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 3

본문보기

-편제 23 호 - 교회증언

-3장 -

라오디게아 교회

252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은 두려운 책망이며 오늘날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 3:14-17).

주님께서는 여기에서 우리에게, 백성들을 경고하시기 위해 그분이 부르신 교역자들에 의해 당신의 백성들에게 증거되어야 할 기별이 평화와 안전에 대한 기별이 아님을 보여 주신다. 그 기별은 이론에 불과하지 않고 모든 면에서 실제적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육신적으로 평안한 형편에 처해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들은 영적으로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고 스스로 믿으며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그들이 전혀 잘못되어 있는데도 스스로 옳다고 확신하는 것보다 더 큰 기만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에 자리잡을 수 있을까! 253 참된 증인의 기별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비참한 기만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그 기만을 알지 못함을 보여 준다. 그들은 그들의 형편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한탄할 만한 상태임을 알지 못한다. 기별의 대상자들이 스스로 높은 영적 수준에 처해 있다고 자부할 때, 참된 증인의 기별은 그들이 영적으로 눈멀고 가난하고 곤고한 상태에 있다는 무서운 책망으로 그들의 안전을 깨뜨린다. 그렇게 통렬하고 가혹한 증언이 잘못될 수가 없는 것은 그 기별을 전하는 자가 참된 증인이므로 틀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성취한 것으로 안전을 느끼며 스스로 영적 지식에 있어서 부요하다고 믿는 자들이, 그들이 기만을 당하고 있으며 모든 영적 은혜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선포하는 기별을 받아들이기란 어려운 일이다. 성화되지 아니한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하”(렘 17:9)다. 예수께로부터 한줄기의 빛도 받지 못하면서 스스로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부하는 자들이 많이 있음을 나는 보았다. 그들은 거룩한 생애에 있어서 스스로를 위한 산 경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성령의 귀한 은혜를 얻기 위하여 열렬하고 끈기 있는 노력을 해야 할 진정한 필요를 느끼기 이전에, 그들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는 깊고 철저한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신다. 그리스도인 생애는 계속적인 투쟁이며 행진이다. 전쟁을 떠나 휴식할 수가 없다. 사단의 유혹을 계속 승리할 수 있는 것은 계속적이고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서이다. 한 백성으로서 우리는 분명하고 능력 있는 진리 안에서 승리하고 있다. 분명한 성경의 증언이 압도적으로 많으므로, 우리의 입장이 충분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상 겸손, 인내, 믿음, 사랑, 자아 부정, 경성, 그리고 희생의 정신에 있어서 크게 부족하다. 우리는 성경상 거룩함을 배양할 필요가 있다. 죄가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편만하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보내는 명백한 책망의 기별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들은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며 생각할 정도로 큰 기만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의심과 그들이 좋아하는 죄악들을 끊어 버리지 못한다. 254 그들은 성령의 책망의 증언은 필요 없으며 그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자들은 영적 지식을 통하여 그들의 부족을 발견하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와 영적 분별력이 크게 필요하다. 그들은 완전한 그리스도인 성품에 필요한 모든 자질을 거의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들은, 그들을 겸손한 삶으로 인도하며 그들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일치케 하는, 성경 진리의 실천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들은 하나님의 모든 요구를 순종하는 생애를 살지 않는다.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리스도의 모든 십자가 군병들은 잘못을 정죄하고 의를 지지하기 위하여 영혼의 대적과의 전쟁에 스스로 가담할 실제적인 의무가 있다. 그러나 참된 증인의 기별은, 우리 백성들이 두려운 기만에 빠져 있으므로 그들에게 그들의 영적 잠에서 일깨우고 단호한 행동을 하도록 분기시키기 위하여 경고를 가지고 나아갈 필요가 있음을 드러낸다.

지난번 이상에서, 나는 이 참된 증인의 단호한 기별조차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지 못해 왔음을 보았다. 백성들은 죄악 중에 잠자고 있다. 그들은 계속하여, 스스로 부요하므로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선포한다. 많은 사람들이 질문한다. “왜 이 모든 책망이 주어지는가? 증언은 왜 계속적으로 우리에게 배역과 통탄할 죄가 있음을 지적하는가? 우리는 진리를 사랑한다. 우리는 번영하고 있다. 우리는 이 경고와 책망의 증언들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불평자들로, 그들의 마음을 살펴보고 그들의 생애를 성경의 실제적인 교훈과 비교해 보게 하라. 하나님 앞에 그들의 영혼을 겸비하게 하도록 하라. 하나님의 은혜로 어둠을 비추게 하라. 그러면 눈에서 비늘이 떨어져, 자신의 진정한 영적 가난과 곤고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들은 순수한 믿음과 사랑인 금과, 그들의 자랑스런 구주의 피로 순결하게 된 흠없는 품성인 횐 옷과, 하나님의 은혜요 그들에게 영적 사물에 대한 명확한 통찰력을 부여하고 죄를 식별하게 하는 안약을 살 필요를 느끼게 된다. 이 모든 것을 얻음은 오빌의 금보다 더 귀하다.

255 하나님의 백성들이 오늘날 이렇게 영적으로 눈먼 상태에 처하여 있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그들이 고침을 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임을 나는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책망과 경고를 멸시하였다. 이 기다리고 깨어 있어야 할 시기에 사단이 그들 위에 큰 능력을 행할 수 있게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미지근한 상태를 참된 증인은 정죄한다. 이기적이고 교만하며 죄를 사랑하는 자들은 항상 의혹의 공격을 당한다. 사단은 의심을 품도록 암시하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명백한 증언에 대하여 반대하는 계획을 세울 능력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믿지 않고 이의를 제기하며 핑계하는 것이 덕이요 그들의 지성의 표라고 생각한다. 의심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그렇게 할 여지가 많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불신의 여지를 모두 제거하도록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마음과 배우고자 하는 정신으로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증거를 제시하시며, 모든 사람들은 증거의 중요성에서 결정하여야 한다.

영생은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그 대가로 요구한다. 영원한 사물에 대해 우리가 올바른 평가를 하지 않는 것을 나는 보았다. 이생에서라 할지라도 소유할만한 가치를 지닌 모든 것은 노력을 통하여, 때로는 가장 고통스런 희생을 통하여 얻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는 단지 없어질 보화를 얻는 것에 불과하다. 영원한 가치를 지닌 보화와 영존하시는 분의 생명과 견줄 수 있는 생명을 얻는 일에 있어서, 우리가 투쟁과 수고를 참고 열렬한 노력과 큰 희생을 치르는 일을 덜 기꺼워해야 할 것인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이 그 이상의 값을 더 지불할 수 있을까?

믿음과 사랑은 황금 보화이며,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크게 부족한 요소들이다. 경고와 격려와 책망의 증언들에 대한 불신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서 빛을 차단하는 것임을 나는 보았다. 불신은 그들의 눈을 감기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진정한 상태에 대하여 무지하게 한다. 그러므로 참된 증인은 다음과 같이 그들의 눈먼 상태를 묘사한다.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 3:17).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을 믿는 믿음이 결여되어 있다. “나의 주님이 더디 오시리라”는 말이 마음 속에서만 아니라, 말과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행동에서 표현되고 있다. 이 깨어 있어야 할 시기에 무감각하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시대의 징조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256 만연하고 있는 비참한 죄악은 교회로부터 죄를 제거하기 위한 최고의 성실과 산 증언을 요구하고 있다. 믿음은 두려울 정도로 감소되고 있다. 믿음이 증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활용함으로써이다.

셋째 천사의 기별이 일어날 때에 하나님의 사업에 종사했던 자들은 모험을 감행하였고 희생하였다. 그들은 빈곤한 가운데 이 사업을 시작하였고 가장 큰 곤궁과 치욕을 당하였다. 그들은 단호한 반대를 당하였는데, 그 반대는 궁핍한 그들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였으며 그들의 믿음을 생생하게 유지시켰다. 오늘날 우리들의 조직적인 헌금 제도는 우리의 교역자들을 충분히 유지시켜 주고 있으므로 핍절함이 없고 부양에 대하여 믿음을 행사할 필요도 없다. 요즘에 진리를 전하기 위하여 나아가는 자들은 모험할 일이 없다. 그들에게는 모험할 일이 없으며 특별히 희생할 일이 없다. 진리의 체계는 그들이 손에 잡을 수 있도록 이미 준비되어 있으며, 출판물들이 그들을 위하여 제공되어 있어서 그들이 나아갈 때 진리를 변호한다.

어떤 젊은이들은 이 사업의 고상한 성격에 대한 참된 인식이 없이 사업을 시작한다. 그들에게는 믿음을 활용하게 하는 궁핍 고난, 심한 투쟁에 직면할 기회가 없다. 그들은 실제적인 자아 부정을 배양하지 않으며 희생 정신을 품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교만해지고 우쭐해져서 사업의 실제적인 짐을 지지 않는다. 참된 증인은 이런 교역자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은 교만으로 너무 우쭐해져서 하나님의 귀한 사업에 사실은 방해가 되고 저주가 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의 감화를 행사하지 못한다. 이 사람들은 스스로가 먼저 하나님께로 철저히 돌아설 필요가 있으며, 그들이 남에게 제시하고 있는 진리에 의해 성화되어야 한다.

교회에 대한 예리한 증언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죄를 그들 앞에 제시하는 경고와 견책에 의해 자주 간섭을 당하므로 초조와 질투를 느낀다. 참된 증인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라고 말씀하신다. 동기, 목적, 불신, 의심, 그리고 질투는 사람에게는 숨겨질지 모르나 그리스도에게는 숨겨지지 않는다. 257 참된 증인은 권면자로 나아 오신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횐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 3:18-21).

하나님의 성령을 통하여 책망을 받는 자들은 비천한 도구에 불과한 사람을 대항하여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들을 멸망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하여 말씀하신 분은 잘못을 범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경고를 멸시하는 자들은 눈먼 가운데 방치되며, 스스로 기만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경고에 주의함으로 필요한 은혜를 얻기 위하여 죄를 그들로부터 분리하는 일을 열렬하게 실천하는 이들은 사랑 많으신 주님께서 들어오셔서 그들 안에 거하시도록 마음의 문을 열게 될 것이다. 그대는 언제나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령의 증언과 완전히 조화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현대 진리를 전하는 교역자들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보내는 엄숙한 기별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참된 증인의 증언은 부드러운 기별이 아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는 거의 옳다. 너희는 결코 받을 이유가 없는 징벌과 견책을 받았다. 너희는 책망받은 그 잘못과 죄에 대해 허물이 없다”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참된 증인은, 그대가 진정으로 번영의 훌륭한 형편에 처해 있다고 추측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대가 모든 것이 결핍된 상태에 있다고 선포한다. 교역자들이 이론적인 주제만 제시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그들은 실제적인 주제들도 제시하여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베푸신 실제적 교훈을 연구하고 그 동일한 것을 자신과 백성들에게 밀접하게 적용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께서 이 책망의 증언을 하셨으므로 그분의 백성에 대한 그분의 부드러운 사랑이 결핍되어 있다고 우리가 상상할 것인가? 258 오, 아니다! 인간을 죽음에서 구하시기 위하여 돌아가신 그분은 거룩한 사랑으로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들을 책망하신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계 3:19).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비로 그들에게 보내신 기별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의무 태만, 잘못, 이기심, 교만과 세상에 대한 사랑이 언급되는 것을 참지 못한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의 남편과 나에게 특별한 사업, 곧 당신의 백성에게 분명한 증언을 제시하고, 크게 외치되 아끼지 말고, 백성들에게 저들의 죄악을, 그리고 이스라엘 집에 저들의 죄를 보여 주는 일을 맡겨 주셨음을 보았다. 그러나 견책의 기별을 받아 들이려고 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은 하나님께서 견책하시고 교정하시고자 하는 이들을 저들의 손을 들어 방어한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저들의 진정한 궁핍에 대해 깨닫도록 하시고자 하는 이들에 대해서 언제나 동정을 표한다.

당신의 종들을 통해서 주신 주님의 말씀을 많은 사람들은 의심과 두려움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저들의 마음 가운데서 모든 의심의 그늘이 거두어질 때까지 기다리면서 주신 경고와 견책의 기별에 순종하기를 거절한다. 완전한 지식을 요구하는 불신은 결코 하나님께서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증거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완전한 지식에 근거한 것이 아닌 증거의 무게에 근거한 믿음을 요구하신다.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주신 빛을 받아들이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그에 거스리는 수많은 목소리가 들릴 때에라도 저들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해야 한다. 이 일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구분할 줄 아는 분별력이 필요하다.

주님께서 그들을 부르실 때 좀더 확실한 증거와 좀더 훌륭한 기회를 기다리며 행동에 옮기려고 하지 않는 이들은 빛이 거두어짐으로 말미암아 흑암속을 걷게 될 것이다. 지난 날 주어진 증거는 만일 거절을 당할 때에 결코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의 사업에 대하여 시험을 받고 있으며. 그것을 문제시한다. 어떤 이들은 시험의 상황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닥친 위기와 궁지를 우리가 저들에게 준 견책의 증언들 때문이라고 비난한다. 그들은 경고의 기별을 증거한 이들,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고 그들의 과오를 바로잡는 이들에게 곤란이 있다고 생각한다. 259 많은 사람이 영혼의 대적에게 미혹을 받고 있다. 그들은 화잇 부부의 수고는, 만일 그들이 끊임없이 잘못을 정죄하고 죄를 견책하지 않는 한, 받아들일 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이 사업을 우리에게 짊어지도록 하셨으며, 우리가 당신의 백성을 만나서 우리의 증언을 제시하여 비 헌신적인 인물들의 추측과 시기를 좌절시키는 일에 방해를 받게 될 때에는 사단이 매우 강하게 시험을 몰고 올 것임을 나는 보게 되었다. 언제나 의문과 의심의 편에 서는 자는 마음 내키는 대로 저들의 의문을 제시하고, 저들의 불신을 은근히 심어 준다. 어떤 이들은 경건한 척하면서 매우 양심적이고 신앙적인 듯한 의문을 조심스럽게 흘린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만일 그것을 솔직하게 말했을 경우보다도 열 배나 더 강한 힘을 갖고 그릇된 이들을 강화하며, 우리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고, 우리의 사업에 대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신임을 약화시킨다. 이 가련한 영혼들은 사단에게 미혹되고 있음을 나는 보았다. 그들은 만사가 잘되어 나가고 있으며, 자신들은 하나님께 은총을 입고 있으며, 영적 분별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가난하고, 눈멀고, 비참한 형편에 빠져 있다. 그들은 사단의 일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을 위해 열심을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미혹 당했고 자기들은 옳다고 자만하면서, 우리에게 증거하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증언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명백한 취급과 견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저들과 함께 계신다고 생각한다. 그 영혼이 죄에 대한 충성스러운 견책을 거스려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이 시험받은 이들은 “우리에게 부드러운 것을 말해 주시오”라고 외친다. 이들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참된 증인의 기별을 어떻게 대하는가? 여기에는 결코 기만이 있을 수 없다. 이 기별은 하나님의 종들에 의하여 뜨뜻미지근한 교회에 증거되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그들의 진정한 위치와 관련하여 안일과 위험한 기만으로부터 그분의 백성을 일어서게 해야 한다. 만일 받아들인다면, 이 증언은 행동하도록 할 것이며 또한 겸비케하여 죄를 고백하도록 할 것이다. 참된 증인께서는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계 3:15)라고 말씀하신다. 260 또한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9)고 말씀하심과 더불어 약속의 말씀을 주신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하리라”(계 3:21).

하나님의 백성은 저들의 잘못을 깨닫고 열심히 회개하여 저들로 하여금 그토록 통탄스러운 가난과 눈멂과 곤고함과 두려운 기만 상태 가운데 빠지게 한 죄들을 벗어 버려야만 한다. 나는 예리한 증언이 교회안에 살아 있어야 함을 보았다. 이것만이 라오디게아에 보내는 기별에 대한 대답이 될 것이다. 잘못은 견책을 받아야 하며, 죄는 죄라고 불려져야 하며, 죄악에 대해서 즉시 결정적으로 대처함으로 한 백성인 우리에게서 벗어버려져야 한다.

하나님의 성령을 거스려 싸움

지나간 26년간 하나님의 성령에 이끌려 우리가 해 왔던 사업에 대하여 반대의 정신을 갖고 있는 이들 또한 우리의 증언을 깨뜨려 버리고자 하는 이들과 관련해서 내가 보게 된 것은 저들은 우리와 더불어 싸우는 것이 아니고, 다른 이들에게 주시지 않은 사업의 짐을 우리에게 메게 하신 하나님을 거스려 싸우는 것이다. 의문과 핑계를 일삼아 의심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한 이들, 절망시키려고 한 이들, 우리 사업을 힘들게 하고 우리의 믿음과 소망과 용기를 꺾기 위한 도구의 역할을 한 이들은, 사악한 것을 추측하고, 미묘하게 의심의 비난을 심고, 우리에 대해 질투의 기회를 엿보았던 이들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인간적 약점이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는 그르고 자기들은 바르다는 결정적 증거로 당연시하였다. 만일 그들이 우리를 해치는 데 사용할 만한 어떤 비슷한 것이라도 발견할 수 있으면, 그들은 승리의 정신으로 그렇게 했으며 또한 잘못을 견책하고 죄를 정죄하는 우리의 사업을 거칠고 독재적인 정신이라고 매도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 대해 무엇이라고 하든지 그것을 우리의 고난의 원인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께서 다른 이들에 대해서 보다도 우리에게 더 힘든 과업을 맡기셨다고 생각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과 용기가 심하게 시련을 겪었으며 이따금 우리의 사업에 우리를 임명하신 분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일에 실패했음을 겸손한 심령과 회개로 인정하였다. 261 쓰라린 실망과 시련 후에 또다시 용기를 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끊임없이 불신하고 인간적 약점에 밀려 우리의 믿음을 실망의 구름으로 가리워 버리고 하나님께 대해 적게 신뢰한 것에 대해 깊이 후회하였다. 고대의 하나님의 종들도 가련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실망과 좌절로 고생했음을 나는 보게 되었다. 우리는 선량한 사람들 사이에 거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나의 남편이 내 곁에 서서 내가 하는 일을 붙들어 주고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와 연합하여 분명한 증언을 제시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을 해치는 이가 다름 아닌 그라고 느꼈다. 그러나 이 짐을 그에게 지워 주신 분은 주님이셨으며, 그분께서는 당신의 종을 통하여 그들을 견책하심으로 저들로 하여금 그 잘못들을 회개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입을 수 있는 지점으로 돌이킬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중대한 사업을 위하여 부르신 이들은 언제나 불신과 의심을 받았다. 고대 시대에 엘리야가 하나님께로부터 기별을 갖고 백성들에게로 나갔을 때, 그들은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그를 불필요하게 가혹하다고 생각하였다. 심지어 그들은 엘리야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백성을 죄인으로 정죄하고, 저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심판을 발하실 만큼 심한 것으로 저들을 정죄하자 그를 정신나간 사람으로까지 여겼다. 사단과 그의 군대는 경고의 기별을 전파하고 죄를 책망하는 이들을 거스려 싸우고자 언제나 진을 치고 있다. 비 헌신적인 의지는 또한 하나님의 충실한 종들의 사업을 가능한 한 힘들게 하려고 영혼의 대적과 함께 연합할 것이다.

만일 나의 남편이 한도에 넘칠 만큼 압력을 받아 실망과 절망 속에 빠졌더라면, 만일 우리가 때때로 인생에 있어서 선택할 만한 좋은 것은 전혀 보지 못했다면, 이것은 이상하거나 새로운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의 선지자 중 한 사람이었던 엘리야는 격노한 이세벨의 분노를 피해 목숨을 건지기 위하여 도망쳤을 때, 여행에 지친 도피자로서 사는 것보다도 죽기를 원하였다. 262 이스라엘의 신실함에 관해 쓰라린 실망을 했을 때, 그의 심령은 부수어지는 것 같았으며, 더 이상 인간을 믿을 수 없다고 느꼈다. 욥은 캄캄한 환난의 때에 “나의 난 날이 멸망하였었더라면”(욥 3:3)이라고 말하였다.

심연의 깊이까지 내려가 보지 않은 이들, 마차 밑의 바퀴처럼 부담 아래 서 본 적이 없는 이들, 하나님의 사업을 자신의 관심사와 너무 밀접하게 일치시킴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저들 존재의 일부요 생명보다 더 귀한 것으로 여겨본 적이 없는 이들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엘리야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내 남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는 환경이 어떠하였던 지간에 낙망했던 것에 대해 깊이 후회한다.

아합의 경우가 경고가 됨

아합의 그릇된 통치 때문에 이스라엘은 하나님께로부터 떠나서 그분 앞에서 저들의 길을 더럽혔다.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로 아내를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숭배하고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사당 속에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으니 저는 그전의 모든 이스라엘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더라”(왕상 16:30-33).

아합은 도덕적 힘이 약하였다. 그에게는 신성한 사물에 대한 깊은 인식이 없었다. 그는 이기적이었고, 비 원칙적이었다. 단호한 성품과 적극적인 기질을 지닌 우상 숭배자 여인과 결혼을 통해 연합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들 모두는 하나님의 백성을 우상숭배와 무서운 배도로 이끄는 사단의 매개자가 되었다. 이세벨의 단호한 정신이 아합의 성격을 꼴지었다. 그의 이기적인 본성은 당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 이스라엘의 수호자요 지도자로서 하나님께 대해 갖고 있는 자신의 책임을 깨달을 수 없었다.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날마다 이스라엘에서 줄어 갔다. 263 그들의 맹목적인 우상숭배의 신성 모독적 표시가 하나님의 이스라엘 중에 나타나게 되었다. 횡행하고 있는 신성 모독적인 우상숭배를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일어섬으로 자신의 생명을 감히 내걸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바알의 제단들과 해, 달, 별에게 희생을 드리는 바알의 제사장들은 도처에서 눈에 띄었다. 그들은 신전들과 작은 숲을 구별하여 그 안에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들을 들여 놓고 경배하였다. 하나님께서 이 백성에게 축복을 베푸셨건만, 주신 분께 전혀 감사를 드리지 않았다. 하늘의 모든 것, 흐르는 시내, 생수의 줄기들, 부드러운 이슬, 땅을 적셔서 들판에 풍성하게 솟아나게 하는 소나기, 이 모든 것은 저들의 신들의 가호로 돌려버렸다.

엘리야의 충성된 영혼은 슬픔을 느꼈다. 그는 분개하였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질투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이 무서운 배도로 빠져들어 갔음을 보았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위해서 이루신 위대한 일들에 대해 상기했을 때, 그는 슬픔과 놀라움으로 압도되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백성은 이 모든 것을 잊었다. 그는 슬픔에 짓눌린 영혼을 갖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 주님께서 그것이 심판을 의미한다고 할지라도 당신의 백성을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감사할 줄 모르는 백성들에게서 이슬과 비, 하늘의 보물들을 거두심으로 배도한 이스라엘로 하여금 저들의 신, 곧 금과 나무와 돌로 만든 저들의 우상, 해와 달과 별들이 땅에 물을 대어 비옥하게 함으로 풍성한 결실을 가져오기를 헛되게 고대하도록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주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당신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셨으며, 당신의 백성이 회개하며 당신께로 돌아설 때까지 우로를 거두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아간의 죄와 형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매혹적인 수풀과 신전과 제단에 미혹을 받을까 봐 그들 주변의 우상숭배 국가와 섞이는 것을 특별히 막으셨다. 그것들은 지극히 값비싸게 만들어져서 저들을 홀려 백성들의 마음 속에서 하나님이 쫓겨나도록 했다.

264 여리고 도성은 가장 방탕적인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다. 그 주민들은 매우 부유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모든 부를 그 신들의 선물로 간주하셨다. 그들에게는 금과 은이 풍성하였다. 그러나 홍수 이전의 사람들처럼 그들은 부패하였고 신성 모독적이었으며, 저들의 사악한 행실을 통해서 하늘의 하나님을 모독하고 격분시켰다. 하나님의 심판이 여리고를 향해서 발해졌다. 그것은 요새였다. 그러나 주님의 군대의 사령관께서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셔서 하늘 군대를 이끄시고 그 도시를 공격하셨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육중한 성벽을 붙들어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이 저주를 받아 라합과 그의 가족들 외에는 모두 멸망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들은 라합이 주님의 사자들에게 베푼 호의 때문에 구원을 받아야 했다. 백성들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았다.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수 6:18).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로 무리를 경계하여 가로되 이 여리고 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 하였더라”(수 6:26).

하나님께서는 여리고의 경우에는 매우 까다로우셨는데, 이는 백성들이 그 거민들이 경배하던 것들에 홀려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을 돌이킬까 해서였다. 그분은 지극히 적극적인 명령으로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셨다. 그러나 여호수아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엄숙한 명령을 주셨건만, 아간은 감히 거스려 범죄 하였다. 그는 탐심에 이끌려 하나님의 저주가 함께 하는, 만지지 말도록 금지된 보화에 손을 댔다. 이 사람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그 원수들 앞에서 맹물처럼 약하게 되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큰 슬픔 가운데 휩싸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진노하심을 인하여 지극히 비통해 하며 수치 가운데 하나님의 법궤 앞에 엎드렸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며 울었다. 주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265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대적을 능히 당치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자기도 바친 것이 됨이라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수 7:10-12).

죄를 책망할 의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노라고 공언하는 자들 중에 있는 죄를 하나님이 어떻게 여기시는지를 여기에 예시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나는 보았다. 고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듯이, 하나님의 능력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게 하심으로 그분께서 특별히 영광스럽게 하신 자들이 그분의 명백한 지시를 감히 멸시하기까지 할 때에는 그분의 진노의 대상이 된다. 그분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불순종과 죄악은 당신께 심히 불쾌한 것이므로 경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자 하신다. 그분은, 당신의 백성들이 죄악 중에 있음을 깨닫지만, 즉시 그 죄를 그들로부터 떨쳐 버리기 위한 결정적 조치를 단번에 내림으로 당신의 불쾌히 여기심이 그들 모두 위에 머물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다. 그러나 백성들의 죄악이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자들에 의해 간과된다면, 그분의 진노가 그들 위에 내릴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한 몸으로서 그 죄악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과거에 당신의 백성을 취급하심에 있어서, 주님께서는 교회를 잘못으로부터 순결하게 하실 필요를 보여 주신다. 한 죄인이 하나님의 빛을 전 회중으로부터 차단할 흑암을 퍼뜨릴 수도 있다. 백성들이, 흑암이 그들 위에 머물러 있음을 깨닫지만, 그 원인을 알지 못할 때에는 자신을 크게 낮추고 겸손한 가운데 주님의 성령을 슬프시게 한 그 잘못을 찾아내어 버릴 때까지 하나님을 열렬하게 찾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 주신 그 잘못을 우리가 책망한 연고로 우리를 대항하여 일어난, 편견과 가혹함과 엄격함에 대한 부르짖는 원성은 정당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하라고 명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침묵을 지키지 않을 것이다. 266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 명백한 죄가 있으나 하나님의 종들이 그것들을 무관심하게 간과한다면, 그들은 실제로 죄인을 지지하고 정당화하는 것이며, 죄인과 동일한 허물을 갖게 될 것이요, 반드시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을 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죄인들의 죄악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종들이 그들 중에 존재하는 잘못과 죄악을 다룸에 있어서 소홀히 함으로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이 이르러 온 많은 경우가 이상 가운데서 내게 지적되었다. 이 잘못을 간과하는 자들은 단지 그들이 성경의 명백한 의무를 이행하는 것을 회피하였기 때문에 매우 온후하고 사랑스런 기질을 가졌다고 백성들에 의해 생각되었다. 그 임무는 그들의 마음에 맞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그것을 회피하였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는 잘못에 대한 견책 때문에 어떤 이들이 품어 온 미움의 정신은 그들 자신의 영혼에 맹목과 두려운 기만을 야기하였고, 그들로 하여금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영적 시력을 어둡게 하였다. 그들은 잘못을 목도 했으나 여호수아가 느낀 것처럼 그것을 느끼지 않았고, 영혼의 위험을 깨달을 때에 자신을 겸손하게 하지 않았다.

주님의 사업의 정신과 영혼 구원의 정신을 그 마음에 품은 하나님의 참된 백성은 항상 죄의 참된 성격 즉 그 흉악한 성격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항상 하나님의 백성을 쉽게 습격하는 죄를 성실하고, 명백하게 다루는 쪽에 설 것이다. 특히 교회를 위한 마지막 사업에 있어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흠없이 설 십사만 사천 명을 인치는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고백하는 자들의 잘못을 가장 깊게 느낄 것이다. 이 사실은 각자 그 손에 살육하는 기계를 든 사람들의 모습으로 표상된 마지막 사업에 대한 선지자의 예증을 통하여 강력하게 제시되었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은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그릇을 찼다.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겔 9:4).

267 누가 이와 같은 때에 하나님의 권면을 따를 것인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 중의 잘못을 실제로 변명하고, 공개적은 아닐지라도 마음 속으로, 그들의 죄악을 책망한 자들에 대하여 불평하는 자들이겠는가? 책망자들을 반대하고 잘못을 범하는 자들을 동정하는 자들이겠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회개하여, 사업의 짐을 지고 있는 자들을 핍박하고 시온의 죄인들의 손을 붙들어 주는 사단의 일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들은 결코 하나님의 인치심을 통한 인정의 표를 받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살육하는 기계를 든 다섯 사람의 사업으로 표상된 전반적인 악인의 멸망에 빠지게 될 것이다. 다음의 요점을 주목하라. 가는 베옷을 입은 사람에 의해 찍혀지는 표로 표상된 진리의 순결한 표 즉 성령의 능력에 의해 그들에게 이루어진 그 표를 받는 자들은 교회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 들임을 관심 있게 주목하라. 하나님의 순결, 명예, 영광에 대한 그들의 사랑은 그들이 고민 중에 있고 탄식하며 우는 모습으로 표상될 정도로 깊다. 그들은 죄악의 지극히 죄됨에 대하여 분명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에스겔 9장을 읽어 보라.

죄악과 의(義)의 뚜렷한 대조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권면을 듣고 표를 받아들이는 자들로 여겨지지 않는 모든 자들에 대한 전반적인 살육이, 살육하는 기계를 든 다섯 사람에게 내려진 명령 속에 묘사되어 있다.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 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겔 9:5, 6).

아간이 범죄 했을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수 7:12). 죄악과 잘못을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이스라엘 진(陣)을 괴롭게 하는 자들에게 항상 동정하는 자들이 따르는 길과 이 실례는 얼마나 판이하게 대조되는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 바친 물건을 너희 중에서 제하기 전에는 너의 대적을 당치 못하리라”(수 7:13). 268 그분은 당신의 언약을 범하는 데 따르게 될 형벌을 선고하셨다.

그 후, 여호수아는 범죄자를 찾기 위해 부지런히 조사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을 지파 별로 조사하였고, 그 후에 저들의 가족 별로 조사하였고, 그 다음에 각 개인별로 조사하였다. 그러자 아간이 범죄자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그 사실이 모든 이스라엘에게 명백하게 드러나서 죄없는 자가 고난을 당한다고 불평하거나 말할 기회가 그들에게 제공되지 말아야 했으므로, 여호수아는 한 방책을 사용했다. 그는 아간이 범죄자이며 그의 죄를 숨김으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그분의 진노를 유발시켰다는 사실을 알았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예와 공의가 이스라엘 앞에서 옹호되도록 신중하게 아간으로 하여금 그의 죄를 고백하도록 유도하였다. “여호수아가 아간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청하노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그 앞에 자복하고 네 행한 일을 내게 고하라 그 일을 내게 숨기지 말라.”

“아간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참으로 나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여차여차히 행하였나이다.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이에 여호수아가 사자를 보내매 그의 장막에 달려가 본즉 물건이 그의 장막 안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는지라 그들이 그것을 장막 가운데서 취하여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가져오매 그들이 그것을 여호와 앞에 놓으니라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외투와 금덩이와 그 아들들과 딸들과 소들과 나귀들과 양들과 장막과 무릇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여호수아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뇨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그것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수 7:19-25).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이 저주받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취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명하신 물건들을 아간이 취하였을 뿐 아니라 그것을 훔쳤고 감추었다고 말씀하셨다. 269 주님께서는 여리고와 그 성의 모든 전리품들을, 주님의 곳간에 들일 금, 은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사르라고 말씀하셨다. 여리고를 탈취한 승리는 백성들의 전쟁이나 과시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하늘 군대를 인도하셨다. 전쟁은 주님의 전쟁이었으며, 싸움을 싸우신 분은 다름 아닌 주님이셨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승리와 영광은 주님의 것이었고, 전리품도 그분의 것이었다. 그분은 당신의 곳간을 위한 금, 은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사르라고 지시하셨다. 아간은 이와 같은 제한 조건에 대하여 또한 그가 탐 내었던 금, 은, 보물들이 주님의 것임에 대하여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곳간에서 도둑질하였다.

하나님의 백성들 중의 탐심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노라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서 저들의 수중에 맡겨 당신의 금고에 넣게 하신 금전을 사적 용도를 위해서 착복하고 있음을 나는 보게 되었다. 그들은 십일조와 헌물에 있어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다. 그들은 시치미를 떼고 하나님의 것을 내놓지 않으나 그들에게 손해가 될 뿐이다. 그들은 저들의 탐심과 십일조와 헌물에 대한 속임수와 도적질을 통하여 빈약함과 가난을 자초하며 교회를 흑암 속에 들어가게 한다.

나는 많은 영혼들이 탐심 때문에 흑암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을 보았다. 분명하고 곧은 증언이 교회 안에 살아 있어야만 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하나님의 저주가 저들의 죄로 인하여 고대 이스라엘에 분명히 임하였던 것처럼 당신의 백성에게 머물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 중에 존재하는 개인들의 죄에 대해 한 몸으로서 당신의 백성에게 책임을 지우신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몸에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을 안겨 줄 죄들을 부지런히 발견하는 일을 등한히 하게 될 경우, 저들은 이러한 죄들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심령을 취급하는 일은 일찍이 인간이 참여한 사업 중 가장 훌륭한 사업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바로잡는 일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긍휼을 사랑하는 한편 공의롭게 취급할 만한 지혜를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사랑과 부드러운 동정에 신실한 견책을 혼합해야 할 필요를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270 어떤 이들은 항상 불필요하게 가혹하고,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이 여기라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유 22, 23)고 말한 사도의 권면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여호수아의 분별력과 잘못을 찾아내어 그들 중에 거하는 죄들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특별한 사명을 소유하지 못한 자들이 많다. 이런 자들은 이러한 사업의 짐을 짊어지고 있는 이들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이러한 의무를 수행하도록 되어 있는 이들의 길을 가로막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이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워 주지도 않으신 일을 하기 때문에 혹자는 그것을 문제로 삼고, 의문시하고, 비난한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로부터 진노를 옮기시기 위하여 휩쓸고 있는 죄들을 견책하고 교정하는 부담을 지우신 이들의 앞길을 직접적으로 막는다. 아간과 같은 경우가 우리 중에 존재한다면, 잘못을 찾아내는 여호수아의 역을 맡은 이들에 대하여 사악하고 흠을 찾기 좋아하는 정신의 소유자라고 비난할 자들이 많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경홀히 여김을 당하지 않으시며, 그분의 경고는 빗나간 백성들에 의하여 무사 안일하게 무시되도록 하지 않으신다.

나는 아간의 고백은 우리들 중 어떤 이들이 그렇게 하였고, 또한 그렇게 할 고백과 유사함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감추고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발견해 내실 때까지 자발적으로 고백하기를 거절한다. 그들은 그 후에 자신의 죄를 인정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릇된 길로 행하다가 결국 강퍅하게 된다. 그들은 마치 아간이 자신의 범죄 때문에 그 원수들 앞에서 이스라엘이 약화되었던 것처럼 교회가 부담을 지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양심의 정죄를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저들의 교만하고 반역적인 마음을 낮추고 그 잘못을 벗어버리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교회를 평안하게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이 당신의 백성들 위에 있으며, 그분은 저들 중에 죄악이 존재하고,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이들에 의해서 그것이 조장되는 한 저들 중에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교회에서 장애물을 없애고 서글픈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 일하는 이들, 그리하여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죄에 대해 공포를 느껴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하고 순결한 중에 번영하도록 하며,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도록 하는 자들은 비 헌신적인 이들로부터 저항하는 영향력을 만나게 될 것이다. 271 스바냐는 다음과 같이 이러한 부류들의 진정한 상태에 대해서와 그들에게 임할 무서운 심판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그 때에 내가 등불로 예루살렘에 두루 찾아 무릇 찌끼같이 가라앉아서 심중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벌하리니”(습 1:12).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심히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애곡하는도다 그 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무와 패괴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 내가 사람들에게 고난을 내려 소경같이 행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 여호와께 범죄 하였음이라 또 그들의 피는 흘리워서 티끌같이 되며 그들의 살은 분토같이 될지라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키우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거민을 놀라게 멸절할 것임이니라”(습 1:14-18).

너무 늦은 고백

분명히 위기가 닥쳐올 터인데, 최종적으로 그 위기가 닥쳐올 때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위해서 말씀하신다. 흑암의 그늘 역할을 한 이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해서 역사 하실 때 그 정반대편에 섰던 이들은 사업에 대해 불평하고 절망을 안겨 준 데 대하여 자세히 경고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마치 아간처럼 두려움에 질려 자기가 죄를 지었음을 시인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고백은 너무 늦었으며, 비록 하나님의 일을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할지라도 스스로에 대해서는 유익이 없는 부류의 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이들은 자신의 진정한 상태에 대한 각성과 자신의 길이 하나님께 얼마나 불쾌한 것이었는가에 대한 인식때문에 고백을 하지 않는다. 272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또 다른 시험과 또 다른 입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실 수 있는데, 이들은 고백을 하기 전과 비교하여 볼 때 전혀 나은 것 없이 반역과 죄에 가담해 있음을 드러낼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잘못된 편으로 기울어진다. 그리하여 옳은 것을 옹호하기 위해 결정적인 행동을 취함으로 주님 편에서라는 호소가 그들에게 주어질 때, 그들은 자신의 참된 위치를 드러낼 것이다. 아간의 경우처럼 하나님의 성령과는 전혀 관계없는 정신에 의해 거의 한 평생을 지배받아 온 이들은 모든 사람에게 결정적 행동이 요구되는 시간이 이르러 올 때 매우 수동적이 될 것이다. 그들은 어느 편에도 서 있다고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 사단의 권세는 그들을 너무 오랫동안 붙잡았으므로 그들은 눈멀고, 의를 옹호하기 위하여 일어설 의향이 전혀 없다. 만일 그들이 그릇된 편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로 그들에게 의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감히 그렇게 할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경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신다. 진정한 색깔이 바람에 휘날리게 되는 것은 쟁투의 때이다. 그 때가 되면 깃발을 든 이들은 굳건히 서서 자신의 진정한 위치를 알리게 된다. 그 때에 의에 편에 선 진실된 모든 용사들의 기술이 시험을 받는다. 기피자는 결코 승리의 월계관을 쓸 수가 없다. 진실되고 충성을 다 바치는 인물들은 사실을 숨기지 않을 것이며, 뜻과 힘을 사업에 쏟을 것이며, 전쟁이 제대로 되도록 모든 것을 무릅쓰고 싸움 속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또한 “그대는 평안하다” 라고 말하며 죄인들을 격려하는 이들을 하나님께서는 저주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평안함을 줄 수 있는 올바른 때에 한 죄의 고백은 하나님께 가납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중에는 자신을 구원하기에는 너무 늦게 된 후에야 고백을 할 자들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증명하시고자 다른 시련을 허락하신다. 이는 당신의 백성에게 그들이 한 가지 시험, 하나님께 인정함을 받는 한 가지에 실패했음을 알려 주시기 위함이다. 그들은 올바른 것과는 조화되지 않는다. 그들은 마음에 닿는 곧은 증언을 무시하고, 견책을 하는 이를 모든 사람이 침묵시키고자 하는 것을 보기를 즐거워한다.

엘리야가 아합을 꾸짖음

273 이스라엘 백성은 서서히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과 존경심을 상실해 갔으며, 결국 여호수아를 통해서 주신 그분의 말씀은 저들에게 완전히 그 무게를 상실하였다.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저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문을 세울 때에 둘째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왕상 16:34).

이스라엘이 배도하고 있을 때에, 엘리야는 하나님의 충성되고 진실된 선지자로 남아 있었다. 그의 충성스러운 영혼은 불신과 불경건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으로부터 신속히 분리되어 나가는 것을 볼 때에 크게 괴로웠으며, 그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여 주시기를 기도드렸다. 그는 주님께서 당신의 범죄한 백성을 전적으로 내버리시지 않기를 간청하되, 만일 필요하다면 그분께서 심판을 통하여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하며, 더욱 큰 죄 가운데 그들이 빠져들어 감으로 하나님을 격분시켜 한 민족으로서의 그들을 멸망시키도록 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다.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해 위협적인 심판의 기별을 갖고 아합에게로 가라는 주님의 기별이 엘리야에게 임하였다. 엘리야는 주야로 여행하여 아합의 궁에 도착하였다. 그는 허가를 요청하지도 않았고, 공적으로 알게 될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았다. 매우 갑작스럽게 아합에게 나타나서 엘리야는 주로 선지자들이 입는 거친 복장으로 놀라움 가운데 빠진 사마리아의 왕 앞에 섰다. 그는 초청도 받지 않고 자기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에 대하여 전혀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손을 하늘로 치켜 올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 곧 천지를 지으신 분을 빌어 이스라엘에 심판이 임하게 될 것을 엄숙하게 선언하였다.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왕상 17:1).

이스라엘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무서운 통고는 배도한 왕에게 벼락과 같았다. 그는 놀라움과 공포로 마비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가 두려움에서 회복되기도 전에 엘리야는 자기의 기별의 효과를 보기 위하여 기다리지도 않고 왔던 때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그의 사업은 하나님께로부터의 저주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으며, 그는 즉시로 물러났다. 274 그의 말은 하늘 창고를 잠궜으며, 그의 말만이 그것을 다시 열 수 있는 유일한 열쇠였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 중에서는 당신의 종이 결코 안전하지 않을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배도한 이스라엘을 신뢰하실 수 없으셨으며, 그리하여 이방 국가 속에서 피난처를 찾도록 그를 보냈다. 그분은 과부 여인, 곧 지극히 적은 양으로 겨우 연명하는 여인에게 그를 보내셨다. 자기가 받은 최선의 빛을 따라 살아가는 이방 여인은 특별한 특권과 큰 빛을 받았으되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주신 빛대로 살아가지 않는 이스라엘의 과부들보다도 더욱 가납받을 만한 상태 가운데 있었다. 히브리인들이 빛을 거절하였을 때, 그들은 흑암 가운데 남겨졌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분노를 격발시킨 당신의 백성들 중에 당신의 종을 의탁하실 수 없으셨다.

이제 배도한 아합과 이교도 이세벨은 저들의 신들의 능력을 시험하고, 엘리야의 말이 거짓임을 증명해 낼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세벨의 선지자들은 수백명에 달하였다. 그들 모두를 대항해서 엘리야 홀로 섰다. 그의 말은 하늘을 잠궜다. 만일 바알이 우로를 줄 수 있고 식물들로 풍성하게 할 수 있다면, 만일 그가 하늘 소나기를 간직한 하늘 창고와는 별개로 독립하여 이전처럼 시냇물이 흐르게 할 수 있다면, 이스라엘의 왕은 그에게 결백할 것이며, 백성은 그가 하나님이라고 말할 것이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다. 아합에 대한 사명,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운 선포를 그에게 전하는 일에는 용기와 믿음이 필요하였다. 사마리아로 가는 길에 그는 언제나 흐르는 시냇물, 푸르름으로 단장한 산들, 굳건하고 울창한 나무로 차 있는 숲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이 머무는 모든 곳마다 아름다움과 영광으로 차고 넘쳤으며, 그것들은 자연스럽게 불신을 시사하였다. 어떻게 천연계 속에 있는 이 모든 것, 현재 이렇게 풍요로운 것들이 가뭄으로 타 버릴 수 있단 말인가? 한번도 말라 본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온 땅을 적시는 이 물줄기들이 메마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엘리야는 불신을 간직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목숨을 무릅쓰고 그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나아갔다. 275 그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배도한 백성들을 겸비하게 하실 것이며, 당신의 심판을 내리심으로 저들을 수치와 회개로 이끄실 것임을 온전하게 믿었다. 그는 모든 것을 무릅쓰고 자기 앞의 사명을 위해 나아갔다.

아합이 엘리야의 말로 인한 두려움으로부터 어느 정도 회복되었을 때, 선지자는 사라져 버렸다. 그는 부지런히 그에 대해 알아보았지만, 아무도 그를 본 적이 없으며, 그에 관해서 어떤 정보도 제공할 수 없었다. 아합은 이세벨에게 엘리야가 자기 앞에서 발한 저주의 말에 대해 알려주었으며, 선지자에 대한 그녀의 증오는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표시되었다. 그들은 그와 함께 여호와의 선지자를 공공연하게 비난하고 저주하였다. 선지자의 위협적인 기별은 온 땅에 퍼져 나가 어떤 이들에게는 공포를 많은 사람들에게는 분노를 일으켰다.

수개월 후에 우로로 신선함을 누리지 못하는 땅은 메마르고, 식물은 시들게 되었다. 결코 흐르기를 중단한 사실이 알려진 바 없는 냇물들과 도랑들은 바짝 말라 버렸다. 이세벨의 선지자들은 저들의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면서 우로를 내려 땅을 새롭게 해주기를 저들에게 주야로 부르짖었다. 그러나 백성들을 속이기 위하여 이전에 사용했던 주문과 기만은 지금 그 구하는 바에 대해 응답하지 않는다. 제사장들은 저들의 신들의 진노를 달래기 위해서 갖은 짓을 다하였다. 좀더 훌륭한 일을 위해서 바쳐졌어야 할 인내와 열성을 갖고 그들은 이교의 제단들 주변에서 맴돌았으며 동시에 모든 산당에서는 희생의 불꽃이 타올랐고, 바알 제사장들의 두려운 부르짖음과 탄원이 저주받은 사마리아 전역에서 밤마다 들려왔다. 그러나 타는 둣한 햇빛을 차단할 구름은 나타나지 않는다. 엘리야의 말은 굳건히 효력을 발하고 있으며. 바알의 제사장들이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이것을 변경시킬 수 없을 것이다.

한 해가 완전히 지나가 이듬해가 시작되었지만, 아직도 전혀 비는 내리지 않는다. 땅은 불이 그 위를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바짝 말랐다. 풍요로웠던 들판은 찌는 듯한 사막처럼 되었다. 공기는 건조하고 질식할 것만 같았으며, 먼지 폭풍 때문에 눈은 멀고 거의 숨조차 쉴 수 없게 되었다. 바알의 수풀들은 잎사귀 하나 없게 되었으며, 숲속의 나무는 전혀 그늘을 마련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해골처럼 보였다. 276 굶주림과 갈증이야말로 사람과 짐승들에게 두려운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에 대한 이 모든 증거도 이스라엘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지 못하였다. 이세벨은 제정신을 잃고 광기로 가득 찼다. 그는 하늘의 하나님께 굽히거나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바알의 제사장들, 아합, 이세벨, 거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재앙에 대해 엘리야를 비난하였다. 아합은 각 왕국과 민족으로 이상한 선지자를 찾으러 보냈으며, 왕국들과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그들이 그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맹세를 하게 하였다. 엘리야는 그의 말로 하늘을 잠궈 버렸으며, 그 열쇠를 갖고 사라져 버려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자 이세벨은 엘리야에게 자기의 살인적인 힘을 맛보여 줄 수 없었음으로 이스라엘에 있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여 버림으로 복수를 자초하리라고 결정하였다.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공언하는 사람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이 단호하고 분노로 불타는 여인은 주님의 선지자들을 살육하는 미친 짓을 저질렀다. 바알의 제사장들과 거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만일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살육된다면, 저들이 겪고 있는 재난은 바뀌어질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완전히 기만을 당하였다.

그러나 두 번째 해도 지나갔으며, 무심한 하늘은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다. 가뭄과 기근이 그 서글픈 작용을 하고 있으되, 배도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저들의 교만하고 죄된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그들에게 이 무시무시한 상태를 초래한 하나님의 선지자에 대하여 불평과 불만을 토한다. 부모들은 저들의 자녀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되 그들을 구할 힘이 전혀 없다. 백성들은 그렇게 무서운 흑암 가운데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공의가 저들에게 발해진 것은 저들의 죄 때문이라는 것과, 또한 저들의 열조의 하나님을 완전히 부인하고 떠나가는 일로부터 저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비하심 가운데 이 두려운 재앙이 저들에게 임했음을 깨달을 수가 없다.

저들의 상실된 믿음과 하나님께 대한 명백한 책임감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회개에 이르기 위해서 이스라엘은 고통과 큰 고난을 겪었다. 그들의 배도는 가뭄과 기근보다도 훨씬 더 두려웠다. 엘리야는 저들의 고난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마음이 우상숭배로부터 하나님께 대한 충성으로 돌아서기를 믿음으로 기도하며 기다리는 중에 기나 긴 가뭄과 기근의 세월을 보냈다. 277 그러나 그들의 모든 고난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우상숭배 가운데 굳건히 서서 하나님의 선지자를 재앙의 원인으로 간주하였다. 만일 저들이 엘리야를 그 힘대로 할 수 있었다면, 그들은 그를 이세벨에게 넘겨주어 그로 하여금 엘리야의 생명을 취하여 복수로 만족을 채우게 하였을 것이다. 엘리야가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진노의 말씀을 전하였기 때문에 그는 저들의 증오의 표적이 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죄 때문에 겪는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을 분간할 수 없었다. 그들은 채찍질 아래로 저들을 데려온 죄들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선지자, 그들의 죄와 재앙을 선포한 하나님의 도구를 증오하였다.

“많은 날을 지내고 제 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왕상 18:1). 엘리야는 그의 위태로운 여행을 출발하는 것을 지체하지 않았다. 3년간 그는 미움을 받았으며, 왕의 명령에 따라 이 도시 저 도시에서 추격을 받았고, 온 국가는 그를 발견할 수 없다는 맹세를 해야 하였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는 아합 앞에 몸을 드러내어야 했다.

온 이스라엘이 배도했던 기간에 아합의 궁내 대신은 그 주인이 바알의 경배자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충성을 나타내었다. 자기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면서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50명씩 굴 속에 숨기고 그들을 먹였다. 아합의 종이 모든 물 근원과 시내를 찾고 있을 때 엘리야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오바댜는 하나님의 선지자를 존경하였지만 엘리야가 왕에게 보내는 기별을 그에게 주었을 때, 그는 크게 두려워하였다. 그는 자기뿐만 아니라 엘리야에게 사망의 위기가 닥친 것을 알았다. 그는 자기 생명이 희생되지 않도록 열렬히 간구한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가 그 날 아합을 볼 것이라고 맹세로 그에게 보증한다. 선지자는 아합에게 갈 것이 아니라 존경을 요구하는 하나님의 기별자 중 한 사람으로서 오바댜를 통해 “엘리야가 여기 있다” 는 기별을 보낸다. 만일 아합이 엘리야를 보기 원한다면, 이제 그가 엘리야에게 나아 올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다. 278 엘리야가 아합에게로 가지 않을 것이다.

두려움과 공포에 질린 채로 왕은 자기가 두려워하고 미워하는 엘리야가 자기를 만나기 위해서 오고 있다는 기별을 듣는다. 그는 오랫동안 그 선지자를 죽이기 위해서 애를 써 왔던 터라 엘리야가 보호를 받거나 어떤 무시무시한 경고의 기별을 갖지 않는 한, 목숨을 걸고 자기에게 나오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는 여로보암의 말라 버린 팔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기별자에 대해 그 손을 들어올리는 것은 안전하지 않다고 결정한다. 그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큰 무리의 수행원들과 위압적인 군대를 데리고 엘리야를 만나러 급히 나간다. 그가 오랫동안 찾았던 그 사람을 대면하게 되었을 때, 그는 감히 그를 해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엘리야에 대하여 그토록 강렬한 적개심에 불타 오른 왕은 그의 앞에서 무능해지고 용기를 잃은 것처럼 보인다. 그가 선지자를 만날 때 그는 마음 속에 있는 말이 터져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왕상 18:17).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에 대한 열성으로 분노한 엘리야는 아합의 비난에 대하여 담대하게 대답한다.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왕상 18:18).

하나님의 기별자로서 선지자는 백성의 죄를 꾸짖고 저들의 사악함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저들에게 선포하였다. 지금 의식적인 결백과 굳건한 순수성을 지키고 무장한 군사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홀로 서 있는 엘리야는 전혀 비겁함을 보이지 않았으며, 또한 왕에게 조금도 경의를 표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대화하셨던 인물, 죄된 타락 속에 있는 인간에 대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여기시는지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는 인물은 아합에게 사과하거나 그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자로서 엘리야는 지금 명령하며, 아합은 마치 엘리야가 군주요 자기가 신복이라도 된 것처럼 단번에 순종한다.

갈멜산의 제사

279 엘리야는 갈멜산에 온 이스라엘과 또한 바알의 모든 선지자들이 모이도록 요청한다. 선지자의 표정 속에 나타난 두려운 엄숙함을 통하여 그가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배도한 이스라엘의 상태는 굳건한 행실, 엄격한 말, 지배적인 권위를 요구한다. 하나님께서는 시대와 기회에 맞도록 기별을 준비하신다. 때때로 그분께서는 당신의 성령을 그분의 기별자들에게 주심으로 마치 그분의 기별자 요한이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마 3:3)고 그랬던 것처럼 주야로 경고를 발하게 하신다. 그리고 또다시 의무에 있어서 흔들리지 않고 “주님의 편에 선 자는 누구인가” 그는 우리편에 설지어다라고 외칠 행동의 사람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처한 다양한 형편에 따라 그에 맞는 기별을 갖고 계실 것이다.

사자들이 신속하게 엘리야의 기별을 갖고 왕국 전역으로 파송된다. 각 도시와 촌락과 읍내와 가족들로부터 대표자들이 보내어진다. 모든 사람은 마치 어떤 놀라운 기적이 벌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부름에 즉각적으로 응답하는 것처럼 보인다. 엘리야의 지시에 따라서 아합은 바알의 선지자들을 갈멜로 모은다. 이스라엘의 배도한 지도자의 심령은 두려움에 압도되었고, 그는 벌벌 떨면서 하나님의 엄격한 선지자의 지시를 따른다.

백성들이 갈멜산, 곧 우로가 내릴 때가 울창하기 그지없는 아름다운 장소에 모인다. 그러나 지금 그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에서 시들어져 버렸다. 빼어난 수풀과 꽃의 이 산꼭대기에 바알의 제사장들은 저들의 이교적 예배를 위하여 제단들을 쌓았다. 이 산은 두드러졌다. 그곳은 주변의 지방들을 굽어보았고, 또한 왕국의 상당 부분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우상숭배 때문에 하나님께서 두드러지게 수치를 당하여 오셨으므로 엘리야는 이곳을 하나님의 영광을 과시하고 그분의 명예를 옹호할 가장 탁월한 장소로 선택하였다.

팔백 오십 명의 이세벨의 선지자들은 전쟁을 위해 준비한 군대처럼 악기와 압도하는 모습으로 무리를 지어 행진한다. 280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이스라엘 땅에는 3년간 우로가 없으라고 했던 이 여호와의 사자의 말을 생각할 때, 두려움에 떨고 있다. 그들은 어떤 무시무시한 위기가 닥쳐왔음을 느낀다. 그들은 그들의 신들을 믿어 왔지만, 엘리야의 말의 효력을 없앨 수 없었고, 그가 거짓임을 증명할 수도 없었다. 그들의 미친듯한 부르짖음과 기도와 희생에 대해 그들의 신들은 무관심하였다.

아침 일찍 엘리야는 갈멜산에 섰고, 배도한 이스라엘 백성과 바알의 선지자들이 그를 둘렀다. 그 엄청난 무리 속에 이 사람은 두려움 없이 홀로 서 있다. 온 나라가 막중한 저주로 비난했던 인물이 그들 앞에 두려움 없이 서 있되 그에게는 눈에 보이는 군대도 위압적인 과시도 없다. 거친 옷을 걸친 그는 두려울 만큼 엄숙한 표정으로 서 있는데, 그는 마치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분의 명령을 수행할 신성한 사명을 온전히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엘리야는 산이 울창한 나무와 꽃으로 뒤덮였을 때 여호와의 제단이 서 있었던 산 정상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지금 이 곳에는 하나님의 파수꾼이 임하여 있으며, 이스라엘의 전적으로 황폐된 모습이 무너진 채 방치된 여호와의 제단에 한눈에 나타났으며, 바알의 제단들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아합은 바알의 제사장들의 맨 앞에 서 있으며, 모든 사람은 걱정과 두려움에 찬 채 엘리야의 말을 기다린다.

백주에 수천의 사람들, 군사들과 바알의 선지자들과 이스라엘의 군주에게 둘러싸인 채 전혀 무장하지 않은 채로 엘리야 혼자 서 있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다. 가장 강력한 하늘의 군대가 그를 둘러싸고 있다. 뛰어난 힘을 지닌 천사들이 그 충성스럽고 의로운 선지자를 방어하기 위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온다. 엄하고 위압하는 음성으로 엘리야가 외친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왕상 18:21). 그 큰 무리 가운데 단 한 사람도 하나님을 위하여 말 한마디하는 사람 없고 여호와께 충성을 바치는 이가 없다.

어두운 구름처럼 얼마나 두려운 기만과 맹목이 이스라엘을 덮었는가! 281 이 맹목과 배도는 그들에게 갑작스럽게 닥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주님께서 저들의 교만과 죄 때문에 보내어 주신 견책과 경고의 말씀을 유의하지 않음에 따라 서서히 임하였다. 이 두려운 위기의 때에 우상숭배적인 제사장들과 배도한 왕 앞에서 그들은 중립적인 입장에 머물렀다.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짓고 있는 죄 중에서 그 어떤 죄보다도 진노하시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위급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신앙적 위기에서 무관심과 중립은 하나님께 무거운 죄로 받아들여지며, 하나님께 대한 최악의 적대감과 같다.

모든 이스라엘은 침묵을 지킨다. 또다시 그들에게 말하는 엘리야의 음성이 들린다.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인이로다 그런즉 두 송아지를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저희는 한 송아지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놓지 말며 나도 한 송아지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놓지 말고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엘리야가 바알의 선자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많으니 먼저 한 송아지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놓지 말라 저희가 그 받은 송아지를 취하여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가로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저희가 그 쌓은 단 주위에서 뛰놀더라”(왕상 18:22-26).

엘리야의 제안은 타당하다. 백성들은 그것을 감히 거절하지 못하고 용기를 내어서 “그 말이 옳도다”라고 대답한다. 바알의 선지자들은 감히 이의를 제기하거나 이 문제를 무효화시키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이 시험을 인도하고 계셨으며, 우상숭배의 주역들에게는 혼란을 당신의 이름에는 빛나는 숭리를 마련하셨다. 바알의 제사장들은 어쩔 도리없이 조건들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외형적으로는 담대하고 무시하는 듯이 행동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두려움과 죄책감을 간직하고서 그들은 제단을 세우고 나무를 벌여 놓고 제물을 놓은 후, 이교 예배의 특징 그대로 주문을 외고 고함을 친다. 282 그들의 고함은 숲과 산에 반향된다.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왕상 18:26). 제사장들은 군대처럼 제단에 모여서 뛰고, 몸부림치고, 고함을 지르고, 발을 구르고, 부자연스러운 몸짓을 하고, 저들의 머리카락을 뽑고, 그 살을 베면서, 저들의 진심을 분명히 드러내었다.

아침은 지나고 정오가 왔으되 바알의 제사장들, 기만당한 우상 숭배자들을 불쌍히 여겨 그들의 신은 전혀 움직이지를 않는다. 그들의 광란적인 부르짖음에 그 어떤 음성도 대답하지 않는다. 제사장들은 끊임없이 기만을 통해서 제단에 불을 놓으므로 바알에게 영광을 돌리려고 꾀를 쓴다. 그러나 엘리야의 확고한 눈길이 모든 행동을 살펴보고 있다. 팔백이나 되는 목소리는 쉬었다. 그들의 옷은 피로 물들었으며, 아직도 그들의 광란의 흥분은 가라앉을 줄을 모른다. 그들의 간구는 저들의 제단에 불을 내려보내지 않는 저들의 태양신에게 퍼붓는 욕설과 뒤범벅이 된다. 어떤 속임수라도 행하지 못하도록 이글거리는 눈으로 감시하면서 엘리야는 서 있다. 왜냐하면 그는 만일 어떤 수를 써서 그들이 제단에 불을 붙일 수 있다면, 그 자리에서 그가 산산조각으로 찢겨져 버릴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백성들을 위하여 행하시는 하나님의 위엄 있는 능력과 그들을 향한 그분의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한 자비와 사랑 등 그 놀라운 역사를 그들이 볼 때에 저들의 불신과 두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일의 어리석음을 백성들에게 보여 주기를 원한다.

“오정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저희를 조롱하여 가로되 큰소리로 부르라 저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 잠깐 나갔는지 혹 길을 행하는지 혹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 하매 이에 저희가 큰소리로 부르고 그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 몸을 상하게 하더라 이같이 하여 오정이 지났으나 저희가 오히려 진언을 하여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이를지라도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고 아무 돌아보는 자도 없더라”(왕상 18:27-29).

하늘에서 번개처럼 떨어진 자 사단이 그가 미혹한 이들 그가 그 마음을 지배한 이들, 그를 섬기는 데 전적으로 헌신하는 이들을 도와주기 위하여 얼마나 기꺼이 임하였겠는가. 283 기쁨으로 그는 번개를 보내어 그 제물에 불을 붙였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사단의 범위를 제한하셨다. 그분은 그의 힘을 제한하셨으며, 그가 고안한 모든 것은 바알의 제단에 불하나 반짝이도록 할 수가 없다. 저녁이 다가오고 있다. 바알의 선지자들은 피로에 지쳤고, 혼란에 쌓인다. 이 사람은 이것을, 저 사람은 저것을 제안하다. 결국 그 모든 노력을 중단한다. 그들의 고함과 저주가 더 이상 갈멜산에 반향되지 않는다. 힘없이 실망하여 그들은 시합에서 물러난다 백성들은 비이성적이고 광란적인 제사장들의 무시무시한 모습을 목격하였다. 그들은 마치 태양으로부터 불타고 있는 빛을 그들의 제단에 가져오기라도 하는 듯이 제단 위에서 뛰놀던 것을 그쳤다. 그들은 마귀종교, 이교적인 우상숭배를 과시하는 데 지쳐 버렸다. 그들은 근심과 걱정에 싸여 엘리야가 말하려고 하는 것을 듣는다.

이제 엘리야의 차례가 되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저에게 가까이 오매 저가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수축하되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열두 돌을 취하니 이 야곱은 여호와께서 옛적에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저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단을 쌓고 단으로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용납할 만한 도랑을 만들고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 그리하라 하여 세 번 그리하니 물이 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하게 되었더라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 지라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왕상 18:30-39).

284 저녁 제사 때에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배도를 통하여 바알의 제사장들이 무너뜨리도록 허용한 하나님의 제단을 수리한다. 그는 그 힘든 일에 백성 중 어느 한 사람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바알의 제단들은 모두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무너진 하나님의 제단으로 향하였는데, 그것은 차마 볼 수 없을 만큼 허물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알의 웅장한 모든 제단들보다도 그에게 더욱 신성하고 소중하다.

엘리야는 비록 하나님의 백성들이 배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과 그분의 백성들 사이의 언약을 존중한다. 침착하고 엄숙하게 그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열두 돌로 무너져 버린 제단을 복구한다. 바알의 실망한 제사장들은 그들의 헛된 미치광이 짓에 기진맥진하여 땅바닥에 앉거나 엎드러진 채로 엘리야가 하고자 하는 일을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저들의 연약성과 그 신들의 쓸모 없음을 노출시킨 시험을 제안한 선지자에 대하여 공포와 진노로 가득 차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엘리야가 천지의 창조주이신 여호와를 부를 때 거의 숨도 쉬지 못하고 창백하게 두려워하며 못에 박힌 듯이 서 있다. 백성들은 바알 선지자들의 광신적이고 이성을 잃은 격노를 목격하였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지금 그들은 조용하고, 두려움을 일으키는 엘리야의 행동을 지켜볼 수 있는 특권을 갖는다. 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한 저들의 타락상을 상기시키고, 그 후에 저들로 하여금 겸손한 마음으로 열조의 하나님께 돌아옴으로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저주를 물러가게 하라고 호소한다. 아합과 그의 우상숭배하는 제사장들은 두려움에서 놀라움으로 바라다보고 있다. 그들은 염려와 엄숙한 침묵으로 결과를 기다린다.

제물들을 제단 위에 놓은 후에 그는 백성들에게 제물과 제단에 물을 부어 제단 주변의 도랑까지 채우도록 명령한다. 285 그리고 그는 경건하게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손을 들고, 조금도 몸을 뒤틀거나 격렬한 몸짓 없이 조용하고 단순한 기도를 올린다. 갈멜산상에 고함 한마디 메아리치지 않는다. 바알의 제사장들에게 위협적인 엄숙한 침묵이 모든 이에게 머문다. 기도 드릴 때 엘리야는 결코 과장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여호와께서 가까이 계셔서 모든 광경을 주목하시고 그의 진실 되고 열렬하되 단순한 기도를 들으시는 것처럼 여호와께 기도한다. 바알의 제사장들은 아침부터 거의 저녁때까지 오랫동안 고함을 지르고 거품을 내뿜고 날뛰며 기도하였다. 엘리야의 기도는 매우 짧고, 열렬하고, 경외심에 차 있고, 진실하다. 그 기도가 발해지자마자 불꽃이 특별한 모습으로 찬란한 번갯불처럼 하늘로부터 내려와 제물을 위한 나무에 불을 붙이고 희생 제물을 태워 버렸으며, 도랑의 물을 핥아 버리고 제단의 돌조차 태워 버렸다. 그 찬란한 불꽃은 산을 비추었으며, 군중의 눈에 고통을 주었다. 산 위에 모이지 않은 이스라엘 왕국의 백성들은 흥미를 갖고 모인 이들을 주시한다. 불이 내려올 때, 그들은 이것을 목격하고 그 모습에 놀란다. 그것은 밤에 이스라엘 자손과 애굽 군대를 분리시켰던 홍해에서의 불기둥과 같다.

산상의 백성들은 공포에 질려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 앞에 엎드린다. 그들은 하늘로부터 보내어진 밝은 소멸하는 불을 쳐다볼 수가 없다. 그들은 저들의 배도와 죄 중에 소멸될까 두려워하며, 산을 울리고 저 아래 있는 평지에까지 메아리치도록 무시무시하게 한 목소리로 외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드디어 이스라엘은 일깨워졌고, 미흑에서 벗어났다. 그들은 자신의 죄를 보았으며, 얼마나 크게 하나님께 수치를 돌렸는지를 깨달았다. 바알의 선지자들을 향하여 그들의 진노가 일어났다. 공포심을 갖고 아합과 바알의 제사장들은 여호와의 능력이 놀라웁게 드러나는 것을 목격한다. 또다시 백성에게 명령을 내리는 엘리야의 무시무시한 음성이 들려온다.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왕상 18:40). 286 백성은 그의 말에 순종할 태세가 되어 있다. 그들은 그들을 속여 온 거짓 선지자들을 붙잡아 기손 시내로 데려갔으며, 거기서 엘리야는 그의 손으로 이 우상 숭배자 제사장들을 살육한다.

거짓 제사장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시행되었고, 백성은 저들의 죄를 고백하고 열조의 하나님을 인정하였으므로 이제 하나님의 마르게 하는 진노는 거두어지려고 한다. 그리하여 그분은 당신의 백성에게 당신의 축복을 새롭게 하실 것이며, 또다시 땅은 우로로 생기를 얻게 될 것이다.

엘리야는 아합에게 말한다.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왕상 18:41). 아합이 먹으러 가는 동안 엘리야는 두려운 제사 장소로부터 갈멜산 정상으로 기도하기 위해 올라갔다. 그는 이교 제사장들을 살육하는 일 때문에 엄숙한 기도를 드리기에 부적합한 상태가 되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였다. 하나님의 지시대로 우상승배의 제사장들을 살육함으로 이스라엘 배도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다음에 그는 더 이상 할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범죄에 빠진 배도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중보한다. 무릎 사이에 머리를 구부리는 가장 고통스러운 자세로 그는 지극히 간절하게 비를 내려 주시기를 하나님께 탄원하였다. 계속해서 여섯 번이나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신 어떤 가시적인 표가 있는지의 여부를 살펴보도록 그의 종을 보냈다. 그는 주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표를 즉각적으로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인내와 믿음을 잃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열렬히 기도를 드리는 가운데 일곱 번 그의 종을 보내어 하나님께서 어떤 신호라도 주시는지를 보도록 하였다. 그의 종은 여섯 번 바다 쪽을 살펴보고 돌아와서 구리 빛의 하늘로부터 구름이 형성되는 어떤 징조도 보이지 않는다는 실망스러운 보고를 하였다. 일곱 번째 그는 엘리야에게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있다고 보고한다. 이것은 엘리야의 믿음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는 일을 확실히 하기 위하여 하늘이 검게 되기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그 작게 떠오르는 구름 속에서 그의 믿음은 큰 비의 소리를 듣는다. 그의 행동은 그의 믿음과 일치한다. 그는 자기 종을 통해서 아합에게 기별을 보낸다.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왕상 18:44).

엘리야의 겸손

287 여기에서 엘리야는 믿음의 도전을 하였다. 그는 보기까지 지체하지 않았다.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라엘로 가니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저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왕상 18:45, 46).

엘리야는 낮 동안에 큰 흥분과 수고를 겪었다. 그러나 엘리야가 순종적이며, 우상숭배하는 제사장들을 처형함으로 주님의 뜻을 행했기 때문에 여호와의 성령께서 그 위에 임하셨다. 어떤 이들은 “엘리야는 얼마나 엄격하고 가혹한 인물인가!” 라고 말할 것이다. 어떠한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하나님의 명예를 옹호하는 이들은 많은 부류의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정죄를 불러일으킨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그때는 밤이었으며, 앞을 가리는 비 때문에 아합은 자기가 가야 할 길을 볼 수 없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성령과 능력으로 감동을 받아 그의 거친 옷을 묶고 아합의 병거 앞에서 달려가며 도시 입구로 들어가는 길까지 인도하였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그의 백성들 앞에서 아합에게 수치를 안겨 주었다. 그는 우상을 숭배하는 제사장들을 살해했다. 그런데 지금 그는 이스라엘에게 그가 아합을 자기의 왕으로 인정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를 원하였다. 특별한 존경의 표시로 그는 성문 입구에까지 그의 병거 앞에서 달려가면서 길을 인도하였다.

여기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있는 그분의 종으로 공언하는 젊은이들 곧 스스로 과대평가 하는 이들을 위한 공과가 있다. 그들은 엘리야와 같은 괄목할 만한 경험을 전혀 갖고 있지 않지만, 사소한 것처럼 그들에게 생각되는 의무들을 행하는 데는 생각이 벗어나 있다. 그들은 종의 일을 행하는 것으로 생각될까 봐 두려워서 필요로 되는 봉사를 행하기 위해 저들의 목회적 위엄의 자리로부터 내려오려고 하지 않는다. 이러한 모든 이들은 엘리야의 경험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그의 말은 3년간이나 하늘 창고를 잠금으로 땅 위에 우로가 내리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의 말만이 하늘을 열어 소나기를 내리게 하는 열쇠였다. 288 그는 왕과 수천의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단순한 기도를 드렸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영광을 얻어 그 응답으로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 희생의 제단에 불을 붙였다. 그의 손은 팔백 오십 명의 바알 제사장들을 살육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시행하였다. 그러나 고된 노동과 그날의 혁혁한 승리 후에도 구름과 비와 불을 하늘로부터 내리게 할 수 있었던 그는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봉사를 기꺼이 수행하려고 하였으며, 그 죄와 범죄를 인해 면전에서 두려움 없이 꾸짖었던 군주를 섬기기 위하여 어둠과 폭우 속에서도 아합의 병거 앞에서 달려갔다. 왕은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야는 자기의 옷으로 몸을 감싸고 맨땅 위에 드러누웠다.

절망에 빠진 엘리야

엘리야가 생사를 건 싸움에서 그토록 대담한 용기를 보여준 후에, 왕과 제사장들과 백성들에 대하여 승리를 거둔 후에, 우리는 그가 결코 절망에 빠지거나 두려움 가운데 소심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아합과 이스라엘의 배도를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아합에게 선포하기 위해 그 앞에 맨 처음 나타난 후에, 하나님께서는 이세벨의 권세로부터 피하도록 그를 산속의 안전한 장소 그릿 시냇가로 인도하셨다. 그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조석으로 하늘의 천사를 통하여 양식을 보내심으로 엘리야를 영광스럽게 하셨다. 그 후에 시내가 마르자 그분은 사렙다의 과부에게로 그를 보내셨으며, 과부의 가족과 엘리야를 위해 날마다 음식을 베푸시는 기적을 행하셨다. 하나님의 이러한 사랑과 보호의 증거를 체험하는 축복된 삶을 경험한 후에 우리는 엘리야가 결코 하나님을 불신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사도는 그가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 우리처럼 시험에 빠지기 쉬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아합은 자기 아내에게 천지의 창조주이신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보여 준 그 날의 놀라운 사건들과 그분의 능력의 놀라운 과시 등에 관해 말하였다. 또한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을 살해한 것도 말하였다. 289 이말에 죄로 굳어진 이세벨은 진노하였다. 대담하고, 도전적이고, 확고부동한 우상 숭배자, 그는 아합에게 엘리야가 결코 살지 못하리라고 선언하였다.

그날 밤, 한 기별자가 피곤한 선지자를 일으켜서 자기의 이방 신들의 이름을 빌어 맹세한 이세벨의 말을 전달하였다. 그녀는 이스라엘 앞에서 엘리야에게 행하되 그가 바알의 제사장들에게 행했던 것처럼 행할 것이었다. 엘리야는 이러한 이세벨의 위협과 맹세를, 그가 행한 사업을 행하도록 그에게 위탁하신 분, 곧 하늘의 하나님께 보호를 탄원함으로 대처해야 하였다. 그는 자기가 믿는 하나님께서 이세벨의 증오와 위협으로부터 지켜 주시는 보호자가 되실 것이라고 기별자에게 말해야만 하였다. 그러나 엘리야에게서 믿음과 용기가 떠나 버린 것처럼 보였다. 그는 잠에서 깨어나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늘에서 비가 퍼붓고 있었으며, 사방은 어두웠다.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마치 피의 복수자가 바로 뒤를 쫓기라도 하듯 목숨을 건지고자 도망을 쳤다. 그는 길에다 자기 종을 내버려두고 떠났으며 아침이 되었을 때 그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메마른 광야에 서 있었다.

“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또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주 사십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유하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왕상 19:3-9).

290 엘리야는 이세벨의 진노로부터 언제 도망쳐야 할는지, 또한 어디에서 도피처를 발견해야 할는지 그에게 경고해 주시고, 아합의 부지런한 추격으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신 하나님을 신뢰하여야만 했다. 주님께서는 이 때에 도망치라고 그에게 경고하지 않으셨다. 그는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성급하게 움직였다. 그가 믿음과 인내로 기다렸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보호하시고, 그분의 심판을 이세벨에게 내리심으로 이스라엘 안에서 또 다른 혁혁한 승리를 그에게 주셨을 것이다.

피곤에 지쳐 엘리야는 쉬기 위해 주저앉았다. 그는 실망에 빠져 불평을 하였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그는 사는 것이 더 이상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느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혁혁하게 드러났으므로 그들이 하나님께 진정으로 충성을 다할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그는 이세벨이 더 이상 아합의 마음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이스라엘 왕국에서 대대적인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그런데 이세벨의 위협적인 기별이 그에게 전달되자 그는 하늘로부터 불이 내리기를 기도 드리자 불을 내려 주시고, 비가 내리기를 기도하자 비를 내려 주신 하나님이 동일하게 전능하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임을 잊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요구를 허락하셨다. 그러나 엘리야는 인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도피하는 신세가 되었으며, 두 번 다시 인간을 만나지 않게 되기를 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고난당하는 종을 어떻게 여기셨는가? 그가 낙망과 절망에 사로잡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를 떠나셨는가? 오, 아니다. 엘리야는 절망으로 엎드러졌다. 하루 종일 그는 음식도 먹지 못하고 수고하였다. 그가 성문 앞까지 아합의 병거 앞을 달려가면서 길을 인도하였을 때, 그에게는 용기 충천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 하나님께 돌아와 충성을 바칠 것이며, 그분의 총애를 또다시 받게 될 것으로 크게 기대하였다. 그러나 뛰어난 믿음과 괄목할 만한 영광스러운 성공 뒤에 흔히 따르는 반응이 엘리야를 압박하고 있었다. 그는 비스가산 정상에까지 높이 올라갔다가 믿음과 감정의 깊은 계곡에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은 여전히 당신의 종에게 있다. 그분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여 갈멜산을 비추며 하늘로부터 번쩍이는 불을 보내셨을 때와 전혀 다름없이 상심하여 하나님과 인간으로부터 떠나간 그를 사랑하셨다.

291 무거운 책임을 짊어지지 않은 이들, 매우 깊게 느껴 본 일이 없는 이들은 엘리야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으며, 그에게 마땅한 부드러운 동정을 그에게 베풀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 하나님께서는 시험과 쓰라린 투쟁 아래에 서 있는 영혼들의 쓰라린 고통을 아시며, 그것을 읽으실 수 있다.

로뎀나무 아래에서 엘리야가 잠자고 있을 때, 상쾌한 목소리가 부드러운 손길로 그를 깨운다. 그는 마치 그의 생명을 추격하는 원수가 그를 정말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깜짝 놀라서 즉시 도망가려고 한다. 그러나 원수의 얼굴이 아니라 친구의 얼굴, 곧 불쌍히 여기는 사랑의 얼굴이 자기를 굽어보고 있음을 보게 된다. 한 천사가 그 충성스러운 하나님의 종을 붙들어 주기 위하여 하늘로부터 음식을 갖고 파송되었다. 그는 엘리야에게 “일어나서 먹으라” 고 말하였다. 엘리야가 자기를 위해 마련된 음식을 먹었을 때 그는 또다시 잠에 빠져 버렸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천사가 엘리야의 궁핍을 채워 준다. 그는 피곤과 탈진 상태에 빠진 그를 어루만지며 동정이 넘치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한다.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엘리야는 힘을 얻어 호렙에까지 계속적으로 여행하였다. 그는 광야에 있었다. 밤에 그는 야수들로부터 보호받기 위하여 동굴 속에 유숙하였다.

이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천사들 중 하나를 통해서 엘리야를 만나 그에게 질문하셨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나는 너를 그릿 시내로 보냈으며, 나는 너를 사렙다 과부에게로 보냈으며, 나는 너를 아합에게 보내는 기별과 함께 사마리아로 보냈거늘, 그 누가 너를 이렇게 오랫동안 여행하여 광야로 가게 했더냐? 엘리야는 자기 영혼의 쓰라림을 주님 앞에 토로한다.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29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왕상 19:10-14).

그 후에 주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당신 자신을 나타내시되, 하나님께 대한 조용한 신뢰와 굳건한 의지를 통해서 곤궁한 때에 항상 도우시는 분이신 그분을 언제나 발견할 것임을 그에게 보여 주신다.

나는 내 남편이 실망하여 하나님을 불신하는 과오 가운데 빠졌음을 보았다. 시시때때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돌보심과 사랑과 능력에 대한 괄목할 만한 증거들을 통하여 그에게 당신을 나타내셨다. 그러나 하나님과 그분의 사업을 위한 자기의 흥미와 열성이 오해되고 잘못 이해될 때에 그는 때때로 실망하여 절망에 빠졌다. 하나님께서는 나와 내 남편에게 그분의 사업을 위하여 행해야 할 일, 당신의 백성을 견책하고 권면하는 특별하고도 중요한 사업을 주셨다. 우리의 견책이 경솔히 여김을 당하고 동정보다는 미움으로 갚음을 당하는 것을 보게 될 때, 우리는 자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에서 떠났다. 그리고 마치 엘리야처럼 우리는 좌절과 실망에 굴복하였다. 여기에 내 남편의 생애 중 큰 과오가 있다. 그가 실망하게 된 것은 그의 형제들이 그를 돕는 대신에 시련을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그들의 불신과 동정의 부족 때문에 초래된 내 남편의 슬픔과 좌절을 볼 때에, 그에 대해 승리했다고 여기고, 그의 실망한 상태를 이용하여 결국은 하나님께서 화잇 형제와 함께 하실 수 없다고 느끼거나, 혹은 이 방면에 그가 약점을 노출시키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그러한 것을 엘리야의 사업과 그의 좌절과 실망에다 언급한다. 엘리야는 비록 하나님의 선지자였지만 우리와 성정이 같은 한 인간이었다. 우리에게는 싸워야 할 치명적인 감정의 연약성이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그분께서는 결코 우리를 떠나시거나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293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여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 그분께서는 우리가 성실성을 보존하는 한 우리를 버리거나 떠나지 않으실 것이다.

나의 남편은 고난당할 때 용기를 얻어야 한다. 그에게는 동기를 읽으시고 영혼의 목적을 이해하시는 동정이 많으신 하늘 아버지가 계시기 때문이다. 쟁투의 전방에 서 있는 이들,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그분을 위해 특별한 사업을 하도록 제어되고 있는 이들은 압력이 제거될 때 자주 반작용을 느끼게 될 것인데, 때때로 실망이 그들을 심하게 억눌러 지극히 영웅적인 믿음을 뒤흔들고, 가장 견고한 마음을 약화시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이해하신다. 그분께서는 인간의 마음이 부싯돌처럼 강퍅할 때에 동정과 사랑을 베푸실 수 있다. 모든 것이 어둡게 보일 때 인내로 기다리며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이 나의 남편이 좀더 충분히 배워야 할 교훈이다. 하나님께서는 성실하게 행하는 그를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모세와 아론

호르산에서 아론이 죽어 장사되었다. 아론의 동생 모세와 그의 아들 엘르아살이 그를 산에까지 동반하였다. 제사장의 옷을 그 형 아론에게서 벗겨 엘르아살에게 입히는 고통스런 의무가 모세에게 지워졌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엘르아살이 아론의 뒤를 이어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모세와 엘르아살은 아론의 죽음을 목격하였고, 모세는 그를 산에 장사지냈다. 호르산의 이 광경은 우리의 마음을 아론의 생애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건들 중에 어떤 사건으로 인도한다.

아론은 온유한 성격의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사 모세와 함께 서서 그를 대변하도록 하셨다. 간단히 말해서 모세의 대변인이 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론을 지도자로 선택하실 수 있었다. 그러나 심령을 잘 아시는 분이시요 품성을 이해하시는 분께서 아론에게는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어떤 환경 아래에서나 의를 옹호하기 위해 굳게 설 만한 도덕적 용기가 부족하고 굴복하고 만다는 것을 아셨다. 아론은 백성의 호의를 얻으려는 욕망 때문에 큰 실수들을 저질렀다. 294 그는 너무 자주 저들의 간청에 굴복하였고,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께 수치를 돌렸다. 동일하게 그의 가족들도 의에 대해 굳게 서는 것이 부족함으로 그의 아들들 중 둘이 죽는 결과가 생겼다. 아론은 경건한 유용성에 있어서 탁월한 인물이었으나 그의 가족들을 훈육하는 일을 등한히 하였다. 그의 아들들에게 존경과 경외심을 요구하는 의무를 수행하는 대신에 그는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성향을 따르도록 허용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자아 부정의 훈련을 시키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의 뜻대로 굴도록 했다. 그들은 부모의 권위에 존경과 경의를 표하는 훈련을 받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기가 살아 있는 한, 그 자신의 가족의 합당한 통치자였다. 그의 권위는 그 자녀들이 성장하여 자기 자신의 가족을 갖게 된 후에까지도 사라지는 법이 없었다. 하나님 당신께서는 민족의 군주이셨으며 백성들로부터 순종과 공경을 요구하셨다.

왕국의 질서와 번영은 교회의 훌륭한 질서에 의존되었다. 그런데 교회의 번영과 조화와 질서는 가정의 훌륭한 질서와 철저한 훈육에 달려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의 불충성을 처벌하시는데,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부모의 통치의 원칙을 유지해야 할 의무를 위탁하셨다. 이것은 교회의 징계와 국가의 번영의 기초에 놓여 있다. 한 명의 훈육 받지 못한 아이가 자주 교회의 평강과 조화를 깨뜨리고, 한 국가로 하여금 불평과 반역에 휩싸이게 한다. 가장 엄숙한 방식으로 주님께서는 애정을 다하여 그 부모를 존경하고 공경해야 할 의무를 자녀들에게 주신다. 반면에 그분께서는 부모들로 하여금 그 자녀들을 훈련하고, 부단히 저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에 대해 교육하고, 또한 여호와께 대한 지식과 그분을 경외하는 것에 대해 저들을 가르치도록 요구하신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크게 엄숙히 유대인들에게 짊어지게 하신 명령은 마찬가지로 중대하게 그리스도인 부모들 위에 놓여져 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그 자녀들을 교육하고 자기를 따르도록 가족들에게 명령하도록 하신 빛과 교훈을 등한히 여기는 자들은 해결하기에 무서운 계산을 하게 될 것이다. 아론이 자기 아들들에게 존경과 경의를 요구해야 하는 일을 등한히 한 죄악 때문에 그 아들들의 죽음이 초래되었다.

295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그의 남자 후손들을 제사장으로 선택하심으로 아론을 구별하셨다. 그의 아들들은 신성한 직무를 수행하였다.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 앞에서 향로에 신성한 불을 드려야 한다는 명령에 경의를 표하기에 실패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앞에 향과 함께 평범한 불을 드리는 것을 죽음의 고통을 통하여 금지시키셨다.

그러나 여기에서 훈육을 등한시한 결과가 나타나 있다. 아론의 이 아들들이 그 아버지의 명령에 존경과 경의를 표하도록 교육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부모의 권위를 무시하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명령을 분명하게 따라야 할 필요성을 깨닫지 못하였다. 저들의 식욕이 술로 방탕하게 되었으므로 그 흥분시키는 자극 아래 있는 동안에 저들의 이성은 흐려졌고, 그들은 신성한 것과 속된 것의 차이를 구분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지시하신 것과는 반대로 그들은 신성한 불 대신에 속된 것을 바침으로 하나님께 수치를 돌렸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에게 진노하셨다. 불이 그분의 존전으로부터 나와서 저들을 죽였다.

아론은 인내와 겸손한 굴복으로 이 혹심한 시련을 견뎠다. 슬픔과 예리한 고뇌가 그의 영혼을 짓눌렀다. 그는 자기가 의무를 태만히 한 것을 깨달았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백성의 죄들을 위해 대속하는 자였다. 그는 가족의 제사장이었지만, 그 자녀들의 어리석음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는 저들로 하여금 순종, 자기 부인, 부모의 권위에 대한 존경 등에 대하여 훈련하고 교육시켜야 할 의무를 등한히 하였다. 그릇된 방종적 감정을 통하여 그는 저들의 품성이 영원한 사물에 대해 높은 경외심을 갖도록 형성하는 일에 실패하였다. 아론은 현재 수많은 그리스도인 부모들이 그러는 것처럼, 과오 속에 있는 자녀들에 대한 잘못된 사랑과 방종을 통하여 저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불쾌히 여기시는 존재가 되도록 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하여 멸망 받는 존재가 되도록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아론은 자기의 권위를 행사하는 일에 실패하였으며, 하나님의 공의는 저들을 거스려 발동되었다. 아론은 부모로서의 강력한 제어가 결여된 온유한 충고와 아들들에 대한 현명하지 못한 부드러움은 극단적인 잔인함과 같다는 것을 배워야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손수 공의의 사업을 집행하시어 아론의 아들들을 멸망시키셨다.

296 하나님께서 모세로 하여금 산으로 올라오도록 하셨을 때,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직접적인 존전 앞으로 나아가 구름 속에 영접되기 육일 전이었다. 산의 정상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완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아직도 이러한 영광을 목도하고 있는 중에 그들에게 그토록 쉽게 따라붙었던 불신이 일어나 그들은 모세가 부재함으로 말미암아 불만으로 불평을 토하기 시작하였다. 하나님의 영광이 산 위에서 그분의 임재를 드러내고 있으며, 또한 저들의 지도자가 하나님과 친밀히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에, 그들은 자세히 마음을 살피고 겸손과 경외심으로 자신들을 성별해야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자리를 아론과 훌에게 맡기셨다. 그가 없는 동안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이 두 사람에게로 가서 의논하고 조언을 구하여야 했다.

여기 이스라엘의 지도자와 통치자로서의 아론의 결점이 보인다. 백성들은 저들을 애굽으로 이끌어 갈 신들을 만들자고 그를 충동질하였다. 이때야말로 아론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흔들리지 않는 신뢰를 보일 수 있는 기회였다. 굳건한 결단력을 갖고 그는 백성들의 제안에 대처하여야 했다. 그러나 백성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에게 굴복하는 그의 자연적인 욕구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명예를 희생시키는 데 이르게 되었다. 그는 그들로 하여금 저들의 보석들을 자기에게로 가져오라고 말했으며 그들을 위하여 금송아지를 이끌어 내어 백성들 앞에서 선포하였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출 32:4). 그리고 이 무감각한 신에게 그는 제단을 쌓고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라고 선언하였다. 백성들에게서 모든 제약이 거두어진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금송아지에게 번제를 드렸고, 경솔한 정신이 그들을 사로잡았다. 그들은 수치스러운 소요와 음주로 방탕하였다. 그들은 먹고 마시고 일어나 뛰놀았다.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겠노라고 하나님과 더불어 엄숙하게 언약을 맺은지 불과 수 주일도 안되었다. 그들은 천둥, 번개, 그리고 지진 가운데서 시내산에서 두려울 만큼 장엄하게 발하여진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들을 들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의 입으로 선포하신 말씀을 들었다. 297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2-6).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하도록 산 속으로 부르심을 받는 명예를 얻었다.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니 그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더라”(출 24:10).

하나님께서는 나답과 아비후를 가장 신성한 사업에 임명하셨다. 따라서 그분은 가장 놀라운 방법으로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의 탁월한 영광을 보여주심으로 산에서 목격한 그 장면이 그들의 마음 속에 살아 있어서 당신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그들로 하여금 더욱 훌륭한 자격을 갖추고,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께 높은 존귀와 영광을 돌리도록 하였다. 이를 통하여 백성들은 하나님의 품성에 대하여 더욱 분명한 개념을 갖게 될 것이었으며, 그분의 모든 요구에 대하여 적절한 순종과 경의를 표하게 될 것이었다.

백성을 떠나 산으로 가기 전에 모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과 더불어 체결하신 언약의 말씀을 낭독하였으며, 그들은 한 목소리로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출 24:7)라고 응답하였다. 아론의 죄는 얼마나 큰 것이었으며,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얼마나 거스리는 것이었는가!

모세가 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고 있는 동안에 주님께서는 그에게 반역한 이스라엘의 죄를 알려주시고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나아가 당신께서 멸망시키도록 해 달라고 요청하셨다. 비록 모세는 생존자들 중 가장 온유한 인물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지기를 지도자로 삼으신 백성들의 이익이 위기에 몰렸을 때 그는 자신의 천성적인 온유함을 잃어버리고 오직 끈질기게 매달려 이스라엘을 위해 놀라울 정도로 담대하게 애원하였다. 비록 하나님께서 저들을 멸망시키시고 모세를 높여 이스라엘보다도 더욱 훌륭한 민족을 세우겠다고 약속하셨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멸망시키시는 것을 허용할 수가 없었다.

298 모세가 승리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도말하지 말아 달라는 모세의 간절한 탄원을 허락하셨다. 모세는 언약의 비석, 십계명을 갖고 산으로부터 내려왔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술 취하여 떠들썩하게 흥겨워 하는 소리가 진영 가까이 오기도 전에 멀리서부터 그의 귀에 들려왔다. 그가 저들의 우상숭배를 보았을 때, 저들이 가장 충격적인 방법으로 언약의 말씀을 깨뜨린 것을 보았을 때, 그는 저들의 비열한 우상숭배에 대하여 슬픔으로 압도되고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들의 일로 인하여 혼란과 수치가 그를 사로잡았으며, 그곳에서 그는 돌비를 내던져 깨뜨렸다. 저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렸으므로 모세는 돌비를 깨뜨림으로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로 저들과의 언약을 깨뜨리셨음을 나타내었다. 그 돌비 위에는 하나님의 율법이 기록되어 있었다.

매우 온유하고 남을 기쁘게 하는 상냥한 성격의 아론은 마치 백성들이 전혀 엄청난 죄를 저지르지 않은 것처럼, 이에 대해 심각하게 느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를 달래려고 애를 썼다. 모세는 분노하여 질문했다. “이 백성이 네게 어떻게 하였기에 네가 그들로 중죄에 빠지게 하였느뇨 아론이 가로되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어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출 32:21-24). 아론은 마치 어떤 놀라운 기적이 벌어져 황금 장식들이 금 우상의 모습으로 바뀌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모세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모세에게 자기가 다른 장인들과 함께 이 우상을 만들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아론은 모세가 백성들의 소원에 대해 너무 굽힐 줄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모세가 만일 좀 덜 강직하고, 때때로 좀 덜 단호하다면, 또한 만일 그가 백성들과 타협하여 저들의 소원을 만족시켜 준다면, 그에게는 문제가 줄어들 것이며, 이스라엘 진영은 더욱 평화스럽고 조화를 이룰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299 그러므로 그는 이러한 새 정책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는 불만을 해소하고 저들의 호의를 보존하며, 만일 저들의 요구에 굴하지 않을 경우에 분명히 예상되는 반역을 방지할 목적으로 백성들의 소원을 들어줌으로 자신의 천성적 기질을 행동으로 옮겼다. 그러나 아론이 하나님을 위하여 요지부동으로 굳건히 섰었더라면, 만일 그가 백성들이 저들 앞에서 애굽으로 인도할 신들을 만들자는 제안을 할 때 이에 대해 저들의 입장에 합당한 두려움과 분개로 대처했더라면, 만일 그가 하나님께서 그토록 놀라운 영광과 위엄으로 당신의 말씀을 선포하셨던 시내산의 공포에 대해 저들에게 언급했더라면, 만일 그가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명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순종하겠다고 하나님과 더불어 맺은 저들의 엄숙한 언약에 대해 상기시켰더라면, 만일 그가 자기의 생명을 희생하는 한이 있어도 저들의 요구에 굴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들에게 말을 했더라면, 그는 두려운 배도를 방지할 수 있는 영향력을 백성들 위에 행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가 없는 동안에 그가 올바른 방향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여야 했을 때,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굳건히 흔들리지 말고 백성들이 죄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막아야 하였을 때, 그는 그릇된 방향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명예를 옹호하는 일에 그의 영향력은 무력하기만 하였다. 그러나 그릇된 편에서 그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는 지시하였고, 백성들은 순종하였다.

아론이 그릇된 길로 첫 발걸음을 옮겼을 때, 백성들을 움직였던 정신으로 그는 고무되었고, 그는 총사령관으로 지휘하고 명령했으며, 백성들은 한결같이 순종하였다. 여기에서 아론은 지극히 격분시키는 죄들에 대해 결정적인 승낙을 내렸다. 왜냐하면 그것은 의를 옹호하기 위하여 서는 것보다도 어려움이 덜하였기 때문이다. 백성들의 죄에 대해 승인을 함으로 성실성으로부터 흔들려 버렸을 때, 그는 결단력과 진지함과 열성으로 새롭게 고무된 것처럼 보였다. 그의 온유함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처럼 보였다. 잘못을 거스려 하나님의 영광을 옹호하기 위해 섰을 때 결코 나타내 보이지 못했던 열성을 갖고 그는 황금을 송아지 우상으로 만드는 작업을 위해 연장들을 붙잡았다. 300 그는 제단을 짓도록 명령했으며 더욱 훌륭한 일에 합당한 보증과 함께 백성들에게 내일은 여호와께 명절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나팔수들은 아론의 입에서 나온 말을 이스라엘 군대의 각 부대를 향하여 소리 높여 선언하였다.

그릇된 길에 대한 아론의 조용한 보증은 모세가 의의 길로 백성들을 인도하며 저들의 반역을 정복하는 일보다도 더욱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어두움을 빛으로 빛을 어두움으로 바꾸어 놓은 아론에게 임한 영적 맹안은 얼마나 두려운 것이었는가! 금 형상을 경배하는 저들의 우상숭배에 대하여 여호와의 절일로 선언하다니 그는 얼마나 무시무시한 신성 모독의 죄를 범했는가! 여기에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전적으로 지배되지 아니하는 심령들에 대하여 사단이 휘두르는 권세가 나타나 있다. 사단은 이스라엘 한 가운데 자기의 깃발을 꽂고 그것을 하나님의 깃발이라고 높였다.

아론은 지체함이나 부끄러움 없이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출 32:4)라고 말하였다. 아론은 이스라엘 자손들로 하여금 저들이 마음 속에 품고 있던 것보다도 훨씬 크게 우상숭배로 빠져 들어가도록 영향을 끼쳤다. 그들은 산 위의 화염처럼 타오르는 영광이 저들의 지도자를 소멸시켜 버릴까봐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꼭 맞는 총사령관을 소유하게 되었으며, 그가 명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금 신에게 경배하였다. 그들은 화목제를 바쳤고, 쾌락과 소요와 술취함 가운데 빠져 버렸다. 그들은 광야에서 그토록 많은 고생을 겪는 것은 자기들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고 당시에 마음 속으로 결정하였다. 오히려 무엇보다도 난관은 그들의 지도자에게 있었다. 그는 올바른 유형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너무 굴복하기를 잘하며,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으로 저들을 경고하고 책망하고 위협하는 일에 있어서 언제나 백성들에게 그렇게 하지를 못하였다. 사물의 새로운 질서가 왔고 그들은 아론에 대해 기뻐하였고, 또한 스스로 즐거워하였다. 그들은 “만일 모세가 아론처럼 온순하고 부드럽다면, 이스라엘 진영에는 얼마나 놀라운 평강과 조화가 있게 될 것인가!” 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이제 모세가 산에서 내려올 것인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보았을 때, 백성들이 수치스럽게도 하나님을 잃은 것에 대하여 모세의 진노는 심히 커서 돌비들을 내던져 부수어 버렸다. 301 아론은 온유하게 서서 칭찬할 만큼 인내하며 모세의 질책을 받았다. 백성들은 아론의 사랑스러운 정신에 감복이 되었으며, 모세의 성급함에 대하여 분개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보는 것처럼 보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이스라엘의 비열한 배도에 대해 모세가 격분하는 것에 대해서 정죄하지 않으셨다.

진정한 사령관이 이제 또다시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의 위치에 섰다. 그는 여호와의 존전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내려왔으며, 그 곳에서 그는 과오를 범하고 있는 당신의 백성들로부터 진노를 거두어 달라고 그분께 간청하였었다. 이제 그에게는 하나님의 봉사자로서 백성들 앞에서 그분의 명예를 옹호하기 위하여 해야 할 또 다른 일이 있었다. 그는 그들로 하여금 죄는 죄요. 의는 의라는 것을 깨닫게 하여야 하였다. 그에게는 아론의 무시무시한 감화를 상쇄하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가로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오는 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그 친구를 각 사람이 그 이웃을 도륙하라 하셨느니라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가량이 죽인 바 된지라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그 아들과 그 형제를 쳤으니 오늘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날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출 32:26-29).

여기에서 모세는 진정한 헌신에 대하여 정의하였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며, 의를 옹호하기 위하여 서는 것이며, 지극히 불쾌한 의무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요구가 친구나 가장 가까운 친척들의 요구보다도 높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레위 자손들은 범죄와 죄에 대해 하나님의 공의를 실행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자신을 성별하였다.

아론과 모세는 모두 므리바 물가에서 하나님께 영광과 명예를 돌리는 일에 범죄하였다. 30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부드럽게 녹여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당신의 자비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려고 하시던 때에, 모세와 아론 두 사람은 모두 계속적으로 불평해대는 이스라엘로 인하여 피곤에 지쳐 격분하였으며, 저들을 위하여 반석을 열 수 있는 권능을 주장하였다.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민 20:10). 그들 중에서 여호와를 성별하여 저들을 향한 하나님의 인내와 자비를 드러낼 수 있는 황금 기회가 여기에 있었다. 그들은 물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을 하였다. 모세와 아론은 백성들이 슬프시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저들의 불평이 마치 저들에게 최대의 시련과 불명예를 안겨 주는 것처럼 여겼다. 그들이 거스려 범죄하고 존귀를 돌리지 않는 분은 하나님이었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도록 그분의 임명을 받은 이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의 재난에 대한 책임을 모세와 아론에게 돌림으로 그들의 최고의 친구이신 분을 모욕하고 있었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불평을 하고 있었다.

이 고귀한 지도자들의 죄는 컸다. 그들의 생애는 끝날 때까지 모본이 될 뻔 하였다. 그들은 크게 높임과 영광을 받아 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의 죄나 좀더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의 죄나 마찬가지로 신속하게 책임을 물으신다. 공언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잘못을 견책하고 정죄하지 않는 이들을 경건한 인물이요,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여기는 반면에 의를 옹호하기 위하여 굳건히 서서 비헌신적인 영향력에 대하여 저들의 성실성을 굴복하지 않은 이들을 경건과 그리스도인적 정신이 부족한 인물로 여긴다.

하나님의 명예를 지키기 위하여 굳건히 서서 어떠한 대가에도 불구하고 진리의 순수성을 유지하는 이들은 우리 구주께서 시험의 광야에서 겪으셨던 것처럼 수많은 고초를 겪게 될 것이다. 반면에 시험에 굴복하는 자, 잘못을 정죄할만한 용기가 없어서 어떠한 압력을 거스려 의를 수호하는 일에 저들의 영향력이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침묵을 지키는 자들은, 아마 수많은 상심을 피하고 많은 곤란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는지 모르나, 그들은 저들의 영혼을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매우 풍부한 상급을 잃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 조화된 인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통하여 악을 저지할 능력을 얻으며 의를 지키기 위해 굳건히 서는 이들에게는 언제나 혹심한 투쟁이 따를 것이며, 거의 홀로 서는 때가 자주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저들의 의지할 분으로 삼을때에 고귀한 승리는 저들의 것이 될 것이다. 303 그분의 은혜가 저들의 힘이 될 것이다. 그들의 도덕적 감수성은 예민하고 명석하며, 그들의 도덕력은 그릇된 감화를 저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치 모세의 성실성처럼 그들의 성실성도 지극히 순수한 성격의 것이 될 것이다.

온유하고 굴복하기 잘하는 정신, 백성들을 즐겁게 하려는 욕망, 이것 때문에 아론은 저들의 죄에 대하여, 그가 승인한 막대한 범죄에 대하여 눈이 멀었다. 이스라엘의 잘못과 죄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한 그의 행실때문에 삼천 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이것은 모세의 길과 얼마나 대조되는가.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고서 백성들이 무사히 넘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목격한 후에, 완고하게 반역을 계속한 사랑하는 친구들과 친척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돌리기 위하여 공의를 집행한 후에 모세는 또 다른 일을 위해 준비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진실된 친구요 백성의 친구임을 입증하였다.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의 죄를 속할까 하노라 하고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 버리리라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의 만든 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출 32:30-35).

모세는 범죄하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께 탄원하였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저들의 죄를 경감시키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았다. 그는 저들의 죄에 대하여 변명하지 않았다. 그는 저들이 큰 죄를 지었으며, 금 신들을 만들었다는 것을 솔직하게 시인하였다. 304 그리고 그는 소심함을 떨쳐 버리고, 이스라엘의 유익과 자기의 목숨이 너무 긴밀히 서로 짜 넣어져 있었기 때문에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께 당신의 백성을 용서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였다. 만일 저들의 죄가 너무 커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실 수 없다면, 만일 저들의 이름이 당신의 책에서 도말될 수밖에 없다면, 주님께서 자기의 이름도 마찬가지로 도말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모세의 앞에 보내어 언약의 땅으로 백성들을 인도하시겠다고 모세에게 약속을 갱신하셨을 때, 모세는 자기의 요구가 응답된 것을 알았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만일 백성들의 범죄로 인하여 당신께서 보응하실 수 밖에 없다면, 이 흉악한 죄를 인하여 저들을 분명히 처벌하시겠다고 모세에게 확인하셨다. 그러나 만일 앞으로 그들이 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큰 죄를 당신의 책으로부터 도말하실 것이었다.

젊은 목회자와 그의 아내에게

사랑하는 A 부부에게: 수개월 동안 나는 여러 해 전에 주님께서 그들에 관하여 보여 주기를 기뻐하신 몇 가지에 대해 그대들에게 써 보내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현대 진리를 증거하는 사업을 위해 준비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이에 관련된 여러 사람들과 관련해서 그대들의 경우를 보게 되었다. 나는 그대 두 사람 모두가 필수적인 자격을 결(缺)하고 있으며, 이것을 획득하지 않는 한, 그대들의 유용성과 스스로의 영혼 구원까지도 위태롭게 될 것임을 보았다. 그대들의 품성 속에는 몇 가지 결점이 있는데 그것들을 고치는 일은 지극히 중요하다. 만일 그대들이 그 일을 단호하고도 열렬하게 수행하기를 게을리한다면, 이러한 잘못들은 점점 증가하여 하나님의 일과 사업에 있어서의 그대들의 영향력에 큰 장애를 미치고, 결국 그대들은 그대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진리를 전파하는 사업으로부터 나갈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B 형제에 대하여 내게 주신 이상 중에 나는 그가 매우 불행한 성품상의 특징이 있음을 보았다. 그는 훈련을 받지 않았으며, 그의 기질은 정복되지 않았다. 305 그는 자기 마음 먹은 대로 마음껏 행할 수 있도록 허용을 받아 왔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을 존경하는 일에 매우 큰 결함이 있다. 그는 강하고 굴복할 줄 모르는 정신을 소유하고 있으나, 자기를 위해 최선을 다해 주는 이들에 대하여 적절히 감사할 줄을 모른다. 그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자이다.

A 자매의 경우에는 독립심, 굳건하고 요지 부동이고 굴복할 줄 모르는 의지, 타인에 대한 경의와 적절한 존경심의 결여, 이기심과 지나친 자기 신뢰 등이 품성의 특징임을 나는 보았다. 만일 그가 자기의 품성속에 있는 이러한 결함들을 면밀히 살피고 정복하지 않는다면, 그는 분명히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의 보좌에 앉는 일에 실패할 것이다.

A 형제와 관련해서 B 에 대해 언급한 것들 중 많은 것이 그대에게도 적용됨을 나는 보았다. 나는 그대의 과거의 생애를 주목하게 되었다. 나는 그대가 어려서부터 마음 속에 자신감과 완고함과 자기 독단적 생각을 품고 지냈음을 보았다. 그대에게는 독립심이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굴복하는 것이 그대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대의 길과 뜻을 다른 이들에게 의무적으로 굴복해야 할 때에, 그대는 자기 식대로 일을 거칠게 하였다. 그대는 스스로 잘 생각하여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나님의 진리는 그대에게 수용되어 사랑을 받았으며, 또한 그대를 위해 많은 일을 이루었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인 품성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였다. 그대가 하나님의 사업을 맨 처음 시작하였을 때, 그대는 좀더 온유하고, 조언과 권면을 잘 받아들였다. 그러나 어느 정도 성공하기 시작하자, 그대의 자만심은 증가하여, 그대는 덜 온유하게 되고, 독자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대가 화잇 부부의 사업을 보았을 때, 그대는 어느 점에서 그들보다도 더 훌륭하게 행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에 대한 반대의 감정을 그대들의 마음 속에 간직하였다. 그대는 감정적인 면에서 천성적으로 회의적이고, 비신앙적이다. 그대가 저들의 사업을 보고, 그릇된 일들에게 보내는 견책들에 대해 듣게 되었을 때, 그렇게 명백한 증언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대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결정하였고, 그들이 일하는 방법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취함으로 그들과 그들의 사업에 대해 회의와 의심과 시기심의 문을 그대의 마음 속에 활짝 열어 놓았다.

306 그대는 감정적 편견을 갖고 그들의 수고를 보았다. 그대는 할 수 있는껏 관찰하고, 듣고, 모아들여 많은 것을 추측하였다. 하나님께서 어느정도 그대에게 성공을 주셨으므로 그대는 그대의 짧은 경험과 수고를 화잇 형제의 수고와 같은 차원에 놓기 시작하였다. 그대는 우쭐거렸으며 만일 그대가 그의 입장에 있다면 그보다도 훨씬 훌륭하게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대는 스스로의 눈에 크게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대의 지식은 실제 형편보다도 훨씬 폭 넓고 가치 있다고 그대는 생각하였다. 만일 그대가 화잇 형제가 이 사업에 대하여 짊어지고 있는 부담과 실제적인 봉사와 염려와 곤궁의 일백 분의 일이라도 경험하였더라면 그대는 그에 대하여 불평하고 의심하고 질투하는 대신에 그의 사업을 더욱 잘 이해하고, 그를 더욱 잘 동정할 수 있게 준비되었을 것이다.

그대가 책임지고 있는 일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대의 수고가 하나님의 가납하심을 받는 데 실패하지 않도록, 그대의 수고를 통해서 그대가 진리의 사업에 영광을 돌리는 일에 실패하지 않도록. 그대는 분기하여야 한다. 그대는 겸손한 심령으로 “이 일에 누가 적합하겠는가?” 라고 느껴야 한다. 그대 두 사람 모두가 화잇 형제의 사업에 관해 의문을 품는 이유는 그것에 대해 거의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참된 부담이 그대의 영혼을 억누른 적이 거의 없었고, 하나님의 사업에 대한 염려로 그대의 심령이 고민해 본 적이 거의 없었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진실된 염려와 투쟁을 해 본 적이 거의 없었으므로, 열 살 짜리 소년이 자기 아버지가 짊어지고 있는 염려와 근심과 고역에 대해 이해하는 것보다도 훨씬 못하게 그대는 화잇 형제의 사업에 대해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 소년은 부담과 근심의 짐을 지고 애쓰는 아버지의 체험을 해본적이 없기 때문에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기에게는 쓸데없어 보이는 아버지의 염려와 근심에 대하여 이상스럽게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인생 경험이 늘게 되면, 그가 참된 짐을 떠맡아 책임을 지게 되면, 그때서야 그는 자기 아버지의 생애를 회상하고, 소년 시절에 자기에게는 이상스럽게 여겨졌던 것을 이해하게 된다. 왜냐하면 쓰라린 체험을 통하여 지식을 얻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대가 사업의 단순성으로부터 벗어나 그대 자신을 최고봉에 앉히는 위험 가운데 빠져 있음을 보았다. 307 그대는 전혀 견책과 조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으며, 그대의 마음 속의 말은 이러하다. “나는 선악간에 판단하고, 구별하고, 결정할 수 있다. 나는 내 권리를 침해당하고 싶지 않다. 아무도 나를 지배할 수 없다. 나는 스스로의 행동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 나는 어느 누구보다도 훌륭하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셔서 나의 노력에 성공을 주신다. 그 누가 나를 간섭할 권위를 갖고 있는가?” 그대의 경우가 이상 중에 내 앞을 스쳐 지나갈 때 그대가 이러한 말을 그 누구에게가 아니라 마치 스스로에게 말하듯이 지껄이는 것을 나는 들었다. 그대 두 사람을 지적하면서 내 곁에 서 있는 천사가 “만일 그대들이 회심하여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그대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 자신을 낮추는 자는 천국에서 가장 위대한 자이다”라는 말을 되풀이하였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강점은 겸손에 있음을 보았다. 그들이 스스로의 눈에 작게 여겨질 때, 예수께서는 그들의 힘과 의가 되실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수고가 성공할 수 있게 해 주실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A 형제를 시험하고자 하시는 것을 보았다. 그분께서는 그에게 어느 정도 성공하도록 하셨다. 만일 그가 시험을 견디고자 한다면 만일 그가 하나님의 축복을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 스스로를 높이고, 이기심과 자만심을 부추기는 데 사용하는 대신에 선한 일로 돌려버린다면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업과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당신의 축복을 계속해서 베푸실 것이었다.

A 형제여, 나는 그대가 스스로 높아지고, 자기 의와 자기 만족에 빠져 스스로 부요하여 아무 것도 필요 없는 것으로 느끼게 될 가장 큰 위험 속에 빠져 있음을 보았다. 만일 그대가 이 점에 있어서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다면, 주님께서는 그대의 약점이 모든 사람에게 자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에까지 그대가 나아가도록 허락하실 것이다. 만일 다른 사람들이 그대가 스스로와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 여기는 것처럼 그대를 뛰어난 빛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그대는 홀로 시험을 받게 될 지점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나는 그대가 수많은 번영과 성공을 감당하기에는 준비가 형편없음을 보았다. 그대의 경우에는 철저한 회심만이 필요로 되는 일을 이룰 것이다.

308 나는 그대 두 사람 모두가 천성적으로 이기적임을 보았다. 그대들은 제지되지 않는 한, 스스로에 대하여 생각하고 행동할 끊임없는 위험 가운데 빠져 있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편의를 위해 계획을 세우며,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불편을 안겨 주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대들은 다른 사람들의 계획을 고려하거나 그들의 견해나 감정을 존중하지 않고 그대들의 생각과 뜻을 수행하는 경향이 짙다. 그대 모두는 타인에 대한 경의와 존경심을 계발해야 한다.

A 형제여, 그대는 그대의 일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가사적인 의무에 참여하기 위하여 내려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대는 이러한 요구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대는 청년 시절에 그러한 것들을 등한히 하였다. 그러나 그대가 등한히 하는 이러한 작은 의무들은 잘 계발된 품성을 형성하는 일에 필수적이다.

나는 우리 목사들이 저들이 속해 있는 가정에서 일반적으로 유용한 인물이 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았다. 어떤 이들은 연구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일에만 정신을 쏟는다. 그들이 방문하는 가정에 목사들이 축복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의무를 지우셨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가정들을 멀리하고 책에만 사로잡혀 있으며, 그들과 진리의 주제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가정에서 신앙적 관심사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이것은 전적으로 그릇된 일이다. 출판 사업에 대하여 책임과 염려가 없는 이들, 모든 교회에 대하여 걱정과 수많은 염려를 해야 할 위치에 있지 않는 많은 이들은 자기의 짐이 과도하게 어렵다고 느끼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방문하는 가정의 가장 깊은 관심사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그들은 아무 것도 돌려주지 않으면서 사랑을 받고,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느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목사들을 대접해야 할 책임이 그리스도인 가정에 있으며 또한 그리스도인 친구들의 대접을 받는 목사들에게는 가능한 한 그들의 친구들의 짐이 되지 않고 스스로의 짐을 짊어져야 할 상호적인 책임 가운데 있음을 깨달아야 할 의무가 있다. 많은 목사들은 저들이 특별하게 총애와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으며, 마치 애완용 짐승처럼 취급받음으로 자주 그들은 손해를 보고 그들의 유용성은 장애를 받는다.

309 A 부부여, 그대들은 그대들의 형제들과 함께 있을 때에 다른 이들의 편의나 불편을 고려하지 않고 그대들에게 맞는 대로 일을 처리하며, 그대들에게 관심을 끌기 위한 일을 너무 자주 하였다. 그대들은 스스로를 중심으로 삼으려는 위협 가운데 빠져 있다. 다른 이들의 유익은 물론 그대들의 영혼의 유익을 위해서 마땅히 그대들이 방문한 이들에게 더욱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할 때에, 그대들은 다른 사람들의 주의와 관심을 받아 왔다. 올바로 처신했더라면 그대들은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을 것이며, 좀더 많은 영혼들을 진리 가운데로 구원해 들임으로 축복을 누리게 되었을 것이다.

A 형제여, 그대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대에게는 탐구심이 있다. 그러나 그대의 품성 속에는 내가 언급한 것처럼 정복해야만 할 심각한 결함이 있다. 그대는 인생살이의 수많은 작은 예절들을 등한히 하였는데, 이는 스스로에 대하여 너무 많이 생각함으로 이러한 작은 유의 사항들이 그대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그대가 인식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누군가가 해야만 할 일을 그대가 발견하여 행하기를 등한히 하는 한 그대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부담을 지도록 하지 않으실 것이다. 필요로 될 때 장작을 마련하고 물을 긷는 일, 자기가 대접 받고 있는 집의 필요한 일을 행하기 위해 힘을 쓰는 일, 이러한 것은 복음을 전파하는 목사로서의 존엄성을 깎아 먹지 않는다. 이러한 작은 중요한 의무들을 바라다보지 않고 그들을 위해 행할 수 있는 기회를 활용하지 않음으로 그 스스로 진정한 축복을 빼앗기며, 또한 그에게서 그러한 봉사를 받는 것이 저들의 특권이 될 이들에게서 유익을 빼앗게 된다.

우리 목회자들 중 어떤 이들은 정신적 부담에 적절한 신체 운동을 하지 않는다. 그 결과로 허약해져서 고통을 겪게 된다. 목회자에게 관계된 일상적인 의무만을 수행하는 목사들의 건강이 나빠져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들의 마음은 우리들 중에 있는 중요한 기관들과 관련하여 애을 먹이는 염려와 무거운 책임으로 끊임없이 부담을 지고 있지 않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고 운동하여야 할 지에 대해서 보내 주신 빛에 대해 적절한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의 식생활에 적절한 주의를 기울인다면 사업과 일에 있어서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그들이 실패해야 할 진정한 이유가 전혀 없음을 나는 보았다.

310 우리 목사들 중 어떤 이들은 너무 마음껏 먹고 기관에 쌓이는 불순물을 내보내기 위하여 충분한 운동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식사를 하고 난 다음에 대부분의 시간을 앉아서 책을 읽고 연구하고, 글을 쓰는 데 보내는데, 사실은 그때에 시간의 일부를 조직적인 육체 노동에 바쳐야 한다. 건강식이라 할지라도 너무 많은 양을 먹음으로 위에 지나친 부담을 지우지 않도록 좀더 유의하지 않는 한, 우리 목사들은 분명히 건강을 망치게 될 것이다. A 부부여, 나는 그대들이 모두 이 점에 있어서 위험에 빠져 있음을 보았다. 과식 때문에 생각과 말의 자유로운 흐름이 방해를 받고 청중의 마음 속에 진리에 대해 인상을 끼쳐 주기 위하여 그토록 필요한 생각의 집중이 타격을 받는다. 식욕의 방종을 통하여 지성은 흐려지고 꽉 막히게 되며, 영혼의 거룩한 정서는 타격을 입는다. 우리 설교자들 중 어떤 이들의 정신적·도덕적 능력이 부적당한 식사와 운동 부족 때문에 연약하게 되었다. 다량의 음식을 탐하는 이들은 그들의 식욕에 방종하지 말아야 하며, 자아 부인의 정신을 발휘하고 활동적인 근육과 억압 받지 않는 두뇌의 축복을 유지하여야 한다. 과식을 통하여 다른 기관의 힘이 위장의 일을 하는데 쏠림으로 온몸이 무력화된다.

우리 목회자들이 모든 신체 기관을 적절하게 활동하도록 하는 일에 실패함으로 말미암아 어떤 기관은 닳아 버리고, 다른 기관들은 무활동 때문에 약화된다. 어떤 한 기관이나 어떤 종류의 근육들이 거의 전적으로 사용됨으로 말미암아 마모가 오게 된다면,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과로로 크게 약화된다. 정신의 모든 기능과 각각의 근육은 나름대로의 독특한 역할을 갖고 있으며, 제대로 계발되고, 건강한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동일하게 활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각각의 기관은 생체 속에서 행해야 할 나름대로의 일이 있다. 기계의 모든 바퀴는 살아있고, 능동적이며, 활동적인 바퀴가 되어야 한다. 모든 기관들은 서로간에 부담을 지고 있으며, 제대로 계발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움직여져야 할 필요가 있다.

A 부부여, 그대들 중 아무도 육체 노동과 가사 일을 즐기지 않는다. 그대 모두는 생애의 실제적인 의무에 대한 사랑을 계발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이 교육은 그대의 건강에 필요하며, 그대의 유용성을 증가시킬 것이다. 311 그대는 먹을 것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한다. 질적으로 형편없는 피를 만드는 그러한 것들을 건드리지 말라. 그대들 모두는 연주창에 걸려 있다.

A 형제여, 독서를 즐기고 육체적 부담을 싫어하되, 말하고 목을 운동시키는 일은 잘함으로, 그대는 목과 폐의 질병에 걸리기 쉽다. 그대는 마치 반복해야 할 교훈이 있는 것처럼 급하게 말하는데, 그대는 다급하게 말하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 그대는 발성 기관의 상부 조직이 일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렇게 함으로 그것들은 끊임없이 소모되고 자극을 받음으로 질병의 기초를 놓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활동은 복부 근육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폐와 목은 통로일 뿐, 모든 일을 감당해서는 안 된다.

나는 그대 부부의 먹는 방식 때문에 질병이 이르러 올 것임을 보았는데, 만일 그것이 그대들에게 고정되면, 쉽게 극복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여러 해 동안 별 탈없이 견뎌 왔고, 망가진다는 어떤 특별한 징후도 보지 못했지만, 원인에는 틀림없는 결과가 따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의 건강과 생명을 보존하는 일에 그 누구를 위해서도 기적을 행하시지 않을 것이다. 그대들은 계몽된 양심에 따라 지혜롭게 먹고 연구하고 일해야 한다. 우리의 설교자들은 모두가 진실되고 성실한 건강 교역자가 되어야 하며, 남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개혁을 채택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에 입각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중에 그렇게 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건강 개혁에 대해서 큰 빛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분은 우리 모두가 그것을 존중하기를 요구하신다. 그분께서는 결과적으로 고통이 수반되는 일 없이 당신의 백성들로 하여금 거절당하고 무시당해야 할 빛을 주지 않으신다.

사업의 선구자들

나는 그대들 중 아무도 진정으로 자신을 모른다는 것을 보았다.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 욥에게 하셨던 것처럼 원수를 그대에게 풀어놓으신다면, 그분께서 욥에게서 발견하셨던 굳센 성실의 정신을 그대에게서 발견하지 못하실 것이며, 오히려 불평과 불신의 정신을 발견하실 것이다. 312 내 남편이 질병 가운데 있었을 때, 곧 배틀크릭의 우리 형제 자매들이 시련 가운데 빠졌었던 때, 사단이 그들에게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던 때에, 만일 그대가 그 곳에 있었다면, 그대들 모두는 저들의 질투의 정신과 허물을 찾는 정신을 깊이 들여 마셨을 것이다. 그대는 나머지 사람들처럼 시기심이 발동하여 병들고 근심으로 기진맥진해 있는 인물에게 한마디 말로써 그를 마비시키고 거스리는 부류의 사람들 중에 끼었을 것이다.

그대들은 화잇 부부에게 있는 것으로 그대들이 추측하고 있는 잘못을 과대 포장하고 그것에 집착함으로 그대들의 결함들을 상쇄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대들은 기회가 허락된다면, 배틀크릭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행할 것이며, 그 어떤 이들이 우리를 쳐부수기 위한 사악한 십자군 노릇을 할 때 행했던 것보다도 더 크게 행하고자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들은 그들 중 어떤 이들 보다도 믿음과 경외심이 적으며, 우리의 사업과 우리의 소명에 대해 존경을 표하는 데 더 인색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에 대하여 불평을 품게 하고, 불만을 토하고, 흠을 잡고, 시기한 이들의 슬픈 경험과 본이 그대들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본을 통해 그대들이 경고를 받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대들의 층성심을 시험하고 마음 속의 비밀을 공개하실 것임을 보게 되었다. 그대들의 불신과 의심과 시기심이 드러나고 그대들의 약점들이 폭로될 것이며, 그리하여 만일 그대들이 원한다면 그것들을 보고 자신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대들이 사람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우리의 수고에 손해를 끼치는 저들의 견해와 인상들을 모으기 좋아하는 것을 보았다. 마치 모세를 저들의 지도자로 갖고 있었던 이스라엘 자손 중의 불평꾼들처럼, 어떤 이들은 이런 일에 대해, 다른 이들은 저런 일에 대해 흠을 잡았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마땅한 만큼 보수적이지 못하다고 말하면서 우리의 노선에 대해 비난하였다. 우리는 해야 할만큼 백성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우리는 너무 명백하게 말하였고, 너무 예리하게 견책하였다. 어떤 이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갖고 화잇 자매의 옷에 관해 말을 했다. 어떤 이들은 화잇 형제가 추구하는 길에 대해 불만을 표하였으며, 이러쿵저러쿵하는 말들이 떠돌아다니며 그들의 길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비난하였다.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한 천사가 그들 곁에 서서 그들의 말을 부지런히 책에 기록하였는데, 그 기록은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 펼쳐질 것이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사업을 하느라 노쇠해 버린 화잇 부부를 정죄할 거리를 부지런히 찾았다. 313 어떤 이들은 화잇의 증언이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견해를 나타내었다. 이것이야말로 수많은 비헌신적인 사람들이 원하는 모든 것이다. 견책의 증언들이 그들의 허영과 교만을 제지하였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감히 하려고 한다면, 그들은 유행과 교만으로 끝없이 치달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모든 사람들에게 저들 자신을 시험하고, 그들의 진정한 성격을 계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실 것이다.

수년 전, 나는 메인 주, 파리에서 일어난 것과 동일한 정신을 아직도 우리가 직면해야 할 것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결코 완전하게 고쳐지지 않았다. 그것은 잠들기는 했지만, 죽지는 않았다. 굳은 결의를 갖고 불평과 반역을 꾀하는 이 정신은 시시때때로 우리를 수년간 따라 다녔던 이 사악한 정신에 언젠가 물들었던 여러 사람들 속에서 수확을 거두었다. A 자매여, 그대는 어느 정도 이 정신을 간직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그대의 견해와 감정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받았다. 거룩한 체하는 불신앙이 점점 C 자매의 마음 속에서 자라났으며, 이제는 그가 이것을 벗어 버리고자 해도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고자 하는 모든 영향력을 거부하며 메인 주에 있는 D 형제와 그 외의 사람들을 광신주의적 기만 가운데 오랫동안 사로잡았던 동일하게 단호한 이 정신은, _______에 있는 E의 마음에 강력하고도 기만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그 동일한 영향력이 그대에게도 미쳤다. 그대는 원수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조용하고, 단호하고, 굴복할 줄 모르는 기질의 사람이며, 만일 잘못될 경우에 E자매가 영향력을 행사하므로 벌어진 결과보다도 더 큰 정도로 동일한 결과를 그대의 영향력을 통해서 거두게 될 것이다.

의심, 질투, 불신 등의 감정이 여러 해 동안 그대의 마음 속에서 세력을 얻었다. 그대는 견책을 미워한다. 그대는 매우 예민하며, 견책받는 누구에 대해서든지 즉시로 동정심이 일어난다. 이것은 거룩한 감정이 아니며,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고무된 것이 아니다. A 부부여, 비난과 불평의 이 정신이 그대들 속에서 계발될 때에, 이것이 모습을 드러내고 E 자매와 그의 남편의 생애에 저주를 안겨 준 불만, 시기심, 불신의 누룩이 나타날 때에, 우리는 그것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기 위해서 일할것이며, 그 정신은 전혀 자리를 잡지 못할 것이다. 314 그런데 이 일이 발전되기까지 나는 침묵해야 하는데, 이는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A 형제의 수고에 괄목할 만한 성공이 따르되 만일 그가 철저히 회심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는 그 영혼을 잃어버리는 위험에 처하게 될 것임을 나는 보았다. 그는 다른 이들의 지위와 수고에 대해서 타당할 만큼의 존경심을 갖고 있지 않으며, 그는 자기 자신을 최고로 여긴다.

나는 화잇 부부의 수고와 관련해서 시험이 계속적으로 증가하게 될 것임을 보았다. 우리의 사업은 특별한 사업이며, 일터에서 수고하고 있는 그 어느 누구의 일과도 다른 성령을 갖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교리의 봉사에 국한된 봉사를 하는 목사들을 우리의 일을 하도록 부르시지 않으며, 또한 오직 그들의 일을 하도록 우리를 부르지 않으신다. 우리 각자는 어떤 점에서 독특한 일을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의 내적 생애의 비밀과 숨겨진 죄들을 내게 공개하시기를 기뻐하셨다. 과오들을 견책하고 숨겨진 죄들을 나타내기 위하여 달갑지 않은 의무가 내게 지워졌다. 감히 다른 이들은 존재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죄들을 견책하기 위하여 내가 하나님의 성령의 강권하심을 받을 때 성화되지 않은 심령들 속의 자연적인 감정을 건드리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저들의 마음을 낮추고, 회개와 고백으로 저들의 죄를 버리는 반면에, 다른 이들의 마음 속에서는 증오가 일어났다. 그들의 길이 질책을 받을 때, 그들의 교만심은 상처를 입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당신의 미약한 종을 통하여 자기가 빠진 위험과 죄를 보여 주심으로 과오들을 고치는 일이 너무 늦어지기 전에 그것들을 내버릴 수 있도록 자기에게 말씀하신다고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느끼는 대신에, 화잇 자매가 그들을 해치는 자라는 생각을 받아들인다.

어떤 이들은 “누가 이것들을 화잇 자매에게 말하였을까?” 라고 의문을 품기를 잘하며, 내게 “그 누가 당신에게 이런 것들을 말해 주었는가?” 라고 묻기까지 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그렇다. 정말 그렇다. 하나님의 천사가 내게 말하였다”고 대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질문의 의미는 “형제 자매들이 그들의 잘못을 폭로하였는가?” 이다. 미래를 위해서 나는 그렇게 좁아 터진 마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설명하려고 애씀으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증언들을 왜소하게 하는 일을 하지 않겠다. 315 오히려 그러한 모든 질문들을 하나님의 성령을 모독하는 것으로 취급하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대열 중에서 그 누구도 세워 놓지 않으신 위치에 나를 밀어 넣는 일에 적당하다고 보셨다. 그분께서는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주시지 않은 견책의 부담들을 내 위에 짊어지게 하셨다. 나의 남편은 내 곁에 서서 증언들을 감당할 수 있도록 했으며, 견책의 증언과 연합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발하였다. 대담하고 모욕적이며, 또한 내가 짊어지게 될 증언들을 분쇄하게 될 불신과 반역을 억누르기 위하여, 그는 굳건한 입장을 취하도록 강권함을 받았다. 왜냐하면 견책을 받는 이들은 주어진 견책 때문에 찔리고 깊이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교만한 심령이 저들의 죄들을 포기하고, 모든 죄악으로부터 그들의 심령과 생애를 정결하게 하기 전에 그들이 느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전진하도록 하시는 모든 움직임마다 하나님의 백성이 행하는 매 계단마다, 뒤로 물러나 의심과 불신을 암시하고, 우리의 길에 장애물을 놓고, 우리의 믿음과 용기를 약화시키기 위한 사단의 도구로 이미 예비된 자들이 우리 중에 있다. 우리는 제기되는 반대를 뚫고 우리의 길을 싸우며 전진하기 위하여 용사들처럼 서 있어야만 하였다. 이것 때문에 그렇지 않았을 경우보다도 우리의 사업이 열 배나 어렵게 되었다. 우리는 반석처럼 굳건하게 양보하지 않고 서 있어야 하였다. 이러한 굳건함 때문에 우리는 마음이 굳고 고집이 센 사람으로 이해되어 왔다. 비헌신적인 형제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처음에는 오른편을 들었다가 다음에는 왼편을 드는 우유부단한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에 대해 계획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길이 곧은 것이 되도록 계획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빛과는 반대되는 이러저러한 길을 우리로 하여금 택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에 대해서 큰 짐을 지고 있다고 고백하는 이들이 차례차례로 우리에게 왔다. 우리가 이러한 거짓 빛들과 광신적인 제안들을 따랐더라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그랬더라면 분명히 우리 백성은 우리에 대해서 신뢰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의를 위하여 우리의 얼굴을 부싯돌같이 굳게 하고, 사업과 의무를 밀고 나가야 한다.

우리 중 어떤 이들은 언제든지 극단으로 일을 몰고 나가든지, 표적을 훨씬 넘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닻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이들은 진리의 사업에 크게 해를 끼쳐 왔다. 316 하나님께서 책임 진 자리에서 충성을 다하는 용사를 부르시는 때에 필요하다면 싸울 준비를 하고, 저들이 굳건하고 분명하게 서 있을 수 있는 위치에 결코 서 본 적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요구하실 때일지라도 원수에 대하여 비난을 퍼부으려고 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타인들이 싸워서 그들을 위해 승리를 쟁취함으로 그들도 노획물을 나누어 갖게 될 때까지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러한 용사들을 하나님께서는 얼마만큼이나 의지하실 수 있겠는가? 그들은 하나님의 사업에 있어서 비겁자로 간주된다.

내가 보았는데, 이러한 부류는 죄와 사단과의 싸움과 관련하여 스스로 아무 경험도 얻지 못하였다. 그들은 사단과 그의 군대로 더불어 싸우는 일보다도 그리스도의 충성된 용사들과 더불어 싸우는 일에 더 기울어져 있다. 만일 그들이 갑옷을 입고 전쟁에 나섰더라면, 그들은 마땅히 소유하는 특권을 누렸어야 할 소중한 체험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옳은 일을 위해 싸우고, 전쟁에서 무엇인가를 감히 시도하고, 사단을 공격하여 그의 요새를 점령하는 법에 대하여 배울 만한 용기가 없었다. 어떤 이들은 어떠한 위험을 감수하거나 스스로 어떤 것을 감히 시도하려는 생각을 전혀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누군가는 시도해야 하며, 어떤 사람은 이 사업에서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비난에 감히 자신을 노출시키기를 원치 않는 이들은 책임을 진 이들을 서서 관망만 할 것이며. 만일 기회 비슷한 것만 보이면, 할 수 있는 한 저들을 비난하고 해칠 것이다. 화잇 부부는 일하면서 이러한 체험을 겪어 왔다. 사단과 그의 군대는 그들과 싸우려고 진치고 있으되,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전쟁에서 그들 곁에 서 있어야만 했을 이들이 그들이 과한 짐을 지고 있는 것을 보고 정도 이상으로 압박을 가하였으며, 그들의 용기를 꺾어 힘을 약화시키려고 일하는 사단과 더불어 연합할 준비를 갖추고 서 있었으며, 또한 가능하다면, 그들을 일터에서 몰아내려고 하였다.

A 부부여, 그대들이 여행할 때 사람들이 그대들을 우러러 보고 크게 존경을 하며, 그대들에게 유익을 주지 못할 정도로 크게 존중해 주고 구별해 주는 것을 나는 보았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과 사업을 하도록 맡겨 주신 짐들을 지고 있는 이들과 동일한 존경으로 취급해 주는 것이 그대들에게는 자연스럽지 못하다. 317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안일을 사랑한다. 그대들은 스스로의 길에서 돌아서거나 스스로 불편을 감당할 태세가 되어 있지 않다. 그대는 일들을 그대들의 편의를 위해서 휘어잡기를 원한다. 그대들은 스스로의 성취에 대해 매우 큰 자만심을 품고 있으며, 높여서 생각한다. 그대들에게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근심과 부담을 감당해야 할 일이 없고, 또한 내 남편이 감당할 수밖에 없는 일, 곧 하나님의 사업의 이익이 달려 있는 중대한 결정들을 내리는 일과 같은 책임도 지고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당신의 백성의 상담자로 삼으셔서 그대처럼 젊은 사람들에게 마치 믿음의 자녀에게 하듯이 충고와 조언을 주도록 하셨다. 그리고 그대의 참된 상태에 대해 제대로 깨닫게 될 때, 그대가 취하게 될 겸손한 위치에 그대가 서게 된다면, 그대는 충고를 받아들이고자 할 것이다. 그대에게는 거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대는 화잇 형제가 그대보다도 더욱 깊이 느끼는 이유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한다. 이 일에 있어서 그대와 그의 차이는 바로 이 점이다. 그는 인생의 황금기의 30년간을 하나님의 일에 투자한 반면에, 그대는 불과 수년 동안의 경험밖에 갖고 있지 않으며, 그가 겪은 고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고난을 겪었다.

이 사업을 이끌어 온 이들이 갖은 고생 끝에 진리를 찾아서 그대의 손안에 쥐어 준 다음에야 그대는 그것을 받아들였으며, 다른 이들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염려로 그대를 위해 마련해 놓은 고귀한 논증들을 제시하기 위하여 나아갔다. 자금 면에서는 그대를 위해 적절한 대책이 마련되어 있다. 그대는 주급을 받기 때문에 이 면에 근심과 걱정을 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지만, 이들 사업의 선구자들은 온갖 종류의 궁핍을 겪었다.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보장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께 의지 하였고, 또한 저들의 수고를 받아들이는 소수의 충성스런 마음을 가진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대에게는 그대를 지원하고, 그대의 수고에 대해 온전히 감사할 줄 아는 동정적인 형제들이 있지만, 이 사업을 위해 맨 처음에 수고한 이들에게는 저들을 후원해 줄 만한 사람이 극소수에 불과하였다. 불과 몇 분 안에 그들 모두를 열거할 수 있다. 우리는 음식이 없어 굶주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마땅한 옷이 없어 추위에 떤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우리에게는 호텔 경비를 지출할 만한 돈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형제들을 방문하기 위하여 개인의 탈것을 통해 밤을 새워 여행하였다. 318 우리는 시시때때로 여러 마일씩 걸어 다녔는데, 이는 마차를 세낼 만한 돈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오, 진리는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하였던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산 바된 영혼들은 얼마나 소중하였는가!

그렇게 각박하게 어려웠던 시절에 우리는 고난에 대해 결코 불평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통하여 믿음을 행사할 필요를 느꼈다. 그때가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때였다. 그때에 우리는 믿음의 단순성을 배웠다. 고난 속에 빠졌던 그때에 우리는 주님을 시험하고 입증하였다. 그분은 우리의 위로가 되셨다. 그분은 우리에게 피곤한 길의 큰 바위 그림자와 같은 분이셨다. 나의 형제여, 궁핍과 고난과 필요 속에서 유사한 경험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그대와 또한 일반적으로 우리의 젊은 교역자들에게 불행스런 일이다. 그러한 체험이 집이나 땅이나 금은보다도 훨씬 더 그대에게 값진 것이 될 것이다.

사업 초창기에 손수 생활비를 벌면서 진리를 출판하기 위해 고생한 일. 과로와 극도의 궁핍 가운데 빠졌던 과거의 경험을 우리가 언급할때, 사업에 참가한지 불과 몇 년 되지 않은 우리의 젊은 설교자들 중 어떤 이들은 곤혹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이며, 그들은 우리 스스로의 업적에 대해 과시한다고 우리를 비난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그들 자신의 생활이 진저리나는 염려와 궁핍과 자기 희생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에 대하여 동정할 줄을 알지 못하고 대조되는 것에 대해 편안한 느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 앞에 그토록 큰 대조를 보이는 다른 이들의 체험들을 제시하게 되면 그들이 원하는 만큼 그들의 수고가 호의적으로 드러나지 않게 된다.

우리가 이 사업을 시작하였을 때, 우리 두 사람은 모두 건강이 좋지 않았다. 내 남편은 소화불량이었으며, 우리는 하루에 세 번씩 믿음으로 힘을 더해 주시도록 하나님께 간구를 올렸다. 내 남편은 큰 낫을 갖고 목초 밭으로 나갔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열렬한 기도를 응답하심으로 그에게 주신 힘을 통하여 그는 그 곳에서 목초를 베는 일을 통해 돈을 벌었다. 그것으로 우리는 산뜻하고 평범한 옷을 샀으며, 우리 형제들에게 진리를 전파하기 위하여 먼 주로 가는 삯을 지불하였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과거를 언급할 권리가 있다. 319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요를 받은 것이 탈취한 것이라 또 내가 너희에게 있어 용도가 부족하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함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거니와 또 조심하리라 그리스도의 진리가 내 속에 있으니 아가야 지방에서 나의 이 자랑이 막히지 아니하리라”(고후 11:8-10). 우리의 과거 경험을 언급할 때 우리는 히브리서를 기록한 사도의 권면을 이행하고 있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흑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히 10:32, 33).

우리의 생애는 하나님의 사업과 함께 어울려 짜여졌다. 우리는 이 사업을 떠나서 다른 일에 전혀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지극히 작게 시작한 사업이 더디기는 하지만 분명히 힘을 얻어 번창해 가는 발전의 모습을 볼 때 우리가 애쓰고 고생하며 거의 생명까지 희생하면서 일한 사업이 발전하는 모습을 볼 때, 그 누가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자랑하는 것을 금하거나 막을 수 있겠는가? 이 일에 있어서의 우리의 체험은 우리에게 값지다. 우리는 이 일에 모든 것을 투자하였다.

모세는 살았던 이들 중 가장 온유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불평 때문에 애굽을 떠난 후 저들의 죄악된 길을 반복해서 막을 수밖에 없었으며, 저들의 지도자로서 자신의 길을 옹호해야 하였다. 이스라엘을 떠나 죽기 바로 직전에 그는 애굽을 떠난 후 저들이 저지른 반역과 불평의 역사를 저들에게 다시 들려주었으며 저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 때문에 그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어떻게 간구하였는지를 말하였다. 그는 자기도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한 일을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호와께서 너희의 연고로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신 3:26). 모세는 그들에게 그들의 죄를 제시하며 말하였다.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옴으로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였느니라”(신 9:24). 그는 얼마나 많이 하나님께 간청하고, 저들의 죄들로 인하여 그 영혼을 슬픔 속에 겸비하게 했는지를 그들에게 말하였다.

320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의 범죄와 반역에 대해 모세가 자주 상기시키도록 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으며, 이는 그들로 하여금 저들의 죄들을 보고 하나님 앞에서 그 마음을 겸비하게 하도록 함이었다. 그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노를 격동시켰던 과오와 죄들에 대해 그들이 잊어버리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원하지 않으셨다. 그들의 범죄에 대해서, 또한 그들이 감사드리지 않았던 하나님의 자비와 선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그들에게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도록 지시하셨다.

나는 그대처럼 젊은 사람, 현대 진리의 사업에 불과 몇 년간에 걸쳐 불완전한 체험을 한 이들은 하나님께서 무거운 책임을 맡기시고 이 사업을 이끌어 나가도록 신임하실 수 있는 이들이 아님을 보았다. 그러한 인물들은, 그대의 나이만큼의 세월을 하나님의 사업에 생애를 바친 이들, 이 사업이 아주 미약하게 시작할 때부터 이 사업에 뛰어들어 적극적으로 활동한 이들, 이렇게 성숙된 체험을 가진 이들의 판단과 의견으로 더불어 갈등을 빚게 될 입장들을 취함으로 미묘한 사태를 야기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신성하고 중요한 사업을 이끌어 나가기에는 거의 경험이 없고 자기 과신이 지나친 인물들을 선택하지 않으실 것이다. 여기에는 많은 것이 걸려 있다. 현재의 번영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사업을 이끌기 위해 겪어야 했던 고생과 시련, 반대와 궁핍을 거의 겪어 보지 않은 이들은 스스로 크게 분발해야 한다.

현재 현대 진리를 전파하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젊은이들은 겸손과 온유를 배양하여야 한다. 그들은 내던져짐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높임을 받는 것에 대해 조심해야 한다. 그들은 현재 그들에게 비치고 있는 분명한 진리의 빛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어떤 이들이, 사업이 어려움 속에 빠졌을 때 그들을 위하여 가장 막중한 싸움을 싸웠던 이들, 기별의 시작을 위하여 참으로 많은 것을 견뎠던 이들에 대하여 불평을 하는 경향을 지닌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불쾌히 여기신다는 것을 나는 보았다.

경험이 많은 일꾼들, 곧 무겁게 억누르는 부담을 짊어지도록 도와줄 사람이 거의 없던 때에 그것을 짊어지고 수고한 이들을 하나님께서는 귀하게 여기신다. 321 신실함을 입증한 이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불타는 관심을 갖고 계신다. 현대 진리 사업을 일으켜 세우기 위하여 백발이 되도록 애쓴 하나님의 종들에 대해 흠을 잡고 비난하는 이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불쾌히 여기신다. 젊은이들이여, 그대들의 비난과 그대들의 불평은 하나님의 날에 분명히 그대들을 대적하여 서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대들에게 무거운 책임을 지워 주지 않으신 한 그대의 위치를 떠나서 스스로의 독자적인 판단을 의지하고 그대에게 맞지도 않는 책임들을 취하려고 하지 말라.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그대들은 경성과 겸손을 계발하고 부지런히 기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대가 하나님과 더욱 밀접하게 살수록 그대의 약점과 위험들을 그대는 더욱 분명히 인식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실제적인 견해, 그리스도의 대속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통하여 그대는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되고, 그리스도인 품성을 완성하는 일에 그대가 어느 지점에서 실패하고 있는지 보게 될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대 두 사람에게는 그대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매일 체험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대들이 그대들의 커다란 영적 부족을 보게 될 때 하나님의 말씀 속에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는 인간의 타락상이 그대들의 체험 속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대들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대 두 사람은 바리새인적 이며, 그대들의 위험과 하나님 앞에서의 진정한 위치에 관하여 일부러, 또한 두려워하면서, 어둠 속에 남아 있으려는 위기 속에 처해 있다.

그대들 두 사람에게는 인생의 다양한 환경과 관계 속에서 그대들에게 지워져 있는 의무들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그대들은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의무들을 등한히 하였다. 자아에 대한 지식이 그대들에게 매우 필요하다. 그대 자신의 마음에 대한 무지를 통해 그대는 신령한 생애에 있어서 날마다 살아 있는 체험을 해야 할 필요를 간과하게 되었다. 어느정도 그대는 신령한 감화가 끊임없이 그대와 함께 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업을 하려면 이것이 꼭 필요하다. 만일 그대가 이것을 등한히 하고 자기 신뢰와 자기 만족에 빠진다면, 그대는 크게 타격을 가하는 자가 될 것이다. 그대는 겸손한 마음 신뢰하는 정신을 끊임없이 간직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연약성을 느끼는 자는 자기보다 높은 곳을 바라보게 될 것이며. 위로부터의 끊임없는 능력이 필요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그는 끊임없는 감사의 정신을 발휘하고 간직하게 될 것이다. 322 자기 스스로의 약점에 대하여 가장 잘 알고 있는 이는 심령의 반역을 정복할 수 있는 것이 오직 비할 데 없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대는 그대의 품성의 장점뿐 아니라 약점에 대해서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대에 대해서 결코 계획하시지 않는 사업에 참여하여 책임을 지지 아니하도록 끊임없이 그대를 보호하여 주실 것이다. 그대는 어떠한 인간적 기준에 의하여 그대의 행위를 비교하고 그대의 삶을 측정할 것이 아니라 성경 속에 나타난 의무의 척도로 그렇게 해야 한다. A 부부여, 그대들이 꿈 꿀 필요가 없었던 스스로 해야 할일이 있다. 여러 해 동안 그대들은 우리와 우리의 사업에 관하여 유혹과 시기심을 간직해 오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이 아니다. 그대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증언들을 믿는다고 생각할는지 모르나 그것들이 하나님께 속한 여부에 관해서는 불신에 빠져 있다.

A 형제여, 만일 그대가 이론적인 것뿐 아니라 실제적인 것에 관심을 기울여 그대 스스로의 마음 속에 생생하고 실제적인 원리들을 간직하고 스스로의 생활을 통해서 그것들을 수행한다면, 그대의 수고는 진리로 영혼들을 회심시키는 일에 더욱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그대에게는 위로부터 난 굳건한 토대가 필요하다. 그대는 환경에 너무 의존한다. 만일 회중이 많을 것 같으면. 그대는 사기가 높아져서 그들에게 말하고자 한다. 그러나 어떤 때는 그대의 회중이 감소하는데, 그대는 기분이 가라앉게 되어 일할 용기를 거의 내지 못한다. 분명히 부족한 것들이 있다. 그대는 하나님 위에 굳건한 토대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교훈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진리들 중 어떤 것들은, 그분께서 피곤하셔서 쉬기 위하여 우물가에 앉으셨을 때 물을 길러 나온 사마리아 여인 한 사람에게 전파되었다. 생수가 그분 안에 있었다. 생수의 근원께서 우리 속에 있어서 우리의 영향권 속에 들어오는 이들을 신선하게 해줄 수 있도록 솟아 나와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찾으실 수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대로변이든지, 개인 집이든지, 회당이든지, 바닷가든지, 어디에서든지 사람들을 찾으셨다. 그분은 무리들을 가르치시며, 당신에게 데려온 환자들을 고치시며, 온종일 수고하셨다. 또한 잠자고 쉬기 위해 백성들을 집으로 돌아가도록 해산시키고 아침이 되었을 때 새롭게 당신의 사업을 시작하기 위하여 온밤을 기도로 지새우시는 적이 가끔 있었다. 323 오, 형제 자매여, 그대는 그리스도와 진리를 위한 자아 부인과 자아 희생의 실제가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그대는 좀더 하나님께 매어 달려야 하며, 그대 스스로의 재능을 좀더 적게 의지해야 한다. 그대는 하나님 안에 숨어야 할 필요가 있다.

A 형제여 그대는 책망할 때 혹독하고, 개인들에 관하여 스스로의 결론을 형성하는 경향이 있는데, 특별히 그대의 노선과 배치되는 노선을 가진 이들에 대하여 그러하다. 그대의 입장에 비추어서 그들을 가차없이 대하곤 한다. 그대는 그대의 모본자이신 분께서 그러하셨듯이 온유하고, 동정적이고, 예의바르지 못하다. 그대는 부드러운 정신을 갖고, 좀더 예의를 잘 지키고 친절하며, 좀더 사심 없는 자선을 베풀 필요가 있다. 그대는 살아 있는 믿음으로 열렬한 기도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과 더욱 밀접한 교제 관계 가운데로 그대의 영혼이 빠져들도록 해야 한다. 믿음으로 드린 모든 기도를 통해서 탄원자는 낙망시키는 의심과 인간의 정욕을 벗어난다. 기도를 통해서 흑암의 권세와의 싸움에 새롭게 임할 수 있게 하고 인내로 시련들을 견뎌내게 하고, 그리스도의 선한 군사로서 고난을 견딜 수 있게 하는 능력을 얻는다.

그대가 의심과 두려움에 대해 생각하고 믿음을 갖기 이전에 분명히 볼 수 없는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한, 그대의 어려움은 늘어가고 깊어 갈 따름이다. 만일 그대가 스스로의 진상, 곧 무력함을 느끼고 의지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 가운데 하나님께 나온다면, 또한 겸손하게 신뢰하는 기도를 통해서 무한한 지식을 가지신 분, 곧 창조로부터 모든 것을 보시고 당신의 뜻과 말씀으로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께 그대의 부족을 아뢴다면. 그분은 그대의 부르짖음에 주목하실 수 있으며, 주목하실 것이다. 또한 그분은 그대의 마음 속과 그대의 주변 모든 곳에 빛을 비추어 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진지한 기도를 통해서 그대의 영혼은 무한하신 분의 마음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때때로 그대의 구주께서 그대를 동정과 사랑으로 보신다는 괄목할 만한 증거가 전혀 없을지 모르나, 그럴 때에라도 이것은 사실이다. 그대는 그분의 가시적인 접촉을 느끼지 못할 지 모르나, 그분의 손은 사랑과 불쌍히 여기시는 동정을 갖고 그대 위에 임하여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대 모두를 사랑하시며, 풍성하신 구원으로 그대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그것은 그대들 식으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로 되어야 한다. 324 그대들은 진리의 성경 말씀 속에 제시되어 있는 조건들에 응하여야 하며,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보좌가 확실한 것처럼 당신의 몫을 분명하게 성취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보내시는 권면들은 인간 본성에 수치심을 느끼게 하기 때문에, 나의 형제여, 그대는 이러한 견책과 경고를 대항하여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대는 날마다 죽어야 할 필요가 있으며, 날마다 자아에 대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체험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상 중에 내게 주신 빛에 의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노라고 공언하는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 사악함과 기만이 증가하고 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죄를 분별하고 그것을 진영으로부터 제거하는 영적 분별력이 하나님의 백성들 속에서 감소하고 있다. 또한 영적으로 눈머는 일이 그들 위에 신속히 덮치고 있다. 곧은 증언이 소생하여야 하는데, 그렇게 될 때 그것은 부패로부터 교회를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도구들과 더불어 끊임없이 전쟁을 일삼던 이스라엘로부터 그들을 분리시킬 것이다. 잘못은 잘못이라고 불리워져야 마땅하다. 수치스러운 죄들은 제 이름으로 올바로 불리워져야 한다. 하나님의 모든 백성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어린 양의 보혈로 저들의 품성의 옷을 빨아야 한다. 그때에 그들은 참된 빛 가운데서 죄를 보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목전에서 그것이 얼마나 거스리는 것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유혹에 빠져 한 가지 작은 행동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려 보기에 아름답고 먹음직스러운 나무에서 따먹은 짓은 우리의 첫 부모들에게 작은 일처럼 보인다. 범죄자에게 이것은 작은 행동에 불과했지만,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저들의 충성심을 파괴하고 세상을 멸망시킨 저주와 죄악의 홍수가 밀어 닥치도록 했다. 유혹의 순간에 한 가지 과오로부터 결실을 맺는 무서운 결과에 대해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재빠른 발이여! 우리의 유일한 안전은 매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보호를 받는 것이며, 우리의 영적 시야를 소멸시킴으로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는 일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지체하거나 따지지 말고 악에 대하여 영혼의 통로를 닫고 지켜야 한다.

영생을 얻는 데는 노력이 든다. 끈질긴 노력과 쓰라린 징계와 단호한 싸움을 통해서만 우리는 승리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시험의 광야에서 우리를 위하여 승리하신 정복자의 이름을 힘입어 그분께서 정복하신 것처럼 우리가 인내와 단호함으로 정복하게 된다면, 우리는 영원한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 325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대상의 영원한 가치에 적절한 노력, 자아 부정, 인내가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그대는 외형적으로 정죄할 만한 아무것도 볼 수 없다고 해서 과오 가운데 빠져 있는 다른 이들과 그대롤 방어하기 위하여 스스로 동정심을 발휘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보신다. 그분께서는 영혼의 동기와 목적을 읽으신다. 우리를 부르셔서 우리에게 일을 맡겨 주신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그대에게 간구하는데, 그대의 손을 거두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워 주신 사업을 하도록 우리를 내버려 두라. 동정과 긍휼의 말은 정말 이것을 필요로 하는 이들, 곧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들의 죄를, 이스라엘 집에 그 죄를 보여주도록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강권함을 받는 이들을 위하여 아끼라. 이 마지막 시대에 진리와 의보다도 과오와 죄가 더욱 쉽게 받아들여진다. 지금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군사들은 그리스도인 갑옷을 입고 세상에 범람하는 도덕적 흑암을 물리쳐야 한다.

만일 그대들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스스로를 굴복시키고 그분의 은혜가 그대의 교만한 마음을 정복하도록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대 모두에게 소중한 승리를 주실 것이다. 그대들의 자기 의는 하나님께 아무 소용이 없다. 발작적으로 이따금 생각난 듯이 행하거나 성급한 마음에서 행하는 일이 결코 있지 말아야 한다. 몇 번의 미약하고 간헐적인 노력으로는 잘못을 바로잡을 수 없고 품성 속에 개혁을 이룰 수가 없다. 성화는 하루나 한 해 동안의 사업이 아니라 평생의 사업이다. 지속적인 노력과 계속적인 활동 없이 신령한 생애에 발전은 있을 수 없으며, 승리의 면류관을 결코 얻을 수 없다. 우리는 심판을 위하여 일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우리 스스로의 지혜대로 일하고 우리 스스로의 판단을 신뢰하는 것은 안전하지 못하다. 현재 그대들이 소유하고 있는 자기 신뢰의 정신으로는 두 사람 모두 하늘에서 행복을 맛볼 수 없다. 왜냐하면, 그 곳에서는 모두가 심지어 높임받는 천사들까지라도 종속적이기 때문이다. 그대들은 아직도 종속과 순종을 배워야 한다. 그대 두 사람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어야 한다.

A 자매여, 그대 스스로 마음대로 닫을 수 없는 유혹의 문을 그대의 남편에게 열어 주지 않도록 그대는 주의해야 할 것을 나는 보았다. 326 원수가 점령한 다음에 그를 내쫓는 것보다도 그대의 마음 속에 원수를 초청하는 것이 더욱 쉽다. 그대의 교만심은 쉽게 손상당하고 있으며,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군사로서 고난을 견디기 위하여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 열성을 다해 은혜, 신령한 은혜를 구해야 할 필요가 그대에게 있다. 만일 그대가 하나님을 그대의 힘으로 선택한다면, 그분께서 그대를 돕는 분이 되실 것이다. 그대 모두는 하나님께 대한 더욱 큰 헌신을 장려해야 한다. 겸손하게 경성하는 유일의 길은 기도로 경성하는 것이다. 앉아서 쾌락을 즐기고, 스스로의 쾌락과 편의에 마음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은 잠시도 하지 말라. 그리스도의 생애는 우리의 모본이다. 그분은 슬픔의 사람으로 슬픔을 아셨다. 그분은 다치셨으며, 상처를 받으셨다. 그대는 자신의 위치에 대해 너무 잘 만족한다. 그대는 끊임없는 경성이 필요한데 이는 사단이 음흉하게 그대를 속임으로 그대의 마음을 부패시키고, 그대로 하여금 모순과 거대한 흑암 속으로 빠져들어 가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대의 경성은 하나님께 대한 겸손한 신뢰의 정신으로 특징 지워져야 한다. 그것은 교만과 자기 의존적 정신으로 수행될 것이 아니라, 그대의 개인적 약점에 대한 깊은 인식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어린이 같은 신뢰를 통해서이다.

셋째 천사의 기별이 처음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던 때, 신자들의 수효는 적고, 우리가 광신주의자로 몰렸던 때에 비교해 보자면, 현재 셋째 천사의 기별의 진리를 전파하는 것은 수월하고도 유쾌한 과업이다. 기별의 시작과 그 초기 발전 시대에 사업의 책임을 감당한 이들은 투쟁과 압박과 영혼의 슬픔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주야로 그들에게 무거운 짐이 실려 있었다. 그들은 고통과 질병으로 억눌려 있으면서도 휴식이나 편의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시간이 짧음으로 행동이 요구되었고, 일꾼도 극소수에 불과하였다.

협착한 곳을 만나게 될 때, 그들은 자주 눈물을 흘리며 열렬한 기도, 몸부림치는 기도로 온밤을 새우면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으며, 그분의 말씀으로부터 비쳐오는 빛을 간구하였다. 빛이 이르러 오고 구름이 뒤로 쫓겨났을 때 진지하고도 열렬한 탐구자들 위에 얼마나 놀라운 기쁨과 감사에 넘치는 행복이 머물렀던가! 빛에 대한 열렬하고도 굶주린 듯한 부르짖음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감사도 완전하였다. 327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께 대한 감사가 흘러 넘쳐서 며칠간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지금 진리를 전파하기 위하여 나아가는 이들은 그들이 손에 잡을 수 있도록 이미 준비된 것을 갖고 있다. 그들 이전의 현대 진리 일꾼들이 겪었던 것과 같은 곤궁을 그들은 지금 겪을 수 없다. 진리가 밝혀져서 고리들이 연결되어 분명하게 연결된 사슬이 되었다. 이렇게 분명하고도 조화 있게 진리를 이끌어 내는 데는 조심스러운 연구가 필요하였다. 반대, 극도로 쓰디쓰고 단호한 반대를 통해 하나님의 종들은 주님과 그들의 성경에 매달리게 되었다. 하나님께로부터 이르러 온 빛은 그들에게 정말 소중하였다.

어떤 이들이 올바른 것을 분별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원수를 그토록 오랫동안 소중히 여겨 왔기 때문임을 나는 보았다. 그는 그들이 그 능력을 식별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에 그들 곁에서 일해 왔다. 올바른 것을 옹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때가 올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이 어떤 때는 힘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인내하지 못한다면, 풍요한 상급을 잃게 될 것임을 나는 보아 왔다. 하나님의 큰 밭에서 일하는 충성된 농부로서 우리는 눈물로 씨를 뿌리고 인내하며 소망을 품어야 한다. 우리는 곤란과 슬픔을 당해야 한다. 유혹과 피곤한 수고로 영혼은 괴로움을 겪을 것이나, 우리는 기쁨으로 거두기 위하여 믿음 가운데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 최후의 승리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위기와 위험의 때, 곧 원수를 공격하기 위하여 힘과 용기와 모든 영향력을 필요로 하는 때에 그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는 인물들을 결코 사용하지 않으실 것이다. 오류와 싸우기 위하여, 또한 옳은 것을 옹호하기 위하여 충성된 군사로 굳건히 서서 정사와 권세, 이 세상의 어두움의 주관자들 높은 곳의 영적 사악함과 더불어 싸우는 자들은 각자가 주님으로부터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 25:21)라는 칭찬을 듣게 될 것이다.

이 시대보다도 충성스러운 경고와 견책, 세밀하고 정확한 취급이 더크게 필요로 되었던 때는 결코 없다. 사단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고 큰 권세를 갖고 내려왔다. 그는 세상을 기쁘게 하는 우화들로 범람시키고 있으며,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에게 부드러운 것을 말해 주기를 좋아한다. 328 죄와 사악함이 두렵게 여겨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백성은 침투해 들어오는 흑암을 물리치기 위하여 좀더 굳건하고 결정적인 노력을 기울여야만 할 것을 나는 보았다. 하나님의 성령의 면밀한 활동이 이전 어느 때보다도 지금 훨씬 더 필요하다. 미련을 떨쳐 버려야 한다. 우리가 저항하지 않는 한 우리의 멸망을 초래하게 될 무기력 가운데서 우리는 일어나야 한다. 사단은 강하고 지배적인 영향력을 마음들을 향해서 행사한다. 설교자들과 백성들은 흑암의 세력 편에 서 있는 것으로 발견될 위험 가운데 빠져 있다. 현재 중간 지대와 같은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옳은 편에 결정적으로 속하든지, 그릇된 편에 결정적으로 속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마 12:30)고 말씀하셨다.

잘못을 범하는 자들에 대하여 동조하는 이들이 언제나 발견된다. 사단은 하늘에서 동조자들을 가졌으며, 많은 숫자의 천사들을 자기편에 끌어들였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하늘의 천사들이 한편에 있었으며 사단이 다른편에 있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능력과 위엄에도 불구하고, 천사들은 싫어하게 되었다. 사단의 미묘한 암시가 효과를 발휘하였으며,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이 그들의 원수이며, 사단이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자라고 믿는 지점까지 실제로 이르게 되었다. 현재 사단은 동일한 능력과 동일한 지배력을 마음들 위에 행사하고 있는데, 그것은 단련과 경험을 통해 백 배나 강화되었다. 오늘날의 남녀들이 사단의 미묘한 암시와 흉계를 통해서 미혹을 당하고, 눈이 멀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모른다. 하나님의 사업에 대하여 의심과 의문을 품으므로, 불신과 잔인한 시기심을 품음으로, 그들은 완벽한 기만을 위하여 스스로를 준비시키고 있다. 그들은 용감하게 그들의 오류에 대하여 말하고, 그들의 죄를 책망하는 이들을 대항하여 쓰라린 감정을 품고 일어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신실하게 오류와 죄를 대처하기 위해 나선 이들, 죄를 그 이름 그대로 부르는 이들은, 감정상의 수많은 고통을 감수하며 유쾌하지 않은 의무를 스스로 이행한다. 그러나 그들은 극소수의 동정을 얻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무시를 당한다. 동조자들은 그릇된 편에 있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실패로 돌아가게 하기 위하여 사단의 목적들을 수행하고 있다.

329 견책은 언제나 인간의 본성을 상하게 하기 마련이다. 그 형제들에 대하여 현명하지 못한 동정을 함으로 말미암아 멸망당한 영혼들이 많이 있다. 왜냐하면 형제들이 그들에 대하여 동정하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이 진실로 학대를 당했으며, 견책자가 전적으로 그릇되고 나쁜 정신을 품었다고 생각한다. 시온의 죄인들에게 유일한 소망은 그들의 잘못을 온전하게 보고 고백하며, 그것들을 내버리는 것이다. 견책자가 부분적으로 그릇되었으며, 견책을 받은 자가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견책의 예리한 칼날을 파괴시키는 일 속으로 걸음을 옮기는 이들은 원수를 기쁘게 한다. 견책들이 전혀 효과를 거둘 수 없게 하기 위하여 사단이 고안할 수 있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그의 의도를 성취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은 가혹하다” 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경고의 기별을 갖추어 보내신 이들에 대하여 비난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함으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를 갈망하시는 죄인들의 영혼에 대하여, 곧 그분께서 사랑하시기 때문에, 저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그 영혼을 겸비하게 하고 죄들을 떨쳐 버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제재하시는 이들에 대하여 책임을 지게 된다. 이 거짓 동정자들은 저들이 행한 사망의 사업에 대해 주님과 더불어 낱낱이 계산하게 될 것이다.

진리를 믿는다고 공언하면서도 자신의 위험에 대해서는 맹목인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마음 속에 죄악을 품고 그 생애 속에서 실천한다. 그들의 친구들은 그 마음을 읽을 수 없으며, 자주 그러한 인물들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블랙 호크(Black Hawk), 콜로라도(Colorado) 1873년 8월 12일.

백일몽

사랑하는 E 자매에게: 나는 그대에게 철저한 회심이 필요한 것을 보았다. 그대는 진리를 받아들였으나, 진리가 가져다 주는 축복들을 받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그대가 그 변화시키는 능력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대의 마음 속에 은혜의 철저한 사업을 좀더 많이 소유하지 않는 한 또한 그대의 의지가 그리스도의 마음과 의지에 일치되지 않는한, 그대는 두 세상을 모두 상실할 위험 가운데 빠져 있다.

진실되고, 겸손하고, 십자가를 짊어진 신자가 분명히 받게 될 평화와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바로 그 길 가운데 그대는 현재 서 있지 아니하다. 330 그대는 그대의 아버지의 품성을 닮았다. 그대에게는 이기적인 성질이 있다. 그대는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그대는 주변 사람들의 행복과는 관계없이 어떻게 하면 자기를 즐겁게 하고 자기에게 가장 좋게 여겨지는 것들을 행할 것인지, 주로 그대 자신에 관해 생각한다. 그대는 행복을 추구하는 일에 실수를 범하고 있다. 만일 그대가 행복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의무를 수행하고 자아를 잊는 데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대의 생각이 자기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집중되고 있는 한 그대는 행복해질 수 없다.

그대는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행하도록 남겨 주신 일을 기쁨으로 참여하는 일에 등한히 하였다. 그대는 그대의 바로 앞길에 놓여져 있는 평범하고 단순한 의무들을 간과한다. 그대는 좀더 자신의 기호에 맞다고 여겨지는 일, 인생의 부족함, 영혼의 메마름을 충족시켜 줄 어떤 위대한 일을 찾아 그대의 마음은 방황하고 있다. 그대는 이 일에 분명히 실패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행하도록 남겨 주신 일은 바로 그대의 주변에 있는 매일의 의무이며, 또한 그대 앞에 놓여져 있는 단순한 의무들을 손으로만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행하되 그대가 하고 있는 일에 마음을 쏟으므로 기계적이 아니라 즐겁게 단순하고 가정적인 생활 속의 의무들을 이행하는 것이다.

그대는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연구하지 않는다. 그대의 눈은 그대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식별하기 위해 열려져 있지 않으며, 그대의 부모와 가족들에게 보일 수 있는 일상 생활의 예절들에 대해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대는 가족으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키는 것이 하나의 미덕인 것처럼 지나치게 생각한다. 또한 그대는 불행한 생각과 불행한 체험들에 마음을 배회하도록 함으로 엉겅퀴들을 모으고, 그것들과 더불어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는 데서 만족을 느낀다. 그대는 백일몽의 습관에 빠져 있는데, 그것은 깨뜨려져야 한다. 그대는 의무들을 행하지 않은 채로 내버려둔다. 다른 이들로 하여금 쉴 수 있도록 마땅히 그대가 행해야 할 일을 스스로 불행한 생각에 빠져드는 쾌락 때문에 그대는 등한히 하고 있다. 그대는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고 있다. 일어나 의무를 행하라! 일어나서 그대가 등한히해 온 의무를 행하라. 미래의 신실함을 통해 과거를 속량하라. 그대 앞에 있는 일에 착수하라. 그리하면 의무들을 성실하게 실행함으로 그대는 자아에 대해 잊게 될것이며, 생각에 잠겨 슬픔 속에 빠짐으로 불쾌하고 불행하게 느낄만한 시간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331 그대는 그리스도인 경험에 있어서 거의 모든 것을 배워야 한다. 만일 그대가 영생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대는 그대의 능력껏, 또한 그대에게 마땅한 만큼 신속하게 향상하고 있지 않다. 그대는 현재 하늘을 위하여 품성을 형성하거나 혹은 그대로 하여금 하늘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품성을 형성하고 있다. 그대의 마음과 생각은 자기 자신에 너무 집착해 있기 때문에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을 진정으로 따르는 자가 되기 위하여 그대가 해야만 할 것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대는 그대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 주고 축복이 되어 줄 수 있는 특권을 가졌지만 오히려 가정에서 구름과 그늘의 역할을 해 왔다. 그대는 토라지기 잘하고, 안달을 하고, 비참하게 생각하는데, 사실상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대의 어머니의 짐을 덜어 주고 그대의 부모들을 가능한 한 모든 면에서 축복해 주기 위해 그대가 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 그대는 깨어 있지 않았다. 그대는 스스로에게 생각을 집중시키고 있으면서 그대의 부모와 자매들이 그대를 행복하게 해주고 도와주기를 기대하였다. 그대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일에 진정으로 앞서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대는 스스로를 속여 왔다.

우리 신앙에 관해 지성적인 이유를 남들에게 제시해 줄 수 없으면서도 그대는 우리와 신앙이 다른 이들로 더불어 대화하는 일에 기꺼이 뛰어 들었다. 이 점에 있어서 그대는 제대로 진리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유익을 끼치는 것보다도 진리의 사업에 더 많은 해를 끼치고 있다. 만일 그대가 우리의 신앙을 옹호하는 일에 말을 좀더 줄이고 그대의 성경을 훨씬 많이 연구할 뿐만 아니라 그대의 심령과 생애 속에 진리가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증거할 만한 성품을 갖게 된다면, 그대는 그토록 많은 면에서 진실성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말만 하는 것보다도 훨씬 큰 유익을 끼치게 될 것이다.

만일 그대가 당신 자신을 위하여 안일과 쾌락과 오락을 추구하지 아니하시고 언제나 다른 이들에게 선을 베풀며 축복하기 위하여 애쓰신 자아 부정과 자아 희생의 우리 구속주께서 보여 주신 모본을 따라가기에 유의한다면, 그대는 그대의 감화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을 끼치게 될 것이다. 332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또는 우리가 처하는 생애의 어떠한 관계를 막론하고 사람들과 어울릴 때에는, 그 범위가 크든 작든 우리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주님을 시인할 수 있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주님을 부인할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의 말을 통해서, 즉 남을 헐뜯음으로, 어리석은 농담과 익살을 늘어놓음으로, 무익하고 불친절한 말을 함으로, 진리를 얼버무리거나 진리와 반대되는 말을 함으로 그분을 부인할 수 있다. 우리의 언어를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 계시지 않음을 고백하게 된다. 우리는 품성을 통하여, 즉 안일을 사랑함으로, 또한 우리가 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반드시 감당해야 할 생애의 짐과 의무를 회피함으로, 죄된 쾌락을 사랑함으로 그분을 부인할 수 있다. 또한, 의복에 대한 자랑을 통하여나 세상과 일치함으로, 그리고 외모에 어그러진 행동을 함으로 그리스도를 부인할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견을 존중함으로 그리고 자아를 유지하고 정당화시키고자 노력함으로 그분을 부인할 수 있다. 우리는 또한 우리의 마음을 상사병 같은 감상주의로 기울어지게 하고, 또한 가상적인 시련과 어려운 처지에 대해 마음을 쏟음으로 그분을 부인할 수도 있다.

그리스도의 마음과 정신이 마음 속에 거하지 않는 한, 아무도 진정으로 세상 사람들 앞에 그리스도를 고백할 수 없다.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나누어주는 일은 불가능하다. 대화와 품행은 내부에 있는 은혜와 진리를 진실되게 눈에 보이도록 표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마음이 거룩하고 온순하며 겸손하다면 그 열매가 외부로 나타날 것이며, 이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고백이 될 것이다. 말과 공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자매여, 그대는 그 이상의 무엇을 가져야만 한다. 그대는 자신을 속이고 있다. 그대의 정신, 그대의 품성. 그리고 그대의 행동은 온유와 극기와 사랑의 정신을 나타내고 있지 않다. 말과 공언을 통하여 겸손과 사랑을 크게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매일의 행동이 제어되지 않는다면, 그대는 하늘 선물을 나누어 받은 자가 아니다. 그대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지 않았다. 그대는 그분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 그대 자신의 의지와 쾌락을 굴복시키지 않았다.

그대는 우울한 것에 대하여 생각함으로 시련을 자신에게로 모아들임으로, 쓸데없는 걱정을 사서 함으로, 죄를 짓고 있으며 그대의 구주를 부인하고 있다. 그대는 내일의 걱정을 오늘 미리 함으로 그대 자신의 마음을 쓰라리게 하며, 시련을 만들어 냄으로 그대 주위의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구름이 덮이게 한다. 선을 행하도록, 또한 선한 행실에 풍성해지도록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제공하신 귀한 은혜의 시간을. 그대는 매우 어리석게도 불쾌한 생각을 하며 공중 누각을 세우는 일에 사용하고 있다. 333 그대는 아무런 안위나 행복을 가져오지 못할 주제 위를 그대의 상상력이 달리도록 용납한다. 그대의 백일몽은 하나님께 속한 사물에 있어서의 건전하고 건강한 지성적 경험을 얻는 일과 좀더 나은 생활을 위한 도덕적 적합성을 얻는 일을 직접적으로 방해한다.

심령 속에 받아들여진 하나님의 진리는 그대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게 해준다. 진리를 믿고 순종함으로, 그대는 오늘의 의무와 시련을 감당하기에 충분한 은혜를 받게 될 것이다. 내일을 위한 은혜는 그대에게 필요하지 않다. 오늘을 위하여 승리하라. 오늘을 위하여 자아를 부정하라. 오늘을 위하여 깨어 기도하라. 오늘을 위하여 하나님 안에서의 승리를 거두라 우리의 주위 환경들, 즉 우리 주위에서 매일 일어나는 변화들과 모든 것을 식별하고 입증하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이들은 하루하루 우리에게 우리의 의무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가르쳐주기에 충분하다. 그대에게 아무런 유익도 끼치지 못할 생각의 통로로 마음이 흐르도록 허용하는 대신에, 그대는 매일 성경을 연구하고 지금은 그대에게 성가시게 보이나 누군가가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날마다의 생애의 의무를 행하여야 한다.

천연계의 아름다움은 끊임없이 우리의 감각에 호소하고 있다. 열려진 마음은, 하나님의 손으로 이루신 작품들 중에 나타난 그분의 사랑과 영광으로 감명을 받을 수 있다. 주의 깊게 듣는 귀는, 천연계의 사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기별을 듣고 이해할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전에 제시하신 천연계의 여러 가지 사물들과 햇살 가운데에는 교훈이 들어 있다. 푸른 초원, 높은 나무들, 새싹과 꽃들, 떠다니는 구름, 떨어지는 빗방울, 졸졸 흐르는 실개천, 하늘의 해, 달, 별들,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주의를 끌며, 우리로 하여금 명상에 잠기게 하고 이 모든 것들을 지으신 하나님과 친숙해지게 한다. 천연계의 여러 가지 사물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들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그들의 창조주의 뜻에 순종한다. 그들은 결코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으며, 그분의 뜻의 어떠한 암시에도 순종하기를 거절하지 않는다. 타락한 인간들만이 그들의 창조주에게 온전히 순종하기를 거절한다. 334 그들의 말과 행동은 하나님과 일치하지 않으며 그분의 정부의 원칙에 반대된다.

그대의 생각은 고상하지 않다. 천연계 속에는 그대로 하여금 그대의 창조자를 사랑하고 찬양하도록 고무시킬 만한 것이 많이 있다. 좌절된 소망과 비뚤어진 상상력 속에 갇혀 지내지 않도록 할 만한 생각거리들이 있다. 불신자들과 말하기를 서둘지 말며 진리를 반대하는 이들과 논쟁 속에 들어가지 말도록 하라. 이는 그대가 그렇게 할만큼 성경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대는 성경 연구를 등한히 하였다. 그대는 생애의 온유함과 일상적 의무를 성실히 수행함으로 진리를 가장 잘 추천할 수 있다. 만일 그대가 의식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하여 엄격하고, 그대가 위해서 일하는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과 해야만 할 일을 충실하게 잘 살펴본다면, 그대는 진리를 더욱 잘 대변하게 될 것이다. 진리를 추천할 수 있는 최선책은 논쟁이나 대담을 통해서가 아니라 날마다 진리를 생활화하는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일관성 있고, 온유하고 겸손한 생애를 사는 것이다.

우리의 환경에 대해서 불만을 갖거나 미천하고 별로 중요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여건들 가운데 처한 것에 대해 불만스러워 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사적이고 미천한 의무들은 그대의 구미에 맞지 않는다. 그대는 쉼이 없고, 불편하고, 불만족스럽다. 이 모든 것은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대는 다른 이들이 그대에 대해서 그러는 것보다도 스스로에 대해서 더욱 많이 생각한다. 그대는 그대가 부모,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것보다도 자기 자신을 더욱 많이 사랑하며, 하나님보다도 그대를 더욱 많이 사랑한다. 그대는 유쾌한 일을 원하며, 그런 일이 그대에게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대는 하나님께서 그대를 처하게 하셔서 그대를 입증하시고 시험하심으로써 더욱 높은 지위에 오를 만한 재능을 갖춘 적임자임을 그대가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미천한 행동 영역 안에서 일하며 기다리고자 하지 않는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온유한 정신은 불만의 정신이 아니라, 그 정반대이다.

계속하여 투덜대며 불평하면서도 그리스도를 믿노라 공언하며, 행복과 쾌활한 얼굴을 죄라고 생각하는 듯한 사람들은 신앙의 진정한 면모는 하나도 갖추지 못한 자들이다. 335 천연계의 아름다운 경관을 죽은 그림보듯 하는 자들, 살아 있는 꽃을 모으기보다는 죽은 낙엽을 보고자 하는 자들, 천연계가 속삭여 주는 말들 가운데서 특히 모든 우울한 것들을 골라 그 가운데서 비통한 쾌락을 취하는 자들, 생생한 푸른 나무로 덮인 골짜기와, 초목을 옷 입은 장엄한 산봉우리의 아름다움을 보지 않는 자들, 기울여 듣는 귀에는 달콤하고 음악적인 목소리, 천연계가 그들에게 전하는 기쁨의 목소리에 대하여 그들의 오관을 막아 버리는 자들-이러한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아니다. 치유의 능력을 가진 빛으로 그들의 마음에 떠오르는 의의 태양되신 그리스도의 광채와 축복을 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빛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고 흑암을 모으고 있다.

나의 젊은 자매여, 그대는 가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대는 어떤 면에서든지 축복을 감지하거나 인식할 수 없다. 그대는 존재하지 않는 시련과 고난에 대해 상상하며, 약간의 성가신 일을 엄청난 고난으로 과장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축복하신 온유가 아니다. 그것은 성화되지 않고 반역적이고, 불효적인 불만족이다. 온유는 고귀한 덕성으로서 조용히 고난을 당하고자 하며, 시련을 견디고자 하는 것이다. 온유는 오래참고 어떤 환경 아래에서도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온유는 언제나 감사하고 나름대로 행복의 노래를 지어내고, 하나님을 향해 심령의 가락을 지어낸다. 온유는 실망과 그릇된 것을 참아내고, 보복하지 않는다. 온유는 조용히 부루퉁하게 있지 않는다. 침울한 기질은 온유와 정반대가 된다. 이것을 통해서는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와 고통을 줄 뿐이며, 그 자체로서는 즐거움이 전혀 없다.

그대는 그리스도의 학교에 막 들어갔다. 그대는 배워야 할 것이 거의 모두이다. 그대는 현재 사치스럽게 옷을 입지 않지만, 외형적 교만을 소유하고 있다. 그대는 조금 덜 단순하게 옷을 입기를 원한다. 그대는 마땅한 그 이상으로 옷에 관심을 쏟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그리스도께서 부과해 주시는 멍에에 그대의 목을 맡기라. 그러면 그대는 이러한 굴복 속에서 그대 스스로의 길을 좇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얻고자 노력해 왔던 바로 그 행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336 만일 그대가 그대의 생각까지도 그리스도의 뜻에 굴복시킨다면, 그대는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그대는 결코 지체하지 말아야 하며, 면밀하게 그대의 마음을 살피고, 날마다 자아에 대해 죽어야 한다. 그대는 “어떻게 내 스스로의 행동을 다스리고 나의 내적 감정들을 지배할 수 있는가?” 라고 질문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고백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도우심이 없이 상당한 분량만큼 자신의 정신을 다스린다. 그들은 절제를 수련한다. 하나님께로부터 능력과 은혜를 얻을 수 있음을 알지만, 성령님의 은혜를 나타내지 않고 이들에게 이것은 진실로 하나의 견책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본이시다. 그분은 온유하고 겸손하셨다. 그분께 배우라. 그분의 모본을 모방하라.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과오가 없으셨다. 만일 우리가 그분의 오른편에 앉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이러한 완전성을 목표로 해야 하며, 그분께서 이기신 것처럼 이겨야 한다.

안전하게 결혼 관계 속에 들어가기 전에 엄격하게 훈련하고 단호하게 지배해야 할 필요가 있는 특수한 성격이 그대에게 있다. 그러므로 품성적 결점을 정복할 때까지 결혼에 대한 생각을 멀리하라. 왜냐하면 그대는 행복한 아내가 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조직적으로 가사일을 하는 법에 대해 배우기를 등한히 하였다. 그대는 근면한 습관을 가져야 할 필요에 대해 깨닫지 못했다. 유용한 노동을 즐기는 습관은 한번 형성하기만 하면 결코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 다음에 그대는 인생의 어떤 환경에도 대처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게 되며, 위치에 합당한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 그대는 활동을 사랑하기를 배우게 될 것이다. 만일 그대가 유용한 노동을 즐긴다면, 그대의 마음은 일감으로 채워져서 몽상에 잠길 만한 시간을 발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유용한 노동의 지식은 그대의 분노하고 불만족한 마음에 활력과 능력, 그리고 절도 있는 위엄을 나누어 줄 것이며, 그것을 통하여 그대는 존경을 받게 될 것이다. 그대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거의 알고 있지 못하다. 그대는 스스로의 마음의 기만을 모르고 있다. 만물보다 기만적이고, 절망적으로 사악한 것이 마음이다. 그대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살피고, 명상과 기도의 시간을 가지라. 만일 그대가 품성적 결점을 발견하여 진정한 열성으로 그대의 과오들을 고치지 않는 한, 그대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다.

337 그대는 젊은 남성들에 대하여 사랑하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그대는 그들의 정중함을 그대에 대한 특별한 관심으로 해석한다. 그대는 그대의 실제적인 모습보다도 훨씬 더 그대가 가치가 있다고 자만하고 있다. 그대의 대화는 유익을 주고, 고결하게 하고, 향상시키는 주제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나의 사랑하는 아이여, 그대는 솔직하고 진지한 습관을 계발시키고 있지 않다. 그대의 마음은 올바르지 못하다. 그대의 감화는 청년들에게 유익하지 못한데, 이는 그대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대는 그리스도인 생활에 큰 진보를 했다고 자만하고 있다.

그대의 아버지의 집에서 개혁이 시작되어야 한다. 그대는 그대의 아버지의 성격적 특질을 갖고 있다. 그대는 그의 과오와 그의 극단적인 행동들을 피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만일 그대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그대는 가정에서 행해야 할 중요한 사업을 보게 될 것이다. 모든 가정은 영원한 학교가 될 수 있다. 언니들은 가정의 동생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형들의 모본을 목격하고 있는 동생들은 이따금 반복되는 계율보다도 모방의 원리에 따라서 더욱 많이 이끌려가게 될 것이다. 가장 나이가 많은 딸은 수고스러운 수많은 짐을 나누어지는 일에 어머니를 도와주는 일을 자기에게 지워진 그리스도인 의무로 느껴야 한다. 가족들 중 누군가의 어깨가 무겁고 힘든 짐을 짊어지느라 휘청거리고 있는 때에, 침상에서, 잠자면서, 혹은 서글픈 공상을 하면서 보낸 시간은 잃어버린 시간보다도 더 나쁘다.

나이 많은 딸들은 가족들 중에서 동생들을 교육하는 데 조력할 수 있다. 여기 그대를 위한 탁월한 기회가 있는데, 친절하고 부지런하게, 또한 여호와를 앞에 모시고 그분을 경외하는 가운데, 그대보다도 덜 발전한 이들을 가르쳐야 한다. 그대는 여기에서 그리스도인 덕성들을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학교 중 하나를 갖게 될 것이다. 그대는 어린이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사실상, 그대는 끈질기고, 열렬하고, 참을성 있는 노력이 필요되는 것은 어느 것이나 사랑하지 않는다. 그대는 지속적인 적용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대는 변화와 다양성을 사랑하며, 그대를 만족시키고 행복하게 할 만한 어떤 것을 끊임없이 찾고 있다. 그대는 독학이 필요하며, 미래의 어느 때보다도 지금 이 일을 훨씬 더 잘할 수 있다. 그대는 거의 어떤 형태로든지 그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하나님께서 지체함이 없이 일하도록 그대를 도와주시기를 바란다. 338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왕국으로 들어오실 때, 오직 순결한 자, 선한 자, 거룩한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열렬하고도 인내하는 노력 없이 하늘을 얻을 수 없다. 하늘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지금까지 그대는 목적 없이 그리고 거의 쓸모 없이 인생을 살아왔다. 지금 그대에게는 시간을 속량할 수 있는 기회 어린 양의 보혈로 그대의 품성의 옷을 빨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만일 그대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그분께서 그대를 도와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의란 전혀 가치가 없다.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서 그대는 최후의 승리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만일에 그대가 영원한 구원으로 구원받게 될 이들 중에 속할 수 있다면, 하늘은 아주 값싼 곳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