 종류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깨닫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그들이 아낌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드림으로써 그분의 사업이 발전하고 그분의 영광을 촉진시킬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이 능력 이상으로 바치도록 결코 요구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능력대로 받으시고 그들의 감사의 예물을 축복하시기를 기뻐하신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순종과 순수한 사랑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모든 헌물을 제단에 붙들어 매도록 하라. 그분께서는 인색한 마음으로 바치는 자들을 불쾌히 여기시는 반면에 그런 희생 제물은 즐겨 받으시기 때문이다. 270 교회나 개인들이 헌금하는 데 마음이 없고, 하나님의 사업을 추진시키는 데 필요한 비용을 제한하거나 그들의 좁은 견해로 그것을 측정하게 될 때. 그들은 하나님과의 산 연결을 이루고 있지 않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보여 주게 된다. 그들은 그분의 계획과 일하는 방법에 일치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그들을 축복하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건축자들이므로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마련해 놓으신 기초 위에 건축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사람도 하나님께서 고안해 놓으신 계획과 상관없이 자기 자신의 기초 위에 세워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상담역으로 양성한 사람들, 그분께서 가르치시고, 마음과 영혼과 생애가 그 사업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그들의 사업 때문에 크게 존경을 받아야 한다. 자신들의 미숙한 생각을 따르고자 하는 몇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충고를 받고 형제들과 조화를 이루어 일을 하기 위하여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추수하기를 원치 않을 의심과 불화를 심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자들이 피차에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분의 예배는 일관성과 연합과 건전한 판단으로 행해져야 한다.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이 우리를 도우시는 유일한 분이시다. 그분의 백성을 지배하는 법칙, 그들의 사상과 행동의 원리는 그분의 말씀과 영을 통하여 그분에게서 받는다. 그분의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할 때, 그분의 자녀들은 빛 가운데서 행하게 되고, 그들 가운데는 그들에게는 넘어지게 하는 원인들이 없어진다. 그들은 세상의 낮은 표준을 받아들이지 않고, 성경상 관점에서 일하게 된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기심을 매우 불쾌히 여기신다. 성경은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비난한다. 바울은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엡 5:5)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는 문제는 그들이 너무 믿음이 적기 때문이다. 비유에 있는 부자처럼 그들은 창고에 쌓여 있는 그들의 물품들을 보기를 원한다. 세상은 경고를 받아야 하고,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사업에 완전히 헌신하기를 바라신다. 그러나 사람들은 돈을 버는 그들의 사업을 추진시키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업적을 전진시킬 시간이 없다. 그들은 그들의 지능과 재간과 정력을 하나님의 사업에 바칠 시간도 없고 의향도 없다.

271 형제 자매들이여, 나는 그대들의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사업과 일에 대한 현재의 제한된 그대들의 사상을 싫어하는 혐오감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나는 그리스도의 가난을 통하여 그대들이 영원한 부를 소유할 수 있도록, 그분께서 가난하게 되심으로 그대들을 위하여 치르신 큰 희생을 그대들이 깨닫기를 바란다. 아, 그대들이 소유할 수 있는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에 냉담함으로써 천사들이 울고 수치와 혐오감으로 얼굴을 가리게 하지 말라. 그대들의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고,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능력을 일깨우라.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귀중한 영혼들을 위하여 일하라. 만일 그리스도의 우리 안으로 인도되기만 하면, 이 영혼들은 영원 무궁토록 살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들은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할 수 있는 대로 적게 노력하고자 계획하고, 한편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그대들의 재물을 땅속에 묻어 두겠는가? 그 충성되지 못한 종처럼 그대들은 하나님께서 심지 않은 곳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곳에서 모으신다고 원망하는가?

그대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과 그대의 존재 자체는 하나님께 속해 있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마음으로부터,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잠 3:9).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형제들에게 그리스도인 자선에 대하여 이렇게 권면한다.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고후 8:7).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 6:17-19).

우리들은 관대함을 타고나지 않기 때문에, 그 덕성은 우연히 습득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계발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물질로써 하나님을 공경하고자 신중하게 결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것도 마땅히 그분께 돌려드려야 할 십일조와 연금을 그분에게서 도둑질하도록 유혹하게 허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대한 자선 행위와 풍성한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나타내는 데 있어서 지성적이요, 조직적이요, 지속적이어야 한다. 272 이것은 우연히 하거나 충동이나 감정에 지배되어 행하기에는 너무도 신성한 의무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장하는 돈이 도둑질당하는 일이 없도록 그분의 사업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정규적으로 저축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하나님께 도둑질하면 우리 자신에게도 도둑질하게 된다.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을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하여 하늘의 보화를 포기한다. 이것은 우리가 구제받을 수 없는 손실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생애를 살면, 세속적 사업에 그분의 번영케 하는 손길이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그러나 그분의 손이 우리를 대적하시면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계획을 깨뜨려 버리시고 우리가 모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빨리 흩어버리실 수 있다.

나는 이 두 합회가 직면한 상황이 참으로 슬프다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하나님이 열렬한 관심으로 돌보시는 많은 귀중한 영혼들이 이 곳에 있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기만당하고 잘못 지도되도록 버려 두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사업에 성실함

오리건과 워싱턴 지역에 있는 교회들에는 귀중한 인재들이 있다. 훌륭하게 지도된 활동에 의하여 계발되기만 했다면 지금은 그 합회들이 유능한 일꾼들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진리는 하나의 능력이다. 그러므로 그 능력을 깨닫는 자들은 담대하게 서서 두려움 없이 옹호하게 될 것이다. 진리는 지성으로 이해되어 마음 속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리고 그 원칙이 품성을 이루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받아들이게 하고자 끊임없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시는 빛을 사용하는 일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모든 백성들에게 당신께서 주신 재능을 계발시키도록 요구하신다. 정신적 능력은 최대한으로 계발되어야 한다. 그들은 영적 진리를 깊이 생각함으로써 강하게 되고 고상하게 되어야 한다. 만일 정신이 거의 완전히 하찮은 사물들과 일상 생활의 평범한 일에 쏠리게 되면 그것은 그 불변의 법칙들 중 하나에 의하여, 약하고 보잘것없이 되고 영적 능력이 부족하게 된다.

273 사람들의 심령을 시험할 시대가 우리 앞에 다가왔다. 믿음이 연약한 자들은 그 위기의 날의 시험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위대한 진리들은 주의 깊이 연구되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성적인 지식을 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 연구와 예수님과의 매일의 교통을 통하여 우리는 개인의 책임에 대하여 분명하고 잘 정의된 견해와, 시련과 시험의 날에 설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사슬에 의하여 그리스도와 연합된 생애를 하는 자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속한 사물에는 더 많은 생각을 기울이고 세속적인 사물에는 더 적게 기울여야 한다. 만일 세상을 사랑하는 믿음의 공언자가 그 방면에서 그의 정신을 연단했을 것 같으면 그는 지금 세속적인 사업에 정통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정통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탐구하는 일에 부지런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거듭거듭 읽으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하여 고의적으로 무지해지면 그리스도인의 생애와 품성이 위태로워진다. 그것은 이해력을 눈멀게 하고 가장 고상한 능력을 타락시킨다. 우리의 생애를 혼란에 빠뜨리는 것은 이것이다. 우리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계시된 진리의 원칙을 조직적으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 원칙은 세상에 다가오는 일에 대하여 그들이 적응할 수 있게 해주고, 그들이 모든 교훈의 바람에 밀려 다니지 않도록 방어해 줄 것이다.

미구에 세상에는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일에 대하여 체험적 지식이 필요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낙담하게 하고 그들의 믿음을 불안하게 하는 것이 사단의 일이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사업을 하도록 책임을 맡고 그 일에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지위와 믿음과 계획에 관하여 의심과 의문을 넣어 주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다 써서 노력하고 있다. 비록 그가 거듭거듭 실패할지라도, 그는 공격을 새롭게 하고, 겸손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노라고 공언하는 자들과 외관상으로 현대 진리에 관심을 가지고 그 진리를 믿는 자들을 통하여 활동한다. 274 진리의 옹호자들은 그들의 공공연한 원수들로부터 맹렬하고 잔인한 공격을 받을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이것은 자유롭게 의심할 수 있다고 느끼고 하나님의 종들이 하고 있는 일에 결점을 찾는 자들이 나타낸 은밀한 의심보다 훨씬 위험이 적다. 이 사람들은 겸손한 자들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기만을 당한 자들이며 다른 사람들도 기만한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질투와 악한 추측들이 있다. 그들은 그들이 신임해야 할 자들,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업을 하도록 택한 자들을 신뢰하는 백성들의 믿음을 약화시킨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에 대하여 책망을 받으면 그들은 그것을 개인적 모독으로 여긴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업을 하고 있노라고 공언하면서도 사실상 원수를 돕고 있다.

형제들이여. 어떤 사람의 사상이 교회 안에 존재하는 질서와 조화에 관하여 그대들의 믿음을 불안하게 하도록 결코 허용하지 말라. 그대들 중 많은 사람들은 모든 것을 분명하게 보지 못한다. 성막 봉사의 질서에 관한 지시는 세상에 생존할 모든 사람에게 교훈을 주기 위하여 기록되었다. 성막을 세우고 뜯는 일의 여러 부분을 담당할 사람들이 선정되었다. 만일 한 사람이 부주의해서 정도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에게 맡겨진 사업에 손을 대게 되면 그는 죽임을 당해야 했다. 우리는 오늘날 동일한 하나님을 섬긴다. 그러나 죽음의 형벌은 없어졌다. 그것이 없어지지 않았다면, 그분의 사업에서 오늘날 그처럼 부주의하고 무질서하게 일하는 것이 많지 않을 것이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그분은 그분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법칙과 규칙을 가지고 질서를 지키도록 요구하신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사업을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

한 순간일지라도 마음 속에 의심을 품는 것은 안전하지 못하다. 바로가 최초의 이적을 거절했을 때 뿌린 의심의 씨들은 자라나도록 허용되어 너무도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되었으므로 그 후에 계속된 모든 이적들은 그의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그에게 납득시킬 수 없었다. 그는 그의 태도를 계속적으로 고수하여 한 가지 차원에서 다른 차원의 의심으로 발전시켰다. 그리하여 그의 마음은 점점 더 완고해져서 마침내 그는 장자들의 싸늘하게 죽은 얼굴들을 보게 되었다.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다. 그러나 우리는 인자가 나타날 그날에 설 한 백성을 준비시키기 위하여 이루어져야 할 사업의 절반도 하고 있지 않다. 275 하나님께서 하고 계시는 사업을 조금이라도 방해하고자 노력하는 자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활동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형제들이 세속적 재물을 붙드는 손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세속적인 유익을 얻기 위하여 영생에 이르는 장자의 명분을 팔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말들을 불만스럽게 터뜨리기보다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재물을 하늘에 쌓도록 용기를 주는 것이 얼마나 좋겠는가. “이 사람들이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돈, 돈이다. 그들은 돈에 의하여 부해지고 있다.” 이와 같은 말들은 세상을 사랑하면서도 믿음을 가지고 있노라고 공언하는 자에게 얼마나 달콤한 말인가!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부분과, 십일조와 헌금으로 그분께 마땅히 돌려드려야 할 부분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붙들고 있도록 그의 용기를 얼마나 강하게 해주는가! 주님의 저주는 그분께 속한 것을 그분에게 돌려드리지 않는 자들에게 임할 것이다.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어 일을 하자. 그분의 종들은 돈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전할 기별이 있다. 왜 그들은, 주님께서 직접 그들에게 모본을 보여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십일조를 창고에 들이는 데 관하여 철저하게 증거하지 않는가?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기적인 정신을 굴복시키고 마음과 애정을 변화시킨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높임을 받으실 수 있도록 인간의 교만을 낮춘다. 이것이 A 형제에게 부족한 점이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실제적인 믿음이 필요하다. 그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영광을 보고 느낄 필요가 있다. 그는 원칙을 높이고 그리스도인 표준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풍성한 약속과 경고와 권면과 위협을 마음에 간직할 필요가 있다. 그는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직장에서 순결과 고상한 신앙의 특성을 올바르게 나타내기 위하여 믿음을 소유하는 것과 믿음에 일치되는 행동의 중요성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는 영적 힘을 소유하기 위하여 자신을 그리스도와 연결시켜야 한다. 그가 세상과 연합하고 진리의 정신과 반대되는 영향과 연합하므로, 그리스도의 영보다 더 큰 능력이 그를 지배하고 있다. 여기에 그의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그의 행동의 방향을 바꾸어서 빛의 근원이 되시는 분과 굳은 연합을 이루지 않으면 그는 결국 믿음의 파선을 당하게 될 것이다.

만일 영적 사물에 관한 그의 관심이 세상의 사물에 관한 것과 마찬가지로 클 것 같으면 하나님께 대한 그의 헌신은 완전할 것이다. 276 그는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의 진실한 제자임을 보여 줄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받아 주셔서, 지금 세상을 섬기는 일에 완전히 바쳐지고 있는 재능들을 사용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사업의 모든 분야가 활기차고 조직적으로 발전되어 가기 위하여 관리자들이 필요하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재간과 근면과 열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세속적인 사업에서 성공하게 될 것인데, 그 동일한 특성들이 하나님의 사업에 바쳐지면, 이중으로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인간의 노력과 연합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실천이 경험 없고, 무능한 손에 위탁될 것 같으면, 세속적인 문제나 영적인 문제나 간에 아무리 좋은 계획들도 그것을 실행하는 일이 무능하고 미숙한 자에게 맡겨지면 실패하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다 달란트를 묻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그들의 모든 능력은 재산을 축적하는 데 바쳐지고, 쌓고자 하는 욕망은 하나의 정열이 된다. A 형제는 적극적인 사람이며, 세속적인 계획을 관철시키는 일을 자랑으로 삼고 있다. 만일 동일한 관심과 재능과 야망이 주님을 위한 사업에 바쳐졌을 것 같으면, 그는 얼마나 엄청나게 위대하고 고상한 결과를 이루었겠는가! 세속적 사업에서 얻은 교육은 미래의 생애에서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업은 하늘에서는 조금도 행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들을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그분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사용할 것 같으면, 하늘에까지 가지고 갈 교육을 받게 된다.

우리는 세상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 우리는 기다리는 시간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이 기간은 막연한 헌신으로 허비되어서는 안 된다. 기다리고, 깨어 있고, 방심하지 않는 활동이 병행되어야 한다. 우리의 생애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개인적 경건과 봉사를 등한히 할 만큼 완전히 세상 일에 쫓기고 소란하고 계획하고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사업에 게으르지 말아야 하는 한편,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한다. 우리는 심령의 등을 손질하고, 등과 함께 그릇에 은혜의 기름을 가져야 한다. 주님의 날이 도적같이 우리를 엄습하지 않도록 온갖 주의를 영적 타락을 막는 일에 기울여야 한다. 그날은 멀지 않고 가까이 이르렀다. 277 그러므로 아무도 그의 행동을 통하여서는 물론이요 마음으로도, “주인이 더디 오리라”(마 24:48)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함으로 위선자와 불신자에게 정해진 몫을 받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큰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을 보았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에 사는 거주자들이다. 그들의 관심과 애정은 세상에 집중되어 있다. 그들의 모본은 옳지 않다. 세상은 위대하고 고상한 진리를 가지고 있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에 의하여 기만을 당한다. 우리의 책임은 주어진 빛, 받은 바 은혜와 선물에 비례한다. 일꾼들에게 재능과 재산과 기회와 능력이 가장 많이 주어지면 가장 무거운 책임도 지워진다. 하나님께서는 A 형제가 그의 능력을 지저분한 세속적인 일에 바침으로 품위를 떨어뜨리는 대신에 그의 행동의 방향을 바꾸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도록 그에게 요구하신다. 지금은 그가 위탁을 받고 있는 날이다. 미구에 그가 회계할 날이 올 것이다.

A 형제는 유사한 위치에 있는 계층의 사람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내 앞에 제시되었다. 그들은 가장 적은 세속적인 유익에도 결코 무관심하지 않았다. 부지런한 사업상 재능과 성공적인 투자를 통하여 큰 돈으로가 아니고 잔돈으로 장사하므로 그들은 재산을 모았다. 그러나 이렇게 하므로써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품성의 발달과 일치하지 않는 기능을 육성시켰다. 그들의 생애는 결코 그리스도를 대표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과 진리를 사랑하는 것보다 세상과 그 유익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 2:15).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재능은 하나님께 속한다. 세상과 일치되고 세상에 애착을 두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강력하게 금지되어 있다.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에 느끼게 되면 지금껏 세속적이었던 사람을 온갖 자선의 길로 보내게 될 것이다. 세상에 재물을 쌓고자 마음 속에 결심한 자는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9, 10).

278 모든 교인들은 하나님의 사업의 유익을 엄격하게 수호할 신성한 사명감을 느껴야 한다. 교인 개개인은 사람에게 위탁된 가장 신성한 진리로 하여금 수치를 당하게 하는 괴롭고 낙망적인 상태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이런 상태에 대하여 변명할 여지는 없다. 예수님은 지혜와 은혜와 능력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모든 사람에게 열어 놓아 주셨다. 그분은 모든 일에 우리의 모본이시다. 그러므로 어떤 것도 생애의 주요 목적 즉, 그리스도를 영혼 속에 모셔들이고, 마음을 녹이고 굴복시키는 일에서 정신을 다른 데로 돌려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될 때 모든 교인,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은, 품성과 말과 행동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같아질 것이다.

빛의 통로가 되어 왔고, 귀중한 진리의 빛으로 마음에 즐거움을 누려온 어떤 사람들은 세상과 동화됨으로 그 진리를 부인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아 희생의 정신과 진리의 능력을 상실하고 불안정한 세상의 사물에 그들의 행복을 의존했다. 그들은 큰 위험에 처해 있다. 그들이 한때 빛 가운데서 즐거워 했을지라도 그들에게 여전히 비추고 있는 빛의 광선을 신속히 모아들이고 회개와 고백으로 주님께 돌아오지 않을 것 같으면 그들은 완전한 흑암 가운데 빠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오류와 기만이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위기의 날에 처해 있다. 진리의 빛을 가진 자들이 그것으로 거룩함을 입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그들의 빛을 비추지 않을 것 같으면, 누가 세상을 경고하며. 누가 그들에게 보다 나은 길을 보여 주겠는가? 나는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하늘을 상실할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을 감명 깊게 새겨 주고 싶다. 교회에 소속되는 것과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은 별개이다. 교회의 녹명책에 기록된 모든 사람의 이름이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외관상으로 진실한 신자들처럼 보일지라도, 그리스도와 산 연결을 이루고 있지 않다. 그들은 교적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은혜의 내적(內的) 역사는 마음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행복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어렵게 만든다.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마 7:2). 그대의 형제들도 그대 자신과 마찬가지로 넘어지기 쉬운 자들임을 기억하라. 279 그러므로 그들의 잘못과 실수를, 그들이 그대에게 나타내기를 바라는 것과 똑같은 자비와 인내로 헤아려 주라. 그들은 감시당해서는 안 되며 그들의 결점들이 제시되므로 세상이 기뻐 날뛰게 되어서도 안된다. 이렇게 하고자 하는 자들은 재판석에 올라가서 스스로를 재판관으로 만들었는가 하면 한편으로 그들은 그들 자신의 마음의 정원을 등한히 하여 유독한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도록 허용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하늘의 법정에서 미결 중인 사건을 가지고 있다. 품성은 성소의 저울로 달리고 있다. 모든 사람은 그들의 빛을 세상에 비추는 일을 등한히 하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가치 있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겸손하고 신중하게 행하고자 열렬하게 욕망해야 한다. 모든 불화, 의견 차이, 흠잡기 등은 온갖 악하고 빈정대는 말과 함께 배제되어야 한다. 친절과 사랑과 상호간의 동정을 품음으로, 아버지와 하나가 된 것처럼 제자들과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기도가 응답되게 하라. 교회의 조화와 연합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그들이 세상에 제시하는 신임장이다. 진정한 회개는 예수님과 그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모든 사람을 위한 진정한 사랑으로 언제나 이끌어 줄 것이다.

하나님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자기의 주변에 있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는데 진실하고 열렬한 각 사람은 그의 활동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사람은 그리스도의 몸의 머리나 심장이 아닐지라도 하나님을 위하여 효과적인 봉사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손이나 발의 봉사로 대표된 봉사는 비록 비천하지만 중요한 것이다.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사업의 위대함이 아니고 그 사업을 이루는 데 투입된 사랑이며, 행동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동기이다. 우리의 이웃 사람들과 우리와 교제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이루어져야 할 사업이 있다. 우리는 누군가가 안전한 방주 밖에 있는 한 영혼들을 위한 꾸준하고 경건한 활동을 중단할 자유가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사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수가 유리한 위치를 점령하여 그리스도께로 인도해야 할 영혼들을 손에 넣지 못하도록 경계할 의무가 있다.

280 지금은 우리에게 책임과 의무가 지워져 있는 시대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해야 할 일이 있다. _______에 있는 교회는 점차적으로 냉랭해지고 신앙이 없어지고 있다. 거기에 속한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하여 해야 할 일이 많이 있다. 그들의 길에 큰 빛이 비추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책임이 지워져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마 5:13, 14)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의 마음은 보다 깊은 은혜의 역사를 필요로 한다. 하나님이 그들을 축복하실 수 있기 전에 하나의 개혁이 있어야 한다. 형식적으로 신앙을 공언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 이득을 얻기 위한 이기적인 활동은 하늘의 유업을 가리워 버린다. 하늘 나라를 첫째로 삼을 것 같으면, 고상한 정직이 생애와 품성에서 비췰 것이다. A 형제가 선을 위한 영향을 발휘하려면 그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그는 돈을 취급하기를 좋아하고, 그것을 이런 방법 저런 방법으로 회전시키므로 축적되는 것을 보기를 좋아한다. 그의 정신과 애정은 세속적인 사업에 몰두되어 있다. 그는 이생의 염려로 취해 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사업에 너무도 몰두되어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것을 합리적으로, 또한 지적으로 생각할 수 없고, 그의 시력도 돈에 대한 사랑 때문에 흐려져 있다는 뜻이다. 진리가 그의 마음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그의 사생활과 공생애에서 열매를 맺혀야 한다.

A 형제는 자신이 실업가이기 때문에 성경을 연구하지 못한다고 변명해왔다. 그러나 사업의 염려로 눌려 있는 사람에게는 성경이 힘과 애정의 근원이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은 그렇게 위험한 처지에 놓이지 않았을 때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오는 빛과, 그 말씀의 권면과 경고가 더 크게 요망된다. 만일 A 형제가 세상의 일에 바친 것과 동일한 선견과 사업적 재능을 하나님의 일에 바친다면, 그는 복된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만일 그가 자신의 재능과 정력을 거의 모두 재물을 섬기는 데 바치고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를 만족히 여기신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두렵게도 기만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고 말씀하셨다. 만일 A 형제가 계속해서 영원한 사물을 세속적인 사업에 종속시킬 것 같으면, 축적하기 위한 그의 정열은 꾸준히 증가하여 마침내 그것이 원칙을 지배하고. 이 세상의 신에 의하여 그는 눈이 멀게 되어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할 수 없기까지 될 것이다.

281 A 형제는 그의 형제들의 정신에 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로 그가 보는 관점에서 사물들을 본다. 그는 영적 건강을 증진시키고 하나님께 속한 일에 현명해 질 필요가 있다. 그는 하늘의 사물에 관심을 보이고 헌신하기 시작하고, 그의 능력을 그렇게 교육시킴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사업에 봉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는 원수의 창을 방어할 의의 갑주가 필요하다. 그의 생애의 목적과 추구에 결정적인 변화가 있지 아니하면, 또한 영적인 일에 스스로를 계속적으로 연단하지 않으면 그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 두 합회에 있는 교회의 신자 개개인에게 일어나서 회개하도록 부르신다. 형제들이여! 그대들의 세속주의, 그대들의 불신, 그대들의 불평은 누구든지 그대들 사이에서 활동하기가 심히 어려울 그런 위치에 그대들을 처하게 하였다. 그대들의 합회장이 그의 직무를 태만히 하고 그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을 때 그대들의 태도는 그에게 용기를 주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권위를 가진 자는 그대들이 그의 증언을 받아들이거나 거절하거나 간에 그 상황에 따라 책망하고, 권면하고, 용기를 줌으로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서의 의무를 다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쉽게 낙심하고. 성실한 그리스도의 목사가 마땅히 주어야 할 도움 없이 그대들을 버려 두었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가 열리는 대로 응하지 못하고 그대들에게 의무를 제시해 주고 그대들을 시대의 요구에 따라 교육시키지 못함으로 실패했다. 그러나 목사의 태만이 그대들을 낙심케 하고 그대들의 의무 등한을 변명하는 구실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대들 측에서의 정력과 충성이 더 한층 필요하다.

서약하고 내지 않는 것

그대들 중 어떤 사람들은 서약한 일에 대하여 실수를 범해 왔다. 주님의 영은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_______집회에 임하셨으며, 그 감화 아래 마음이 부드러워져 있는 동안, 그대들은 서약을 했다. 구원의 물결이 그대들의 마음으로 흘러들어 오고 있는 동안. 그대들은 두루 다니며 선을 행하시고 인류를 죄와 타락에서 속량하기 위하여 생명을 즐겨 바치신 분의 모본을 따라야 한다고 느꼈다. 282 신성하고 감동적인 감화 아래 그대들은 이기심과 세속적인 것은 그리스도인 품성과 일치되지 않는다는 것과, 그대들이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 수 없고 그리스도와 같아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분의 풍성한 사랑과 자비의 감화가 그대들의 마음 속에 그처럼 현저하게 느껴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대들은 헌금을 취소하였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분의 축복을 그대들에게서 철회하셨다.

역경이 어떤 사람들에게 다가왔다. 그들의 농사가 흉작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서약을 이행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궁핍한 환경을 당하기도 했다. 물론, 그들에게는 지불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불평하지 않고 서약한 바에서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역사하시고 각 사람이 약속한 바를 지불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을 것이다. 그들은 믿음으로 기다리지 않고 그들이 서약한 바를 이행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도록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재산이 있었다. 만일 그들이 서약할 때와 똑같이 즐겨 바치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다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목적을 위하여 그들에게 빌려 주신 십일조와 헌금을 진심으로 그분께 드렸다면, 그들은 크게 축복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단은 유혹물을 가지고 와서 어떤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종이 재물을 바치도록 호소할 때의 동기와 정신을 의심하게 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속고 사기당했다고 느꼈다. 그들은 마음 속으로 그들의 서약을 거부했으므로 그 후에 한 일은 무엇이나 마지못해서 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축복을 받지 못했다.

달란트의 비유에서 한 달란트 맡은 사람은 인색한 정신을 나타내어 그의 돈을 감춤으로 그의 주인은 그것으로 인한 이익을 얻을 수 없었다. 그의 주인이 그의 청지기 직분에 대한 회계를 하도록 요구하자 그는 주인을 비난함으로 그가 등한히 한 일을 변명했다. 283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달란트를 올바로 활용한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이는 그는 그에게 빌려 준 것을 올바로 활용할 것이라는 것을 내가 알므로 그를 신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없는 자[나를 신뢰하기를 두려워한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나는 그가 그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빼앗을 것이다. 나는 위탁받을 그의 모든 권리를 박탈할 것이다. 나는 그의 달란트를 취해서 그것을 증진시킬 자에게 줄 것이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마 25:24-30).

하나님께서는 형제들이 그들의 서약에 관하여 나타낸 정신을 매우 불쾌히 여기셨다. 만일 그들이 이미 개척된 지역에서 사업이 번영하고 있는 것을 보았을 것 같으면 그들은 다르게 느꼈을 것이다. 그들이 속임을 당한 일은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기만당했다고 하는 비난은 하나님의 영을 대적하는 일이고 그분께서 보내신 종을 대적하는 일이었다. 만일 A 형제가 이 문제에 있어서 올바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면, 그가 또한 서약을 하도록 영향을 끼친 정신을 간직하고 있었다면 그는 하나님의 사업에 투자하는 것을 그처럼 달갑지 않은 일로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재물을 세속적인 사업에 투자하므로 그가 참으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탐욕과 세속적인 마음과 탐심은 그리스도인의 덕성을 발휘하는 데 반대되는 품성 속에 있는 결점들이다. 사도는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 13:5)고 말했다.

서약을 한 많은 사람들이 믿음이 없으며 그들이 잘못했다고 믿는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그것에 관하여 이야기했고 그것이 그들에게 사실처럼 보일 때까지 그것에 관하여 깊이 생각했다. 그들은 대총회를 돕지 않았어야 했다고 생각하고, 그들 자신의 지역에서 사용해야 할 자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84 주님께서는 그들의 제한된 믿음에 비례하게 그들을 위하여 역사하셨다. 그들의 정신을 기만 가운데 붙들어 왔었던 사단은, 실상은 조사해보면 그들에게 일꾼들을 보내 주고 사업을 시작하고 추진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면에서 그들을 돕는 일에 지불한 액수에 상당히 미달되는 액수를 합회에 돌려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대총회에 자금을 보내는 일에 관대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게 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슬픔과 불만과 불행을 겪어 오고, 하나님에게서 물러갔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처럼 큰일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영의 특별한 지배를 받지 않을 때 얼마나 무서운 기만이 마음에 다가올 수 있는지를 보여 줄 뿐이다. 대총회에 대한 그들의 의심과 회의심과 편견은 모두 사단에 의하여 충동받은 것이었다. 하나님의 사업은 세계적으로 하나이다. 사업의 모든 부분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다. 어떤 한 지역도 다른 지역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사단이 마음 속에 들어오도록 허용했다. 그러므로 그대들이 악한 의심과 그대들의 서약 취소를 회개하기 전에는 그를 결코 완전히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주님의 사자는 멸시를 받고 백성들에게 부당한 압력을 과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B 형제가 그런 종류의 모든 것에 대하여 결정적인 증언을 하지 않고 그대들의 죄를 사실 그대로 그대들에게 보여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불쾌히 여기셨다.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나으니 네 입으로 네 육체를 범죄케 말라 사자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으로 네 말소리를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전 5:4-6).

여기에 그 문제가 진실한 모습 그대로 제시되어 있다. 그대들의 행위는 하나님의 천사 앞에서 이루어졌다. 그대들의 말은 사람들에게 들려졌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천사들도 그 말을 들었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하나님께서 그대들에게 분노하셨다고 해서 놀랄 수 있을 것인가? 그분께서 그대들을 축복하지 않으시고 그대들이 서약을 이행할 수 있게 해주지 않으셨다고 해서 이상하게 여길 수 있겠는가? 285 그대들이 투덜대고 불평하면서 그대들의 서약을 철회하고 하나님의 종들이 그대들을 기만하고 공정하지 못한 서약을 그대들에게 강요했다고 느낄 때, 원수는 기뻐했다. 그대들의 행동을 사실 그대로 볼 수 있다면 그대들은 그것에 대한 변명은 조금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자들의 감화를 감소시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때때로 자금을 위하여 너무 많은 촉구가 있었던 적도 때때로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빛과 사랑이 그분을 따르는 자들의 마음을 비추게 되면, 그들의 돈이나 그들의 봉사를 강요하거나 구걸하는 경우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과 하나가 되고, 그들이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요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므로 주님의 소유이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단순히 그분의 청지기로서 그들에게 위탁된 것임을 깨달을 때, 그들은 즐거운 마음과 흔들리지 않는 충성심으로 하나님의 것을 그분께 돌려드리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달갑지 않고, 인색한 마음으로 바치는 헌금을 받지 않으실 것이다. 그대들의 현재의 감정을 가지고서는 더 많은 서약을 할지라도 덕이 못 될 것이다. 그대들이 이 원수의 올무에서 벗어나고, 그대들의 약속 불이행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사업의 요구가 인류에게 대한 그분의 선물처럼 끊임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그대들의 행동은 그대들의 믿음과 일치될 것이며, 그대들은 주님께로부터 풍성한 축복을 받을 것이다.

불신의 영향

_________, ________에 있는 교회는 하나님께로부터 크게 뒤로 물러갔다. 그것은 더 이상 건전한 번영의 상태에 처해 있지 않다. 교인 개개인은 스스로가 져야 할 무거운 짐과 장애의 요소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그는 져야 했고 또한 교회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약하게 만들지 않고 하나님 앞에 그의 영혼을 생생하게 보존했어야 했다. 그는 교회의 힘을 감소시키는 대신에 그것을 증가시켰어야 했다. C 형제는 자기 자신의 믿음과 교회의 믿음을 강화시키는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286 그는 낙담시키고 좌절시키기 위하여 원수의 편에서 행동해 왔다. 사단은 끊임없이 불신을 조장하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의 실수와 실패를 주목하고, 그들과 함께 있는 하나님의 천사들을 비웃는다. 그는 형제들을 참소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는 할 수 있는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동일한 일을 하도록 영향을 미칠 것이다. 자기 자신의 토지에서 잡초를 뽑는 대신에 이웃의 정원을 관찰하는 일을 하는 자들은 그들 자신의 정원에 너무도 많은 잡초가 자라나서 모든 귀중한 식물이 밀려나는 것을 분명히 발견할 것이다.

C 형제는 세상에 빛이 되어야 할 위치에 처해 있지 않다. 아, 결코 그렇지 않다. 그는 흑암의 본체이다. 영원은, 그의 분별 없는 말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의심과 회의심과 비난의 씨를 뿌린 것과, 그의 영향으로 많은 영혼들이 진리에서 돌아서게 된 사실을 드러내 줄 것이다. 그는 자기 스스로를 흑암의 통로로 만들어서 사람들의 마음에 회의심을 전달해 주고 낙심을 가져다 주는 일을 하기로 수락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좋아하지 않으신다. 그 자신의 심령은 하나님의 영의 감화에 점점 무디어지고 있다. 그는 믿음이 별로 없다. 그러므로 그의 말로써 끊임없이 불신을 조장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귀중한 빛의 광선을 비추어 주는 대신에 의심을 자극하고 있는 동안 그는 활동하고 있는 사단을 돕고 있는 것이다. 이 정신은 그를 거의 불신자로 만든다. 그러므로 그가 완전히 돌아서지 않으면 그는 진짜로 불신자가 되고 말 것이다.

C 형제는 말과 행동이 무분별하다. 하나님의 날에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무익한 말이 거의 계속해서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원수의 땅에 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하지 못한다. 그는 큰 실수를 범한 것을 깨닫는 때가 있을 것이다. 또한 그 자신의 마음을 순결하게 하는 데 사용할 귀중하고 황금같은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었다는 것도 깨달을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흠을 잡아내어 그들의 실수를 주식으로 삼고 살아왔다. 이것이 영적 기근이다. 모든 부흥은, 진정으로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을 교회로 데려오게 된다. 그들은 명목상으로 진리를 주장하지만, 진리의 귀중한 감화를 통하여 성화되지 않고 있다. 287 은혜가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이기적이고, 까다롭고 완고하다. 그런 사람들은 언제나 신뢰할 수 없다. 그들은 언제나 우리의 믿음과 반대되는 일을 하고 말하게 될 것이다. 그런 짐을 진 교회는 동정을 받기에 합당하다. 세상은 교회와 반대의 위치에 놓여 있다. 그리고 사단과 천사들은 끊임없이 싸우고 있기 때문에 합당하지 못한 교인들의 결점은 믿음이 건전한 자들 앞에 제시된다.

진리를 믿는 자들은 용기를 잃은 상태에서 싸우고 있는 ________, _______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결정적이어야 하고 방해해서는 안 된다. 교회의 교인들은 우리의 믿음의 원수들이 그들의 무기력하고 타락한 상태를 정복할 기회를 갖지 못하도록 각자가 강한 열성을 가져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작은 극기와 열심과 열성을 가지고서도 선의 편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영향력을 낭비해 버렸다. 이런 열성은 노력 없이, 또한 열렬한 투쟁 없이 오지 않을 것이다. ________, ________교회에 오직 세 영혼들만 남아서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면, 그들은 산 빛의 통로가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교인을 증가시키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________, __________에 기수들을 일으키셨다. 어떤 사람들은 이사를 가고, 어떤 사람들은 죽고, 어떤 사람들은 영적으로 죽임을 당하여 그들의 봉사는 사단에게 바쳐진다. 그들은 하늘 기록에 있는 계산에 균형이 잡혀야 하고 각 사람의 행위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 드러나게 될 때가 미구에 다가온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각 사람이 그의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마지막 심판의 큰 날에 그대의 생애의 기록이 그대 앞에 펼쳐질 때, 의심하고, 회의심을 품고, 헐뜯기를 좋아하는 나의 사랑하는 형제여, 그것을 어떻게 견디겠는가?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심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말 3:13, 14). 이것이 그대들의 마음에 있는 말이었고,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마 12:34)하게 되었다. 그대들의 말로써 그대들은 의롭다는 인정을 받기도 하고 정죄받기도 한다. 형제들을 헐뜯는 것은 사단이 타락 이후로 종사해 온 바로 그 일이다. 그대들은 기껏 조금밖에 용기를 갖고 있지 않는 교회를 낙담케 했다. 288 그대들은 거의 온갖 못마땅한 생각으로 진리를 제시했다. 이것은 사단이 하고 있는 사업이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말을 자랑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그 말들은 각 사람이 몸으로 행한 일을 따라 보응을 받을 날에 얼굴의 당황함, 수치와 절망을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의 아내는 그대의 사상 중 대부분을 본받을 때까지 그대의 어두운 표현을 들어왔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은 그대들 두 사람에게서 거의 완전히 떠나갔다. 그대는 지금 불신의 씨를 뿌리고 있다. 그 씨는 미구에 풍성한 결실을 이룰 것인데, 그것을 수확하면 그대는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그대는 그대 자신을 원수에게 바쳐서 그의 대리자가 되어 영혼들을 의심과 불신으로 이끌게 되었다. 그대의 모든 일은 그리스도에게서 흩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대는 그대의 예민성,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하게 하는 그대의 재능을 자랑으로 삼는다. 그대는 그것을 지성의 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흑암의 왕이 소유하고 있는 것과 같은 종류의 지성이므로 그의 강한 활동과 약삭빠른 태도 때문에 그가 얻고있는 것과 동일한 상급을 받을 것이다. 이 시대의 경향은 불신으로 기울어지고 경건과 참된 신앙을 경하게 여기는 것이다. 이것이 사단의 계획이다. 그러므로 그대의 힘을 불신에 굴복시키면 그대는 그의 계책에 의하여 사로잡힌 바 되어 그의 일을 하게 된다.

그대의 아내는 원수의 계책을 정복하고, 그 자신의 품성의 결함을 극복하고, 그의 모든 힘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켜 그의 발을 영원한 진리의 토대 위에 굳게 세우기 위하여 치열한 싸움을 싸워야 할 것이다. 그는 본성적으로 경건하지 않다. 그런데 그대는 사물들을 너무도 불확실한 태도로 그 앞에 놓아 주었기 때문에 그는 닻 없이 떠내려가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믿음과 소망 안에서 진정한 위로를 얻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진리에 대한 지성적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그가 호흡하는 불신의 분위기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만일 그가 잃어버린바 된다면, 그의 영혼의 피는 그대의 옷에서 발견될 것이다.

그대는 사단의 공공연한 대리자들 중 어떤 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단의 사업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대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넣어준 의심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대의 열매는 마지막 수확을 위하여 익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대는 그것을 자랑하겠는가? 289 그대는 주님께로 돌아가서 그분 안에서 안식을 찾을 수 있다. 그대는 비평하고, 모든 것을 그릇된 관점에서 왜곡하기 위하여 너무도 오랫동안 그대 자신을 교육시켰기 때문에 제2의 본성이 되어 버린 습관을 깨뜨리는 데는 열렬한 기도와 끊임없는 경성이 요구될 것이다. 나의 마음은 그대와 그대의 가족을 동정한다. 주님께서는 그대를 불쾌히 여기신다. 그분은 매일 슬퍼하신다. 그대는 철저하게 회개하고, 변화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귀중한 영생의 선물을 결코 소유하지 못할 것이다.

죄의 속임수

D 형제는 심판 때에 취소되기를 바랄 일을 하고 있음이 내 앞에 제시되었다. 그는 교리상 모든 점에서 바르지 않다. 그러나 그는 완고하게 자기의 그릇된 입장을 주장한다. 그는 형제들을 헐뜯는 자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업에 일꾼으로 택하신 자들의 악을 생각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이 악을 이야기했다. 그는 성경의 법칙에 따르지 않고, 지도적인 형제들과 협의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들 모두를 헐뜯는다.

그를 위한 변호는 이러했다. “아, D 형제는 너무도 좋은 사람이다. 그는 친절하고 관대한 사람의 모본이다. 그는 어디에서나 도와줄 준비가 된 사람이다.” D 형제는 많은 탁월한 성품의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그는 설교자로서 큰 재능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지라도 열렬하고 성실한 일꾼이 될 수는 있다. 원수는 그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를 통하여 침투해 들어왔다. 만일 그가 마땅히 평가해야 할 것보다 더 높이 자기 스스로를 평가하지 않았을 것 같으면, 그는 그가 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형제들의 평판을 결코 이용하고자 하지 않았을 것이다. 거짓된 소문을 모아들이고 반복하는 일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그는 백성들과 하나님께서 그분의 목사들에게 주셔서 그들을 주님의 날에 서기에 적합하게 만들고자 그들에게 전하게 하신 기별 사이에 끼어 들었다. 그의 좋은 특성들은 그를 더한층 위험하게 만들었다. 그것들이 그에게 영향력을 주었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가 부도덕하거나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을 것 같으면 그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신임을 얻는 데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290 D 형제가 일하는 방법 역시 그의 행동이 더 비난받아 마땅하게 그리고 하나님께 더 크게 거슬리게 만든다. 그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고 그가 사석에서 이야기한 것들을 공석에서 이야기했을 것 같으면 어떤 사람도 그를 합회에서 일하도록 내보내야 한다고 한 순간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합회의 인정 아래 일하고 있는 동안, 그의 형제들은 그의 견해가 옳다고 생각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이런 인정 때문에 그의 영향은 악에 대한 힘이 되어 왔다. 그의 말이 아니었다면 그들의 형제들을 결코 의심하지 않고 그들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을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는 쫓아가기만 하면 반역과 영혼의 상실로 끝나게 될 궤도를 따라가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었다. 그 가면을 벗겨 버리고 볼 때 이것이 우리의 선량한 형제가 담당해 온 사업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를 참 모습 그대로 내 앞에 제시하셨다. D 형제의 마음은 옳지 않다. 그것은 가혹과 분노와 질투와 시기와 악한 추측으로 더러워져 있기 때문에 순결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의 행동을 완전히 바꾸지 않는 한, 그는 미구에 타락한 사람이 될 것이다. 자비, 혹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4-7).

D 형제가 사람들을 의심하게 하고 과거 38년 동안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주고 계신 증언들을 거절하게 하는 것을 상상해 보라. 그가 이 사업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도자들이 백성들을 기만하는 일을 해온 흉계가 있는 부정직한 사람들이라고 그들에게 믿도록 만드는 것을 상상해보라. 어떤 크고 훌륭한 일을 그가 이루었는가? 그것은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사업과 정확하게 유사한 사업이다. 그러므로 그가 영향을 끼친 모든 사람에게는 그 결과가 비참할 것이다. 그는 잘못에 빠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사업은 하늘의 인을 간직하고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D 형제는 그를 거의 파멸케 한 독선의 정신에 빠졌다. 그는 그의 형제들과 동등한 위치에 서야 한다. 만일 그가 그들의 행동 때문에 그들과 함께 하기가 어렵다면, 그는 그들의 죄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 주어야 한다.

291 사단이 하늘에서 불만을 품게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불평을 하나님과 그리스도 앞에 털어 놓지 않았다. 그는 그를 완전하다고 생각한 천사들에게 가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그 자신보다 더 좋아하심으로 불공평하게 그를 취급하셨다고 했다. 이런 그릇된 말을 한 결과로 천사들 중 3분의 1은 그를 동조하게 되어 그들의 순결과 그들의 높은 지위와 그들의 행복한 집을 잃어버렸다. 사단은 그가 하늘에서 시작한 것과 똑같이 질투하고 악한 추측을 하는 그 일을 지상에서 계속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충동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 유대인들은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는 정탐꾼 노릇을 언제나 하고 있었다. 그들은 온갖 거짓 소문들을 모아서 하나씩 차례로 죄목을 들어 그분을 비난했다. 그들은 사람들을 그분에게서 떠나가게 하고자 끊임없이 애쓰고 있었다. 그들의 행동이 옳았던가? 만일 그렇다면 D 형제 역시 죄를 범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도 동일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라도 원수의 사슬을 깨뜨릴 수 있다. 그는 자기 자신을 형제들보다 더 높이게 하는 이 정신을 극복할 수 있다. 그는 겸손을 구하고, 다른 사람들을 자기 자신보다 더 낫게 평가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만일 그가 충성되게 일하고 하나님의 계획과 일치되게 일한다면 그는 주님의 입술에서 “잘 하였다”는 아름다운 말을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하나님의 종들의 활동을 거절하고, 그 자신의 길을 택하고 그 자신의 총명을 의지할 것 같으면 그는 분명히 믿음의 파선을 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지나쳐버리시고 그분의 진리를 위탁하기에 합당한 유일의 사람으로서 여기에서 한 사람 저기에서 한 사람을 택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단체의 확립된 믿음과 반대되는 새 빛을 한 사람에게 주시지 않으신다. 모든 개혁에서 사람들이 일어나서 이런 주장을 했다. 바울은 그 당시의 교회에 경고했다.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행 20:30).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손실은 그들 가운데서 나가서 어그러진 말을 하는 자들을 통하여 온다. 그들을 통하여 진리의 도가 비난을 받는다.

아무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형제들보다 뛰어난 특별한 빛을 그들에게 주신 것처럼 자부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는 분으로 나타나 있다. 신자들은 이런 사람들로 나타나 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0-22). 292 바울은 말한다. “그러므로 주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침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 4:1-6).

D 형제가 빛이라고 부르는 것은 외관상으로 무해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어떤 사람을 해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형제들이여, 그것은 사단의 고안물이며 그가 들어가는 쐐기이다. 이것은 거듭거듭 시도되어 왔다. 어떤 사람이 진리와 상치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어떤 새롭고 독창적인 사상을 받아들인다. 그는 그것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그것이 그에게 아름답고 중요한 것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일 때까지 그것을 깊이 생각한다. 사단은 이처럼 거짓된 모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것은 완전히 몰두하게 하는 주제, 모든 것을 그 주위에 집중시키는 하나의 큰 요점이 된다. 그리하여 진리는 마음에서 뽑혀져 버린다.

별난 사상이 마음 속에서 시작되자 마자 D 형제는 믿음을 잃고 그처럼 여러 해 동안 우리들 사이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는 특별한 빛이라고 믿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고는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할 수 있는 영향력을 그에게 주는 것은 안전하지 못하다. 사단은 이 시대를 위한 진리의 중요성을 마음에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많은 오류를 급히 가지고 들어갈 문을 열고 있다. 형제들이여, 나는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진리를 마음에 떠나가게 하는 경향을 가진 이런 측면의 문제들을 경계하도록 그대들에게 경고하는 바이다. 오류는 결코 무해하지 않다. 그것은 결코 성화를 이루어 주지 않고 혼란과 불화를 가져온다. 그것은 언제나 위험하다. 원수들은 기도로 철저하게 무장하지 않고 성경의 진리에 굳게 서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

293 진리의 빛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마련된 수많은 유혹들이 변장되어 있다. 무리들 중 어떤 사람에게나 유일한 안전은 경험 있는 형제들에게 먼저 제시하지 않고서는 새로운 교리, 새로운 성경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겸손하고 배우는 정신으로, 열렬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것을 그들 앞에 제시하라. 만일 그들이 그 가운데서 빛을 보지 못하면 그들의 판단에 따르라. “모사가 많으면 평안을 누리”(잠 11:14)기 때문이다.

사단은 그를 유익하고 유리하게 해 줄 특성들이 D 형제에게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요 14:30)다고 말씀하셨다. D 형제는 크게 겸손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 자신을 너무 높게 평가해 왔다. 여러 해 동안 그는 그의 형제들이 그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감정을 간직해 왔으며, 이 감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표현해 왔다. 사단은 그가 성공적으로 호소할 수 있는 자부심이 그에게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지금은 D 형제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심히 위험한 때이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비상한 관심으로 이 영혼들을 관찰하고 있으며, 사단과 그의 사자들도 그들의 계획이 어떻게 성공할 것인지 보기 위하여 매우 열광적이다. 지금은 D 형제의 생애에 있어서 하나의 위기이다. 그는 지금 이생과 영원을 위하여 결정을 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랑하신다. 이 경험이 그에게는 크게 가치 있는 일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만일 그가 그의 마음을 하나님께 완전히 바치고 모든 진리를 받아들일 것 같으면 그는 지칠줄 모르는 일꾼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역사하시고, 그는 많은 선을 행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형제들과 조화를 이루어서 일을 해야 한다. 그는 과민성을 극복해야 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좋은 군사로서 어려움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다.

사단은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활동과 교활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자는 별로 없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교활한 원수를 대항하기 위하여 준비해야 한다. 사단이 두려워하는 것은 이와 같은 저항이다. 그는 그의 능력의 한계와, 만일 우리가 그를 저항하고 대항하면 그가 참으로 쉽게 정복당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잘 안다.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가장 연약한 성도도 그의 모든 사자들을 대항하고 남는다. 그러므로 시험을 당하게 되면 그 성도는 월등한 힘을 입증할 수 있게 된다. 294 그러므로 사단의 발걸음은 소리가 없고, 그의 움직임은 살금살금 이루어지고, 그의 포열(砲列)은 감추어져 있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잠자는 정력을 깨워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그를 보내지 않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공공연하게 나타내고자 하지 않는다.

원수는 교회에 대한 마지막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시계(視界)에서 은폐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가 존재해 있는 것을 거의 믿을 수 없고, 그의 놀랄만한 활동과 능력은 더한층 깨달을 수 없다. 그들은 그의 과거의 기억을 대부분 잊어버렸다. 그러므로 그가 한 발자국 전진해 가면, 그들은 그를 그들의 원수, 옛 뱀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선한 일을 하고 있는 하나의 친구로 생각할 것이다. 그들의 자립을 뽐내면서, 그들은 그의 그럴듯하고 매혹시키는 영향을 받아 가장 악한 인간의 마음의 충동에 순종하면서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고 계시다고 믿을 것이다. 만일 그들의 눈이 열려서 그들의 대장을 식별하게 된다면,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지 않고 모든 의의 원수를 섬기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뽐내던 자립이 균형을 잃은 마음에 사단이 채울 수 있는 가장 무거운 차꼬 중 하나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람은 사단의 포로이다. 그러므로 본성적으로 그의 제안을 따르고 그의 명령대로 하는 경향이 있다. 그는 자기 자신 안에 악을 효과적으로 저항하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사람이 그처럼 무서운 원수를 대항할 수 있는 길은 오직 그의 욕망에 영향을 주고, 위로부터 온 힘으로 그를 강화시켜 주는 산 믿음으로 그 사람 속에 그리스도께서 거하실 때 뿐이다. 다른 모든 방어 수단은 전혀 소용이 없다.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사단의 능력은 제한된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이해해야 할 중요한 진리이다. 사단은 왔다갔다 하고 지상에서 위 아래로 걸어 다니면서 삼킬자를 찾느라고 매 순간 분주하다. 그러나 열렬한 믿음의 기도는 그의 가장 강력한 활동을 좌절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엡 6:16)라.

우리에게 있는 가장 악한 원수들은 시온 성벽에 있는 파수꾼들의 감화를 파괴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는 자들이다. 사단은 대리자들을 통하여 활동한다. 그는 여기서 열렬한 활동을 하고 있다. 295 그는 분명한 계획을 따라 일을 하며, 그의 대리자들도 협력하여 활동한다. 불신의 줄은 대륙을 횡단하여 뻗어 있고 하나님의 교회와도 통해 있다. 그 영향은 하나님의 영의 역사를 믿는 신임을 훼손시키기 위하여 작용해 왔다. 이 요소는 여기에 있으며 조용하게 활동하고 있다. 거짓된 소문을 퍼뜨리므로, 비난과 결정적인 반대를 하므로 하나님과 사람의 원수를 도와주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

사단은 영혼들이 그의 세력에서 벗어나서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모이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그의 권위를 강화시키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는 길에 장애물들을 놓고자 기만적인 수단과 보이지 않는 통로들을 통하여 활동하고 있다. 그는 기만을 통하여 그리스도에게서 영혼들을 꾀어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므로 진리 위에 굳게 서지 못한 자들은 분명히 그의 올무에 걸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가 죄악에 빠뜨릴 수 없는 자들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께 한 것처럼 핍박할 것이다.

사단의 목적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그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부정한 온갖 요소를 가지고 활동한다. 그가 이 일을 하는 데 있어서 그의 기구로 삼은 자들은 눈이 멀어 있으므로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침내 죄에 너무도 깊이 빠지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를 회복시키고자 애쓰는 것이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비참한 종말에 이르기까지 범죄의 길을 계속하게 된다.

사단은 세상에 다가오고 있는 전반적인 멸망에 하나님의 남은 백성들도 포함되기를 바란다. 그리스도의 오심이 가까울수록, 그들을 정복하기 위한 그의 활동은 더 한층 확고하고 결정적이 될 것이다. 남녀들이 어떤 새로운 빛이나 어떤 새로운 계시를 받았노라고 공언하면서 일어날 것인데, 그들의 경향은 옛 지계표를 믿는 믿음을 흔드는 것이 될 것이다. 그들의 교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를 지니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영혼들은 속임을 당할 것이다. 거짓 소문들이 유포될 것인데, 어떤 사람들은 이 올무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들은 이 소문들을 믿고 기회가 주어지면 그것들을 반복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과 기만자의 괴수를 연결시키는 하나의 사슬이 형성될 것이다. 이 정신은 항상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기별을 공공연하게 반대하므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뿌리 깊은 불신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드러나게 된다. 296 발해지는 모든 거짓 진술은 이 불신을 육성시키고 강화시키며, 이 수단을 통하여 많은 영혼들은 그릇된 방향으로 기울어질 것이다.

우리는 각종 형태의 오류에 대하여 아무리 경성해도 지나치지 않다. 왜냐하면 사단이 사람들을 진리에서 꾀어내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신들에게 그들 스스로의 자족감을 갖게 하고, 마치 그가 D 형제를 설득한 것처럼 독창성이 크게 열망해야 할 재능이라고 그들을 설득한다. D 형제는 더욱 완전하게 진리를 배울 필요가 있다. 사단은 이런 방향에서 그의 무지를 이용해 왔는데, 여기에 위험이 있다. 일단 그릇된 길로 접어들게 되면 도무지 설득하기 어려운 어떤 사람이 곁길로 나갔을 때에, 그가 그리스도를 따른 것처럼 그를 따른다고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은 그가 구주에게서 등을 돌리게 될 때에 그를 따라 나가게 된다.

교만이 D 형제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가 그것을 버리기는 심히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 완전히 항복하지 않으면 원수는 그를 통하여 계속해서 활동할 것이다. 만일 그가 결정적인 입장을 즉시 취하지 않을 것 같으면, 나는 그가 결코 그 입장을 취하지 못할 것으로 염려된다.

_________과 _________교회들은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다. 그들이 완수한 사업의 완전한 결과는 심판이 이르기 전에는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 형제들이여, 죄가 많은 변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대들은 하늘의 지혜가 필요하다. 영적 시력의 부족은 그대들을 소경처럼 넘어지게 한다. 만일 그대들이 단 하나의 목적만을 가졌을 것 같으면, 그것은 그대들의 합회에서 엄청난 능력의 요소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염려했던 바로 그 일이 다가왔다. 이루어져야 할 사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버려져 있었다. 올바르게 활동한 결과로 생겼어야 할 것으로 내가 보았던 예배소들과 세워졌어야 할 집회소들, 그것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대들의 불신이 그 사업을 제지했다. 그대들은 그대들 스스로 거의 그 일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그 일을 하고자 하면 그대들은 그 길을 막아서 그가 어떤 유리한 입장에서 일을 할 수 없게 했다.

어떤 사람들은 느리고도 매우 느리다. 그들은 그것을 자랑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나태는 어떤 사람도 자랑해서는 안 될 품성의 결함이다. 민첩해지고자 굳게 결심하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도움으로 그대들은 성공할 것이다. 297 그대들의 헌신을 완전하게 하라. 그대들의 재산과 친구들을 하나님의 제단 위에 붙들어 매라. 마음이 하늘의 영향을 받을 준비가 이루어지면, 하나님의 보좌에서 나오는 밝은 빛이 그대들의 심령 속을 비추어서 잠자는 모든 정력을 일깨워 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확고한 품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퍼티(putty)로 만든 공과 같아서 마음대로 어떤 형상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 그들은 어떤 분명한 형태와 견고함이 없으므로 세상에서 실질적으로 쓰일 곳이 없다. 이런 유약함과 우유 부단과 무능은 극복되어야 한다. 역경에 의하여 꼴 지워지거나 굴복 될 수 없는 진실한 그리스도인 품성에는 불요 불굴이 있다. 사람들은 도덕적 용기, 우쭐해지거나, 매수당하거나, 위협당할 수 없는 정직이 있어야 한다.

나는 교회를 위하여 크게 염려한다.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 11:3). 바울은 다시 원수가 교회의 신앙을 공격하는 것은 부패한 교사들을 이용해서 한다고 설명한다.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일이 아니라”(고후 11:13-15).

우리가 그리스도 교회의 초창기에 관하여 더 많이 배우고 사단이 약화시키고 파괴하기 위하여 어떤 간계로 활동했는지를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우리는 그의 간계를 저항하고 다가오는 위기를 맞을 준비를 더 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세상이 지금껏 목격한 적이 없는 큰 환난의 때에 처해 있다.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계 12:12).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단이 통과할 수 없는 경계를 쳐 두셨다. 우리의 가장 거룩한 믿음이 이 방벽이다. 만일 우리가 믿음 안에서 자아를 정립할 것 같으면 우리는 전능하신 분의 보호 아래 안전할 것이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계 3:10).

목회자들을 헐뜯는 일

298 하나의 실수는 다른 실수로 이끌어 간다. 우리의 형제들은 지혜롭게 행동하되 충동에 의하여 움직이지 않도록 배워야 한다. 의무의 태만, 부당한 동정심에 빠지는 일은 하나님의 사업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활동하고 있는 자들을 올바로 평가하는 일을 등한히 함으로써 초래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요 5:43)고 말씀하셨다.

많은 사람들은 설교는 그분의 백성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수단이며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설교를 그들에게 주어진 주님의 말씀이라고 느끼지 않고, 그것을 전달된 진리의 가치에 의하여 평가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것을 법정에서의 변호사의 연설에서처럼 발휘된 논쟁적 기량과 언어의 힘과 아름다움에 의하여 판단한다. 목사는 절대로 잘못이 없는 사람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당신의 사자로 삼으심으로써 높이셨다. 만일 그대들이 그가 위로부터 임명을 받은 사람이 아닌 것처럼 생각하고 그의 말을 들으면 그대들은 그의 말을 존중하지 않고 그 말들을 하나님의 기별로 받아들이지 않게 될 것이다. 그대들의 심령은 하늘의 만나를 먹지 못하게 될 것이다. 육신적 마음에 거슬리는 어떤 것들에 관하여 의문이 생기게 되고, 그대들은 강의자나 정치적 연설가의 말을 비판하듯이 설교를 비판하는 자리에 앉게 될 것이다. 집회가 끝나자마자 그대들은 어떤 불평이나 빈정대는 말을 하게 될 것이며, 그 기별이 아무리 진실하고 필요한 것일지라도 그대들에게 유익을 주지 못했다는 것을 나타낼 것이다. 그대들은 올바로 평가하지 않는다. 그대들은 비평하고 흠을 잡는 습관에 익숙해졌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흠을 들추어내고 골라 내고, 아마도 그대들에게 가장 필요한 바로 그것은 거절하게 될 것이다.

아파 콜롬비아 합회나 노스 패시픽 합회는* 다 같이 신령한 것에 대한 존경심이 거의 없다. 임명된 하나님의 대리자들은 거의 완전히 안중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과 접촉하는 어떤 새로운 방법을 마련하지 않으셨다. 만일 그들이 그들의 죄를 책방하고, 그들의 잘못을 고쳐 주고, 의무의 길을 가리켜 주기 위하여 하늘이 임명한 대리자들로부터 스스로를 차단시킬 것 같으면, 하늘과의 어떤 교통을 할 수 있는 길이 없어진다. 299 그들은 어둠에 빠지고 원수의 올무에 걸려 사로잡히게 된다.

하나님의 종은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그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사 58:1)는 사명을 받고 있다. 주님께서는 이 백성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함이 마치 의를 행하여 그 하나님의 규례를 폐하지 아니하는 나라 같아서 의로운 판단을 내게 구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하기를 즐겨하며”(사 58:2). 여기에 스스로 속임 당하고, 독선적이고, 자족감에 도취되어 있는 한 백성이 있다. 목사는 크게 외치고 그들에게 죄를 알려 주라는 사명을 받았다. 각 시대를 통하여 이 사업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이루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 어느 때보다 이 사업이 더 필요하다.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였다. 그는 여호와의 사자가 되고자 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말씀이 그에게 왔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위탁할 사람들을 언제나 가지고 계신다. 그분의 영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그들로 하여금 말하도록 강권한다. 거룩한 열성과 그들에게 강하게 임한 거룩한 충동으로 감동되어 그들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말씀을 백성들에게 이야기해 주는 결과를 냉정하게 헤아려 보지 않고 그들의 의무 수행에 들어간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은 그가 무엇인가 위험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미구에 깨닫는다. 그는 그 자신과 그의 기별이 비난의 대상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의 태도, 그의 생애, 그의 재산은 모두 심사되고 논평을 받는다. 그의 기별은 갈갈이 찢겨지고 사람들의 유한한 판단에 합당한 대로 가장 편협하고 부정한 정신에 의하여 거절당한다. 그 기별은 하나님께서 이루어지기를 의도하신 사업을 이루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것은 청중들의 마음이 부정했기 때문에 두드러지게 실패했다.

만일 목사의 얼굴이 부싯돌과 같이 되지 않고, 그가 불요 불굴의 믿음과 용기를 갖지 않고, 그의 마음을 하나님과의 끊임었는 교통을 통하여 강하게 하지 않으면, 그는 그의 설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자들의 부정한 귀와 마음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그의 증거를 꼴 짓기 시작할 것이다. 그가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일을 피하기 위하여 그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고 그의 증거는 무기력하고 생기가 없어 진다. 그는 그의 용기와 믿음이 사라져 없어진 것과 그의 활동이 무력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세상은 기쁘게 해 주고 싶은 욕망에 굴복한 아첨꾼들과 위선자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이기주의를 연구하지 않고, 형제들의 죄를 용납하지 않을 정도로 그들을 사랑하는 성실한 사람들은 참으로 별로 없다.

300 사단의 변함없는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위험을 그들에게 경고해 주는 음성이 전혀 없이 자신의 기만적 관계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의 모든 교통을 끊어 버리는 것이다. 만일 그가 사람들에게 기별을 전하는 자를 불신하게 하고 그 기별에 신성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만 할 수 있다면, 그는 그들이 그들에게 전달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유의할 책임을 전혀 느끼지 않을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빛을 흑암으로 알고 버린다면 사단은 제 마음대로의 일을 하게 된다.

우리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경솔히 여김을 받지 않으신다. 그분 자신의 뜻대로 모든 일을 이루어 가시는 분께서는 사람들을 여러 가지 환경에 처하게 하시고, 그들이 사는 시대와 그들이 처한 상황에 상응한 특별한 의무와 이행 사항들을 그들에게 요구하시기를 기뻐하실 것이다. 만일 그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빛을 올바로 평가할 것 같으면 그들의 재능은 크게 확대되고 고상해 질 것이며, 더 넓은 진리에 대한 시야가 그들 앞에 펼쳐질 것이다. 영원한 사물의 신비, 특별히 구속의 계획에 나타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그들의 마음에 열려질 것이다. 신령한 것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종들을 통하여 가르치시는 바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설교에 의하지 않고서도 회개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 사람들이 모든 은혜의 수단을 박탈당하는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면 그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을 받고 말씀을 읽으므로 진리를 깨닫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영혼 구원의 수단은 “전도의 미련한 것”(고전 1:21)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비록 인간은, 인간성의 약점으로 둘러싸여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사자들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구주께서는 그들의 활동이 너무도 미미한 것을 보시고 슬퍼하신다. 큰 추수장으로 나가는 모든 목사는 그의 직무를 확대해야 한다. 그는 진리의 지식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기 위하여 노력할 뿐만 아니라 바울이 한 것처럼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골 1:28)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301 그 사람은 하나님의 대사로서만 인정을 받고 존중되어야 한다. 그 사람을 찬양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그가 전하는 기별은 성경으로 시험되어야 한다.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사 8:20).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인간적인 표준으로 판단되어서는 안 된다. 마음이 세속적인 것으로 꼴 지워진 자들, 한정된 그리스도인 경험을 하고 하나님께 속한 것을 조금밖에 알지 못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종들에 대하여 가장 적게 존경하고 그분께서 그들에게 전하도록 명령하시는 기별을 가장 적게 존중하는 자들임이 판명될 것이다. 그들은 엄숙한 설교를 듣고 집으로 돌아가서 그것을 심판하는 자리에 앉는다. 그러면 받은 바 감명은 태양 앞에 있는 아침 이슬처럼 그들의 마음에서 사라진다. 만일 설교가 정서적인 성격의 것일 것 같으면, 그것은 감정에 영향을 주고 마음과 양심에는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런 설교는 영속적인 유익을 남기지는 않고, 흔히 사람들의 호감을 얻고, 그들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에 대한 애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사 2:22)라고 말씀하신 것을 잊어버린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재림시에 수반될 영광을 그분의 백성들 앞에 펼쳐보이시고 그들로 하여금 축복의 광경을 명상하게 하고자 열렬한 소원으로 기다리고 계신다. 계시되어야 할 경이(驚異)가 있다. 장구한 일생의 기도와 연구로도 탐구되지 않고 설명되지 않은 것이 많이 남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알지 못하는 것은 내세에서 계시될 것이다. 여기에서 시작된 교육의 사업은 영원토록 진행될 것이다. 어린 양은 구속받은 무리들을 생명수의 샘으로 인도하시면서 풍성한 지식의 보고를 열어 주실 것이다. 그분은 이전에 결코 이해된 적이 없었던 하나님의 솜씨와 섭리에 나타난 신비들을 해명하실 것이다.

우리는 탐구하므로 하나님을 결코 발견할 수 없다. 그분은 캐내고 캐묻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그분의 계획을 결코 공개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그분의 위엄을 가리고 있는 휘장을 참람된 손으로 걷어버리고자 결코 시도하지 말아야 한다. 사도는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고 부르짖는다. 그분의 능력이 가리워져 있는 것, 그분께서 신비와 불명료의 무서운 구름에 싸여있는 것은 그분의 자비의 증거이다. 302 하나님의 임재가 가리워져 있는 휘장을 걷어 버리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떤 인간의 마음도 전능하신 분께서 거하시고 일하시는 비밀을 꿰뚫어 볼 수 없다. 우리는 그분께서 계시하시기에 합당하게 여기시는 것 이상으로는 그분께서 우리를 취급하시는 일과 그분의 동기에 대하여 이해할 수 없다. 그분께서 모든 것을 의롭게 진행하고 계시므로 우리는 불만하거나 불신해서는 안되고 다만 존경하는 마음으로 순복해야 한다. 그분은 우리가 알아서 유익이 될 만큼만 그분의 목적을 우리에게 나타내실 것이다. 우리는 그 이상의 것에 대해서는 전능한 손, 사랑이 충만한 마음에 의탁해야 한다.

필요한 성실과 인내

________에 있는 교회의 상태는 도저히 합당한 상태가 아니다. 결정적인 변화가 없는 한 그것은 시들어 죽을 것이다. 흠잡는 일이 많고, 많은 사람들은 의심과 불신이 들어올 길을 열어 주고 있다. 믿음을 이야기하고 믿음을 배양하는 자들은 믿음을 소유할 것이다. 그러나 의심을 품고 나타내는 자들은 의심을 갖게 될 것이다.

목사들측에 태만이 존재해 왔다. 그들은 청중들의 마음에 성실의 필요를 충분히 권유하지 않았다. 그들은 진리와 의무의 모든 점에 관하여 교회를 교육하지 않고 그들을 질서 있게 활동하게 하고 모든 분야의 하나님의 사업에 흥미를 갖도록 열성껏 노력하지 않았다. 나는 교회가 적절하게 교육받았을 것 같으면 그들이 현재의 위치보다 훨씬 전진해 있을 것을 보았다. 목사들측에서의 태만 때문에 백성들이 부주의하고 불성실해졌다. 그들은 그들의 개인적 책임을 느끼지 않고, 목사들이 목사로서의 일을 하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들 스스로를 변명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변명하도록 놓아 두지 않으신다. 그들이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그들에게 경고와 책망과, 그들의 마음에 의무를 깨우쳐 주는 하늘의 애소가 없다면. 정죄가 적을 것이다. 303 그러나 주님께서는 권고와 교훈을 전해 주셨고, 각 개인의 의무가 너무도 분명히 밝혀졌기 때문에 아무도 실수할 필요가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빛과 진리를 정직하게 바라는 자들을 지도하기 위하여 빛을 주신다. 그러나 의심과 의문의 여지를 완전히 제거해 버리는 것이 그분의 목적은 아니다. 그분께서는 믿음을 세울 수 있는 충분한 증거를 주시고 사람들에게 그 증거를 받아들이고 믿음을 행사하도록 요구하신다.

겸손하고 배우고자 하는 정신으로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은. 성경이 틀림없이 정확하게 생명의 길을 가리켜 주는 확실한 지침인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형제 자매들이여, 그대들이 성경이 가르쳐 주는 진리를 실천하지 않을 것 같으면 그대들의 성경 연구가 무슨 효력이 있겠는가? 그 거룩한 책에는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고, 우리의 실생활과 관련되어 있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계시되어 있지 않다.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깊어지면 질수록 우리는 그 말씀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하신 음성으로 더욱 크게 인정하게 될 것이다.

________에 있는 교회는 사단의 마술에 걸린 땅 위에 서 있다. 그러므로 철저한 회개가 필요하다. 개인적 노력이 필요하다. 성경의 풍성한 약속들은 그들의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는 자들을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는 자가 되고자 진정으로 원하는 각 사람은 영적인 마음의 자세를 계발할 것이며 모든 은혜를 이용할 것이다. 그러나 이 교회에는 기회와 특권들이 등한시되어 왔다. 어떤 사람은 공중 앞에서 불과 몇 마디의 말밖에 할 수 없고, 주님의 포도원에서 조금밖에 일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무엇인가를 말하고 관심 있는 일꾼이 되어야 할 의무가 지워져 있다. 모든 교인은 교회를 강하게 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도와야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옛날의 갈렙을 특징지웠던 성실의 정신을 소유하고 있는 한두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회피하고 있는 반면에 이 사람들은 무거운 짐을 지고 책임을 감당하도록 허용된다.

갈렙은 성실하고 확고 부동했다. 그는 자랑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공로와 선행을 과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감화는 언제나 정당한 편에 있었다. 그러면 그의 보상은 무엇이었던가? 주님께서 그분의 음성을 듣기를 거절한 사람들에게 심판을 선고하셨을 때, 그분은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민 14:24)고 말씀하셨다. 304 비겁한 자들과 불평하는 자들은 광야에서 죽었지만 성실한 갈렙은 약속된 가나안에 정착하였다. 여호와께서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삼상 2:30)긴다고 말씀하신다.

한나는 기도하고 신뢰했다. 그의 아들 사무엘을 통하여 그는 가장 귀중한 보배-훌륭한 품성을 가진 유용한 사람, 원칙에 관한 한 바위처럼 확고한 사람-를 하나님께 바쳤다.

욥바에 도르가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재능 있는 손가락은 그의 혀보다 더욱 활동적이었다. 그는 누가 안락한 의복이 필요하며 동정이 필요한지 알았다. 그는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마음껏 봉사했다. 도르가가 죽게 되자, 욥바에 있는 교회는 그들의 상실을 깨달았다. 그들이 슬퍼하고 탄식한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며 뜨거운 눈물이 죽은 시체 위에 떨어진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너무도 큰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원수의 땅에서 되돌아왔다. 그의 기술과 정력은 다른 사람들에게 여전히 축복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성도들이 소유했던 줄기차고, 경건하고, 끈덕진 충성은 드물다. 그러나 그것이 없이는 교회가 번영할 수 없다. 그것은 교회에, 안식일 학교에, 사회에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은 정복되지 않은 품성의 육신적 특성들을 함께 가지고 교회와의 관계를 이룬다. 그리하여 위기가 닥쳐서, 강하고 희망찬 정신이 필요한 때가 되면 그들은 낙심상태가 되어 교회에 무거운 짐이 된다. 그리고 이것이 그릇된 일임을 그들은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의 사업은 그런 사람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들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경의 때에 쇠하지 않을 확고 부동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일꾼들이 언제나 요망된다.

________에 있는 교회에는 문제의 요인이 될 몇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의지가 그리스도의 의지와 결코 조화를 이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E형제는 이 교회에 큰 장애가 될 것이다. 그는 패권을 쥘 수 있을 때는 만족하지만, 첫째 자리에 설 수 없을 때는 언제나 그릇된 편에 있게 된다. 그는 충동에 의하여 움직인다. 305 그는 조화를 이루기보다는 문제를 일으키며 반대 의견을 취한다. 흠을 찾아내고 형제들을 비난하는 것이 그의 성격이기 때문이다. 그는 진리에 대하여 매우 열성적인 것으로 주장하면서도 조직체에서 떠나가고 있다. 그는 도덕적 능력에 있어서 강하지 않고, 믿음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세움을 입지 않고 있다. 진리의 거룩한 원칙이 그의 본성의 일부를 이루고 있지 않다. 그는 신뢰할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를 기뻐하지 않으신다.

E 부부는 자녀들을 교육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의 지시를 존중하지 않았다. 이 아이들은 대부분 가정에서 통제력을 행사하도록 허용되어 왔으므로 그들의 마음대로 왔다갔다 했다. 그들이 완전히 다른 영향 아래 놓이지 않으면 그들은 원수의 대열에 있게 될 것이며 질서와 규율과 예속에 반대하여 싸울 것이다. 이와 같이 제멋대로의 길을 가도록 버려진 아이들은 행복하지 않다. 그리고 부모의 권위가 가볍게 여겨지고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권위도 존중되지 않을 것이다.

부모의 사업은 엄숙하고 신성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모든 의의 원수에 의하여 그들의 눈이 멀어져 있기 때문에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의 자녀들은 확고하고 결정적인 행동, 인내와 극기와 함께 공의와 자비가 섞인 행동이 훌륭한 결과를 나타낼 것임에도 불구하고 훈련받지 않고, 예의 없고, 건방지고, 자기 과신적이고, 배은 망덕하고 부정한 상태에서 자라나도록 허용되고 있다.

E 형제는 변화시키는 은혜를 소유해야 한다. 그가 육신적인 품성의 결함들을 간직하고 있는 동안 그에게는 안전이 없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들을 대항하여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그가 경성하고 경건한 생애를 하지 않는 한 그는 잘 균형을 이루지 못할 것이며, 그의 영향을 통하여 진리가 방해를 받고 잘못 전해지므로 악평을 받을 위험이 있다. 그가 결코 제거할 수 없는 편견을 불신자들에게 일으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사람의 본성에는 극단으로 달려가되 하나의 극단에서 완전히 다른 극단으로 달려가는 경향이 있다. 많은 광신자들이 있다. 그들은 신앙으로 잘못 이해되고 있는 불 같은 열성으로 사르어진다. 그러나 품성은 제자직의 참된 시금석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온유를 가지고 있는가? 306 그들은 그분의 겸손과 아름다운 덕성을 가지고 있는가? 영혼의 성전에서는 자부심과 교만과 이기심과 비난하는 마음이 떠나갔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그들이 어떤 종류의 정신에 속해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진실한 그리스도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많은 열매를 맺으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은 세상과 일치됨으로써 다른 극단으로 치우된다. 그들과 세상 사람들을 분리시키는 분명하고 뚜렷한 선이 없다. 만일 한 경우에 사람들이 거칠고 가혹하고 정죄하는 정신에 의하여 진리에서 떠나간다면, 그들은 이것을 가지고, 소위 그리스도인이 원칙에 결핍되고 마음이나 품성의 변화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리게 한다.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는 것이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그리스도인 품성이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에 대하여 올바르게 알지 못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 그들의 생애는 진리의 사업에 불명예가 된다. 만일 그들이 철저하게 회개할 것 같으면 그들은 가시와 엉겅퀴를 맺지 않고,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 5:22, 23)의 귀중한 성령의 열매들을 풍성하게 맺을 것이다. 큰 위험은 마음의 사업을 등한히 하는 데 있다.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만족하게 여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산 믿음으로 그분께서 마음 속에 거하지 못하시는데도 하나님의 율법을 명목적으로 준수하는 것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우리의 인간적 노력을 통하여 역사하고 있는 그분의 거룩한 은혜로써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분의 인내와 온유는 품성에 퍼져서, 하늘 가는 길을 밝고 뚜렷하게 알려 주는 귀중한 빛을 발산할 것이다. 그분의 생애를 바라보고 본받음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형상으로 바뀌어질 것이다. 하늘의 영광은 우리의 생애를 통하여 비취고 다른 사람들에게 반사될 것이다. 은혜의 보좌 앞에서 우리는 그렇게 살게 하는 데 필요한 도움을 발견해야 한다. 이것이 참된 성화이다. 그러므로 마치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는 것처럼 그리스도와 연결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더욱 고상한 어떤 위치를 사람이 욕망할 수 있겠는가?

307 나는 쟁기와 제단 사이에 서 있는 수소 한 마리가 그려진 명각(銘刻)하나를 보았는데, 거기에는 자원해서 피곤한 밭고랑에서 땀투성이가 되든지 희생의 제단 위에서 피를 흘리든지, “어느 한 가지를 위하여 준비되어 있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언제나 취해야 할 위치인데 그것은 자원해서 의무의 요구가 있는 곳은 어디든지 가서 진리의 사업을 위하여 자아를 부인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희생의 원리 위에 세워졌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 9:23)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온 마음, 온 애정을 요구하신다. 그분을 따르는 헌신적인 종들이 세상에 대하여 쏟은 열성과 열심과 이기심 없는 노력의 표현은 우리의 열정을 불태우고 그들의 모본을 흉내내게 해야 한다. 진실한 신앙은 품성을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아 형성시키는 열성과 일관된 목적을 제공해 주며,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게 해준다. 이 단 하나의 목적은 엄청난 능력의 요소임이 입증될 것이다.

우리는 이전에 사람들에게 위탁되었던 것보다 더욱 위대하고 엄숙한 진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를 취급하는 방법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우리 중 각 사람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열중해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여 진리를 사랑하게 하는 일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한편, 우리 자신의 마음과 품성에서 진리의 능력을 보여 주어야 한다. 죄인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일은 그의 모든 품성을 고상하게 하고, 위엄 있게 하고, 숭고하게 해주며, 가정에서, 사회에서, 교회에서 그를 복되게 해준다. 이것은 우리의 가장 고상한 능력을 기울일 가치가 있는 사업이 아닌가?

재능이 적은 사람들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들의 마음을 지키는 일에 성실할 것 같으면, 그리스도께 많은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다. 할랜 페이지(Harlan Page)는 보통의 재능을 가진 한정된 교육만을 받은 가난한 직공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주된 사업을 하나님의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으로 삼았다. 그의 활동은 두드러진 성공으로 장식되었다. 그는 개인적 대화와 열렬한 기도를 통하여 그의 동포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한 활동을 했다. 그는 기도회를 열고, 주일 학교를 조직하고, 소책자들과 그밖의 종교적 독서물을 나누어 주었다. 영원의 그림자가 그의 얼굴에 깃드는 임종을 맞이하여 그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308 “내가 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이지 다른 어떤 공로에 의한 것이 아님을 나는 안다. 그러나 나는 내 개인의 활동으로 100명 이상의 영혼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온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교인은 정규적인 활동 방법을 통하여 교육을 받아야 한다. 모든 사람은 주님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읽어 주는 일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고, 그들과 이야기하고 함께 기도할 수도 있다. 유능한 일꾼들의 군대를 교육시키고, 훈련시키고, 지도하는 목사는 이 땅에서 영광스러운 승리를 하고, 크고 흰 보좌 주변에서 그의 감화로 구원받은 자들을 만날 때, 더 풍성한 영광이 그를 기다린다.

무엇인가를 하라. 너의 힘을 다하여 즉시하라.

오랫동안 쉬면 천사의 날개는 힘이 없어질 것이다.

무활동 상태에 계시다면 하나님께서도 더 이상 축복되지 않으실 것이다.

________에 있는 교회가 진리를 깨달은 후에 열심과 열성과 사랑을 나타냈을 것 같으면 그들은 선한 일에 열매를 맺고 의로운 편에서 능력을 주는 감화를 발휘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무관심해지고. 냉랭하고 죽은 상태가 되어가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하늘의 분위기보다는 세상의 분위기에 싸이게 하는 사교회에 참석했다. 그 교회는 그들을 위하여 이루어진 노력에 반응하고자 하지 않았다. 현 상태에 있어서 그들은 그들 편에서의 협력의 필요를 이해하거나 깨닫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열성과 헌신의 부족은 목사들에게 용기를 잃게 했다. 이와 같은 부주의 대신에, 개인의 책임을 느끼는 일이 있어야 할 것이었다. 이 교회는 교인들이 그들 자신의 마음 속에서 개혁 사업을 시작하지 않는 한 결코 번영하지 못할 것이다. 믿음을 고백하는 많은 사람들은 쉽게 만족한다. 그들이 극기와 개혁의 몇 가지 점에 이르기만 하면 그들은 더 이상 나갈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왜, 시작하다가 마는가? 이 땅에서는 우리가 멈추어 있을 장소가 없다. 우리들 중 아무도 현재의 영적수준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도 계속적인 발전을 보일 수 없는한 그에게 주어진 기회에 부응하는 삶을 살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309 그는 올라가고, 또 올라가는 중에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장성한 사람이 될 때까지 자라나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특권이다.

________에 있는 사랑하는 백성들에게는 개인적 경건의 교훈이 참으로 필요하며, 그들에게는 목회적 활동이 참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은 알지도 않고 행하지도 않는다. 형제들이여,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을 시험하실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쭉정이임이 판명되고 어떤 사람들은 곡식 가운데 있는 귀중한 알곡임이 판명될 것이다. 시험하는 자의 능력에 굴복하지 말라. 그는 무장한 강한 사람으로 나타날 것이지만 그에게 유리한 위치를 제공하지 말라. 의무를 위하여 너 스스로 용기를 북돋우고 한 치의 땅도 쟁취하라. 물러가는 대신에 전진하라. 연약하고 소심해지는 대신에 싸움을 위하여 기운을 내라. 하나님께서는 온갖 형태의 죄를 대항하기 위하여 그대의 모든 힘을 다 하도록 요구하신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구원의 대장을 꾸준히 주목하라. 앞길에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가장 치열하게 싸우는 중일지라도 거짓 깃발을 따르지 말고 우리의 거룩한 믿음의 깃발을 주시하고 그것이 휘날리는 곳을 알아내라. 미구에 전쟁은 끝나고 승리는 거두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가 만일 성실하기만 하면 그를 사랑하시는 분을 통하여 그대는 넉넉히 이기게 될 것이다. 그 때에는 영광스러운 상급,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이 그대의 것이 될 것이다.

불평하는 죄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나는 그대들이 한 가족으로서 많은 쓸데없는 불행을 경험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이 불행해지도록 의도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대들은 마음을 예수님에게서 돌이켜 그대들 자신에 너무도 지나치게 집중시켰다. 그대들의 가정에 있는 큰 죄는 하나님의 섭리에 관하여 쓸데없이 불평하는 일이다. 이 점에 있어서의 그대들의 항거는 참으로 놀라울 정도이다. 그대들은 작은 어려움들을 확대시키고 용기를 좌절시키는 말을 너무 많이 해왔다. 그대들은 그대들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탄식으로 장식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으며 그대들 스스로를 이유 없이 불행하게 만들었다. 그대들의 끊임없는 불평은 그대들을 하나님에게서 분리시키고 있다.

310 그대들은 사단의 마술에 걸린 땅에서 벗어나고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이 흔들리도록 마음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대들은 행복해 질 수 있으며 또한 행복해져야 하고 자제의 습관도 가져야 한다. 그대들의 생각까지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켜야 하고 그대들의 감정은 이성과 신앙의 지배 아래 놓여야 한다. 그대들의 상상력은 함부로 날뛰고 제지나 규율 아래서의 어떤 노력 없이 제 마음대로의 길을 가도록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생각이 잘못되면 감정도 잘못될 것이다. 그리하여 생각과 감정이 합하여 도덕적 품성을 이룬다. 그대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생각과 감정을 제지하지 않고자 작정할 것 같으면 그대들은 악한 천사들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되고 그들의 제재와 지배를 자초하게 된다. 만일 그대들이 상상력에 굴복되어 그대들의 사상이 의심과 회의심과 불평의 길을 따르도록 허용한다면 그대들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불행한 자가 될 것이며 그대들의 생애도 실패로 입증될 것이다.

사랑하는 F 자매여, 그대는 병든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 그대는 그대의 감정이 그대의 이성과 판단에 완전히 지배되도록 허용하므로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다. 그대는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정신이 육체에 영향을 주어서 순환에 균형을 깨뜨리고 특정한 기관에 혼잡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대는 그대의 감정에 건강을 희생시키고 있다.

그대가 바로잡지 않으면 그대 자신의 행복을 그저 파멸로 종결지을 잘못을 범하고 있다. 그대는 그대 자신 뿐만 아니라 그대의 가족 중 다른 사람들과, 특별히 그대의 어머니에게 분명히 손해가 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매우 신경이 예민하고 민감하다. 그의 자녀들 중 하나가 고통을 받으면 그는 혼란해지고 거의 정신을 수습하지 못한다. 그가 어쩔수 없이 나타내는 빈번한 히스테리의 발작 때문에 그의 정신은 균형을 잃고, 큰 불행이 그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초래된다. 그러나 그대는 그대의 상상력을 지배하고 이 신경질적인 충격을 극복할 수 있다. 그대는 의지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대는 그것을 도움으로 삼아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대는 그렇게 하는 대신에 그대의 고도로 발휘된 상상력이 이성을 지배하게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대는 하나님의 영을 슬프게 했다. 311 그대에게 감정을 지배할 힘이 없다면 죄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원수에게 굴복하는 데는 대답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대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에 반대되도록 준비시키는 대신에 거룩하게 하고 순종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그대들은 질병을 차단시키는 길을 취하는 대신에, 그것을 좋아하고 그 세력에 굴복하고 있다. 그대들은 약물 사용을 피하고 건강 법칙을 주의 깊이 지켜야 한다. 그대들이 그대들의 생명을 존중하려면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준비한 평범한 음식물을 먹고 육체적 운동을 더 많이 해야 한다. 가정의 모든 구성원은 건강 개혁의 혜택이 필요하다. 그러나 약물 복용은 영구히 포기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떤 질병도 치료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육체 조직을 약화시키고 질병에 더욱 쉽게 감염되게 해주기 때문이다.

사람은 슬픔과 걱정과 곤란이 많은 세상에 처해 있다. 올바른 품성을 이루고 부조화와 혼란 가운데서 조화를 가져오기 위하여 아담처럼 시험받고 연단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 있다.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의 행복과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필수적인 일로서 해야 할 것이 많다. 그리고 우리가 누려야 할 것도 많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연결은 이루고 있다. 그분의 자비는 우리에게 끊임없는 의무를 지워 준다. 그분의 은총을 가치 없이 느끼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전혀 감사하지 않게 된다.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그대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과 그대들의 존재 자체에 대하여 그대들은 하나님께 빚을 지고 있다. 그분께서는 어떤 범위에 이르기까지는 그분 자신이 소유하고 계시는 것과 유사한 능력을 그대들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자아를 기쁘게 하고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이런 능력을 계발시키고자 열렬하게 활동해야 한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특권을 가장 유익되게 이용하지 않았다. 그대들은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그대 자신을 교육시켜야 한다. 지성은 계발되어야 한다. 만일 무활동으로 녹이 슬도록 버려지면 그것은 저하된다.

이 지상은 주님의 것이다. 여기에서 천연계-생물계나 무생물계-는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우월한 존재로 창조하셨다.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어 신의 성품에 참여하고, 창조주와 협력하여 그분의 계획을 이룰 수 있다. 또한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의 목적을 어기고 있음을 보게 된다.

312 얼마나 훌륭하게, 또한 얼마나 뛰어난 아름다움으로 천연계에 있는 모든 것이 조성되었는가. 우리는 어디에서나 위대한 예술가의 완전한 작품들을 본다. 하늘들은 그분의 영광을 선포하고,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창조된 지구는 우리에게 그분의 무한한 사랑을 말해 준다. 그 표면은 단조로운 평원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풍경을 다양하게 하기 위하여 웅장한 큰 산들이 솟아 있다. 거기에는 생기에 찬 계곡의 시내가 있고, 비옥한 골짜기와 아름다운 호수와 넓은 강과 끝없는 대양들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메마른 땅에 생기를 주기 위하여 이슬과 비를 내리신다. 공기를 정하게 하고 서늘하게 해줌으로 건강을 증진시키는 산들바람은 그분의 지혜에 의하여 통제된다. 그분은 낮과 밤을 구분하고, 그 온화한 광선으로 빛과 온기를 지구에 주고, 식물이 자라게 하기 위하여 하늘에 해를 두셨다.

나는 하나님의 풍성한 손에서 오는 이런 축복들을 주목해 보도록 호소하는 바이다. 새로운 매 아침의 신선한 영광을 볼 때 이와 같은 그분의 친절한 돌보심의 증거들에 대하여 그대들은 찬양의 마음이 생겨야 한다. 우리의 친절한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너무도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한 변장된 축복들도 주셨다. 그분은 타락한 인간의 필요를 이해하신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한편으로 우리에게 편의를 제공해 주시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을 사용하도록 우리를 자극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된 불편들이 있다. 이런 것들은 병자에게 근면과 인내와 용기를 계발시킨다.

사람이 감소시킬 수는 있지만 결코 제거해 버릴 수는 없는 재해들이 있다. 사람은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환경에 의하여 꼴 지워지는 대신에 그의 환경을 꼴 지어야 한다. 그는 혼란 가운데서 질서와 조화를 이루어내는 일에 있어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여지를 가지고 있다. 만일 그가 주장하기만 하면 이 일에 있어서 그는 하나님의 도움을 얻게 될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의 힘으로 유혹과 시련을 대항하여 싸우도록 버려지지 않는다. 전능하신 분에게 도움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생애의 시련을 통과하고 그 유혹들을 극복하는 방법을 사람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하늘의 왕궁을 떠나시고 죄로 타락한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돌아가셨다. 여기에 우리를 위한 하나의 모본이 있다.

313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 그분의 피조물들에게 주신 은택이 하나하나 열거될 때 그대는 그대의 배은 망덕한 불평에 대하여 가책을 느끼지 않는가? 여러 해 동안 그분께서는 그대에게 한 딸이요. 자매를 주셔서 마침내 그대가 그를 그대의 것으로 여기고, 그대가 이 훌륭한 선물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느끼게까지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탄식을 들으셨다. 그대의 눈앞에 어떤 구름이 있으면 그대는 지금껏 태양이 비취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고 구름과 흑암이 언제나 그대의 주위를 두르고 있었던 것으로 여겼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에게 고통을 보내시고, 그대에게서 그대의 보배를 옮기심으로 그대가 번영과 진정한 슬픔을 식별할 수 있게 하셨다. 그러나 그대는 그분 앞에 그대의 마음을 굴복시키지 않고 그분의 사랑에서 그대를 분리시킨 배은 망덕의 큰 죄를 회개하지 않았다. 욥처럼 그대는 슬픔에 대한 원인이 그대에게 있는 줄로 느끼고 위로를 받지 못했다. 이것이 합리적이었던가? 그대는 죽음이 아무도 저항할 수 없는 세력임을 안다. 그러나 그대는 헛된 슬픔으로 그대의 생애를 거의 쓸모 없이 만들었다. 그대의 슬픔은 거의 하나님께 대한 반역과 같은 정도의 것이었다. 나는 그대가 오로지 사별(死別)만을 생각하고 흥분하기 쉬운 감정에 굴복하여 마침내 그대의 시끄러운 슬픔의 표현 때문에 천사들이 얼굴을 가리우고 그 장면에서 물러가기까지 된 것을 보았다.

그대의 슬픔에 이렇게 굴복되고 있는 동안, 그대는 독생자를 우리를 위하여 주셔서 죽음이 영원한 잠이 되지 않도록 해주신 하늘 아버지가 계신 것을 기억했는가? 그대는 생명과 영광의 주님께서 무덤을 통과하시고 그분 자신의 임재로써 그것을 밝게 해주신 사실을 기억했는가? 사랑받은 사도는 이렇게 말했다.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 14:13). 사도는 이 말을 기록할 때 무엇에 관하여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지 잘 알았다. 그러나 그대가 억제할 수 없는 슬픔에 굴복할 때 그대의 행동은 이 말이 나타내는 위로와 일치되는가?

주님은 은혜롭고, 자비롭고, 진실하시다. 그분은 가장 순결하고 가장 잘 준비된 그대의 가정의 구성원 중 하나를 마지막 날의 위기에 안식하도록 허락하셨다. 아, 즐거운 음률과 기쁨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그대의 심령을 닫아 버리거나 죽은 자에게 부활이 없는 것처럼 슬퍼하지 말고, 그에게 더 이상 죽음이 없고, 더 이상 시련이 없고, 더 이상 슬픔이 없게 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314 그 여인은 생명을 주시는 분께서 그분의 잠자는 성도들에게 영광스런 불멸을 입도록 부르실 때까지 예수님 안에서 쉬고 있다.

F 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그의 감정을 통어하는 일이다. 그는 그가 하늘에 있지 않고 죽음이 지배하고 우리의 사랑하는 자들이 어느 순간에 우리에게서 옮겨질 세상에 있다는 것을 안다. 그는 인생의 큰 책임이 더 좋은 세상을 위하여 준비하는 것임을 느껴야 한다. 만일 그가 영생을 붙들고만 있다면, 그가 이 세상에 살면서 인생의 의무를 고상하게 수행하는데 자격을 잃지 않게 해줄 뿐 아니라 그로 하여금 극기와 자아 희생의 의무를 완수하게 해줄 것이다.

한 가족으로서 그대들은 흑암과 불평을 이야기하되 마침내 그대들이 바로 그런 모습으로 바뀔 때까지 그렇게 한다. 그대들은 어둡고 슬프고 우울한 시간이 될 때까지 피차간에 동정하고 정신적 흥분을 하는 것 같다. 그대들은 애도하는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그대들 주변에 있는 천사들은 이런 예배에 매력을 갖지 않는다. 만일 그대가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대에게 거의 접근하지 않으시고 심판으로 그대를 다루실 것이다. 지금은 그대의 가정에서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그대에게 주어진 축복들을 즐거움으로 다시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진리의 능력은 모든 역경 속에서 지탱해 주고 위로해 주기에 충분해야 한다. 그리스도교의 신앙이 그 참 가치를 드러내는 것은 그 신앙의 소유자로 하여금 환난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주는 데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식욕과 정욕과 감정이 이성과 양심의 지배 아래 놓이게 하고, 사상이 건전한 통로를 통하여 흐르도록 훈련시켜 준다. 그렇게 되면 혀는 죄악적인 불평을 발하므로 하나님을 모독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창조주께서는 그분의 피조물들에게 당신이 선택하시는 대로 행하실 정당한 권리를 갖고 계신다. 인간은 마음대로 결정할 권리가 없지만 그분은 뜻대로 주관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분은 엄격한 재판관이나 가혹하고 까다로운 채권자가 아니시다. 그분은 바로 사랑의 원천이시며 무수한 축복의 시여자시다. 그대가 그런 사랑을 멸시한 것이 가장 큰 슬픔의 원인이 되었고,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에 대하여 그대들의 마음 속에서 감사와 찬양이 우러나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모든 은혜를 받기에 합당하지 못하다. 그러나 우리가 합당하지 못하고 배은 망덕으로 냉랭할지라도 그 은혜들은 우리에게 계속되고 있다. 315 그러므로 그대들은 마치 일을 가혹하게 시키는 엄한 주인에게 매인 종들처럼 불평하지 말라. 예수님은 선하시다. 그분을 찬양하라. 그대들의 얼굴을 도우시는 분이시며 그대들의 하나님이신 분을 찬양하라.

“여호와를 찬양하라”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시 150:6). 우리들 중에 얼마만큼 감사를 표해야 할 것인지 합당하게 생각해 본 사람이 있는가? 우리는 주님의 자비가 아침마다 새롭다는 것과 그분의 성실이 다함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그분에게 의존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분의 모든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는가? 그렇기는커녕 오히려 우리는 너무도 흔히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약 1:17)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건강한 자들은 얼마나 흔히 날마다, 해마다 그들에게 끊임없이 주어지는 놀라운 자비를 잊어버리는가. 그들은 그분의 모든 은혜에 대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지 않는다. 그러나 질병이 엄습하면 하나님을 기억한다. 회복을 받기 위한 강한 욕망은 열렬한 기도를 하게 하는데, 이것은 옳은 일이다. 하나님은 건강할 때와 마찬가지로 병든 때에도 우리의 피난처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사정을 그분께 맡기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에 관한 걱정으로 허약과 질병을 조장한다. 만일 그들이 불평을 그치고 의기 소침과 우울에서 벗어날 것 같으면 그들의 회복은 더욱 확실해질 것이다. 그들은 참으로 오랫동안 건강의 축복을 누린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기억해야 한다. 그들이 이 귀중한 은혜를 회복 받으면 그들은 그들의 창조주께 새로운 의무를 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열 사람의 문둥병자가 고침을 받았을 때 오직 한 사람만이 예수님을 찾아서 그분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왔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에 마음이 감동되지 않은 지각 없는 아홉 사람처럼 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분은 그분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돌보신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시 103:13). 316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요일 3:1). 우리가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후사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후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귀중한 특권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이생에서 실망과 고통을 벗어나지 못한다 해서 탄식하고 슬퍼하지 않도록 하자. 만일 하나님의 섭리로 우리가 시련을 견디도록 부름을 받는다면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쓴 잔을 마시되, 그것을 우리의 입술에 대주는 것은 아버지의 손임을 기억하자. 낮에는 물론이요 흑암 속에서도 그분을 신뢰하도록 하자. 우리는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모든 것을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실 것을 믿을 수 있지 않은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2). 갈바리의 십자가로 우리에게 나타낸 사랑을 기억할 때, 고통의 밤에서까지도 어찌 우리가 감사의 찬양으로 마음과 음성을 높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죄인들을 위하여 치르신 희생은 얼마나 훌륭한 명상의 주제인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우리가 소유할 수 있도록 주어진 축복들을 어떻게 측량할 것인가? 예수님께서 그 이상 더 고난을 받으실 수 있으셨을까? 그분께서는 더욱 풍성한 축복을 우리를 위하여 가져오실 수 있으셨을까? 우리를 위하여 그분께서 하늘의 행복과 영광을 떠나셔서 궁핍과 수치, 고통과 무서운 죽음을 당하신 것을 우리가 생각할 때, 가장 굳은 마음도 녹아질 것이 아닌가? 만일 그분께서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써 우리에게 소망의 문을 열어 주지 않으셨을 것 같으면 우리는 흑암의 공포와 절망의 불행 외에 아무것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은총받고 축복받은 현 상태로서는 우리가 얼마나 깊은 데서 건져냄을 받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만일 예수님께서 동정과 사랑의 팔, 그분의 인간의 팔로 우리를 안아 주시고 우리를 끌어올려 주지 않으셨을 것 같으면 우리의 고통이 얼마나 더 크고, 우리의 불행이 얼마나 더 심했을 것인지 우리는 헤아려 볼 수 없다.

우리는 소망 가운데 즐거워 할 수 있다. 우리의 대언자는 하늘 성소에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신다. 317 그분의 공로를 통하여 우리는 용서와 화평을 얻는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고, 우리에게 그분의 의를 옷 입혀 주시고, 하늘의 교제에 적합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자 돌아가셨다. 그 곳에서 우리는 빛 가운데 영원히 거할 수 있다. 사랑하는 형제, 사랑하는 자매여, 사단이 절망과 우울과 의심을 그대들의 마음에 채워 줄 때 그의 제안들을 거절하라. 그에게 모는 죄에서 깨끗하게 해주는 예수님의 피를 이야기해 주라. 그대는 그대 자신을 유혹자의 세력에서 구출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귀중한 피의 공로가 제시될 때 그는 떨고 도망친다. 그렇다면 그대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그대는 그분이 제시하는 구원의 잔을 받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겠는가? 그대를 흑암에서 불러내어 그분의 기이한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신 분에 대한 불신을 나타내지 말라. 그대의 불신으로 동정 많으신 구주의 마음을 한 순간이라도 아프게 하지 말라. 그분은 가장 강한 관심을 가지고 하늘 가는 길에서 전진하고 있는 그대를 살펴보신다. 그분은 그대의 열렬한 노력을 보신다. 그분은 그대의 타락과 회복, 그대의 희망과 공포, 그대의 투쟁과 승리를 주시하신다.

우리의 헌신적 활동이 구하고 받는 것으로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필요는 생각하고 우리가 받는 혜택은 결코 생각하지 않을 것인가? 우리는 그분의 자비를 받는 자이면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감사를 표현하지 않고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에 대하여 그분을 결코 찬양하지 않을 것인가? 우리는 지나치게 많이 기도하지 않고, 감사하는 일에 지나치게 인색하다. 만일 하나님의 부드러운 자비가 더 많은 감사와 찬양을 불러일으켰을 것 같으면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훨씬 더 큰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점점 더 풍성해 지고 그분을 더욱 찬양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그대는 그대의 현 상태를 바꾸고 그대의 간구에 찬양을 더하라. 그대가 그분의 선하심과 자비를 생각할 때 그대는 그분께서 그대의 필요를 생각하시리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기도하고, 열렬하게 기도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그러나 찬양하는 일을 잊지 말라. 그렇게 되면 그분의 모든 자녀가 그분의 품성을 옹호하게 된다. 그대는 주님을 존귀케 할 수 있고, 도우시는 은혜의 능력을 보여 줄 수 있다.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감사하지 않고 예수님의 거룩한 자비도 감사하지 않는 자들이 많이 있다. 318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계획에 나타난 무한한 은혜를 모멸하기까지 한다. 이 큰 구원에 참여하는 모든 자들이 이 문제에 있어서 분명하지 않다. 그들은 감사하는 마음을 계발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구속의 주제는 천사들이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것은 끝없는 영원한 시대를 통하여 구속받은 자들의 과학과 노래가 될 것이다. 그것은 신중하게 생각하고 지금 연구할 가치가 있지 않은가? 우리는 마음과 영혼과 음성을 다하여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시 107:8)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회중에서 주님을 찬양하자. 옛날에 여호와의 말씀이 히브리 백성들에게 전달되었을 때 “모든 백성들아 아멘 할지어다”(시 106:48)라는 명령이 주어졌다. 언약궤가 다윗의 도성으로 운반되고 기쁨과 승리의 찬송이 울려 퍼질 때 “모든 백성이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양하였더라”(대상 16:36). 이 열렬한 반응은 그들이 들은 말씀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데 참여했다는 증거였다.

우리의 종교적 의식에는 너무 많은 형식이 있다. 주님께서는 말씀을 전파하는 그분의 목사들이 그분의 성령으로 기운을 얻기 바라신다. 그러므로 듣는 백성들은 졸면서 냉담한 상태로 앉아 있거나 멍청하게 응시하면서 듣는 바 말씀에 반응을 나타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하여 불신자에게 주는 인상은 그리스도교에 호감을 줄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이처럼 둔하고 부주의한 자들이 세상의 사업에 종사할 때는 야망과 열성이 결핍되지 않는다. 그러나 영원한 의미를 가진 사물들은 그들을 크게 감동시키지 못한다. 하나님의 사자들을 통하여 전해지는 하나님의 음성은 즐거운 노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거룩한 경고와 책망과 권면은 모두 유의하는 바 되지 않는다. 세상의 정신이 그들을 마비시켰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는 둔한 귀와 딱딱하고 무감각한 마음에 전해진다. 그리스도의 목사들을 격려하고 지지하기 위하여, 또한 영혼들을 구원하는 사업에서 그들을 도와주기 위하여 크게 각성하고, 활동적인 교회들이 있어야 한다. 교회가 빛 가운데서 걸어가고 있는 곳에는 언제나 즐겁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반응과 기쁨에 넘치는 찬양의 말이 있게 될 것이다.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시 50:23)라고 선언하신다. 319 모든 하늘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연합한다. 우리가 지금 천사들의 노래를 배워서 빛나는 그들의 대열에 속할 때 그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하자. 우리는 시편 기자처럼 말하도록 하자.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시 146:2). “하나님이여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케 하소서”(시 67:3).

부모의 의무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의 품성에 남긴 본에 대하여 큰 책임이 있다. 그들은 조화와 균형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부모들이 약한 특성들을 북돋아 주고 잘못된 것들을 억제하는 그들의 의무를 심히 등한히 하기 때문에 잘 균형을 이룬 정신을 가진 자들이 별로 없다. 그들은 매 자녀의 성향들을 관찰할 가장 엄숙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과, 올바른 습관과 올바른 사고 방법을 자녀들에게 익히게 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라는 것을 기억하지 않는다.

때때로 부모들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하도록 맡겨 주신 바로 그 일을 그분께서 해주시기를 기대한다. 그들이 마땅할 만큼 자녀들을 제지하고 지배하는 대신에 그들은 자녀들을 귀여워하고 제멋대로 하게 하고, 그들의 변덕과 욕망을 채워 준다. 이 자녀들이 그들의 어린 시절의 가정에서 떠나갈 때, 이기심으로 왜곡된 품성과 제어되지 못한 식욕과 완고한 고집을 가지고 간다. 그들은 예절이나 부모들에 대한 존경심이 결여되어 있고, 신앙적 진리나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평생 동안 저주가 되는 특성들을 가지고 자라났다. 만일 등한하게 여겨진 영혼의 정원에 분열과 이기심과 질투와 정욕과 음울한 고집의 악한 잡초들이 무성하도록 버려진다면 가정은 결코 행복하게 되지 않는다.

부모들은 편애하지 말고 모든 자녀들을 부드럽게 취급하되 그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바 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자녀들은 부모를 본받는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올바른 본을 보이기 위하여 크게 유의해야 한다. 320 가정에서 친절하고 예의바르고, 동시에 확고하고 과단성이 있는 부모들은 동일한 특성들이 자녀들에게도 나타난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만일 그들이 청렴하고 정직하고 존경할 만 하면 그들의 자녀들도 이 특성들을 신속히 본받게 될 것이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존경하고 경배할 것 같으면 동일한 방법으로 훈련받은 자녀들 역시 그분을 섬기는 일을 잊지 않을 것이다.

부모들이 올바른 감화로 자녀들을 둘러 주는 것에 유의하지 않는 것이 흔히 있는 경우이다. 가정을 선택할 때 그들은 도덕적·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것보다는 세속적 유익에 대하여 더 많이 생각한다. 그러므로 자녀들은 경건의 향상과 올바른 품성의 형성에 불리한 교제를 하게 된다. 그리하여 부모들은 세상이 그들의 시간과 힘과 생각을 빼앗도록 허용한다. 안식일이 오면 그들은 그분의 거룩한 날에 하나님을 위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가정을 은혜롭게 해줄 아무런 진지한 경건도 없고, 자녀들에게 안식일이 기쁨이 되게 해 줄 것도 전혀 없을 정도로 완전히 지쳐 있는 것을 발견한다. 신앙의 특권을 받을 범위에서 벗어난 곳에 그들이 스스로 처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좀처럼 목사의 방문을 받지 못한다. 냉담이 영혼에 스며든다. 자녀들은 악한 교제에 감명되고, 그들이 한때 느꼈던 영혼의 부드러움은 사라지고 잊어버린 바 된다.

자녀들을 몰록에게 드린다는 이유로 가나안 사람들을 공공연하게 비난하는 부모들이여, 그대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대들은 가장 비싼 제물을 그대들의 재물의 신에게 바치고 있다. 그런데 자녀들이 불친절하고 좋지 못한 성품으로 자라나게 될 때, 그들이 결정적인 불경건과 불신의 경향을 보일 때 그대들이 가지고 있노라고 공언하는 믿음이 그들을 구원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그 믿음을 비난한다. 그대들은 그대들이 뿌린 것, 세상에 대한 그대들의 이기적 사랑과 은혜의 수단을 등한히 한 결과를 거두고 있다. 그대들은 유혹의 장소로 가족들을 옮겼고, 그대들의 영광과 방호벽이 되는 하나님의 궤를 그대들은 필수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유혹에서 그대들의 자녀들을 건져내기 위하여 이적을 행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을 사랑하노라고 공언하는 그대들이여, 그대들은 어디로 가든지 예수님을 모시고 가라. 그리고 옛날의 부조들처럼 그대들이 장막을 치는 곳은 어디든지 주님께 제단을 쌓으라. 321 이 점에서의 개혁, 깊어지고 넓어져야 할 개혁이 필요하다. 부모들이 개혁하고, 목사들이 개혁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가정에는 하나님이 필요하다. 그들은 시온의 황폐된 곳들을 쌓고, 그 성문을 세우고,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그 성벽을 튼튼하게 할 필요가 있다.

이 시대에 이루어져야 할 열렬한 사업이 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교육시켜 그 사업에 참여하게 해야 한다. 에스더에게 한 모르드개의 말이 오늘날의 장정들과 젊은이들에게 적용할 수 있다.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에 4:14). 젊은이들은 확고한 품성을 얻어서 유용성을 위하여 적합해져야 한다. 다니엘과 요셉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사용할 수 있는 확고한 원칙을 가진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의 역사를 살펴보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보라. 요셉은 여러 가지 경험, 그의 용기와 정직을 극도로 시험한 경험을 겪었다. 애굽으로 팔려간 후 그는 처음에 총애를 받고 큰 책임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갑자기 그의 편에 아무런 잘못 없이 그는 부당하게 송사를 받고 감옥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낙심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한다. 그의 마음의 목적과 그의 동기의 순결은 드러난다. 하나님의 눈이 그를 주목하고, 하나님의 손이 그를 지도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가 미구에 감옥에서 나와서 애굽의 왕위를 함께 나누는 것을 본다.

요셉의 파란 만장한 생애는 우연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대로 된 것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그가 확고한 품성과 정직과 지혜의 기록을 그처럼 남길 수 있었을까? 그것은 그의 초기에 있어서의 주의 깊은 훈련의 결과였다. 그는 일시적 기분보다는 의무를 염두에 두었다. 그 소년의 순결과 단순한 신뢰는 그 사람의 행위에서 열매를 맺었다. 가장 빛나는 재능도 이용되지 않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 부지런한 습관과 품성의 힘은 계발에 의하여 얻어져야 한다. 고상한 도덕적 품성과 흘륭한 정신적 특성은 우연의 결과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기회들을 주시며, 성공은 그 기회들을 이용하는 데 달려 있다. 하나님의 섭리가 열릴 때 신속히 분별하고 열렬하게 포착해야 한다.

젊은이들이여, 그대들이 강하게 되기를 바라고, 그대들이 요셉이나 다니엘의 정직과 지혜를 소유하기를 원하면 성경을 연구하라. 322 부모들이여, 자녀들을 하나님을 섬기고 세상에서 선을 행하도록 교육시키기를 원하면 성경을 그대들의 교과서로 삼으라. 성경은 사단의 간계를 폭로시킨다. 그것은 인류의 위대한 향상자이며, 도덕적 악의 책망자와 교정자, 참 것과 거짓 것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는 간파자이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치든지 간에 성경은 위대한 교육자로서 제일 앞에 서야 한다. 만일 그것이 이 자리에 서게 되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그분께서는 그대들의 자녀들을 회개시키는 일에 그대들을 위하여 역사하실 것이다. 이 거룩한 책에는 진리의 풍성한 자원과 아름다움이 있다. 그러므로 부모들이 그것을 자녀들에게 심히 흥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지 않으면 잘못은 그들에게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교육은 서적의 지식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잠 9:10)다. 교육의 참 목적은 영혼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첫째가 되고 가장 귀중한 지식은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이다. 현명한 부모들은 언제나 이 사실을 자녀들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게 할 것이다. 사지가 부러지고 금이 가면, 부모들은 그 사랑과 지혜가 상한 지체를 아름답고 건전하게 회복시키기 위하여 제안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할 것이다. 이것은 옳은 일이다. 그것은 그들의 의무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영혼의 오점들을 치료하기 위하여 여전히 더 큰 기지와 인내와 꾸준한 노력이 있기를 바라신다. 자녀들에게 그리스도인 교사와 주권자와 친구가 되지 못하고, 성화된 사랑, 성실하게 수행된 의무에 기초를 둔 사랑의 강한 띠로 그들을 마음에 묶지 않는 아버지는 그 이름에 합당하지 않다.

부모들은 해야 할 위대하고 책임 있는 사업이 있다. 그들은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고후 2:16)라고 물어 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구하는 자들에게 지혜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분께서는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그대로 하실 것이다. 그분은 그분의 말씀 그대로 그분을 받아들이는 믿음을 기뻐하신다. 어거스틴의 어머니는 그의 아들의 회개를 위하여 기도했다. 그는 아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을 받고 있는 아무런 증거를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낙심하지 않았다. 그는 손가락을 성경절 위에 올려 놓고 하나님 앞에 그분 자신의 말씀을 제시하면서 오직 어머니만이 할 수 있는 간구를 하였다. 323 그의 깊은 겸손, 하나님께 대해 그의 열렬하면서도 끈덕진 조름, 그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은 승리했다. 주님께서는 그의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셨다. 오늘날도 그분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의 간구를 들어주실 준비를 하고 계신다. 그분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사 59:1). 만일 그리스도인 부모들이 그분께 열렬하게 구할 것 같으면 그분께서는 논증으로 그들의 입을 채워 주실 것이며,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그들의 자녀들이 회심하도록 크게 역사하실 것이다.

자녀들의 훈련

사랑하는 G 부부에게: 나는 그대들의 상황 때문에 괴롭다. 나는 그대들이 결코 깨닫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위험들을 본다. 그대들은 그대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자녀들에 대한 의무를 신중하고 경건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이 자녀들은 그대들로부터 그들의 청년 시절에 그들로 하여금 창조주를 존중하도록 이끄는 교육과 훈련을 받고 있는가? 만일 그들이 부모된 그대들을 존경하고 그대들의 권위에 순종하도록 가르침을 받지 못하면 그대들이 그들에게 하나님을 모독하도록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들이 그대들의 권위를 짓밟도록 허용되고, 그들의 의지가 그대들의 의지를 지배할 때마다, 그대들은 그들이 신앙적으로 기울어질 때 그들의 모든 경험에 짜여 들어가고 그들이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짓밟도록 가르치게 될 결점을 기르고 있다.

그대가 답해야 할 질문은 이와 같다. “나는 흑암의 세력의 영향을 강화시키고 그 대열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자녀들을 키우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녀들을 양육하고 있는가? 만일 그대들이 자녀들을 다스리지 않고 하나님의 요구에 응하도록 그들의 성품을 형성시키지 않는다면 그대들의 결합된 훈련 때문에 고통을 받게 될 자녀들이 적으면 적을수록 그들의 부모인 그대들을 위하여 더욱 좋을 것이며, 사회를 위하여서도 그러할 것이다. 324 양심적이요 지성적이며,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가정을 다스리고 자녀들의 품성을 의의 표준에 일치되게 형성시키는 지혜롭고 분별력 있는 어머니가 자녀들을 영아 시절부터 훈련시키고 교육시킬 수 없을 것 같으면 그대들의 가족수를 늘리는 것은 죄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에게 이성을 주셔서 그것을 사용하기를 바라신다.

그대들은 꾸준하고 고된 노력과 열렬하고 간절한 기도로써, 그대들의 자녀들이 가정에서 축복이 되고, 교회에서도 축복이 되고, 또한 사회에서도 축복이 되도록 그들의 품성을 형성시켜야 할 책임을 느껴야 한다. 만일 그대들이 자녀들을 모든 의의 원수가 지배하도록 허용할 것 같으면 그대들의 사업은 신임을 받지 못할 것이다. 자녀들의 품성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양심적으로 형성시키는 데는 보상이 약속되어 있다. 만일 그대들이 그처럼 결과가 멀리 미치는 이 사업을 등한히 하되 현실에 더욱 부합된다는 이유로 그렇게 하고, 자녀들이 도덕적인 결함을 지닌 채 자라나고 그들의 발이 죽음으로 이끄는 넓은 길로 간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의 사업을 잘 하였다고 선언하시겠는가? 그들 스스로를 알고, 자녀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온 힘을 다하여 지혜롭게 활동할 수 없는 자들은 부모가 되는 책임을 지지 않기로 작정해야 한다.

어머니들은 자녀들의 품성을 형성시키고 그들의 비슷한 일을 지도하고 가르치고 제지하는 중요한 사업에 자격을 갖추기 위하여 자원하고 열망하기까지 해야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이 사업에 연합해야 한다. 순종을 요구하는 일에 있어서의 연약함과 거짓 사랑과 동정-마음대로 하게 하되 제지하는 것은 지혜롭지 않다는 거짓 이론-은 천사들을 슬프게 하는 훈련 방법이다. 그러나 사단은 그것을 좋아한다. 그것이 수천수백의 아이들을 그의 대열에 가담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가 부모들의 눈을 멀게 하고, 그들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그들의 정신을 혼란케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그들의 아들과 딸들이 그들에게 기쁨을 주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며, 걱정거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블구하고 가정에서 자녀들의 수가 불어나며, 그들은 그들의 생애를 해롭게 하고 그들의 마음을 슬픔으로 채우고 그리하여 사단이 영혼들을 멸망으로 이끌기 위하여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의 수를 증가시킨다.

아, 언제 부모들이 현명해 질 것인가? 언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요구를 따라서 순종과 존경을 요구하는 일을 등한히 하고 있는 그들의 사업의 성격을 알고 깨달을 것인가? 325 이 해이한 훈련의 결과는 자녀들이 세상에 나가서 그들 자신의 가정의 머리가 될 때 나타난다. 그들은 그들의 부모의 실수를 영속(永續)시킨다. 그들의 결함된 특성들은 완전히 나타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품성에서 자라나도록 허용된 그릇된 취미와 습관과 기질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옮겨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회에 축복이 되는 대신에 저주가 된다.

남녀들이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의 길을 택하고 그들 자신의 왜곡된 상상을 따르기 때문에 사단이 그의 흉악한 깃발을 그들의 가정에 세우도록 허용되고, 그의 힘을 유아들과 어린이들과 청년들을 통하여 느끼게 된다. 그의 음성과 뜻은 정복되지 않은 의지와 자녀들의 왜곡된 품성을 통하여 나타날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그들을 통하여 지배력을 발휘하고 그의 계획을 이룬다. 하나님은 그분에 대한 존경심을 제거해 버리고 사단의 제안을 따르게 하는 왜곡된 기질의 표현을 통하여 모욕을 당하신다. 부모들이 이처럼 사단이 지배하도록 허용함으로 범한 죄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들이 찔레와 가시가 돋아나게 하는 씨를 뿌리고 있으므로 하늘의 수풀에 속한 모든 나무는 질식된다. 오직 심판만이 수확될 추수를 나타낼 것이다. 생애와 그 실수가 영원한 빛 가운데 나타날 것이지만 그것을 너무 늦게 보게 되므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하나님을 위하여 자녀들을 훈련시키는 일을 완전히 등한히 하므로 악이 영속되었고, 현명한 보호를 받았으면 그리스도의 동역자가 되었을 많은 사람들이 원수의 대열에 들어가게 되었다. 거짓된 사상과 어리석고 잘못 지도된 애정은 자녀들을 사랑스럽지 않고 불행하게 만든 특성들을 배양하고, 부모들의 생애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들의 해로운 영향은 세대를 통하여 전해졌다. 그 자신의 길을 가도록 허용되는 자녀는 누구나 하나님을 모독하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부끄러움을 안겨 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영의 증언들로부터 빛이 비취고 있으므로 아무도 그들의 의무에 관하여 실수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들에게 그분을 알고 그분의 요구를 존중하도록 자녀들을 양육하라고 요구하신다. 그들은 어린 자녀들이, 주님의 가정의 어린 구성원들로서 아름다운 성품과 상냥한 기질을 소유하고 하늘의 궁전에서 빛을 발하기에 적합한 자가 되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326 부모들은 그들의 의무를 등한히 하고 그들의 자녀들이 그릇된 곳에 빠지게 함으로써 그들이 하늘 도성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그 문을 닫아 버린다.

이 사실들이 부모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야 한다. 그들은 일어나서 오랫동안 등한히 여겨진 사업에 착수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노라고 공언하는 부모들이 그분의 뜻을 이루고 있지 않다. 그들이 자녀들을 적당하게 제지하고 지도하지 않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은 결함된 품성과 해이한 덕성을 가지고, 또한 생애의 실제적 의무에 있어서 별반 교육없이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재능들을 등한히 하므로 하나님의 사업에 야기되는 손실은 아버지와 어머니들의 문 앞에 놓인다. 그들은 그들의 책임 아래 맡겨진 영혼들을 적절히 교육시켜 그들의 모든 능력을 창조주의 영광을 위하여 향상시키는 청지기로 삼아 주신 분에게 어떤 변명을 하겠는가?

나의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주님께서 그대들의 눈을 열어 주시고 그대들의 마음을 각성시켜 주시므로 그대들이 실패를 깨닫고 그것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그대들은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지 않다. 그대들은 예수님을 위하여, 또한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을 옹호하기 위하여 일어서는 능력을 조금밖에 나타내지 않는다. 그대들은 가정에서의 의무를 등한히 했고, 그대들의 보호에 맡겨진 젊은이들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가정에서의 그대들의 사업을 보신다. 그것은 하늘의 책들에 불리하게 기록된다. 그대들은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대들이 도덕상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대들은 모든 면에서 불성실하게 되었다.

그대들의 가정 관리의 느슨한 방법에 잠재한 오류들이 자녀들의 품성을 통하여 나타난다. 그대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어진 교훈을 따르도록 스스로를 교육시키지 않았다. 그대들이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실패 때문에 야기되는 악은 심각하고 헤아리기 어렵다. G 자매는 올바른 영향을 발휘하지 않는다. 그는 그릇된 마음을 가진 자녀들의 강한 의지에 굴복하였고, 그 의지가 그들을 해치도록 내버려 두었다. 327 그대들은 다같이 자녀들을 매우 어린 시절부터 교육시키므로 그들이 그대들을 지배할 수 없게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대들의 의지가 순종하게 되었다. 만일 G 자매가 어린 시절에 적절한 훈련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교훈과 교육을 받았을 것 같으면, 그는 다른 형태의 품성을 이루고 그에게 지워지는 의무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는 자녀들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길을 가도록 훈련시키는 법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자신의 그릇된 훈련에서 얻어진 결함들이 자녀들에게 다시 나타난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들 자신의 가정의 선두에 언젠가 서게 될 때 그들의 사업의 특성이 어찌 되겠는가?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은 가정의 의무에 관하여 어느 정도의 지식을 소유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이것 외에는 단순한 풋내기에 불과하다.

현명하고 확고하게 지도했다면 이 아이들은 사회의 유용한 구성원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대로 그들은 저주가 되고, 우리의 믿음에 비난거리가 되었다. 그들은 쓸모 없고, 경박하고, 완고하고, 낭비벽이 있다. 그들은 부모들을 존경하는 일이 거의 없고 그들의 양심은 감각을 거의 잃었다. 그들이 그들 스스로의 길을 가고, 그들의 욕망이 부모들을 지배하였으므로 그들의 도덕적 감각을 각성시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부모들의 육신적 성향들, 특별히 못마땅한 성향들은 어린 시절에 강하게 형성된다. 온 가족, 부모와 자녀들이 하나님의 견책을 받고 있다. 만일 그들이 오랫동안 등한히 해 온 의무들을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수 있는 품성을 형성하지 않을 것 같으면 그들 중 아무도 평화로운 천국의 기쁨에 들어가기를 바랄 수 없다.

부모들은 그들의 손으로 행하는 일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그들은 그들의 사업을 성실하고 바른 정신으로 하기 위하여 지혜와 확고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주신 재능들을 계발시키므로 자녀들을 유용하게 훈련시켜야 한다. 이렇게 하는 일에 실패하는 것을 눈감아 주지 말고, 교회의 징계 문제로 삼아야 한다. 그 일로 하나님의 저주가 부모들에게 임하고 교회에는 비난과 어려운 시련과 고통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에게 전염되어 몸과 마음을 부패시키는 도덕적 문둥병은 흔히 그들을 훈계하고 제지하는 데 실패하므로 생기게 된다. 그 파괴의 맹위를 꺾기 위하여 무엇인가가 이루어져야 할 때이다.

328 성경은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중요한 사업에 관하여 분명하게 지시한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신 6:4-6). 부모들은 하나님과 스스로를 연결시켜야 한다. 그들은 그분을 두려워해야 하고 그분의 뜻을 아는 지식을 소유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의 사업을 하게 된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7-9).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그들 주변에 있는 우상숭배의 민족들과 결혼하지 못하도록 명령하셨다.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신 7:3, 4, 6-8).

여기에 우리의 시대까지 미치는 적극적인 지시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그분은 이해되고 순종받으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 1:8). 329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시 19:7).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시 119:130).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여기에 부모들의 의무가 분명히 밝혀져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의 매일의 권고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부모들이 자녀들의 교육에 관하여 실수할 필요가 없는 그런 교훈을 준다. 그러나 그것은 냉담이나 나태를 허용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율법은 자녀들의 마음 앞에 위대한 도덕적 표준으로 계속 제시되어야 한다. 그들이 일어날 때, 그들이 앉을 때, 그들이 나갈 때, 그들이 들어올 때, 이 율법은 생애의 위대한 법칙으로써 그들에게 가르쳐져야 한다. 그리고 그 원칙은 그들의 모든 경험과 함께 짜여져야 한다. 그들은 정직하고, 신임 있고. 존절하고, 심약하고, 부지런하고,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그들을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키우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발을 의무와 안전의 길에 세워 준다.

젊은이들은 무지하고 경험이 없다. 성경과 그 거룩한 진리들에 대한 사랑은 저절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사단의 간계에서 보호하기 위하여 그들 주위에 울타리를 치지 않으면, 그들은 그의 유혹에 굴복당하고, 그의 뜻대로 그에게 사로잡히게 된다. 자녀들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와 죄의 오점에서 정결케 되기 위하여 예수님을 우리의 구속주로 믿는 믿음을 교훈 받아야 한다. 이 믿음은 교훈과 믿음을 통하여 날마다 가르쳐야 한다.

엄숙한 책임이 부모들에게 지워져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의무를 분명히 등한히 할 때 주님께서 어떻게 그들을 축복하시겠는가? 자녀들은 어릴 때에 꼴 지워질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부드럽고 진리의 감화에 민감한 동안에 여러 해가 지나가고, 그들의 도덕적 계발에는 별반 시간이 바쳐지지 않는다. 진리와 의무에 대한 귀중한 교훈들은 매일 그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피조물들을 통하여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얻어야 한다. 이것은 다른 어떤 책들에서 얻는 지식보다 그들에게 더 큰 가치가 있을 것이다.

330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는 것은 우리 구주의 말씀이다. 교리에 관한 오류들은 증가되고 있으며, 뱀같은 간교로써 사람들의 애정을 두르고 있다. 부인당하지 않은 성경의 교리는 없다. 세계의 역사에서 우리의 위치를 알려 주는 위대한 예언의 진리들은, 이 중요한 진리들을 어둡고 이해할 수 없게 만들고자 애쓰고 있는 성직자들에 의하여 그 아름다움과 능력을 빼앗겼다. 많은 경우에 어린이들은 옛 지계표에서 흘러 떠내려가고 있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셨다.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명하신 증거와 말씀과 규례와 법도가 무슨 뜻이뇨 하거든 너는 네 아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옛적에 애굽에서 바로의 종이 되었더니 여호와께서 권능의 손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니 곧 여호와께서 우리의 목전에서 크고 두려운 이적과 기사를 애굽과 바로와 그 온 집에 베푸시고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우리에게 주어 들어가게 하시려고 우리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시고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로 오늘날과 같이 생활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그 명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지니라”(신 6:20-25).

여기에 우리가 무관심하게 취급해서는 안 될 원칙들이 있다. 진리를 깨닫고 그 중요성을 느끼고, 하나님의 사물을 경험한 자들은 그들의 자녀들에게 건전한 교리를 가르쳐야 한다. 그들은 우리의 믿음의 큰 기능들을 잘 알아야 하고, 왜 우리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이 되었으며, 왜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으로 불리워지고, 지상의 다른 모든 백성들과 다르고 구별된 특별한 백성,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이런 것들은 쉬운 말로 이해하기 쉽게 자녀들에게 설명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세월을 따라 성장할 때, 전달된 교훈들은 증가되어 가는 그들의 이해력에 상응하게 되되 마침내 진리의 기초가 넓고 깊게 놓여질 때까지 그렇게 되어야 한다.

331 부모들이여, 그대들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공언한다. 그대들은 순종하는 자녀들인가? 그대들은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하고 있는가? 그대들은 그분의 지시를 따르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대 자신들이 불붙인 불빛을 따라 걸어가고 있는가? 그대들은 원수를 이기고 자녀들을 그의 간계에서 구출해 내기 위하여 날마다 활동하고 있는가? 그대들은 귀중한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그들에게 펼쳐 주고, 그들의 어린 발이 진리의 기초 위에 놓여지도록 우리의 믿음의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는가?

귀중한 진리의 보석을 가진 성경은 학자만을 위하여 기록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하여 마련되었다. 성령의 도움을 받은 평범한 사람들이 성령의 도움을 받아서 하는 해석이 예수님 안에 있는 그대로의 진리와 가장 잘 조화를 이루게 된다. 구원을 위한 위대한 진리들은 대낮과 같이 분명하므로 분명히 계시된 하나님의 뜻 대신에 자기 자신의 판단을 따르는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실수하거나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인내

사랑하는 H 부부에게: 현재 그대들이 교회와 맺고 있는 관계에 관하여 나는 그대들이 형제들과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친절하고 융화적인 정신을 배양하고, 보복의 감정은 그대들의 정신과 마음에 들어오지 않게 하라. 우리는 이 세상에서 조금밖에 시간이 없다. 그러므로 이생과 영원을 위하여 일하자. 그대들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기 위하여 열심히 일하라.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생활할 그대들의 자격에 관하여 실수하고 있지 않는지 생각해 보라. 만일 그대들의 이름이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면 그대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대들의 실수와 죄가 사전에 심판을 받아서 도말되도록 그대들의 결점들을 고백하고 그것들을 버리기 위하여 준비하고 열망하라.

나는 그대들이 개선하고 있는 줄 믿는다. 그러나 그 일을 더욱 깊고 더욱 철저하고, 더욱 열렬히 하라. 그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하지 않은 채 버려 두지 말라. 332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고, 그대들의 마음이 건전한 상태에 놓이게 하고, 자아를 극복하고, 사단의 모든 간계를 피하기 위하여 깨어 있으라. 마음이 예수님과 조화가 될 때, 말과 정신과 행동으로 모본 되시는 분을 본받을 때, 태도는 세련되고 고상해질 것이며, 그대에게 철저한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확신시켜 줄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덕망 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예수님의 추종자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나의 형제여, 그대는 매우 더러워진 기록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과 그대 자신의 영혼은 이 사실을 안다. 그러나 그대의 발이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길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대를 만나는 것을 나보다 더 기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 우리 자신의 품성을 올바로 알기는 어렵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시키면서 흔히 실수를 범한다. 자아를 기만하고, 그 경고와 책망이 나에게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 17:9). 자고(自高)가 그리스도인 정서요 열성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이기심과 자신(自信)이, 우리가 하나님의 요구에 전혀 응하지 않고 있을 때에도 우리를 옳다고 보증해 줄 수도 있다.

성경은 완전하고, 분명하고 명백하다. 진실한 그리스도의 제자의 품성이 정확하게 알려져 있다. 우리가 우리의 참된 품성에 관하여 조금이라도 기만당하지 않으려면,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을 연구하고, 주님의 말씀 앞에서 떨어야 한다. 이기심과 자기 과신을 극복하려면 끈덕진 노력이 있어야 한다. 자기 기만의 위험에서 벗어나려면 자아를 철저히 살펴야 한다. 특별한 경우에 자아에 대하여 약간 살펴보는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 날마다 그대의 소망의 기초를 살펴보고, 그대가 정말로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있는 여부를 알아보라. 그대가 어떤 위험을 향하여 달려가지 않도록 그대 자신의 마음을 진실하게 취급하라. 진심으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치러야 할 희생을 헤아려 보고 갑주를 입으라. 모본되시는 분을 연구하라.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처럼 되라. 그대의 마음의 평화, 그대의 영원한 구원의 소망은 이 일에서의 성실에 좌우된다. 333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다른 어떤 것보다 자아를 살피는 일에서 철저하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아를 이해하는 데 그처럼 느리게 진보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나는 그대가 구원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쓰고 있다. 나는 그대를 실망시키기를 원치 않고, 그대가 더욱 열렬하고, 활기찬 노력을 하도록 권유하고자 한다. 이기심은 피상적으로 자기를 살펴보게 할 것이다. 그러나 헛된 자신감이 그대를 속여서 영생을 얻지 못하도록 허용하지 말라. 그대 자신을 다른 사람들의 실수와 잘못 위에 세우지 말고, 그대의 영생이 걸려 있는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과 그대 자신의 영혼 사이에서 해결하라.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기쁨과 슬픔의 감정이 엇갈리는 그대로의 마음, 너무도 많은 불순과 기만이 잠재해 있는 종잡을 수 없고. 고집스런 마음을 여호와께서 보신다. 그분은 마음의 동기와 그 의향과 목적을 그대로 아신다. 더러워진 그대로의 심령을 가지고 그분께 나가라. 시편 기자처럼, 모든 것을 보시는 분의 눈앞에 마음의 문을 열어 놓고,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 139:23, 24)라고 부르짖으라. 새로워지고 순결하게 되기 위하여 그대의 마음을 바치라. 그러면 그대는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벧전 3:15) 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그대의 것이 될 것이며 그대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하늘의 유업을 받을 수 있는 그대의 자격에는 지상에 있는 어떤 사람도 감히 의문을 제기할 수 없는 왕의 도장이 찍혀 있을 것이다. 아무도 그대가 하늘 도성의 문으로 들어가는 길을 막을 수 없다. 그대는 왕의 앞으로, 또한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전으로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몇 마디의 말이 아직도 내 마음에 무겁게 걸려 있다. 나는 그대가 교회와 연합하기를 바란다. 그것은 모든 교인들이 완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서가 아니고 그대 역시 완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교회 안에 귀중한 분들을 소유하고 계신다. 거기에는 또한 곡식 가운데 있는 가라지와 같은 남녀들이 있다. 334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대가 다른 어떤 사람에게 누가 가라지이며 누가 곡식인지 말하는 직분을 주지 않으신다. 우리는 우리가 결코 깨닫지 못했을지라도 분명히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는 더 큰 결점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결점들을 보고 정죄할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세상과 교회에 대해 훌륭한 모본, 예수님을 나타내는 생애를 제시하기를 바라신다. 수행해야 할 의무와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다. 세상은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을 충분히 소유하고 있지 않다. 교회는 그들이 필요하다. 그들은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을 위하여 이렇게 기도하셨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요 17:15).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유혹에 노출된 채 세상에 있는 것을 아신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타락시키는 세상의 영향을 이길 수 있는 은혜를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그분은 우리의 완고함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덕적 결함을 야기하지 않도록 우리의 품성을 완전케 하시기를 바라신다.

그대는 형제들이 성경상 표준에 미치지 못한 것과 그들에게 결점들이 있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대는 그 결점들을 깊이 생각한다. 그대는 그리스도를 먹는 대신에 그들을 먹는다. 바라봄으로써 그대는 그들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비판하지 말라. 그대 자신의 정확한 노선과 다른 사람들의 부족을 대조하지 말라. 그대는 다른 사람들을 바로잡아 주고 그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느끼게 해주기를 원할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하라고 맡겨 주신 사업이 아니다. 그분은 그대를 교회를 땜질하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으셨다. 그대가 성경의 빛으로 보는 많은 것들이 있다. 비록 어떤 점들에 관하여서는 그대가 옳을지라도 그대의 주장이 언제나 옳다는 인상을 주지말라. 많은 점에 있어서 그대의 사상은 왜곡되어 있고 비판을 견디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아를 높이고자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마음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라. 그대는 베드로의 품성이 어떠했으며, 그의 유별난 특성들이 어떻게 계발되었는지 안다. 큰 실수가 있기 전에 그는 언제나 건방지고, 전제적이었고, 순간적인 충동에 의하여 무분별하게 말하였다. 그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을 나무라고, 자기 자신이나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분명히 깨닫기 전에 그는 마음을 표현할 준비가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회개했다. 회개한 베드로는 경솔하고 성급한 베드로와는 매우 달랐다. 335 그는 이전 열성을 간직했지만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의 열성을 조절했다. 성급하고, 자신 있고, 자고하게 되는 대신에, 그는 조용하고 침착하고 배우는 자세가 되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양떼에 속한 양들은 물론이요 어린 양들도 먹일 수 있게 되었다.

나의 형제여, 그대는 날마다 그대 자신을 위하여 해야 할 큰일이 있다. 그대는 나쁜 기질과 악한 성향을 제어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이런 것들은 그대의 성장과 함께 자라났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그것들을 완전히 극복할 힘을 그대에게 주실 수 있다. 그대는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으로 간주하고 품성에 있어서 그분과 같아지고자 노력하라. 다른 사람들과 사이 좋게 지내고자 노력하라. 그대의 사업상 관계에 있어서까지 예모 있고, 친절하고, 인내하는 사람이 되라. 그리고 예수님의 온유를 보여 주고 그분의 정신이 그대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도 보여주라. 그대는 인류와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러므로 그대는 인내하고, 친절하고, 동정적이어야 한다. 그대는 사려 깊은 마음을 간직하고 이기심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 그대는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자문해 보아야 한다. 그대 자신에게 불리한 경우일지라도, 그들에게 선을 행하고자 열망하게 되면 그대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정욕과 충동의 영역을 벗어난 사랑은 사람을 고상하게 해 주고 말과 행동에 나타난다. 그리스도인은 안달과 변덕이 없는 고상한 친절과 사랑을 소유해야 한다. 무례하고 거칠은 태도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드러워져야 한다.

아! 나의 형제, 나의 자매여, 그대 자신을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교육시켜라. 투쟁의 정신은 가정과 학교에서 종식되게 하라. 그대의 마음을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사랑 가운데 빠지게 하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채워져 있는 마음들은 결코 사이가 많이 벌어질 수 없다. 신앙은 사랑이며, 그리스도인 가정은 사랑이 지배하는 곳이고 사려 깊은 친절과 부드러운 예절의 말과 행동에 사랑이 표현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거칠은 말을 하지 말라. 가정 예배는 즐겁고 흥미롭게 되게 하라. 나의 형제여, 그리스도인 신사가 되라. 가정 생활을 특징짓는 동일한 그 원칙은 교회에서도 실천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절의 부족, 한 순간의 변덕, 단 하나의 거칠고 무분별한 말은 그대의 명성을 훼손시키고 마음에 이르는 문을 닫아 버리므로 그대는 결코 그들과 접촉할 수 없게 될 것이다.

336 이제 나는 그대 앞에 그대의 위험을 제시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대가 얻을 수 있는 귀중한 승리를 발하고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과 정신을 갖지 않으면 하늘 나라를 볼 수 없다. 그리고 그 본을 가정에서, 그대의 사업에서, 교회에서 받으라.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자 시도하지말고 그대가 형제들과 얼마나 크게 다를 수 있을 것인가 보고자 시도하지도 말라. 오히려 그대가 그들에게도 얼마나 가까이 갈 수 있는지, 그대가 얼마나 완전히 그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인지 보고자 노력하라. 완전한 그리스도인 품성을 위하여 그대 편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한편, 하나님께서 그분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꼴 지우시도록 그분께 그대의 마음을 바쳐라. 그분께서 그대를 도우실 것이다. 나는 그분께서 그렇게 하실 것을 안다. 하나님께서 그대와 그대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축복해 주시기를 바란다. 나는 크고 흰 보좌 주위에서 그대를 만나게 되기를 기도한다.

세속적 야망

사랑하는 I 형제에게: 메인 주 장막회에서 그대를 만난 이래 나는 그대가 마음과 가정을 건전한 상태로 안착시키기에 너무 늦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대가 하나님의 영으로 감화를 받아 온 것을 알므로 이제 이렇게 질문하는 바이다. 그대는 회개하라는 이 호소에 응하여 즐겨 하나님께 마음을 바치겠는가? 그대의 경우가 이상 가운데 내 앞에 제시되었다. 그러나 그대가 영혼들의 원수의 지배를 완전히 받고 있는 동안 나는 주님께로부터 받은 기별을 그대에게 보낼 용기가 없었다. 나는 그대가 그 기별을 경솔하게 취급하므로 마침내 성령께서 슬퍼하며 떠나실까 염려하였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대에게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게하는 향기도 되고, 사망에서 사망에 이르게 하는 냄새도 될 수 있는 이 증언을 그대에게 보내야 한다고 강하게 느끼는 바이다.

만일 그대가 빛보다 흑암을 택하고, 그리스도보다 재물의 신을 섬기고자 결정한다면 이 증언을 읽지 말라. 그러나 만일 그대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진정으로 원하고 그분께서 정하신 길대로 구원받고자 한다면 이 증언을 읽으라. 그럴지라도 그것을 흠잡기 위하여 읽지 말고, 왜곡시키거나, 조롱하거나 멸시하기 위해서도 읽지 말라. 그렇게 할 경우에는 그것이 그대에게 사망에서 사망에 이르게 하는 냄새가 되고, 심판 때에 그대를 대적하는 증거를 할 것이다. 이 경고의 기별을 읽기 전에 홀로 하나님 앞에 나가서, 반항과 반역과 불신의 정신을 그대에게서 제거해 주고, 돌처럼 굳은 그대의 마음을 녹혀서 정복하게 해 달라고 구하라.

337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위엄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창조주와 그분의 손으로 이루어진 피조물과의 헤아릴 수 없는 거리를 기억하지도 못한다. 하늘에 좌정하셔서 통치하시는 분께서는 우리의 유한한 표준을 따라 판단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계산대로 측정하지도 않으신다. 만일 우리가 우리에게 큰 것은 하나님께도 커야 하고 우리에게 작은 것은 그분에게도 작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만일 그분께서 동일한 능력만을 소유하셨다면 그분께서 우리보다 더 높임을 받으실 수 없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죄를 똑같은 크기로 여기지 않으신다. 유한한 인간의 평가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지만 하나님의 평가에는 범죄의 등급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에는 그들의 행동에 나타난 이런 저런 잘못이 아무리 사소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어떤 죄도 작게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작은 것으로 여기고 처리하는 죄도 하나님께서 큰 범죄로 간주하시는 바로 그런 죄가 될 수도 있다. 주정뱅이는 멸시를 받고 그의 죄 때문에 하늘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말을 듣지만 그와 반면에 교만과 이기심과 탐욕은 책망을 받지 않고 넘어간다. 그러나 이런 죄들이 특별히 하나님께서 불쾌히 여기시는 것들이다. 그분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약 4:6)신다. 바울은 탐심이 우상이라고 우리에게 알려 준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있는 우상을 반대하는 선언을 잘 아는 자들은 그 죄가 얼마나 불쾌하게 취급되는 것인지를 즉시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 55:7-9). 우리는 주님의 표준대로 죄를 판정하고 우리 자신의 표준대로 하지 않기 위하여 분명한 분별력이 필요하다. 인간의 의견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척도로 삼자.

우리는 생애의 큰 전쟁터에 있다. 338 그러므로 우리는 투쟁의 결과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비록 노아, 욥, 다니엘이 땅에 있을지라도 그들은 그들의 의로 아들이나 딸을 결코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나의 형제여, 그대는 이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대는 그대의 형제들도 바르게 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대 자신의 행동을 변명해 왔다. 때때로 그대는 응석부리는 버릇 없는 어린이처럼 행동하고 다른 사람들을 해치기 위하여 불신과 의심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것이 유익이 될 것인가?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그대의 무관심을 변명할 수 있는 어떤 것이 그대의 가정과 교회와 세상에 있는가? 그대가 온 세상의 재판장과 얼굴을 마주 대하고 설 때 그대의 변명 중 어떤 것이 효력을 나타낼 것인가? 그 때에 그대의 이기적이요 탐욕적인 행동이 참으로 어리석고 죄악적인 것으로 나타나지 않겠는가? 세속적 의견과 세속적 유익 때문에 그대가 성실한 자에게 주어질 상급, 하나님의 낙원에서 누릴 복스러운 영생이 가리워지도록 허용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대에게 얼마나 설명할 수 없는 일로 보일 것인가?

그대가 육체적으로 크게 고통을 겪고 인간의 기술로는 그대에게 희망이 사라졌을 때, 주님께서는 그대를 긍휼히 여기시고 자비롭게도 그대에게서 질병을 제거해 주셨다. 사단은 그대를 고통스럽게 하고 파멸시키기 위하여 노력하고 그대의 생명을 빼앗으려고까지 했다. 그러나 그대의 구주께서는 그대를 거듭거듭 보호해 주셔서 그대의 마음이 사단의 열성으로 충만해져서 그대의 혀가, 한때 옹호했던 성경에 대하여, 또한 진리에 대하여 가혹한 말과 불신을 나타낼 때에 쓰러지지 않게 하셨다. 사단이 그대에 대하여 떠들어대고 그대를 그의 것으로 주장할 때 그리스도께서는 그대의 잔혹하고 악랄한 원수를 이런 말로 물리치셨다. “나는 그에게서 나의 영을 거두지 않았다. 그가 나의 자비와 사랑의 영역을 벗어나려면 두어 발자국 더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영혼들은 나의 피로 산 것이다. 사단아,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신다. 여호와께서 너를 책망하신다.”

나는 그대의 과거의 생애를 보게 되었다. 진리가 그대의 마음 속에서 반응을 나타냈을 때의 그대를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영은 그대가 가야할 길을 깨우쳐 주셨고, 그대는 자아와 더불어 심하게 투쟁하였다. 그대는 약삭빠르고 교활한 사람이었다. 그대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남을 대접하지 않고, 어느 때나 할 수만 있으면 그들을 이용했다. 그대는 자아를 굴복시키고 교만을 극복하기 위하여 싸워야 할 치열하고, 엄숙한 싸움이 있었다. 339 그리고 이 일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철저한 개혁이 효과를 나타내게 하는 대신에 그대는 유혹의 시험에 견딜 수 없는 너덕너덕한 품성에 진리를 연합시켰다. 그대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구하고 잘못을 바로잡음으로 일을 시작하지 않았다. 그대가 만일 이 일을 했을 것 같으면 그대는 넘어지지 않고 원수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대의 동기에는 그대 스스로가 분명히 깨닫지 못한 이기심이 혼합되어 있었다. 세속적 유익에서 이끌어낸 논증들, 사회적 지위, 상당한 위치에 있는 명사들이 그대에게 영향을 미쳤고,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열렬하고 철저한 사업을 하지 못하게 했다. 세상의 표준을 따라감으로 그대의 그리스도인 품성의 성실성과 순결은 훼손되었고, 그대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삭개오는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눅 19:8)라고 말했다. 그대는 동료 인간들에 대하여 한 불의한 행동을 고치기 위하여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대는 모든 상황을 원상회복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그대가 손해를 입힌 어떤 사람들은 무덤 속으로 내려갔고, 그 결과는 그대에게 불리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번 상황에서 그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주님의 제단에 속건 제물을 드리는 일이다. 그리하면 그분께서는 그대를 받아 주시고 용서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할 수 있는 곳에서는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

만일 그대와 교제해 온 불신자들이 그대에게서 변화시키는 진리의 능력을 보았을 것 같으면 그들은 그들이 논박할 수 없는, 그리스도교에 호의적인 논증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그대는 세상에 대하여 분명하고, 뚜렷한 빛을 반사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대신에 그대는 세상과 섞이고 세상의 정신을 흡수해 왔다. 나의 형제여, 그대는 거듭나야 한다. 단지 형식만의 그리스도교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것은 구원의 능력이 결핍되고, 이 속에는 개혁시키는 능력이 없다. 안식일 예배에 국한되는 신앙은 다른 사람들에게 빛의 광선을 발하지 않는다. 나는 그대 자신의 마음을 철저하게 살피도록 호소하는 바이다. 그대는 싸움을 좋아하고 다투기 좋아하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대는 그 정신을 억제하는 대신에 계발시키고 있다. 그대는 결정적인 변화를 이루고, 온유와 믿음과 겸손과 사랑을 계발시켜야 한다. 340 그대의 영혼은 위기에 놓여 있다. 만일 그대가 있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세속과 야망의 물결을 거슬러 나가지 않으면 그대는 분명히 사단의 강력한 기만에 굴복 될 것이다. 세상과 맺고 있는 그대의 관계는 변화되어야 하고 결정적인 분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대가 가지고 있는 지위, 유혹의 문을 그대에게 끊임없이 열어 주고 있는 위치는 버려져야 한다. 정치를 피하고 싸움을 중지하라. 그대의 품성 속에서 무찔러 버리고 극복할 필요가 있는 특성들을 조장시키는 모든 직무들을 깨끗이 청산하라.

나의 형제여, 그대는 강력하고 결정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어둠의 일을 결코 벗어 버리지 못할 것이다. 사단은 그대를 그 자신의 것으로 쳐다본다. 그대는 최근의 장막회에서 처럼 하나님의 종들의 간증을 듣고 크게 각성하고 있다. 그러나 그대는 하나님의 영의 감화에 반응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대가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면 그대는 그들의 정신을 받아들이고 세상의 물결에 압도당하며, 그 영향을 저항할 도덕적 능력을 잃어버린다. 그대는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과 하나가 된다. 그러므로 그대의 정신은 그들의 정신보다 더 악하다. 왜냐하면 그대의 선택은 자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사람들의 칭찬을 좋아하고, 그대는 예수님보다 세상 재물을 더 사랑한다. 재물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대의 모든 기질 속에 짜여져서 완전히 흡수되었다. 그것을 뽑아버리는 것은 그대의 오른눈을 빼버리거나 오른팔을 베어 버리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는 사람으로서 그대에게 말한다. 그대가 만일 금전을 사랑하는 이 강한 애착을 극복하지 않으면, 그것이 그대의 영혼의 구원을 희생시킬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대는 이 세상에 나지 않았다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그대가 세상의 정신을 사랑하고 간직하고 있는 한 그대는 반항 정신을 소유하게 될 것이고, 그대에게 진리의 기별을 전하는 자들을 의심하고 그들에게서 결점을 찾게 될 것이다. 그대는 진리를 비웃고, 거짓 증인, 곧 형제들을 참소하는 자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도록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재능들은 그분의 일과 사업을 반대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사용될 것이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은 합하지 못한다. 그대는 이미 세상과의 우정을 택하였다. 341 그러므로 그대는 결정적으로 사단의 편에 있다. 육신의 마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므로 가장 분명한 진리의 증거를 거절할 것이다. 악인들은 그들의 그릇된 행위를 정죄하는 빛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대는 의심과 회의론에 대하여 마음을 열어 놓았다. 그러나 그대는 정직한 이교도는 결코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대는 그대가 성경을 믿지않는 것을 자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대는 언제나 거짓 증거를 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그렇게 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대가 영생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기를 호소한다. 사단의 사슬을 깨뜨리고 그의 간계에 맞서서 일하라. 이것이 그대의 영혼의 말이 되게하라. “내가 나의 모든 의무를 깨닫지 못하거나, 그것을 알고도 행하지 못하는 것보다 더 두려워할 것은 우주에서 없다.” “예수님을 위하여 일어서라”는 것이 죽어가는 성도의 말이었다. I 형제여, 예수님을 위하여 일어서라. 그 일은 모든 것을 빼앗을 것이다. 그대는 세상에서의 위치를 바꾸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명성, 명예, 직위 등은 그대에게 올무가 되고, 그대의 영혼을 위태롭게 한다. 타산적이요 세속적인 지혜는 그대를 구주에게서 떠나가게 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대담하고, 반항적이고, 참람된 불신은 그대 자신의 영혼에게서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도 그분의 복음을 짓밟아 버리고자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위하여 일어서라. 그대의 친척들과 친구들 앞에서, 그대의 모든 사업상 관계에서, 세상과의 교제에서, 어느 곳에서나, 모든 환경에서 예수님을 위하여 일어서라.

형제들간의 사랑

________에 있는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에게: 나의 마음은 그대들의 상태 때문에 너무도 괴롭다. 나는 잠을 잘 수 없었기 때문에 12시에 일어나서 J 에게와, 한 교회로서의 그대들에게 편지를 쓰지 않을 수 없다. 만일 그대들이 의로운, 그리스도인적 태도, 그런 상황에서 모든 하나님의 자녀가 반드시 따라야 할 태도로 그를 대했을 것 같으면 현재 J의 상태가 어떠했을 것인지 나는 모른다. 그대들 중 어떤 사람들은 나의 말을 깨달 을 수 없을 것이다. 342 왜냐하면 그대들 스스로의 길이 그대들을 성화된 분별력을 소유할 수 없는 곳에 두었기 때문이다. 그대들은 그에게 대하여 완고하고 굳은 감정이 그대들의 마음에 들어오도록 허용했으며, 그를 냉대하고 경멸히 취급한 것을 옳다고 주장했다. 그대들은 그의 불신과 그의 그릇된 행동이 분명히 교회를 해치고 영혼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기 때문에 그와 교제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합리화시켰다. 그러나 그대들은 하나님의 위대한 의의 표준에 비추어서 그대가 마음에 상기시킬수 있는 모든 말과 그대 자신의 행동을 냉정하게 살펴보고 그것들을 그리스도의 생애와 비교해 보겠는가? 만일 그대들이 하나님의 뜻을 행해 왔다면 그분의 빛과 승인이 그대들의 활동을 지지하고, 번영이 그대들을 따르게 될 것이다. 나는 한때 번영했던 이 교회의 교인들이 각각 자기 자신의 집을 세우는 데 착수하기를 바란다. 그들이 참 빛으로 그들의 행동을 보게 될 때 그들은 그들 자신의 비평적이요 바리새인적 정신이 그들의 혀를 지배하도록 허용함으로 큰 실수를 범해 왔고 그들의 형제들을 취급하는 일에 그 실수가 그대로 나타난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비그리스도인적 냉혹함이 교회에서 그리스도를 제외해 버리고 분열의 정신을 가져왔다. 그것은 비판하고 정죄하는 기질, 사물을 그대들이 보는 것처럼 보지 않는 자들에 대한 증오심을 조장시켰다. 형제들이 그대들에게 정말로 손해를 주는 말을 하고 많은 것들을 행한다 할지라도 그대들은 그들을 한 쪽으로 밀어 붙이고, “나는 그대들보다 더 거룩하다”고 말하겠는가?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20). 그리스도께서는 그대 자신보다 하늘 나라에 훨씬 더 가까이 있는 어떤 사람들에 대한 그대들의 태도 가운데서 나타나시지 않으셨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자녀들에 대하여 취하는 그대들의 잘못, 곧 그대들의 자비와 사랑의 결핍, 마음들을 지배하여 그대들이 사물들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들을 보게 하고자 하는 결심 등을 그대들 앞에 열어 놓으셨다. 그러나 빛이 그대들에게 왔을 때, 그대들은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 그대들은 그대들이 잘못했다는 것을 단순히 시인했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대들의 잘못을 진심으로 고백하고 그대들의 교만한 마음을 하나님 앞에 낮추었는가? 그대들은 그대들의 길을 버리고 하나님의 교훈을 받아들였는가? 그대들은 그대들이 상처를 주고 해친 바로 그 사람들에게로 가서 이렇게 말하였는가? 343 “내가 잘못했다. 내가 그대에게 죄를 지었다. 용서해 달라. 내가 실수했다. 나는 내 자신의 정신으로 일을 했다. 내가 열성을 갖기는 했지만 지식을 따른 열성은 아니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이라기 보다는 예후의 정신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고 지시하신다. 내가 그대에게 고통과 번민을 가져다 준 죄를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시도록 나를 위하여 기도해 주겠는가?”

상하게 하고 정죄하는 이 일을 해온 그대들이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을 것 같으면, 빛과 평화와 기쁨이 그대들의 심령 속으로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대들이 딱딱하고, 용서성이 없고, 압제적이었던 그만한 정도로 형제들에 대하여 조심성 있고 친절하고, 부드러워지면 그대들은 죄를 고백하고 할 수 있는 대로 배상하게 될 것이다. 그대들이 그대들 편에서 해야 할 일을 모두 하고 나면 그대들이 하기에 불가능한 것, 그대들 때문에 생긴 상처를 치료하고, 그대들을 용서하고, 그대들의 죄를 도말받는 일 등을 해 달라고 주님께 간구할 수 있다. 잘못한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분명해진 실수를 고백하기를 그처럼 크게 싫어하는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의 정신에 지배되기보다는 자신의 길들일 수 없는 거룩하지 않은 본성에 지배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언제나 말씀하신 것은 그대가 그대의 품성 속에 있는 사악한 요소를 단순히 냉랭하고 무관심한 태도로써가 아니라 무시하고 경멸하는 태도를 잘못한 사람들에게 보인 데 대하여 열렬한 회개로써 해야 할 가장 열성적인 사업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진정으로 흑암 속에 처해 있고 그들의 영혼을 위태롭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그대들은 그들에게 더 큰 관심을 나타내야 한다. 그대들이 원칙에 진실하고 바른길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그대들이 그들의 영혼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보여 주라. 그대들이 복수와 보복의 정신을 갖기보다는 그들을 위하여 감정을 희생하고 자아를 극복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과 행동으로 그들에게 알려 주라. 우리의 모본되시는 예수님을 나타내라. 언제나 어떤 환경에서나 그분의 정신을 나타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던 마음이 그대에게도 있게 하라. 그대들의 길은 하나님의 길이 아니었고, 그대들의 뜻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지 않았다. 귀중한 사랑의 식물은 재배되지 않고 은혜의 이슬로 젖지 않았다. 344 이기심, 독선, 자아 만족 등이 지배력을 발휘해 왔다.

예수님께서 그대들을 위하여 무엇을 하셨으며,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개인적으로 무엇을 계속적으로 하고 계시는가? 그대들이 받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요 15:5, 2). 가지가 포도나무를 지탱해 주지 않고, 포도나무가 가지를 지탱하고 영양분을 공급해 준다. 교회가 그리스도를 지탱해 주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생명력을 통하여 교회를 지탱해 주신다. 가지가 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우리는 열매를 맺는 가지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요 15:5)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맺힌 열매가 가시나무의 열매일 것 같으신 우리가 산 포도나무의 가지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생애는 훈련 과정이다. 세상에 있는 동안 그리스도인은 불리한 영향을 만나게 될 것이다. 기질을 시험하기 위한 도전이 있을 것이다. 바른 정신으로 이런 것을 만남으로써 그리스도인의 덕성은 계발된다. 손해와 모욕을 온유하게 참고, 모욕적인 말들에 부드러운 대답으로 반응하고, 압제적 행동을 친절로 대하면, 이것은 그리스도의 영이 마음 속에 거하고, 산 포도나무에서 받은 수액이 가지로 흐르고 있다는 증거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학교에 다니게 되는데. 그 곳에서 마음의 온유와 겸손을 배워야 한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모든 장애, 우리가 담당하도록 부름을 받은 모든 난관과 곤란은 그리스도인 생애의 원칙을 적용하는 데 있어서 실제적 교훈들인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잘 견디기만 하면 그것들은 품성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같아지게 해주고 그리스도인을 세상 사람과 구별되게 해준다.

우리가 고상하고, 순결하고, 정결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자 하면 우리가 도달해야 할 높은 표준이 있다. 또한 우리가 이 표준에 도달하려면 전지(煎枝)의 과정이 필요하다. 만일 직면해야 할 어려움이 없고, 극복해야 할 장애가 없고, 인내와 참음을 요구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이 전지의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는가? 345 이런 시련들은 우리의 경험에서 가장 적은 축복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성공을 거두게 하는 일에 우리의 용기를 북돋우기 위하여 계획된 것들이다. 우리는 그것들이 우리를 방해하고, 억압하고, 파멸시키도록 허용하는 대신에 자아에 대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얻게 하는 수단으로 이용해야 한다.

품성은 시험을 받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진실로 산 포도나무의 가지들일 것 같으면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안에 나타나실 것이다. 우리는 변덕과 초조 가운데서 인내하고, 친절하고, 오래 참게 될 것이다. 날마다 해마다 우리는 자아를 정복하고 고상한 영웅적 자질을 향하여 자라날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맡겨진 과업이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께로부터 받는 끊임없는 도움과 확고한 결정과 요동이 없는 목적과 끊임없는 경성과 부단한 기도 없이는 성취될 수 없다. 각 사람은 싸워야 할 개인적 싸움이 있다. 각 사람은 투쟁과 낙담을 통하여 자기 자신의 길을 얻어야 한다. 싸움에서 물러가는 자들은 힘과 승리의 기쁨을 잃어버린다. 우리가 우리의 몫에 필요한 노력을 하지 않을 것 같으면 아무도, 하나님까지도 우리를 하늘로 데려갈 수 없다. 우리는 미(美)의 특징들을 생애에 지녀야 한다. 우리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다르게 만드는 불쾌한 육신적 특성들을 배제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서 그분의 선하신 뜻을 이루고자 역사하고 계신 동안, 우리는 그분과 조화를 이루어 활동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마음을 변화시킨다. 그것은 세속적 마음을 가진 사람을 하늘의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만든다. 그 영향 아래 이기적인 사람이 이타적인 사람으로 바뀌어진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리스도의 품성이기 때문이다. 부정직하고 모략적인 사람이 정직해져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는 제2의 성품을 이루게 된다. 방탕한 자가 불순에서 순결로 변화된다. 그는 바른 습관을 이루게 된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에게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게 하는 향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은혜의 시기가 남아 있는 오늘날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의견을 말하거나 자기 자신을 모범인으로 보는 것은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본이시다. 그분을 본받고, 그대의 발은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라. 그대는 현대 진리의 모든 점들을 믿노라고 고백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진리들을 실천하지 않으면 그대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진리에서 실수하는 것을 보면 마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우신 것처럼 그를 향하여 울 것이다. 346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 실수한 자들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알아보자.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 6:1).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약 5:19, 20). 이 얼마나 큰 선교 사업인가! 가련하고 실수하기 쉬운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에 정확하게 맞지 않는 자들을 지금껏 비난하고 정죄해 온 것보다 얼마나 더욱 그리스도다운 일인가. 예수님께서 우리를 개인적으로 아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분은 그분의 피조물 된 각 사람의 소원을 아시고 모든 사람의 마음에서 숨겨지고 표현되지 않은 슬픔을 읽으신다. 그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어린 사람들 중 하나가 상처를 입게 되면 그분은 그것을 보시고 가해자에게 책임을 추궁하신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시다. 그분은 그분의 연약하고, 병들고, 길 잃은 양들을 돌보신다. 그분은 그들 모두의 이름을 아신다. 모든 양들과 그분의 양떼들 중 모든 어린 양의 고통은 동정 깊은 그분의 사랑의 마음에 와서 닿고, 도움을 요청하는 부르짖음은 그분의 귀에 도달한다. 이스라엘의 목자들의 가장 큰 죄 중 하나가 선지자에 의하여 이렇게 지적되고 있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강포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며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내 양의 무리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에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의 무리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겔 34:4-6).

예수님께서는 마치 이 지상에 다른 어떤 사람도 없는 것처럼 각 사람을 돌보신다. 우리의 맏형님으로서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불행을 느끼시는 한편, 신성을 가지신 하나님으로서 그분은 또한 우리를 위하여 강한 힘을 발휘하신다. 하늘의 왕께서는 타락하고 죄 많은 인류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으신다. 347 우리는 너무 높고 너무 초연하기 때문에, 우리를 주목하실 수도 없고, 우리를 동정하실 수도 없는 대제사장을 모시고 있지 않고,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신 분을 모시고 있다.

이 정신은 ________에 있는 몇 사람들이 J와 그의 영향을 받아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낸 무관심과 모욕과는 얼마나 다른가.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때가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지금, 이 교회에 필요하다. 형제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을 통하여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 들의 손에 결코 맡기지 않으신 일을 하게 되었다. 개성과 자립을 파괴하는 마음의 완고함과 비판적이요 정죄하는 정신이 그들의 그리스도인 경험 속으로 스며들었고, 그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마음 속에서 잃어버렸다. 형제들이여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하라”(계 22:11)는 말이 하늘에서 들리기 전에 그대의 심령에서 이것들을 빨리 제거해 버리라.

그대들은 교회와 관련된 그리스도인 생애에서 난처한 일을 많이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의 형제들을 도야하고자 지나친 열성을 내지 말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요구에 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지라도 정죄하지 말라. 그들이 화를 낼지라도 보복하지 말라. 분노를 자극하는 말을 했을지라도 안달해 하지 말고 그대들의 영혼을 조용히 지켜라. 그대들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잘못처럼 보이는 많은 것들을 보고 그 잘못들을 고쳐 주기를 원한다. 그대들은 그대들 자신의 힘으로 개혁을 위한 일을 하고자 시작한다. 그러나 그대들은 올바른 방법으로 그것을 하지 않는다. 그대는 하나님의 영으로 부드러워지고 차분해진 마음을 가지고 잘못한 자들을 위한 일을 해야 한다. 주님께서 그대를 대리자로 삼아 일하시게 해야 한다. 그대들의 무거운 짐을 예수님께 옮겨 드려라. 그대들은 사단이 어떤 영혼들을 지배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는 그런 경우를 주님께서 맡아 주셔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그대들은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그대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얽힌 일과 복잡한 문제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한다. 그분의 말씀에 나타난 지시를 따르고 문제의 결과는 그분의 지혜에 맡겨라. 그대들의 형제를 구원하기 위하여 그대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근심을 그치고, 다른 급한 의무들을 조용히 수행하라. 348 그것은 더 이상 그대들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문제이다.

참을성 없는 마음으로 어려움의 매듭을 끊어 버리고 문제를 절망적으로 만들지 말라. 하나님께서 그대들을 위하여 얽힌 실을 풀어 주시게 하라. 그분은 우리의 생애의 어려운 문제를 취급하시기에 충분할 정도로 현명하시다. 그분은 기술과 기지를 갖고 계신다. 우리가 그분의 계획들을 반드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계획들을 훼손시키거나 파괴하는 일 없이 그것들이 성취되기를 꾸준히 기다려야 한다. 그분께서는 가장 적당하다고 보시는 때에 그것들을 계시해 주실 것이다. 연합을 구하고, 모든 일에 있어서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일치를 계발시켜라. 그분은 연합과 힘의 근원이시다. 그러나 그대들은 그대들의 마음이 사랑으로 하나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의 연합을 구하지 않았다.

그대들에게는 교회 안에서와 교회 밖에서 해야 할 사업이 있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요 15:8). 우리가 맺는 열매는 세상 앞에 나무의 성격을 나타내는 유일한 시금석이다. 이것은 우리가 제자가 되는 증거이다. 만일 우리의 사업이 산 포도나무의 가지로서 귀중한 열매의 송이를 풍성하게 맺는 그런 것이 되면, 우리는 세상 앞에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의 표를 달게 된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읽혀지는 산 편지들이다.

이제 나는 그대들이 과거를 속하고 열매맺는 산 가지가 되기 위하여 해야 할 사업을 하는 일에 실패할까 두렵다. 만일 그대들이 하나님께서 하기를 바라시는 일을 할 것 같으면 그분의 축복이 교회에 임할 것이다. 그대들은 철저한 사업을 하고 하나님의 영의 마음에 일치되기에 충분할 만큼 겸손하지 못하였다. 겸비와 통회와 회개가 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독선과 자아 만족과 자아 옹호가 존재해 왔다. 그대는 모든 거치는 돌을 제거해 버리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히 12:13)게 해야 한다. 잘못들을 고치기에 너무 늦지 않았다. 그러나 그대들은 완전하므로 의사가 필요 없다고 느껴서는 안 된다. 그대들은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상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나오면 그분께서는 그대들을 도와주시고 축복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들은 용기와 힘을 가지고 주님의 사업에 착수하게 될 것이다. 그대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최고의 증거는 그대들이 맺는 열매이다. 만일 그대들이 진정으로 그분과 연합을 이루지 못하면 그대들의 빛과 특권은 그대들을 정죄하고 파멸시킬 것이다.

세월을 아낌

349 사랑하는 J 형제에게: 나는 마음이 괴로워서 그대에게 편지를 쓰기 위하여 12시에 일어났다. 나는 그대 때문에 번민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세상 역사의 끝이 가까웠고 그대의 생애의 기록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받게 될 그 큰 날에 즐겨 기쁜 마음으로 대면 할 그러한 것이 되어있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대는 다른 사람들도 잘못을 저질러 왔다고 느낄지 모른다. 나 역시 그대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 같은 정신이 교회 안에 나타나 있지 않음을 안다. 그러나 이것이 그대를 심판 때에 서게 할 것인가? 두 사람의 잘못이 한 사람을 옳게 해 줄 것인가? 비록 교회 안에 있는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잘못해 왔을지라도 이것이 그대의 죄를 도말하거나 변호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길을 취할지라도. 그대의 일은 그대의 마음을 바르게 붙들어 주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당신의 것으로 주장하시는 바 어떤 환경도 그대로 하여금 그 사실을 잊어버리거나 등한히 하도록 이끌어서는 안 된다. 모든 영혼이 그분의 눈에는 귀중하기 때문이다 나의 마음은 검은 불신의 산에 걸려 넘어진 자들에게로 이끌린다. 나는 그들을 도와주기를 원한다. ______에 있는 교회에는 좋은 인재들이 있다. 그러나 교인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변화되지 못하고, 그들의 빛을 세상에 비출 수 있는 위치에 놓이지 않았다. 가장 좋은 동기를 가지고, 가장 큰 유용성을 소유하고 있는 몇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마음 속에 그처럼 풍성하게 거했던 사랑과 자비의 결핍 때문에 교회에 시련이 닥칠 때 완전히 실패한다. 그들은 오류에 사로잡히는 자를 보지만 그를 도와주는 대신에 스스로 멀리 떨어져 선다. 그들은 피할 수 있지만 좋지 못한 암시를 하고 마음 상하기 쉬운 점을 건드리는 경향이 있다. 자아가 나타나서 지배하고, 그들은 아픔을 주고 좋지 못한 감정을 자극한다. 그들의 의도가 아무리 순수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친절과 동정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혹시 실제적 손해는 없다 할지라도 선을 행하고자 하는 그들의 노력은 거의 언제나 실패로 끝나게 된다. 그들은 매우 훌륭한 외과 의사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빈약한 간호사들이다. 그들에게는 사랑에서 나온 기지가 없다. 만일 그들이 이것을 가지고 있었을 것 같으면 그들은 적시 적소에서 바른말을 하고 바른 일을 하는 법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350 다른 사람들은 의를 행하는 일에 더 진지한 욕망을 갖지도, 하나님의 사업에 더 깊은 관심을 갖지도 않을 수 있다. 그들은 더 진실되거나 충성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들의 동정은 더 깊고, 그들의 사랑은 더 따뜻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친절과 기지 때문에 그들은 실수한 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일에 훨씬 더 성공적이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사려 깊고, 피차간에 훨씬 더 자비롭고 더욱 많이 도와주기를 기뻐하신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마음 속에 있게 되면 각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친절하게 돌봐 주게 될 것이다. 사업 거래에 있어서 형제가 형제를 이용하지 말 것이다. 사람이 도움을 받아야 할 궁핍한 처지에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터무니없이 높은 이자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궁핍을 이용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원칙에 지배를 받고 있지 않다는 것을 결론적으로 보여 준다. 그들의 행위는 사기와 부정직으로 하늘의 책에 기록된다. 그리고 이 원칙이 지배하는 곳은 어디에서나 주님의 축복이 마음에 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의 감화보다 큰 원수의 감화를 받고 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하늘 나라를 상속할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어야 한다. 그들은 마음과 생애가 깨끗하고 균형진 품성을 소유해야 한다.

나의 형제여, 나는 그대가 큰 위험에 처해 있음을 안다. 그대의 재물은 땅 위에 있고, 그대의 마음은 그대의 재물에 있다. 그러나 그대가 축적할 수 있는 모든 재물은 비록 수백만에 이를지라도, 그대의 영혼을 위한 속전으로 지불하기에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회개하지 않고 불신의 상태에 머물러 있으므로 그대의 상황으로 하나님의 은혜로운 목적을 좌절시키게 하지 말라. 마음내키지 않는 그분의 손으로 그대의 재산을 소멸시키고 그대에게 고통을 초래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게 하라.

미구에 바로 그런 심판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행동을 오늘날 취하고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그들은 날마다, 주일마다, 해마다 그들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살아간다. 하나님이 주신 기술과 기지를 통하여 축적한 그들의 영향력과 재물은 그들의 은혜로운 시여자(施與者)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고 그들 자신과 그들의 가족에게 사용된다. 351 아무것도 주신 분에게 되돌려지도록 허용되지 않는다. 진실로 그들은 생애와 위탁된 재능들을 그들 자신의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께서 정당하게 요구하시는 부분을 그분께 돌려준다면 그들은 그들의 창조주께서 그들에게 갚아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침내 이 불성실한 청지기들에 대한 그분의 인내는 끝난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이기적이요 세속적인 계획들이 갑자기 종결되게 하시고 그들이 자기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모은 것을 그분께서 흩어 버리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신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분의 능력을 저항하는 데 속절없이 된다.

J 형제여, 나는 소망에 사로잡힌 사람으로서 오늘 그대에게 말한다. 그러나 그대는 그대의 태양이 언젠가 이미 가장 찬란하던 때가 지나가고 이제는 신속히 기울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는가? 밤은 이미 왔다. 그대는 길게 늘어져 있는 그림자를 식별하는가? 그대는 그대 자신을 위하여, 인류를 위하여, 그리고 그대의 주님을 위하여 일할 시간이 조금밖에 없다. 그대가 승리자의 대열에 계수되려면 그대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이루어져야 할 특별한 일이 있다. 그대의 생애의 기록은 어떻게 되어 있는가? 예수님께서는 그대를 위하여 헛되게 간구하고 계시는가? 그분께서는 그대에게서 실망당하셔야 할 것인가? 그대 곁에 서 있던 동료들 중 몇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들이 믿음에 파산을 했는지 영생을 얻지 못하게 되었는지, 혹은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해지고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고후 4:17)의 상속자가 되었는지는 영원만이 드러내 줄 것이다. 그대는 그대를 향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그분 앞에서의 회개와 영혼의 겸비를 그대에게 호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는가?

그대의 주의를 기울여야 할 그대 자신의 개인적 구원 외에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또 있다. 그대의 태양이 서쪽 언덕 뒤로 넘어가려는 늦은 이 시간에 그대는 세상에 대한 사랑이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켜놓은 그대의 자녀들을 위하여 해야 할 큰 사업이 아직 남아 있다. 그대는 또한 구원받지 못한 친척들과 이웃과 친구들이 있다. 그대의 모본이 그대가 받은 빛과 일치되어 왔을 것 같으면, 그대가 마치 세상의 재물을 모으는 것처럼 이 귀중한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부지런했을 것 같으면, 그대의 재산과 영향력, 그대의 지혜와 기지를 이 길 잃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우리 안으로 모아들이는 활동에 사용했을 것 같으면, 이것을 그대의 평생 사업으로 삼아 왔을 것 같으면, 그대는 영혼들의 수확을 얻고 하나님의 날에 풍성한 보상을 보증받게 되었을 것이다. 352 그리하여 그대는 가치 있고 멸하지 않는 재료로 된 참된 기초 위에 건물을 짓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대신에 그대는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시험받게 될 때 태워질 수밖에 없는 나무와 풀이나 짚으로 짓고 있었다.

그대의 생애는 실패로 이어져 왔다. 그대는 죄인들에게 거치는 돌이 되어 왔다. 그들은 그대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만일 이 사람이 공언하는 신앙이 정말로 진실한 것이라면 왜 그는 이처럼 열광적으로 세상을 따르고 있는가? 왜 그는 그 자신의 행동으로 그리스도의 정신을 보여 주지 않는가? “나의 형제여, 영원히 너무 늦기 전에 이 거치는 돌을 죄인들의 길에서 제거해 버리기 위하여 서둘러라. 그대는 그대의 생애와 그대가 끼친 감화를 기쁨으로 바라볼 수 있겠는가? 그대는 이제 그대의 길을 숙고하겠는가? 그대는 이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겠는가? 나는 그대의 마음이 감동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믿지 않으며, 또한 하나님의 인자(仁慈)와 부드러운 자비가 놀랍다는 것을 안다. 그대에게는 은혜의 시기가 조금밖에 없다. 그대는 예수님께서, 아버지 앞에서 그분의 피를 가지고 호소하고 계시는 지금 그것을 이용하겠는가? 그분은 자비롭게도 그대의 생명을 아끼셨다. 그러나 그것은 해마다 열매는 맺히지 않고 잎사귀 밖에 없는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처럼 되어 왔다. 그대는 얼마나 오랫동안 주님을 계속해서 실망시키겠는가? 그대는 그분께서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마 21:19).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눅 13:7)고 말씀하시게 하겠는가? 아, 주님께서 손을 들어 그대를 대적하고 그대가 모아 놓은 재산을 흩어 버리시도록 기다리지 말라. 그대의 모든 재산이 그대의 임종시에 한 순간의 귀중한 보증과 평안도 줄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나는 그대에게 즉시 주님께로 돌아와야 할 필요성을 열렬하게 역설하는 바이다. 나는 그대가 원수를 실망시키도록 탄원한다. 그의 잔인한 세력에서 벗어나라. 그대의 생명이 남아 있는 동안, 하늘에서 완전히 다른 기록, 책들이 펴지고 심판자께서 이 큰 구원을 등한히 해온 자들에게 선고를 하실 때 부끄러워하지 않을 기록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하라.

353 바울은 그의 에베소 형제들에게 때가 악하기 때문에 세월을 아끼라고 권면한다. 이 권면은 그대에게 매우 적절하다. 어떤 의미에 있어서 시간을 되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시간은 한 번 가 버리면 영원히 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는 개혁을 하고, 그대가 의무를 등한히 해온 것과 동일한 정도로 선한 일에 열심하라는 부름을 받고 있다. 그 부름에 일치되게 하라. 그대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기 위하여 그대의 열성을 배가하라.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고, 실천하고. 그분의 율법을 그대의 눈동자처럼 여기라, 그대 자신의 영원한 유익과 그대 주변에 있는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활동하는 일에 매 순간을 최대한 이용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그대는 그대 자신과, 그대의 모본에 의하여 다소간 지배를 받는 자들을 다 같이 구원할 수 있다. 이것들은 당연히 고려되어야 할 동기이다.

깨어라! 깨어라! 그대는 해야 할 사업이 있다. 그리고 그대의 태양은 신속하게 넘어 가고 있다. 그대의 힘은 연약해져 가고 있다. 그러나 그대에게 속해 있는 모든 것, 그대의 능력의 모든 부분들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그분의 사업에 열렬하고 사심 없이 사용되어야 한다. 태양이 아직 하늘에 머물러 있는 동안 일하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요 9:4)기 때문이다.

오라, 나의 형제여! 죄 많고 더럽혀진 그대로 오라. 그대의 죄 짐을 예수님께 내려놓고 믿음으로 그분의 공로를 주장하라. 자비가 아직 머물러 있는 동안, 지금 곧 오라. 고백하면서 오고, 통회하면서 오라. 하나님께서는 충분하게 용서해 주실 것이다. 또 하나의 다른 기회를 등한히 하고자 하지 말라. 죽은 상태에서 일어나서 그리스도께서 그대에게 빛을 주기 위하여 지금 그대에게 호소하는 자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 지금 매 순간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운명과 직접 관련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그대의 교만과 불신이 제공된 자비를 더 한층 크게 거절하는 경지로 이끌어 가지 않게 하라. 그대가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대는 마침내,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렘 8:20)고 탄식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하면서 기다리라. 이 시간부터 주님의 소유가 되어 그대의 의무를 온전히 이행하고, 위대한 속죄를 단순하게 신뢰하고자 결심하라. 이렇게 하라. 그러면 그대는 두려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대의 인생 여정의 나머지 부분은 평화롭고 행복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계속될 그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354 나는 그렇게 하라는 하나님의 영의 강권을 느꼈기 때문에, 또한 그대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썼다. 한 순간도 나에 대하여 악한 감정을 품지 말라. 나는 그대의 영혼을 위한 사랑으로 감동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귀중한 기회들을 많이 갖게 되었고, 그 때마다 우리의 마음은 그분의 값진 축복으로 기뻐하였다. 이런 기회들은 영원히 지나가 버렸는가? 우리는 이생에서 결코 다시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구속받은 자들이 희고 큰 보좌 주변에 모일 때 만나지 않겠는가?

술과 청량 음료의 제조

____교회의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에게: 나는 그대들이 한 교회로써 은혜 안에서, 또한 진리를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나고 있지 않음을 보았다. 하나님께 바치고 그분을 섬기는 데 헌신하는 일이 없다. 또한 그대들을 번영하고 건전한 교회로 만들어 줄 그분의 사업을 이루어 나가기 위한 사심 없는 노력도 없다. 그대들은 피차간에 순종하지 않는다. 그대들 가운데는 그들 자신의 사상을 지탱하고, 그들 자신의 이기적 계획을 수행하기 위하여 애쓰는 자들이 너무 많은데, 교회 안에서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어떤 사람들도 이런 무리에 속해 있다.

K 형제는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고 있지 않다. 그는 바른 관점에서 사물들을 보지 않는다. 그는 사단의 암시에 유의하고 그 자신의 성화되지 못한 판단을 따르고 있다. 그는 그의 그릇된 길을 정당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말을 받아들인다. 그는 스스로 속임을 당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자기 자신이 차단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그가 이런 길로 들어섰을 때 그는 그 위험을 알지 못했고 그 길이 그를 어디로 데려갈지 깨닫지도 못했다. 동일한 길을 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발을 즉시 안전한 길로 돌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는 부절제의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사과즙 기호자의 식욕에 맞추는 것은 하나님을 거스리는 일이 된다. 355 그대들이 빛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 일에 종사해 왔다. 그대들이 빛 가운데 섰을 것 같으면 그대들은 이 일을 하기를 원치도 않았을 것이며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 일에 참여해 온 그대들 각 사람이 그대들의 사업에서 완전한 변화를 이루지 않을 것 같으면 하나님의 정죄 아래 놓이게 될 것이다. 그대들은 진지해 질 필요가 있다. 그대들은 정죄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즉시 일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________에 있는 그대들 중 몇 사람들은 붉은 리본 클럽을 질책하는 일에 놀라운 열성을 나타냈다. 그대가 이 단체의 악을 정죄하기 위한 욕망에서 행동했다는 점에서 그대는 옳았다. 그러나 그들에게 유리하게 말하거나 그들에게 최소한의 선의(善意)를 보이기라도 하면 그대는 마치 그것이 죄악인 것처럼 행동하므로 그 문제를 극단으로 끌고 갔다. 그대는 모든 일에 시종 여일해야 한다. 그대는 하나님의 영의 향기가 없는 “붉은 리본 클럽” 이라는 이름 자체에 대하여 증오심을 품어 왔다. 그러므로 그대의 가혹한 감정은 그대나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대는 우리 백성들이 절제회에 참가하는 문제에 관하여 주어진 증언들을 그들의 영적 유익에 손해되도록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그 증언들을 왜곡시킴으로써 영혼들을 압박하고 짐이 되도록 그것들을 이용해왔다. 그대에게 주어진 빛을 이렇게 취급함으로써 그대는 나의 사업을 악평받게 했다. 이렇게 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대들 중 어떤 사람들은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대는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철 침대틀을 만들고자 한다. 만일 너무 짧으면 잡아 늘여야 하고 너무 길면 끊어 버려야만 한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말라”(마 7:1).

그대가 절제 단체의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반대하는 일에 결정적인 태도를 취한 후에도 그대가 공언하는 거룩한 믿음과 일치되게 양심적으로 행동했을 것 같으면 그대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낼 선한 감화를 여전히 보유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과즙을 제조하는 일에 종사함으로써 그대는 그대의 감화를 매우 크게 훼손시켰다. 설상 가상으로 그대는 진리가 비난받게 하였고, 그대 자신의 영혼이 손상당하게 하였다. 그대는 그대 자신과 절제 사업 사이에 장벽을 구축해 왔다. 그대의 행동은 불신자들이 그대의 원칙에 대하여 의심하게 하였다. 356 그대는 그대의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저는 자들이 그대 때문에 머뭇거리고 넘어져서 멸망에 빠지고 있다.

나는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율법의 빛 가운데서 양심적으로 홉(맥주 원료의 일종인 식물:역자 주)을 재배하거나 시장을 위한 포도주나 사과즙의 제조에 종사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이 모든 것들은 선하게 사용되어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잘못 사용되어 유혹과 저주로 입증될 수도 있다. 사과즙과 포도주는 신선할 때에 통조림을 만들어서 오랫동안 달콤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 만일 발효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용되면 그것들은 이성을 잃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서 팔기 위하여 사과를 즙으로 제조하는 자들은 사용되는 과일의 상태에 주의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에 부패된 사과를 즙으로 짜게 된다. 유독한 썩은 사과를 어떤 다른 방법으로도 사용할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런 사과로 만든 즙을 마시면서 기분이 좋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현미경은 이와 같이 상쾌한 청량 음료가 때로는 사람의 위장에 적합하지 않고 심지어 즙을 낼 당시의 신선한 상태에서도 그러하다는 사실을 나타내 줄 것이다. 만일 그것을 끓이고, 불순물을 제거하는 조치가 취해졌다면 해를 덜 끼치게 될 것이다.

나는 때때로 사람들이, “아, 이것은 맛 좋은 사과즙에 불과하다. 이것은 전혀 해가 없고 건강에 좋을 뿐이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여러 쿼트, 아마도 여러 갈론이 집으로 운반된다. 2, 3 일간은 그것이 달콤하다. 그 다음에는 발효가 시작된다. 짜릿한 그 맛은 그것을 많은 구미에 더욱 받아들임직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하여 달콤한 포도주와 사과즙의 애호가는 그가 좋아하는 청량 음료가 지금껏 독하거나 쓴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를 싫어한다. 사람들은 독주에 의해서 취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포도주와 사과즙에 의해서도 실제로 취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장 심한 주정뱅이는 이른바 독하지 않은 술에 의하여 생겨난다. 감정은 더욱 왜곡되고, 성격의 변화는 더욱 현저해 지며, 더욱 단호하고 완고해 진다. 불과 몇 쿼트의 사과즙이나 포도주가 독주에 대한 구미가 생기게 하고 많은 경우에 있어서 주정꾼으로 낙착된 자들은 이와 같이 하여 음주의 습관에 대한 기초가 놓여졌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포도주나 사과즙을 집에 두는 것이 결코 안전하지 못하다. 그들은 알콜성 음료에 대한 맛을 들였는데, 사단은 끊임없이 그들을 유혹하여 거기에 빠지게 한다. 그들이 그의 유혹에 굴복하게 되면 그들은 중단하지 않는다. 구미는 극성스럽게 탐닉을 요구하고 그들의 파멸에 만족해 한다. 357 두뇌는 마비되고 흐려진다. 이성은 더 이상 지배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정욕의 목에 매달린다. 방탕과 간음과 그의 온갖 형태의 악이 포도주와 사과즙에 대한 구미에 탐닉된 결과로 자행된다. 이런 알콜성 음료를 좋아하고 그것을 사용하는 데 습관된 신앙의 공언자는 결코 은혜 가운데서 자라나지 않는다. 그는 조야하고 정욕적으로 된다. 동물적 정욕이 더욱 고상한 정신의 능력을 지배하게 되고 덕성은 간직되지 않는다.

술을 적당하게 마시는 것은 사람들이 주정뱅이의 생애를 위하여 교육을 받고 있는 학교이다. 너무도 점차적으로 사단은 절제의 요새에서 떠나가게 하고, 너무도 교활하게 무해한 포도주와 사과즙은 그것들의 구미에 영향을 발휘하므로 그것들의 영향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사이에 만취의 대로에 들어서게 한다. 알콜성 음료에 대한 구미는 계발되고, 신경 계통은 혼란해 진다. 사단은 마음이 항상 불안의 열 가운데 있게 한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가련한 희생자는 마침내 모든 장벽이 무너지고 모든 원칙이 희생될 때까지 앞으로 전진한다. 가장 강한 결심은 무너져 버린다. 영원한 유익은 저하된 식욕을 이성의 지배 아래 둘 만큼 강하지 못하다.

어떤 사람들은 사실상 주정뱅이가 아니지만 언제나 사과즙이나 발효된 포도주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들은 제정신이 아니며, 마음의 균형이 잡히지 않았으며 실제적인 정신 착란은 아니지만 그와 방불한 나쁜 상태에 처해 있다. 모든 정신적 고상한 능력은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종, 간 질환, 신경 경련, 두뇌의 혈액 편향(血液偏向)등과 같은 여러가지 종류의 질병에 걸리는 경향은 신 사과즙을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데서 온다. 그것을 사용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고질병을 초래한다. 어떤 사람들은 폐병으로 죽거나 이 원인만으로 생기는 졸중풍의 세력 아래 쓰러진다. 어떤 사람들은 소화 불량으로 고생한다. 모든 생명적 기능은 죽어 있고 의사들은 그들이 간의 질병에 걸려 있다고 말한다. 그럴 때에 그들이 사과즙 통을 깨뜨려 버리고 그것을 결코 대치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학대받은 생명력은 그 활력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사과즙을 마시게 되면 독주를 사용하도록 이끌게 된다. 358 위장은 그 본능적 활력을 잃어버린다. 그리하여 그것을 활동하게 하려면 무엇인가 더 강한 것을 필요로 하게 된다. 한번은 남편과 함께 여행을 하는 중에 기차를 기다리면서 몇 시간을 보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정거장에 있는 동안 붉은 얼굴을 한 거만한 농부 한 사람이 정거장에 붙은 식당 안으로 들어와서 크고 거친 음성으로, “최고급 브랜디가 있느냐”고 물었다. 있다는 대답을 듣자 그는 반 잔을 주문했다. “고추 가루가 있느냐”고 묻자 “있다”는 대답이었다. “됐습니다. 큰 숟갈로 두 번 더 넣어주십시오.” 그는 다시 두 숟갈의 알콜을 넣고, 1회 분으로 충분할 만큼의 검은 고추 가루를 달라는 주문으로 결론을 지었다. 그의 주문대로 주선해 주고 있던 사람이, “그렇게 함께 섞어서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하면 효력이 나타날 것으로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그는 가득찬 잔을 입술에 갖다 대고 이 불같은 혼합물을 완전히 마셔 버렸다. 그 사람은 부드러운 위장의 표피가 죽어 버릴 때까지 자극제를 사용해 왔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 글을 읽으면서 위험의 경고를 조소할 것이다. 그들은 “내가 사용하는 소량의 포도주나 사과즙이 분명이 나를 해칠 수는 없다”고 말할 것이다. 사단은 그런 사람들을 자기의 노획물로 표시해 놓았다. 그는 그들을 한 발자국씩 이끌어 간다. 그러나 그들은 습관과 구미의 사슬이 깨뜨릴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질 때까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우리는 독주에 대한 구미가 사람들을 지배하는 힘을 알고 있다. 우리는 전문성과 큰 책임을 가진 참으로 많은 사람들, 고상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 탁월한 재능과 높은 학식을 갖춘 사람들, 세련된 정서와 강한 담력과 훌륭한 이성의 힘을 가진 사람들이 식욕의 방종 때문에 모든 것을 희생하고, 마침내 짐승의 수준까지 떨어진 것을 안다. 그리고 참으로 많은 경우에 있어서, 그들의 내리막 길은 포도주나 사과즙을 사용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지성적인 남녀들이 포도주나 사과즙이 발효되지 않았을 때는 취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것을 판매해도 해롭지 않다는 변명을 할 때 나는 마음으로 슬픔을 느낀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하여 그들이 바라보지 않는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을 안다. 이기심이 이 알콜성 음료를 사용하므로 초래될 수 있는 무서운 악을 보지 못하도록 그들의 눈을 가리워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우리의 형제들이 홉의 용도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주로 홉을 재배하는 일에 종사하면서도 모든 악의 모양들을 피할 수 있을 것인지 알지 못한다. 359 더 강한 알콜성 음료에 대한 구미를 자극하고 길러 주는 이 청량 음료를 제조하는 일을 도와주는 자들은 그들의 행위대로 보응을 받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자들이다. 그들은 그들이 범한 죄와 그들이 다른 사람들의 길에 놓은 유혹을 통하여 그 사람들을 범죄하도록 영향을 끼친 것들에 대하여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시대를 위한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고, 개혁자들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믿음에 일치되게 행동해야 한다. 이름이 교회 녹명책에 기록되어 있으면서 판매하기 위한 포도주와 사과즙을 제조한다면 그를 위하여 철저하게 힘써야 하고, 만일 그가 그 행동을 계속할 것 같으면 그는 교회의 견책을 받아야 한다. 이런 일을 하는 데서 떠날 수 없는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위치와 이름에 합당하지 않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되어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영향을 모든 악한 행동을 반대하는 위치에 놓아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고 우리의 영향으로 주정뱅이가 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그날에 우리는 어떻게 느끼게 될 것인가? 우리는 실제적인 속죄일에 살고 있다. 우리의 상황은 미구에 하나님 앞에 제시되어야 한다. 만일 우리의 행위가 이성을 왜곡시키고 덕성과 순결, 하나님의 사랑을 파멸시키는 알콜성 음료를 장려해 왔다면 우리는 하늘의 법정에서 어떻게 서겠는가?

어떤 율법사가 그리스도께 물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눅 10:25-28). 영생이 상급으로 걸려있는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그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하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기록된 말씀을 지시해 주신다. “네가 어떻게 읽느냐?” 거기에 방법이 밝혀져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우리의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할 것 같으면 우리는 그에게 올무가 될 것은 어떤 것도 거래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과 인류를 사랑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전반적 의무이다. 360 사랑의 율법은 심령의 판에 기록되고, 하나님의 영은 그 안에 거하시며, 그의 품성은 선한 행실을 나타낸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빈궁으로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고자 가난하게 되셨다. 우리가 그분을 위하여 어떤 희생을 즐겨하고자 하는가?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마음 속에 간직했는가?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가? 만일 우리가 영혼들을 위하여 이 사랑을 가지고 있을 것 같으면, 어떤 길에서나 우리의 말과 우리의 행동과 우리의 감화로 도덕적 능력이 적은 사람들 앞에 우리가 유혹을 놓고 있는 여부를 주의 깊이 생각해 보게 할 것이다. 우리는 바리새인들이 끊임없이 해온 것처럼 약한 자들과 고통받는 자들을 비난하지 않고, 우리는 저는 자들이 길에서 이탈하지 않게 하고자 우리 형제의 길에서 모든 거치는 돌을 제거해버리고자 노력할 것이다.

우리는 한 백성으로서 개혁자요, 세상에서 빛을 가진 자요, 하나님을 위한 성실한 파수꾼이라고 공언하며, 사단이 식욕을 왜곡시킬 유혹을 가지고 들어올 모든 통로를 경계하고 있다. 우리의 모본과 감화는 개혁의 편에서 하나의 능력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양심을 무디게 하고 유혹을 조장할 어떤 습관도 끊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받은 한 사람의 마음에 사단이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문을 결코 열어서는 안 된다. 만일 모든 사람이 이른바 무해한 포도주와 사과즙을 적당히 사용함으로 마련된 작은 통로들을 경계하는 일에 깨어 있고 성실할 것 같으면, 음주로 달려가는 대로는 막혀 버릴 것이다. 모든 지역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확고한 목적이며, 만지지 않고, 맛보지 않고, 취급하지 않는 의지이다. 그리하면 절제의 개혁은 강하고, 영구적이고, 철저해 질 것이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은 사람들에게 양심을 어기게 할 것이다. 아마도 바로 그 돈을 주님의 창고로 가져갈 수도 있겠지만 그분께서는 그런 헌금을 받지 않으실 것이다. 그것은 그분을 모욕하는 일이다. 그것은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기를 요구하는 그분의 율법을 범함으로써 얻어졌다. 범법자가 만일 포도주나 사과즙을 만들지 않았을 것 같으면 누군가가 그렇게 했을 것이므로 그의 이웃은 꼭 마찬가지로 주정뱅이가 되었을 것이라는 변명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이 이웃 사람의 입술에 술병을 대 줄 것이라는 이유로 감히 그리스도인들이 영혼들의 피로 그들의 옷을 더럽히고 실수하는 자들의 길에 올무를 놓는 자들에게 선고된 저주를 초래할 것인가? 361 예수님께서는 그분을 따르는 자들이 당신의 깃발 아래 서서 마귀의 사업을 멸절시키는 일을 도우라고 호소하신다.

마지막 때의 사회적 형편을 잘 아시는 세상의 구속주께서는 이 시대를 정죄하는 죄가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가 나타나는 때도 그러할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마 24:38, 39). 바로 이와 같은 상태가 마지막 때에 존재할 것이다. 이 경고를 믿는 자들은 그들을 정죄 아래 놓이게 할 저주가 초래되지 않도록 최대한으로 조심해야 할 것이다.

형제들이여, 이 문제를 성경의 빛에 비추어서 보도록 하자. 그리고 모든 일에 절제의 편에서 결정적인 감화를 발휘하도록 하자. 사과와 포도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것들은 건강 식품으로 훌륭하게 사용될 수도 있고, 잘못 사용됨으로 남용될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포도와 사과의 수확물이 말라지게 하신다. 사람들의 죄악적 습관 때문이다. 우리는 개혁자들로서 세상에 서 있다. 불신자들과 신앙이 없는 자들에게 우리의 믿음을 비난할 기회를 주지 말자. 그리스도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세상의 빛이라”(마 5:13, 14)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마음과 양심이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의 감화 아래 놓여 있다는 것과, 우리의 생애가 순결한 하나님의 율법의 원칙에 의하여 지배당하되, 비록 이 원칙이 세속적 유익을 희생하도록 요구할지라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도록 하자.

불신자들과의 결혼

사랑하는 L 자매에게: 나는 그대가 종교적 신앙에 있어서 그대와 일치하지 않는 자와 결혼하고자 계획하고 있는 것을 알고 그대가 이 중요한 문제를 신중하게 헤아려 보지 않는 데 대하여 심려한다. 그대의 장래의 생애 전부에 영향을 끼치게 될 조치를 취하기 전에 나는 그 문제를 주의 깊고 경건하게 숙고해 보도록 권유한다. 362 이 새로운 관계는 진정한 행복의 근원임이 입증될 것인가? 그것은 그리스도인 생애에 있어서 그대에게 도움을 줄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가? 그대의 모본은 다른 사람들이 안전하게 따라올 수 있는 것인가?

결혼하기 전에, 모든 여자들은 자신의 운명을 맡기고자 하는 남자가 그렇게 하기에 합당한지 물어 볼 것이다. 그의 과거의 경력은 어떠하였는가? 그의 생애는 순결한가? 그가 나타내는 사랑은 고상하고 숭고한 성격의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감정적으로 좋아하는 것인가? 그는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성격상 특성들을 가지고 있는가? 그녀는 그의 애정에서 진정한 평안과 기쁨을 발견할 수 있는가? 그녀는 자기의 개성을 보존하도록 허락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의 판단과 양심이 남편의 지배에 굴복되어야 할 것인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 여자는 자신의 것이 아니고, 값으로 산 바 되었다. 그 여자는 구주의 요구를 최상의 것으로 존중할 것인가? 육체와 심령, 사상과 목적이 순결하고 거룩하게 보존될 것인가? 이런 질문들은 결혼 관계에 들어가는 모든 여자의 복리와 중요한 관련이 있다.

신앙은 가정에 필요하다. 오직 이것만이 그처럼 흔히 결혼 생활을 쓰라리게 하는 비참한 잘못을 방지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지배하실 수 있는 곳에만 깊고, 진실한 이타적 사랑이 존재한다. 그 때에 심령은 결합되고, 두 생명이 조화를 이루어 섞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가정에 손님이 되고, 그들의 거룩한 경야(經夜)는 신혼의 방을 거룩하게 해 줄 것이다. 저속한 관능은 추방될 것이다. 하나님을 향하여 사상은 향상되고, 마음의 헌신이 그분께로 상달될 것이다.

마음이 인간적 사랑을 갈망하지만 이 사랑은 예수님의 사랑을 대신해줄 만큼 충분히 강하고, 충분히 순결하고, 충분히 귀중하지 않다. 아내는 그의 구주 안에서만 생애의 걱정과 책임과 슬픔을 직면할 수 있는 지혜와 힘과 은혜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그분을 자신의 힘과 지도자로 삼아야 한다. 여자는 어떤 세상 친구에게 자기 자신을 바치기 전에 그리스도께 자신을 바쳐야 한다. 그리고 이것과 상치되는 관계는 맺지 않아야 한다. 진정한 행복을 발견할 자들은 그들이 소유한 모든 것과 이들이 하는 모든 일에 하늘의 축복을 가져야 한다. 363 그처럼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가정이 불행으로 충만해지는 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기 때문이다. 나의 자매여. 만일 그대가 그늘이 결코 걷히지 않는 가정을 갖기 원하지 않는 한 그대 자신을 하나님의 원수가 된 자와 연합시키지 말라.

심판 때에 이 말씀들을 들을 것으로 기대하는 자로서 나는 그대가 취하고자 생각하는 단계를 깊이 생각하도록 호소하는 바이다. 이렇게 자문하라. “믿지 않는 남편이 나의 생각을 예수님에게서 떠나가게 하지 않을 것인가? 그는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는 자이다. 그는 자기가 즐기는 것을 나에게도 즐기게 하지 않을 것인가?” 영생의 길은 가파르고 거친 길이다. 그대가 가는 길을 방해하는 부가적인 짐을 지지 말라. 그대는 영적 힘을 너무 적게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대는 방해 대신에 도움이 필요하다.

주님께서는 고대 이스라엘에게 그들 주위에 있는 우상숭배의 민족들과 서로 결혼하지 않도록 명령하셨다.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하고 그 이유가 제시되어 있다. 그런 결합의 결과를 미리 보시는 무한히 지혜로우신 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그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시나니 여호와는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당장에 그에게 보응하시느니라”(신 7:3, 4, 6, 9, 10).

신약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이 없는 자들과 결혼하는 것을 똑같이 금지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보내는 첫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고전 7:39). 364 다시 그의 둘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기록한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 6:14-18).

나의 자매여, 그대는 이 분명하고 적극적인 지시를 감히 무시하겠는가?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왕국의 백성이요, 그분의 피로 사신바 된 자로서 그대는 어찌 하나님의 요구를 인정하지 않는 자, 그분의 영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와 그대 자신을 연합시킬 수 있겠는가? 내가 인용한 그 명령은 사람의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다. 비록 그대가 택한 동료가 모든 다른 면에서는 가치가 있을지라도(실상은 그렇지 않지만), 그는 이 시대를 위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불신자이다. 그대는 그대 자신을 그와 연합시키지 못하도록 하늘에서 금지당하고 있다. 그대는 그대의 영혼을 위태롭게 하지 않고서는 이 거룩한 명령을 무시할 수 없다.

나는 너무 늦기 전에 그대의 위험에 관하여 그대에게 경고하고자 한다. 그대는 부드럽고 유쾌한 말을 듣고 모든 것이 잘 될 것으로 믿게 된다. 그러나 그대는 이 듣기 좋은 말을 하게 하는 동기는 읽지 않는다. 그대는 마음 속에 숨은 악의 깊이를 볼 수 없다. 그대는 배후의 장면을 볼 수 없고 사단이 그대의 영혼을 위하여 놓고 있는 올무를 분별할 수 없다. 그는 쉽게 접근하여 그대에게 유혹의 화살들을 겨눌 수 있는 그런 길을 그대에게 따르게 할 것이다. 그가 유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작은 것도 제공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그분의 종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계시는 동안, 사단은 불순종의 자녀를 통하여 활동한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은 일치하지 않는다. 그 둘은 조화를 이룰 수 없다. 불신자와 연합하려면 그대 자신을 사단의 땅에 두어야 한다. 365 그대는 하나님의 영을 근심시키고 그분의 보호를 상실한다. 그대는 영생을 위한 싸움을 싸우는데 있어서 그대에게 이처럼 불리한 일을 행할 여유가 있는가?

그대는 “그러나 내가 이미 약속했는데 지금 그것을 취소할까요”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만일 그대가 성경과 반대되는 약속을 했다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지체 없이 그것을 취소하고, 그처럼 분별없이 약속을 하도록 열중해 버린 데 대하여 하나님 앞에 겸손히 회개하라. 그 약속을 지킴으로 그대의 창조주를 모독하기보다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그런 약속을 철회해 버리는 것이 훨씬 더 낫다.

그대에게는 얻어야 할 하늘이 있고, 닫아 버려야 할, 멸망으로 이끄는 열린 길이 있음을 기억하라.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대로 하실 작정이시다. 우리의 첫 조상들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못하도록 금지했을 때, 그들의 불순종은 온 세상에 저주의 수문을 열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반대로 걸어갈 것 같으면 그분께서도 우리와 반대되게 가실 것이다. 우리의 유일한 안전의 길은 어떤 희생이 있을지라도 그분의 모든 요구에 순종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무한한 사랑과 지혜 안에 기초를 두고 있다.

오늘날 존재하는 극도로 세속적인 정신, 자아 만족의 요구 이상으로 더 큰 요구를 인정하고자 하지 않는 경향은 마지막 때의 징조들 중 하나가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눅 17:26, 27). 이 시대의 사람들은 노아의 때에 나타난 것과 똑같이 하나님의 요구를 무분별하게 무시하고 시집가며 장가가고 있다. 그리스도교계에서도 그리스도인들과 불신자들과의 결혼에 관한 하나님의 교훈에 무섭고도 놀라운 무관심이 존재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무한한 지혜를 가지신 분의 권면을 받아들이기보다는 그들 스스로의 마음의 경향을 따르는 길을 택한다. 이 세상과 다음 세상을 위하여 양편의 행복과 복리에 크게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 이성과 판단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맹목적 충동과 완고한 결정이 지배하도록 허용된다. 366 다른 경우에는 분별력이 있고 양심적인 남녀들이 권면에 대하여 귀를 막는다. 그들은 친구들과 친척들과 하나님의 종들의 호소와 권유에 대하여 귀머거리가 된다. 주의와 경고의 표현은 당치 않은 간섭으로 간주되고, 충고할 만큼 성실한 친구들은 원수로 간주된다. 이 모든 것은 사단이 바라는 그대로이다. 그는 영혼의 주변에 그의 마력을 퍼뜨려서 거기에 매혹되고 혹하게 한다. 이성은 자제의 고삐를 정욕의 목에 걸어 주고 부정한 정욕은 패권을 쥐게 된다. 그리하여 희생자는 너무 늦게서야 불행과 속박의 생애에 대하여 깨닫게 된다. 이것은 상상력이 그린 하나의 그림이 아니고 현실적 사실이다. 하나님의 인정은 그분께서 분명히 금지하신 연합에는 주어지지 않는다. 여러 해 동안 나는 불행한 결혼을 한 여러 사람들에게서 편지들을 받아오는데, 내 앞에 제시된 혐오할 만한 역사는 마음을 아프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렇게 불행한 자들에게 어떤 조언을 할 수 있을 것인지, 그들의 무거운 짐을 어떻게 덜어 줄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슬픈 경험은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의 경고가 되어야 한다.

지구 역사의 장면이 바야흐로 끝나려 하고 우리가 결코 겪은 적이 없는 환난의 때에 들어가려는 이 시대에 있어서 결혼하는 일이 적으면 적을수록 남녀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더 낫다. 더욱이 사단이 멸망하는 자들 사이에서 온갖 불의의 속임으로 활동하고 있는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불신자들과 연합하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분을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분의 현명한 명령에 순종할 것이다. 우리의 감정과 충동과 애정은 하늘을 향하여 흘러야지, 땅을 향하여, 관능적인 생각과 방종의 저속하고 저열한 통로를 통하여 흘러서는 안 된다. 지금은 모든 사람이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의 면전에서처럼 서야 할 때이다.

나의 사랑하는 자매여, 그대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대가 바야흐로 취하고자 하는 단계가 그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물어 봐야 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그들의 주님과 협력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빌 2:15) 나타나야 한다고 바울은 말한다. 367 우리는 의의 태양으로부터 밝은 빛을 받아서 우리의 착한 행실로써 결코 단속적인 것이 아니고 결코 희미해지지도 않는 분명하고 확실한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비추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하늘로 인도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감화를 끼치고 있지 않는 한, 우리가 그들에게 해를 끼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나의 증인이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애의 모든 행동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행동이 구속주의 나라의 유익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물어 봐야 한다. 만일 그대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제자일 것 같으면 그대는 그대의 육신적 감정에 아무리 괴로운 일일지라도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는 길을 택하게 될 것이다. 바울은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고 말했다. L 자매여, 그대는 옛적에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그분을 배울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의지와 그대의 계획과 목적을 완전히 굴복시키도록 그대에게 요구하신다. 예수님은 그대의 지도자이다.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을 신뢰해야 한다. 그리고 그대가 하나님을 위한 헌신의 생애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은 조금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그대의 대화는, 저리로써 오실 구주를 기다리고 있는 하늘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그대의 경건은 그대의 영향을 받는 범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느낄 수 있게 하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생애의 모든 행동에 있어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도록 그대에게 요구하신다. 그대는 이렇게 하고 있는가? 그대는 그대의 거룩한 믿음이 주님의 원수들과의 연합을 통하여 줄어들거나 타협하지 않아야 할 가장 엄숙한 책임을 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했다는 이유로 그분의 말씀의 명령을 무시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는다면 그대의 모본이 또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다른 사람들도 그대가 하는 것처럼 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악은 확대될 것이다. 그대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공언하면서도 그분의 요구에서 떠나가게 되면 그대를 지도자로 바라보는 자들에게 무한한 해를 끼치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영혼들의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의 끊임없는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대를 흑암에서 불러내신 분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하여 그대는 어떤 일을 했는가?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엡 5:14). 368 그대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영혼의 정력을 마비시키는 이 치명적인 심취 상태를 떨쳐 버려라.

성실에 대한 가장 강한 동기, 가장 고상한 동기. 가장 영광스러운 상급이 우리 앞에 제시되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자, 곧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이다. 그들은 그분의 보배, 그분의 특별한 보화들이다. 확고 부동한 마음을 유지할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그분께서는,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계 3:4)고 선언하신다. 영원한 행복의 문에 들어설 자들은 그들이 한 어떤 희생도 너무 큰 것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대를 도와주셔서 그대가 시험을 견디고 그대의 성실을 유지하기를 바란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굳게 붙들라. 그대의 구속주를 실망시키지 말라.

1885년 2월 13일 캘리포니아 주 세인트 헬레나에서.

도시 선교의 지원

사랑하는 M 형제에게: 며칠 전에 나는 그대가 N 목사에게 보낸 편지를 받았다. 그대는 그 편지에서 그대의 합회의 지원에 _________선교 지역을 맡겨 버리는 것에 대하여 매우 심각한 반대 의견을 내세우고, 모든 지역에 있는 다른 합회들이 이 선교 지역에 대하여 똑같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합회들이 그들의 구역 안에 있는 도시들에서 지원해야 할 중요한 선교 지역들을 지금 가지고 있지 않다하더라도, 이런 선교지역을 확보할 장소들이 없는가? 만일 그대의 합회가 그 감독 아래________선교 지역을 맡아서 대총회의 지도 아래 그 사업을 수행하라는 요구를 받는다면 책임 있는 사람들은, 이것이 그들의 형제들이 그들을 신임하고 있는 증거로 생각하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예, 우리가 그 신성한 요구를 수락합니다. 우리는 그 선교 사업이 성공을 거두고 우리 형제들의 신임이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하고자 힘을 다해서 일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필요하다면 극기를 실천하고 엄격한 절약도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의무를 즐겁게 완수하도록 그대를 도와주실 것이며, 그것이 그대의 주(州)에 있는 사업에 짐이나 장애가 되는 대신에 그대에게 축복이 되게 하실 것이다.

369 그 큰 도시는 흑암과 오류 속에 묻혀 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그것을 버려 두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있는 이와 같은 나태를 용서해 주실까? 현대 진리의 기별을 듣지 못하고 죽은 남녀들, 빛이 그들에게 비췄을 것 같으면 그 빛을 받아들였을 뻔한 남녀들에게 우리는 어떤 변명을 할 것인가? ________의 사업이 그처럼 오래 지연되어 온 데 대하여 나의 심령은 착잡하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사업은 여러 해 전에 이루어질 수 있었으며, 그 당시에 이루어졌다면 훨씬 적은 비용과 시간과 노력으로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다손치더라도 그 사업이 지금 이루어지지 않고 버려져 있어서는 안 된다. 작은 출발이 매우 검약한 계획 하에 이루어졌는데, 제공되어 온 시설을 고려해 볼 때 기대했던 이상으로 훨씬 더 많은 것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더 좋은 시설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람들이 진리를 들을 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 한다. 이 선교 지역에는 안일하고 호화로운 방법으로써가 아니고 평범하고 안락한 방법으로 일꾼들을 지원해 줄 수단이 있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도구들이므로 그들을 낙심케 하는 말이나 행동은 전혀 없어야 한다. 오히려 그들의 손은 힘을 얻어야 하고 그들의 마음은 용기를 얻어야 한다.

그대의 합회에는 이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에 충분한 재물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 사업을 지원하는 데 무엇인가 희생이 따른다는 이유로 흑암의 왕이 우리의 큰 도시들을 이의 없이 소유하도록 버려 두어야 할 것인가? 비록 그것이 목사들의 감독자나 합회장에게 과분한 일일지라도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자들은 완전히 그 사업에 착수해야 한다. 이와 같은 사업에서 “나를 면제시켜 달라”고 말하는 자들은 영생에 대해서도 면제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의무를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은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힘을 다하고 더 이상의 힘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을 바라본다. 그분께서는 철저한 남녀들의 노력을 통하여 일하시고 그들이 할 수 없는 일도 하실 것이다.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사용할 때 새 빛과 능력이 그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이들이 무엇인가 성취된 것을 보게 되면 새 열심과 열성이 교회를 고무시킬 것이다.

370 우리는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을 깊이 생각할 때 심령 속으로 기뻐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이루어진 것이 적음을 생각할 때 우리의 창조주 앞에 얼굴이 붉어진다. 목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책임을 등한히 했다. 그들은 편협하고 믿음이 없었으며, 용서할 수 없는 소심과 나태와 탐욕을 조장했다. 그들은 사업의 중요함과 크기를 깨닫지 못하였다. 눈에 기름 부음을 받아서 하늘의 계획을 보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경건의 표준은 높여져야 하고, 진리를 위하여 희생하고자 하는 참된 선교사들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기적이요 안일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교회에 있을 자리가 없다. 그러나 우리의 대도시들, 큰 통행로에 진리의 깃발을 세우기 위하여 노력하게 될 남녀들은 요망된다.

세상은 경고를 받아야 하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대로 겸손하게 일을 해야 한다. 모든 주(州)가 일에 착수해야 한다. 편협하고 헌신적이 아닌 사상을 가진 자들이 그들의 합회가 어떤 일을 할 것이니 하지 않을 것이니 하는 말을 할 어떤 권리가 있는가? _______의 선교 지역은 그대의 주에 완전히 맡겨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의 합회가 일할 마음이 있으면 그런 선교 지역들을 지원하되 그것을 짐으로 여기지도 않을 것이다. 오라, 형제들이여! 일어나 활동하자. 그대의 불신과 용기의 부족으로 잃어버린 시간은 영원히 잃어버린 바 된다. 목사들은 마치 무엇인가 이루어져야 할 것처럼 행동하도록 하라. 그리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주님을 돕기 위하여 나아 올 것이다. 이런 길을 통하여 교회는 더 큰 활동을 위하여 훈련될 것이다. 그들의 선행이 결코 중단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M 목사여, 그대는 _________합회의 회장으로서 그대의 총괄적인 관리를 통하여 그대에게 맡겨진 직무에 합당치 않음을 나타냈다. 그대는 그대가 보수적이요 그대의 사상이 편협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대는, 그대가 진정으로 일할 정신을 가졌다면 이루었을 사업의 절반도 이루지 못했다. 그대는 지금보다 훨씬 더 능력 있고 더 노련하게 될 수 있었다. 그대는 이 거룩하고 중요한 선교 사업, 그대로 하여금 우리 백성들의 전반적 신임을 얻게 해 주었을 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준비를 더욱 잘 갖출수도 있었을 것이다. 371 그러나 그대의 주(州)에서 목회 사업을 하는 다른 형제들처럼, 그대는 하나님의 섭리가 열릴 때 전진하지 못했다. 그대는 성령이 그대의 마음을 크게 감동시켜 주시므로 하나님께서 그대를 통하여 그분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실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지 않았다. 만일 이런 위기에서 그대가 그대의 주에 있는 교회들 안에 의심과 불신을 강하게 해주는 어떤 일, 백성들이 이 사업에 진심으로 종사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어떤 일을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대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주에 있는 형제들이, 마치 그리스도께서 그들 주위에 그분의 팔을 뻗고 계신 것처럼 _________의 도시 주변에 그들의 팔을 뻗을 책임에서 면제되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를 그대에게 주셨는가? 만일 그대가 빛 가운데 서 있었을 것 같으면 그대는 믿음으로 이 선교 사업을 고취시켰을 것이다.

그대는 다른 사람들을 생명수의 샘으로 인도할 수 있기 전에 은혜와 구원의 깊은 시내에서 마실 필요가 있다. 한 합회의 회장이라는 직분을 가지고, 또한 이 직분이 주는 경험과 영향력을 가지고 백성들의 용기를 좌절시키는 대신에 그대는 그들에게 새로운 활동을 하고, 더 무거운 책임을 지도록 격려해야 한다.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의무들이 지워져 있다. 등한히 하기 쉬운 힘든 활동들이 이루어져야 한다. 목자들이 그들의 의무를 등한히 하면 주님께서는 가련한 양들을 긍휼히 여기신다.

나의 형제여, 그대의 사업은 그대의 책임이 신성하고 중하다는 것을 그대가 깨달았다는 것을 보여 주지 않는다. 나는 그대가 이미 이룬 일보다 훨씬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고, 하나님께서 더 많은 일과 더 나은 일을 그대의 손으로 하기를 요구하심을 보았다. 그분은 성실과 정직을 요구하신다. 영혼들을 구원하는 사업은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지금껏 위탁된 가장 높고 고상한 사업이다. 그대는 그대와 이 거룩한 사업 사이에 어떤 것이 개입되도록 허용함으로 그대의 정신이 몰두되고 그대의 판단력이 혼란해지게 해서는 안 된다. 그대가 차지하고 있는 그런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자는 영원한 이익을 첫째로 삼고 일시적인 것은 두번째로 중요한 것으로 삼아야 한다. 그대는 그리스도를 위한 대사이다. 그대는 그대의 책임 아래 놓인 자들에게, 보다 높은 영적 목표를 구하고 더욱 고상하고 순결한 생애를 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멸망에서 영혼들을 구원하고 진리와 의로 교회를 세우는 활동을 할 때, 그대는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교통을 통하여 소유할 특권을 갖게 되는 기지와 지혜와 능력을 사용해야 한다. 372 하나님께서는 그대와, 그분의 사업에 종사하는 모든 다른 목사에게 이것을 요구하신다. 그대는 마치 모든 사람을 부족한 것이 전혀 없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워야 할 엄숙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처럼 행동함으로써 십자가에 달리신 그대의 구속주에게 충성을 보여야 한다.

그대의 경우에 있어서, 거룩한 생애와 열렬한 기도와 주의 깊고 수고로운 모든 의무 수행을 했더라면 훨씬 더 많은 일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대는 성실한 경고와 책망과 사랑에 넘친 호소를 했더라면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필요한 것은 두뇌의 힘만이 아니고 가슴의 힘이다. 예수님 안에 있는 그대로 제시된 진리는 효력을 나타낼 것이다. 그대는 열렬하고 적극적인 가정 종교가 부족하다. 이기적인 관심이 그대의 정신을 흐려 버렸고 그대의 판단을 왜곡시켰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요구는 실현되지 않았다. 그대의 영혼은 세속적인 염려와 일에서 벗어나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

모든 사람의 영원한 운명은 미구에 결정된다. 일리노이, 위스콘신, 아이오와, 그 밖의 합회들로부터 수많은 목사들이 마지막 경고의 기별을 선포할 불타는 열성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 이와 같은 때에 우리 합회들의 회장들이 평소의 직무에 만족하고 무거운 짐을 지지 않겠다고 거절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음성과 글로써 일할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용기를 꺾어 버리는 영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나태와 불신을 고무시키는 어떤 행동도 가장 높은 등급에 속하는 죄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업에 부지런하도록,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모는 노력을 기울이도록 백성들을 격려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너무 많은 희생을 하고 있다거나 사리에 합당한 이상으로 요구받고 있다는 인상을 조금이라도 그들의 마음에 결코 남겨서는 안 된다. 하늘의 전쟁에서는 무엇인가 과감히 행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는 우리가 일할 때이며, 어려움과 위험에 부딪쳐야 할 때이다. 하나님의 섭리는, 애굽으로 되돌아가지 말고 “앞으로 나가라”고 말한다.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증언을 만들어 내는 대신에 목사들은 잠자는 자들을 일으키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373 M 목사여, 나는 그대의 편지에서 불신의 맥(脈), 판단과 분별의 부족을 발견한다. 그대의 입장은, 그대가 합회를 편협하게 만들고 그대가 진리의 표준을 높이지 않았기 때문에 진리의 진로를 방해해 왔다는 나의 증언을 확증한다. 나는 1883년 배틀크릭의 대총회 기간에 쓴 이 증언에서 여기에 몇 구절을 인용하겠다.

“_________선교 지역에 관한 우리의 대화는 나의 마음에 불쾌한 인상을 남겼다. 이 선교 사업에 관한 나의 말이 가혹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대는 이 사업이 수행되어 온 방법을 매우 만족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대는 O 형제와 그와 관련된 자들이 어떻게든지 함께 즐겨 일하고자 생각하고 있다는 것과, 그들이 식사를 준비하는 다락에 작은 방이 있다는 것과, 그들이 가장 경제적인 방법으로 선한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했다. 이 문제에 관한 그대의 생각은 정확하지 않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과 금보다 더 귀중한 빛은 그 사업에 특성을 주는 그런 방법으로 비춰져야 한다. 이 선교 사업에 관련된 형제들은 인간적 연약함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그러므로 그들의 건강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들의 사업은 크게 곤경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합회에서 사업의 선두에 서 있는 자들은 일이 그런 상태로 되도록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백성들에게 그들의 재물을 바치도록 교육시킴으로 일꾼들이 심한 궁핍을 경험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한두 사람이 온갖 희생을 다하고 있는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거룩한 선교 사업이나 그 사업에 관한 그들의 의무를 생각하지 않고 안락을 취하고 먹고 마시고 옷입고 있는지 살펴볼 책임이 있다.

M 목사여, 나는 그대가 사업에 대하여 바른 견해를 갖지 못하고, 그 중요성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대는 참된 희생과 헌신의 정신으로 백성들을 교육시키지 못했다. 그대는 부한 사람들에게 의무를 강요하기를 두려워했다. 그대가 바른 방향에서 약한 노력을 했을 때, 그들이 변명을 시작하고 사업의 관리에 관하여 누군가를 조금 나무랐을 때, 그대는 아마도 그들이 옳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374 그들에게 의심과 불신을 조장해 준 이런 핑계는 그대 자신의 마음 속에서 효력을 나타냈고 그들은 이것을 깨닫고 그대의 활동을 어떻게 처리할지 배우게 되었다. 그들이 증언들에 관한 의심을 조장했을 때 그대는 이 감정을 뿌리뽑기 위하여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 그대는 사단이 언제나 흠과 의심과 비난거리를 골라내어 형제들을 비난하고 있다는 것과, 그런 처지에 빠지는 것이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 주었어야 했다.

나의 형제여, 그대는 사람들에게 목회 사업에 헌신하도록 격려하는 길을 취하지 않았다. 사업의 비용을 낮은 숫자로 내리는 대신에, 사람들의 마음을 일꾼이 자기의 삯을 받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이 그대의 의무이다. 교회들은 하나님의 사업을 정직하게 처리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지, 가장 악한 종류의 절도의 범죄, 곧 십일조와 헌금으로 하나님께 도적질하는 범죄를 용납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분의 사업의 일꾼으로 정착하게 되면 그들은 금고에 돈이 없다는 이유로 적은 급료를 받도록 강요되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그들이 당연히 받을 것을 편취당해왔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다른 어떤 정상적인 사업에 고용된 자들의 임금을 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보시기에 죄가 된다.

나가서 우리의 여러 합회들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용기가 꺾인다. 그들에게는 가족들을 부양할 돈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합회가 가만히 침체해 있거나 정상적인 부채를 해결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가장 좋지 못한 지도의 결과이다. 이렇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는 때는 언제나 하나님이 불쾌히 여기신다.

만일 우리 합회의 합회장과 다른 교역자들이 하나님께 도적질하는 범죄의 성격을 백성들의 마음에 새겨 주고, 그들이 진정한 헌신의 정신을 가지고 사업의 책임을 느낄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 대한 그들의 활동을 축복하실 것이며, 그들의 활동의 결과로 열매가 나타날 것이다. 375 목사들은 교회에 대하여 그렇게 활동할 그들의 의무를 크게 다하지 못하였다. 설교하는 일 외에 해야 할 중요한 사업이 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이 일이 이루어졌을 것 같으면 목회 분야에는 지금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꾼들이 있게 되었을 것이다. 만일 목사들이 모든 교인들을, 가난하든지 부하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번영케하신 대로 바치도록 교육시키는 데 그들의 의무를 다했을 것 같으면 일꾼들에게 정당한 급료를 지불하기에 충분한 재정이 있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모든 지식에서 선교 사업이 크게 진전되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영혼들이 이기심과 세속적 마음 때문에 영원한 멸망의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을 내게 보여 주셨다. 그러므로 파수꾼들은 그들의 의무를 등한히 했기 때문에 죄가 있다. 이것은 사단이 보기를 원하는 상태이다.

사업의 모든 분야가 목사들에게 속해 있다. 어떤 사람이 그들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그들이 완수하지 못한 사업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은 아니다. 태만한 교역자들을 따라다니면서 그들이 빠뜨린 그물코들을 주워 올리기 위하여 다른 일꾼들을 채용하는 비용을 담당하는 것이 합회의 의무는 아니다. 교역자들과 그들의 사업을 감독하고, 그들이 이런 일에 성실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합회장의 의무이다.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교회는 결코 번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들의 영적 죽음은 흔히 우려되는, 편만한 이기심 때문에 초래된다. 이기적이요 세속적인 일과 계획은 영혼과 하나님 사이에 개입된다. 사람들은, 그들이 세상을 붙들지 않고 놓아 버리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봐 주시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세상을 굳게 붙든다. 그리하여 그들은 스스로를 돌보고자 시도한다. 그들은, 그들의 큰 농장을 붙들고 그들의 소유를 더함으로 근심하고, 괴로워하고, 고통을 당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약 5:4)에 대하여 말한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종들을 고용하고 그들의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부한 자들에게 적용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것보다 더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으로 깨우침을 받았으나 이 사람들이 종들을 고용하여 최저의 임금으로 그들을 학대하는 것과 같은 동일한 원칙을 조금이라도 적용하는 자들에게 크게 적용된다.

376 나는 그대들이 약속의 땅을 탐지하러 올라갔던 불성실한 정탐꾼들의 태도와 유사한 태도로 서지 않기를 엄숙히 경고한다. 이 정탐꾼들이 그들의 정탐 활동에서 돌아왔을 때, 이스라엘의 회중들은 큰 희망을 품고 열렬한 기대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돌아왔다는 소식은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전달되어 즐거운 환성을 지르게 되었다. 사람들은 먼지나는 길과 타는 태양 아래 여행의 고통을 견딘 사자들을 만나러 달려 나간다. 그 사자들은 그 땅의 비옥함을 나타내는 과일의 표본들을 가져온다. 회중들은 그처럼 좋은 땅을 소유하게 되는 것을 즐거워 한다. 그들은 모세에게 보고할 때 한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하여 주의를 기울여서 듣는다. 정탐꾼들은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민 13:27)라는 말로 시작한다. 백성들은 열성이 고조된다. 그들은 주님의 음성에 열성껏 순종하여 즉시 그 땅을 소유하기 위하여 올라갈 것이었다.

그러나 정탐꾼들은 계속해서 말한다.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민 13:28). 이제 상황은 달라진다. 정탐꾼들이 그들의 불신의 마음에 속한 감정을 토로할 때 희망과 용기 대신에 비겁한 절망이 찾아온다. 그들의 마음은 사단이 충동한 실망으로 충만해진다. 그들의 불신은 회중들 위에 음침한 그늘을 던진다. 그리하여 그처럼 자주, 택한 백성을 위하여 나타났던 하나님의 강한 능력은 잊어버린 바 된다.

백성들은 실망과 낙담 가운데서 자포 자기의 상태가 된다. 고민의 부르짖음이 일어나서 혼잡한 불평의 소리들과 함께 섞인다. 갈렙은 사태를 깨닫고 담대히 일어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옹호하고, 불성실한 그의 친구들의 악한 영향을 대항하기 위하여 그의 힘을 다한다. 한 순간에 백성들은 훌륭한 땅에 관한 희망과 용기의 말을 듣기 위하여 조용해진다. 그는 이미 한 말을 반대하지 않고 성벽은 높고 가나안 사람들은 강하다고 한다. 그는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민 13:30)고 강조한다. 377 그러나 열 사람은 그를 대적하여 처음보다 더 어둡게 장애들을 묘사한다. 그들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고 주장한다.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31-33).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민 14:1). 이스라엘의 외고집을 그처럼 오랫동안 견디어 온 사람들은 다음에 어떤 장면이 나타날 것인지를 너무도 잘 안다. 반역과 공공연한 반란이 신속히 따른다. 사단이 완전히 지배하게 되었으므로 백성들은 이성을 빼앗긴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악한 말을 듣고 계신다는 것과, 구름기둥에 감추어진 채 그분 앞에 있는 천사가 그들의 무서운 분노의 폭발을 목격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모세와 아론을 저주한다. 그들은 비통 가운데 부르짖는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민 14:2-4).

굴욕과 고통 중에,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리고” 그들의 분별없고 분노에 찬 목적 때문에 그들에게 어떤 일이 돌아올 것인지 알지 못한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소동을 진정시키고자 노력한다. 그들은 슬픔과 분노의 표로 의복을 찢고 백성들 사이로 뛰어들어가 탄식과 반역적 슬픔의 소란보다 더 크게 울려 퍼지는 음성으로 부르짖는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 13:7-9).

378 불성실한 정탐꾼들의 거짓 보고는 완전히 받아들여지고, 온 회중은 사단이 그들에게 의도했던 바대로 그 보고를 통하여 기만당하였다. 하나님의 성실한 종들을 통하여 전달된 하나님의 음성은 무시되었다. 반역자들은 그들의 일을 이루었다. 모든 회중은 한 음성으로 갈렙과 여호수아를 돌로 치자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이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불순종하고 불평하는 백성들의 혼란 속에서 그분 자신을 나타내신다.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민 14:10). 얼마나 무거운 짐이 모세와 아론에게 지워졌으며,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멸망시키지 말도록 해 달라는 그들의 호소는 얼마나 열렬했던가! 모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이 그들의 원수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도록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여호와께 간구하고,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의 원수들이 “여호와가 이 백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에 인도할 능이 없는 고로 광야에서 죽였다”(민 14:16)고 말할 기회를 얻지 못하게 해달라고 탄원한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셨다. 그러나 그는 그분의 능력과 영광을 본 후에도 그분을 반역한 자들은 광야에서 쓰러질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들은 그들의 약속된 유업의 땅을 결코 보지 못할 것이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갈렙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오직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좇았은즉 그의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민 14:24).

갈렙에게 용기를 준 것은 하나님을 믿는 그의 믿음이었다. 그것이 그를 사람의 위협, 곧 심지어 힘센 거인, 아낙 자손들의 위협에서 그를 지켜주고, 정의를 옹호하는 일에 담대하고 단호하게 설 수 있게 해주었다. 똑같이 고상한 근원, 하늘 군대의 강한 장군으로부터, 모든 진실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병사는 때때로 극복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이는 장애들을 극복하기 위한 힘과 용기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율법은 효력을 잃고 있다. 그러므로 의무를 다하고자 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말을 말하고자 언제나 준비하고 있어야지, 의심과 낙담과 실망의 말을 해서는 안 된다.

379 M 목사여, 그대가 비록 불성실한 정탐꾼들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을지라도, 그대의 편지에 나타난 감정은 주님의 영에 의하여 감동된 것이 아니다. 그대의 말과 그대의 정신이 그들의 것과 같이 되지않고, 그대의 사업이 동일하게 해로운 성격에 속한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지금과 같은 시대에 우리는 불신의 사상을 품거나 불신의 말을 하지 않아야 하고 이기적인 행동도 조장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일은 아파 콜롬비아와 노스 패시픽 합회에 존재해 왔다. 거기에 있는 동안 우리는 모세와 아론, 갈렙과 여호수아가 경험한 슬픔과 굴욕과 낙담을 어느 정도 느꼈다. 우리는 물줄기를 반대 방향으로 돌리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그것은 많은 심한 노력과 큰 근심과 마음의 고통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들 합회들의 개혁 사업은 시작된 데 불과하다. 여러 해 동안의 불신과 의심과 회의를 극복하는 것은 시간이 해결할 문제이다. 사단은 이 합회들에서 그의 목적을 관철시키는 데 크게 성공을 거두어 왔다. 그가 자신의 기구로 사용할 수 있는 자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M 형제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또한 진리를 위하여 그대의 합회의 사업을, 그대의 후임자가 될 사람이 바로잡을 수 없는 그런 형태로 만들어 둔 채 떠나가지 말라. 백성들은 사업에 관한 편협하고 제한된 견해를 받아들였다. 이기심이 조장되고, 세속적인 마음이 책망을 받지 않았다. 나는 그대가 이 합회에 조성해 놓은 그릇된 특성을 지워 버리고, 그대의 의무 태만의 슬픈 결과를 치료하고, 다른 교역자들을 위한 일터를 마련해주기 위하여 그대의 힘을 다 기울여 일하기를 호소하는 바이다. 그대가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그대의 뒤를 따를 일꾼을 긍휼히 여겨주시기를.

합회의 회장들은 하나님의 사업을 완전히 위탁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들은 정직하고, 이타적이고, 헌신적인 사람, 활동하는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 만일 그들이 이런 면에서 결함이 있으면 그들의 지도 아래 있는 교회들은 번영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께 속한 다른 목사들보다도 거룩한 생애와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이타적인 헌신의 모본이 됨으로 그들을 모본으로 바라보는 자들이 잘못 인도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그들이 하나님과 재물의 신을 동시에 섬기고자 시도하고 있다. 380 그들은 자아를 부정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영혼들을 위한 책임을 수행하지 않는다. 그들의 양심은 민감하지 않다. 하나님의 사업이 손해를 입어도 그들은 상심하지 않는다. 마음 속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영의 증언들을 의심하고 불신한다. 그들은 스스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지 않는다. 그들은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그들이 돌보도록 맡은 양떼의 성실한 목자들이 아니다. 그들의 기록은 하나님의 날에 즐겨 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목사는, 책임 분량에 합당할 만큼 영혼들을 돌보는 일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요구받고 있는가! 어떤 헌신, 어떤 뚜렷한 목적, 어떤 고상한 경건이 그의 생애와 품성에 나타나야 할 것인가!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제시할 경우에 기지와 기량의 부족으로 예수님이나 하늘의 향기를 조금도 대표하고 있지 않는 행동의 부주의와 거칠은 말과 세속적 마음 때문에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리는가! 우리의 사업은 바야흐로 마쳐지려 한다. 미구에 하늘에서,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계 22:11)는 음성이 들릴 것이다. 이 엄숙한 때에 교회는 깨어 있으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사단이 열렬하게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용은 어느 곳에서나 나타난다. 그러나 목사들과 백성들은 마치 그의 계략을 모르는 것처럼, 그의 능력에 마비된 것처럼 행동한다. 모든 교인들은 깨어야 한다. 모든 일꾼들은 그가 경작하는 포도원이 자기의 것이 아니고, 긴 여행을 떠나고 없는 동안 그의 종들에게 돌보도록 맡겨 준 그의 주님께 속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가 만일 맡은 일에 불성실할 것 같으면 그의 주님이 돌아오실 때 그분께 반드시 회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의심하는 자들이 불가능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그들이 높은 성벽과 힘센 거인들을 생각하고 떨고 있는 동안, “그 마음이 그들과 다른”(민 14:24) 신실한 갈렙들은 앞으로 나갔다. 구원을 가져다 주는 하나님의 진리는, 만일 목사들과 믿노라고 공언하는 신자들이 그 길을 막지만 않을 것 같으면 백성들을 향하여 나갈 것이다. 우리의 사업은 공격적이다. 세상을 경고하기 위하여 무엇인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381 선교지역을 태만히 하고 이기적 유익을 조장할 음성이 들리지 않게 해야 한다. 우리는 마음과 혼과 음성을 다하여 사업에 종사해야 한다. 정신적·육체적 능력이 다 같이 각성되어야 한다. 온 하늘은 우리의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우리의 미약한 활동을 부끄럽게 여긴다.

나는 우리 교회의 무관심에 놀란다. 메로스처럼 그들은 여호와를 도우러 오지 않았다. 평신도들은 안이해졌다. 그들은 팔장을 끼고 목사들에게 책임이 맡겨져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할 일을 지정해 주셨는데, 그것은 그의 옥수수와 밀 밭에서의 사업이 아니고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한 열렬하고 꾸준한 사업이다. M목사여, 그대나 다른 어떤 목사가 지금 있는 활동의 정신을 조금도 소멸시켜서는 정말 안 된다. 오히려 불타는 열성의 말로써 그것을 고취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주님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율법의 보존자로 삼으셨다. 그분께서는 거룩하고 영원한 진리를 우리에게 위탁하셨는데, 그 진리는 성실한 경고와 책망과 격려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철도와 여객선을 통하여 우리는 세계의 모든 지역과 연결되고 우리는 진리의 기별을 모든 민족에게 전하게 된다. 모든 물가에 복음 진리의 씨를 뿌리도록 하자. 우리는 이것이 잘 될 것인지, 저것이 잘 될 것인지, 혹은 둘 다 열매가 잘 맺힐 것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지만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그대의 빛을 말 아래 두지 말고 등경 위에 두어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비췰수 있게 해야 한다.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더욱이 하나님의 아들의 귀중한 피로 “산 것이 되었”(고전 6:19, 20)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살 권리가 없다. 모든 목사는 헌신적인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 모든 평신도는 자신의 감화와 재물의 냥쭝을 주님을 섬기는데 사용하는 일꾼이 되어야 한다. 적극적인 자선이 그리스도교의 생명적 원칙이기 때문이다. 이 원칙의 결핍은 하나님의 사업을 방해하고 영혼들의 구원을 위한 길을 막고 있는 반면에 이 원칙의 활용은 추수의 주인에게 단을 가져다 주게 된다.

382 목사들은 복음의 은혜를 강조하는 일을 등한히 해왔다. 십일조와 헌금의 문제는 마땅히 강조될 만큼 강조되어 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본성적으로 자선적이 아니고, 탐욕적이요 탐심이 많으며, 자아를 위하여 살아간다. 사단은 사람들의 모든 재물을 이기적이요 세속적인 목적으로 사용함으로 얻게 될 유익을 제시하고자 언제나 준비하고 있다. 사단은 그가 그들에게 의무를 회피하고 십일조와 헌물로써 하나님께 도둑질하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때 즐거워 한다. 그러나 한 사람도 이 문제에 있어서 면제받지는 못한다.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고전 16:2)라. 수입이 있는 가난한 사람들과 부한 사람들, 젊은 남자들과 젊은 여자들은 모두 일정한 몫을 구별해 두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요구하시기 때문이다. 모든 교인들의 영적 번영은 개인적 노력과 하나님께 대한 엄격한 충성에 의존된다. 사도 바울은 말한다.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 6:17-19). 모든 사람은 여러 분야에서의 하나님의 사업에 깊은 관심을 나타내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그리고 누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기에 합당한지 보기 위하여 엄격하고 예기치 않는 시험이 그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모든 사람은 그들이 소유자가 아니고 청지기임을 느껴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주님의 돈을 사용한 데 대하여 회계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하나님의 사업에는 재물이 필요하다. 그들은 다윗처럼,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라고 말해야 한다. 학교들이 여러 곳에 세워져야 하고, 출판물들이 증가되어야 하고, 교회들이 큰 도시들에 세워져야 한다. 그리고 일꾼들은 도시들뿐만 아니라 큰 길과 샛길로도 보내져야 한다. 이제 진리를 믿는 나의 형제들이여, 그대들에게 기회가 왔다. 우리는 말하자면 영원한 세계의 경계에 서 있다. 우리는 영광스러운 주님의 나타나심을 바라고 있다. 밤은 깊어졌다. 낮이 가까웠다. 383 우리가 구속의 계획의 위대함을 깨달을 때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용기를 갖고, 자아 희생적이고 헌신적이 될 것이다.

우리의 활동이 결실을 이루어 성공하기 전에 우리에게는 해야 할 큰 사업이 있다. 우리의 가정들과 우리의 사회들에는 결정적인 개혁이 있어야 한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구원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도록 명령하시고 우리에게 자격을 주어서 하게 하신 모든 일에서 우리의 몫을 다 할 때 그분께서는 우리의 노력과 함께 일하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불신과 세속적 마음과 태만 때문에 바로 우리의 가정의 그늘 안에 있는 피로 산 영혼들이 그들의 죄 가운데 죽어 가고, 경고를 받지 못한 채 죽어 가고 있다. 사단이 언제나 이와 같이 승리해야 할 것인가?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반사된 빛은, 우리의 눈이 지금껏 목격해 온 것 이상의 더 큰 사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을 가리켜 준다.

공중에 날아가면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전하고 있는 셋째 천사는 우리의 사업을 나타낸다. 기별은 천사가 앞을 향하여 날아가는 동안 그 힘을 하나도 잃지 않는다. 요한은 온 세상이 그 영광으로 환해질 때까지 힘과 능력이 증가되고 있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백성의 길은 전진하고, 언제나 전진하는 길이다. 우리가 증거하는 진리의 기별은 나라와 방언과 백성들에게 전해져야 한다. 미구에 그것은 큰 음성으로 전달될 것이며, 세상은 그 영광으로 환해질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을 크게 부어 주시는 이 위대한 일을 위하여 준비가 이루어져 있는가?

인간의 힘이 이 사업에 쓰여져야 한다. 열심과 정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무활동으로 녹이 슨 재능은 사업에 투입되어야 한다. “기다리라, 그대에게 무거운 짐을 부과시키도록 하지 말라”고 하는 음성은 비겁한 정탐꾼들의 음성이다. 우리는 오늘날, 앞으로 전진할 갈렙들, 용기 있는 말로써 즉각적인 행동을 하도록 힘있는 보고를 할 이스라엘의 수령들이 필요하다. 이기적이고 안락을 좋아하고 공포에 질린 백성들이 키 큰 거인들과 접근할 수 없는 성벽을 두려워하고 퇴각하자고 아우성 치고 있을 때, 비록 비겁한 자들이 손에 돌을 들고 그들의 불성실한 증거를 위하여 그들을 치고자 준비하고 있을지라도 갈렙들의 음성은 들려야 한다.

우리는 시대의 징조를 분별할 수 없는가? 384 우리는 사단이 세계를 지배하기 위하여 가라지를 단으로 묶고, 그의 나라의 구성원들을 연합시키는 일에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없는가? 가라지를 묶는 이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진척되고 있다. 사단은 진리가 나가는 길에 온갖 장애물을 놓고 있다. 그는 의견을 분열시키고 세속적인 마음과 탐욕을 조장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사단은 뱀의 교활로 일을 하되, 필요하다고 볼 때는 사자의 잔인성으로 한다. 영혼들의 파멸이 그의 유일한 기쁨이고, 그들의 멸망이 그의 유일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마치 마비된 것처럼 행동할 것인가?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간교한 원수의 유혹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 스스로를 이기적이요 편협하게 만들고, 그들의 세속적인 유익 때문에 영혼들의 구원을 위한 활동이 방해를 받도록 용납하겠는가?

하늘의 문을 들어가는 모든 자들은 정복자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구속받은 무리들이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머리에는 면류관을 쓰고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모일 때, 어떤 승리를 얻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사단의 능력이 사람들의 마음에 어느 정도로 작용해 왔으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으면서 스스로를 높인 자들과 어느 정도로 그가 관련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 줄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능력이 인간의 노력과 연합되지 않았을 것 같으면 사단의 능력과 교활을 성공적으로 저항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 줄 것이다. 사람은 또한 자기 자신에게 승리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의 기질과 기호와 정신은 하나님의 뜻에 굴복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의와 힘은 그분의 공로를 의지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

무서운 원수를 격퇴시키기 위하여 열렬하고 결정적인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의의 전신 갑주를 입기를 원한다. 시간은 빨리 지나가고 있으며, 우리는 우리의 은혜의 시기의 끝에 신속히 이르고 있다. 우리의 이름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불성실한 자들과 함께 발견될 것인가? 우리는 크고 흰 보좌 주변에 모여서 구속받은 자들의 노래를 부르는 자들의 수에 속해 있는가? 그 무리 가운데는 냉랭하고 형식적인 자들은 없다. 모든 영혼은 열렬하고, 모든 마음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그분의 백성을 죄와의 싸움에서 이기게 해준 정복의 은혜에 대한 감사로 충만하다. 385 큰 음성으로 그들은 노래를 부른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계 7:10).

참된 선교 정신

참된 선교 정신은 그리스도의 정신이다. 세상의 구속주는 위대한 모범 선교사였다. 그분을 따르는 자들 중 많은 사람들은 인간을 구원하는 사업에서 열렬하고 이기심 없이 활동해 왔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활동도 우리의 모본되시는 분의 극기와 희생과 자선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증거하신 사랑은 비할 데가 없다. 그분께서는 얼마나 열렬하게 일하셨던가! 그분은 얼마나 자주 열렬히 기도하시면서 혼자 계셨던가. 산중턱이나 한적한 동산에서 강한 부르짖음과 눈물로써 그분께서는 간구하셨다. 십자가 위에서까지 그분께서는 당신이 구원하러 오신 자들에 대한 깊은 사랑 때문에 자신의 고통을 잊어 버리셨다. 우리 구주께서 나타내신 사랑과 관심에 비교해 볼 때, 우리의 사랑은 얼마나 냉랭하며, 우리의 관심은 얼마나 나약한가! 예수님은 우리 인류를 구속하기 위하여 당신 자신을 주셨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바치지 않을 핑계를 댈 준비를 갖추고 있는가? 우리의 구주께서는 피곤한 노동과 치욕과 고통을 당하셨다. 그분께서는, 하시고자 세상에 오신 위대한 사업에 종사하고 계시는 동안 배척과 멸시와 조롱을 받으셨다.

나의 형제 자매들이여, 그대들은, 우리가 어떤 모본을 따라야 하는가 하고 묻는가? 나는 그대들에게 위대하고 선한 사람들을 가리키지 않고 세상의 구속주를 가리킨다. 우리가 참된 선교 정신을 갖고자 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감염되어야 한다. 우리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를 바라보고, 그분의 성품을 연구하고, 온유하고 겸손한 그분의 정신을 계발하고,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선교 정신, 곧 선교 사업을 위한 자격은 특별한 선물 혹은, 목사들과 소수의 교인들에게만 주어진 재능이며 다른 모든 사람들은 단순한 구경꾼들이라고 생각한다. 386 이보다 더 잘못된 생각은 없다. 모든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선교 정신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도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지는 않는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장차 올 세상의 능력을 맛본 사람은 누구나 젊든지 늙든지, 학식이 있든지 무식하든지 상관없이 그리스도를 고무시킨 그 정신으로 고취될 것이다. 새롭게 된 마음의 제일 첫번째 충동은 다른 사람들도 그리스도께로 데려오고자 하는 것이다. 이 욕망을 소유하지 않은 자들은 그들의 첫사랑을 잃어버린 증거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빛 가운데서 자기 자신의 마음을 철저히 살피고, 그리스도의 영의 새로운 침례를 열렬하게 구해야 한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영광의 영역을 떠나서 멸망하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타락한 세상에 오심으로 나타내신 놀라운 사랑을 더욱 깊이 깨닫기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주님의 포도원에는 우리 각 사람을 위한 일이 있다. 우리는 최고의 향락과 가장 큰 이득을 줄 그런 위치를 구해서는 안 된다. 진실한 신앙은 이기심에서 벗어난다. 선교 정신은 개인적 희생의 정신이다. 우리는 어떤 곳에서나, 모든 곳에서 우리 주님의 사업을 위하여 우리의 능력을 다하여 일해야 한다.

사람이 진정으로 진리를 받아들이게 되면 즉시 그의 마음 속에는 친구에게나 이웃에게 가서 거룩한 페이지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귀중한 빛을 말해 주고 싶은 간절한 욕망이 샘솟게 된다.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이기심 없는 노력을 통하여 그는 모든 사람이 읽고 깨닫는 산 편지가 된다. 그의 생애는, 그가 그리스도께로 돌아와서 그분의 동역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한 계층으로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은 관대하고 온화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 시대를 위한 진리의 선포에서 우리는 그들의 강하고 즉각적인 동정에 의지할 수 있다. 그들의 관대함을 필요로 하는 적절한 대상이 제시될 때 그들의 판단과 양심에 호소하면 마음에서 우러나는 반응을 얻게 된다. 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그들의 선물은 그들이 그것을 진리의 사업으로 믿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그러나 우리들 사이에는 진실로 예외는 있다. 믿음을 받아들이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이 다 열렬하고 진실한 마음을 가진 신자들은 아니다. 387 그리스도의 시대에도 그러했다. 심지어 사도들 사이에도 유다가 있었다. 그렇다고해서 모두가 동일한 품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진리의 사업에 헌신하고 있고 진리의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고상한 희생을 할 준비를 갖추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는 한 낙심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아직도 크게 부족한 것이 있고 우리들에게는 크게 필요한 것도 있다. 진정한 선교 정신이 너무도 적다. 모든 선교의 역군들은 그들의 동료 인간들의 영혼을 위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동정과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마음과 마음을 연합시켜야 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열렬하게 구하고 그리스도께 영혼들을 인도하기 위하여 지혜롭게 일해야 한다. 냉랭하고 영성 없는 노력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선지자들의 아들들에게 그리스도의 정신이 주어질 필요가 있다. 그러면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분의 생애를 통하여 예시하신 것과 똑같이 사람들의 영혼을 위하여 그런 사랑을 나타낼 것이다.

더욱 깊은 신앙적 열성이 없고 교회 안에서 서로간에 더욱 열렬한 사랑이 없는 이유는 선교 정신이 죽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사상과 대화의 주제가 되었던 그리스도의 오심에 관한 말은 별로 들리지 않는다. 신앙적 대화는 까닭을 알 수 없이 태만하고 차츰 싫어한다. 그 대신에 무익하고 저속한 잡담을 일삼고,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까지도 그렇게 한다.

나의 형제 자매들이여, 그대들을 붙들고 있는 마력을 깨뜨리기를 원하는가? 그대들은 죽음의 무감각과 유사한 나태에서 일어나기를 원하는가? 그대들이 좋아하든지 않든지 간에 일하러 나가라. 예수님께로 그리고 진리의 지식으로 영혼들을 데려가기 위하여 개인적인 노력을 하라. 그런 노력을 통하여 그대들은 자극과 강장제를 다 같이 발견할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각성시키고 강화시킬 것이다. 그대들의 영적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더욱 활기차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그대들은 그대 자신의 구원을 더욱 성공적으로 이루게 될 것이다. 죽음의 무감각은 그리스도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른다. 그들을 각성시키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하라. 경고하고, 호소하고, 훈계하라. 하나님의 부드러운 사랑이 얼음 속에 갇힌 그들의 본성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해주도록 기도하라. 비록 그들이 듣지 않겠다고 거절할지라도 그대들의 노력은 잃어버린 바 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기 위한 그대들의 노력을 통하여 그대 자신들의 영혼이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388 우리는 진리의 이론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거룩하게 하는 진리의 능력을 위하여 가장 열렬하게 구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이 위기의 때에 감히 침묵을 지키지 못한다. 지금은 유혹의 시기이며, 낙담의 시기이다. 각 사람이 사단의 간계에 둘러싸여 있으므로 우리는 그의 능력을 저항하기 위하여 함께 전진해야 한다. 우리는 한마음을 가지고 같은 말을 하며, 한 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계획들을 성공적으로 확장시키고 부지런한 선교 활동을 통하여 사업의 여러 분야에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재능을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진리의 빛은 선교 활동을 통하여 세상에 밝은 빛을 비추고 있다. 인쇄물은 목회 활동으로 접촉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을 접촉하게 하는 도구이다. 성경 말씀을 그대로 사람들에게 제시할지라도 큰 사업이 이루어질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의 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가서 분명한 그 말씀을 모든 사람의 양심에 강조하고 “성경을 상고하라”(요 5:39)고 한 우리 구주의 명령을 모든 사람에게 되풀이하라. 성경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거룩한 빛을 달라고 간원하고, 그 빛이 비출 때는 그 귀중한 빛을 남김없이 받아들이고, 두려움 없이 그 결과를 감수하도록 그들을 권면하라.

하나님의 짓밟힌 율법은 백성들 앞에 높이 들려야 한다. 그들이 열성과 존경의 마음으로 성경을 향하여 돌아가면 즉시 하늘에서 온 빛은 하나님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그들에게 계시해 줄 것이다. 미신과 거짓 교리에 의하여 오랫동안 모호해져 온 위대한 진리는 조명된 거룩한 말씀의 페이지에서 빛나게 될 것이다. 산 계시의 말씀은 그 보배를 새것과 옛 것으로 내어 주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빛과 기쁨을 가져다 준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잠에서 깨어난다. 그들은 이른바 죽음에서 일어나서 그리스도만이 주실 수 있는 빛과 생명을 받는다. 지적 거인에게도 이해하기에 벅찬 것으로 입증되어 온 진리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어린 아기들에게도 이해가 된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가장 학식이 많은 말씀의 주석가들의 영적 지각을 흐리게 한 것들이 분명하게 계시된다. 왜냐하면 옛날의 사두개인들처럼 그 주석가들은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에 대하여 무지해졌기 때문이다.

389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실천하고자 하는 진정한 욕망을 가지고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안식일 학교는, 젊은이들과 늙은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을 주기 때문에서만 아니라 그들에게 그 거룩한 진리에 대한 사랑과 그 진리를 스스로 연구할 욕망을 깨우쳐 주기 때문에 선교 사업의 중요한 한 분야이다. 더욱이 그 학교는 그들에게 그 말씀의 거룩한 교훈에 의하여 그들의 생애를 통제하도록 가르쳐 준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애의 법칙으로 삼는 모든 사람은 피차간에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 성경은 그들을 묶는 끈이다. 거룩한 말씀을 분명한 안내자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그들과의 교제를 구하거나 희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믿음과 행동에 있어서 다 같이 상치된다. 그들 사이에는 조화가 있을 수 없다. 그들은 일치될 수가 없다. 우리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으로서 관습이나 전통을 떠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는 분명한 말씀에 호소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사람의 교훈과 계명을 가르치고 따르는 많은 무리들과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이루어질 수도 없다.

하나님에게서 난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동역자가 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마 5:13). 만일 우리가 믿노라고 공언하는 신앙이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지 못하고 우리의 생애를 거룩하게 하지 못하면 그것이 어떻게 불신자들에게 구원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세상에 회개시키는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는 신앙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우리는 그것을 빨리 버리면 버릴수록 더욱 좋다. 그것은 무력한 것이고 가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온갖 반대의 세력을 대항하여 전진하고, 하나님과 동역자가 되기 위하여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 아래 봉사해야 한다. 우리들에게 맡겨진 사업은 모든 물가에 복음의 씨를 뿌리는 것이다. 이 사업에 각 사람이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다양한 그리스도의 은혜는 우리를 청지기로 삼아서 취리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투자하여 증가시키게 한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그들을 부르실 때, 그분께서는 변리와 함께 그분 자신의 것을 받으실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선교사로서의 젊은이들

390 목사와 문서 전도자나 권서원으로 선교 지역에 들어가고자 하는 젊은이들은 그들의 부르심에 대한 특별한 준비는 물론이요 적당한 수준의 지적 훈련을 먼저 받아야 한다. 교육과 훈련을 받지 못하고 세련되지 못한 자들은 우수한 재능과 교육의 영향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대적하는 선교 지역에 들어갈 준비를 갖추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폭로하는 데는 성경의 지식은 물론이요 과학의 지식도 필요되는, 종교와 철학이 결합된 이상한 형태의 오류를 성공적으로 대항할 수 없다.

특별히 목회를 지망하는 자들은 목회 훈련의 성서적 방법의 중요성을 느껴야 한다. 그들은 자원하여 그 사업에 임해야 하고, 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그들은 위대한 교사에게서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을 배워야 한다.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께서는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는 자들에게 그분의 영을 부어 주심으로 그들을 의의 일꾼들이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머리에서 오류와 거짓 교리를 제거해 버리고 성경의 진리와 성경의 종교가 가슴속에 자리잡게 하는 데는 이루어져야 할 어려운 일이 있다. 우리들에게 대학이 세워진 것은 여러 분야의 선교 활동을 위하여 젊은 남녀들을 교육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택하신 수단으로써였다. 대학들이 단순히 소수만이 아니고 많은 일꾼들을 내보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나 이 목적을 좌절시키고자 작정한 사단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업에 유용한 자리를 차지하도록 자격을 갖추기를 바라는 바로 그들을 흔히 확보했다. 봉사하도록 권유를 받으면 일을 하고 그 일을 통하여 그들의 영혼을 구원할 사람들이 많이 있다. 교회는 유능한 사람들을 선교 지역에 보내는 일에 돈과 영향력을 자유롭게 써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좁은 영역 안에서 진리의 빛을 차단시키고 하나님의 은혜를 제한시키는 일에 큰 책임을 느껴야 한다.

391 수많은 젊은이들은 모든 물가에 진리의 씨를 뿌리는 사업에서 한몫을 담당하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십자가의 승리를 밀고 나갈 사람들이 필요하다. 우리는 낙담과 궁핍을 견딜 사람들, 선교 지역에 필수적인 열심과 결심과 믿음을 가질 사람들이 필요하다.

우리 교회들은 지금껏 나타낸 것보다 더 큰 열심으로 이 사업을 담당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 모든 교회는 그 선교사들을 훈련시키는 데 특별한 배려를 갖고,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는 위대한 명령을 성취하는 사업에 임해야 한다. 나의 형제들이여, 우리는 너무 적게 시도함으로써 실수와 죄를 범해 왔다. 외방 선교 지역에는 더 많은 일꾼들이 있어야 한다. 외국어를 배우는 수고와 그로 인한 지체가 없이 다른 민속들에게 진리를 증거할 자격을 갖출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들 사이에는 있다. 초기 기독교에서는 선교사들이 언어에 대한 지식을 기적적인 방법으로 얻었는데, 그들은 이 언어로 그리스도의 한량 없는 보화를 전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그런 방법으로 그 당시에 그분의 종들을 즐겨 도우셨다면, 본성적으로 외국어의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과, 적당한 격려를 받으면 진리의 기별을 그들 자신의 동족들에게 증거하기를 원할 자들에게 자격을 갖추어 주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의심할 수 있는가? 이런 지역에 들어간 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재능을 다 이용할 수 있었을 것 같으면 우리는 외방 선교 지역에서 더 많은 일꾼들을 소유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사상과 계획에 맞지 않으면 도움을 거절하는 기질을 가졌다. 그 결과는 어떤가? 만일 우리의 선교사들이 질병이나 죽음 때문에 그들의 활동 지역에서 옮겨져야 한다면 그들의 자리를 차지하도록 교육받은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선교사들 중 한 사람도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재능의 협력을 얻지 못했다. 그리하여 많은 시간을 잃어버렸다. 우리는 외방 지역에서 이루어진 선한 사업을 기뻐한다. 그러나 여러 가지 활동 계획들을 적용했을 것 같으면 10배, 분명히 20배 이상의 일이 성취되었을 것이다. 392 그리고 오류의 속박에서 벗어난 많은 영혼들로부터 가납될 만한 헌금이 예수님께 바쳐졌을 것이다.

진리의 빛을 받아들이는 각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전하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외방 지역에 있는 우리 선교사들은 그들에게 제공된 모든 도움, 모든 편의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은 즐겨 혹종의 위험을 겪고 무엇인가 모험을 해야 한다. 우리가 미래에 더 큰 사업을 성취시킬 희망으로 선을 행할 수 있는 현재의 기회를 지연시키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신다. 각 사람은 자신의 유익을 생각지 말고, 완전히 자기 자신의 판단에 의존하지 말고, 하나님의 섭리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성공을 의도하시는 곳에서 실패를 보는 체질일 수도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더 분명한 시력으로 하나님의 진리에 승리를 주고자 준비하고 있는 하나님과 천사들을 보는 곳에서 거인들과 성벽들만을 볼 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에는 젊은이들이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일은 그들이 사람들과 사귐으로써, 동시에 매일의 어떤 부분을 언어를 공부하는 데 바침으로써 가장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스스로 선교 지역에 투신하여 적당한 훈련으로 일꾼이 될 수 있게끔 교육시키는 일에 필요한 준비의 한 단계로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들의 모국어로 여러 나라의 백성들에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봉사에 참여하도록 촉구하는 일이 매우 긴요하다. 중년이 된 사람이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그의 모든 노력을 기울일지라도 그를 유능한 일꾼으로 간주할 만큼 그렇게 쉽고 정확하게 외국어를 구사하기가 그에게는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는 중년층과 나이 많은 목사들을 먼 지역으로 보내어, 그들이 자격을 갖추지도 못하고 그들 스스로 적응할 만큼 많은 교육도 받지 못한 사업에 종사하게 함으로 그들의 영향을 우리의 국내 선교에서 빼앗기게 할 수는 없다. 이렇게 보냄을 받은 사람들은 경험 없는 일꾼들이 보충할 수 없는 공백을 남긴다.

그러나 교회는 젊은이들에게 외방 선교 사업을 정착시키고 관리하는 일에 속한 무거운 책임을 맡길 수 있을 것인가라고 질문할 수도 있다. 나는 대답한다. 393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우리 대학에서 그렇게 훈련을 받고, 경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활동함으로써 이 사업의 유용한 부분들을 위하여 준비를 갖추도록 계획하셨다. 우리는 우리의 젊은이들을 신임해야 한다. 지나치게 짐을 진 그리스도의 종들이 상담자로서 인정을 받으면서 하나님을 위하여 가장 강한 타격을 가하고 있는 자들을 격려하며 축복하고 있는 동안, 그들은 수고와 희생을 요하는 온갖 사업에서 선구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섭리는, 이 경험 있는 조상들을 육체적·지적 능력이 다 같이 충분히 발달되지 않았을 초기에 어렵고 책임이 무거운 위치에 처하게 하였다. 그들에게 맡겨진 사업의 무게가 그들의 정력을 일깨웠고, 사업에 있어서의 그들의 적극적인 활동이 정신적·육체적 발달을 한 가지로 도왔다.

젊은이들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선교 지역으로 부르신다. 비교적 걱정과 책임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그들은 많은 가족을 교육시키고 부양해야 할 자들보다 이 사업에 종사하기에 훨씬 더 유리한 처지에 놓여 있다. 더욱이 젊은이들은 새로운 기후와 새로운 사회에 훨씬 더 쉽게 적응할 수 있고, 불편과 어려움을 더 잘 견딜 수 있다. 기지와 인내로 그들은 그들이 있는 곳에서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다.

힘은 사용함으로 주어진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능력을 사용하는 자는 모두 그분의 사업에 바칠 능력을 더 많이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업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들은 은혜와 진리를 아는 지식 가운데 자라나지 못할 것이다. 드러누워서 사지를 사용하지 않는 자는 미구에 그것을 사용할 능력을 모두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사용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자라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가 이미 가지고 있는 힘도 잃어버린다. 그는 영적 마비 상태가 된다. 진리 안에서 확고해지고, 강해지고, 확립하게되는 자는 하나님과 동료 인간들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위한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사업은 충동에 의한 사업이 아니고 원칙에 의한 사업이다. 그것은 하루나 한달의 사업이 아니고 평생의 사업이다.

우리의 빛이 우리의 언행 일치의 그리스도인 생애로 말미암아 세상에 비추어지지 않는다면, 그 빛이 어떻게 비추어 질 수 있겠는가? 394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 같으면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세상에 알려 주겠는가? 우리 구주께서는,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20)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다시,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라고 하셨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들의 능력을 다하여 일하는 자들과 영혼들의 원수를 위하여 일하는 자들 사이에는 중립 지대가 없다. 주님의 포도원에서 게으른 자로 서 있는 모든 자는 단순히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일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는 자들에게 방해가 된다. 사단은 자기 자신의 구원과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열렬하게 노력하고 있지 않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일거리를 발견한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군대로 적절히 비교될 수 있다. 모든 군인들의 생활은 수고와 고생과 위험의 생애이다. 도처에 결코 졸지 않고 결코 그의 위치를 비우지 않는 흑암의 세력의 왕에게 지도를 받는 방심하지 않는 원수들이 있다. 그리스도인이 경계를 게을리하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이 강력한 원수가 갑작스럽게 맹공격을 한다. 교인들이 활동적이고 깨어 있지 않으면, 그들은 그의 간계에 정복당할 것이다.

만일 군대에 있는 군인들 절반이 게으름을 피우고 있거나 자고 있을 때 의무 수행의 명령을 받는다면 그 결과는 패배나 포로나 죽음이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원수의 손에서 피했다한들 그들이 상 받을 가치가 있겠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들은 신속히 죽음의 선고를 받게 될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교회가 부주의하거나 불성실하다면 훨씬더 중요한 결과가 수반된다. 그리스도인 군인들로 이루어진 잠자는 군대, 이보다 더 무서운 일이 있겠는가! 흑암의 왕의 지배를 받고 있는 세상에 대항하여 어떤 전진이 이루어지겠는가? 마치 싸움의 문제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도 없고 아무런 책임도 느끼지 않는 것처럼 전쟁의 날에 물러서 있는 자들은 그들의 길을 바꾸거나 즉시 대열을 떠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복음의 일꾼들을 부르신다. 누가 반응하겠는가? 군대에 들어가는 사람 모두가 장군이나, 지휘관이나, 고급 하사관이나, 하사관이 되지 못할 것이다. 해야 할 힘든 종류의 사업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참호를 파고 요새를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 395 또 어떤 사람들은 보초를 서고, 어떤 사람들은 전령으로 일을 해야 한다. 장교들은 소수에 불과할지라도 하사관과 사병을 구성해야 할 많은 군인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성공은 모든 군인들의 충성에 의존된다. 한 사람의 비겁이나 반역이 전체의 군대에게 재난을 가져올 수 있다.

만일 우리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자 하면 우리가 개인적으로 이루어야 할 진지한 사업이 있다. 영원한 관심사가 위기에 놓여 있다. 우리는 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악을 대항해야 한다. 그리하면 우리는, 그가 도망하게 될 것이라는 분명한 약속을 가지고 있다. 교회는 공격전을 전개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정복하고, 영혼들을 원수의 능력에서 건져내야 한다. 하나님과 거룩한 천사들이 이 전쟁에 임하고 있다. 우리를 군사로 불러 주신 분을 기쁘시게 하자.

모든 사람은 그 사업에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그들이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열렬하고 이기심 없이 활동하지 않는 한 하나님 앞에서 죄없다는 선고를 받지 못할 것이다. 교회는 교훈과 모본으로 젊은이들을 그리스도를 위한 일꾼이 되게 가르쳐야 한다. 그들의 의심을 한탄하는 많은 사람들, 그들이 하나님과의 연결의 보증이 없는 것을 탄식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흔히 그들이 하나님의 사업에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축복하기 위하여 열렬하게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면 그들의 의심과 실망은 사라질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아무런 짐도 지지 않고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지도 않으면서 마치 그들의 이름이 하나님의 사업에 큰 영광이라도 된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그런 사람들은 마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시지 않는 것처럼 생활한다. 만일 그들이 이런 길을 계속해서 걷는다면 그들은 마침내 그들이 하나님께 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각 사람에게 재능을 따라 일을 맡기신 분께서는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한 데 대하여 상급을 주지 않고 결코 지나치지 않으실 것이다. 충성과 믿음의 모든 행동은 하나님의 은총과 인정의 특별한 표로 보답될 것이다. 모든 일꾼에게는 약속이 주어져 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6).

문서 전도 사업의 중요성

396 문서 전도 분야에서 지금껏 이루어진 것보다 매우 많은 효과적인 사업이 이루어질 수 있다. 문서 전도자는 끊임없이 향상되고 있지 않는한 만족해서는 안 된다. 그는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하지만, 하나의 정해진 형태의 말로써 만족해서는 안 된다. 그는 주님께 기회를 드려서 그의 노력에 역사하고 그의 마음에 감명을 주게 해야 한다. 그의 마음 속에 거하는 예수님의 사랑은 그로 하여금 사람들과 가정에 접근할 수 있는 수단을 고안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문서 전도자들은, 세상의 짐짓 꾸민 인공적인 예절이 아니고 마음의 친절과 그리스도의 모본을 본받고자 하는 욕망에서 우러난 자연적 결과인 호감을 주는 예절, 자기 수양과 세련된 예절이 필요하다. 그들은 사려깊고, 신중한 습관, 근면과 분별의 습관을 계발하고, 그들의 모든 가능성을 실현시킨 인물이 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노력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하나님과 동료 인간에 대하여 바른 관계를 갖게 하시고자 무한한 희생을 하셨다. 인간의 노력과 결합한 하나님의 도움은 그들을 높고 탁월한 표준에 이를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문서 전도자는 요셉처럼 순결하고, 모세처럼 온유하고, 다니엘처럼 절제해야 한다.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능력이 그를 따를 것이다.

만일 문서 전도자가 그릇된 길을 따르고, 거짓을 말하거나 속임수를 쓰면 그는 스스로의 자존심을 잃어버린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보시고 모든 사업상 거래를 알고 계신다는 것과, 거룩한 천사들이 그의 동기를 헤아리고 그의 말을 듣고 있다는 것과, 그의 상급은 그의 행위에 따라 정해 질 것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잘못된 행동을 인간과 하나님이 살펴보지 못하도록 감출 수 있었다 하더라도 그 자신이 그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과 품성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행동이 품성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장벽을 무너뜨리고 다음 번의 유혹을 더욱 쉽게 받아들이게 해주고, 마침내 사업에 있어서의 거짓말과 부정직이 형성되어 그 사람을 신임할 수 없는 데까지 이르게 한다.

명백한 모순을 경시하는 사람들이 가정과 교회 안에 너무도 많다. 397 자신이 그렇지도 않으면서 그런 척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그들은 정직하고 진실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겉은 아름다우나 속은 부패한 회칠한 무덤과 같다. 마음은 죄악으로 얼룩지고 더러워져 있다. 하늘의 법정에는 그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들을 감각이 없고 죽은 상태로 만들어 준 하나의 과정이 마음 속에서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만일 그들의 품성이 성소의 저울에 달려져서 하나님의 큰 날에 부족하다는 선고를 받는다면 그것은 그들이 지금은 깨닫지 못하는 하나의 재앙이 될 것이다. 진리, 귀중하고 손상되지 않은 진리가 품성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어떤 길을 택할지라도, 생명의 길은 위험으로 둘러싸여 있다. 만일 사업의 어떤 분야에 있는 일꾼들이 그들의 영원한 관심사에 대하여 부주의하고 방심하게 되면 그들은 큰 손실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유혹자는 그들에게 접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는 그들의 발에 그물을 칠 것이며, 그들을 분명치 못한 길로 인도할 것이다. 순결한 원칙으로 마음을 지키는 자들만이 안전하다. 그들은 다윗처럼,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지 아니하였나이다”(시 17:5)라고 기도할 것이다.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이기심과 부패와 더불어 싸우는 일이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한다. 때때로 악인들의 길이 형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 시간이나 한 순간이라도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들은 위험한 길에 놓인다. 그들은 그 위험을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깨닫기 전에, 습관은 쇠줄과 같이 그들을 그들이 길들여 온 악에게 굴복당하게 한다. 하나님은 그들의 길을 멸하신다. 그러므로 그분의 축복이 그들에게 임하지 않으실 것이다.

나는 젊은이들이 하늘과 연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들의 용기를 보여 주기 위하여 유혹의 길에 스스로 들어간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비웃는다. 그들은 바른길을 알고, 그들 스스로를 어떻게 지배할 것인지도 안다. 그들은 얼마나 쉽게 유혹을 저항할 수 있는가! 그들의 타락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헛된 일인가!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그들의 보호의 수단으로 삼지 않는다. 사단은 그들을 위하여 준비한 교활한 올무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스스로 어리석음의 노리개감이 된다.

우리의 큰 원수는, 사자가 그 먹이를 사냥하듯이 영혼들을 파멸시킬 기회를 찾기 위하여 끊임없이 활동하고 있는 부하들을 가지고 있다. 398 젊은이들이여, 그들을 피하라. 그들이 그대들의 친구인 것처럼 보이고 있는 동안, 그들은 교활하게 악한 길과 습관을 끌어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술로 그대들을 칭찬하고, 그대들을 도와주고 지도하겠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그들의 발걸음은 지옥을 향하고 있다. 만일 그대가 그들의 권면을 듣는다면, 그것은 그대의 생애에 있어서 전환점이 될 것이다. 그대들이 하나님과 그분의 사업을 사랑하노라고 항상 공언하고 있으면서도 양심에서 하나의 방호벽을 제거해 버리고, 하나의 악습에 빠지고, 의무의 높은 요구를 한 가지만이라도 등한히 하면 사단을 섬기고 있는 자들의 대열 속으로 그대들을 들어가게 할 기만의 길이 시작될 수 있다. 한 순간의 무분별, 한 발자국의 그릇된 발걸음이 그대들의 생애의 모든 물줄기를 그릇된 방향으로 돌릴 수도 있다. 그대들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23)는 선고를 받을 때까지 무엇 때문에 멸망을 받게 되었는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어떤 젊은이들은, 내가 한 말이 그들의 행동을 잘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비록 그들의 행위는 가장 친한 친구들로부터,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들로부터 숨겨질 수는 있을지라도 그들의 길이 주님으로부터는 숨겨지지 않는다. 나는 이들 중 어떤 사람들이 위선적이며 기만적인 그들의 행로를 언젠가 바꾸리라는 희망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잘못을 범해 온 다른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를 구속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사랑하는 예수님께서 그들을 도와주셔서, 옳은 일을 하려는 그들의 목적을 약화시키고자 하는 자들과 진리를 믿는 그들의 믿음을 흔들어 버리기 위하여 의심과 불신의 감정을 은근히 심어 주고자 하는 자들의 모든 거짓말과 아첨에 대하여 그들의 얼굴을 부싯돌같이 해주시기를 바란다. 젊은 친구들이여, 그대들을 순수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사업에 부적합한 자로 만들려는 자들과 한 무리가 되어 한 시간이라도 보내지 말라. 그대들이 아버지와 어머니 앞에서 할 수 없는 것이나, 그리스도와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부끄러워 할 것을 낯선 사람들 앞에서 전혀 하지 말라.

어떤 사람들은 이런 주의가 안식일 준수자들에게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주의가 필요되는 자들은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안다. 젊은이들이여, 나는 조심하라고 말하는 바이다. 그대들이 천사들과 하나님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악한 일을 하고서 다른 사람들이 거기에 영향을 받지 않게 할수는 없다. 그대들의 행동은 그대 자신의 품성 형성에 어떤 종류의 재료가 사용되고 있는지 보여 주는 한편, 그것은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399 그대들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과. 그분께서 그대들을 값을 주고 샀으므로 그분께로부터 위탁받은 모든 재능에 대하여 그분께 회계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라. 죄악으로 손이 더럽혀져 있거나 마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놓여 있지 않는 자들은 아무도 문서 전도나 권서 사업에서 어떤 부분도 담당해서는 안 된다. 그런 사람들은 분명히 진리의 사업을 더럽힐 것이기 때문이다. 선교 분야에서 일꾼이 되는 자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지도하시게 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올바르게 출발하고 정직의 길을 조용하고 확고하게 걸어가기 위하여 주의해야 한다. 그들은 단호해야 한다. 사단이 그들을 넘어뜨리기 위한 노력에 결정적이고 꾸준하기 때문이다.

적절한 노력으로 훨씬 더 긴 기간의 구독 신청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과 몇 주일 동안만을 위하여 우리의 정기 간행물의 구독 신청을 요구함으로 실수를 범해 왔다. 1 년간의 구독 신청은 여러 차례의 짧은 기간의 것보다 더욱 가치가 있다. 불과 몇 달 동안만을 위하여 신청서를 떼게 되면 때때로 관심은 짧은 구독 신청과 함께 끝나게 된다. 그들의 구독 신청서를 장기간의 것으로 갱신해 주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와 같이 조금만 더 기지와 인내를 발휘하면 1 년간의 구독 신청을 받을 수 있는 데도 수입은 적고 시간의 소비는 많게 된다.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너무 낮게 타진을 한다. 그대들은 계획에 있어서 너무 좁다. 그대들은 필요한 기지와 인내를 다하여 일에 투신하지 않는다. 이 사업에는 다른 어떤 분야의 사업에서보다 더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배우게 될 교훈과 습득될 기지와 훈련은 영혼들에게 봉사하는 어떤 유용한 다른 분야에도 그대를 적합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교훈을 빈약하게 배우고 사람들을 접근하는 데 부주의하고 무뚝뚝한 자들은 목회 사업을 담당할지라도 사람들의 마음을 다루는 데 있어서 똑같은 예절의 부족과 똑같은 기지와 슬기의 부족을 나타낼 것이다.

단기간의 구독 신청을 받아들이고 있는 동안, 어떤 사람들은 장기간의 구독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다. 문서 전도자들은 부주의하고 무관심한 태도로 나가지 않아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꾼들임을 느껴야 하고, 영혼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남녀들에게 진리를 깨우쳐 주기 위한 온갖 노력을 하게 되어야 한다. 400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 수단과 목적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의 일꾼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때에 그분께서는 그들이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을 그들을 위하여 하신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독립해서, 그리고 그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할 것이라고 기대할 필요는 없다. 하나님께 대한 굳은 신뢰심을 가지고 하는 활동이 있어야 한다.

절약은 주님의 사업의 모든 분야에서 필요하다. 이 시대의 청년들의 자연적 경향은 절약을 등한히 하고 멸시하며, 그것을 인색과 편협으로 혼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절약은 가장 넓고 관대한 견해와 감정에 일치된다. 그것이 실천되지 않는 곳에는 참된 관용이 있을 수 없다. 아무도 절약과 남은 조각을 관리하는 최선의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그의 품위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명한 이적을 행하신 후에,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요 6:12)고 말씀하셨다.

전혀 필요하지 않는 호텔 비용으로 상당히 많은 액수의 돈을 쓸 수도 있다. 하나님의 사업이 이 기별의 선구자들의 마음에 너무도 중요했기 때문에 그들은, 비록 1인당 25센트에 불과한 값이었을지라도 호텔에서 좀처럼 식사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젊은 남녀들은 대체로 절약하는 것을 교육받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어디에서나 낭비에 낭비를 거듭한다. 어떤 가정에서는 만일 정상적으로 절약했다면 다른 가족을 부양하기에 충분한 만큼을 그릇되게 낭비한다. 만일 우리의 젊은이들이 여행하는 동안에 그들이 쓰는 돈을 조목 별로 계산할 것 같으면, 그들의 눈이 열려져서 새어 나가는 구멍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이 초창기의 일꾼들이 순회전도자 생활에서 한 것처럼 따뜻한 음식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도록 요구를 받지 않을지라도 그들은 지금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적은 비용으로 그들의 진정한 요구를 채우는 법을 배울 수 있다. 하나님의 사업에 재물을 투자하기 위하여 극기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므로 사업에 임하는 일꾼들 역시 할 수 있는 대로 그들의 비용을 줄임으로써 극기를 실천해야 한다. 우리의 모든 일꾼들이 왈덴스 선교사들의 역사를 연구하고 그들의 희생과 극기의 모본을 본받는 것이 좋을 것이다.

401 우리는 주님을 위하여 해야 할 큰 사업, 오류의 흑암 속에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펴 주는 큰 사업이 있다. 젊은 친구들이여, 그대들은 신성한 책임을 맡은 것처럼 행동하라. 그대들은 성경 학도들이 되어, 그대들 속에 있는 소망의 까닭을 묻는 모든 사람에게 대답할 것을 언제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대들의 참된 그리스도인 위엄을 가지고 그대들이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들려주어야 할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증거를 보여 주라. 이 진리가 심령 속에서 역사하면, 그것은 얼굴과 태도에, 조용하고 고상한 침착성과 그리스도인만이 소유할 수 있는 평안에서 나타날 것이다.

진정한 겸손을 소유하고, 마음이 복음에 나타난 진리로 넓어진 자들은 감지할 수 있는 감화력을 갖게 될 것이다. 그들은 정신과 마음에 감명을 주고, 많은 사람들, 심지어 그들의 믿음에 동조하지 않는 자들에게도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성경의 진리와 우리의 귀중한 문서를 가지고 그들은 성공하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그들 앞에서 길을 열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문서들을 선물과 경품을 매개로 하여 사람들에게 권유하게 되면 선을 위한 영구적 영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우리의 일꾼들이 성경의 진리를 의지하고, 그들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와 영혼들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나갈 것 같으면 그들은 경품이나 저렴한 가격에 의존하는 것보다 영구적인 구독자들을 얻는 일에 더 많은 일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책들을 사도록 권유하기 위해 이러한 경품들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그 책 자체는 값어치가 없을 수도 있다는 인상을 준다. 만일 문서는 두드러진 위치에 놓이게 하고 사례로 사용되는 돈은 몇 권의 무료 서적을 공급하는 일을 위하여 저축되었을 것 같으면 그 결과가 훨씬 더 좋을 것이다. 경품이 제공되면 어떤 사람들은 달리는 사지 않았을 책을 살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구독 신청을 하는 것을 하나의 투기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거절할 것이다. 만일 문서전도자가 성공을 위하여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고 문서 자체의 가치를 제시하고 사례를 적게 의지하면 더 많은 것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이 시대에는 경박한 것이 인기가 있고, 보급이 잘 된다. 물의를 일으킬 수 있는 무엇인가를 요구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잘 팔린다. 402 진정으로 가치 있는 책들은 팔리지 않고 읽히지 않는 반면에, 돈 벌이를 위하여 쓰여진 전혀 가치 없는 출판물들이 나라에 범람한다. 더 나은 임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이런 문서를 취급하는 자들은 선을 행할 귀중한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다. 남녀들의 주의를 사로잡아 성경을 기초로 한 진정으로 귀중한 서적에 흥미를 갖게 하기 위하여 싸워야 할 싸움이 있다. 빛을 전할 목적으로 이 서적들을 전하는 분야에 투신할 양심적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일꾼들을 찾아내는 것은 아직도 더 큰 과업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업을 추구하는 일꾼은 가장 많은 임금을 달라고 조르지 않을 것이다. 그는 어떤 다른 젊은이들이 했듯이, 그가 현대식으로, 품위있게 겉모양을 차리고 가장 좋은 호텔에 숙박하지 않는 한 그에게는 단골 고객이 없으리라고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 문서 전도자에게 필요한 것은 흠잡을 데 없는 의복이나 굉장하고 그럴 듯한 언변이 아니고, 얼굴에 반사되는 정직과 성실이다. 친절과 온유는 얼굴에 나타나며 숙련된 눈은 아무런 속임도 찾아내지 못하고 행동의 건방짐을 조금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덤으로 주는)경품이 유일한 성공의 수단이 되어 있는 많은 사람들이 문서전도자로서 일터에 들어갔다. 그들은 일꾼으로서의 진정한 자격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실제적 신앙에 있어서의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기 전에 그들을 특징지었던 동일한 결함, 동일한 취향과 탐욕을 가지고 있다. 그들에 관하여서는 하나님이 그들의 생각 속에 계시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마음 속에 거하실 장소가 없다. 그들의 품성과 품행에는 사소한 것과 세속적인 것과 저속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저희 마음대로의 길과 그들의 눈에 좋은 대로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증거한다. 그들은 주기를 실천하지 않고 생애를 즐기고자 작정할 것이다. 하늘의 보화는 그들에게 매력이 없고, 그들의 모든 취향은 아래로 떨어지고 있지 위로 향상되지 않는다. 친구들과 친척들은 그런 사람들을 고상하게 할 수 없다. 그들은 악을 멸시하고 선을 택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403 이런 사람들은 적지 않고 많은데 그들을 우리가 적게 의지하면 의지할수록 현대 진리의 사업은 세상 사람들의 눈에 더욱 잘 띄게 될 것이다. 우리의 형제들은, 진리를 오해하고 잘못 나타내고자 결심하지 않은 한, 문서 전도자와 권서원들을 택하는 일에 신중해야 한다. 그들은 모든 진실한 일꾼들에게 좋은 임금을 지불할 것이다. 그러나 문서 전도자들을 매수하기 위하여 액수를 올리지 말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들에게 손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을 이기적이요 낭비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그들에게 참된 선교 사업의 정신과 성공을 보장해 주는 데 필요한 자격으로 감명을 주기 위하여 노력하라. 심령 속에 있는 예수님의 사랑은 문서 전도자에게 빛을 전하기 위하여 활동하는 특권을 깨닫게 해줄 것이다. 그는 그 문제에 대하여 연구하고, 계획하고. 기도할 것이다.

이해하는 데 있어서 장부가 되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지력을 올바로 깨닫고, 가장 세심하게 자신을 계발시키는 젊은이들이 부족하다. 활동은 이런 능력들을 확장시킨다. 그러므로 마음의 계발을 등한히 하지 않게 되면 품성은 균형이 잡히게 될 것이다. 향상의 수단은 모든 사람에게 제공되어 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열매를 구하러 오실 때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하므로 주님을 결코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성화된 확고한 목적은 기사(奇事)를 행할 것이다. 예수님과 거룩한 천사들은,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최선껏 일하는 지성적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의 노력에 성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사랑이 넘쳐흐르는 마음으로 조용하고, 조심성 있게, 그들은 성경을 연구할 사람들을 얻기 위하여 노력하고 그들이 할 수 있는 대로 성경을 읽어 주는 데 종사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진리의 씨를 모든 물가에 뿌리고, 그들을 어두운 가운데서 불러내어 그분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분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이 사업을 올바른 동기에서 하는 자들은 중요한 목회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유약하고 우유 부단한 성품을 나타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정신은 넓어지고, 그들의 태도는 더욱 세련된다. 그들은 향상하는 데 제한이 없을 것이며, 매일 선한 일을 하기에 더욱 적합해질 것이다.

문서 전도 분야의 일꾼들 중 많은 사람들은 희생을 하고 있지 않다. 한 계층으로서의 그들은 다른 어떤 교단의 일꾼들보다 선교 정신이 박약하다. 404 그들을 위하여 길이 모두 준비되어 있을 때, 그늘이 가장 높은 임금을 획득할 수 있을 때, 그들은 즐겨 일터로 들어가고자 한다. 문서전도자들에게는 통속적인 서적을 취급하도록 많은 권유가 있게 되고, 많은 임금이 그들에게 제안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낮은 임금으로 현대 진리를 취급하는 서적을 전하기 위하여 일하기를 거절한다. 그러므로 다른 출판업자들이 제의한 것에 대응하기 위하여 장려금이 증가되었다. 그 결과로 사람들 앞에 우리의 출판물을 내놓는 비용은 커지고, 문서 전도자들 중 많은 사람들은 쉽게 돈을 벌어서 자유롭게 쓴다.

현대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백성들에게 우리의 믿음과 일치된 선교 정신이 없다. 품성에 있어서 참된 금고리가 부족하다. 그리스도인 생애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온유와 인내와 겸손과 친절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런 덕성들은 필요하다. 그러나 용기와 박력과 정력과 참을성이 또한 필요하다. 문서 전도 사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은 연약하고, 무기력하고, 생기가 없고, 쉽게 낙심한다. 그들은 박력이 부족하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하도록 능력을 주는 적극적인 품성의 특성들, 열성을 불지르는 정신과 정력이 없다. 문서전도자는 고귀한 사업에 종사하고 있으므로 그는 그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양 행동해서는 안 된다. 그의 활동에 성공이 따르게 하려면 그는 용기 있고 희망에 넘쳐야 한다.

수동적인 덕성은 물론이요 적극적인 덕성도 계발시켜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분노를 진정시키는 부드러운 말을 할 준비를 항상 갖추고 있는 한편, 악을 저항하는 영웅의 용기를 소유해야 한다.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으로 그는 그의 감화를 선을 위한 적극적인 능력으로 만들 수 있는 품성의 힘을 가져야 한다. 믿음이 그의 품성에서 역사해야 한다. 그의 원칙은 확고해야 하고, 그는 온갖 비열한 의심을 벗어 버리고 고상한 정신을 가져야 한다. 문서 전도자는 교만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과 교제할 때 그는 자랑하는 태도로 자기 자신에 관하여 말함으로 자신을 두드러지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그는 지성적이고 민감한 사람들의 혐오감을 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습관에 있어서 이기적이거나 태도에 있어서 교만하고 오만해서는 안 된다. 405 출판해서 시장에 내놓은 수만권의 책들 중 한 권도 읽을 시간을 발견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하여 많은 경우에 문서전도자가 그의 용건을 밝히면 마음의 문을 굳게 닫는다. 그러므로 그의 사업을 재치있게 하고, 겸손하고 기도하는 정신으로 할 필요가 매우 크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그 귀중한 진리를 자유 자재로 알려 주고 그가 가지고 다니는 순수한 독서물의 큰 가치를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각 사람이 이 사업에 개인적 책임을 느끼는 것이 좋다. 그는 사람의 주의를 가장 잘 집중시키는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진리를 제시하는 그의 태도가 한 영혼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좋은 인상을 주면 그의 감화는 그 영혼에게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게하는 향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에 대하여 빛을 받은 한 사람은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마음을 취급할 때 부주의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문서 전도 사업은 다른 방법으로는 진리에 깊은 감명을 받지 않을 많은 사람들을 접촉할 수 있는 하나님의 수단이다. 그 사업은 훌륭한 사업이며 그 목적은 높고 고상하다. 그러므로 거기에 상응한 태도의 위엄이 있어야 한다. 문서 전도자는 다양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는 무지하고 저속한 사람들과 돈을 가져다 주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그 진가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욕설을 할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유의하지 말 것이다. 그의 선량한 본성은 결코 패배해서는 안 된다. 그는 모든 어려움을 기쁘고 희망적인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그는 사별당한 자, 낙담한 자, 마음이 아프고 상처받은 자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는 이런 사람들에게, 친절한 말과, 용기와 희망과 믿음의 말을 해줄 많은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그는 원하기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생기를 주는 샘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 위하여서는 그 자신이 산 진리의 샘에서 물을 길어야 한다.

문서 전도 사업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 온 것보다 더욱 중요하다. 그러므로 목회 사업을 위하여 사람들을 택할 때와 마찬가지로 그 일꾼들을 택할 때에는 주의와 지혜가 활용되어야 한다. 젊은이들은 지금껏 이루어진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사업을 하도록 훈련받고 많은 사람들이 받아 온 것보다 훨씬 더 적은 급료로 훈련받을 수 있다. 406 깃발을 높이 들라. 극기와 자아 희생의 사람들, 하나님과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 교역자의 군대에 가담하라. 그들은 안락을 기대하지 말고, 냉대와 역경에서도 용감해야 하고 씩씩한 용기로 나와야 한다. 우리의 출판물의 가치를 깨닫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훌륭하게 소개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나와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모든 사람을 주님께서 도와주시기를 빈다. 이 사업에서 활동하는 자들은 마땅히 해야 할 만큼 그들의 성경을 연구하지 않는다. 그들이 그렇게 할 것 같으면 성경의 실제적 교훈이 그들의 생애에 적극적인 의미를 주었을 것이다. 그대의 사업이 무엇이든지 간에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그것을 마치 주님을 위하는 것처럼 하고 그대의 최선을 다하라. 현재의 황금과 같은 기회를 간과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결코 적합하게 해주지 않으신 어떤 사업에서 안락과 성공의 헛된 꿈을 한가롭게 꾸고 있으면서 그대의 생애를 실패작으로 만들지 말라. 그대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일을 하라. 비록 그 일이 선교 지역에서 위험과 어려움 속에서일지라도 그것을 하라. 그러나 내가 그대에게 간청하노니 어려움과 자아 희생을 불평하지 말라. 왈덴스인들을 쳐다보라. 복음의 빛을 몽매한 사람들의 마음에 비춰 주기 위하여 그들이 어떤 계획들을 고안해 냈는지 보라.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상급을 받기 위한 기대로 일하지 말고 세상 끝에 있을 상급에 굳게 고정된 눈으로 일해야 한다. 오늘날 나침반의 바늘이 남북을 가리키듯이 의무에 성실한 남녀들, 그들의 길이 순탄해지고 모든 장애가 제거되지 않을지라도 일하는 남녀들이 필요하다.

나는 문서 전도자들이 어떠해야 할 것을 서술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그들의 눈을 열어 주셔서 이 문제의 길이와 넓이를 깨닫게 해 주시기를 바라며, 또한 그들이 그들의 의무를 이해하고 그들의 인내와 용기와 확고한 성실로 그리스도의 품성을 나타내기를 바란다. 그들은 치밀하지 못하고, 게으르고, 우유 부단한 성품에 의하여 그분을 부인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하라. 젊은이들이여, 그대들이 만일 이 원칙을 문서 전도 분야에 적용시킬 것 같으면 그대들은 존경받게 될 것이며, 많은 사람들은 그대가 옹호하는 진리는 믿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들은 그대들의 믿음대로 살고, 그대들의 매일의 생애는,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빛을 비추는 등경 위에 있는 빛과 같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대들의 교리를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원수들까지도 그들의 반대의 정도만큼 그대들을 존경할 것이다. 407 그리하여 그대들이 이 점에서 많은 것을 얻게 되면 그대들의 단순한 말들은 능력을 갖게 될 것이며, 사람들의 마음에 확신을 가져다 줄 것이다.

출판 사업

배틀크릭의 출판소와 관련된 많은 어려운 일이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 곳에 세워진 기관들은 지상에서 하나님의 사업을 성취시키기 위한 그분의 기구들이다. 이런 이유로 사단은 직접 나서서 어려움을 주고 방해하기 위하여 자신의 재간을 활용한다. 그는 책임 있는 지위에 있든지, 가장 비천한 일을 하고 있든지 간에 이 기관들에 관련된 남녀들에게 유혹물들을 가지고 접근한다. 그리하여 할 수만 있으면 그는 그의 계략으로 그들을 사로잡아 하나님과의 연결을 잃어버리게 하고, 판단이 혼란해지게 하고,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할 수 없게 한다. 그는 생애를 지배해 온 정신이 드러날 때가 분명히 올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 사람들의 생애가 그들이 그리스도와 협력하는 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기를 좋아한다.

여러 해 동안 성인으로 자라난 많은 사람들이, 고상하고 씩씩한 성품을 이루는 요소에 있어서 결핍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성인으로 인정하지 않으신다. 그들은 믿을 수 없다. 이들 중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기관들과 관련되어 있다. 그들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유해한 성질의 것이다. 그것은 좀처럼 의의 편에 서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경건을 공언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들의 모본은 끊임없이 불의를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 회의주의가 그들의 사상에 섞여 있으며, 그들의 말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그들의 힘은 의와 진리와 공의를 왜곡시키는 데 사용된다. 그들의 마음은 사단의 지배를 받게 되고, 사단은 타락시키고, 혼란을 초래하기 위하여 그들을 통하여 역사한다. 그들의 태도가 더욱 호감을 주고 매력적일수록, 그들이 훌륭한 재능을 더욱 풍성히 받으면 받을수록, 그들은 그들의 영향 아래 있는 모든 사람을 타락시키는 일에 모든 의의 원수의 손에 든 더욱 효과적인 기구가 된다. 408 이 사람들이 지배적인 세력으로 되지 못하게 막고 무질서와 흐트러지고 느슨한 원칙을 조장하는 그들의 목적을 관철시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어렵고 감사받지 못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들의 영향을 받는 젊은이들은, 가장 크게 경성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 바른 원칙에 굳게 서지 않는 한 결코 안전하지 않다. 그러나 이 시대에 많은 젊은이들이 사단의 영향에 쉽게 굴복하면서 하나님의 영을 거역하는 것은 슬픈 현실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그릇된 습관은 너무도 단단히 굳어 버렸기 때문에 관리자들 측에서의 가장 큰 노력도 올바른 방향에서 그들의 품성을 꼴 짓는 결과를 가져오지 못할 것이다.

출판소에서 신임하는 위치에 있는 자들은 감당해야 할 무거운 책임이 있다. 그러므로 만일 그들이 날마다 더 깊고 더욱 믿을 만한 그리스도인 경험을 얻고 있지 못하면 그들은 그 위치에 적합하지 않다. 영원한 관심사들을 먼저 생각해야 하고, 신령한 생애에 도움이 될 모든 영향을 환영해야 한다. 주님의 사업과 관련된 실무를 책임지도록 주님께로부터 위탁받은 자들은 영적인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들은 종교적 집회에 참석하기를 등한히 해서도 안 되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그들의 신앙생활과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을 고역으로 간주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간증을 귀담아 들으실 것이다. 그 간증들은 그분의 기념책에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그분의 성실한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같이”(말 3:17) 그들을 아끼실 것이다.

출판 사업의 선두에 서 있는 자들은 그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본이 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무실의 각 부서에서 모든 교역자가 성실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공중 예배에도 성실해야 한다. 만일 그들이 예배당에서 가끔씩만 보인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들이 등한히하는 것을 들어 변명할 것이다. 이 사업가들은 사업 문제에 관하여 언제든지 유창하고 슬기롭게 말하고, 그들이 이 방면에서 그들의 능력을 헛되게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409 그들은 기지와 기술과 지식을 그들의 사업에 투입시켰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과 그들의 정신과 그들의 모든 능력을 하나님의 사업과 하나님의 예배에 성실히 바치도록 또한 훈련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그리하면 그들은 유창한 말로 단순한 그대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가리켜 줄 수 있다. 그들은 열렬하게 기도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들은 권속들에게 그들을 따르도록 명령하고, 출판소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영적 복리에 특별한 흥미를 나타낼 것이다.

모든 일에 그리스도를 첫째로 삼는 자들은 신뢰할 수 있다. 그들은 자아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사업 때문에 신앙적인 관심이 약해지지도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신성한 책임을 맡기셨는가! 그렇다면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스스로의 연약함을 느끼게 하여 그분을 의지하게 하실 것이다.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총명을 의지하는 것은 안전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그들은 날마다 위로부터 힘과 지혜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모든 생각 속에 계셔야 한다. 그리하면 옛 뱀의 간계와 교활도 그들을 죄악적인 의무 등한의 길로 빠져 들어가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신 “기록하였으되”의 단순한 무기를 가지고 원수를 대항하든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마 16:23)는 말로써 그를 물리칠 것이다.

“깨어 기도하라”는 경고로써 예수님은 단 하나의 안전한 길을 가리키셨다. 깨어 있을 필요가 있다. 우리 자신의 마음은 기만적이다. 우리는 인간적 연약함과 약점들로 쌓여 있다. 그러므로 사단은 멸망시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우리는 방심할 수 있지만 우리의 원수는 결코 게으르지 않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경계를 알고 있으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자지 말고, “깨어서 정신을 차려야” 한다. 세상의 정신과 영향을 직면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들이 정신과 마음을 차지하도록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적극적인 실업인은, 세상과 접촉할 때, 시련과 어려움과 염려스런 걱정을 겪게 될 것이다. 그는, 세속적 사상과 계획이 주도권을 잡도록 허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과, 헌신적 정신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과 정신과 심령의 훈련이 요망된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410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그가 구하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게 해주는 강한 논증은 바로 그의 지대한 필요이다.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특별한 준비를 하셨다. 그분은 그들을 초청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막 11:28-30). 예수님과 교제하는 자들은 끊임없는 안식과 평안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분과의 동행을 멸시하고 혼자서 걸어가는가? 왜 우리는 모든 일에 그분과 의논하지 않는가? 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어려움을 가지고 그분께 나와서 그분의 약속의 능력을 입증하지 않는가?

성령께서는 우리의 어두움을 비춰 주시고, 우리의 무지를 깨우쳐 주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많음을 아시고 우리를 도와주신다. 그러나 마음은 하나님을 따라 끊임없이 나가고 있어야 한다. 만일 냉랭함과 세속적인 것이 들어오도록 허용되면 우리는 기도할 마음이 없어지고, 힘과 지혜의 근원되시는 분을 바라볼 용기를 잃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 자매들이여, 항상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딤전 2:8)하라. 그대의 요구를 은혜의 보좌에 상달시키고 매 시간 매 순간 하나님을 의지하라.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이 그대의 동료들과의 관계를 조절하고, 그대의 생애를 선한 열매가 가득한 생애로 만들어 줄 것이다.

아무도 이기심과 자존심과 자아 방종이 그리스도의 정신과 일치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진정으로 회개한 모든 남녀들에게는 우리가 올바로 측정할 수 없는 책임이 지워진다. 세상의 처세훈(處世訓)과 방법이 하늘 왕의 아들과 딸들에게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2, 3). 세상은 우리의 주, 그리스도를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를 알지 못한다.

리뷰사에는 예수님과 구원의 계획을 바르게 나타낼 경영자들이 필요하다. 411 그들이 모든 능력을 세속적 사업이나 출판 사업에 관련된 업무에만 사용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강하게 하고 그분의 나라를 세우는 일을 위하여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을 위하여, 영혼 구원을 위하여 활동하는 것은 사람들이 지금껏 받아왔고 앞으로도 받게 될 가장 높고 가장 고상한 부르심이다. 이 사업의 손실과 이득은 크게 중요하다. 그 결과는 이생에서 끝나지 않고 영원까지 이르기 때문이다.

형제들이여, 그대들이 어떠한 사업에 종사하든지, 어떤 분야의 사업이 그대에게 맡겨지든지, 그대의 신앙을 그대와 함께 가져가라. 하나님과 하늘은 경험과 평생 사업에서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이 사업에서 일하는 일꾼들은 한편으로 편중된 사람이 되어 그들의 품성에 세속적 요소만이 나타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과거에는 출판소에 관련된 사람들 편에서 결정적 실패가 있어 왔다. 그들은 영적인 마음을 갖지 않았고, 그들의 영향은 하늘의 가나안을 향해 가도록 이끌지 않고 애굽을 향하여 물러가도록 하는 것이었다.

P 형제는, 만일 하나님께 바치기만 하면 큰일을 할 수 있는 재능을 받았다. 그는 예민한 정신을 소유하고 있다. 그는 진리의 이론과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를 이해한다. 그러나 그는 신임할 만한 위치에 설 수 있는 안전한 사람이 되게 해줄 온유와 겸손을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다. 그는 성소의 저울에 달려서 부족하다는 것이 나타났다. 그는 경고와 책망에 관한 큰 빛을 가졌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유의하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 그의 행동을 바꾸어야 할 필요도 깨닫지 못했다. 출판소에서 일하는 자들 앞에서의 그의 모본은 그의 공언과 일치되지 않았다. 그는 확고한 목적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는 아이 같았고, 그의 영향은 그리스도에게서 떠나 세상과 일치되게 하는 그런 경향을 가진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P 형제에게 제시되었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에서 돌아섰다. 그것은 세상의 명예와 칭찬보다는 수치와 비난을 수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그리하면 너희가 나의 제자가 되리라”고 거듭거듭 부르셨다. 412 그러나 다른 음성이 세속적인 교만과 야망의 방향에서 부르고 있었다. 그는 그 정신이 육신적 마음을 더욱 즐겁게 해주기 때문에 그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예수님을 등지고, 자기 자신을 하나님에게서 분리시키고, 세상을 맞아들였다. 그는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세상에서 밝은 빛이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지만, 그의 신성한 위탁을 배반했다. 세상은 그의 영혼과 예수님 사이에 끼어 들었으며, 그가 완전히 다른 성격의 경험을 얻고 있어야 할 때 세속적 경험을 얻어 왔다. 그는 취미와 견해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세속적으로 되어 버렸기 때문에 영적 사물을 깨달을 수 없게 되었다.

목회 사업과, 또한 출판소의 신임받는 위치에서의 그의 성공은 그가 유지해야 할 품성에 달려 있었다. 그의 동료 교역자들 앞에서 출입할 때 그릇된 본을 남기지 않기 위하여 고되고 인내력 있는 노력이 필요했다. 그가 채택했어야 했던 계획, 그가 취했어야 했던 행동은 하나님의 말씀에 분명히 밝혀져 있다. 만일 그가 그 말씀에 유의했었더라면 그것은 그의 길에 빛이 되고 그의 미숙한 발을 안전한 길로 인도했을 것이다. 하나님의 영의 증언들은 거듭거듭 그에게 전달되어, 그가 속량받은 주님의 백성들이 걸어가도록 제시된 길에서 벗어나 있는 것을 알려 주고, 그에게 행동의 방향을 바꾸도록 경고하고 호소했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그 자신의 길이 옳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그는 기호를 따르고 그에게 주어진 빛에 유의하지 않았다. 그는 안전한 상담자가 아니었다. 그는 출판소에서 안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또한 안전한 목자가 아니었다. 그는 양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할 것이었다. 그는 훌륭하게 설교했다. 그러나 설교단 밖에서는 그가 설교한 원칙을 실천하지 않았다. 이런 일은 하나님을 불쾌하게 한다.

P 형제는 세상과 연합하므로 그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올무가 되고 있음이 입증되었다. 그들은, 회심할 때 취하는 첫 단계-회개, 믿음, 침례-가 그들에게 요구되는 전부라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것은 치명적 잘못이다. 자아를 정복하기 위하여, 거룩함과 하늘을 위하여 끈덕지게 투쟁하는 것은 필생의 투쟁이다. 413 이 전쟁에는 휴식이 없다. 그 노력은 계속적이고 끈질긴 것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정직은 저항할 수 없는 정력으로 구하고 단호하게 확고한 목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진실한 종교적 경험은 나타나고 심화된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계속적으로 향상하고, 지식과 능력이 증가되는 것은 하나님과의 생명적 연결에서 오는 자연적 결과이다. 거룩한 사랑의 빛은 점점 밝아져서 원만한 광명에 이를 것이다. 이와 같은 경험을 소유하는 것이 P 형제의 특권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등과 함께 은혜의 기름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빛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만일 그가 미구에 결정적인 변화를 하지 않을 것 같으면 그는 경고나 호소가 더 이상 그에게 미치지 못할 곳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의 빛은 어둠 속에서 사라지고, 그는 절망 가운데 남게 될 것이다.

절약의 중요성

R 형제는 어떤 분야의 사업들을 위하여 훌륭한 사업적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그는 출판소에 가납될 만큼 봉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철저하고 유능한 관리자가 되도록 스스로를 교육시키고 훈련시키지 않았다. 그의 관리하에서 큰 태만이 존재해 왔다. 무질서하고, 문란한 상태가 존재해 왔는데, 그것은 즉시 바로잡아야 한다. 돌보지 않은 사소한 일들이 그의 사업과 많이 관련되어 있으며, 결과적으로 누손(漏損)들이 생기게 되었다. 피할 수 있었던 손실과 낭비가 허용된다.

나는 출판소를 지나다니면서 하나님의 천사들이 여러 방들에서 이루어지는 사업을 어떻게 보는지 보았다. 어떤 곳에서는 상태가 다른 곳보다 훨씬 더 낫다. 그러나 모든 곳에는 고쳐져야 할 잘못이 있다. 손실, 손실이 많은 부서에서 보인다. 많은 사람이 일하는 무모한 방법은 출판소에 손실을 초래하고 하나님께서 불쾌히 여기신다. 일이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예수님께서는 절약의 교훈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분은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요 6:12)고 말씀하신다. 너무 많은 큰 사업들을 수행하므로 너무 많은 작은 문제들을 돌보지 않고 버려 두어야 한다면 큰 사업들을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좋을 것이다. 414 왜냐하면 작은 일들은 기계가 조각조각으로 분해되지 않도록 보존해 주는 작은 나사들과 같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의무를 일러준다. 그것은 성실한 봉사의 법칙을 알려 준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 16:10).

나는 지금 출판소에 필요되는 도움 이외에 유능한 사람들이 그 사업의 여러 부서들의 관리를 돕기 위하여 채용되어야 할 것을 보았다. 사업에 경험이 있는 훌륭한 관리자가 채용되어야 한다. 비록 직장의 장(長)들에게 지불되어 온 임금의 배를 주는 일이 필요했더라도 철저한 관리자들, 철저, 신속, 절약 등을 가르칠 사람들을 여러 해 전에 채용했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 R 형제는 이 점에서 부족하다. 그는 잘못을 바로잡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 그는 이 일에 착수하기는 하지만 당장 개혁되어야 할 매우 많은 것들을 등한히 한다. 출판소에 세심한 경제학자, 철저한 사업가가 부족하다. 이 사업에서 가장 좋은 재능과 경험을 가진 사람에게 지불하는 데 필요될 것보다 세 배의 손실이 있다.

유능한 사람, 사업의 여러 부분들을 감독하기에 적절하고, 능률적이고, 실제적인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에 매우 많은 것을 잃어버린다. 실제적인 인쇄자이며 사업의 모든 부분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인쇄하는 것은 알지만 지휘는 전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지만 출판 사업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의 생각은 때때로 좁다. 그들은 사업의 요구에 어떻게 응할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의 사업을 확장시킬 때의 유리한 점과 불리한 점을 평가할 수 없다. 그들은 또한 잘못 판단하고, 잘못 계산하고, 정확하지 못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적당한 평가를 하지 못하고, 출판 사업을 추진시키는 기회들을 이용하지 못한 결과로 손실을 입어 왔다. 이와 같은 기관에서는 무능한 사람들의 계산 때문에 막대한 돈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P 형제는 어떤 면에서 출판 사업을 이해하고 적절히 평가할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영향은 출판소에 손해가 되었다.

415 젊은이들이 일을 배우기 위하여 출판소에 들어올 때 그들이 민첩하고 적절한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되도록 돌볼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 사업을 위하여 인내심 있고, 친절하고, 가르치는 데 재능이 있는 사람이 채용되어야 한다. 만일 한 사람으로 이 일이 충분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을 채용하도록 하라. 그 일이 성실하게 이루어지면 출판소는 세 사람의 임금을 절약하게 될 것이다. 이 젊은이들은 그들의 전경험에 영향을 미칠 습관을 형성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들은 배우는 중에 있다. 만일 그들이 최선껏 그들의 지식을 조금씩 얻도록 내버려 둔다면 뚜렷한 결점들이 그들의 미래의 사업에 내내 나타날 것이다. 철저와 정직과 성실의 기초가 젊을 때에 놓여져야 한다. 젊을 때의 바른 습관의 형성은 가장 중요하다. 만일 규율과 규칙에 순종하고 시간 엄수, 철저, 세련, 질서, 검약 등의 습관이 이루어지도록 훈련받는 대신에 느슨하고 게으른 습관을 형성하도록 허용된다면 그들은 모든 생애를 통하여 이 나쁜 습관들을 간직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사업에서 성공을 거둘 재능을 소유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능력을 바르게 사용하는 중요성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그들은 남은 조각을 거두고 아무것도 버리지 않기 위하여 검약하는 법을 또한 배워야 한다.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할 수 있는 대로 철저하고, 신속하고, 훌륭하게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 그들의 지도 아래 있는 자들이 올바른 습관을 형성하기를 바라신 그들이 바른 모본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 지도자들에게는 그들의 원칙과 일하는 방법을 통하여 그들이 젊은이들의 품성을 꼴 짓는 데 큰 책임이 지워져 있다. 그들은 그들의 사업에 관하여 또한 그들의 신앙적 교육에 있어서 그들이 베풀고 있는 교훈을 통하여 그 젊은이들의 품성 형성을 돕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향상이 표어이다. 젊은이들은 그들이 맡은 어떤 분야의 활동에서나 완전을 목표로 하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만일 철저하지 못하고, 검약하는 자가 아니고, 시간의 활용에 부지런하지 못하거나 감화력에 부주의한 사람들이 어떤 사무실의 책임자로 있게 되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도 같은 방법으로 꼴 짓게 된다. 416 만일 이런 사람들이 훈계를 받고도 변화되지 않을 것 같으면, 비록 거듭거듭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을지라도 그들은 옮겨지고 더 유능한 사람들이 와야 한다. 교역자들은 현재의 상태보다 훨씬 더 유능하고 성실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젊은 교역자들의 첫 인상과 첫 훈련은 가장 높은 수준의 것이어야 한다. 그들의 품성은 이생과 영원을 위하여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돌보는 자들은 크고 엄숙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감명에 대하여 굳어지고 무감각해지기 전에 빚어 만들 수 있는 진흙을 꼴 지어야 한다. 마디가 생기고 얽혀진 상수리나무가 되기 전에 묘목을 가꾸도록 하라. 수량이 많은 강이 되기 전에 개울의 방향을 잡아 주라. 그들 마음대로 기숙사나 친구들을 대하도록 내버려 두면 어떤 사람들은 좋은 것을 택하겠지만, 혹 어떤 사람들은 부적당한 교제를 택할 것이다. 만일 그들의 교육에 신앙적 요소가 겸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유혹에 쉽게 굴복하게 될 것이고, 그들의 품성은 왜곡되고 편파적으로 되기 쉽다. 신성하고 거룩한 사물에 대하여 존경심을 나타내는 젊은이들은, 세상이 그 특성, 곧 죄와 기만과 부정직의 상(像)을 심령에 찍기 전에 이 교훈들을 가정의 지붕 아래서 배우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바로 유아기에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가족 제단에서 배우게 된다.

신앙적 감화의 부족은 출판소에서 슬프게도 느껴지고 있다. 더 큰 헌신, 더 많은 영성, 더 많은 실제적 신앙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남녀들이 이 곳에서 이룩한 선교 사업은 가장 좋은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R 형제의 행동은 하나님께 기쁨이 되지 않는다. 그러한 직책에 있는 사람은 신앙의 사람이어야 한다. 그는 신앙적 문제에 있어서 첫째가는 무리에 속해야 한다. 그의 유일한 안전은 하나님과 산 연결을 이루고 그분께 의존할 필요를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되지 않으면 그는 그의 직임을 올바르게 수행하지 못할 것이며 출판소에서와 그의 사업상으로 접촉하는 자들에게 올바른 감화를 끼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또한 형제들과 불신자들을 막론하고 출판소에서 교제하는 태도를 세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을 보았다. 박애와 순결과 진리와 평화는 거기서 나타나야 할 열매들이다. 417 동기와 행동은 철저히 검토되어 하나님의 법에 견주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이 법은 행동을 규제하는 절대로 확실한 유일의 법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믿을 만한 유일의 신사도(紳士道)가 되기 때문이다.

사업의 연합

주님께서는 각기 다른 여러 지역에서 그분의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자들 사이에 연합이 있기를 바라신다. 태평양 연안에서 그분의 사업에 종사하는 자들과, 록키 산맥의 동쪽 편에서 그분의 사업에 일하는 자들이 동일한 정신과 판단, 곧 마음과 계획과 행동에 있어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분께서는 어느 출판소에 있는 자들이 다른 출판소에 있는 형제들과 다르게 되는 것을 하나의 미덕으로 생각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문서의 비교, 계획과 사상의 교환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다른 출판소에서 향상에 대한 것을 제안해 오면 경영자들은 그 제안을 고려해 보고 개선된 계획과 방법들을 채택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두 출판소가 다같이 매우 크게 향상되고, 관리자들은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사업의 발전에 있어서 가장 결정적이고 적절하게 그 특징을 나타내야 할 교훈은 그들 자신의 지력을 적게 의지하고,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을 더 많이 배우는 것이다. 양 출판소에 있는 사람들이 결과는 고려하지 않고, 그들 마음대로 하는 희열을 맛보기 위하여 그들 자신의 계획들을 고수할 만큼 자기 본위가 되거나 그리스도와 같지 않는 처지에 빠져서는 안 된다.

배틀크릭의 우리 출판소와 관련되어 있는 자들은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할 인물이 되지도, 그들의 가능성을 실현시킨 인물이지도 않다. 그들의 취미와 습관과 의견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사상이 편협해지고 태평양 인쇄소를 시기하고, 비판하는 위치에 서서 우월감을 가질 끊임없는 위험에 놓여 있다. 이 감정은 자라나서 그들 자신의 유익과 또한 태평양 연안의 사업의 유익을 해치고 방해한다. 이 모든 것은 이기적 감정이 지배하여 명석한 판단을 방해하므로 그들 자신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하나님의 사업을 발전시키고 확립시킬 것인지 깨닫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418 이와 같은 지방적 감정은 그리스도의 정신과 반대된다. 하나님은 그것을 좋아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그런 감정에 속한 것을 하나하나 다 정복하기를 바라신다. 사업은 하나이다. 포도원은 여러 분야의 사업에 종사하는 하나님의 종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큰 들판이다. 부주의한 자들을 경고하고 잃어버린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기심 없이 일하는 것 외에 아무런 다른 목적이 있어서는 안 된다.

출판소와 위생병원과 대학에서 하나님의 사업과 관련된 사람들은 그들이 오직 그리스도의 품성과 조화되고 있는 한 안전한 사람들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거룩한 모본되신 분을 조금도 대표하지 못하는 품성의 특성들을 이어받고 있다. 생득권(生得權)으로 받은 어떤 품성의 결함들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그것들을 극복하기는 커녕 귀중한 황금이나 되듯이 간직해 왔고, 그들과 함께 신앙적 경험 안으로 들어왔다. 많은 경우에 이 특성들은 온 생애를 통하여 간직된다. 얼마 동안은 그것들 때문에 야기되는 것이 어떤 특별한 손해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누룩은 작용한다. 그리하여 유리한 기회가 오면 악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뚜렷한 품성의 결함들을 가지고 있는 이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강하고 결정적인 의견들을 가지고 있으며, 진리의 사업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들 자신의 것과 똑같이 깊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견을 굽히는 것이 그리스도를 닮는 일이 될 수 있을 때 양보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반대되는 품성의 특성들을 배양하고 그들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을 더 존중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큰 계획들이 이루어져야 할 중요한 사업과 관련되었을 때, 그들은 그들의 독특한 사상과 특별한 품성의 특성들이 그 사업의 발전에 불리한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한 사람의 마음과 판단이 결정을 좌우하고 계획들을 수행하는 데서 야기될 수 있는 위험을 보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영감의 말씀 성경을 통하여 피차에 복종하고 다른 사람들을 우리 자신보다 더 존중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 하나님의 사업에 영향을 미칠 계획들이 세워지면, 그것들은 선택된 경험 있는 인물들로 구성된 위원회 앞에 제출되어야 한다. 노력의 조화는 이 모든 사업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기질들과 결함있는 품성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결점들을 볼 수 있지만 그들 자신의 잘못은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419 다른 사람들과 의논하지 않고 그들 자신의 계획들을 실천하도록 버려 두면, 그들은 비참한 실수를 범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사상은 더욱 넓어져야 한다. 보편적 인간성에는 하나님의 사업에 손해가 되는 이기심과 야망이 있다. 사리 사욕은 잊혀져야 한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목적이 없어야 하고, 하나님의 일꾼들과 초연한 위치에 서고자 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냉정하고 경건하게 살펴서 겸손하게 의회 앞에 제출하지 않은 것을 고집스런 방법으로 말하고 기록해서도 안 된다.

미래의 세계는 그 불변의, 엄숙한 계쟁점들과 함께 가까이, 너무도 가까이, 매우 가까이 이르러 있다. 그러므로 너무도 큰 사업이 수행되어야 하고, 너무도 중요한 많은 결정들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대의 위원회에서는 선입견과 이기적 사상과 계획들, 또한 나면서 이어받은 그릇된 품성의 결함들을 개입시켜 그것들이 영향을 미치도록 허용되고 있다. 그대들은 충동에 의하여 움직이는 것이 죄라는 사실을 언제나 느껴야 한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능력을 남용하여,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결과에 상관없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사용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대들은 그대들이 받은 능력을 거룩하고 엄숙한 위탁물로 사용하고, 그대들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이므로 그대들이 하는 모든 결정을 심판 때에 보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만일 그대들의 행동이 이기적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들은 어려운 시험을 견디게 될 것이다. 야망은 영적 진보를 중단시키며, 천재도 실수하게 되고, 나태는 죄이다. 그러나 모든 정당한 원칙이 존중되는 생애는 틀림없이 성공적인 생애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의 회의 중 많은 것은 하늘의 인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대들은 하나님과 교통을 유지해 온 사람, 그분의 마음과 그분의 동정 어린 자비를 가진 사람들로서가 아니라, 그대들 자신의 계획을 수행하고 그대들 자신의 마음대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확고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로서 회의들에 온다. 사업의 모든 분야에서 그리스도의 마음과 정신을 가지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대들은 하나님의 일꾼들이므로 예절과 덕성을 소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들이 예수님을 대표할 수 없다.

우리의 기관들에 채용되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축복이 아니면 저주가 될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420 만일 그들이 축복이 되기를 원하면 그들은 날마다 영적 힘을 새롭게 해야 한다. 그들은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활동적 생활의 염려 가운데서 때때로 우리 자신의 동기를 분별하기가 어렵지만, 발전은, 선을 위한 것이거나 악을 위한 것이거나 간에 매일 이루어진다. 호불호(好不好) 간에 개인적 감정이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게 되고, 감각적인 것들이 우리의 시계(視界)를 흐리게 할 것이다. 나는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현명한 분별력과 사업에 대한 적응성과 인간의 마음에 접촉하여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이해하는 지혜가 너무도 부족한 것을 보시고 슬퍼하신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원수들과 연합을 이루어 그들 때문에 타락하게 되는 끊임없는 위험에 대하여 경계하는 한편, 주님께서 그분의 백성으로 주장하는 자들과 초연한 위치에 자신을 두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분께서는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고 말씀하신다. 만일 우리가 진지하고 사랑이 깃든 목적으로 넘어지고 타락하는 자들의 발을 붙들어 주기 위하여 모든 기회를 이용한다면 우리의 생애는 헛되게 산 생애가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태도는 거칠고, 교만하고, 독재적이 되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생애는 그리스도의 숨은 은혜로 향기로워질 것이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종들에게 위탁하신 것에 따라서 요구하시므로 그분의 요구는 합리적이요 공정하다. 그분은 그분께서 주장하시는 것보다 적게 우리에게서 받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의 공의로운 요구는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들은, 우리가 하늘의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드러났다고 우리에게 증거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장 큰 관심으로 우리의 활동을 주시하신다. 그분은 인간성이라는 온갖 약점들을 가진 사람들이 그분의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을 아시고, 가장 부드러운 동정심으로 그들의 실패와 낙담을 주시하신다. 그러나 실패와 결점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줄어질 수가 있다. 만일 우리가 하늘과 조화를 이루어 움직일 것 같으면 봉사하는 천사들은 우리와 함께 일하고 우리의 노력이 끝내 결실을 이루어 성공하게 할 것이다.

지금은 준비하는 큰 날이다. 하늘 성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엄숙한 사업이 우리의 여러 기관에서 일하는 자들의 마음에 끊임없이 제시되어 있어야 한다. 421 사업의 염려가, 모든 개인에게 관계가 있는, 하늘에서 진행되는 일이 경시될 정도로 정신을 빼앗도록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엄숙한 심판의 장면, 속죄의 큰 날이 사람들 앞에 제시되고, 열렬하고 능력있게 그들의 양심에 강조되어야 한다. 성소 문제는 이 시대를 위한 사업의 중요성에 관한 바른 견해를 우리에게 줄 것이다. 그것을 올바르게 이해하면 출판소에 있는 교역자들이 사업에 성공을 기하기 위하여 더 큰 정력과 열성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아무도 사업의 필요와 각 영혼을 따르는 위험에 대하여 부주의하고 눈먼 상태가 되지 않아야 한다. 모든 사람은 빛의 통로가 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우리의 모든 기관에는 자아에 속한 것이 너무 많고 그리스도께 속한 것은 너무 적다. 모든 사람의 눈은 우리의 구속주께로 향해야 하고 모든 사람의 품성은 그분의 품성과 같아야 한다. 잘 균형잡힌 마음과 품성을 가지려면 그분을 모본으로 삼아야 한다. 그분의 생애는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가 자라나는 여호와의 동산과 같았다. 그분의 심령 속에 모든 사랑스러운 품성의 특성을 품고 있는 동안, 그분의 지각과 예절과 사랑은 그분을 인간과 친밀한 동정을 나누게 했다. 그분은 만물의 창조주셨고, 그분의 무한한 능력으로 세계를 유지하셨다. 천사들은 언제든지 그분께 존경을 표하고 그분의 뜻을 순종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유아의 혀짜래기 소리를 들으시고, 불완전한 발음으로 하는 그 찬양을 받아들이실 수 있으셨다. 그분은 어린아이들을 팔에 안으시고 그분의 위대한 사랑의 가슴에 그들을 껴안으셨다. 그들은 그분 앞에서 완전히 편안함을 느끼고 그분의 팔에서 떠나가기를 싫어했다. 그분은 인류의 실망과 불행을 하찮은 일로 보지 않으시고 그분의 마음은 그분께서 구원하러 오신 자들의 고통에 언제나 동정을 느끼셨다.

세상은 본래의 선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우주적인 반역과 도덕적 부패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애는 인류에게 거룩한 자비와 이타적 사랑의 정신을 불어넣어 주므로 인류를 최초의 신분으로 회복시켜 주기 위한 고되고 자아 희생적인 생애였다. 422 세상에 계시는 동안 그분은 세상에 속하지 않으셨다. 사단이 들여온 적의와 비행과 불순으로 더불어 접촉하는 것은 그분에게 있어서 끊임없는 고통이었다. 그러나 그분은 인류를 하나님의 계획과 조화시키고, 지구를 하늘과 연결시키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분은 그 목적을 완수하기 위하여 어떤 희생도 지나치게 크다고 간주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히 4:15)으셨다. 사단은 매 발걸음마다 그분을 공격하고 그분에게 가장 심한 유혹을 제시해 주기 위하여 언제나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벧전 2:22)셨다. 그분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고, 그분의 완전한 거룩함에 비례하여 고통을 겪으셨다. 그러나 흑암의 왕은 그분에게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고, 유혹에 반응한 단 하나의 사상이나 감정도 찾지 못했다.

그분의 교훈은 비처럼 내렸고, 그분의 말은 이슬처럼 방울져 떨어졌다. 그리스도의 품성에는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류에게 결코 나타내신 적이 없는 그런 위엄과, 인류가 결코 계발시킨 적이 없었던 그런 온유가 섞여 있었다. 그처럼 고상하고, 그처럼 순결하고, 하나님과 같은 본성을 그처럼 의식하면서도 그처럼 단순하고, 인류에게 선을 행하기 위한 계획과 목적으로 충만해진 상태로 사람들 사이에 걸어다니신 분은 전에 결코 없었다. 죄를 증오하는 한편, 그분은 죄인에 대한 동정으로 우셨다. 그분은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으셨다. 하늘의 대왕께서 스스로 어린아이의 겸손을 입으셨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품성이다. 우리는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는가? 아, 나의 구주시여, 당신은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 의하여 얼마나 빈약하게 대표되고 있는지요!

사업과 신앙

우리의 여러 기관-우리의 출판소, 우리의 학교, 우리의 건강 기관-에 채용된 자들은 하나님과 산 연결을 이루어야 한다. 이 큰 분야의 사업을 관리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첫째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 특별히 매우 중요하다. 그들이 하나님의 권면을 받지 않고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는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그들은 신임받는 그들의 위치에 적합하지 않다. 그들은 그들의 창조주를 영화롭게 하고, 그들 스스로를 고상하게 하고, 그들의 동료들을 축복할 수 있는 생애의 길을 걸어야 한다. 423 모든 사람은 은혜 안에서의 성장과 신앙적 경험의 깊이를 얻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되거나 장애가 될 때에 계발시키거나 억제해야 할 생득적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사업에 종사하는 자들이, 그들이 누리는 신앙적 특권을 할수 있는 대로 최선껏 이용하지 않으면 바람직하게 그분의 사업에 봉사할 수 없다. 우리는 여호와의 동산에 심겨진 나무로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오셔서 기대할 권리를 가진 열매를 찾으신다. 그분의 눈은 우리 각 사람을 보고 계신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을 읽으시고 우리의 생애를 이해하신다. 이것은 엄숙한 탐색이다. 그것은 의무와 운명에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참으로 큰 관심으로 수행된다. 거룩한 사명을 받은 각 사람에게 이렇게 물어 보자. “나는 하나님의 감찰하시는 눈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나의 마음은 더러움에서 정결해져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마음의 성전 뜰이 매매하는 자들 때문에 너무도 더럽혀지고, 그들에게 점령되어 그리스도께서 거할 곳이 없어졌는가?” 장사하는 소란이 계속되면, 영성은 말라 버리고 심령은 그리스도 없이 방치된다. 비록 사람들이 진리를 공언할지라도 그들이 날마다 하나님과 산 연결 없이 지낸다면, 그들은 이상한 일들을 하게 될 것이고, 결정들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지도적인 우리의 형제들이 그들 스스로의 충동에 의하여 나가고 있는 동안, 안전은 없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멍에를 메지 않을 것이므로 그분과 조화를 이루어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사업의 필요를 깨닫고 이해할 수 없을 것이며, 사단은 그들을 움직여 난처하게 하고 방해하는 위치에 그들을 서게 할 것이다.

나의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헌신의 정신을 계발시키고 있는가? 영적 사물에 대한 사랑이 두드러져 있는가? 그대들은 믿음으로 살아가며 세상을 정복하고 있는가? 그대들은 하나님의 공중예배에 출석하고 있는가? 그대의 음성이 기도와 친교 모임에서 들리고 있는가? 가족 제단을 쌓고 있는가? 그대들은 자녀들을 아침 저녁으로 함께 모으고 그들의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고 있는가? 그대들은 그들에게 어린 양을 따르는 자가 되는 길을 가르치고 있는가? 그대들의 가족이 신앙이 없다면, 그대들의 태만과 불성실을 증거해 준다. 그대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사업과 연결을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들의 자녀들이 부주의하고, 불경건하고, 신앙적 집회나 거룩한 진리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슬픈 일이다. 424 그런 가족은 그리스도와 진리에 반대되는 영향을 발휘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마 12:30)라고 말씀하신다. 가정의 신앙을 등한히 하고, 자녀들의 교육을 등한히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불쾌히 여기시는 일이다. 만일 그대들의 자녀들 중 하나가 강에 빠져서 물결과 싸우면서 익사 직전의 절박한 위기에 놓여 있다면, 어떤 활동이 있겠는가! 인간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어떤 활동이 이루어지고, 어떤 기도가 드려지고, 어떤 열성이 나타나겠는가! 그러나 그대들의 자녀들은 그리스도 밖에, 그들의 영혼이 구원받지 못한 상태에 있다. 아마도 그들은 버릇이 없고 무례하고, 재림신자의 이름에 수치가 되기까지 한 것 같다. 그들은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이 죽어 가고 있다. 그러나 그대들은 부주의하고 무관심하다.

그대들은 자녀들에게 어떤 본을 보여 주고 있는가? 그대들의 가정에는 어떤 질서가 있는가? 그대들의 자녀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사려 깊고, 온유하고, 쉽게 감명을 받고, 신앙적인 것을 존중하고, 하나님의 요구를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그들은 기도의 시간을 존중하도록 가르침을 받고, 아침에 일어나서 가족 예배에 참석하게 되어야 한다.

가정에서 하나님을 첫째로 삼는 아버지와 어머니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임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질서가 잘 잡히고 잘 훈련된 가정, 하나님을 반역하는 대신에 그분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가정을 세상에 보여 주므로 천사들과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그리스도는 그들의 가정에서 낯선 사람이 아니고, 그분의 이름은 존경과 영광을 받는 가정의 이름이 된다. 천사들은 하나님이 가장 높은 위치에 계신 가정을 기뻐한다. 그러므로 자녀들은 신앙과 성경과 그들의 창조주를 존경하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그런 가정들은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삼상 2:30)라는 약속을 주장할 수 있다. 그런 가정에서 아버지가 매일의 의무 수행을 위하여 나갈 때는 하나님과 대화함으로 부드럽고 차분한 정신을 갖게 된다. 그는 그의 공언에서 뿐 아니라 그의 직업, 그의 사업 관계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그는 하나님이 그를 주시하고 있는 것을 알므로 성실하게 그의 일을 하게 된다.

425 교회에서도 그의 음성은 조용하지 않다. 그는 감사하고 용기를 주는 말을 하게 된다. 그는 날마다 새로운 경험을 가지고 자라나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그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동료 인간들의 구원을 위하여 활동하는 유능하고 적극적인 일꾼이다. 그는 자기가 공중예배에 출석하는 일을 등한히 하므로 진리의 사업에서 그로 하여금 더욱 훌륭하고 더욱 효과적인 봉사를 할 수 있게 해줄 특권을 계발시키지 못하게 되면 하나님 앞에서 죄책감과 정죄의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단순한 사업가로 만들고, 일시적인 것보다 훨씬 더 오래 지속하고 훨씬 더 고상하고 숭고한 영원한 유익을 등한히 할 때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지 못하신다. 영원히 존속할 불멸의 것에 가장 큰 기량과 기능을 발휘하지 않을 것 같으면 어디에다 하겠는가? 형제들이여, 주님을 섬기는 방향에서 그대들의 재능을 계발하고, 그리스도의 사업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활동하는 데도 그대들이 세속적인 사업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기지와 능력을 나타내라.

내가 말하기 미안하지만, 많은 가정들의 머리들이 영적 사물에 관한 열성과 관심이 크게 부족하다. 예배의 집에 종처럼 보이지 않는 자들도 더러 있다. 아들은 그들의 결석에 대하여 한 가지 이유, 또 다른 이유, 다시 다른 이유를 들어서 변명한다. 그러나 진정한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신앙으로 기울어져 있지 않는 점이다. 헌신의 정신이 가정에서 계발되지 않고 있다. 자녀들은 주님의 교훈과 경계로 양육되지 않는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만들기를 바라시는 그런 인물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산 연결을 이루고 있지 않다. 그들은 그저 사업가일 뿐이다. 그들은 융화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의 태도에는 온유와 친절과 예의가 너무도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의 동기는 오해를 받고, 그들이 실제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선도 악평을 받는다. 그들의 길이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거슬리는 것인지를 깨닫는다면 그들은 그 길을 바꿀 것이다.

하나님의 사업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서 날마다 산 경험을 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진척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고 말씀하신다. 우리들 중 아무도 유혹의 세력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426 우리의 기관들, 우리의 합회들, 우리의 선교 사업과 관련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능력이신 그리스도로부터 그들을 분리시키기 위한 목적을 가진 강력한 원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언제나 확신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처해 있는 지위가 책임이 크면 클수록 사단의 공격은 더욱 맹렬해질 것이다. 그는, 그들을 충동하여 부당한 길을 걷게 할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의 본을 따를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끊임없이 배우고 있는 자들은 그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대로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허를 찌르려는 사단의 노력은 분명히 실패할 것이다. 유혹은 죄가 아니다. 예수님은 거룩하고 순결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유혹을 받으시되, 사람이 견디도록 결코 요구받을 수 없는 힘과 능력으로 유혹을 받으셨다. 그분의 성공적인 저항을 통하여 그분은 우리에게 뚜렷한 본을 보여 주셔서 우리가 그분을 따를 수 있게 하셨다. 우리가 자기 과신이나 독선에 빠지게 되면 우리는 유혹의 세력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신뢰하게 되면 우리는 전쟁터에서 원수를 정복한 능력을 우리의 도움으로 삼는 것이며, 그분께서는 모든 유혹에서 피할 길을 마련하실 것이다. 사단이 홍수와 같이 밀려올 때, 우리는 성령의 검으로 그의 유혹을 대항해야 한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 되셔서 그를 대적하는 깃발을 우리를 위하여 드실 것이다. 거짓의 아비는 하나님의 진리가 불타는 능력 그대로 그의 얼굴에 던져질 때 떨고 전율한다.

사단은 사람들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가게 하고자 온갖 노력을 다한다. 신앙 생애가 사업의 염려에 흡수되어 버리고, 그들의 마음이 사업에 몰두되어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하고, 은밀한 기도를 드리고 아침과 저녁에 희생의 제단 위에 찬양과 감사의 제물을 계속해서 태울 수 없게 될 때 그의 목적이 성공을 거두게 된다. 기만자 괴수의 간계를 깨닫는 자들이 얼마나 적은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계책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가! 우리의 형제들이 고의적으로 종교 집회에 결석하고,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존경하지 않을 때, 그분께서 그들의 고문과 강력한 방어의 탑으로 선택되지 않을 때, 참으로 신속하게 세속적인 사상과 악한 불신이 들어와서, 헛된 확신과 철학이 겸손하게 의존하는 믿음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427 사람들이 예수님에게서 자신을 분리시켰기 때문에 때때로 유혹이 참 목자의 음성으로 간직된다. 바른 원칙이 마음 속에 간직되고 모든 사업상 거래에서 실천되지 않는 한 한 순간도 안전할 수 없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이런 약속은 금이나 은보다 더욱 가치가 있다. 만일 그대가 겸손한 마음으로 모든 어려움과 난처한 현실에서 하나님의 지도를 구할 것 같으면 그분의 말씀은 은혜로운 응답이 그대에게 주어질 것을 보증한다. 그분의 말씀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그분의 말씀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주님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그대는 결코 난처해지거나 수치를 당하지 않게 될 것이다.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시 118:8, 9).

우리가 생애에서 어떤 위치에 있든지, 우리의 직업이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는 우리의 도움의 필요를 느낄 만큼 충분히 겸손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을 단순하게 의지하고, 모든 일에 그분의 섭리를 인정하고, 기도로 우리의 심령을 토로하는 일에 성실해야 한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그대들이 세상을 통과해 갈 때, 그대 자신의 총명을 의지해 보라. 그러면 그대들은 슬픔과 실망을 거두게 될 것이다.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의지하라. 그러면 그분께서는 지혜롭게 그대들의 발길을 인도해 줄 것이며, 그대들의 사업은 이생과 내세를 위하여 안전해질 것이다. 그대들은 빛과 지식이 필요하다. 그대들은 하나님의 권면을 받아들이든지 그대들 자신의 마음에서 나온 권면을 받아들이든지 할 것이다. 그대들은 그대들 스스로가 밝힌 불꽃 속으로 걸어가거나 의의 태양으로부터 온 거룩한 빛을 그대에게 모으거나 할 것이다.

정책적인 동기에서 행동하지 말라. 우리의 경영자들과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자들의 큰 위험은 그리스도를 제쳐놓고 어떤 도움을 얻고자 그분에게서 돌아서는 것이다. 베드로가 비난과 조소, 핍박과 모욕을 피하기 위하여 정책적인 수완에 의지하고자 노력하지 않았을 것 같으면 그는 그처럼 큰 약점과 어리석음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가장 큰 희망은 그리스도께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분께서 굴욕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불신이 들어와서 마음을 사로잡았다. 428 그는 유혹의 힘에 넘어졌다. 위기의 때에 충성을 나타내는 대신에 그는 사악하게도 그의 주님을 부인하였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고 그들의 영원한 유익을 무시해 버린다. 그들은 잔꾀를 부리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속에 계시지 않으신다. 그것은 그분에게 불쾌한 일이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계획들을 고안하고 실천하는데 신속하기를 바라신다. 그러나 모든 사업적 문제들은 위대한 하나님의 도덕적 율법과 조화되게 처리되어야 한다. 하나님과 우리의 이웃에 대한 원칙은 가장 큰 것은 물론이요 가장 작은 것에 있어서도 매일의 생활의 모든 행동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 이상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등한히 여겨져서는 안 된다. 사업에 관련된 각 사람의 개인적 품성은 거기에 인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린 남녀들이 있다. 그들 자신의 세속적 유익과 그들 자신의 사회와 가정과 친구들과 나누는 기쁨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관심보다 중요시 여겨지지 않았다. 그들은 가옥과 토지, 친척과 친구들이 아무리 귀중할지라도 그들의 애정에 있어서 첫째가 되고 하나님의 사업은 둘째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자들, 진리를 보급시키는 데 생애를 바쳐서 많은 아들과 딸들을 하나님께로 데려오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백 배를 받고 장차 올 세상에서 영생을 소유할 것이라는 약속을 받고 있다. 고상한 관점에서 이기심 없는 동기로 일하는 자들은 몸과 혼과 영을 하나님께 바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자아를 높이지 않을 것이며, 그들은 그들이 책임을 지기에 합당하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책임을 담당하는 일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편의를 도모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질문은 “의무가 무엇인가”가 될 것이다.

책임이 중한 위치에 있으면 있을수록 올바른 영향을 미치는 것이 더욱 필수적이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일을 하도록 택한 모든 사람은 사단의 목표가 된다. 유혹은 맹렬하게 그리고 줄기차게 그를 압박한다. 방심하지 않는 우리의 원수는, 그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형성시키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429 우리는 마지막 때의 위기에 처해 있으며, 사단은 때가 조금밖에 없다는 것을 알므로 크게 분노하여 내려왔다. 그는 온갖 불의의 속임으로 일을 한다. 그러나 하늘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우리들 중 어떤 사람에게든지 유일의 안전책은 예수님을 굳게 붙들고 어떤 것도 도우시는 전능하신 분에게서 영혼을 분리시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단순히 경건의 모양만 가지고 사업상 관계로 하나님의 사업에 관련되어 있는 자들은 염려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분명히 그들의 신뢰를 배반할 것이다. 그들은 유혹자의 꾀에 넘어져 하나님의 사업을 위태롭게 할 것이다. 자아가 지배하게 하라는 유혹들이 있을 것이다. 거만하고 비판적인 정신이 있게 될 것이며, 많은 경우에 있어서 사려 깊은 친절로 다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는 자들에 대한 동정과 배려는 결여될 것이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우리는 어떤 씨를 뿌리고 있는가? 이 시대와 영원을 위한 우리의 추수는 어떤 것이 될 것인가? 주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재능대로 할 일을 맡겨 주셨다. 우리는, 진리와 의의 씨를 뿌리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불신과 불만과 좋지 못한 추측과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의 씨를 뿌리고 있는가? 좋지 않은 씨를 뿌리는 자는 그의 일의 성격을 깨닫고 회개하여 용서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주님의 용서는 뿌려진 씨의 성격을 바꾸어 찔레와 가시를 귀중한 알곡으로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그 자신은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을 것이다. 그러나 추수 때가 오면 황금 물결이 일어나는 곡식이 들판이 있어야 할 곳에 오직 유해한 잡초들만이 있게 될 것이다. 사악한 부주의로 뿌려진 것은 죽음의 작용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은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슬픔에 잠기게 한다. 만일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이 친절과 사랑과 믿음과 용기의 귀중한 씨앗들을 뿌릴 것 같으면, 그들은 하늘로 향하여 여행할 때. 마음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의의 태양의 밝은 광선 아래서 즐거워하고, 수확의 큰 날에 영원한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

올무가 되는 세속적 마음

430 P 부부에게: 내가 그대들의 상황을 볼 때 나의 심령은 심히 슬퍼진다. 지난 밤에 나의 마음은 무겁게 눌렸다. P 형제여, 나는 꿈속에서 그대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대가 하나님과 분리된 것은 분명하였고, 그대는 그대의 참 상태에 관하여 너무도 눈이 멀어 있기 때문에 그대의 진정한 위치를 깨닫게 하고자 시도하는 것은 마치 소경된 사람에게 “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처럼 보였다.

나는 세 시부터 잠을 잘 수 없었으므로 하나님께 그분의 영을 더욱 풍성하게 주시도록 간구하고 있었다. 나는 거듭거듭,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라고 물어 본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빛을 주셨을 때 감히 침묵을 지킬 수 없다. 나는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빛이 거절당하고, 기별을 받은 영혼들이 빛이 그들에게 전해지기 전보다 더 심한 어둠 속에 묻히게 될까 봐 두렵고 떨림으로 해야 한다. 나는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나는 열렬한 기도로써 나의 손을 그분의 손에 놓았다. “나를 인도해 주시고, 나를 지도해 주소서. 나는 혼자서 갈 지혜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매우 가까이 계신 것처럼 보인다. 나는 그분께서 바야흐로 그분의 백성들을 위하여, 특별히 말과 교훈으로 활동하는 자들을 위하여 특별한 사업을 하고자 하시는 것에 깊은 감동을 받는다. 만일 그대들이 그분의 정하신 방법대로 도움을 받을 것 같으면 그분께서는 그대들을 다 같이 도와주고자 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현상태 그대로 머물러 있는 동안 나는 그대에게 용기를 주는 말을 한마디도 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요 5:40)고 하신 말씀은 그대에게 적용된다.

나는 그대를 도와주기 위하여 무엇인가를 할 수 있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대가 스스로 들어간 세속적인 길에 머물러 있는 동안 그대를 위하여 무엇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그대는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은 그대를 사랑한다. 왜냐하면 실제적인 경건에 관한 한 그대 자신과 세상 사람들간의 아무런 간격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에는 그대가 호감을 주고, 재치있고, 선량하다. 그들은 그대에게서 다 같이 그들을 기쁘게 하는 것을 발견한다. 그들은 그대를 칭찬하고, 아첨하는 말을 그대에게 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대를 진정시키고 위로하는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그대의 차례가 되자, 그대는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그들의 부주의한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진정시키고 위로하였다. 431 그대는, 그들이 교만하고 쾌락을 사랑할 때 그들을 격려했다. 왜냐하면 그대의 행동은 죄인에게, “별 일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과 섞임으로써 그대의 판단은 왜곡되고, 하나님께서 증오하시는 죄들은 그대의 눈에 대단치 않고 무해한 것으로 되어 버렸다.

나는 그대가 독선에 의하여 그대의 영혼 주위에 어떤 것도 깨뜨릴 수 없는 장벽을 구축하고 있는 것을 크게 두려워한다. 그대는 이름만의 교회들 안에 있는 신앙 고백자들보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지 못했고, 더 이상 그분의 사업을 하지 못하고 그분의 영으로 감화받지 못하였다. 그대는 안식일의 신성성을 진정으로 깨닫지 못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그분의 거룩한 날을 준수하는 것을 가납하지 않으셨다. 그대는 참된 헌신, 진정한 헌신을 갖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들 중 어느 사람에 의해서도 영광을 받지 못하셨다. 그대는 그분을 체험적으로 알지 못했다. 그대는 너무 오랫동안 그분에게서 분리되어 걸어갔기 때문에 그대에게는 그분이 거의 낯선 사람이 되어 있다.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라야 분별된다. 그러나 그대는 너무 오랫동안 세속적 습관과 취향을 계발시켜 왔기 때문에 그대의 정신을 반대 방향으로 돌이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요 6:60)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을 이해할 수 없다. 빛의 자녀들과 흑암의 자녀들과는 조화가 없다. 바울은 이렇게 묻는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 6:15-18). 요한은 증거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2, 3). 야고보는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묻는다. 432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약 4:4).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가룟인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요 14:15-17, 21-24).

그리스도의 말씀은 그대의 마음 속에서 반응을 얻지 못한다. 그대가 눈을 감아 버리고 마음을 굳게 해 버렸기 때문이다. 하늘의 책에 그대들은 둘 다 세상에 속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대의 마음은 때때로 괴로워하나 그대를 회개하게 하고, 그대의 행동을 바꾸게 할 만큼 충분하지는 않다. 세상은 그대의 애정을 붙들고 있고, 그 관습은 하늘의 교사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더욱 호감을 준다.

자녀들 앞에서의 그대의 모본은 그대가 사랑하노라고 공언하는 진리와 전혀 일치되지 않는다. 진리는 그대와 그들을 거룩하게 하지 않는다. 그대는 이기적 쾌락을 사랑한다. 그리고 교훈과 모본으로 그대의 자녀들을 가르친 교훈은 그들에게 겸손과 온유와 그리스도와 같은 기질을 길러 주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그대는 세상의 표준을 따라 그들을 꼴 짓고 있다. 그대의 매일의 말과 행동이 충실하게 기록되어 있는 기록책을 예수님께서 그대 앞에 펼쳐 주실 때, 그대는 그대들의 생활이 다 같이 굉장한 실패였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대의 최근의 고통이 그대를 위하여 무슨 일을 이루어 주었는지를 나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그대의 눈을 열어 주고 그대의 영혼을 각성시켜 줄 능력을 가졌다면 그대는 이것을 명백하게 해주는 길을 분명히 취하게 될 것이다. 433 철저한 회개가 없으면 그대는 영생의 면류관을 결코 받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대의 자녀들이 그대에게서 배워서 그들의 생애와 품성의 일부로 삼은 교훈들을 먼저 버리지 않으면 그들은 피로 씻은 무리들과 함께 결코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 그대의 모본은, 그들로 하여금 신앙이란 마치 상황이 요구하거나 편의가 지시할 때 입기도 하고 벗어 버릴 수도 있는 의복처럼 생각하게 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감화에 완전한 변화가 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이와 같은 느슨한 생각이 그들을 붙들게 될 것이다. 그들은 무엇이 그리스도인 생애를 이루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진리를 실천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지 못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요 15:18)고 말씀하셨다. 그대는 세상이 한 백성으로서의 우리를 그처럼 크게 반대하는 이유는 우리가 지나치게 비사교적이며, 우리의 의복이 지나치게 검소하고, 오락에 관하여 너무도 엄격하고 교훈적 면에서는 물론이요 실제적으로도 우리 자신을 그들과 너무도 동떨어지게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간직해 왔다. 그대는 만일 우리가 보다 배타적으로 되지 않고 세상과 더욱 잘 어울리게 되면 우리들에게 대한 그들의 견해와 인상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이보다 더 큰 잘못은 없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을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니라”(요 15:19-21).

이것은 그분의 원수들까지도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요 7:46)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분의 말씀이다. 사람들의 말은 그들 자신의 인간적인 생각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다. 그분께서는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된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그러나 이 거룩한 말씀은 세상에 속하여 그 쾌락을 사랑하는 자의 마음 속에 있을 자리가 없다.

434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상세한 지시를 하셔서 아무도 실수할 필요가 없게 하셨다. 그분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고 말씀하신다. 영감을 통하여 주어진 진리는,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딤후 3:16)하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한 말씀으로가 아니고, 많은 말씀으로가 아니고, 모든 말씀으로 사람이 살 것이다. 그대에게 아무리 사소해 보일지라도 그대는 그분께서 주신 한 말씀, 단 하나의 명령도 무시하고서는 안전할 수 없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 5:19). 누구든지 고의적으로 계명 하나를 어기는 자는 그것들 중 어느 하나도 신령과 진정으로 지킬 수 없다. 그는 약간 이탈하는 것으로 여기는 일 외에 그것들을 다 지키노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고의적으로 한가지 점을 어기게 되면 그는 모두를 범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P 부부여, 그대들이 그리스도교를 믿노라고 공언하고 있으면서도 값의 일부를 감춰 두어 왔다. 그대들은 사상과 헌신을 하나님께로부터 도둑질했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재능과 감화력을 그분에게서 도둑질했다. 그대의 성향은 그대에게 올무가 되어 왔다. 그대는 하나님께서 증언들을 통하여 고맙게도 그대에게 주신 빛을 따르지 않았다. 그대는 그대측에서 회개와 개혁을 하지 않으면 그대가 하늘에서 제외될 일들을 해왔다. 만일 그대가 성령을 통하여 그대에게 주어진 책망에 유의했을 것 같으면 그대는 오늘날 하나님 안에서 강하게 되고 그리스도인 경험 가운데서 훨씬 전진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하늘의 책에 완전히 다른 기록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 12:48). 그처럼 큰 빛과 특권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의 아들의 무한한 희생으로 그들에게 전달된 구원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그 귀중한 선물이 그들에게 효력을 나타내지 않게 한 자들의 얼굴에는 그날에 수치와 혼란이 덮일 것이다. 435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끊임없이 바른길, 의인들이 갈 높고 영광스런 길을 가리켜 주고 계신다. 이 길을 가는 자들은 흑암 속에서 걸어가지 않는다. 그 길은 의의 태양에 의하여 조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는 그 길이 세상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그 길을 거절했다. 이기주의와 이기적 야망은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없고, 좁고 위를 향하는 길을 걸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이름까지도 아셨다는 것은 마지막 결산의 날에 알게 될 것이다. 생애의 모든 행동을 보는 보이지 않는 증인이 있다.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분께서는” “내가 네 행위”(계 2:1, 2)를 아노라고 말씀하신다. 어떤 기회들이 등한히 여겨졌으며, 잘못된 길에서 방황하는 자들을 찾아내고, 그들을 안전과 평안의 길로 돌아오게 하고자 애쓰는 선한 목자의 노력이 얼마나 끈기있는 것이었는지 알려진다. 하나님께서는 거듭거듭 쾌락을 사랑하는 자들을 부르셨다. 그분께서는 거듭거듭 그분의 말씀의 빛을 그들의 길에 비추어서 그들이 위험을 보고 피할 수 있게 해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서 가고 있었다. 그들은 넓은 길을 가면서 조롱하고 농담하되 마침내 그들의 은혜의 시기가 끝나기까지 그렇게 하였다. 하나님의 처사는 공의롭고 공평하다. 그러므로 부족함이 드러나는 자들에게 선고가 내리면 모든 입은 막혀질 것이다.

그대가 사람들에게서 오는 칭찬과 영광을 참 모습 그대로 주시했을 것 같으면, 그대들 모두는 오늘날 얼마나 달라졌을 것인가. 그대들은 다 같이 생명수보다 세상의 칭찬을 더욱 갈망한다.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 중요한 사람으로 생각된다는 사상이 그대를 취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존중의 말이 그대를 기만했다. 그대가 영원한 사물을 바르게 평가할 때 부자와 학자들과의 교제와 칭찬이 그대에게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 교만은,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든 간에 그대의 마음 속에 그 이상 거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대는 오랫동안 혼탁한 세속주의의 물을 마셔왔기 때문에 더 좋은 삶의 길을 깨닫지 못한다.

거듭거듭 하나님께서는 그대에게 의무와 책임을 보여 주시므로 그대를 구원하고자 그분의 손을 펴셨다. 이 의무들은 빛의 증가와 더불어 그 성격이 변한다. 436 빛이 비쳐서 잘못이 드러나고 책망을 받을 때, 생애와 품성에는 거기에 따른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마음의 무지의 자연적 결과인 잘못은, 그것이 지적당한 후에는 더 이상 무지의 죄와 판단의 실수가 아니다. 그러나 주어진 빛에 일치되는 결정적 변화가 있지 않으면 그것들은 그 때에 주제넘은 죄가 된다. 그대를 두르고 있는 도덕적 흑암은 점점 더 심해지고, 그대의 마음은 점점 더 굳어지고, 그대는 하나님 보시기에 더욱 불쾌해질 것이다. 그대는 그대가 처해 있는 큰 위기, 그대의 경우에는 빛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완전한 흑암 가운데 가리워질 위험이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빛을 받아들이고, 그 빛이 제구실을 하게 되면 그대는 죄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세상에 대하여 진정으로 죽지만,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게 될 것이다. 그대의 우상들은 버려진 바 되고, 그대의 모본은 자아 방종의 편보다는 극기의 편에 있게 될 것이다.

P 부부여, 그대들이 하나님의 영의 증언들에 유의했을 것 같으면, 그대들은 지금 빛 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들과 조화를 이루어 걷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의 불신은 그대들을 큰 유익에서 차단시켜 버렸다. P 자매는 증언들을 반대하여 일어나지도 않았고, 그것들에게 순종하므로 그것들이 주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믿는 확신도 보여 주지 않았다. 그는 그의 남편이 세상의 칭찬과 존경을 받기를 좋아한다. 그것은 결코 작지 않은 그의 자존심을 만족시켜 준다. 그대들이 피차 이렇게 질문하는 것이 적당할지 모르겠다. “세상에서 나와서 그리스도를 나의 분깃으로 취하는데 나는 왜 이처럼 느린가? 나는 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그분의 요구를 존중하지 않는 것을 내가 알고 있는 자들을 사랑하고 존경해야 하는가? 왜 나는 나의 주님의 원수들과의 친교를 유지하고자 소원해야 하는가? 왜 나는 그들의 습관을 따르고 그들의 의견에 영향을 받아야 하는가?”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그대들은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그대들은 아낌없이 바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까운 장래에 그대의 길을 비추고 있는 빛이 절망의 흑암 속에서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대들은 원수의 땅에 있다. 그대들은 자원해서 그대들 스스로를 거기에 두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의 공격에서 그대를 보호해 주지 않으실 것이다.

그대들의 현 상태에서 그대들은 유익보다는 훨씬 더 큰 해를 입히고 있다. 437 왜냐하면 그대들의 말과 행동으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마 7:13)다고 말하면서도 경건의 모양을 가지고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기 때문이다. 그대들의 생애가 그리스도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생애라면 그대들은 온 세상이 그분을 좇는다고 진정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대들의 고백은 옳은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대들은 겸손과 사랑, 온유와 헌신을 가지고 있는가? 거룩한 생애와 경건한 대화로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눅 12:8)다. 그리스도의 마음과 정신을 소유하지 않는 한 아무도 그리스도를 시인할 수 없다. 그는 그가 소유하고 있지 않는 것을 전달할 수 없다. 매일의 생애는, 거룩하게하는 진리의 능력의 표현이 되어야 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심령 가운데 거하시는 증거가 되어야 한다. 성령의 열매와 반대되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분리시키는 그분의 사업과 반대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말씀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받으리라”(눅 12:9)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세속적인 대화에 의하여, 또한 우리의 의복을 자랑함으로 그리스도를 부인할 수 있다. 그대들에게는 그대들과 그대들의 자녀들에게 올무가 되는 친구들의 집단이 있다. 그대들은 그들과의 교제를 좋아한다. 그들과의 교제를 통하여 눈앞에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 없는 자들이 좇는 유행을 따라 그대들 자신과 그대들의 자녀들이 옷을 입게 된다. 그렇게 하므로 그대들은 세상과 친교를 나누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잠 10:19)렵다. 이런 친구들과의 교제는 그대들을 골방에 찾아가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구하게 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대들의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가게 하는가? 그리고 그대들의 사랑하는 자녀를-그들의 영원한 유익을 등한히 할 때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그대들의 모본은, 부주의한 참람과 맹목적인 자기 과신으로 생애의 여행을 서두르게 하고, 그들을 지도할 확고한 신앙적 원칙을 갖지 않도록 그들을 격려했다. 그들은 안식일, 혹은 여하한 면에서의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양심적인 관심도 없다. 그들은 그리스도인 의무들을 좋아하지 않고, 빛과 평화와 기쁨의 근원되시는 분에게서 점점 더 멀리 떠나가고 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롬 14:23)가 되기 때문이다. 438 요망되는 믿음은 단순히 교리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으로 역사하고 심령을 정결케 하는 믿음이다. 겸손과 온유와 순종은 믿음이 아니다. 그것들은 믿음의 결과요 열매이다. 이 덕성들은 그대들이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므로 얻어야 한다. 그대들은 하늘의 정서와 원칙을 알지 못한다. 하늘의 언어는 그대들 두 사람에게 거의 낯선 언어이다. 하나님의 영은 여전히 그대들을 위하여 탄원하신다. 그러나 나는 그대들이 여러 해 동안 그대들에게 호소해 온 그 음성에 유의할 것인지에 대하여 심각하고 마음 아픈 의문을 갖고 있다. 나는 그대들이, 돌이켜 살기를 바란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가련하고 무가치한 자아를 예수님께 바치는 것을 너무 큰 희생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대들은, 그대의 생애를 세상과 분리시키고 사랑의 끈으로 그리스도께 연합되는 것보다 소망 없는 죄의 속박과 죽음을 택하겠는가? 예수님은 여전히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 이것은 날마다 우리의 마음에서 감사가 우러나게 해야 한다. 자신의 죄와 속절없는 상태를 깨닫는 자는 있는 그대로 나와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 만일 그가 믿음으로 그것을 붙잡을 것 같으면 약속은 그에게 속한다. 자신의 눈에 자신이 부요하고, 존귀하고, 의로운 자, 세상이 보는 것처럼 보고 악을 선하다 하고 선을 악하다 하는 자는 구하여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는 빈 그대로 지나가 버릴 수 밖에 없다.

그대들이 그대들 자신의 영혼을 위해 걱정하게 되면, 그대들이 하나님을 부지런히 찾게 되면, 그대는 그분을 만날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절반만의 회개를 받아 주지 않으실 것이다. 만일 그대들이 그대들의 죄를 버릴 것 같으면 그분은 용서해 주시고자 언제나 기다리고 계신다. 그대들은 지금 곧 그분께 굴복하겠는가? 그대들은 갈바리를 쳐다보고 이렇게 묻겠는가.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이 희생을 하셨는가? 그분께서는 범죄의 고통과 절망의 공포에서 나를 구원하여 그분의 나라에서 말할 수 없이 행복하게 해주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굴욕과 수치와 비난을 견디시고 잔인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는가?” 그대의 죄 때문에 찔림을 받으신 분을 바라보고 결심하라. “주님께서는 나의 생애의 봉사를 받으실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그분의 원수들과 연합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그분의 정부를 반역하는 자들에게 나의 영향력을 빌려 주지 않을 것이다. 439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과 나의 존재 자체는 나를 그처럼 사랑하여 나를 위하여 생명,-그처럼 죄가 많고 실수가 많은 자를 위하여 그분의 거룩한 몸을 모두 주신 분에게 바치기에 너무 작다.” 세상과 분리되어 완전히 주님의 편에 서서 천성의 문에 이르기까지 싸움을 계속하라. 그리하면 그대들은 영광스런 승리를 얻게 될 것이다.

영생의 말씀에 유의하는 자는 복이 있다. “진리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으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될 것이다.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존경과 칭찬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늘이 보기에 귀중할 것이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요일 3:1).

의사의 책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잠 9:10). 전문인들은 그들의 직업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나 의사는 온갖 종류의 마음과 질병을 다룸에 있어서 이 지혜가 특별히 필요하다. 그는 복음을 전하는 목사보다 더 책임이 중한 위치에 있다. 그는 그리스도와 동역자가 되도록 부름을 받고 있기 때문에 확고한 신앙의 원칙과 지혜의 하나님과 강한 연결을 이룰 필요가 있다. 만일 그가 하나님의 권면을 받아들일 것 같으면 그는 그의 활동에 동역할 위대한 치료자를 갖게 될 것이며, 그의 실수로 하나님의 피조물 중 하나를 해치지 않도록 가장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서 행동하게 될 것이다. 그는 원칙에 대하여는 바위와 같이 튼튼하면서도 모든 사람에게는 친절하고 예의가 바를 것이다. 그는 그의 위치에 대한 책임을 느낄 것이며, 그의 행동은 그가 순수하고 이기심 없는 동기와, 모든 일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교훈을 장식하고자 하는 욕망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낼 것이다. 그런 의사는 하늘에서 온 위엄을 소유하게 될 것이며, 세상에서 선을 위한 강력한 기구가 될 것이다. 비록 그가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인정을 받을 수 없을지라도 그는 하늘의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눈에는 그가 금, 곧 오빌의 금보다 더욱 가치있을 것이다.

의사는 엄격하게 절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인간의 육체적 질병은 무수하게 많다. 440 그러므로 그는 온갖 형태의 질병을 취급해야 한다. 그는 그가 제거하고자 노력하는 고통 중 많은 것이 부절제와 다른 형태의 이기적인 방종의 결과임을 안다. 그는 마취성의 담배를 사용하므로 질병에 걸린 젊은이들과 생애가 유망한 사람들과 장년들을 돌보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 만일 그가 지성적인 의사라면 그는 질병을 그 원인까지 추적해 갈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담배를 피우는 형편일 것 같으면 그는 질병의 발상점을 지적하고 그의 환자들에게 그들의 질병의 원인을 성실하게 알려주기를 주저할 것이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습관이 굳어지기 전에 그것을 극복할 필요를 강조하지 못할 것이다. 만일 그가 담배를 피울 것 같으면 어떻게 그가 경험 없는 젊은이들에게 뿐 아니라 그들 주변에 있는 자들에게 담배의 해로운 결과를 알려 줄 수 있겠는가?

이 시대에 담배의 사용은 거의 보편화되어 있다. 여자들과 어린이들은 파이프와 담배와 흡연자들의 더러운 호흡으로 더러워진 공기를 호흡하므로 고통을 받는다. 이런 공기 속에서 사는 자들은 언제나 앓게 될 것이며, 흡연하는 의사는 담배를 버리므로 가장 잘 치료될 수 있는 질병을 고치기 위하여 어떤 약을 항상 처방하고 있다.

의사들이 담배의 형태로 된 우상을 경배하고 있는 동안 하나님과 그들의 동료 인간들에 대한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할 수 없다. 병자들에게 흡연자의 호흡은 얼마나 불쾌한 것인가! 그들은 그를 얼마나 피하는가!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고통받는 인간에게 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항상 유독성 마취제를 가지고 그들의 환자의 병실로 들어온다는 것은 얼마나 모순되는 일인가. 그나마 많은 사람들은 피가 더러워지고 신경 조직이 침해될 때까지 담배를 씹고, 또한 피운다. 선을 행할 수 있고, 이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의사들이 이 혐오감을 갖게 하는 습관에 빠지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특별히 불쾌한 일이다. 사도 바울의 말은 그들에게 해당된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 7:1). 44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흡연자들은 절제 사업에 합당한 일꾼들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절제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과 일치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호주머니가 담배로 채워져 있고 그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씹고, 피우고 뱉을 자유를 갈망하고 있으면서 그들이 음주로 말미암아 이성(理性)과 생명을 파괴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그들 스스로가 담배의 자극을 받고 있으면서 그들이 어떻게 절제회와 절제 강의장에서 도덕적 개혁을 위한 호소를 어느 정도 언행이 일치되게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사람들에게 알콜 음료에 대한 기호를 극복하는데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그들의 말은 순결한 호흡과 함께 나오고 깨끗한 입술에서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 의사와 목사는 엄격한 절제의 습관을 가져야 한다. 사회의 복리는 그들에게서 완전한 절제를 요구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영향은 끊임없이 도덕적 개혁과 사회의 개선에 대하여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건강 법칙을 무시하거나 그 법칙에 무관심하는 것은 고의적인 범죄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현명한 것으로 추앙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을 위임받은 의사에게는 특별히 그러하다. 그는 생명력을 약화시키는 습관에 빠지지 않도록 기대되고 있다.

흡연을 하는 목사나 의사가 어떻게 그의 자녀를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그가 자기 자신에게 허용되고 있는 것을 그의 자녀가 못하도록 야단칠 수 있겠는가? 만일 우주의 통치자가 그에게 명령한 일을 한다면 그는 온갖 형태의 죄악을 경중을 가리지 않고 대적할 것이다. 그는 극기의 편에서. 또한 하나님의 정당한 요구에 대하여 엄격하고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은 순종의 편에서 그의 권위와 영향을 발휘할 것이다. 그의 자녀들을, 이생과 하나님의 도성에 있는 가정에서 행복을 얻기에 가장 유리한 위치에 두는 것이 그의 목적이 될 것이다. 그가 식욕의 방종에 빠져 있으면서 어떻게 이 일을 할 수 있겠는가? 442 그 자신이 내리막 길을 걷고 있으면서 어떻게 그가 다른 사람들의 발을 향상의 사다리에 놓아 둘 수 있겠는가?

우리 구주께서는 극기의 본을 세우셨다. 제자들을 위한 그분의 기도에서 그분은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요 17:19)라고 말씀하셨다. 만일 의사의 책임처럼 그렇게 무거운 책임을 맡는 사람이 자연의 법칙에 일치되지 않으므로 자기 자신에 대하여 범죄하면 그는 그 자신의 행위의 결과를 거두고 자연의 공정한 판결을 받을 것이다. 그 판결에 대해서는 항소할 수 없을 것이다. 원인은 결과를 낳는다. 많은 경우에 맑고 민감한 정신과 튼튼한 신경을 가지고 신속히 분별하고 결단성 있게 행동해야 할 의사가 병약한 신경과, 자극으로 흐려진 뇌를 소유하고 있다. 선을 행하기 위한 그의 능력은 감소되어 있다. 그는 그 자신의 발이 가고 있는 길로 다른 사람들을 인도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은 부절제한 한 의사의 모본을 따르면서 의사가 하는 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날에 그는 자신의 행동의 기록을 대하고 그가 할 수 있었지만 그 자신의 자원하는 행동으로 이기적 방종을 자행함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육체적·정신적 능력을 약화시켰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던 모든 선에 대한 셈을 하도록 요구받을 것이다.

문제는 세상이 무엇을 하고 있느냐가 아니고, 전문인들이 널리 보급되어 있는 흡연의 저주에 관하여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지성을 받은 사람들과 거룩하게 신임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지성적인 이성을 따르는데 진실할 것인가? 이와 같이 책임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보호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바른 방향이나 그릇된 방향으로 인도하는 모본되는 자들이 될 것인가? 그들은 교훈과 모본으로 신체를 지배하는 법칙에 순종하도록 가르칠 것인가? 만일 그들이 그들 자신을 지배하는 법칙에 대하여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실제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그들이 몸과 마음의 건강보다 현재의 방종을 좋아한다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위탁받기에 합당하지 않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남자다움의 위엄을 지니고 어떤 형태의 식욕과 정욕의 속박에서도 벗어나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흡연을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그의 영향권 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해를 주고 있다. 의사를 채용해야 할 경우에 흡연자는 지나쳐 버려야 한다. 그는 안전한 상담자가 될 수 없다. 443 만일 질병이 흡연에 근거된 것이라면 그는 얼버무려 넘기고 참 원인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지적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게 될 것이다. 그 자신의 매일의 습관 속에서 자기 자신을 정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치료의 방법을 실천하는 많은 길이 있다. 그러나 하늘이 인정하는 것은 단 하나의 길밖에 없다. 하나님의 치료법은 그 강력한 성분으로 신체조직에 부담을 주거나 쇠약하게 하지 않을 단순한 자연의 치유제이다. 신선한 공기, 물, 청결, 적당한 음식, 생애의 순결, 하나님을 믿는 굳은 신뢰를 수많은 사람들이 얻지 못하여 죽어 가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의 적절한 사용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일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 치료법이 쇠퇴해가고 있다. 신선한 공기, 운동, 깨끗한 물, 청결하고 쾌적한 주거는 적은 비용만으로도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다. 그러나 약은, 자금의 지출과 신체 조직에 미치는 결과에 있어서 다 같이 비싸다.

그리스도인 의사의 일은 육체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의 노력은 마음의 질병에까지, 영혼의 구원에까지 연장되어야 한다. 질문을 받지 않는 한, 진리의 이론적인 어떤 점들을 제시하는 것이 그의 의무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그의 환자들에게 그리스도를 가리켜 줄 수는 있다. 거룩한 교사 그리스도의 교훈들은 언제나 적절히 사용될 수 있다. 그는 불평하는 자의 주의를 언제나 신선한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의 증거로, 또한 그분의 창조물 속에 나타난 그분의 지혜와 자비로 향하게 해야 한다. 그리하면 마음은 천연계에서 천연계의 하나님께로 이끌리게 되고 그분께서 그분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마련해 놓으신 하늘에 집중될 것이다.

의사는 기도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많은 경우에 그는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고난당하는 일이 더 많아져야 한다. 그리고 환자가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간에, 그의 의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알면 그는 더 큰 안전을 느끼게 된다. 기도는 병자에게 지속적인 확신을 줄 것이다. 그리고 여러 번 그들의 상황이 겸손한 신뢰로 크신 의사에게 제시되면 복용할 수 있는 모든 약보다 그들에게 더 많은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사단은 질병의 창시자이다. 그러므로 의사는 사단의 사업과 능력을 대항하여 싸우고 있다. 444 마음의 질병은 어느 곳에나 만연되어 있다. 사람들이 고통당하는 질병의 10분의 9는 여기에 근원이 있다. 아마도 어떤 가정에서의 분란은 암종병(癌腫病)처럼, 바로 심령을 갉아먹고 생명력을 약화시킨다. 죄에 대한 가책은 때때로 신체 조직을 손상시키고. 정신의 균형을 잃게 한다. 또한 영원히 불타는 지옥과 악인들의 끝없는 고통 등과 같은 그릇된 교리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품성에 대하여 과장되고 왜곡된 견해를 알려 주므로 민감한 마음에 동일한 결과를 자아내었다. 불신자들이 이 불행한 사례들을 최대한 이용하여 미침의 원인을 종교에 돌려 왔다. 그러나 이것은 엄청난 중상이며 그들이 미구에 직면하기를 좋아하지 않을 대상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광기의 발작에 관한 한,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고치는 치료법 중 하나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경을 진정시키는 강력한 치료제가 되기 때문이다.

의사는 그가 취급하도록 부름받은 정신과 마음의 질병에 속한 많은 난처한 상황 등에 대하여 봉사하는 방법을 알기 위하여 인간의 지혜와 능력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만일 그가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알지 못한다면 그는 고통 중에 있는 자를 도와줄 수 없고, 어려움을 악화시킬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하나님을 굳게 붙잡을 것 같으면 그는 병들고 괴로운 마음을 도와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는 그의 환자들에게 그리스도를 가리켜 주고 그들의 모든 염려와 어려움을 무거운 짐을 져 주시는 위대한 분에게로 가져가도록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이다.

죄와 질병 사이에는 하나님께서 정해 놓은 연결이 있다. 어떤 의사도 여기에 예시된 것을 깨닫지 못하고서 한 달 동안 개업할 수는 없다. 그는 그 사실을 무시할 수 있다. 그의 마음이 다른 것들로 너무 차 있기 때문에 그의 주의가 그것으로 기울어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일 그가 관찰하게 되고 정직하다면 그는 죄와 질병이 상호간에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의사는 민감하게 이것을 깨닫고 거기에 따라서 행동해야 한다. 그가 환자들의 고통을 제거해 주고 그들을 무덤의 가장자리에서 돌아오게 하므로 그들의 신임을 얻었다면 그는 질병이 죄의 결과라는 것과 건강과 영혼을 파괴하는 습관을 갖도록 그들을 유혹하고자 애쓰는 것이 타락한 원수라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칠 수 있다. 445 그는 자아를 부정하고 생명과 건강의 법칙에 순종할 필요를 그들의 마음에 새겨 줄 수 있다. 특별히 젊은이들의 마음 속에 그는 바른 원칙을 주입시켜 줄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부드럽고 강한 사랑으로 그분의 피조물들을 사랑하신다. 그분은 천연의 법칙을 세우셨으나 그 법칙은 전제적으로 강요되지 않는다. 신체적 법이거나 도덕적 법이거나를 막론하고 “하지 말지니라”는 말은 모두 약속을 내포하거나 의미한다. 그것을 순종하면 축복이 우리의 발걸음에 따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불순종하면 그 결과는 위험과 불행이 된다. 하나님의 법은 그분의 백성들을 그분께로 가까이 이끌기 위하여 마련된 것이다. 만일 그들이 이끌림을 받을 것 같으면 그분께서는 그들을 악에서 건져내어 선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을 결코 강압하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분별할 수 없지만, 그분을 신뢰하고 우리의 행위로써 우리의 믿음을 나타내야 한다.

불신자나 공공연하게 비신앙적인 자들에 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의사들은 별로 없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은 후자의 계층에 속한 자들보다 우선적으로 후원을 받아야 한다. 우리가 신앙심 없는 의사를 불신하는 것은 당연하다. 유혹의 문이 그에게 열려 있고, 교활한 마귀는 저속한 사상과 행동을 자극할 것이다. 그러므로 격렬한 정욕을 억누르고 죄를 방어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뿐이다. 도덕적으로 타락한 자들에게는 순결한 마음을 가진 자들을 부패케 할 기회가 없지 않다. 그러므로 방종하는 의사가 하나님의 날에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병자를 돌보고 있노라고 공언하면서도 그는 거룩한 의무를 저버렸다. 그는 하나님의 피조물들의 심령과 육체를 다 같이 타락시키고, 그들의 발을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에 서게 했다. 우리의 사랑하는 자들을, 품행을 더럽히고 심령을 파멸시키는 불순한 사람의 손에 맡기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무신론의 의사가 죽어 가는 자들의 병상 곁에 있는 것은 얼마나 부적당한 일인가!

의사는 거의 날마다 죽음을 직접 보게 된다. 그는 말하자면 무덤의 가장자리를 밟고 있다. 많은 경우에 고통과 죽음의 장면을 잘 알기 때문에 인간의 불행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부주의해지며 병자의 치료에 무모해진다. 그런 의사들은 부드러운 동정을 갖지 못하는 것 같다. 그들은 거칠고 무뚝뚝하기 때문에 환자들이 그들의 접근을 두려워한다. 446 그런 사람들은, 그들의 지식과 기술이 아무리 많을지라도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별반 유익을 줄 수 없다. 그러나 만일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위하여 나타내신 사랑과 동정이 의사의 지식과 연합되어 있다면 그가 곁에 있는 것이 축복이 될 것이다. 그는 그의 환자를 단순한 인간 기계의 한 부품으로 보지 않고 구원받거나 잃어버린 바 될 수 있는 하나의 영혼으로 볼 것이다.

의사의 의무는 힘든 것이다. 그가 겪고 있는 정신적·육체적 긴장을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질병과 죽음으로 더불어 싸울 때는 모든 정력과 능력이 가장 강력하게 동원되어야 한다. 때때로 그는 한 순간의 서투른 손놀림, 그릇된 방향에서의 털끝 만한 실수일지라도 한 영혼을 준비되지 않은 채 영원한 곳으로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성실한 의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동정과 기도가 참으로 많이 요망된다. 이면에서의 그의 주장은 가장 헌신적인 목사나 선교 사업을 하는 자의 주장보다 열등하지 않다. 그는 너무도 흔히 필요한 휴식과 잠, 심지어 안식일의 종교적 특권까지도 빼앗기므로 두 배의 은혜, 날마다의 새로운 공급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하나님을 붙드는 손을 놓아 버리고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보다 영적 흑암 속으로 더 깊이 빠져갈 위험이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가 부당한 비난을 받게 되고, 홀로 서서 가장 맹렬한 사단의 유혹의 대상이 되도록 버림을 받고 오해를 받고 친구들에게 배반당한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의사의 의무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과 의사들이 걱정에서 벗어날 때가 거의 없고 심지어 안식일에도 그렇다는 것을 깨닫고서 이것을 그들의 평생 사업으로 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큰 원수는 하나님의 솜씨로 된 작품을 파괴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고, 교양과 지성을 갖춘 사람들은 그의 잔인한 힘을 대적하여 싸우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 올바른 종류의 사람들이 더 많이 이 전문직에 스스로를 바칠 필요가 있다. 적절한 사람들에게 이 사업에 자격을 갖추도록 권유하기 위한 힘든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넓은 원칙 위에 품성의 기초를 놓은 사람들, 그들을 탁월하게 높은 수준에 이르게 해줄 천성적인 정력과 힘과 인내를 소유한 사람들이다. 모든 사람이 성공적인 의사가 될 수는 없다. 447 많은 사람들은 모든 면에 준비되지 않은 채 이 전문직의 사명을 맡았다. 그들은 필요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또한 성공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기지, 주의력과 지성을 갖추지 않았다.

의사가 육체적 힘을 가지고 있으면 일을 훨씬 더 잘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허약할 것 같으면 그의 직업에서 있을 수 있는 고된 활동을 견딜 수 없다. 약한 체질을 가진 사람, 소화 불량의 증세가 있는 사람, 완전하게 극기하지 못하는 사람 등은 온갖 종류의 질병을 다룰 자격을 갖출 수 없다. 책임이 어느 정도 적은 위치에서 유용하게 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성공할 수 있는 온당한 희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시간과 돈을 들여서 의학을 공부하도록 권유하지 않도록 크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의사로서 유능하게 될 수 있는 사람으로 선발되어 의학을 공부하도록 권유를 받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 의과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법을 계속 드높이지 않았다. 그들은 원칙을 희생하고 하나님을 붙드는 손을 놓아 버렸다. 그들은 혼자의 힘으로 넷째 계명을 지킬 수 없고, 야망적인 자들과 세상을 자랑하는 자들과 천박한 자들과 회의론자들과 불신자들의 조롱과 조소를 대항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종류의 핍박을 그들은 대항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세상에서 더 높이 올라가고자 야망을 품었지만, 불신의 어두운 산에 부딪쳐 넘어져 믿을 수 없이 되어 버렸다. 온갖 종류의 유혹이 그들 앞에 펼쳐졌고 그들은 저항할 힘이 없었다. 이들 중 어떤 사람들은 부정직하고, 약삭빠른 정략적인 사람들이 되어 중한 죄를 범하게 된다.

이 시대는 의학 공부를 시작하는 모든 사람에게 위험이 있다. 때때로 그들의 교수들은 세속적으로 현명한 사람들이며, 그의 동료 학생들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불신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신앙 없는 교제를 통하여 영향을 받을 위험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의학과를 공부하고서도 원칙에 성실하게 남아 있게 되었다. 그들은 안식일에 공부하고자 하지 않았다. 448 그리하면서도 그들은 사람들이 의사의 의무를 위한 자격을 갖추는 동시에 그들에게 교육을 받도록 자금을 조달해 준 사람들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다니엘처럼 그들은 하나님을 존중했고, 그분께서는 그들을 지켜 주셨다. 다니엘은 왕궁의 관습을 따르지 않기로 마음 속으로 뜻을 정하였다. 그는 왕의 진미를 먹지 않고 그의 술을 마시고자 하지 않았다. 그는 힘과 은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의 점성술사와 점장이와 마술사들보다 나은 지혜와 기량과 지식을 그에게 주셨다. 그에게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삼상 2:30)라는 약속이 실증되었다.

젊은 의사는 다니엘의 하나님께로 접근해 간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통하여, 다니엘이 그의 높은 위치에서 유능했던 것처럼 유능해질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성공적인 업무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신앙적 원칙이 등한히 되고 있는 반면에 모든 중요한 것들을 과학적으로만 준비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사업을 수행함에 있어서 지혜를 얻기 위하여 예수님께 의지할 필요를 느껴야 한다는 것을 비웃는 많은 사람들이 전문직에서 기술을 갖춘 사람으로 칭찬을 받는다. 그러나 그들의 과학 지식을 의지하는 이 사람들이 하늘의 빛으로 조명을 받았을 것 같으면, 그들이 얼마나 더 크게 탁월해졌겠는가! 그의 힘이 얼마나 더 강해지고, 얼마나 더 큰 확신을 가지고 어려운 상황들을 취급할 수 있었겠는가! 영혼과 육체의 위대한 의사이신 분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는 사람은 하늘과 땅의 자원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 그러므로 그는 신앙이 없는 사람이 소유할 수 없는 지혜를 가지고 틀림없이 정확하게 일할 수 있다.

의사들이거나 간호사들이거나 간에 병자를 돌보는 일을 맡은 자들은, 그들의 사업이 예리한 여호와의 눈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성실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의사들이 차지한 것보다 더 중요한 선교 분야는 없다. 사람이 이보다 더 큰 선을 이루거나 기쁨의 면류관에 빛날 더 많은 보배를 얻을 수 있는 분야는 없다. 그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하나의 향기로운 냄새로서 그가 들어가는 모든 병실로 가지고 갈 수 있다. 그는 죄로 병든 영혼에게 참된 치료의 유향을 가져 갈 수 있다. 그는 병자들과 죽어가는 자들에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가리켜 줄 수 있다. 449 그는 생명이 위기에 놓인 자들이 더 나쁘게 되지 않도록 그들에게 영원한 유익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암시를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열 가지 중 아홉의 경우는 죄를 용서해 주시는 구주에 관한 지식이 정신과 몸에 있어서 다 같이 그들을 더 좋게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사단의 능력을 제한시킬 수 있으시다. 그분은 죄로 병든 영혼이 심령은 물론이요 육체의 질병까지도 치료받기 위하여 의지할 수 있는 의사이시다.

전문직에서 피상적이고 악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 전문직의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는 사람에 대하여 편견을 일으키고 그의 길에 장애물들을 놓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시련들은 품성의 순금을 드러내는 데 불과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구설의 다툼에서 지켜 주는 그의 피난처가 될 것이다. 비록 그의 생애가 어렵고 극기하는 생애로 보일지라도, 하늘의 안목에는 그것이 성공이 될 것이며, 그는 하나님의 귀족들 중 하나로 간주될 것이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

다가오는 위기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7). 가까운 장래에 우리는 계명을 지키는 자들을 대항하는 개신교회들이 세상과 법왕권으로 더불어 연합할 때 이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볼 것이다. 지나간 시대에 가톨릭교도들을 충동했던 그 동일한 영이 개신교도들을 이끌어서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고 있는 자들에게 대하여 유사한 길을 가게 할 것이다.

교회와 국가는 오늘날 장래의 투쟁을 위하여 준비하고 있다. 개신교도들은 로마교도들처럼 일요일을 앞세우기 위하여 변장하여 활동하고 있다. 어느 곳에서나 법왕권은 높고 거대한 건축물들을 쌓아 올리고 있으며, 그 건물의 은밀하고 깊은 곳에서는 그의 이전의 핍박이 되풀이될 것이다. 450 거짓 이적들이 큰 규모로 나타날 길이 마련되고 있으며, 그 이적들을 통하여 사단은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고자 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하여 내리게 될 조서는 에스더 시대에 유대인에 대하여 아하수에로가 내린 조서와 매우 유사할 것이다. 페르시아의 칙령은 모르드개에 대한 하만의 적의에서 생겼다. 모르드개는 그를 해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께만 속하는 경외심을 그에게 보여 주기를 거절했다. 유대인에 대한 왕의 결정은 그 독특한 백성에 대한 오전(誤傳)을 통한 거짓 구실 아래 이루어졌다. 사단은 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보존한 자들을 세상에서 제거해 버리기 위하여 그 계략을 획책했다. 그러나 그의 음모는 사람들의 자녀들 가운데서 다스리는 반대 세력에 의하여 분쇄되었다. 능력이 뛰어난 천사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호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들의 원수들의 계획은 그들의 머리로 돌아갔다. 오늘날 개신교 세계는 안식일을 지키고 있는 적은 무리를 성문에 있는 모르드개로 본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존경심을 나타내고 있는 그의 품성과 행위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을 버리고 그분의 안식일을 짓밟고 있는 자들에게 끊임없는 책망이 된다. 환영받지 못하는 방해꾼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제거되어야 한다.

지나간 시대에 성실한 자들에 대하여 모략을 꾸민 똑같은 능숙한 마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율법을 순종하는 자들을 지상에서 제거해 버리기 위하여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사단은, 양심적으로 인기있는 관습과 전통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겸손한 소수에 대하여 분노할 것이다. 지위와 명성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의논을 하기 위하여 불법한 자들과 비열한 자들로 더불어 합세할 것이다. 부와 천재와 교육은 그들에게 모욕을 안겨 주기 위하여 연합할 것이다. 핍박하는 통치자들과 목사들과 교인들은 그들을 대적하여 공모할 것이다. 음성과 글로써, 자랑과 위협과 조소로써 그들은 그들의 믿음을 전복시키고자 노력할 것이다. 거짓된 주장과 분노에 찬 호소로써 그들은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할 것이다. 성경상 안식일을 옹호하는 자들에게 “성경에 이렇게 말했다”는 주장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부족을 채우기 위하여 압제적인 법령을 의지할 것이다. 451 인기와 후원을 얻기 위하여 입법자들은 일요일 법령을 제정하라는 요구에 굴복할 것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십계명의 조항들을 깨뜨리는 제도를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싸움터에서 진리와 오류간의 대쟁투의 마지막 큰 싸움이 전개된다. 그런데 우리는 그 싸움의 결과에 대하여 확실히 모르도록 버려져 있지 않다. 모르드개의 시대에서처럼 이제 주님께서는 그분의 진리와 그분의 백성들을 옹호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깨뜨리고 법왕권의 제도를 강요함으로써 우리 나라는 의에서 스스로 완전히 분리될 것이다. 개신교가 로마의 세력과 손을 잡기 위하여 구렁을 넘어 손을 뻗게 될 때, 그가 강신술과 악수하기 위하여 심연(深淵)저편으로 건너갈 때, 이 삼중 연합의 영향 아래 우리 나라가 개신교와 공화 정부로서의 그 헌법의 모든 원칙을 거부하고 법왕권의 거짓과 속임을 퍼뜨릴 준비를 갖추게 될 때, 우리는 놀라운 사단의 활동시기가 왔다는 것과 끝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로마 군대의 접근이 제자들에게 있어서 임박한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징조가 되었던 것처럼 이 배교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의 한계가 이르렀고, 우리 나라의 죄악의 잔이 찼고, 자비의 천사가 바야흐로 날아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징조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때에 선지자들이 야곱의 환난의 때로 묘사한 그 고통과 난관의 장면으로 돌입할 것이다. 성실한 자들, 핍박당하는 자들의 부르짖음은 하늘에 상달된다. 아벨의 피가 땅에서 부르짖었던 것처럼 또한 순교자들의 무덤에서, 바다의 무덤에서, 산중의 동굴에서, 수도원의 지하실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소리가 있다.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계 6:10).

주님께서는 그분의 일을 하고 계신다. 온 하늘은 움직이고 있다. 온 땅의 재판장께서는 미구에 일어나셔서 그분의 모욕당한 권위를 옹호하실 것이다. 구원의 표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의 율법을 존중하는 자들과 짐승의 표나 그의 우상을 거절하는 자들에게 찍혀질 것이다.

452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을 보여 주시므로 그분의 백성들이 반대와 분노의 폭풍을 대항하여 설 준비를 갖출 수 있게 하신다. 그들 앞에 놓여 있는 사건들에 대하여 경고를 받은 자들은 다가오는 폭풍을 조용히 기다리면서 주님께서 환난의 날에 그분의 성실한 백성들을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게으르게 기다림으로써가 아니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열렬히 활동함으로 주님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처럼 되어야 한다. 지금은 우리의 마음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얽히도록 허용할 때가 아니다. 사람들이 자고 있는 동안, 사단은 주님의 백성들이 자비나 공의를 입지 못하도록 일들을 그렇게 추진하고 있다. 일요일 운동은, 오늘날 암암리에 그 길을 마련하고 있다. 지도자들은 문제의 진상을 숨기고 있으며, 그 운동에 연합하는 많은 사람들은 저류(低流)가 어디로 향해 흐르고 있는지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그 공언은 부드럽고 그리스도인답게 보이지만 그것을 말할 때는 용의 정신이 나타날 것이다. 그 무서운 위험을 피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여 일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우리는 우리의 입장을 백성들 앞에 적절하게 제시함으로써 편견을 제거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문제의 진상을 사람들 앞에 제시함으로 양심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한 조치에 대하여 가장 효과적으로 항의를 제기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살펴보고 우리의 믿음에 대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선지자는,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단 12:10).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는 사람들은 그들 앞에 중요한 사업이 있다. 지금은 우리의 능력의 팔을 붙들 때이다. 다윗의 기도는 목사들과 평신도들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 “저희가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의 일하실 때니이다”(시 119:126). 주님의 종들은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며,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으로 욕되게 하여 열국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욜 2:17)라고 부르짖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멸망을 피할 희망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일 때, 그들의 가장 심한 곤경에서 언제나 그분의 백성을 위하여 역사하셨다. 악인들, 곧 교회의 원수들의 계획은 그분의 능력과 지배하는 섭리에 종속된다. 453 그분은 정치가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으시다. 사나운 자들과 냉담한 자들,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와 그분의 백성들을 미워하는 자들의 분노도, 그분께서 강물까지 명령으로 방향을 돌릴 수 있는 것처럼, 돌이킬 수 있으시다. 기도는 전능하신 분의 팔을 움직인다. 하늘에서 별들을 질서 있게 움직이게 하시는 분, 말씀으로 큰 깊음의 물결을 제어하시는 분, 그 동일한 창조주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이 믿음으로 부르짖기만 하면 그들을 위하여 역사하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경고가 세상에 주어져서 그 경고에 유의하는 모든 사람들이 싸움을 위하여 준비될 때까지 흑암의 세력을 제어하실 것이다.

시편 기자는, “진실로 사람의 노는 장차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는 주께서 금하시리이다”(시 76:10)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시험하는 진리가 모욕을 통해서 일지라도 앞에 제시되어 검토와 논의의 대상이 되도록 의도하신다. 사람들의 마음은 동요되어야 한다. 모든 투쟁과 모든 비방과, 모든 중상은 의문을 일으키고 달리는 깨울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깨우는 하나님의 수단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의 과거의 역사에서도 그러했다. 느부갓네살이 세운 큰 금신상에 경배하기를 거절하므로 세 히브리인들은 불타는 풀무 속에 던져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들을 불꽃 속에서 보호하셨고, 우상숭배를 강요하기 위한 시도는 참 하나님을 알려 주는 지식을 모인 방백들과 넓은 바벨론 나라의 위대한 사람들 앞에 제시해 주는 결과가 되었다.

왕 이외의 어떤 신에게도 기도하지 못하도록 조서가 내렸을 때도 그러했다. 다니엘이 그의 습관대로 하루 세번씩 하늘의 하나님께 간구하였을 때, 방백들과 통치자들의 주의가 그의 사건에 집중되었다. 그는 자기 자신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참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려 주고, 그분만이 경배를 받으셔야 할 이유와 그분께 찬양과 존경을 표해야 할 의무를 알려 줄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사자 굴에서의 다니엘의 구원은 그가 경배한 분이 참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이셨다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되었다.

바울의 투옥 역시 달리는 빛이 전달될 길이 없었던 왕들과 방백들과 통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454 진리의 전파를 방해하기 위한 노력은 그것을 확산시키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진리의 탁월성은 보여질 수 있는 모든 측면에서 더욱 분명하게 보여진다. 오류는 가장과 은폐가 필요하다. 그것은 천사의 옷을 스스로 입는다. 그러나 그 참 성격이 모두 드러나면 성공의 기회는 줄어든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율법의 보존자로 삼으신 백성은 그들의 빛이 숨기어지도록 해서는 안 된다. 진리는 지상의 어두운 곳들에서 선포되어야 한다. 장애들을 대항하여 극복해야 한다. 큰 사업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 사업은 진리를 아는 자들에게 위탁되었다. 그들은 지금 도움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과 더불어 크게 화목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들의 마음 속에서 빛을 발하여야 한다. 그리스도의 영이 그들에게 부어져야 하고, 그들은 심판에 설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그들이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고 있는 동안, 하나의 설득력 있는 능력이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제시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에 따를 것이며, 그 빛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접근할 길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는 사단의 마술에 걸린 땅에서 더 이상 자지 말고, 우리의 모든 자원을 일깨우고 하나님의 섭리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재능을 이용해야 한다. 마지막 경고는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계 10:11) 선포되어야 한다. 그리고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는 약속이 주어져 있다.

세상의 빛되는 교회

주님께서는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을 불러내어 거룩한 진리를 그들에게 위탁하기 위하여 세상에서 그들을 분리시키셨다. 그분은 그들을 당신의 율법의 보존자로 삼으시고 그들을 통하여 그분 자신에 관한 지식을 사람들 사이에서 보존하고자 계획하셨다. 그들을 통하여 하늘의 빛은 세상의 어둔 곳들을 비추어야 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우상숭배에서 돌이켜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을 섬기도록 호소하는 음성이 들려야 할 것이었다. 455 히브리인들이 그들이 맡은 일에 성실했을 것 같으면 그들은 세상에서 능력이 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방패가 되실 것이었고, 그분은 그들을 모든 다른 민족들보다 높이실 것이었다. 그분의 빛과 진리는 그들을 통하여 드러날 것이고, 그들은 그분의 정부가 각종 형태의 우상숭배보다 우월하다는 모본으로써 그분의 현명하고 거룩한 법칙 아래 서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았다. 그들은 다른 민족들의 우상숭배의 습관을 따랐으며, 그들의 창조주의 이름을 지상에서 높이는 대신에 그들의 행동으로 그분의 성호는 이교도의 모욕을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은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지식은 세상에서 널리 보급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압제자의 손에 맡겨서 포로로서 그들을 나라들 사이에 흩으셨다. 고통 중에서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범죄를 고백하고 주님을 찾았다. 이교도의 나라들로 흩어짐으로써 그들은 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널리 퍼뜨렸다. 하나님의 율법의 원칙은 다른 민족들의 관습과 행동과 상치되었다. 우상 숭배자들은 참 믿음을 근절하고자 노력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섭리로써 당신의 종 다니엘, 느혜미야, 에스라를 왕들과 통치자들로 더불어 직접 대면하여 그 우상 숭배자들이 빛을 받을 기회를 갖게 하셨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번영할 때에 그분의 백성들이 그들의 영역 안에서 하도록 주셨지만 그들의 불성실로 등한히 해온 사업은 포수 중에 큰 시련과 난관 아래 그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는, 고대 이스라엘을 부르신 것처럼 오늘날 그분의 교회를 부르셔서 세상의 빛으로 서게 하셨다. 진리의 예리한 칼, 첫째와 둘째와 셋째 천사의 기별로써 그분은 그들을 교회들로부터, 또한 세상에서 분리시켜 그분 자신에게 거룩한 접근을 하게 하셨다. 그분은 그들을 당신의 율법의 보존자로 삼으시고 이 시대를 위한 위대한 예언의 진리들을 그들에게 맡기셨다. 고대 이스라엘에게 맡겨진 거룩한 성경 말씀처럼 이것들은 세상에 전해져야 할 신성한 위탁이다. 456 요한계시록 14장의 세 천사는, 하나님의 기별의 빛을 받아서 세상의 방방 곡곡에 경고의 음성을 높이는 그분의 대리자로서 나가는 백성을 대표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을 따르는 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고 선언하신다.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갈바리의 십자가는 말한다. “영혼들의 가치를 바라보라.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어떤 것도 이 사업을 방해하도록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이 시대를 위한 가장 중요한 사업이다. 그것은 영원처럼 멀리까지 미쳐야 할 사업이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구속을 위하여 겪으신 희생을 통하여 사람들의 영혼에 대하여 나타내신 사랑은 그분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행동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빛을 받아들인 자들 중 매우 적은 사람들만이 그들의 손에 맡겨진 사업을 하고 있다. 안락과 편의, 생명 자체까지도 돌아보지 않고, 진리의 빛을 전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옹호할 길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은 어디든지 가는 흔들리지 않는 충성심을 가진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러나 세상을 지배하는 죄가 교회 안으로 또한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왔다. 빛을 받아들인 많은 사람들은, 세속적인 사람들과 형식적인 신앙 고백자들의 두려움을 진정시키는 영향을 끼친다. 주님을 기다리고 있노라고 공언하는 사람들 중에도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이 있다. 부와 명예에 대한 야망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날이 세상에 거하는 모든 자들에게 덫과 같이 임하리라고 선언하셨을 때 이 부류에 속한 자들을 묘사하신 것이다. 이 세상이 그들의 집이다. 그들은 세상의 재물을 얻는 것을 그들의 사업으로 삼는다. 그들은 값진 주택들을 짓고 온갖 좋은 것들로 장식한다. 그들은 의복과 식욕의 탐닉에서 기쁨을 찾는다. 세상의 사물들이 그들의 우상이다. 이것들이 영혼과 그리스도 사이를 가로막기 때문에 그들에게 엄습하고 있는 엄숙하고 무서운 사실들을 다만 희미하게 보고 어렴풋이 깨달을 뿐이다. 유대 교회에 나타난 것과 동일한 불순종과 실패는 마지막 경고의 기별을 통하여 하늘에서 온 큰 빛을 가진 백성을 더 크게 특징지웠다. 우리도 그들처럼, 하나님께서 박해와 핍박이 우리에게 오도록 허용하실 때까지 우리의 기회와 특권들을 허비할 것인가? 457 평화롭고 비교적 번영할 때에 행할 수 있는 사업을, 시련과 핍박의 압박 아래 흑암의 날에 이루어질 수밖에 없도록 버려 두어야 할 것인가?

교회가 책임을 져야 할 엄청나게 많은 죄악이 있다. 왜 빛을 가진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 빛을 전해 주기 위하여 열렬한 노력을 하지 않고 있는가? 그들은 마지막이 가까운 것을 안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들은 이 영혼들이 범죄하는 증에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들이 심판정에서 직접 대면해야 할 남녀들의 영혼에 대한 것보다 그들의 사업과 그들의 농장과 그들의 집과 그들의 장사와 그들의 의복과 그들의 식탁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진리에 순종하노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고 있다. 만일 그들이 깨어 있었다면 그들은 그들의 현실에 안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진리에 대한 사랑은 그들의 마음에서 죽어가고 있다. 그들의 모본은, 그들이 지상에서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앞서서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세상에 확신시켜 주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이 하나님 안에서 강하고, 날마다 산 경험을 하고 있어야 할 바로 그 때에 그들은 연약하며, 그들이 마음과 영혼과 음성과 글과 시간과 돈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있어야 할 때에 주저하고, 도움을 얻기 위하여 설교자들을 의지하고 있다.

형제 자매들이여, 그대들 중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기에 무능하다는 핑계로 일을 하지 않는 데 대하여 스스로를 변명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을 그처럼 무능하게 만드셨는가? 이 무능은 그대들 자신의 무활동 때문에 생겨서 그대들 스스로의 고의적인 선택에 의하여 영속된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최소한 하나의 재능을 그대들에게 주셔서 그대들 자신의 편의와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고 그분을 위하여 그것을 이용하게 하지 않으셨는가? 그대들은 위탁받은 자본을 현명하고 재치 있게 이용하여 그분께 이익을 가지고 갈 고용된 종으로서의 그대들의 책임을 깨달았는가? 그대들은 이 목적을 위하여 그대들의 능력을 계발할 기회들을 등한히 하지 않았는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책임을 어느 정도 진정으로 깨달은 자들이 별로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사랑과 판단과 기억과 선견과 기량과 정력과 다른 모든 기능은 자아에 바쳐져 왔다. 그대들은 하나님의 사업에서보다는 악을 섬기는 데서 더 큰 지혜를 발휘해 왔다. 458 그대들은 세속적인 일에 강력하게 활동하므로 하나님의 사업을 등한히 하게 되고, 그대들의 능력을 왜곡시키고, 무능하게 하고, 못쓰게 만들기까지 했다.

그대들은, 과거를 원상태로 회복시킬 수 없다고 말하고 또한 그들의 능력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대로 활용했을 것 같으면 소유할 수 있었던 활력과 힘과 기량도 얻을 수 없다고 말하므로 그대들의 양심을 여전히 달래고 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대들의 불성실을 통하여 등한하게 이루어졌거나 이루어지지 않고 방치된 사업에 대한 책임을 그대들에게 지우신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대들의 능력을 주님을 위하여 활용하면 할수록 그대들은 더욱 적합하고 능숙해질 것이다. 그대들이 빛과 능력의 근원되신 분과 더욱 밀접하게 연결되면 될수록 더 큰 빛이 그대들에게 비췰 것이며, 더 큰 능력이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하도록 그대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그대들이 소유할 수 있었지만, 세상에 몰두하므로 얻지 못하게 된 모든 것에 대하여 그대들은 책임이 있다. 그대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되었을 때 그대들은 그분. 오직 그분만을 섬기기로 서약했고, 그분께서는 그대들과 함께 하시고, 그대들을 축복하시고, 그분의 빛으로 그대들을 새롭게 하시고, 그분의 평안을 그대들에게 주시고 그분의 사업을 통하여 기뻐하게 해주시기로 약속하셨다. 그대들은 이 축복을 경험하지 못했는가? 그렇다면 그대들 자신의 행동 때문에 그렇게 되었음을 확신하라.

전쟁 동안에 징집을 피하기 위하여, 질병을 일부러 유발시킨 자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군복무에 부적합하게 되고자 자신을 불구로 만든 자들도 있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업과 관련되어 지내 온 경로에 대한 하나의 예증이 된다. 그들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들의 능력을 불구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그처럼 크게 필요한 사업을 할 수 없다.

그대의 손에 어떤 특정 목적을 위하여 투자할 일정 액수의 돈이 쥐어져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대는 그 돈을 던져 버리면서 그 돈을 사용한 데 대하여 지금 그대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겠는가? 그대는 큰 수고를 면했다고 느끼겠는가? 그대가 하나님의 선물을 가지고 지금껏 해 오고있는 것이 이러하다. 그대가 세속적인 사업에는 완전히 몰두하고 있으면서도 무능을 핑계삼아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우롱하는 일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멸망을 향하여 가고 있다. 빛과 진리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모든 악의 군대를 저항하기에는 소수에 불과하다. 459 그러나 이 적은 무리는 온갖 일에 정력을 바치면서도 영혼들을 죽음에서 구원하는 법을 배우는 일은 하지 않고 있다. 교회가 약하고 무능한 것과,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을 위하여 거의 하실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이 이상한 일인가? 그들은 그분께서 그들과 함께, 또한 그들을 위하여 일하실 수 없는 곳에 그들 자신을 둔다. 그대는 이와 같이 그분의 요구를 계속해서 무시하겠는가? 그대는 가장 신성한 하늘의 위탁을 여전히 소홀히 하겠는가? 그대는 가인처럼,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고 말하겠는가?

그대의 책임은 그대의 현재의 자원과 가능성에 의해서가 아니고, 근본적으로 부여된 능력과 향상의 가능성에 의하여 헤아려진다는 것을 기억하라. 각 사람이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질문은, 그가 지금 경험이 없고 하나님의 사업에 활동하기에 적합하지 않는지의 여부에 대한 것이 아니고 그가 어찌하여 무슨 이유로 이런 상태가 되었으며, 그것을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부족한 자격을 초자연적으로 부여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동안, 그분께서는 모든 기능을 증가시키고 강화시키기 위하여 우리와 함께 일하실 것이다. 우리의 잠자던 정력은 일어날 것이며, 오랫동안 마비 상태에 있던 능력은 새 생명을 받을 것이다.

세상에 있는 동안 우리는 세상의 사물과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일시적이요 세속적인 사업을 처리할 필요가 언제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이것에 완전히 몰두 되어서는 안된다. 사도 바울이 안전한 법칙을 주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1). 비천하고 통속적인 생애의 의무들이 모두 충성스럽게 수행되어야 한다. 사도는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골 3:23) 하라고 말한다. 우리의 활동 분야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이 가사이거나 바깥일이거나 지적(知的) 일이거나 간에 우리가 그리스도를 모든 일에 처음이요 마지막이요 최선으로 삼고 있는 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 일을 할 수 있다. 이런 세속적인 일 외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자에게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특별한 사업,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개인적 노력을 요구하는 사업이 주어져 있다. 그것은 단순히 한 주일에 한번씩 예배 장소에서가 아니고, 언제나 모든 장소에서 이루어져야 할 사업이다.

460 교회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사람은 그 행동을 통하여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일하고 그 유익을 모든 세속적인 고려의 대상보다 위에 놓겠다고 엄숙한 서약을 한다. 하나님과 산 연결을 유지하고, 마음과 심령을 다하여 위대한 구속의 계획에 몰두하고, 자신의 생애와 성품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명이 세상의 관습과 교훈보다 탁월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그의 일이다. 그리스도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은 영적인 일꾼으로서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주님을 섬기는 일에 적극적이고, 열성적이고, 유능하게 되겠다고 서약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의무를 행하기를 기대하신다. 이것이 그분을 따르는 자들의 대열에 속한 모든 사람의 표어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빛을 전하도록 권유당하고, 권면이나 교훈을 하도록 강하게 요청을 받을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 의의 태양의 광선을 받아들이는 각 사람은 그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그 빛을 반사해야 한다. 그의 신앙은 적극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나타내야 한다. 그의 기도와 탄원은 성령으로 너무도 감동되었기 때문에 영혼을 녹이고 부드럽게 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고 말씀하셨다. 세상에 속한 일반 사람들이 경건의 능력을 알지 못하는 자의 영향 아래 놓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신앙을 공언하는 자를 결코 보지 않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본이 되시고, 그분의 생애가 우리의 규범이 되어 있다면 어떤 열성이 나타나며, 어떤 노력을 하며, 어떤 자유를 행사하며, 어떤 극기가 실천될 것인가! 우리의 노력은 얼마나 지치지 않는 것이 될 것이며, 능력과 지혜를 얻기 위한 탄원은 얼마나 열렬하게 하나님께 상달 될 것인가! 만일 하나님의 자녀로 공언하는 자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도록 명령하신 사업을 하는 것이 생애의 주요한 사업임을 느낄 것 같으면, 만일 그들이 그분의 사업에서 이기심 없이 활동할 것 같으면, 사람들의 마음과 가정, 교회에서, 또한 세상 자체에서 어떤 변화가 나타날 것인가!

경성과 충성은 어느 시대에서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 요구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가 영원한 세계의 바로 경계에 서서 진리를 붙들고, 너무도 큰 빛, 너무도 중요한 사업을 맡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근면을 배가시켜야 한다. 461 각 사람은 그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해야 한다. 나의 형제여, 만일 그대가 지금 망설이게 되면 그대 자신의 구원을 위태롭게 하게 된다. 만일 그대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업에서 실패할것 같으면 그분께서는 그대에게 책임을 추궁하실 것이다. 그대는 진리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

내가 우리의 교회들을 각성시키기 위하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마지막 기별을 선포하는 일에 두드러진 몫을 담당해 온 사람들에게 내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주님께서 오신다”는 기별은 입술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생애와 품성을 통하여 전해지는 증거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과 지식, 감화의 능력과 재물을 맡긴 많은 사람들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기심과 세속주의의 독한 잔을 너무 많이 마셨기 때문에 이생의 염려에 취해 버렸다. 형제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지금까지 해온 바와 같이 계속적으로 게으르고, 세속적이고, 이기적일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대들을 지나쳐 버리시고 자아 보호에 대한 관심이 적고 세속적인 명예에 대한 야망이 작은 자들과, 그들의 주님처럼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나가기를 주저하지 않을 사람들을 택하실 것이다. 그 사업은, 그것을 감당할 자들, 그것을 높이 평가할 자들, 그 원칙을 그들의 매일의 경험 속에 조화시킬 자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스스로를 존중하고 앞세우기보다는 그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의 사업을 발전시키고자 노력하는 겸손한 사람들을 택하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세상의 지혜는 많이 갖지 못했지마는 하늘로부터 힘과 권면을 구할 자들을 일으키실 것이다.

우리의 지도적 인물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사도 요한이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눅 9:49)고 말했을 때 나타낸 그 정신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조직과 규율은 요긴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의 단순성에서 떠나갈 매우 큰 위험이 오늘날 존재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형식과 의식을 적게 의지하고, 참된 경건의 능력을 더 많이 의지하는 것이다. 만일 생애와 품성이 모범적일 것 같으면 원하는 사람은 모두 어떤 역량을 가졌거나 일하게 하라. 비록 그들이 그대의 방법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을지라도 그들을 정죄하거나 용기를 꺾기 위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아야 한다. 462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른 아이들을 조용하게 해 달라고 그분께 요청했을 때 구주께서는,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눅 19:40)고 말씀하셨다. 예언은 성취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사업은 이루어져야 한다. 많은 활동 분야들이 있다. 각 사람은 그에게 가장 적합한 부분에서 활동해야 한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것을 땅에 묻어 버리면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의 재능을 따라 할 일을 주셨다. 더 큰 책임과 역량을 받은 사람들은 적은 가능성과 경험을 가진 다른 사람들을 침묵시키고자 노력해서는 안 된다. 한 달란트 가진 사람들은 두 달란트나 다섯 달란트 가진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계층에 접근할 수 있다. 크거나 작거나 간에 다 같이 목마른 영혼들에게 생명수를 가져다주는 택한 그릇들이다. 말씀을 전하는 자들은 가장 비천한 일꾼에게 그들의 손을 얹고, “그대는 이 방향에서 일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전혀 일을 하지 않든지 해야 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형제들이여, 손으로 상대방을 밀어 제치지 말라. 각 사람은 자기 자신의 영역에서, 자기 자신의 갑옷을 입고, 그 자신의 겸비한 방법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무엇이나 해야 한다. 일을 하는 중에 그의 손을 강하게 하라. 지금은 바리새인의 정신이 지배할 시기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자들을 통하여 일하신다. 기별은 전달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그분께서 위탁하신 자본, 곧 재물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데 쓰이는 타고난 어떤 재능까지도 현명하게 사용하므로 그들의 충성을 나타내야 한다. 사단은 오류에 묻혀 있는 자들에게 전파되는 진리를 막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 계략을 쓸 것이다. 그러나 경고와 탄원의 음성은 그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불과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과 똑같이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평신도들이 그분의 사업에서 활동이 면제되도록 결코 계획하지 않으셨다. “가서 나의 포도원에서 일하라”는 것이 주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각 사람에게 하시는 명령이다. 세상에 회개하지 않은 영혼들이 있는 한,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가장 적극적이고, 열렬하고, 열성적이고, 결정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빛을 받은 자들은 그것이 없는 자들에게 비춰 주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만일 교인들이 개인적으로 이 사업을 감당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써 그들이 하나님과 산 연결을 이루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들의 이름은 게으른 종으로 기록된다. 463 그대는 우리의 교회들에게 영성이 더 이상 없는 이유를 깨닫겠는가? 그것은 그대가 그리스도와 동역자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할 일을 주셨다. 각 사람이 하나님을 기다리도록 하자. 그리하면 그분께서는 일하는 방법과 우리가 어떤 일을 수행하기에 가장 적합한지 알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새로운 이론을 전파하기 위하여 독립적인 정신으로 출발해서는 안 된다. 일꾼들은 진리와 조화를 이루고 또한 그들의 형제들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권면과 협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일 저런 일을 하기 위하여 어떤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기 위하여 매 단계마다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지도를 받기 위하여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바라보라.

교회가 평화와 번영의 때에 하지 못한 사업은 가장 절망적이고 어려운 환경 아래 무서운 위기 가운데서 해야 할 것이다. 세상과 일치되므로 침묵해 버렸거나 억제되었던 경고들은 믿음의 원수들 때문에 생긴 가장 심한 반대 아래 전해져야 한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그들의 영향으로 꾸준히 사업의 발전을 방해해 온 피상적이고 보수적인 계층은 믿음을 버리고 오랫동안 동조해 온 진리의 공공연한 원수들과 입장을 같이 할 것이다. 신앙을 버린 이 사람들은 가장 심한 적의를 나타내고, 그들의 이전 형제들을 억압하고 중상하고 그들에 대하여 분노를 일으키기 위하여 힘을 다하여 활동할 것이다. 이런 날이 우리 앞에 박두해 왔다. 교인들은 개인적으로 시험을 받고 시련을 겪을 것이다. 그들은 진리를 증거하도록 강요당할 환경에 처해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개별적으로 혹은 혼자서 의회와 법정에서 이야기하도록 소환당할 것이다. 그들은, 이 비상사태에 그들에게 도움이 되었을 경험을 얻는 일을 등한히 해 왔다. 그러므로 그들의 심령은 낭비한 기회와 등한히 한 특권들에 대한 가책으로 눌리게 된다.

나의 형제, 나의 자매여, 나는 이런 것을 깊이 생각해 보기를 그대들에게 권유한다. 그대들에게는 각각 할 일이 있다. 그대들의 불성실과 태만은 하늘의 기록책에 기록된다. 그대는 그대의 힘을 감소시키고 그대의 능력을 줄어들게 했다. 464 그대는 그대가 소유할 수 있었던 경험과 능률이 부족하다. 그러나 영원히 너무 늦어지기 전에 나는 그대가 각성하기를 권한다. 더 이상 지체하지 말라. 낮은 거의 지나갔다. 서산으로 기울어지는 태양은 영원히 그대의 시야에서 사라지려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가 호소하고 있는 동안, 그대는 용서를 발견할 수 있다. 모든 영혼의 힘을 다 모아서 불과 얼마 남지 않은 시간들을 하나님과 그대의 동료 인간들을 위하여 열렬히 활동하는 데 쓰라.

나의 마음은 크게 분기되어 있다. 멸망해 가는 영혼들을 위하여 간구할 때 나의 감정을 표현할 적당한 말이 없다. 내가 헛되이 간구해야 할 것인가?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나는 그대가 이전에 결코 활동한 적이 없는 것처럼 활동하도록 그대를 깨우치고자 한다. 그대의 의무는 다른 사람에게로 전가시킬 수 없다. 그대 자신 외에는 아무도 그대의 일을 해 줄 수 없다. 그대의 빛을 비취지 않고 있으면 누군가가 그대의 태만으로 흑암 속에 남아 있어야 한다.

영원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휘장은 바야흐로 걷혀지려고 한다. 이 엄숙하고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 주변에서 영혼들이 죽어 가고 있는데,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으며, 안락을 좋아하는 우리의 이기적 마음에 붙들려 있는가? 우리의 마음은 완전히 무감각하게 되어 버렸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해야 할 사업이 있다는 것을 느끼거나 이해할 수 없는가?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계층에 속해 있는가?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을 아는 지식을 그대들에게 주신것이 헛된 일인가? 그분께서 계속해서 그대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보내신 것이 헛된 일인가? 그대는 세상에 바야흐로 임할 일에 관한 영원한 진리의 선포를 믿는가? 그대는 하나님의 심판이 사람들에게 내리기 직전임을 믿는가? 그러면서도 그대는 여전히 안락하고, 게으르고, 부주의하고, 쾌락을 사랑하면서 앉아 있을 수 있는가?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 그들의 애정을 두거나 그들의 재물을 쌓아 둘 때가 아니다. 초기의 제자들처럼 우리가 황량하고 외진 장소에서 피난처를 찾지 않을 수 없을 때가 멀지 않았다. 로마 군대에 의한 예루살렘의 포위가 유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도망하라는 신호가 되었던 것처럼, 법왕권의 안식일을 강요하는 법령을 통한 우리 나라에서의 권력 장악은 우리에게 하나의 경고가 될 것이다. 그 때는 대도시들을 떠나고, 산간(山間) 한적한 곳에서 궁벽한 거처들을 마련하기 위하여 더 작은 도시들을 떠나갈 준비를 할 때이다. 465 그러므로 오늘날은 여기서 값비싼 주택들을 구하는 대신에 우리는 더 좋은 나라, 하늘까지 옮겨 갈 준비를 해야 한다. 자아 만족을 위하여 우리의 재물을 사용하는 대신에, 우리는 검약하는 법을 연구해야 한다. 하나님께 빌린 모든 달란트는 세상에 경고의 기별을 전하므로 그분께 영광이 돌아가도록 쓰여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동역자들이 도시들에서 해야 할 사업을 갖고 계신다. 우리의 선교지들은 지탱되어야 하고, 새로운 선교지들이 열려야 한다. 이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시키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요구될 것이다. 사람들이 초청을 받아 이 시대를 위한 진리를 들을 수 있는 예배당들이 필요하다. 바로 이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청지기들에게 자본금을 위탁하셨다. 그대들의 재산이 세상의 사업에 매여지므로 이 사업이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 그대들의 재물을 그대가 하나님의 사업의 유익을 위하여 취급할 수 있는 곳에 두라. 그대들의 보화를 그대들 앞서 하늘에 보내라.

교인들은 그들 자신과 그들의 소유물을 하나님의 제단 위에 개인적으로 올려 놓아야 한다. 지금은 이전 어느 때보다 구주의 권면이 적절하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눅 12:33, 34). 그들의 재물을 큰 주택들과 토지와 세속적 사업에 붙들어 매고 있는 자들은 그들의 행동으로 “하나님께서 그것을 소유하실 수 없다. 내가 내 자신을 위하여 그것을 원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한 달란트를 헝겊에 싸서 땅속에 감추었다. 그런 사람들은 경고를 받아야 할 이유가 있다. 형제들이여,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이 게으르게 누워 있거나 탐욕적으로 붙들고 있거나 숨겨 두라고 재물을 맡겨 두지 않으시고 그분의 사업을 발전시키고 죽어 가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용하도록 맡겨 주셨다. 하나님의 사업이 활동 불능의 상태가 되어 구걸할 지경에 이르고, 자금은 절반 정도밖에 공급되지 않고 있는 이때 주님의 돈이 그대들의 비싼 주택과 거대한 사업에 묶여 있어서는 안된다. 주님께서는 이런 방법으로 일하지 않으신다. “네 보던 일을 셈하라”(눅 16:2)는 말이 들리게 될 날이 가까이 이르고 있음을 기억하라. 그대는 시대의 징조를 분별할 수 없는가?

466 지나가는 매일은 마지막 엄숙한 큰 날을 더욱 가까이 이르게 한다. 우리는 1884년이 시작될 때보다 한 해 더 심판에 가까워지고, 영원에 더 가까워졌다. 우리 또한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접근해 가고 있는가? 우리는 깨어 기도하고 있는가? 우리가 일을 해야 할 또 다른 한 해가 영원히 지나가 버렸다. 우리는 매일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남녀들과 교제하고 있다. 어떤 영혼에게는 매일 구분하는 선이 그어지고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의 장래의 운명을 판가름할 결정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런 동료 나그네들에게 어떤 감화를 주고 있는가?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데려오기 위하여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 왔는가?

죽는 것도 엄숙한 일이지만 사는 것은 더욱 더 엄숙한 일이다. 우리 생애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은 다시 우리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은혜의 시기에 우리가 꼴 지은 자신의 모습은 영원히 그대로 간직할 것이다. 죽음은 육체를 분해시키지만, 품성의 변화를 이루어 주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오심이 우리의 품성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그 사건은 오직 영원히 변할 수 없도록 품성을 고정시킬 뿐이다.

나는 다시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인이 되고, 그리스도처럼 되라고 호소하는 바이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위한 일꾼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일꾼이었다. 그분은 잃어버린 자를 축복하고 구원하기 위하여 활동하셨다. 만일 그대가 그리스도인일 것 같으면 그대는 그분의 모본을 본받게 될 것이다. 그분은 기초를 놓으셨고, 우리는 그분과 함께 집을 짓는 건축자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기초 위에 놓기 위하여 어떤 재료를 가져오고 있는가?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고전 3:13). 만일 그대가 그대의 모든 힘과 재능을 이 세상의 것에 바치고 있다면 그대의 평생 사업은 마지막 날의 불에 태워질 나무와 짚과 풀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미래의 생애를 위한 이기심 없는 활동은 금과 은과 보석처럼 될 것이다. 그것은 없어지지 않는다.

나의 형제와 자매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죽음의 잠에서 깨어나라고 간절히 호소한다. 두뇌와 뼈와 근육의 힘을 자아를 섬기기 위하여 바치기에는 너무 늦다. 마지막 날 그대에게 하늘의 보화가 없는 것이 발견되지 않게 하라. 십자가의 승리를 확산시키기 위하여 노력하고, 영혼들을 계몽시키기 위하여 애쓰고. 그대의 동료 인간들의 구원을 위하여 활동하라. 467 그리하면 그대의 사업은 불의 시험을 견디게 될 것이다.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고전 3:14). 성실한 일꾼들이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 주변에 모일 때에 주어지는 상급은 영광스러울 것이다. 요한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죽은 사람처럼 쓰러졌다. 그는 그 광경에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불멸을 입을 때 속량된 자들은 예수님처럼 된다. 그들이 계신 그대로의 그분을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보좌 앞에 서는데 그것은 그들이 가납된 것을 나타낸다. 그들의 모든 죄는 도말되고, 그들의 모든 허물은 사라졌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나오는 찬란한 영광을 바라볼 수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의 고난에 참여해 왔고. 그들은 구원의 계획에서 그분과 함께 일해 왔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그들의 활동을 통하여 구원받은 영혼들이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바라보는 기쁨을 그분과 함께 나눈다

여호수아와 사자

만일 볼 수 있는 세계와 볼 수 없는 세계를 분리시키는 휘장이 거두어져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와 거룩한 천사들과 사단과 그의 악한 사자들 사이에서 인류의 구속에 관하여 전개되고 있는 대쟁투를 볼 수 있을 것 같으면, 만일 그들이 죄의 속박에서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업과 악한 자의 적의에서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끊임없는 그분의 능력의 발휘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으면, 그들은 사단의 계략을 저항하기 위하여 훨씬 더 잘 준비될 것이다. 그들의 마음은, 구속의 계획의 넓은 범위와 중요성, 그리고 그리스도의 동역자가 된 그들 앞에 놓인 큰 사업을 보고 엄숙해질 것이다. 그들은 겸손해지고, 또한 온 하늘이 그들의 구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용기를 갖게 될 것이다.

사단의 사업과 그리스도의 사업, 그분의 백성의 비난자를 정복할 수 있는 우리의 중보자의 능력에 대한 가장 강력하고 감동적인 예증은 스가랴의 예언에 기록되어 있다. 468 거룩한 이상(異像) 중에 선지자는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슥 3:3),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서서, 큰 고통 중에 처한 그의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의 자비를 간구하고 있는 것을 본다. 사단은 그를 대항하기 위하여 그의 오른편에 서 있다. 이스라엘은 지상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보존하기 위하여 택함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은 한 민족으로 존재할 시초부터 사단의 적의의 특별한 대상이 되어 왔고, 그는 그들을 파멸시키고자 작정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는 동안 그는 그들을 해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을 죄 가운데로 유혹해 들이기 위하여 그의 모든 힘과 교활한 술책을 다했다. 그의 유혹에 걸려들어서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고, 그들의 능력의 근원에서 분리되고, 그들의 이방 원수들에게 포로가 되도록 버려졌다. 그들은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가서 여러 해 동안 그 곳에 머물렀다. 그럴지라도 그들은 여호와께 버림을 받지는 않았다. 그분의 선지자들은 책망과 경고를 가지고 그들에게 보내졌다. 백성들은 각성되어 그들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그들 스스로를 낮추고, 참된 회개로 그분께로 돌아왔다. 그러자 그분께서는 용기를 주는 기별을 그들에게 보내주시고, 그들을 포로의 상태에서 건져내고 그분의 은총을 그들에게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사단은 이 일을 방해하고자 작정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이미 그들의 땅으로 돌아갔다. 사단은, 그의 대리인 격인 이방 나라들을 움직여서 그들을 완전히 멸망시키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위하여 겸손하게 탄원할 때, 사단은 그를 대적하기 위하여 담대하게 일어선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총을 회복받아서는 안 될 이유로서 그들의 범죄를 지적한다. 그는 그들을 그의 포로로 주장하고 그들이 죽임을 당하도록 그의 손에 맡겨지기를 요구한다.

대제사장은 사단의 비난에서 그 자신이나 그의 백성을 방어할 수 없다. 그는 이스라엘이 허물에서 벗어나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가 대표하는 백성의 죄를 상징하는 더러운 옷을 입고 사자 앞에 서서 그들의 죄를 고백한다. 469 그러나 그는 그들의 회개와 겸비를 지적하고, 죄를 용서하는 구속주의 자비를 의지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한다.

그 때에 그리스도 자신, 죄인들의 구주이신 사자는,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슥 3:2)고 주장하심으로 그분의 백성을 비난하는 자를 침묵시키신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고난의 풀무 속에 남아 있었다. 죄 때문에 그들은 사단과 그의 사자들이 그들의 파멸을 위하여 붙인 불꽃 속에서 거의 사르어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끌어내기 위하여 이제 손을 쓰신다. 그들이 회개하고 겸비해지자 자비하신 구주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잔인한 이교도의 세력에 맡겨 두지 않으실 것이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사 42:3).

여호수아의 중보가 수락되자,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슥 3:4)는 명령이 내린다. 그리고 사자는 여호수아에게,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슥 3:4)고 말한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슥 3:5), 그 자신의 죄와 그의 백성의 죄는 용서되었다. 이스라엘은 “아름다운 옷”으로 입혀졌다. 곧 그리스도의 의가 그들에게 입혀졌다.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여진 관은 제사장이 쓴 그런 것이었고, 비록 그의 이전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제는 하나님의 성소에서 그분 앞에 봉사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뜻으로 “여호와께 성결”(출 39:30)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그런 관이었다.

제사장 직분의 권위를 엄숙하게 그에게 허여해 준 후 사자는 선언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준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하리라”(슥 3:7). 그는 성전과 그 모든 의식을 주관하는 자요 관할하는 자로 높임을 받을 것이었다. 그는 이 세상에서도 수종하는 천사들 사이에 왕래할 것이며, 마침내는 하나님의 보좌 주변에 있는 영광스러운 무리에 들 것이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이라 내가 내 종 순을 나게 하리라”(슥 3:8). 470 여기에 이스라엘의 희망이 밝혀져 있다. 여호수아와 그의 백성이 용서를 받은 것은 장차 올 구주를 믿는 믿음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도록 회복되었다. 만일 그들이 그분의 도를 준행하고 그분의 율례를 지키면 그분의 공로에 의하여 그들은 “예표의 사람”이 되고, 세상의 나라들 가운데서 하늘의 택한 자로 높임을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오늘날 그분의 교회의 소망이신 것처럼 그들의 소망, 그들의 보호, 그들의 의와 구속이셨다.

사단이 여호수아와 그의 백성을 비난한 것처럼, 그는 각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을 구하고 있는 자들을 비난한다.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그는,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계 12:10)로 언급되고 있다. 대쟁투는 악의 세력에서 구원받은 각 영혼들과 이름이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을 놓고 반복되고 있다. 어떤 사람도 악한 자의 저항을 결정적으로 받지 않고 사단의 가족으로부터 하나님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다. 주님을 찾는 자들에 대한 사단의 비난은 그들의 죄를 불쾌히 여기므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들의 결함된 품성을 좋아한다.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함으로써만 그는 그들을 지배하는 힘을 얻을 수 있다. 그의 비난은 순전히 그리스도에 대한 적의 때문에 생긴다. 구원의 계획을 통하여 예수님은 인간 가족을 붙들고 있는 사단의 지배권을 깨뜨리고 영혼들을 그의 세력에서 구출해 내고 계신다. 반역자의 괴수는 그리스도의 절대권의 증거를 바라볼 때 모든 증오와 적의를 일으킨다. 그리하여 악랄한 간계와 힘으로 그는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아들인 남은 자손들을 그분에게서 빼앗고자 활동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회의심을 품게 하고,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 확신을 잃어버리고 그분의 사랑에서 떠나가게 한다. 그는 그들을 유혹하여 그분의 율법을 범하게 하고, 그들을 그의 포로로 주장하고 그들을 그에게서 빼앗아 가는 그리스도의 권리를 논박한다. 그는 하나님께 용서와 은혜를 열렬하게 구하는 자들이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을 좌절시키기 위하여 그들의 죄를 그들 앞에 제시한다. 그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들을 대적할 기회를 끊임없이 찾고 있다. 471 심지어 그들의 가장 훌륭하고 가장 가납될 만한 봉사까지도 그는 타락한 것처럼 보이게 하고자 애쓴다. 가장 간교하고 가장 잔인한 셀 수 없는 계책들을 통하여 그는 그들을 정죄하고자 노력한다. 사람은 이 비난들을 스스로 대항할 수 없다. 그는 죄로 더러워진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서서 그의 죄를 고백한다. 그러나 우리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은, 회개와 믿음으로 그들의 영혼을 지켜 주도록 그분께 바친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효과적으로 탄원하신다. 그분은 그들을 변호하시고, 갈바리의 강한 논증에 의하여 그들의 비난자를 물리치신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순종하심으로써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가 그분께 주어졌다. 그러므로 그분은 범죄한 인류를 위하여 자비와 화해를 그분의 아버지께 주장하신다. 그분의 백성을 비난하는 자에게 그분은,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슥 3:2)라고 주장하신다.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은 모든 사람은 택함받은 성실하고 진실한 자로 그분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사단은 그리스도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을 힘이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회개와 믿음으로 그분의 보호를 요청한 사람은 한 사람도 사단의 세력 아래 들어가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의 말씀은, “나의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로 더불어 화친할 것이니라”(사 27:5)고 보증한다. “네가 만일 … 내 율례를 지키면 …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하리라”(슥 3:7). 여호수아에게 한 이 약속은 모든 사람에게 한 것이다. 비록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천사들은 그들의 좌우에서 동행할 것이고, 그들은 마침내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 있는 천사들 사이에 설 것이다.

하나님의 인정받은 백성들이 더러운 옷을 입고 여호와 앞에 서 있는 것으로 나타난 사실은 하나님의 이름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게 하고 마음을 깊이 살피게 해 줄 것이다. 진리를 순종하므로 심령을 정말로 깨끗하게 하고 있는 자들은 그들 스스로에 대하여 가장 겸손한 견해를 갖게 될 것이다. 472 그들이 흠 없는 그리스도의 품성을 더욱 세밀하게 보면 볼수록 그분의 형상을 닮고자 하는 그들의 욕망은 더욱 강해질 것이며, 또한 그들 자신에게서는 순결과 거룩함을 더욱 적게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죄 많은 상태를 깨닫는 동안, 우리는 그리스도를 우리의 의와 우리의 거룩함과 우리의 구속으로 신뢰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를 대적하는 사단의 비난에 대답할 수 없다.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위하여 효과적으로 탄원하실 수 있다. 그분은 우리의 공로에 근거된 것이 아닌 그분 자신의 공로에 근거된 논증을 가지고 비난자를 침묵케 하실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죄악적 생애에 결코 만족해서는 안 된다. 품성의 모든 결함과 그들이 하나님의 표준에 이르지 못하게 되는 모든 점 때문에 사단이 그들을 정복하고 파멸시키기 위하여 들어올 수 있는 문이 열린다는 것과, 더욱이 그들 편에 있는 모든 실패와 결함이 유혹자와 그의 대리자들에게 그리스도를 비난할 기회를 준다는 것은 악을 정복하는 일에 더 큰 열성과 열심을 갖도록 그리스도인들을 분기시켜야 할 사상이다. 우리는 극복하는 일에 영혼의 모든 힘을 기울여야 하고, 우리 스스로할 수 없는 일을 하기 위한 힘을 얻고자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흰옷을 입고 예수님과 함께 걸어갈 자들에게는 아무런 죄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더러운 옷은 제거되어야 하고, 그리스도의 의의 옷은 우리에게 입혀져야 한다. 회개와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준수할 수 있고, 그분 앞에 흠 없이 나타날 수 있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자들은 오늘날 그들의 심령을 괴롭게 하고, 그들의 죄를 고백하고, 그들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통한 용서를 열렬히 간구하고 있다. 그들은 그분을 주목하고, 그들의 소망과 그들의 믿음은 그분께 집중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 더러운 옷을 벗기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며,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라는 명령이 내릴 때, 그들은 그들의 구원에 대한 모든 영광을 그분께 돌릴 준비가 이루어져 있다.

여호수아와 사자에 관한 스가랴의 이상은 속죄의 큰 날이 가까이 이르르고 있는 때의 하나님의 백성들의 경험에 특별히 강하게 적용된다. 마지막 교회는 큰 시련과 고통 가운데 빠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은 용과 그의 군사들의 분노를 느끼게 될 것이다. 473 사단은 세상을 자기에게 예속된 것으로 간주하고, 그는 타락한 교회들을 지배해 왔다. 그러나 그의 절대권을 거부하고 있는 작은 무리가 여기에 있다. 만일 그가 그들을 세상에서 제거해 버릴 수만 있다면 그의 승리는 이루어 질 것이다. 마치 그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이방 나라들을 충동한 것처럼, 가까운 장래에 그는 하나님의 백성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세상의 악한 세력들을 충동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인간의 법령에 복종하도록 강요당할 것이다. 하나님과 의무에 성실한 자들은 위협을 당하고, 공공연히 공격을 받고, 법률의 보호를 박탈당할 것이다. 그들은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눅 21:16)에게 배척당할 것이다.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의 자비에 있고, 그들의 유일한 방어는 기도가 될 것이다. 여호수아가 사자 앞에서 탄원하고 있었던 것처럼 남은 교회는, 마음의 통회와 열렬한 기도로써 그들의 중보자 예수님을 통한 용서와 구원을 위하여 탄원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생애의 죄악을 충분히 깨닫고 있으며, 그들의 연약함과 무가치함을 안다. 그들이 자신들을 바라볼 때 그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다. 시험하는 자는 마치 여호수아를 대적하기 위하여 곁에 서 있던 것처럼 그들을 비난하기 위하여 곁에 서 있다. 그는 그들의 더러운 옷, 그들의 결점 많은 품성을 지적한다. 그는 그들의 구속주의 이름을 더럽혀 온 그들의 약점과 어리석음, 그들의 배은 망덕의 죄, 그리스도를 닮지 않은 그들의 모습을 제시한다. 그는, 그들의 상황이 절망적이며, 더러워진 그들의 오점은 결코 정결해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영혼을 위협하고자 노력한다. 그는 그들의 믿음을 파괴해 버림으로 그들이 그의 유혹에 굴복하고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버리고 짐승의 표를 받게 하고자 희망한다.

사단은, 그들에 대한 비난을 하나님 앞에 강력하게 제시하고, 그들이 죄 때문에 하나님의 보호를 잃어버렸다고 역설하고, 그들을 범법자로 죽일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한다. 그는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은총에서 제외된 것과 꼭 마찬가지로 그렇게 되기에 합당하다고 선언한다. 그는 말한다. “이 사람들이 하늘에서 나의 위치와 나와 연합했던 천사들의 위치를 차지할 자들인가?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노라고 공언하고 있는 동안, 그 율법의 조항들을 지켜왔는가? 그들은 하나님보다 자아를 더 사랑해 오지 않았는가? 그들은 그분을 섬기는 것보다 그들 자신의 유익에 더 큰 비중을 두어 오지 않았는가? 그들은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해 오지 않았는가? 그들의 생애를 특징지워 온 죄들을 바라보라. 474 그들의 어리석음, 그들의 악의, 피차간의 증오를 쳐다보라.”

하나님의 백성은 많은 점에서 매우 결함이 많았다. 사단은, 그들을 유혹하여 범죄하게 한 죄들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는 그 죄들을 가장 크게 과장하여 제시하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하나님께서 나와 나의 사자들을 그분 앞에서 추방하시면서 동일한 죄를 범해 온 이 사람들에게는 상급을 주실 것입니까? 오, 주님, 당신은 공의에 의하여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당신의 보좌는 의와 공의로 설 수 없을 것입니다. 공의는 그들을 대적하는 선고가 내리기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죄를 지었을지라도 그들 스스로를 악의 지배에 맡기지 않았다. 그들은 죄를 버리고, 겸손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찾았다. 그리고 거룩한 중보자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탄원하신다. 그들의 배은 망덕 때문에 가장 크게 모욕을 받아 오신 분, 그들의 죄와 그들의 회개까지도 아시는 분께서는,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내가 이 영혼들을 위하여 나의 생명을 버렸다 그들을 나의 손바닥에 새겼다”고 말씀하신다.

사단의 공격은 강하며 그의 기만은 무섭다. 그러나 주님의 눈은 그분의 백성을 주시한다. 그들의 고통은 크며, 풀무의 불꽃은 바야흐로 그들을 태워 버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불 속에서 연단한 금처럼 나오게 하실 것이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완전하게 반사하기 위하여 그들의 세속적 마음은 제거되어야 한다. 불신은 극복되고, 믿음과 소망과 인내가 계발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땅에서 자행되는 가증한 일 때문에 탄식하며 부르짖고 있다. 그들은 눈물로써 악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짓밟는 그들의 위험에 대하여 경고한다. 또한 말할 수 없는 슬픔으로 그들은 그들 자신의, 범죄 때문에 주님 앞에 스스로를 낮춘다. 악인들은 그들의 슬픔을 조롱하고, 그들의 호소를 비웃고, 그들이 그들의 약점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하여 냉소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의 번민과 굴욕은 그들이 죄의 결과로 잃어버린 힘과 품성의 고결함을 다시 찾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그들이 죄의 심히 죄스러움을 그처럼 분명하게 깨닫는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께 더욱 가까이 이끌려 가고 있고, 그들의 눈이 그분의 완전한 순결을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475 그들의 통회와 겸손은, 슬피 탄식할 이유를 깨닫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겸손을 비웃고,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범하고 있으면서도 완전을 주장하는 자들의 자부심이 강하고 거만한 정신보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훨씬 더 가납될 만한 일이다. 마음의 온유와 겸손은 힘과 승리를 얻는 조건들이다. 영광의 면류관은 십자가의 발 아래 엎드리는 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애통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성실한 자들, 기도하고 있는 자들은 말하자면 하나님 안에 감싸여 있다. 그들 스스로는 그들이 얼마나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사단의 충동을 받은 이 세상의 통치자들은 그들을 파멸시키기 위하여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도단에 있던 엘리사의 종의 눈이 열렸던 것처럼 그들의 눈이 열릴 수만 있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들 주위에 진을 치고, 그들의 광채와 영광으로 흑암의 군대를 저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그분 앞에서 그들의 심령을 괴롭게 하고 마음의 순결을 위하여 탄원하고 있을 때, 그들에게서 “더러운 옷을 벗기라”는 명령이 내리고,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슥 3:4)고 용기를 주는 말이 있게 된다. 흠 없는 그리스도의 의의 옷은 시험과 유혹을 받으면서도 성실한 하나님의 백성에게 입혀진다. 멸시받은 남은 자들은 세상의 부패에 의하여 더 이상 결코 더럽혀지지 않을 영광스러운 옷을 입게 된다. 그들의 이름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각 시대의 충성된 자들과 함께 그것에 보존된다. 그들은 기만자의 간계를 저항해 왔고, 용의 포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충성을 버리지 않았다. 이제 그들은 유혹자의 간계에서 영원히 안전해진다. 그들의 죄는 죄의 창시자에게로 옮겨진다. 그리고 남은 자들은 용서받고 가납되었을 뿐 아니라 영광스럽게 된다. “정한 관”이 그들의 머리에 씌워진다. 그들은 왕들과 같이 되고 하나님께 대하여 제사장이 된다. 사단이 그의 비난을 강요하고 이 무리를 파멸시키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동안 보이지 않는 거룩한 천사들은 이곳 저곳으로 왕래하면서 그들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치고 있었다. 그들의 이마에 아버지의 이름이 쓰여진 이 사람들은 어린 양과 함께 시온산 위에 서는 자들이다. 476 그들은 땅에서 구속받은 14만 4천명 외에는 아무도 배울 수 없는 노래를 보좌 앞에서 부른다. “이 사람들은 …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 14:4, 5).

이제 사자의 말들은 완전히 성취된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이라 내가 내 종 순을 나게 하리라”(슥 3:8).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백성의 구속주요 구원자로 계시된다. 이제 진실로 남은 자는 “예표의 사람”이다. 그들의 순례의 눈물과 굴욕이 하나님과 어린 양 앞에서 기쁨과 영광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사 4: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