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보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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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장-민족에 대한 그리스도의 관계*

69장 - 민족에 대한 그리스도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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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 그리스도께서는 민족이나 계급이나 주의의 차별을 인정하지 아니하셨다. 서기관과 바리새 인들은 하늘의 모든 선물에 대해서 지방적이며 민족적인 이득을 얻고 세상에 있는 다른 하나님의 가족은 거기서 제외되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중간에 막힌 모든 담을 헐기 위하여 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긍휼과 사랑의 선물이 공기나 빛이나 혹은 땅을 소생시키는 소나기처럼 제한되지 않는 것임을 보이시고자 오셨다.

그리스도의 생애는 계급이 없는 종교, 즉 유대인과 이방인, 자유한자와 종이 공통된 형제로서 연합되고 하나님 앞에 동등한 종교 신앙을 확립시켜 놓으셨다. 어떤 정략적인 문제도 예수님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이웃과 외인, 친구와 원수 사이에 차별을 두지 아니하셨다. 예수님의 마음에 감명을 준 것은 생수를 갈급하는 영혼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영혼이라도 무가치하게 보셔서 그냥 지나치신 적이 없었고 오히려 모든 영혼에게 치료제를 사용하려고 힘쓰셨다. 그분은 어떤 무리들과 함께 계시든지 때와 환경에 합당한 교훈을 제시하셨다. 사람들이 저희 동료 인간들에 대해서 보인 태만이나 멸시가 예수님에게는 당신의 신인(神人)다운 동정을 그들이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한층 더 강하게 느끼도록 할 뿐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상스러운 자와 가장 소망이 없는 자들에게, 저들도 흠 없고 깨끗하게 될 수 있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할 품성을 이룰 수 있다는 보증을 보이시며 소망을 불러일으키고자 힘쓰셨다.

확실한 기초

사도 베드로는 말하기를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 1:10, 11)고 한다.

실제적인 예증

388 몇 해 전에,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왔음을 믿는 신자들의 단체가 매우 작았을 때, 메인 주 톱샴에 있는 안식일 준수자들은 스토크브리지 하우랜드 형제 집의 주방을 예배 장소로 사용했었다. 어느 안식일 아침, 하우랜드 형제가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이것을 보고 놀랐다. 그것은 그 형제가 항상 시간을 엄수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오래지 아니하여 그가 들어왔는데 그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고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났다. 그는 말하였다. “형제들이여,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가 결코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하신 보증이 있는 행동을 우리가 추구할 수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에 대해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러고는, 그는 한 형제, 곧 가난한 어부가, 자기는 응당 존경 받아야 할 만큼 크게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다시 말하면 하우랜드 형제와 다른 형제들이 저희 자신들을 스스로 자기보다 나은 것처럼 여기고 있음을 눈치챘다고 우리에게 말하였다. 사실은 그렇지 아니하였는데 그것이 그에게는 사실인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서너 주일 동안을 그 어부는 집회에 참석하지 아니하였다. 그래서, 하우랜드 형제는 그 사람의 집에 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말하기를 “형제여, 나를 용서하십시오. 내가 저지른 일이 무엇입니까?” 하였다. 그 사람은 하우랜드 형제의 팔을 붙들고 그를 일으켜 세우려고 하였다. 하우랜드 형제는 말하였다. “아니오, 무엇이 형제의 비위를 거슬리게 하였습니까?” “비위를 상하게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비위에 상하신 일이 틀림없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은 우리가 전에는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형제께서 말을 통 안 하시니 웬일인지 알고 싶습니다”라고 하우랜드 형제가 말하였다.

“일어나십시오, 하우랜드 형제”라고 그는 말하였다. “아니오, 나는 일어나지 않겠습니다.” 하우랜드 형제가 말하였다. “그럼, 제가 의자에서 내려 앉아야 겠군요”라고 그는 말하면서 그의 무릎을 꿇고, 그가 얼마나 철없이 굴었으며 마음 속에 얼마나 많은 악한 억측을 품었던가를 자백하였다. “그러나, 이제 나는 이 모든 것을 버리겠습니다”라고 그는 말하였다.

하우랜드 형제가 이 이야기를 하였을 때에 그의 얼굴은 주의 영광으로 빛났다. 389 그가 이야기를 막 끝마쳤을 때에 그 어부와 그의 가족들이 들어와서 우리는 훌륭한 집회를 가졌다.

우리 중에 누가 하우랜드 형제가 행한 그 행위를 따라야 한다고 상상해보라. 우리 형제가 악한 억측을 하는 경우에 우리가 그들에게 가서 “내가 혹시 형제에게 해가 되는 일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나를 용서하십시오”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사단의 결박을 깨뜨리고 우리 형제들을 저희의 시험에서 자유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대와 그대의 형제들 사이에 아무것도 개입하지 못하게 하라. 그대가 혐의의 쓰레기를 제거하기 위하여 희생으로써 그대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행하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형제로서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동정적이며 예모가 있기를 원하신다. 그는 우리가 스스로를 교육하여서, 우리 형제가 우리를 사랑하고 있으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기를 원하신다. 사랑은 사랑을 낳는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품음

우리는 우리 형제들을 하늘에서 만나기를 기대하는가? 우리가 만일, 이곳 지상에서 그들과 함께 평화롭게 화합하여 살 수 있다면 하늘에서도 그들과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계속적인 분쟁과 싸움을 하지 않고는 지상에서 그들과 함께 살 수 없다면 하늘에서 그들과 어떻게 살 수 있을 것인가? 형제에게서 불화와 압력을 가져 오게 하는 행동을 좇는 자들은 철저하게 개심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녹아지고 복종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보여 주신 사랑을 마음에 간직하여야 한다. 우리는 구주께 점점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기도를 많이 하고 믿음을 활용하도록 배워야 한다. 우리는 더욱 친절한 마음을 가지고 더욱 동정적이며 공손하여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을 단 한 번밖에는 통과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와 사귀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품성의 감화를 끼치도록 힘쓰지 않겠는가?

우리의 고루한 마음은 부서져야 한다. 우리는 완전한 연합 가운데서 하나가 되어야 하며,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바 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각 사람이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주셨다. 그런데, 그는 내가 이 세상을 살아 나갈 때에 그가 나를 위하여 자신을 바치심으로써 보이신 그 사랑을 보이기를 원하신다”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390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상에서 자신의 몸으로 친히 우리의 죄를 지신 것은,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시며 또한 당신을 믿는 자들을 의롭게 하시는 자가 되시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생명, 즉 영생이 있다.

나는 아름다우신 왕을 뵙기 원한다. 나는 그의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용모를 뵙기 원한다. 나는 그대도 역시 그분을 뵙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구속받은 자들을 생명수 강가로 인도하시어 그들에게 이 세상에서 저희를 당황하게 하였던 모든 일을 설명해 주실 것이다. 은혜의 신비들이 그들 앞에 열리게 될 것이다. 저희의 제한된 마음으로는 오직 혼란과 깨어진 목적만 보았던 그 곳에서 그들은 가장 완전하고 아름다운 조화를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능력과 지혜를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자. 우리가 가진 지혜는 그것을 사용할 때 증가할 것이다. 우리의 종교적 경험은 매일의 생활에서 실천될 때 더욱 강하게 될 것이다. 이와같이 하여, 우리는 하늘에 이르는 사다리를 계속 올라가게 될 것이요, 마침내 가장 높은 곳에서 하나님의 왕국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이 되자. 그리하면, 영광의 왕국에서 영생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 간에 존재하는 연합은 아버지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그의 아드님을 보내셨다는 한 증거가 된다. 그것은 그분의 능력에 대해 증거하는데, 이는 참으로 기이한 하나님의 능력이 사람들로 저희의 판이한 기질을 변화시켜 일치된 행동을 하게 하며, 저희의 한가지 목적은 사랑으로 진리를 전하는 것이 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경고와 권면은 솔직하고 명백하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선을 위한 능력에는 연합이 있으나 악을 위한 세력에는 내분이 있음을 보게 될 때,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심령 속에 받아들이는 일에 실족할 수 있겠는가? 의심과 불신은 악한 누룩과 같다. 연합은 진리의 능력에 대한 증거를 만들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