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보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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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장-견책을 멸시하는 자들*

70장 - 견책을 멸시하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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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 사도 바울은, 여행 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한 경험이 말세를 맞을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자들을 위하여 기록되었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히브리 인들이 당한 위험보다 우리가 당하는 위험이 덜하지 않고 오히려 더하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 기록된 것처럼, 앞으로도 질투와 불평에 대한 유혹이 있을 것이요, 대담한 반역이 일어날 것이다. 죄악과 잘못에 대한 책망을 대항하여 일어나는 정신이 언제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견책의 음성이 잠잠해져야 하겠는가?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백성들의 잘못과 범람하는 죄악들을 견책하기를 두려워하는 우리 나라의 여러 다른 교단과 아무 다를 바가 없는 위치에 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의의 교역자로 세우신 자들은 백성들의 죄악을 책망할 엄숙한 책임을 지고 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디도에게 명하였다.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딛 2:15). 담대히 죄를 견책하는 자를 멸시하는 자들이 항상 있을 것이나, 견책을 하지 않으면 안 될때가 있다. 바울은 디도에게,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믿음 안에 견고히 서도록 엄한 책망을 할 것을 지시한다.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지고 교회로 모여든 남녀들은 독특한 성격과 결점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드러날 때, 그들에게는 견책이 필요된다. 중요한 위치에 놓여진 자들이 전혀 견책이나 책망을 받지 않는다면, 이내 하나님의 명예를 크게 손상시킬 비도덕적 문제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 견책해야 할까? 사도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 견책을 필요로 하는 자 앞에 원칙이 제시되어야 하나, 하나님의 백성들의 잘못은 결코 부주의하게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343 견책을 멸시하고 항상 그것에 대항하여 감정을 내는 남녀들이 있을 것이다. 잘못을 지적당하는 것은 유쾌한 일은 아니다. 견책이 필요한 거의 모든 경우마다, 주님의 성령께서 슬픔을 당하시며 하나님의 사업이 수치를 당한다는 사실을 완전히 무시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자들은 개인 감정이 상했다는 이유로, 견책을 받아 마땅한 자들을 동정할 것이다. 이 모든 거룩하지 못한 동정으로 인해, 동정자들은 견책을 받은 자의 죄악에 동참하는 자리에 나아간다. 견책을 받은 자가 자신의 잘못을 느낄 수 있는 위치에 놓여진다면, 십중 팔구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일에 도움을 받을 것이요 개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참견하기를 좋아하며 거룩하지 못한 동정자들은 견책자의 동기와 주어진 견책의 성격에 잘못된 의미를 부여하며, 또한 책망받은 자를 동정함으로 그로 하여금 정말로 자신이 학대를 받았다고 생각하게 한다. 그리하여, 책망받은 자의 감정은 단지 의무를 이행한 견책자에게 반항하여 일어나게 된다. 하나님께 대한 책임감을 느끼면서 이 불유쾌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자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이 당신의 뜻을 행함에 있어서 언제나 진지하기를 요구하신다. 디모데에게 부탁하는 말을 통하여, 사도는 그에게,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고 권고한다.

히브리 인들은 주님의 지시와 제지에 기꺼이 순복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그들의 마음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며, 그들 자신의 판단에 의해 지배를 받기를 원하였으며, 자신의 방법대로 행하기를 바랐다. 만일, 그들이 이 일을 행하도록 자유로이 방치되었다면, 모세를 향한 불평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제한을 받을 때 그것을 참지 못했다

행동과 판단에 있어서의 통일성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훈련을 받아, 행동에 있어서 조화를 이루게 되어 그들이 같은 견해를 가지며 같은 마음이 되고 같은 판단을 내리게 되기를 바라신다. 344 이러한 상태가 되기 위하여는 많은 일들이 성취되어야 한다. 육욕적인 마음은 굴복되고 변화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항상 살아 있는 증언이 있도록 계획하신다. 책망하고 교훈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며, 어떤 이들은 경우에 따라 심한 책망을 받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오, 나는 너무나 감정이 예민하여 조그마한 비난도 감당할 수 없다!” 고 변명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만일 이러한 사람들이 정확하게 자신의 경우를 표현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할 것이다. “나는 너무 고집스럽고 자부심이 강하고 교만하여서 남의 명령을 받지 않을 것이며 책망을 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인 판단의 권리를 요구한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믿고 말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개성을 굴복하도록 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누가 개인의 자주권을 행사할 한계를 정할 올바른 판단자가 될 수 있겠는가?

베드로는 그의 형제들에게 권면한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 5:5). 사도 바울 역시 빌립보 교회의 형제들에게 하나가 되고 겸손하기를 권면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1-5). 바울은 다시 형제들에게 권면한다.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롬 12:9, 10) 에베소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바울은 말한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21)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는 우리에게 기만의 큰 위험을 보여 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악적인 본성이나 용서의 은혜를 느끼지 못한다. 345 그들은 그들의 본성적 어두움에 처해 있으며, 유혹과 큰 기만에 굴복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행위가 하나님께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에 크게 만족하고 있다. 이러한 자들은 항상 성령의 인도를 거스릴 것인데, 특히 책망에 대하여 그렇게 할 것이다. 그들은 간섭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간혹 그들은 이기적인 두려움이나 선한 목적을 가지며 근심스러운 마음이나 죄책감을 가지지만, 영원한 반석에 고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깊은 경험을 가지지 못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분명한 증언의 필요를 결코 깨닫지 못한다. 그리스도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처럼 그들도 빛 가운데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죄는 그들에게 심히 악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큰 빛을 받아 특별한 각성을 하고 하나님의 영의 역사에 대한 진정한 경험을 하였으나 사단의 다양한 유혹에 굴복당한 자들도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빛을 감사치 않는다. 그들은 성령께서 발하시는 경고와 책망에 유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정죄 아래 있다. 이들은 솔직한 증언이 그들을 정죄하기 때문에 항상 그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완전히 서로 연합하며 동일한 마음을 가지고 동일한 판단을 내리는 완전한 통일체가 되도록 계획하신다. 이 일은 교회 내에 명백하고 단도 직입적이며 산 증언이 없이는 성취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하늘 아버지와 하나이신 것처럼, 그분의 제자들이 하나가 되는 것이 그리스도의 기도였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 17: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