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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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장-루터와 대종교개혁

47장 - 루터와 대종교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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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0 법왕권의 암흑 속에서 교회를 순수한 신앙의 밝은 빛으로 인도하라는 사명을 받은 사람들 중에 마르틴 루터가 있었다. 열심있고 진실하며 경건하고 하나님 이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성경 이외에는 무엇으로도 그 신앙의 토대를 삼지 않았던 루터야말로 그 시대에 적합한 사람이었다.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개혁과 세상을 계몽시키는 큰 사업을 성취하셨다.

어느 날 대학 도서관에서 서적들을 살피고 있던 루터는 한권의 라틴어 성경을 발견하였다. 그는 전에 예배 시간에 읽어 주는 복음서와 편지서의 일부분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전부인 줄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처음으로 그는 성경의 전부를 보게 된 것이다. 그는 놀라움과 감탄으로 그 거룩한 책장을 넘겼다. 고동치는 가슴과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그는 친히 생명의 말씀을 읽었고 여기 저기서 읽기를 멈추고는 “오! 하나님께서 이러한 책을 나 개인에게 주셨으면!” 하고 부르짖었다. 하늘의 천사들이 그의 곁에 있었고 하나님의 보좌에서 흐르는 빛줄기가 진리의 보화를 밝게 비춰 그를 깨우쳐 주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을 성나게 할까 봐 두려워해 왔었으나 이제는 전에 없이 죄인으로서의 자신의 상태를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는 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과 화평하고자 갈망한 나머지 스스로 수도원(修道院)에 들어가 수도원 생활에 전념하였다.

341 루터는 매일의 일과 시간에서 시간을 내어 성경을 연구하였고 잠자는 시간이나 심지어 식사 시간까지라도 아껴서 연구에 몰두하였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는 수도원 벽에 쇠사슬로 매어 놓은 성경을 발견하고 자주 그리로 갔다.

루터는 사제로 임명되어 수도원에서 비텐베르크의 대학 교수로 초청되었다. 이 곳에서 그는 원어(原語)로 성경을 연구하였다. 그리고 그는 성경을 강의하기 시작하였다. 기쁨으로 그의 강의를 듣던 많은 사람들은 시편과 복음서와 편지서를 깨닫게 되었다. 그는 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의 축복이 그와 함께 하였다. 그의 웅변은 듣는 이들을 사로잡았고 또한 그가 전하는 명백하고 힘있는 진리는 듣는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그의 깊은 열정은 그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었다.

개혁 운동의 지도자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루터는 로마를 방문하기로 결심하였다. 교황은 소위 “빌라도의 계단”으로 알려진 곳을 무릎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에게는 면죄를 받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였었다. 루터가 하루는 이 일을 행하고 있었는데 그 때에 갑자기 우레와 같은 소리가 그에게 들려와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외치는 것처럼 느꼈다. 루터는 벌떡 일어나서 두려움과 수치 가운데 그 어리석은 짓을 그만두고 도망쳤다. 그 후로 이 성경절은 그의 일생을 통하여 잊을 수 없는 말이 되었다. 그 때부터 그는 구원을 얻기 위해 사람의 공로를 의지하는 것이 헛되다는 것과 항상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어야할 필요를 더욱 분명히 깨달았다. 그의 눈이 열려 다시는 로마교가 전하는 사단의 미혹에 빠지지 않게 되었다. 342 그가 로마에서 떠날 때 그의 마음도 또한 로마를 떠났으며 그 후로 로마와 점점 멀어져서 나중에는 법왕교회와 완전히 관계를 끊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로마에서 돌아온 후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제 그는 어느 때보다 자유스런 몸으로 그가 사랑하던 성경 연구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일생 동안 법왕의 가르침과 교리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연구하는 동시에 그 말씀을 충실히 전하기로 엄숙한 맹세를 하였다. 루터는 이제부터 단순한 사제나 교수가 아니라 권위 있는 성경의 해석자였다. 주리고 목마른 것과 같이 진리를 갈구하는 하나님의 양떼를 먹일 목자로 그는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성경의 권위에 기초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교리라도 용인할 수 없다는 것을 단호하게 천명하였다. 이 말은 법왕 최상권의 기초를 강타했다. 그것은 또한 종교개혁의 중요한 원칙을 포함하고 있었다.

루터는 이제 진리의 투사답게 담대히 자기의 사업에 착수하였다. 열렬하고 엄숙하게 경고하는 그의 소리가 강단에서 울려 퍼졌다. 루터는 백성들 앞에서 죄의 가증한 성격을 지적하고 사람은 자력(自力)으로써는 그 죄악을 추호도 제거할 수 없으며 또한 그 형벌을 면할 수도 없다는 것을 가르쳤다.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는 죄인이 구원받을 길은 없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돈으로 살 수 없으며 다만 값없이 주는 선물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사지 말고 믿음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주를 바라보라고 권하였다. 동시에 그는 구원을 얻기 위하여 여러 가지 난행(難行)과 고행(苦行)을 한 자기의 쓰라린 경험을 말하면서 자신으로부터 눈을 돌이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이 그가 평안과 기쁨을 얻을 수 있었다고 확언하였다.

343 루터의 가르침은 독일 전역에서 사려 깊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의 설교와 저서에서 흐르는 빛줄기가 수천명을 각성시키고 계몽시켰다. 교회가 오랫동안 그것에게 속박당하였던 죽은 형식주의를 대신하여 산 믿음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로마교의 미신에 대한 신뢰를 버렸다. 편견의 장벽이 무너졌다. 루터가 모든 교리와 주장을 시험했던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좌우에 날선 날카로운 검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찔렀다. 각처에서는 영적 향상에 대한 욕구가 각성되었다. 각처에 어느 시대에도 볼 수 없었던 이러한 의에 대한 주림과 목마름이 있었다. 오랫동안 인간의 의식과 인간적 중보자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이제 회개와 믿음으로써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되었다.

개혁자의 저술과 가르침은 모든 그리스도교국에 퍼지고 있었다. 그 사업은 스위스와 네덜란드에 전파되었다. 루터의 저서는 프랑스와 스페인에도 전달되었다. 영국에서는 그의 교훈이 생명의 말씀처럼 받아들여졌다. 벨기에와 이탈리아에도 역시 진리는 전파되었다. 수천명이 죽음의 혼수상태에서 깨어 신앙의 기쁨과 희망을 찾았다.

루터가 로마교회와 절교함

로마교회는 루터를 죽이려고 혈안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방패가 되셨다. 루터의 가르침은 어디나 전파되어 수도원에서, 농가에서, 귀족들의 성곽(城郭)에서, 대학에서, 국왕의 조정에서도 들을 수 있었으며 각처에서 귀족들이 그의 사업을 후원하기 위하여 일어났다.

그리스도교의 개혁에 대하여 독일의 황제와 귀족들에게 보내는 탄원서에서 루터는 법왕에 대하여 다음 같이 기록하였다. 344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자처한 일개의 인간이 어떠한 황제라도 엄두도 못낼 호사를 누리며 자랑하는 것은 전율할 만한 일이다. 과연 이것이 가난한 예수, 비천한 베드로의 생활인가? 저들은 그를 세상의 주라고까지 일컫고 있지 않는가? 법왕이 그 대리자라고 자랑하는 그리스도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대리자라고 자칭하는 자의 영토가 주의 그것을 능가해서 될 것인가?”

그는 또한 대학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나는 각 대학이 만일 열심히 성경을 해석하고 이것을 청년들의 마음속에 감명시키지 못한다면 대학은 지옥의 문이 되지나 않을까 두렵다. 누구든지 그 자녀를 성경을 수위(首位)에 두지 않는 곳에 보내지 말 것이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몰두하지 않는 기관들은 반드시 타락하고야 말 것이다.”

이 호소는 급속히 전 독일에 퍼졌고 사람들을 크게 감동시켰다. 전 국민이 궐기하여 개혁의 깃발 아래 운집하였다. 이에 루터의 대적들은 복수심에 불타 그에게 대해 단호한 태도를 취하라고 법왕에게 강경하게 요구하였다. 그리하여 루터의 주장은 즉시 정죄를 받았다. 개혁자와 그의 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60 일간의 유예 기간을 두고 그 기간 내에 취소하지 않으면 모두 파문에 처해질 것이었다.

법왕의 교서(敎書)가 루터에게 전달되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이것을 비신앙적이고 거짓으로 무시하고 공격한다 …. 여기서 정죄받는 이는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 그 사업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이러한 고난을 받는 것을 나는 차라리 기쁘게 생각한다. 이미 내 마음은 큰 자유를 누리고 있고 법왕은 적그리스도요 그가 앉은 곳은 사단 자신의 자리라는 것을 나는 드디어 깨달았다.”

그러나 로마 법왕의 말은 아직도 세력이 있었다. 투옥, 고문(拷問), 그리고 칼은 사람을 굴복시키는 데 힘있는 무기였다. 345 모든 것으로 보아 개혁자의 사업은 거의 봉쇄되는 듯하였다. 연약하고 미신적인 자들은 법왕의 포고령 앞에서 벌벌 떨었다. 일반적으로 루터를 동정하면서도 많은 사람은 개혁운동을 위하여 생명을 바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