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 1

본문보기

48 주의 깊고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는 구주께서 나타나실 것으로 기대한 시간*을 향하여 접근해 갔다. 엄숙한 열성으로, 우리는 한 백성으로서 그분께서 오실 때 맞이할 준비를 이루기 위하여 생애를 정결케 하고자 애를 썼다. 목사들과 교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포틀랜드 시에 있는 베토벤 홀은 밤마다 군중이 몰려왔다. 특별히 일요일에는 큰 회중이 모였다. 스토크먼 목사는 깊은 경건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그는 건강이 좋지 못했지만 일단 사람들 앞에 서면 육체적 연약함에서 떠난 것처럼 보였고, 그의 얼굴은 그가 거룩한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함으로 광채가 났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감명을 준 그의 말에는, 엄숙하고 마음을 살피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는 때때로,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시는 구주를 영접할 때까지 살고 싶다는 강력한 열망을 나타냈다. 그의 봉사활동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은 많은 죄인들을 각성시켜, 그들을 그리스도의 우리 안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집회들은 그 도시의 여러 지역에 있는 개인 주택에서 여전히 열렸으며, 가장 좋은 결과를 내게 되었다. 49 신자들은 친구와 친척들을 위하여 활동하도록 격려를 받았으며, 날마다 회개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었다.

온갖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 베토벤 홀에서 열리는 집회에 몰려왔다. 부자와 가난한 자, 높은 자와 낮은 자, 목사들과 평신도들이 모두 여러가지 이유로 그들 스스로 재림의 교리를 듣고자 열망했다. 많은 사람들이 왔지만, 설 자리를 찾지 못하여 실망한 채 돌아갔다. 집회의 순서는 단순했다. 대개 짤막하고 요점이 분명한 설교를 한 후, 일반적 권면을 하도록 자유가 주어졌다. 일반적으로, 그처럼 많은 군중에 비하여, 가장 완전한 정숙이 있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이 그들의 믿음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동안, 반대의 정신이 일어나지 않게 제지하셨다. 때때로 진리를 전하는 자들은 연약하였지만, 하나님의 영은 그분의 진리에 무게와 능력을 더하셨다. 거룩한 천사들의 임재를 집회에서 느끼게 되었고, 적은 신자들로 이루어진 단체에 날마다 가담하는 사람들이 증가하였다.

한번은, 스토크먼 목사가 설교하고 있을 때, 전에 이 이야기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 크리스찬 침례교에 속한 브라운 목사가 앞 좌석에 앉아서 열렬한 관심으로 그 설교를 듣고 있었다. 그는 크게 감동하였는데, 갑자기 얼굴이 죽은 사람처럼 창백해지고, 앉아 있는 의자에서 비틀거렸다. 마루에 넘어지려는 찰나에, 스토크먼 목사가 그의 팔을 붙잡아 의자 뒤에 있는 소파에 눕혔다. 그는 그 곳에서 설교가 끝나도록 힘없이 누워 있었다.

그는 일어났지만,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 그러나, 그 얼굴은 의의 태양 되시는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빛으로 빛나고 있었고, 그는 매우 인상 깊은 간증을 하게 되었다. 그는 하늘에서부터 거룩한 기름 부음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그는 평소에, 흥분에서 완전히 벗어난 진지한 태도로 말을 느리게 하였다. 이 때, 그가 엄숙하고 정중한 말로 죄인들과 동료 목사들에게 불신과 편견과 냉랭한 태도를 버리고 고상한 베뢰아 사람들처럼 거룩한 말씀을 상고하되 그 말씀이 과연 진리인지 확인하기 위하여 성경절을 서로 비교하면서 연구하라고 경고할 때, 그의 말에는 새로운 능력이 따랐다. 50 그는 참석한 목사들에게, 스토크먼 목사가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던 엄숙한 문제를 제시할 때 사용한 직접적이고 엄격한 태도 때문에 감정이 상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그는 말했다. “우리는 사람들과 접촉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죄인들이 구원받기에 너무 늦어지기 전에 죄를 깨닫고 진정으로 회개하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탄식할까 두렵습니다. 목회 사업에 종사하는 형제들은 우리의 화살이 그들을 맞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우리와 백성들 사이에서 비켜서서 우리로 하여금 죄인들의 마음에 접촉하게 해주지 않겠습니까? 만일 그들이 스스로를 우리가 겨누는 표적으로 만든다면, 그들이 받는 상처에 대하여 불평할 이유가 없습니다. 형제들이여, 비켜서십시오. 그러면, 그대들은 화살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너무도 단순하고 솔직하게 피력하였으므로, 이전에 크게 편견을 가졌던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렸다. 거룩한 찬양의 마음으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고문으로 택하였다는 것과, 의심이 사라지고 믿음이 확고해졌다는 사실을 담대하게 선언했다. 그는 열렬한 마음으로 동료 목사들과 교인들과 죄인들과 믿지 않는 자들에게 성경을 연구하도록 호소하고, 어떤 사람도 무엇이 진리인지 확인하는 그 목적에서 그들을 이탈시키지 못하게 하라고 권면했다.

브라운 목사는, 그 당시에도 그 후에도 크리스찬 침례교회와의 관계를 더 이상 지속하지 않았다. 그럴지라도, 그는 그의 교인들에게 크게 존경을 받았다. 설교가 끝나자, 하나님의 백성들의 기도를 원하는 자들은 일어서라는 초청이 주어졌다. 그 요청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응하였다. 성령께서 회중들에게 임하였다. 하늘과 땅이 서로 접근하는 것처럼 보였다. 집회는 밤이 늦도록 계속되었다. 젊은이와 노인과 중년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주님의 능력을 느끼게 되었다.

51 우리가 여러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때,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성이 한 방향에서 들려 오면, 마치 거기에 반응이라도 하듯이 다른 방향에서 음성이 들려 오고, 또 다른 방향에서 들려 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 주님께서 다스리신다”고 외치게 되었다. 사람들이 입술로 찬양하면서 집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즐거운 노랫소리가 조용한 밤공기를 통하여 울려 퍼졌다. 이런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가장 흥미로웠던 그 장면들을 언제까지나 잊어버릴 수 없었다.

예수님을 진실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은 구주의 오심을 가장 강한 열망으로 바라본 자들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그분을 만날 것으로 바란 시간은 가까워 왔다. 우리는 엄숙한 마음으로 이 시간을 향하여 접근해 갔다. 진실한 신자들은 찬란한 내세에 그들이 누릴 평안의 전조인 하나님과의 감미로운 교통을 하며 안식하고 있었다. 이 소망과 신뢰를 경험한 사람은 누구든지 그 귀중한 기다림의 시간들을 언제까지나 잊어버릴 수 없었다.

세속적 업무들은 대부분 몇 주일 동안 돌보지 않은 채 버려졌다. 우리는 마치 임종의 침상에서 몇 시간만 있으면 눈을 감고 지상의 장면들을 영원히 보지 않을 사람처럼 마음속에 있는 모든 사상과 감정을 주의 깊이 살폈다. 그 위대한 사건을 위하여 “승천복(昇天服)”을 만들지는 않았으나, 우리는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내적 준비가 갖추어졌다는 내적(內的) 증거의 필요를 느끼고, 우리의 흰옷은 심령의 순결이며, 우리 구주의 속죄의 피로 죄로부터 깨끗해진 품성임을 느꼈다.

그러나, 기대했던 시간은 지나갔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라고 믿고 바라던 사람들이 당하게 된 최초의 극심한 시험이었다. 기다리던 하나님의 백성들의 실망은 컸다. 조롱하는 자들은 의기 양양해져서, 연약하고 소심한 자들을 자기들의 대열로 끌어 갔다. 진실한 믿음을 가진 것처럼 보인 어떤 사람들은 다만 공포심에 의하여 영향을 받았던 것처럼 보였다. 이제 시간이 지나가자, 그들의 용기는 회복되었다. 그들은 대담하게 조롱하는 자들과 연합하여, 미친 광신자 밀러의 교훈을 진정으로 믿을 만큼 기만당하지 않았었다고 선언하였다. 본성적으로 부화 뇌동하거나 망설이는 다른 사람들은 조용히 그 사업에서 떠나갔다. 나는, 그리스도께서 정말로 오셨다면 이처럼 연약하고 변덕스런 자들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들은 예수님의 오심을 좋아하고 고대하노라고 고백했다. 52 그러나, 그분께서 나타나지 않게 되자, 그들은 크게 안도하는 것 같았고, 부주의한 상태와, 진실한 신앙을 등한히 하는 상태로 되돌아갔다.

우리는 난처해지고 실망 가운데 빠졌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을 버리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오심이 지체되지 않을 것이라는 소망을 여전히 굳게 붙잡았다. 주님의 말씀은 분명하여 결코 허지로 돌아갈 수 없다. 우리는 의무를 다하고 귀중한 믿음을 실천했음을 느꼈다. 우리는 실망했으나 낙담하지는 않았다. 시대의 징조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우리는 언제든지 주님의 오심을 위하여 준비하는 일에 깨어 있고, 우리 자신을 굳게 해야 한다. 우리는 믿음과 소망으로 기다리고, 우리의 빛을 세상의 흑암에 비추기 위한 교훈과 격려와 위로를 얻기 위하여, 스스로 모이는 일을 등한히 해서는 안 된다.

시간의 계산은 너무도 단순하고 쉽기 때문에 어린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었다. 에스라 7장에 근거를 둔, 기원 전 457년에 내린 바사 왕의 칙령의 때부터 계산하면, 다니엘 8장 14절의 2, 300년은 1843년에 끝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해 연말 안에 주님께서 오실 것으로 보았다. 그 해가 다 지나가도 구주께서 오시지 않음을 보고, 우리는 크게 실망했다.

칙령이 기원 전 457년 초에 내리지 않았으면 2, 300년이 1843년 말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처음에는 깨닫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칙령이 기원 전 457년 말이 가까웠을 때 내렸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러므로, 예언의 기간은 1844년 가을까지 미쳐야 한다. 그렇게 보면, 때의 이상(異象)은 비록 지체되는 것처럼 보였을지라도 지체되지 않았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합 2:3)고 한 선지자의 말에서 우리는 교훈을 배우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1843년에 시간이 지나가게 함으로써 당신의 백성을 단련하고 시험하셨다. 53 예언적 기간의 계산에서 범한 실수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바라보는 자들의 견해를 반대한 학자들에 의해서까지도 한동안 발견되지 않았다. 비록 학자들이 그 기간에 있을 사건에 관하여 밀러씨를 반박했을지라도, 그들은 그가 시간상 계산에 있어서는 옳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들과 기다리고 있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시간의 문제에 있어서 공통적인 실수를 범하였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지혜로써 당신의 백성들이 실망을 당하도록 계획하신 것을 분명히 믿는데, 그 실망이 주님의 오심을 고대하고 기뻐하노라고 공언한 자들의 마음 상태를 나타내고 참된 성품을 계발시키는 데 매우 적합하였다. 진리를 사랑하거나 하나님의 나라의 유업을 바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의 진노가 두려워서 첫째 천사의 기별(요한계시록 14장 6, 7절 참조)을 받아들인 자들은 이제 그들의 참 모습이 그대로 나타났다. 그들은 예수님의 나타나심을 진정으로 바라고 고대한 실망한 자들을 조롱하는 첫번째 무리에 속하였다.

실망 가운데 빠진 자들은 흑암 가운데 오래 버려 둔 바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열렬한 기도로 예언적 기간을 살핌으로써 오류가 발견되고, 예언의 필적을 따라 지체되는 시간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즐거운 기대 때문에 이상(異像)에 있어서의 분명한 지체의 기간을 계산에 넣지 않았기 때문에, 슬픔과 예기치 않은 놀라움이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와 같은 지체는 진리를 진정으로 믿는 자들을 성장하게 하고 강하게 하기 위하여 필요하였다.

우리의 희망은 이제 1844년에 있을 주님의 재림에 집중되었다. 이 때는 또한 공중을 날아가면서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라고 외친 둘째 천사의 기별을 전하기 위한 시기였다. 그 기별은 1844년 여름에 하나님의 종들에 의하여 처음으로 선포되었다. 그 결과로, 많은 사람들은 타락한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이 기별과 관련하여, 밤중 소리*가 주어졌다.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세상의 여러 곳에 이 기별에 관한 빛이 주어졌으며, 그 외침은 수많은 사람들을 일으켰다. 54 그 기별은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그리고 가장 먼 지역에까지 전해졌다. 그것은 무지하고 비천한 자들에게는 물론이요 학식있고 재능 있는 사람들에게도 전해졌다.

이 해는 나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해였다. 나의 마음은 희망찬 기대로 충만해졌다. 그러나 한편, 나는 실망 가운데 있는 자들과 그리스도 안에 소망을 갖고 있지 않은 자들을 향한 큰 동정과 번민을 느꼈다. 우리는 한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가납하심을 받은 데 대한 진정한 경험과 분명한 증거를 얻기 위하여 열렬하게 기도함으로 연합하였다.

조롱하는 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큰 인내가 필요했다. 우리는 이미 당한 실망을 빗대어 조롱하는 어조로 흔히 인사를 받았다. “너희들은 아직 승천하지 않았는가? 언제쯤 승천할 예정인가?” 유사한 조롱을 세상 친구들에게서도 때때로 받게 되었고, 심지어 성경을 진리로 받아들였노라고 공언하면서도 그 위대하고 중요한 진리를 깨닫지 못한 그리스도인들까지도 그런 조롱을 하였다. 그들의 가리워진 눈은 하나님께서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행 17:31)셨다는 엄숙한 경고와, 성도들이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님을 만날 것이라는 보증에 대하여 다만 몽롱하고 희미한 의미밖에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정통적인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신속한 재림을 믿는 신조가 확산되지못하도록 방어하기 위하여 온갖 수단을 이용했다. 그들의 집회에서는 어떤 사람들에게도 그리스도의 신속한 재림에 관한 소망을 감히 말하도록 자유가 허락되지 않았다. 예수님을 사랑하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은 그들이 가장 좋은 친구라고 공언하는 분께서 미구에 그들을 방문하실 것이라는 소식을 경멸하며 거절했다. 그들은 그분의 오심에 대한 소식을 전파하신, 영광 중에 계신 그분을 신속하게 보게 될 것을 기뻐하는 자들에 대하여 흥분하고 분노하였다.

나에게는 매순간이 한없이 중요한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우리가 영원을 위하여 일하고 있다는 것과, 부주의하고 무관심한 자들이 가장 큰 위험에 빠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55 나의 믿음은 흐려지지 않았고, 나는 예수님의 귀중한 약속이 내게 대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면 나에게 분명히 허락될 것으로 굳게 믿었다. 나는 그분의 뜻과 일치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발 아래 겸손하게 앉았다.

나는 자주 가정들을 방문하여, 공포와 낙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로 더불어 열렬하게 기도했다. 나의 믿음은 너무도 강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 것을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예수님의 축복과 평안은 우리의 겸손한 간구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에게 머물게 되었고, 절망적인 자들의 마음은 빛과 소망으로 기뻐졌다.

부지런히 마음을 살피고 겸손하게 고백함으로, 우리는 경건하게 소망의 시간을 향하여 나아갔다. 매일 아침,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생애가 올바른 증거를 얻는 것이 제일 먼저 해야 할 과업임을 느꼈다. 피차를 위한 우리의 관심은 증가되었다. 우리는 함께 기도하였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우리는 하나님과 교통하고 우리의 간구를 그분께 드리기 위하여 과수원과 숲 속에 모였으며, 천연의 업적으로 둘러싸일 때 그분의 임재를 더욱 완전히 느끼게 되었다. 구원의 기쁨은 우리의 음식과 음료보다 우리에게 더욱 필요했다. 구름이 마음을 가리우게 되면, 우리는 주님의 가납하심에 대한 깨달음으로 그 구름들이 제거되기 전에는 감히 휴식하거나 잠을 잘 수 없었다.

나는 건강이 좋지 못하였고 폐도 크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음성을 제대로 내지 못하였다. 하나님의 영이 때때로 큰 능력으로 내게 임하였으므로, 연약한 나의 육체는 심령에 밀려 들어온 영광을 좀처럼 견딜수가 없었다. 나는 하늘의 공기를 호흡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미구에 구속주를 만나게 될 희망과 그분의 얼굴 빛 가운데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을 바라보며 즐거워했다.

기다리고 있던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주께서 오심으로 그들의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이라고 기쁘게 고대했던 그 시간을 향하여 접근해 갔다. 56 그러나, 그 시간은 예수님의 재림 없이 다시 지나가 버렸다. 우리가 영원히 버린 것으로 생각한 생활의 염려들을 지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믿음이 그처럼 강하고 희망이 그처럼 컸던 적은 무리들에게 다가온 실망은 쓰라린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 안에서 그처럼 자유를 느끼고 그분의 능력과 은혜로 그처럼 강력하게 지탱함을 받은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 전 해의 경험은 더 큰 범위로 반복되었다. 많은 부류의 사람들이 그들의 믿음을 버렸다. 매우 큰 확신을 가졌던 어떤 사람들은 자존심을 너무도 크게 상하였기 때문에, 세상에서 도피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요나처럼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믿음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우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증거 위에 세운 자들은 이제 그들의 견해를 다시금 쉽게 바꾸게 되었다. 거짓 회개와 헌신으로 그들 자신은 물론이요 주님을 속이고자 한 위선자들은, 이제 임박한 위험에서 놓여 난 것으로 느끼고, 그들이 최근에까지 사랑하노라고 공언한 사업을 공공연하게 반대했다.

연약한 자들과 악한 자들은, 이제 더 이상 공포도 기대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일에 연합했다. 그들은, 시간이 지나갔으나 주님께서 오시지 않았으므로, 세상이 수천 년 동안 그대로 남아 있을 것으로 보았다. 이 두번째의 큰 시험은 재림 신앙의 강한 조류(潮流) 속으로 흘러 들어와서 얼마 동안 진실한 신자들과 열심 있는 일꾼들로 더불어 지내온 가치 없는 많은 표류물들의 진상을 드러내 주었다.

우리는 실망하였으나 낙심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필수적인 것으로 여기시는 순결케 하는 과정에 참을성 있게 굴복하고, 구주께서 당신의 연단받는 충실한 백성들을 구속해 주시기를 끈기 있는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분명한 시기를 전파하게 한 것이 하나님께로서 온 것임을 굳게 믿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하게 되고, 그들이 전에 깨닫지 못한 진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요나는 40일 만에 니느웨 성이 멸망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도록 하나님께로부터 그 성의 거리로 보냄을 받았다. 57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니느웨 사람들의 회개를 받으시고, 그들에게 은혜의 기간을 연장시키셨다. 그럴지라도 요나가 전한 기별은 하나님께서 보낸 것이었고, 니느웨는 그분의 뜻을 따라 시험을 받았다. 세상은 우리의 희망을 일종의 기만으로, 우리의 실망을 필연적인 실패로 보았다.

악한 종에 대한 비유를 통하여 구주께서 하신 말씀은, 인자의 오심이 가까움을 조롱하는 자들에게 매우 적절하게 해당된다.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마 24:48-51).

우리는, 베드로가 마지막 때에 기롱하는 자들이 나타나서 자기의 육신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벧후 3:4)라는 말을 할 것이라고 예언한 기롱자들을 도처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나, 주님의 오심을 바라던 자들에게는 위로가 없지 않았다. 그들은 말씀을 연구함으로 귀중한 지식을 얻었다. 그들은 구원의 계획을 더욱 분명히 깨달았다. 매일, 그들은 거룩한 책에서 새로운 아름다움과, 하나의 성경절이 다른 성경절을 해석해 줌으로써 한 말씀도 헛되게 사용되지 않고 전체를 통하여 일관되어 있는 놀라운 조화를 발견하였다.

우리의 실망은 제자들의 실망만큼 그렇게 크지는 않았다. 인자께서 당당하게 말을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 그들은 그분께서 왕으로 즉위하실 것으로 기대했다. 여러 지역에서 몰려온 사람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쳤다.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님께, 군중들을 조용히 하도록 진정시켜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분은, 그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외치리라고 주장하셨다. 왜냐하면, 예언이 성취되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불과 며칠 후에, 바로 그 제자들은 다윗의 보좌에서 통치하실 것으로 믿었던 그들의 사랑하는 주님께서 조롱하는 자들과 비웃는 자들과 바리새인들 앞에서 잔인한 십자가에 달려 계신 것을 보았다. 58 그들의 화려한 희망은 사라지고, 죽음의 흑암이 그들의 주변을 둘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약속에 성실하셨다. 그분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주신 위로는 아름다운 것이었고, 진실하고 충성된 자들에게 준 보상은 풍성한 것이었다.

밀러 씨와 그와 연합한 사람들은 다니엘 8장 14절에서 말한 성소의 정결을, 이 세상이 성도들의 거처가 되기 전에 불로 정결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 일은 그리스도의 재림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사건이 2, 300일 혹은 2, 300년 끝에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실망 후에 기도와 열렬한 마음으로 주의깊이 성경을 연구하고 과도기를 지나게 되자, 빛이 우리를 둘러싼 흑암을 뚫고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하여, 의심과 불확실은 제거되었다.

다니엘 8장 14절의 예언은 지상의 정결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우리의 대제사장의 마지막 사업 곧 속죄의 완성과, 그분께서 오시는 날에 설 수 있도록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것을 가리켜 준다는 것이 이제 분명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