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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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와 북부

253 1862년 1월 4일에, 나는 우리 나라에 관한 일을 보았다. 나의 주의는 남부의 반역에 쏠렸다. 북부가 그들의 참된 감정에 대하여 잠든 상태에 있는 동안, 남부는 무서운 투쟁을 위하여 스스로 준비를 갖추었다. 링컨 행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남부에 의하여 매우 유리한 조치가 취해졌다. 그 전 행정부는 남부가 그들의 전쟁 무기를 북부에서 빼앗아 가도록 계획하고 처리했다. 그렇게 한 데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다. (1) 그들이 결정적인 반역을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그 일을 위하여 준비해야 하고, (2) 그들이 반역하게 될 때 북부는 전혀 준비를 갖추고 있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와 같이 시간을 끌고, 그들의 심한 강압과 무서운 협박으로 북부를 위협할 때 그들에게 복종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모든 것이 그들 자신의 뜻대로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북부는 그들에게 대한 남부의 지독하게 무서운 증오를 깨닫지 못했으므로, 남부가 교묘하게 꾸민 획책에 대비하여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 북부는 그들의 힘을 자랑하고 연방에서 분리되겠다는 남부의 생각을 비웃었다. 그들은 그것을 고집스럽게 제멋대로 하는 어린아이의 위험처럼 생각하고, 남부가 미구에 제정신이 들어 연방과 분리된 것을 후회하고 겸손하게 사과하면서 충성의 자리로 돌아올 것으로 보았다. 254 북부는 저주받은 노예 제도의 힘을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였다. 전쟁의 기초를 놓은 것은 이것, 바로 이것이다. 남부는 차츰 흥분이 고조되어 갔다. 그들은 인간을 매매하는 것, 노예와 사람들의 영혼을 장사로 거래하는 것을 완전히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모든 영역을 그들의 것으로 주장할 수 없게 되면 초조해지고 걷잡을 수없이 화가 난다. 그들은 경계(境界)를 무너뜨리고, 그들이 원하는 어떤 지역이든지 노예를 데려가서 노예의 활동으로 땅을 저주하기를 원했다. 남부의 소리는 긴박했지만, 북부는 그 소리를 침묵시키기 위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았다.

반역은 너무도 세밀하고 천천히 진행되었기 때문에, 처음에 반역을 생각하고 놀란 많은 사람들이 모반자들의 영향을 받아 그 반역을 정당하고 옳은 것으로 보게 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반역의 초기, 전쟁을 치르기에 잘 준비가 갖추어지지 않았던 당시에 우리 정부가 단호하고 철저한 조치를 취하기를 원치 않았던 남부 연방에 가담하였다. 북부는 언제나 전쟁을 치를 준비를 갖추고 있었지만, 반역의 세력이 꾸준히 증강되어 왔으므로 이제는 여러 달 전보다 진압의 가망이 훨씬 더 희박해져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고, 상처를 입고, 불구가 되어 건강을 잃었다. 그들의 세속적 희망은 영원히 그늘에 가리워졌다. 그런 대가를 치르고서도 얻은 것은 얼마나 적었던가! 수많은 사람들은 이 전쟁이 노예 제도를 종식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이해 아래 군대에 입대하도록 강요당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찬찬히 생각하고, 그들이 속았다는 것, 이 전쟁의 목적이 노예 제도를 철폐하는 것이 아니고 종전처럼 지속하기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가정을 버리고 생명을 희생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불만을 품게 된다. 그들은 전쟁의 결과가 좋지 않음을 깨닫는다. 오직 연방의 보존, 이 목적을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희생되고 가정이 황폐되어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폐인이 되고 병원에서 죽었다. 255 또 많은 사람들이 모반자들의 포로가 되어 죽음보다 더 무서운 운명에 처해졌다. 이 모든 것을 보고 그들은, 만일 우리가 이 반역을 진압하는데 성공하면 어떤 유익을 얻을 것인가라고 자문한다. 그들은 낙심 상태에서, 아무것도 없다고 대답할 뿐이다. 반역이 야기한 것은 제거되지 않는다. 우리 나라를 파괴한 노예 제도는 살아 있어서 또 다른 반역을 일으키게 된다. 수많은 우리 군인들의 마음은 괴로웠다. 그들은 가장 큰 궁핍을 당하고 있다. 그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그 일을 당하고자 하는데, 그들이 기만당한 것을 깨닫고 낙심하게 된다. 우리의 지도자들은 난처해지고, 그들의 마음은 공포에 눌리게 된다. 그들은 모반자들의 노예들에게 자유를 선포하기를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 그들은 반역에 가담하지 않았지만 강력한 노예 소유자들로 이루어진 남부의 일부를 격노케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그들은, 지휘자로서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강력한 노예 제도 반대자들의 영향도 두려워했다. 그들은 대담하고 결정적인 어조의 영향을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눌린 자들에게 자유를 주어 모든 멍에를 꺾어 버리게 함으로써 이 무서운 반역의 원인을 씻어 버리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강한 욕망의 불길에 부채질을 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책임 있는 위치에서 고급 지휘관으로 있는 자들 중 많은 사람들에게는 양심이나 심령의 고결함이 별로 없었다. 심지어 그들은 그들의 휘하에 있는 자들을 죽일 수 있는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일은 눈감아졌다. 이 사령관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권력을 남용하여, 그들에게 예속된 자들이 모반자들을 정복할 희망이 전혀 없이 모반자들과 무서운 교전을 할 수밖에 없는 위험한 위치에 놓이게 할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다윗이 우리아를 처치한 것처럼(삼하 11:14, 15), 담대하고 철저한 사람을 죽일 것이었다.

귀중한 사람들이 강력한 노예 제도 반대의 영향을 제거해 버리기 위하여 이와 같이 희생당해 왔다. 이 위기의 때에 북부가 가장 필요로 하고, 가장 가치 있는 봉사를 할 바로 그런 사람들 중 몇은 있지 않다. 그들은 이유 없이 희생되었다. 우리 나라의 앞길은 낙망적이다. 256 왜냐하면, 마음속에 반역의 정신을 품고 있는 자들이 책임 있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반자들을 동정하고 있는 사령관들이 있다. 어떤 군대들은 주로 이런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서로 적대적이어서, 많은 연대들 가운데서 연합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전쟁이 나에게 나타났을 때, 그것은 지금껏 있었던 어떤 것보다도 가장 독특하고 불확실한 것처럼 보였다. 군대에 입대한 지원자들 중 대부분은, 전쟁이 끝나면 노예 제도가 철폐될 것으로 완전히 믿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노예 제도를 현재와 같이 유지하기 위하여 매우 조심하면서, 반역이 진압되고 연방이 보존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군대에 입대하였다. 그런데, 그 문제를 더욱 난처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사령관들 중 몇 사람들이 남부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노예 제도 지지자들이면서도 정부가 분리되는 것은 반대하는 자들이라는 점이다. 전쟁이 성공적으로 치러지기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의 대열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남부를 유리하게 하는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군대들이 격퇴당하고 무자비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은 노예 제도를 지지하는 자들의 처사 때문이다. 국회에 있는 우리의 지도자들 중 몇 사람들도 남부에 유리하도록 계속해서 활동하고 있다. 이 같은 상태에서, 국가적인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께서 신속하고도 유리하게 전쟁을 종식시켜 주시도록 기도해야 할 것인가? 그 때에 나는 이사야 58장 5-7절을 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257 나는 이와 같은 국가적 금식은 여호와를 모독하는 것임을 보았다. 그분께서는 그런 금식을 열납하지 않으신다. 기록하는 천사는 그들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한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약한 주먹으로 치는도다”(사 58:4). 나는 우리의 지도자들이 그들의 보호를 받고자 찾아온 불쌍한 노예들을 어떻게 취급해 왔는지 보았다. 천사들은 그 사실을 기록했다. 이 지도자들은 그들의 멍에를 깨뜨리고 압제당하는 자들에게 자유를 주는 대신에, 이 멍에를 그들의 독재적 주인들을 섬길 때보다 훨씬 더 괴로운 것이 되게 했다. 자유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불쌍한 노예들은 그들의 주인을 버리고 자유를 얻기 위하여 생명의 위험을 무릅쓴다. 만일, 그들이 우리 중 어떤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유를 사랑하는 강한 욕망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 것 같으면, 그들은 주인을 버렸다가 다시 잡힐 때 당하는 난관과 공포를 스스로 당하는 모험을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도망친 노예들은 자유를 얻기 위하여 말할 수 없는 어려움과 위험을 당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의 마지막 희망으로, 가슴속에서 불타는 자유에 대한 열망을 안고 우리의 정부에 보호를 호소한다. 그러나, 그들의 신뢰는 말할 수 없는 모멸로 대접을 받았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자유를 얻기 위하여 담대하게 노력한 큰 죄를 지었기 때문에 잔인하게 취급되었다. 인도적인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노라고 공언하는 위대한 사람들은, 거의 헐벗고 굶주린 노예들을 보고 멸시하고, 그들을 잔인한 주인과 절망적인 속박으로 되돌려 보냄으로, 그들이 자유를 찾고자 했기 때문에 비인간적인 잔인한 취급을 받게 했다. 이처럼 가련한 부류에 속한 자들 중 어떤 사람들은 건강에 좋지 않은 토굴 속에 던져진 채, 살든지 죽든지 보호를 받지 못하고 버려졌다. 그들은 자유를 빼앗기고, 하늘이 빼앗지 않은 공기마저 자유롭게 호흡하지 못하고, 음식과 의복이 없어서 고난을 당하도록 버려졌다. 이런 모든 것을 보고 국가적 금식을 선포하다니! 아, 여호와께 대하여 얼마나 큰 모독인가! 여호와께서는 이사야의 입을 통하여, “그들이 날마다 나를 찾아 나의 길 알기를 즐거워 함이 마치 의를 행하여 그 하나님의 규례를 폐하지 아니하는 나라 같(사 58:2)다”고 말씀하신다.

258 도망친 노예들은 그들의 주인들에게서, 북부의 사람들이 그들을 잔인하게 오용하기 위하여 그들을 소유하기를 원한다는 것과, 노예 폐지론자들이 그들이 노예로 있을 때 취급받은 것보다 훨씬 더 그릇되게 그들을 취급할 것이라는 말을 들어 왔다. 그들로 하여금 북부를 혐오하게 하고자 온갖 종류의 무서운 이야기들을 그들의 귀에 반복해서 들려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혼란한 생각들을 가졌으므로, 북부에 있는 어떤 사람들의 마음은 그들의 불평을 느끼고 그들을 도와 주기 위한 노력을 하곤 했다. 이것은 그들의 억압적이고 침울한 속박에 빛을 비춰 주는 유일의 별이 되어 왔다. 가련한 노예들이 다루어진 방법은 그들의 주인들이 이 문제에 관하여 그들에게 진실을 말해 주었다는 사실을 믿게 했다. 그러면서도 국가적 금식을 선포하고 있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우리 나라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을 할 때, 전쟁에 관한 한 그분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기도가 그분의 귀에 들리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얼굴을 돌이키신다. 그들은 그분께 혐오의 대상이 되어 있다. 그러므로, 무거운 짐을 벗겨 주고 모든 멍에를 꺾어 주려고 하는 자들이 비난받는 처지에 놓이게 되거나, 책임있는 위치에서 제거되거나, 그들의 생명이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 자”들에 의하여 모살되게끔 경영된다.

나는 이 전쟁의 목적이 노예 제도를 종식시키는 데 있고 그와 같은 욕망이라도 있었을 것 같으면 영국이 북부를 도와 주었을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영국은 정부 내부에 존재하는 감정과 전쟁이 노예 제도를 없애기 위한 것이 아니고 단순히 연방을 보존하는데 있다는 것과, 그것이 보존되는 것이 그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우리 정부는 매우 자고하고 독자적 위치를 유지해 왔다. 이 나라의 백성들은 군주 정치에서 자행되는 것보다 수천 배나 더 악한 노예 제도가 존재하도록 용납하고 그 제도를 보존해 오면서도 스스로를 하늘처럼 높이고, 군주 정치를 멸시하고, 그들이 자랑하는 자유에 득의 양양해 왔다. 259 빛을 받은 이 나라에서, 인간 가족의 일부를 다른 부분에 예속되게 하여, 수백만의 사람들을 짐승의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제도를 간직하고 있다. 이와 동일한 죄는 이교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천사는 “하늘이여, 압제받는 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어 보라. 그리하여, 압제자들을 그들의 행위에 따라 두 배로 갚아 주라”고 말했다. 이 나라는 여전히 티끌에 이르기까지 낮추어져야 할 것이다. 영국은 우리 나라의 현실적으로 약한 상태를 이용하여 전쟁을 하는 것이 최선의 길인지 아닌지 알고자 연구 중에 있다. 그 나라는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으며, 다른 나라들의 의중을 떠보고 있다. 영국은, 해외에서 전쟁을 시작할 것 같으면 국내가 약해지고 다른 나라들이 그의 약화된 상태를 이용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다른 나라들은 조용하지만 전쟁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그리하여, 영국이 우리 나라와 전쟁을 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영국이 과거에 그들을 이용하고 그들에게 불의하게 한 것을 보수할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왕의 국민들 중 일부는 그들의 멍에를 깨뜨릴 기회를 얻고자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영국은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면 한순간도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힘을 발휘하여, 우리 나라를 굴복시킬 기회를 이용할 것이다. 영국이 전쟁을 선포하면, 모든 나라들은 각자의 이익을 위하여 개입할 것이다. 그리하여, 전반적 전쟁 곧 전반적 혼란이 야기될 것이다. 영국은 반역을 진압시키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여러 다른 의견들을 잘 안다. 그 나라는 우리 정부의 난처한 상태를 잘 안다. 그 나라는 이 전쟁의 과정, 곧 느리고 무능한 이동, 우리 군대의 무력한 상태, 우리나라의 파멸적 지출 등을 두려움으로 보았다. 우리 정부의 무력한 상태는 다른 나라들 앞에 완전히 공개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 나라들은 군주정치가 아니기 때문에 이렇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들은 그들 자신의 정치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한편, 어떤 나라들은 동정의 마음으로, 다른 나라들은 멸시하는 태도로, 한때 그들이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로 인정해 온 우리 나라를 멸시하게 된다. 260 만일, 우리 나라가 연합을 유지했을 것 같으면 힘을 소유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누어졌기 때문에 망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큰 고난이 다가옴

나는 우리가 지금껏 목격한 어떤 고난보다 더 큰 고난을 이 땅에서 보았다. 나는 고통의 신음 소리와 부르짖음을 듣고, 많은 무리들이 치열한 전쟁 중에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대포가 터지는 소리,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 백병전의 함성, 죽어가는 자들의 신음 소리와 기도를 들었다. 땅은 부상당한 자들과 죽은 자들로 덮여 있었다. 나는 황폐하고 절망에 빠진 가정들과 많은 진에서 무서운 궁핍을 보았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가정이 궁핍한 중에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증가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얼굴은 수척하고 창백해 보이고, 굶주림에 괴로운 듯했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인의 우정과 사랑의 줄로 굳게 연합되어 있어야 할 것을 보았다. 이와 같은 우리의 국가적 재난의 때에 있어서 하나님만이 우리의 방패와 힘이 되실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깨어야 한다. 진리를 전파하는 그들의 기회는 잘 이용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기회들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땅에서 고통과 혼란과 기근을 보았다. 사단은 지금 하나님의 백성들을 무활동의 상태로 붙들어 두어, 진리를 전파하는 일에서 그들의 몫을 담당하지 못하게 하고자 애쓰고 있다. 그리하면, 그들은 마침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나타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경고를 받고 시대의 징조를 분별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오심을 알려 주는 징조들은 너무도 분명하여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이런 점으로 볼 때,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자들은 산 전도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설교자들과 백성들을 막론하고 모두 깨어 있도록 호소하신다. 온 하늘은 분주히 활동하고 있다. 지상역사의 장면들은 신속히 마쳐 가고 있다. 우리는 마지막 때의 위기에 처해 있다. 더 큰 위기가 우리 앞에 놓여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깨어있지 않다. 하나님의 사업에 이처럼 활동과 열성이 부족한 것은 무서운 일이다. 261 이 죽음의 마비 상태는 사단에게서 온 것이다. 그는 헌신하지 않은 안식일 준수자들의 마음을 지배하여, 그들이 서로 질투하고 결점을 찾고 비난하게 한다. 마음들을 분리시켜, 하나님의 종들의 영향력과 힘과 활동이 헌신하지 못한 안식일 준수자들에게 바쳐지게 하고, 불신자들에게 진리를 전하는 일에 사용되어야 할 그들의 귀중한 시간이 사소한 분리를 해결하는데 쓰여지게 하는 것이 사단의 특별한 일이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변화가 이루어지기를, 곧 그들을 사로잡을 강력한 힘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들이 잘못을 범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실망을 당할 것이다. 그들은 활동하고, 스스로 사업을 붙들고, 그들 스스로를 진정으로 알기 위하여 하나님께 열렬하게 부르짖어야 한다. 우리 앞에 지나가는 장면들은 우리를 각성시켜, 진리를 듣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 진리를 새기도록 강요하기에 충분할 만큼 중요한 것들이다. 세상의 곡식은 거의 익어있다.

나는 셋째 천사의 기별을 선포하는 엄숙하고 책임 있는 사업에 종사하는 목사들이 올바르게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보았다.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사업을 하기 위한 재물이나 기구들 때문에 어려움에 처하지 않으신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이 원하시는 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은 능력이 있기 때문에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진리가 거룩한 사물을 다루는 자의 손과 마음을 성화시키지 못하고, 순결하고 깨끗하게 하지 못하면, 그는 자기 자신의 불완전한 경험을 따라 말할 가능성이 있다. 그 자신의 정화되지 못한 판단력이 결정하는 대로 자기 자신에 관하여 말하는 경우에는, 그의 권면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된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는 거룩하게 되도록 부르심을 입었으므로, 인정을 받고 사람들에게서 구별된 자는 그의 거룩한 부르심에 대한 증거를 나타내야 하고, 그의 거룩한 언어와 행동을 통하여 그가 자기를 부르신 분에게 충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어야 한다.

진리를 전파하지만 진리로 성화되지 못한 자들과, 말씀과 교훈으로 그들에게 봉사하도록 성화되지 못한 자들을 받아들이고 유지하는 일에 동의한 자들에게는 무서운 화가 있다. 262 나는 엄숙하고 중대한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고 놀란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중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고, 진리를 통하여 거룩해지지 않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든 진리를 듣고 인정할 수는 있으나 경건의 능력에 대해서는 전혀 모를 수도 있다. 진리를 전하는 모든 사람이 그 진리에 의하여 구원받지는 않을 것이다. 천사는,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 정결케 할지어다”(사 52:11)라고 말했다.

주님을 현재와 미래의 유업으로 택하는 자들이 오직 그분만을 의지해야 할 때가 왔다. 경건을 공언하는 모든 사람은 그들 자신의 경험을 해야한다. 기록하는 천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말과 행동을 성실하게 기록하고 있다. 천사들은 품성의 계발을 지켜보고, 도덕적 가치를 달아 보고 있다.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은 스스로 정당해야 하며, 다른 사람들을 깨우쳐 진리로 인도하는 일에 그들의 영향력을 사용해야 한다. 그들의 말과 행위는 순결한 진리의 원칙과 거룩함을 세상에 전달하는 통로이다. 그들은 세상의 소금이며 세상의 빛이다. 나는 하늘을 쳐다볼 때 빛과 평화를 보지만, 세상을 바라볼 때 모든 피난처가 미구에 사라지고 모든 좋은 것이 미구에 지나가 버릴 것을 보았다. 하나님 외에는 우리에게 도움이 없다. 이 세상의 혼란 속에서, 우리는 오직 산 믿음의 힘을 통해서만 침착하고 강하고 안전할 수 있다. 오직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고 그분의 구원을 기다릴 때에만 우리는 평안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에게 비친 것보다 더 큰 빛이 우리에게 비치고 있다. 우리의 조상들이 한 것과 동일한 봉사를 하고 동일한 사업을 하고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가납하심을 받거나 칭찬을 받을 수 없다. 우리 조상들처럼 하나님의 가납하심과 축복을 받으려면, 우리는 그들의 성실과 열성을 본받아야 한다. 곧, 그들이 그들의 빛을 이용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빛을 이용하고, 그들이 오늘날 살았다면 하게 될 그대로 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비친 빛 가운데서 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빛은 어둠으로 바뀔 것이다. 263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품성과 행동을 통하여, 공언하는 거룩한 진리와, 이 마지막 때에 성취되고 있는 예언의 정신과 일치되는 연합과 일치의 정신의 정도를 세상에 나타내기를 바라신다. 우리가 이해한 진리와 심령에 비친 빛을 등지고 지도받기를 거부할 것 같으면, 그 진리와 빛이 우리를 심판하고 정죄할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남은 백성들을 각성시키기 위하여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나는 우리 앞에 두려운 광경이 있음을 보았다. 사단과 그의 사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영향을 끼치기 위하여 그들의 모든 힘을 모으고 있다. 사단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조금만 더 졸 것 같으면 그들을 소유하게 될 것을 안다. 그들의 멸망이 분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를 엄격하게 살펴서, 그들의 모든 잘못을 완전하고 철저하게 고백함으로 심판을 미리 받고, 기록하는 천사가 그들의 이름 맞은편에 용서받았다고 기록할 수 있게 하라고 경고하는 바이다. 나의 형제 자매여, 이 귀중한 자비의 순간을 이용하지 않을 것 같으면, 그대들은 변명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만일, 그대들이 깨어 있기 위하여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고, 회개하는 일에 열성을 나타내지 않을 것 같으면, 이 황금 기회는 미구에 지나가 버리고, 그대들은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나타날 것이다. 그 때에는 그대의 고민의 부르짖음이 아무런 효력이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주님의 말씀이 적중될 것이다. “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지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라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오직 나를 듣는 자는 안연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평안하리라”(잠 1:24-33).

노예 제도와 전쟁

264 하나님께서는 노예 제도의 큰 죄 때문에 이 나라를 징벌하고 계신다. 그분은 나라의 운명을 당신의 손에 쥐고 계신다. 그분은 노예 제도의 죄 때문에 남부를, 그 제도의 지나치고 기만적인 영향을 오랫동안 용납하는 일 때문에 북부를 징벌하실 것이다.

1861년 8월 3일, 뉴욕 주 루스벨트의 총회에서 형제 자매들이 겸비와 금식과 기도를 위하여 따로 구별한 날에 모였을 때, 주님의 영이 우리에게 임하시고, 나는 이상 가운데 들어가서 오랫동안 이 나라에 저주가 되어온 노예 제도의 죄를 보게 되었다. 탈주 노예 규제법은, 압박받고 고생하는 노예에 대하여 마음속에서 일어나야 할 고상하고 관대한 모든 동정의 생각을 사람에게서 무찔러 버리기 위하여 기도(企圖)되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교훈과 정반대 된다. 하나님의 벌이 이제 북부에 내리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너무 오랫동안 노예 제도의 발전을 용납해왔기 때문이다. 북부의 노예 제도 지지자들의 죄는 크다. 그들은 노예제도의 확대를 인정함으로 남부의 죄를 지지해 왔다. 그들은 나라를 현재의 고통스런 상태에 빠뜨리는데 있어서 현저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다가온 악의 정도를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들은 국가적 어려움이 미구에 해결되고 혼란과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스스로 자부해 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문제에 있어서 기대했던 것보다 더 큰 현실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북부가 일격을 가하여 싸움이 끝나기를 기대해왔다.

나는 애굽인들에게 속박되어 있던 고대 이스라엘을 뒤돌아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주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을 통하여 그들을 구원하기 위한 일을 하셨다. 그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가도록 허락하는 명령을 내리기 위하여 특별히 하나님께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임을 바로에게 확신시켜주고자 그 앞에서 이적들이 행해졌다. 265 바로의 마음은 하나님의 사자들에 대하여 굳어졌다. 그리하여, 그는 그들이 행한 이적을 자연 현상으로 돌렸다. 그리하여, 애굽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벌을 받게 되었다. 재앙의 영향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동안,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도록 놓아 주기로 동의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고통의 원인이 제거되자, 즉시 그의 마음은 굳어졌다. 그의 고문들과 영향력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대항하여 스스로를 무장하고, 그 재앙을 자연 현상의 결과로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하나님의 모든 심판은 그전 것보다 더 심해졌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의 천사가 애굽의 장자를 죽이기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놓아주고자 하지 않았다. 보좌에 앉은 왕으로부터 가장 비천하고 낮은 자에 이르기까지 울며 슬퍼하는 일이 있었다. 그 때에,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애굽인들이 죽은 자들을 장사하고 나자,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 준 것을 후회했다. 그의 고문들과 영향력 있는 자들은 그들의 사별(死別)의 원인을 밝혀 내고자 노력했다. 그들은 그 심판과 재난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추적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군대가 어떤 자들은 말을, 어떤 자들은 마차를 타고 전쟁을 위하여 무장하고 추적해 오는 것을 보자, 그들의 마음은 낙담되었다. 그들 앞에는 홍해가 있고, 뒤에는 애굽 군사가 있다. 그들은 피할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이스라엘이 그들의 세력 안에 완전히 들어온 것을 보자, 애굽인들은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이스라엘은 크게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을 앞으로 전진하게 하시고, 지팡이를 들어 홍해를 가리켜 손을 뻗어 바다가 갈라지게 하라고 모세에게 명령하셨다. 그는 그렇게 하였다. 그러자, 바다가 갈라졌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른 땅을 지나갔다. 바로는 그처럼 오랫동안 하나님을 대항하고, 그분의 강하고 이적적인 업적에 대하여 마음을 굳게 하였으므로 무분별하게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이적적으로 마련하신 길을 따라 달려 들어갔다. 모세는 다시 바다를 향하여 그의 손을 뻗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266 그리하여,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된지라”(출 14:27) 물이 애굽 군대를 덮게 되고, 그들은 몰사하였다.

이 장면은, 이기적 마음으로 좋아하게 된 노예 제도와, 남부가 이 제도를 유지하기 위하여 채택하게 될 필사적 조치와, 그들이 양보하기 전에 지속하게 될 무서운 기간 등을 예시하기 위하여 내 앞에 제시되었다. 노예 제도는 인간을 짐승의 수준까지 떨어뜨리고 타락시켰으므로, 노예를 소유한 주인들 대부분은 노예들을 그렇게 여긴다. 이 주인들의 양심은 바로의 양심처럼 무디어지고 굳어졌다. 그러므로, 만일 그들의 노예들을 해방시키도록 강요할 것 같으면, 그들의 원칙은 바꾸지 않고 남겨 두고, 가능하면 노예가 그들의 압제적 능력을 느끼게끔 할 것이다. 노예를 놓아 주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오직 하나님만이 지독하고 냉혹한 압제자의 손에서 노예를 빼앗아 낼 수 있으시다. 노예에게 나타낸 온갖 혹사와 잔인함은, 남부인이든 북부인이든간에 노예 제도의 지지자들에게 마땅히 그 책임이 돌아가야 한다.

남부와 북부가 내 앞에 제시되었다. 북부는 남부에 관하여 기만당해왔다. 그들은 나타난 것보다는 전쟁을 위하여 더욱 잘 준비하고 있다. 그들의 군인들 중 대부분은 무기를 사용하는데 익숙하였는데, 어떤 사람들은 전투의 경험이 있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일상의 습관적 사냥 경험이 있었다. 그들은 이 점에서 북부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볼 때, 북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용기와 인내력은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버지니아 주 마나사스의 무서운 전쟁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무시무시하고 절망적인 광경이었다. 남부의 군대는 모든 면에서 유리했으며, 치열한 전쟁을 치를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북부의 군대는 당당한 기세로 전진하고 있었으며, 그들이 승리할 것이 틀림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승리를 이미 얻은 것처럼 들뜬 마음으로 무모하게 전진해 갔다. 전쟁터에 가까워지자, 많은 사람들은 피곤으로 거의 기운을 잃고 휴식을 원하게 되었다. 그들은 그처럼 치열한 교전이 있으리라고 예기하지 않았다. 267 그들은 전쟁터로 달려들어가서 용감하고 필사적으로 싸웠다. 죽은 사람들과 죽어가는 자들이 사방에 즐비해졌다. 북부와 남부가 다 같이 심한 고통을 받았다. 남부 사람들은 전쟁의 상황을 느끼고 있었고, 잠시 후면 더 멀리 후퇴해 갈 것이었다. 북부 사람들은 비록 그들의 희생이 컸지만 계속해서 추격하기 시작했다. 바로 그 때, 한 천사가 내려와서 손을 뒤로 향하여 흔들었다. 즉시 대열에서 큰 혼란이 생겼다. 그것은 북부의 군인들에게, 사실은 그렇지 않지만, 그들의 군대가 후퇴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급한 후퇴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나에게 이상한 일로 보였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당신의 손으로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그분께서 정해 놓으신 것보다 더욱 빨리 승리를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것과 그분께서 북부 사람들의 죄를 벌하기 위하여 당신의 지혜로써 합당하게 여기시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잃어버리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사실이 설명으로 주어졌다. 그러므로, 만일 그 때 북부의 군대가 피곤하고 지친 상태 그대로 더욱 치열하게 전쟁을 치렀을 것 같으면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더 큰 싸움과 파괴가 남부에 큰 승리를 주게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허락하지 않으셨으므로, 천사를 보내어 관여하게 하셨다. 북부의 갑작스런 퇴각은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의 신비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손이 이 문제에 개입하게 된 것을 알지 못한다.

남부의 군대의 파멸은 너무 컸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자랑할 마음이 없었다. 죽은 자들과 죽어가는 자들과 부상당한 자들의 광경은 그들에게 승리에 대한 기쁨을 별로 주지 못했다. 그들이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고 북부가 매우 불리한 위치에 있을 때 야기된 이 같은 파멸은 그들을 매우 난처한 지경에 빠뜨렸다. 그들은, 만일 북부가 그들과 동일한 기회를 가졌을 것 같으면 승리는 분명히 북부의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접근하기 어려운 요새를 차지하여, 사방에서 적군에게 타격을 가할 채비를 갖추는 것이다.

남부는 그들이 반역을 처음 시작한 이래 스스로를 크게 강화했다. 만일, 북부에 의하여 적극적인 조치가 취해졌을 것 같으면, 이 반역은 신속히 진압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적었던 것이 힘과 수(數)에 있어서 증가하여 마침내 가장 강력한 것이 되었다. 268 다른 나라들은 하나님께서 내게 알려 주지 않으신 모종의 목적을 위하여 이 나라를 자세히 관찰하고, 어떤 사건을 위하여 크게 준비를 갖추고 있다. 우리 국민들 사이에는 가장 큰 혼란과 염려가 존재한다. 노예 제도 지지자들과 반역자들이 바로 그들 사이에 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표면으로는 연방을 위하는 척하면서 한편으로는 남부에 유리한 결정을 내리는데 어떤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나는 세상의 거민들이 극도로 혼란한 중에 있는 것을 보았다. 전쟁, 유혈, 궁핍, 결핍, 기근, 재앙 등이 이 땅에 편만해졌다. 이 같은 것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둘러싸고 있을 때, 그들은 굳게 연합하고 그들의 사소한 어려움을 버리게 되었다. 자존심이 더 이상 그들을 지배하지 않고, 깊은 겸비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고난, 난관, 궁핍은 이성이 제자리를 다시 찾게 해주고, 격정적이고 비이성적(非理性的)인 사람이 건전하고 신중하고 지혜롭게 행동하게 하였다.

나의 주의는 그 장면에서 다른 데로 끌렸다. 잠깐 동안의 평화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한 번, 이 세상의 거민들이 내 앞에 제시되었다. 그리고, 다시 모든 것이 극히 심한 혼란 속에 빠졌다. 기근과 재앙과 함께 투쟁과 전쟁과 유혈이 도처에 편만했다. 다른 나라들이 이 전쟁과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전쟁이 기근을 일으키고, 궁핍과 유혈이 온역을 초래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마음은 두려움으로 낙담의 상태가 되어”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눅 21:26)하게 되었다.

위기의 때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미구에 의복과 외모 외에 생각해야 할 무엇인가를 갖게 될 것이다. 고통과 고난에 의하여 그들의 마음이 이 같은 것들에게서 떠나갈 때, 그들은 돌아가야 할 곳이 아무 데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희망이 있는 죄수들이 아니기 때문에, 요새가 되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들의 마음은 원망과 공포로 낙심될 것이다. 269 그들이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께서는 그 때에 그들의 위로가 되어 주시지 않고, 그들의 재난을 비웃고, 그들에게 공포가 다가올 때 조롱하실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멸시하고 짓밟았다. 그들은 사치스런 옷을 입고 즐겁고 기쁘게 생애를 보냈다. 그들은 바람을 심었으므로 광풍을 거둘 것이다. 나라들이 고통하고 고난을 겪을 때, 부패한 세상의 영향과 사단을 섬기는데 스스로를 완전히 바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온 마음을 다하여 그분께 돌아가서 가납하심과 용서하심을 받을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어떤 희생도 자원해서 하고자 하지 않고 세상의 영향에 굴복해 온 안식일 준수자들 중 더러는 시험과 시련을 받게 될 것이다. 마지막 때의 위기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젊은이들 앞에는 예기치 않은 시련이 놓여 있다. 그들은 가장 고통스런 난관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믿음의 진실을 시험받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인자의 오심을 고대하고 있노라고 공언한다. 그러나,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불신자들에게 불행한 모본이 되어 왔다. 그들은 기꺼이 세상을 버리고자 하지 않았으며, 세상과 연합하고, 소풍과 그 밖의 쾌락적 모임에 참석하고, 순수한 오락에 젖어 있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하나님과 분리시키고 세상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이 바로 그런 방종임을 보았다. 하나님은 쾌락을 사랑하는 자를 당신의 추종자로 받아 주지 않으신다. 그분은 그와 같은 본을 우리에게 보여 주지 않으셨다. 오직 자아를 부정하고, 온건하고 겸손하고 거룩한 생애를 하는 자들만이 예수님을 진정으로 따르는 자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의 경박하고 헛된 대화에 휩쓸려 즐거움을 누릴 수 없다.

마음을 찢는 고민의 때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나는 분명한 증언들이 제시되어야 할 것과, 주님을 돕기 위해 나아오는 자들이 그분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을 보았다. 270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은 해야 할 일이 있다. 나는 후프가 가증한 것임을 보았다. 모든 안식일 준수자의 감화가, 파리의 평판 나쁜 집에서 생겨난, 죄악을 눈가림하고 있는 이 어리석은 유행을 견책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을 보았다. 나는, 비록 하늘에서 온 교훈일지라도 그 교훈을 실시할 개인들이 있을 것을 보았다. 그들은 가장 분명한 증언을 피하기 위하여 약간의 변명을 하고, 주어진 모든 빛을 무시하고, 유행이기 때문에 결과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후프를 입게 될 것이다.

이사야 3장의 예언이 이 마지막 때에 적용되는 것으로 내게 제시되었다. 외모와 과시만을 생각한 시온의 딸들에게 다음과 같은 책망이 주어져 있다. 25절을 읽어 보라. “너희 장정은 칼에, 너희 용사는 전란에 망할 것이며,” 나는 이 성경절이 철저하게 성취될 것을 보았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면서 그리스도인 경험을 하지 않고, 무거운 짐을 지지 않고 개인적 책임을 느끼지 않는 젊은 남녀들은 시험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티끌 가운데서 낮아지고, 그들이 얻지 못한, 하나님의 사물들을 경험하고자 갈망하게 될 것이다.

전쟁이 곧 터지려고 합니다.

아, 하나님! 이제 당신의 백성들을 지켜주소서.

조 직

나는 1861년 8월 3일에, 우리 교회가 조직되면 바벨론이 될 것이라고 몇 사람들이 염려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중앙 뉴욕에 있는 교회들은 완전한 바벨론, 곧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러므로, 이제 질서를 실천하고 강요할 수 있도록 교회가 조직되지 않을 것 같으면, 미래에 있어서 바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조각이 되어 흩어져 버릴 것이다. 이전의 교훈들은 분열의 요소를 장려해 왔다. 세우기 위한 것보다 살피고 비난하기 위한 정신을 품어 왔다. 271 만일, 하나님의 종들이 연합해서 그들의 위치를 지키고 과단성 있게 일해 왔을 것 같으면,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는 일치시키는 감화가 존재했을 것이다. 분리시키는 장애물은 산산조각으로 깨어졌을 것이다. 그리하여, 안식일 준수자들의 대열에는 지금껏 우리가 목격하지 못한 놀라운 능력과 힘이 존재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종들이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여행하면서 목회에 종사하는 다른 형제들의 반대의 영향을 목격할 때, 그들의 마음은 슬퍼진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걸어온 매 진보의 단계마다 그것을 반대하기 위한 준비를 갖추고 선 사람들이 있다. 담대하게 일해 보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동료 일꾼들 편에 있는 연합의 부족 때문에 슬프고 괴로워진다. 우리는 엄숙한 시대에 살고 있다. 사단과 악한 천사들은 강력한 힘으로 또한 세상을 도움의 대상으로 삼아 일하고 있다. 엄숙하고 중요한 진리를 믿노라고 주장하는 자칭 안식일 준수자들은 그들의 힘을, 하나님께서 세우고자 하시는 바를 무너뜨리고 파괴하는 흑암의 세력의 병합된 영향력과 연합시킨다. 그런 자들의 영향은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개혁의 진전을 막는 자들의 소위로 기록된다.

조직 문제에 대한 동요는 현대 진리를 증거하는 목사들 편에 도덕적 용기가 크게 부족하다는 것을 나타냈다. 조직이 옳다고 확신한 몇 사람들은 담대히 일어서서 그것을 옹호하지 못했다. 그들은 조직을 원한다는 사실을 불과 몇 사람들에게만 알려 주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비겁한 침묵과 실천의 부족을 좋아하지 않으셨다. 그들은 책망과 반대를 무서워했다. 그들은 그들이 옳은 일이라고 믿는 바를 위하여 담대히 일어서기 전에 일반적으로 그들의 형제들의 반응을 떠보기 위해 그들을 살펴보았다. 백성들은 그들이 좋아하는 목사들의 발언을 듣고자 기다렸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조직을 지지하는 말을 들을 수 없게 되자, 그들은 조직이 그릇된 것이라고 결정해 버렸다.

그러므로, 어떤 목사들은 조직을 지지하노라고 공언하지만 그들의 영향력으로 조직을 반대하게 되었다. 272 그들은 그들의 영향력을 잃어버릴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누군가가 나서서 책임을 지고, 위험을 무릅쓰고 영향력을 발휘하고자 모험해야 한다. 그런데, 이 같은 일을 한 사람이 비난과 책망으로 상처를 받게 될 때, 그는 그 짐을 지기 위하여 고난을 받는다. 그의 곁에 서서 그의 무거운 짐을 같이 져야 할 그의 동료 일꾼들은, 그가 홀로 전쟁을 치르면서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는지 관망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 거의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짐을 지고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의 고통과, 그의 번민과, 그의 눈물과, 그의 낙담과 실망을 주시하고 계신다. 그가 넘어지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붙들어 일으키시고, 피곤한 자를 위한 안식과, 성실한 자에게 줄 상급을 그에게 가르쳐 주신다. 그리하면, 그는 다시 무거운 짐을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 놓는다. 나는 모든 사람이 그의 행동에 따라 상급을 받을 것을 보았다. 책임을 회피하는 자들은 마침내 잃어버림을 당할 것이다. 목사들이 함께 서야 할 때는 전쟁이 치열할 때이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의무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에 관하여 질문이 자주 되풀이 되었으며, 우리 자신들도 안식일을 받아들이는 가난한 가족들을 어떻게 신중히 다룰 것인지에 대해 알고자 오랫동안 노력해 왔다. 나는 1861년 8월 3일 뉴욕 주 루스벨트에 있는 동안, 가난한 자들에 관하여 몇 가지 것들을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형제들이, 이 기별을 받아들이는 모든 가난한 가족들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요구하지 않으신다. 만일, 그들이 그렇게 할 것 같으면, 목사들은 자금의 고갈로 새로운 지역에 들어가는 일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근면과 검약의 부족으로 가난하게 산다. 그들은 재물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을 모른다. 만일, 그들이 도움을 받을 것 같으면 그들은 오히려 손해를 받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항상 가난할 것이다. 그들이 최선의 유익을 얻으려면, 그들의 상황에서 도움을 받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올바른 계획을 세우지 않음으로 적든 많든 간에 그들이 얻을 수 있는 모든 재물을 다 사용해버릴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빚에서 벗어나고 어려운 때에 대비하기 위하여 극기하고 절약하는 것을 전혀 모른다. 273 만일, 교회가 그들 자신의 재력에 의존하도록 그런 사람들을 버려 두지 않고 돕는다면, 결국 그들에게 손해를 주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벌이가 좋을 때에도 교회를 바라보고, 교회에서 도움을 받기를 기대하고, 극기와 절약을 실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번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되면, 그들은 사단의 유혹을 받아 형제들을 질투하고 그들에 대하여 매우 민감해진 나머지, 그들이 자기들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못할 것이라고 염려하게 된다. 잘못은 그들 편에 있다. 그들은 기만당하고 있다. 그들은 가난한 주님의 백성이 아니다.

가난한 자들을 돕는데 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주신 교훈은 이 같은 경우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불행을 당한 자들과 고통당하는 자들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을 연단하고 시험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섭리로 사람들을 고통받게 하셨다. 교회에 축복이 됨을 입증하기 위하여 과부들과 병약자들이 교회에 존재한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의 진정한 품성을 계발시키고 우리의 자비로운 구속주에 의하여 나타난 품성의 귀중한 특성들이 발휘되도록 하나님께서 택하신 방편들 중 일부이다.

독신으로 있을 때 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부양할 길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결혼하여 가족을 거느리게 된다. 그런데, 이보다 더 나쁜 것은, 그들이 가정을 다스리지 않는 점이다. 가정에서 취하는 그들의 모든 행동은 태만하고 게으른 습관으로 특징 지어진다. 그들은 스스로를 거의 제어하지 못하고, 화를 잘 내고, 참을성이 없고, 변덕스럽다. 그런 사람들이 기별을 받아들일 때, 그들은 그들보다 부한 형제들에게서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만일 그들의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들은 교회에 대하여 불평하고, 형제들이 믿음을 실천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이러한 경우에 누가 어려움을 당해야 할 것인가! 이 많은 가난한 가족들을 돌보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업이 활기를 잃고, 여러 곳에 있는 재원이 고갈되어야 할 것인가! 결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부모들이 어려움을 당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그들이 안식일 진리를 받아들인 후에는 그 전에 당한 것보다 더 큰 어떤 결핍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274 가난한 자들 중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극복하지 않으면 분명히 멸망을 초래할 죄악이 있다. 그들은 상스럽고 거칠고 세련되지 못한 습관을 가진 그대로 진리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들의 조잡한 상태를 보고 깨닫는데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게 되고, 그와 같은 상태는 또한 그리스도의 품성과 일치되지 않는다. 그들은 보다 양순하고 세련된 사람들을 교만한 자로 간주한다. 그대는 그들이, “진리가 우리 모두를 일정한 수준으로 끌어내린다”라고 하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진리가 진리를 받아들이는 자를 끌어내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잘못이다. 진리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의 취미를 세련되게 해주고, 그의 판단력을 거룩하게 해준다. 그러므로, 진리를 실천하면, 그는 하나님의 도성에서 거룩한 천사들과 교제하기에 적합한 사람이 된다. 진리는 우리 모두를 일정한 수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목적으로 주어진다.

좀더 역량 있는 자들은 가난한 형제들을 취급함에 있어서 언제나 고상하고 관대하게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훌륭한 충고를 해주고, 그들이 생애의 싸움을 감당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가난한 과부들과 고아들과 병약자들을 돌봐 주어야 할 가장 엄숙한 의무가 교회에 있음을 보았다.

모본의 힘

디도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서 2장 13, 14절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을 읽게 된다.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親)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위대한 과업은 자원하여 정결해지고자 하고 특별한 백성이 되고자 하는 자들과, 선한 일에 열심하는 자들에게 성취될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결케 하는 과정을 꺼려 하고 있는가! 그들은 진리를 실천하고 세상 사람들의 눈에 유별나게 보이기를 원치 아니한다. 이와 같이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있기 때문에, 우리의 영성과 순결과 열성은 파괴된다. 275 사단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감각을 마비시켜, 그들의 양심이 그릇된 것을 느끼지 못하고, 그들과 세상 사람들과의 구별의 표가 사라지게 하고자 자신의 능력을 끊임없이 발휘한다.

나는 의복에 관하여 질문하는 편지를 빈번히 받았는데, 어떤 사람들은 내가 기록한 것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였다. 세상의 유행을 본받고 있는 것으로 내 앞에 제시된 바로 그 부류의 사람들은 영향을 받거나 개혁을 하기에 매우 느리고 좀처럼 그렇게 할 것 같지 않았다. 또, 의복에 대한 취미와 규모가 없는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내가 기록한 것을 이용하여 반대의 극단으로 치우쳐, 그들 자신은 교만을 버린 것으로 생각하고, 산뜻하고 규모 있게 옷을 입은 사람들을 교만한 자로 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옷을 아무렇게나 괴상하게 입는 것을 특별한 미덕으로 여겨 왔다. 그런 사람들은 불신자들에 대한 그들의 영향을 파괴하는 길을 걷고 있다. 그들은 그들이 유익을 주어야 할 사람들에게 혐오를 느끼게 한다.

이상들은 교만과 세상의 유행을 본받는 일을 책망했고, 복장과 몸과 의복의 청결이 부족한 자들을 또한 책망했다. 특별히, 나는 현대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고 특별히 영광스럽게 하신 창조주를 우리가 존경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줄 수 있는 그런 태도로 그 날에 하나님 앞에 나타나기 위하여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을 보았다. 안식일을 존중하는 모든 사람들은 몸을 깨끗이 하고, 옷을 단정하고 규모있게 입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불결과 무질서를 불쾌히 여기시고 불경의 모든 증거를 주시하시는 엄격하신 하나님 앞에 나타나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햇빛 가리는 모자 외에는 그들의 머리에 어떤 것이나 쓰면 그릇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사람들은 매우 극단으로 치우친다. 단정하고 검소한 밀짚 모자나 견직물 모자를 쓰는 것이 교만이라고 불리어질 수는 없다. 우리의 믿음이 실천되기만 하면, 우리를 의복에 있어서 매우 검소하게 해주고 선한 일에 열심 있게 해줄 것이므로, 우리는 특별한 백성으로 특징 지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의복에 있어서 규모와 단정의 멋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사실상 진리에서 떠나게 된다. 진리는 결코 타락시키지 않고 향상시켜주기 때문이다. 276 불신자들은 안식일 준수자들을 뒤떨어진 사람으로 본다. 그리고, 안식일 준수자들이 의복을 등한히 하거나 그들의 태도가 조잡하고 거칠게 되면, 그들의 영향은 불신자들이 내린 결론을 더욱 강조하게 된다.

마지막 때의 위기에서,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면서 겸손과 극기의 모본 되시는 분을 본받지 않는 자들은 원수의 대열에 스스로를 놓게 된다. 원수는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간주하고, 그들은 그의 백성들 중 어떤 사람이 하는 것처럼 그를 위하여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살았다는 이름은 가지고 있으나 실상은 죽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공언을 하지 않았으면 그들의 모본은 배척되었을 것인데,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모본으로 삼아 그들을 따름으로써 하늘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같이 헌신하지 못한 공언자들은 그들의 영향력의 비중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매우 심한 갈등을 안겨 준다. 바울은 디도서 2장 15절에서,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바라고 있는 백성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고 그는 말한다.

교만과 세상의 유행을 따르는 일을 반대하는 증언을 할 때, 우리는 변명과 자아 변호의 말을 듣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모본을 내세운다. 그런 자매는 후프를 낀 옷을 입는다. 내가 후프를 사용하는 것이 잘못이라면, 그 자매 역시 잘못이다. 어린이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부모를 둔 다른 어린이들의 모본을 내세운다. A 형제는 교회의 집사이다. 그의 자녀들은 후프를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옷에 후프 사용하는 것이 그들보다 더 나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모본을 통하여, 헌신하지 못한 공언자들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자들을 대적하는 이론을 제공해 주는 자들은, 약한 자들의 길에 걸려 넘어지는 돌을 놓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모본에 대하여 하나님께 책임을 져야 한다. 나는 이따금, “후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나는 내가 받은 빛을 그대들에게 전해 주었다는 대답을 한다. 나는 후프가 수치스러운 것이며, 그처럼 어리석은 정도로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유행에 전혀 호의를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았다.

나는 때때로 “화잇 자매가 작은 후프를 사용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는 것을 듣고 놀란다. 277 어떤 사람도 나에게서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 후프에 관하여 내가 가진 견해를 본 후, 어떤 경우도 후프를 사용하도록 어떤 사람에게 권유할 수는 전혀 없었다. 무거운 누비 이불과 후프는 다 같이 불필요하다. 우리를 창조하신 분께서는 후프나, 후프와 비슷한 어떤 것으로 흉하게 되도록 결코 의도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 사람들의 허구(虛構)와 유행에 너무 오랫동안 지배되어 왔으므로, 그들은 그 사람들과 구별된 처지에 놓이기를 원치 않는다. 나는 성경을 연구할 때, 이 마지막 때의 하나님의 이스라엘을 보고 놀란다. 그들은 우상 숭배에서 떠나도록 권고를 받고 있다. 나는, 그들이 잠들어 있고 세상과 너무도 동화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않는 자를 구별하기가 어렵게 될까 두려워한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백성들 사이의 거리는 넓어져 가고, 그들과 세상과의 거리는 좁혀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과 세상 사람들을 구별하는 표는 거의 사라져 버렸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그들은 주변에 있는 민족들의 가증한 일을 따르고 있다.

내가 본 바에 의하면, 후프는 가증한 것이다. 후프는 꼴사납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유행에 최소한의 정도로라도 따르거나 호의를 보인다면, 그들은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 곧 특별한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은 후프를 버려야 하고, 그들의 행동은 후프를 입는 사람들에게 실제적, 견책이 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편리하다는 이유를 내세울 것이다. 나는 많은 여행을 하면서, 후프를 사용하는데 따르는 많은 불편을 보아 왔다. 건강을 위하여 필요하다는 이유를 내세우는 자들은, 후프가 누빈 치마보다 더 큰 손해를 줌에도 불구하고 겨울에 그것을 낀다. 자동차와 역마차로 여행하면서 나는 때때로, 아, 얌전한 맛이 어디에 있는가라고 부르짖게 되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 안으로 몰려 들어올 때 앞을 헤치고 나가기 위하여 후프를 들어 올려야 하고, 꼴사나운 모양으로 바뀌어지는 것을 목격해 왔다. 몸의 노출은 후프를 사용하지 않는 자들보다 사용하는 자들이 십 배나 더 많다. 만일, 유행이 아닐 것 같으면, 이처럼 조심성 없이 자신을 노출시키는 자들은 꾸짖음을 당했을 것이다. 278 그러나, 정숙과 고상함도 유행의 신에게 바쳐지지 않을 수 없다. 주님께서 이 가증한 죄에서 당신의 백성들을 건져 주시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는 유행의 노예가 된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후프를 사용할 때 약간의 편리가 있다고 상상한다면, 그것 때문에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하겠는가? 유행이 바뀌면, 편리는 더 이상 거론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에게는 “내가 어떤 점에서 세상과 분리되어있는가”라고 물어 볼 의무가 있다.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고 안전한 편을 택하도록 하자.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떤 십자가를 지고 있는가! 그들은 세상 사람들과 섞여서 그들의 정신에 참여하고, 그들과 같이 옷을 입고 이야기하고 행동한다.

디모데전서 2장 9, 10절을 읽어 보라.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또한 베드로전서 3장 3-5절을 읽어 보자.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모본의 힘은 크다. A 자매는 작은 후프를 사용하고자 한다. B 자매는 내가 후프를 사용하는 것이 A 자매만큼은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그는 좀더 큰 것을 사용한다. 또한, C 자매는 A 자매와 B 자매를 본받아서 그들의 것보다 좀더 큰 후프를 사용한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그들의 후프가 작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세상의 유행을 따르는 것이 나쁜 일임을 자녀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부모들은 힘겨운 투쟁을 겪게 된다. 그들은 이런 항의를 받게 된다. “어머니, 왜 A, B, C 자매들은 후프를 사용하고 있습니까! 그것이 나에게는 나쁘면서 그들에게는 나쁘지 않습니까?” 부모들이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279 그들은 자녀들 앞에 올바른 본을 보여 주어야 한다. 비록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의 모본 때문에 자녀들이, 부모가 그들을 제지하는데 지나치게 세심하고 가혹하다고 생각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이 양심적인 부모들의 활동을 축복하실 것이다. 만일, 부모들이 결정적이고 확고한 태도를 취하지 않을 것 같으면, 그들의 자녀들은 물결에 휩쓸려 떠내려갈 것이다. 사단과 악한 사자들이 그들의 마음에 역사하고 있고, 헌신하지 못한 믿음의 공언자들의 모본이 극복하려는 그들의 일을 한층 더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열렬한 기도로, 믿는 부모들은 의무의 거친 길에서 전진해야 한다. 십자가의 길은 전진하는 길이요 위로 올라가는 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길에서 전진을 계속하고 위에 있는 것을 구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세상에 속한 것들을 점점 더 먼 거리에 남겨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세상 사람들과 육신의 마음을 가진 신앙 고백자들이 죽음을 향하여 내리막길을 달려 내려가고 있는 동안, 언덕을 올라가는 자들은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 역시 그 사람들과 함께 내려가게 될 것이다.

세상의 자녀들은 어둠의 자녀들이라고 불리어진다. 그들은 이 세상의 신에 의하여 눈이 멀고, 흑암의 왕의 정신에 의하여 이끌림을 받는다. 그들은 하늘의 사물을 즐길 수 없다. 빛의 자녀들은 그들의 애정을 위에 있는 사물에 고정시키고 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을 뒤에 남겨 놓고 있다. 그들은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으라는 명령에 순종한다. 여기에는 “내가 너희를 영접하리라는 조건적 약속이 있다”(고후 6:17). 처음부터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택하시되, 그들이 세상에서 나와서 세상과 분리되고, 흑암의 헛된 일에 참여하지 말도록 요구하셨다.만일,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킬 것 같으면, 그들은 세상과의 교제와 그 쾌락을 사랑하는데서 멀어질 것이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은 조화되지 못한다.

방백들이 에스라 선지자와 유대 교회의 성실한 다른 종들을 찾아와서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과 떠나지 아니하고 … 가증한 일을 행”(스 9:1)한다는 말을 하자, 그들은 놀랐다. 280 “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죄로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당하였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 죄악보다 형벌을 경하게 하시고 이만큼 백성을 남겨 주셨사오니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일을 행하는 족속들과 연혼하오리이까 그리하오면 주께서 어찌 진노하사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의롭도소이다 우리가 남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사옵거늘 도리어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이로 인하여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스 9:13-15).

“제사장의 어른들과 백성도 크게 범죄하여 이방 모든 가증한 일을 본받아서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거룩하게 두신 그 전을 더럽게 하였으며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 사자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그 백성이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말씀을 멸시하며 그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로 그 백성에게 미쳐서 만회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대하 36:14-16).

“그러므로 너희 곧 너희의 동족이나 혹시 너희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나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고 이런 가증한 일의 하나도 행하지 말라 너희의 전에 있던 그 땅 거민이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고 그 땅도 더러워 졌느니라”(레 18:26, 27).

281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의 알지 못하던 신, 근래에 일어난 새 신, 너희 열조의 두려워하지 않던 것들이로다 너를 낳은 반석은 네가 상관치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은 네가 잊었도다 여호와께서 보시고 미워하셨으니 그 자녀가 그를 격노케 한 연고로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하고 그들의 종말의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종류요 무신한 자녀임이로다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자로 나의 질투를 일으키며 그들의 허무한 것으로 나의 진노를 격발하였으니 나도 백성이 되지 아니한 자로 그들의 시기가 나게 하며 우준한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격발하리로다 내 분노의 불이 일어나서 음부 깊은 곳까지 사르며 땅의 그 소산을 삼키며 산들의 터도 붙게 하는도다”(신 32:16-22).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고대 이스라엘에게 하신 경고를 읽게 된다. 그들이 광야에서 그처럼 오랫동안 방황하는 것이 그분의 소원은 아니었다. 그들이 순종하여 그분의 지도를 받고자 했을 것 같으면, 그분께서는 그들을 즉시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광야에서 너무 자주 그분을 거스렸으므로, 그분께서는 그분을 완전히 따른 두 사람 외에는 당신의 안식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고 분노 중에 맹세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오직 당신만을 신뢰하도록 요구하셨다. 그분은 그들이 당신을 섬기지 않는 자들에게서 도움을 받기를 원치 않으셨다.

에스라 4장 1-5절을 읽어 보라.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전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로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같이 너희 하나님을 구하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의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경영을 저희(沮戱)하였으며,”

282 “때에 내가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것과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고하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베푸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스 8:21-23).

선지자와 그 족장들은 그 땅의 사람들을, 참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로 인정하지 않았다. 비록 그 사람들이 우호를 공언하고 그들을 도와주기를 원했지만, 그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에 관련된 어떤 일에 있어서도 그들과 연합하고자 하지 않았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고 하나님의 예배를 회복하고자 할 때, 그들은 도중에서 왕의 도움을 구하지 않고 금식과 기도로 주님께 도움을 구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지켜 주고 번영케 해주실 것을 믿었다. 만물의 창조주께서는 그분을 경배하는 일에 있어서 그분의 원수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악의 희생 제물을 요구하지 않으시고, 주님 앞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는 자들의 예물을 받지도 않으신다.

우리는 흔히 지나치게 배타적이라는 말을 듣는다. 우리는 한 백성으로서, 영혼들을 구원하거나 그들을 진리로 인도하기 위하여 어떤 희생이라도 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들과 연합하고,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세상과 친구가 되는 일은 감히 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과 불화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음 성경절들을 읽어 보면, 하나님께서 고대 이스라엘을 어떻게 취급하셨는지 알 수 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음이로다”(시 135:4).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의 기업의 백성을 삼으셨느니라”(신 14:2).

283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신 7:6, 7).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출 33:16).

고대 이스라엘은 얼마나 자주 반역하였으며, 얼마나 자주 그들은 심판을 받았던가.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들을 택해 주신 하나님의 명령에 유의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 마지막 날의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세상과 섞여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서의 모든 특성을 잃어버릴 위험을 끊임없이 안고 있다. 다시, 디도서 2장 13-15절을 읽어 보라. 하나님께서 특별한 한 백성을 순결케 하고 계시는 동안, 우리는 마지막 날까지 와 있다. 우리는 고대 이스라엘처럼 그분을 격노케 할 것인가! 우리는 그분에게서 떠나 세상과 일치되고, 우리 주변에 있는 나라들의 가증한 일을 따름으로써 그분의 진노를 자초할 것인가!

주님께서는 자신을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셨다. 하나님께 대한 이와 같은 헌신과 세상에서의 분리는 구약과 신약 성경에서 다 같이 분명하고 적극적으로 명령하고 있다. 주님께는, 세상의 것과, 그분께서 세상에서 택하여 그분 자신에게 거룩하게 하신 것과를 친히 분리시키는 벽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의 부르심과 특성은 독특하며, 그들의 전망(展望) 역시 그러하다. 그러므로, 이 특성이 그들을 다른 모든 백성들과 구별 지어준다. 세상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은 처음부터 마지막 때까지 하나의 몸이다. 그들은 그 몸을 지도하고 다스리는 하나의 머리를 가지고 있다. 세상에서 분리되도록 고대 이스라엘에게 내린 동일한 명령이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내리고 있다. 교회의 위대한 머리는 바뀌지 않았다. 284 이 마지막 날의 그리스도인의 경험은 고대 이스라엘의 여행과 매우 유사하다. 고린도전서 10장을 읽되, 특별히 6절에서 15절까지 읽어보라.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요일 3:1).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벧후 2:20).

285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약 4:4).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 1:27).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딛 2:1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 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4, 15, 17).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저희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눅 6:22, 23).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로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6-19).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요일 4:4, 5).

286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5, 6).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하나님의 백성들이 독특하고 그들 주위에 있는 불신의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분명해지는가. 우리의 위치는 흥미롭고도 두렵다. 마지막 날에 살면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고 그분께서 가신 그대로 걸어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사람들의 의견과 지혜가 우리를 지도하거나 다스려서는 안 된다. 그들은 언제나 십자가에서 떠나도록 지도한다. 그리스도의 종들은 이 세상에 그들의 집이나 재물을 두어서는 안 된다. 그들 모두는 오직 주님께서 다스리시므로, 우리가 원수들 사이에서도 평화롭고 안전하게 거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세상의 특별한 은총을 구하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 아니다. 우리는 싸움이 끝나고 승리를 얻을 때까지, 가난해지고 사람들 사이에서 멸시받는 것을 수락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스도의 지체들은 세상에서 나와서 세상의 교제와 정신에서 분리되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힘과 능력은 하나님의 택하심과 가납하심을 받는데서 생긴다.

하나님의 아들은 만물의 후사였으며, 이 세상 나라들의 통치와 영광이 그분께 약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분께서 이 세상에 나타나실 때는 부나 화려함이 없었다. 세상 사람들은 하늘 아버지와 그분이 일체이심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그분의 거룩한 품성의 탁월함과 영광은 그들에게 숨겨졌다. 287 그러므로, 그분은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사 53:3, 4). 그리스도께서 세상에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그분을 따르는 자들도 그러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들이다. 그리고, 나라와 통치가 그들에게 속한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특성과 거룩한 부르심을 이해하지 못하며, 그들이 하나님의 가족으로 입양된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이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과 연합되어 있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그들의 겸비와 굴욕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그들이 현재 어떤 위치에 있으며 장차 어떻게 될 것인지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은 나그네들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알지 못하고,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를 깨닫지 못한다.

세상은 멸망을 위하여 익어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참으시나, 조금만 더 오래 참으실 것이다. 그들은 자비가 섞이지 않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에 있는 찌끼를 마셔야 한다. 하나님의 후사이며 불멸의 유업을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들이 될 자들은 독특해야 할 것이다. 물론, 너무도 독특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의 것, 곧 완전히 당신의 것이라는 표를 하시게 된다. 그대는 하나님께서, 세상과 너무도 동화되어 있기 때문에 오직 이름만으로 구별된 한 백성을 영접하고, 영화롭게 하고, 인정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디도서 2장13-15절을 다시 읽어 보라. 누가 주님 편에 속해 있는지, 누가 예수님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인지 미구에 알게 될 것이다. 불신자들의 면전에서 그들의 위치를 양심적으로 차지하고, 세상의 유행을 버리고, 예수님의 자아 부정의 생애를 본받을 도덕적 용기가 없는 자들은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고 그분의 모본을 좋아하지 않게 된다.

헌 신

하나님의 백성들은 시험을 받아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이다. 면밀하게 살피는 사업이 안식일 준수자들에게 진행되어야 한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는 얼마나 쉽게 하나님과 그분의 놀라운 업적을 잊어버리고 그분께 반역하는가. 288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뒤돌아보고, 그 곳에서 즐기던 좋은 것들, 곧 하나님께서 그들을 연단하고 당신께 대한 그들의 충성심을 시험하기 위하여 그들이 하지 못하도록 제지하신 것들을 탐한 것처럼, 어떤 사람들은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의 유행을 따르고, 세상의 쾌락에 동참하고자 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당신을 섬기는 일과, 당신이 그처럼 이적적으로 그들에게 주신 자유를, 그들이 애굽에서 전제적이요 우상을 섬기는 백성들에게 예속되어 있는 동안 누리던 방종보다 얼마나 더 높이 평가하시는지 보기를 원하셨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치러야 할 희생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연단하시고 그들의 믿음의 진실을 시험하실 것이다. 나는 예수님을 진정으로 따르는 자들이 쾌락을 목적으로 하는 소풍, 기부 활동, 흥행, 그 밖의 모임 등을 하지 않을 것을 보았다. 그들은 거기서 예수님을 발견할 수 없고, 그들에게 하늘에 속한 마음을 갖게 하고 은혜 안에서 자라나게 하는 감화를 찾을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게 되면, 우리는 이 모든 것에서 나오게 되고 그것들과 분리된다. 십자가를 사랑하는데 몰두하지 않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영적으로 경배하지 않는 모든 자들은, 세상에 속한 사물을 구하여 존중하고 즐길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들 사이에는 겨가 있다. 우리가 이처럼 약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사람들은 끊임없이 세상을 의지하고 있다. 그들의 견해와 생각은, 자아 부정의 생애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정신보다 세상 사람들의 정신과 훨씬 더 조화를 잘 이룬다. 그들이 그들의 정신과 조화가 가장 잘 되는 자들의 무리에 속하고자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너무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그들은 그 사람들과 한 무리가 되어 같은 이름을 갖게 되고, 불신자들과 연약한 자들과 교회 안에 있는 헌신하지 못한 자들의 화제거리가 된다. 이와 같이 두 마음을 가진 자들은, 개인의 잘못을 책망하는 분명하고 솔직한 증언들에 대하여 언제나 반대의 입장을 취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정결케 하는 시대에, 이런 사람들은 진리를 순종함으로 완전히 회심하고 거룩해지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속한 세상 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보응을 받게 되든지 할 것이다.

289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20).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자들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열매를 맺게 된다. 그들의 생애는 하나님의 영으로 그들 안에 선한 일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과, 그들이 거룩함의 열매를 맺고 있다는 것을 증거한다. 그들의 생애는 고상하고 순결하다. 그러나, 열매를 맺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께 속한 것에 경험이 없다. 그들은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께 붙어 있지 않다. 요한복음 15장 4, 5절을 읽어 보라.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신령하게 예배하는 자가 되고자 하면, 우리는 모든 우상을 버리고 첫 네 계명을 완전히 순종해야 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마 22:37, 38). 첫 네 계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애정을 분리시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어떤 것도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가장 큰 기쁨에서 분리시키거나 나누도록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그 일에서 애정을 분리시키거나 심령을 떠나게 하는 것은 무엇이나 어떤 형태의 우상이 된다. 우리의 육신적 마음은 우상에 집착되어, 그것을 간직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버리기 전에는 앞으로 전진할 수 없다. 그것이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분리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위대한 머리이신 분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세상에서 택하셔서, 구별되기를 요구하신다. 그분은 당신의 계명의 정신이 그들을 당신 자신에게로 이끌어서 그들로 하여금 세속적 요소에서 분리되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면, 세상의 쾌락과 교제를 즐기는 상태에서 멀어지게 된다. 그리스도와 벨리알과는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안전하게 그분을 신뢰하고 두려움 없이 순종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철학과 헛된 속임수

290 나는 우리가 모든 면에서 경계하고 사단의 암시와 책략을 끈덕지게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보았다. 그는 스스로를 빛의 천사로 가장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속이고, 그들을 사로잡아 이끌고 있다. 인간의 마음을 파악함으로 그가 얻는 이점은 엄청나게 많다. 이 점을 이용하여, 그는 뱀처럼 하나님의 사업을 훼손시키기 위하여 들어온다. 그는 그리스도의 이적과 업적을 인간의 기량과 능력처럼 나타내고자 한다. 만일, 그가 공공연하고 대담하게 그리스도인을 공격할 것 같으면, 그리스도인은 고통과 번민 가운데 그의 구속주의 발 앞에 나아가게 될 것이고, 그리스도인의 강하고 능력 많은 구원자께서는 그 대담한 원수를 쫓아 버리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스스로를 빛의 천사로 가장하여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고, 유일하고 안전하고 바른 길에서 떠나도록 유혹한다. 골상학, 심리학, 최면술 등은 그가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더욱 직접적으로 접근하여 은혜의 시기의 끝에 그의 활동의 특징이 되는 능력을 발휘하는 매개체이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8-12절을 읽어 보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단은 눈에 띄지 않게 이와 같은 과학을 통하여 접근해 와서,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손해를 주고 그들을 불신으로 이끌었다. 그는 이와 같은 과학이 널리 퍼지기를 참으로 좋아한다. 사람들의 마음에 접근할 길을 얻어 그가 원하는 대로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한 것은 그 자신이 직접 세운 계획이다. 291 한 사람의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놀라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사단은 즉시 유혹의 말을 던지고 좌우 어느 편에서나 활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과학에 몰두한 자들이 증언하는 위대하고 선한 사업을 그들이 이루었다는 이유로 하늘에 이르기까지 의기양양해 한다면, 그들은 모든 능력과 징조와 거짓 기사, 곧 온갖 속임수와 불의를 가지고 들어와서 활동하는 사단 자신을 마음에 품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천사는 말했다. “그 영향력을 주시해 보라.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와 같이 과학을 통하여 사단이 잠입해 들어오는 것은 사단의 왕이 고안한 것이며, 마침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그리스도가 메시아 곧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다는 참 믿음을 소멸해 버릴 것이다.

나는 주님께서 모세를 바로 앞에 보내셨을 때 그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보도록 지시를 받았다. 사단은 모세의 사업을 이해하였으므로 싸울 태세가 되어 있었다. 그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속박의 멍에를 깨뜨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다는 것과, 그의 사업을 통하여 인간 가족을 지배하는 사단의 능력을 깨뜨리고 그 능력에 사로잡힌 자들을 구원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초림이 표상된 것도 잘 알았다. 사단은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그분을 통하여 큰 일과 이적이 이루어질 것과, 세상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분을 보내신 것을 알게 될 것도 알았다. 그는 자신의 권세를 잃게 될까봐 떨었다. 그는 그의 사자들로 더불어 다음의 두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일을 어떻게 성취시킬 것인지 의논했다. 첫째, 그의 사자들을 활동시켜 하나님의 참 업적의 모조품을 만들어서, 하나님이 당신의 종 모세를 통하여 이루신 업적의 영향력을 소멸시킨다. 둘째, 그가 요술사들을 통하여 이룬 업적이 각 시대의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실 큰 이적과 업적을 믿는 믿음을 소멸시켜 버리는 영향을 미치게 한다. 사단은 인류를 사로잡고 있는 자신의 능력이 그리스도께 굴복될 것이므로 자신의 나라가 어려움을 당할 것을 알았다. 292 바로 앞에서 이루어진 이적들이 나타난 것은 모세가 소유한 인간적 영향력이나 힘의 결과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그 표적과 기사들은, 영원 자존자(永遠 自尊者) 되신 하나님이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 주어 하나님을 섬기도록 명령하기 위하여 모세를 통하여 이루어진 것이었다.

바로는 요술사들에게 마술을 행하도록 요구했다. 그들 역시 표적과 기사를 나타냈다. 사단이 그들을 도와 주기 위하여 와서 그들을 통하여 역사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하나님의 역사가 사단의 능력보다 더 우월함을 보여 주었다. 왜냐하면, 요술사들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루신 그 모든 이적들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이적들 중 소수의 것만을 행할 수 있었다. 요술사들의 지팡이도 뱀이 되었다.* 그러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 지팡이를 삼켜버렸다. 요술사들이 이를 만들어 내고자 애를 썼으나 할 수 없게 되자,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바로에게까지도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출 8:19)라고 말하게 되었다. 사단은 요술사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의 이적적 표현에 대하여 전제적인 바로의 마음을 굳게 하기에 알맞은 방법으로 역사했다. 사단은, 모세와 아론의 사명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임을 믿는 그들의 믿음이 흔들리게 되면 그의 대리자인 요술사들이 우세해질 것으로 생각했다. 사단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섬기게 되기를 원치 않았다. 요술사들은 이의 이적을 행할 수 없게 되어, 더 이상 모세와 아론을 모방할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더 이상의 것을 하게 하지 않으시자, 요술사들은 재앙에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게 되었다. “술객도 독종으로 인하여 모세 앞에 서지 못하니 독종이 술객들로부터 애굽 모든 사람에게 발하였음이라”(출 9:11).

하나님의 지배의 능력이 사단의 활동 매체를 여기서 끊어 버리게 되자, 사단이 그처럼 놀랍게 역사해 온 자들까지도 하나님의 진노를 느끼게 되었다. 293 바로가 믿을 마음만 있었으면 믿을 수 있는 충분한 증거가 그에게 주어졌었다.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을 했다. 그러나, 요술사들은 그들 자신의 기량만으로 일하지 않고, 하나님의 업적을 모조하는 자신의 기만적 사업을 교묘하게 이루어 온 그들의 신 곧 마귀의 능력으로 일했다.

우리가 시대의 끝에 접근해 갈수록, 사람들의 마음은 사단의 책략에 더욱 쉽게 영향을 받게 된다. 사단은 기만당한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사업과 이적을 일반적 원칙에서 헤아리게 한다. 사단은 그리스도의 사업을 모조하여 그 자신의 능력과 주장을 세우고자 언제나 야망을 품어 왔다. 그는 이 일을 일반적으로 공공연하고 대담하게 하지 않는다. 그는 교활하므로, 자신의 사업을 이루기 위한 가장 효과적 방법이 빛의 천사의 모양을 하고 가난하고 타락한 사람에게 접근하는 길임을 안다. 사단은 광야에서 아름다운 젊은이의 모습 곧 타락한 천사라기보다는 군주와 같은 모습으로, 그의 입에 성경 말씀을 가지고 그리스도께 왔다. 그는 “기록하였으되” 라고 말했다. 그러자, 고통 중에 계신 우리 구주께서도 “기록하였으되”라는 성경 말씀으로 그를 대항하셨다. 사단은 우리와 같은 인성을 입으신 그리스도의 연약하고 고통당하는 상태를 이용하였다.

마태복음 4장 8-11절을 읽어 보라.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여기서, 사단은 그리스도 앞에 가장 매력적인 빛으로 세상을 펼쳐 놓고, 그분께서 세상의 나라들을 얻기 위하여 그처럼 많은 고난을 겪을 필요가 없다고 암시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경배하기만 하면, 그는 자신의 소유로 주장해 온 모든 것을 양보할 것이었다. 사단의 불만은, 그가 지배력에 있어서 첫째요 가장 높지 못하다는 것, 곧 하나님과 동등하고 그리스도보다 높지 못하다는 이유로 처음에 하늘에서 시작되었다. 294 그는 반역하여 자신의 지위를 잃어버렸다. 그리하여, 그와 그에게 동조한 자들은 하늘에서 쫓겨났다. 광야에서 그는 연약하고 고통 중에 있는 그리스도의 상태를 통하여 유리한 위치에 서서, 그가 하늘에서 얻을 수 없었던 존경을 그분으로부터 얻고자 희망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비록 쇠약하고 기진한 상태나 한순간도 사단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우월하심을 나타내고, 사단에게 “물러가라.” “내게서 떠나가라”고 명령하심으로 당신의 권위를 발휘하셨다. 사단은 패배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목적을 어떻게 성취시킬 수 있을 것인지, 그가 하늘에서, 또한 지상에서 예수님께 거절당한 존경을 어떻게 인류에게서 받을 수 있을지를 연구하였다. 그가 그리스도를 유혹하는 일에 성공을 거두었을 것 같으면, 그는 인류에게 속절없는 불행을 초래하는 일에 성공을 거두었을 것이다. 사단은 그리스도께 접근하는데 실패했지만 인류에게 접근하는데는 성공했다.

만일, 사단이 사람들의 마음을 흐리게 하고 기만하여 그들이 위대하고 선한 일을 성취할 수 있는 선천적 능력이 그들 속에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할 수만 있으면, 그들은 할 수 있는 힘이 그들속에 있다고 생각하는 그 일을 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된다. 그들은 어떤 초월한 능력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장하시는 영광과, 그분의 위대하고 탁월한 주권에 합당한 영광을 그분께 돌리지 않게 된다. 그리하여, 사단의 목적은 성취된다. 그리고 그는, 그가 하늘에서 스스로를 높이고 추방당한 것처럼 타락한 사람들이 주제넘게도 스스로를 높이는 일을 기뻐한다. 사단은 사람이 스스로를 높이면, 그 자신의 멸망이 분명했듯이 그 사람의 멸망도 분명한 것을 안다.

사단은 광야에서 그리스도를 시험하는 일에 실패했다. 구원의 계획은 이루어졌다. 비싼 값이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지불되었다. 이제 사단은 그리스도인의 소망의 기초를 허물어 버리고, 사람들이 그들에게 제공된 큰 희생을 통하여 유익을 얻거나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고자 애쓰고 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속임수와 불의”를 통하여 타락한 사람이 속죄 없이도 아무런 지장이 없고,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부활하신 구주를 의지할 필요도 없고, 자신의 공로로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게 한다. 295 그리고, 그가 여기에서 성공을 거두어, 그 자신의 정체를 알아내는 탐지기를 믿는 믿음을 소멸시켜 버리면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는 성경을 믿는 사람의 확신을 없애 버린다. 그는 실제적으로 마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기만을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심어 주고 있는데, 이 사실을 믿는 자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을 대항하여 싸우는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가련하고 눈먼 사람들은, “무엇이나 존재하는 것은 옳다” 는 좌우명을 마침내 채택하게 된다. 그들은 그들의 행동을 규제하는 어떤 규범도 인정하지 않는다.

사단은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필요 없는 형식에 불과하다고 믿게 한다. 그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그의 간계와 기만을 대항하기 위하여 깨어 기도하고 명상하는 것이 어느 정도로 필요한지 잘 안다. 그는 자신의 계략을 통하여 사람의 마음을 이 중요한 활동에서 떠나게 하고, 그의 공격에 저항하기 위하여 사람이 전능하신 분의 도움을 의지하고 그분에게서 힘을 얻지 못하게 하고자 한다. 나는 옛날 하나님의 백성들의 열렬하고 능력 있는 기도를 주목하게 되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 간절히 기도”(약 5:17)했다.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그의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사단은 열렬한 기도의 소리를 들으면 화를 낸다. 그가 손해를 입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니엘은 탁월한 정신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났다. 타락한 천사들은, 다니엘이 높은 지위에 있었기 때문에, 나라의 통치자들을 지배하는 그들의 힘이 그의 영향력 때문에 약해질 것을 두려워했다. 흠잡기를 좋아하는 악한 천사의 무리들은 총리들과 방백들을 충동하여, 시기하고 질투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이 다니엘을 대적하여, 왕에게 보고할 어떤 흠을 찾아내고자 철저히 살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이 사단의 대리자들은, 하나님께 대한 그의 성실성을 그의 죽음의 원인이 되게 하고자 노력했다. 악한 천사들이 그들을 위하여 계획을 세우자, 그 대리자들은 그 계획이 쉽게 효력을 나타내게 했다.

왕은 다니엘을 대적하기 위한 간교한 획책을 알지 못했다. 296 왕의 조서의 내용을 완전히 알고서도, 다니엘은 창문을 열어 놓고 하나님 앞에 여전히 머리를 숙인다. 그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일이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그 일을 그만두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일 때문에 그는 사자 굴에 던짐을 받는다. 그리하여, 악한 천사들은 그들의 목적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다니엘은 사자 굴에서까지 기도를 계속한다. 그는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가? 하나님께서는 그를 그 곳에서 잊어버리셨던가? 아니, 결코 그렇지 않다. 강력한 하늘 천사들의 사령관 되시는 예수님께서 굶주린 사자들의 입을 막기 위하여 당신의 천사를 보내셨으므로, 그 사자들은 기도하는 하나님의 종을 해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 무서운 굴 속에서 모든 일은 평화로웠다. 왕은 다니엘이 무사히 보호받은 것을 보고 기뻐하며, 그를 나오게 하였다. 사단과 그의 사자들은 패배하여 화를 내었다. 그가 사용한 대리자들은, 그들이 다니엘을 죽이기 위하여 음모를 꾸몄던 것과 동일한 무서운 방법으로 멸망받는 운명에 처해졌다.

믿음의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큰 능력이 되므로, 분명히 사단을 이기게 해줄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는 우리가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암시한다. 우리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의 이름을 그는 몹시 싫어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열렬한 기도로써 그분께 도움을 구할 때, 사단의 군대는 놀란다. 우리가 기도하는 일을 등한히 하면, 사단의 목적 성취에 도움이 된다. 그렇게 되면, 그의 거짓 이적이 더 쉽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시험하는데서 그가 성취할 수 없었던 성과를 그는 사람 앞에 자신의 기만적 유혹을 제시함으로 달성하고 있다. 그는 때때로 매력적인 젊은이, 혹은 아름다운 모습의 사람으로 접근한다. 그는 치료를 해주고, 기만당한 사람들에게 인류의 시혜자(施惠者)로 경배를 받는다. 골상학과 최면술이 크게 높임을 받는다. 그것들은 그 나름대로 일리가 있으나, 영혼들을 기만하고 파멸시키는 사단의 가장 강력한 매개체로 그에게 사로잡혀 있다. 그의 기량과 책략들은 하늘에서 온 것으로 인정을 받고, 탐지기 곧 성경을 믿는 믿음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소멸된다. 사단은 여기서 그의 극악한 지배권에 합당한 경배를 받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악령과 이야기하고, 그에게서 교훈을 받고, 그의 가르침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297 골상학과 최면술에 의하여 참으로 많은 혜택을 입는 것으로 생각되는 세상은, 일찌기 그만큼 타락한 적이 결코 없었다. 사단은 덕성을 파괴시키고 강신술의 기초를 놓기 위하여 이것들을 이용한다.

나는 특별히 현대 강신술에 해당되는 것으로 다음의 성경절을 주목하게 되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골 2:8). 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골상학과 최면술에 의하여 파멸의 경지에 이르고, 불신 가운데로 빠져 들어가게 된 것을 보았다. 마음이 그 매개체 속으로 끌려 들어가기 시작하면, 마음은 거의 틀림없이 균형을 잃고 마귀의 지배를 받게 된다. “헛된 속임수”가 가련한 영혼들의 마음을 채우게 된다. 그들은 그들 자신 안에 큰 일을 성취시킬 만한 능력이 있으므로 더 큰 능력의 필요를 깨닫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의 원칙과 믿음은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다. 예수님은 이 같은 철학을 그들에게 가르치지 않으셨다. 그런 종류의 것은 그분의 가르침에서 전혀 발견할 수 없다. 그분은 가련한 영혼들의 마음이 자기 자신을, 또한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힘을 주목하도록 지도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그들의 마음을, 그들의 힘과 지혜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 곧 우주의 창조주께로 언제나 이끌고 계셨다. 18절에 특별한 경고가 주어져 있다.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강신술의 교사들은 그대를 속이기 위하여 마음을 즐겁게 하고 호리는 방법으로 접근한다. 그러므로, 그대가 만일 그들의 헛된 말에 귀를 기울이면, 그대는 의의 원수에게 속임을 당하고 그대의 상급을 분명히 상실할 것이다. 대 기만자의 매혹시키는 영향이 일단 그대를 정복하게 되면, 그대는 해독을 입게 되고, 그 치명적 영향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 그대의 믿음을 훼손시키고 소멸시켜 버리므로, 그대는 그분의 피의 공로를 의지하지 않게 된다. 298 이 철학에 의하여 속임을 받은 자들은 사단의 기만을 통하여, 그들이 받을 상급에 대하여 속임을 당한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 공로를 의지하고, 일부러 겸손하고 즐겨 희생까지도 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그들의 마음을 전혀 무의미한 것을 믿는데 바치고, 그들이 죽은 친구들이라고 믿는 자들을 통하여 가장 터무니없는 사상을 받아들인다. 사단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하고 그들의 판단력을 왜곡시켜 버렸으므로, 그들은 악을 깨닫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지금 하늘에서 천사들이 되어 있는 그들의 죽은 친구들에게서 온 것이라는 요지의 교훈들을 철저히 따른다.

사단은 가장 자신 있고 매혹적인 기만, 곧 사랑하는 자들을 무덤 속에 장사한 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기만을 택하였다. 악한 천사들은 그 사랑하는 자들의 모습을 취하고, 그들의 생애와 관련된 사건들을 이야기하고, 그들의 친구들이 생전에 했던 행동을 한다. 이 같은 방법으로 악한 천사들은 죽은 자의 친척들을 기만하여, 그들의 사별한 친구들이 천사가 되어 그들 주변에 떠다니면서 그들과 교통하고 있다고 믿게 한다. 그들은 이것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바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그들에게 더 큰 영향을 준다. 죽은 친구로 가장한 그 악한 천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익한 이야기로 완전히 거부해 버리든지, 그 말씀이 그들의 의도에 가장 적합하다고 여겨질 때는,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하늘 가는 길을 가르쳐 주는 요긴한 부분을 택하여 그들 자신의 타락한 본성에 맞추고 영혼들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의 진술을 바꾸어 버리든지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이 살펴본다면, 모든 사람은 영혼을 파멸시키는 이 기만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하게 주장한다.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다시는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라 그 사랑함과 미워함과 시기함이 없어진지 오래니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에 저희가 다시는 영영히 분복이 없느니라”(전 9:5, 6).

기만당한 사람들은 악한 천사들을 경배하고, 그들이 죽은 친구들의 영인 줄로 믿고 있다. 299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하게, 죽은 자는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에 다시는 영영히 분복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강신술사들은, 죽은 자들이 해 아래서 행해지는 모든 일을 알고, 그들이 지상에 있는 친구들과 교통하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이적을 행한다고 말한다. “죽은 자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 데 내려가는 아무도 못하리로다”(시 115:17). 천사로 가장한 사단은 온갖 불의의 속임수로 활동한다. 천사들보다 조금 못하게 되신 하나님의 아들을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울 수 있었던 자, 그분을 지극히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 나라들을 그분 앞에 펼쳐 놓을 수 있었던 자는, 그분보다 힘과 지혜에 있어서 훨씬 열등한,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인성을 쓰신 후에 사는 인간 가족에게 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 타락한 시대에, 사단은 바른 길에서 떠나 그의 영역에서 모험하는 자들을 지배한다. 그는 그런 자들에게 놀라운 방법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다. 나는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 한다는 말을 주목하게 되었다. 나는 어떤 사람들이 그들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고 악과 더불어 희롱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강신술을 참으로 믿고 있지는 않다. 그들은 자신들이 영매가 된다는 생각을 하면 놀라서 뒤로 물러설 것이다. 그럴지라도 그들은 모험을 하고, 사단이 그들에게 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스스로를 둔다. 이런 사람들은 이 일에 깊이 빠져 들어가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마귀의 영역에서 모험을 하고, 그가 그들을 지배하도록 유혹하고 있다. 이 강력한 파괴자는 그들을 자신의 정당한 포로로 여기고, 그들의 뜻과 상관없이 그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행사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제어하고자 하지만 할 수 없다. 그들이 마음을 사단에게 굴복시켰으므로, 그는 자신의 것을 놓아 주지 않고, 그들을 포로로 사로잡는다. 하나님을 성실하게 따르는 자들의 열렬한 기도의 응답으로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 외에는 어떤 능력도 사로잡힌 그 영혼을 건져 낼 수 없다.

300 오늘날 유일한 안전책은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그대로의 진리를, 감춰진 보화를 찾듯이 찾는 것이다. 안식일 문제, 사람의 본질, 예수의 증거 등은 이해되어야 할 위대하고 중요한 진리들이다. 이 진리들은 이 위기의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붙들어 주는 닻이 된다는 사실이 판명될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멸시하고 오히려 꾸며낸 이야기를 좋아한다.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살후 2:10, 11)이라.

가장 사악하고 타락한 자들은, 그들이 죽은 친구들의 영이라고 믿는 이 사단의 영들에 의하여 매우 크게 치켜세워진다. 그리고, 그들은 육신적 마음으로 쓸데없이 의기 양양해 한다.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골 2:19). 그들은 하나님의 성장의 계획대로 각 지체들이 자라도록 몸에 힘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을 부인한다.

이 얼마나 헛된 철학인가! 몸의 지체들은 머리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 그러나, 강신술사들은 머리를 등한히 하고, 몸의 모든 지체들이 스스로 움직여야 하며, 고정된 법칙들이 머리 없이 완전을 향해 가는 향상의 상태로 그들을 이끌어 갈 것이라고 믿고 있다.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 15:1, 2, 4-6).

301 그리스도는 우리의 힘의 근원이시다. 그분은 포도나무이며, 우리는 그 가지이다. 우리는 산 포도나무에서 영양분을 받아야 한다. 그 포도나무에서 힘과 영양분을 박탈당하면 우리는 머리 없는 몸의 지체들처럼 되어, 사단이 우리에게 바라는 바로 그 상태에 빠지게 되고, 그가 원하는대로 지배된다. 사단은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살후 2:10, 11) 하신다. 강신술은 거짓이다. 그것은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한 최초의 큰 거짓말 위에 세워져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베어 버렸다. 그 결과로, 지체들은 예수님을 머리로 삼아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다른 것이 몸을 움직인다. 사단이 그 사람을 지배한다.

나는 사람들이 자신을 사단의 지배에 맡기지 않는 한 사단이 마음을 지배할 수 없음을 보았다. 바른 길에서 떠나는 자들은 오늘날 심각한 위험에 빠지게 된다. 그들이 하나님에게서 와 그분의 천사들의 감시에서 분리되면, 영혼들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언제나 깨어 있는 사단은 그들에게 자신의 기만을 제시하기 시작한다. 그런 사람들은 가장 위험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들은 흑암의 세력을 깨닫고 그것을 저항하고자 노력하고 사단의 올무에서 벗어나고자 애쓰지만,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다. 그들이 사단의 영역에서 모험을 했기 때문에, 사단은 그들을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단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손에서 억지로 빼앗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능력을 발휘하고 그의 악한 군대에게 도움을 청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마귀가 유혹하도록 자초한 자들은 스스로 그의 세력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필사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스스로를 위한 노력을 시작하면, 그들이 슬프게 한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들을 구원해 주기 위하여 올 것이다. 사단과 그의 사자들은 그들의 노획물을 잃어버리기 싫어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거룩한 천사들과 다투고 싸우게 되는데, 그 투쟁은 실로 치열하다. 그러나, 만일 실수한 자들이 계속해서 간구하고, 깊은 겸손으로 그들의 잘못을 고백할 것 같으면, 능력에 있어서 우월한 천사들이 승리를 거두어 그들을 악한 천사들의 세력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다.

302 휘장이 걷히어져 이 시대의 타락상이 나타났을 때, 나의 마음은 아팠고, 나의 정신은 속에서 거의 기진해졌다. 나는 지상의 거민들이 그들의 죄악의 잔을 채우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의 분노는 불타고 있다. 죄인들이 지상에서 진멸되기 전에는 그 분노가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개인적 원수이다. 그는 하늘과 땅에서의 온갖 종류의 반역의 창시자요 주동자이다. 그의 분노는 증가되고 있는데, 우리는 그의 능력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눈이 열려서, 스스로 안이하게 생각하고 안전하다고 여기는 자들을 대상으로 타락한 천사들이 활동하고 있는 상황을 깨달을 수 있으면, 우리는 그처럼 안전하게 느끼지 않게 될 것이다. 악한 천사들은 매순간 우리의 자취를 따르고 있다. 우리는, 악한 사람들측에서 사단이 제안하는 대로 행동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 사단의 대리자들에 대하여 경계하지 않으면, 그들은 새로운 영역을 차지하여, 우리의 눈앞에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게 된다. 우리는 성공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을 저항할 준비를 갖추고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이 이적들을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시험을 받을 것이다. 그들 앞에서 병자들이 고침을 받을 것이다. 그들의 눈앞에서 이적들이 행해질 것이다. 우리는 사단의 거짓 이적들이 더욱 완전히 나타날 때 우리를 기다리는 시련에 대비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는가? 많은 영혼들이 올무에 걸리고 사로잡히지 않을 것인가? 분명한 하나님의 교훈과 계명에서 떠나 헛된 이야기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이 같은 거짓 이적을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게 된다. 우리 모두는 미구에 치러야 할 싸움에 대비하여 스스로를 무장하기 위한 준비를 지금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경건한 연구로 실생활에 적용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은 사단의 세력에서 우리를 방어해 주는 방패가 되고,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정복자들의 손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