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된 생애

본문보기

주제제목없음

89 마음의 거룩함과 생애의 순결을 위하여 신실하게 노력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괴로움과 낙담 중에 있는 듯 하다. 저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살펴 보며 자신의 믿음이 부족함을 계속 슬퍼하고 자신들이 믿음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요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믿음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참된 믿음이 가지고 있는 단순성 이상을 넘겨보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 가운데 커다란 흑암을 불러들이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비와 인자하심에 거하며 그분께서 말씀하신 바를 다시 살펴 보기 위하여 그들의 마음을 자신에게서 돌려야 한다. 그리고 말씀하신 바를 이루시리라는 것을 그저 믿어야만 한다. 우리의 믿음을 신뢰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들을 신뢰하여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과거의 죄들을 회개하며 앞으로는 순종하기를 결심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용납하시고 우리의 죄도 아울러 사하여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때때로 흑암과 낙담이 영혼을 엄습하여 우리를 압도하려고 위협할 것이다. 우리의 확신을 버려서는 안 된다. 감정의 변화가 어떠하든지 간에 예수님께 시선을 고정시켜야 한다. 우리는 모든 부여된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그런 연후에 하나님의 허락 안에서 조용히 안식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믿음의 생애

90 때때로 무가치하다는 생각이 온 심령 깊숙이 공포의 전율을 일으키기도 할 것이나 이것이 우리에게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변하였다거나 혹은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변심하였다든지 하는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우리는 마음에 강렬한 감정을 일으키고자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 어제 우리가 느꼈던 바와 같은 그런 평화와 기쁨을 오늘에는 느끼지 못할지 모르나,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손을 붙잡고 혹암 가운데서도 마치 빛가운데서와 같이 온전히 주를 신뢰하여야 한다.

사단은 “너는 너무도 큰 죄인이므로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실 수 없다”고 속삭일지 모른다. 그대가 참으로 자신이 죄 많고 무가치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유혹자를 만날 때에 이렇게 부르짖을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공로로 그리스도를 구주로 주장 할 수 있다. 나는 자신의 공로를 의지하지 않고 나를 정결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보혈을 신뢰한다. 나는 이 순간에도 무력한 나의 영혼을 그리스도께 의탁한다.”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계속적이며 활기 있는 믿음을 가진 생애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 대한 굴함이 없는 신뢰, 그리고 확고부동한 믿음은 마음 가운데 끊임없는 평화와 확증이 깃들이게 할 것이다.

유혹을 물리침

그대의 마음이 난관에 처한 듯이 보일지라도 실망하지 말라. 모든 장애물이 닥쳐 오고 내적인 원수가 생길지라도 그것들은 오로지 그리스도의 필요를 더해 줄 뿐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굳은 마음을 제하여 버리시고 새로운 마음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 그대의 독특한 결점들을 극복하기 위하여 그분께 특별한 은혜를 간구하라. 유혹의 공격을 받을 때에 악한 선동을 확고히 저항하며 그대의 마음에 말하기를 “내가 어떻게 나의 구속자에게 치욕을 돌리겠는가? 나는 내 자신을 그리스도께 드렸다. 사단의 일을 행할 수 없다”고 하라. 모든 우상을 버리며 즐겨하는 온갖 죄악들을 물리치기 위하여 사랑하는 구주께 도움을 간청하라. 91 하늘 아버지의 보좌 앞에 서서 당신의 못자국 난 손을 내보이면서 그대를 위하여 탄원하시는 예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라. 고마우신 구주께서 그대를 강건케 하신다는 것을 믿으라.

믿음의 눈으로 바라봄

이기는 자들에게 쓰여질 면류관을 믿음으로 바라보라. 구원받은 자들이 “훌륭하도다, 훌륭하도다. 죽임을 당하시고 우리를 하나님께 속량하신 어린 양이여!”하는 희열에 찬 노래에 귀를 기울이라. 이런 장면들을 현실화하여 생각하도록 힘쓰라. 그리스도교의 첫 순교자 스데반은 공회 중에서 정사와 권세와 영적 사악함과 맹렬하게 투쟁할 때에 부르짖기를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 7:56)고 하였다. 세상의 구주께서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하늘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계신 광경을 그는 볼 수 있었으며, 그리스도의 용모에서 비추이는 영광스러운 빛이 그의 원수들까지도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처럼 빛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그리스도와 하늘 세계에 더 많이 두도록 허용한다면 우리는 주님을 위한 싸움에서 강력한 격려와 지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머지 않아 본향이 될 더욱 좋은 저 나라의 영광을 명상할 때에 교만과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 힘을 잃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 외에는 모든 세상의 매력이 거의 가치 없이 보일 것이다.

아무도 스스로 열렬한 노력을 하지 않고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92 오랫동안 마음을 세상 만물만을 생각하도록 허용한다면 그 습관적인 생각을 변경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눈으로 보는 것과 귀로 듣는 것이 너무 자주 관심이 그것에만 끌려 흥미를 그곳에 집중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이 계시는 도성에 들어가 예수님과 그분의 영광을 바라보려면 이 세상에서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품성이 자주 우리의 생각과 이야기의 주제가 되어야 하며 매일 일정한 시간을 특별히 이 거룩한 제목들을 경건하게 명상하는 일에 바쳐야 한다.

성령을 잠잠케 함

성화는 매일 매일의 과제이다. 아무도 하나님의 요구 중 하나를 짓밟으면서도 하나님께서 저들을 용서하셔서 축복하시리라는 믿음으로 스스로 속이는 사람이 없도록 하자. 알고 있으면서도 고의적으로 죄를 범하면 성령의 증거하시는 음성을 잠잠하게 하여 그 영혼은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간다. 어떠한 신앙적인 감정의 황홀경에 들어간다 할지라도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는 자의 마음에는 거하실 수 없으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존귀히 하는 자들만을 존귀히 하신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롬 6:16). 우리가 분노와 정욕과 탐욕과 증오와 이기심과 그밖의 그릇된 죄에 빠지면 우리는 죄의 종이 된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우리가 죄의 종이 되면 그리스도의 종이 될 수 없다. 그리스도인도 죄에 대한 자극을 느낄 것이다. 그것은 육체가 성령을 거스려 정욕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은 계속적인 투쟁 가운데서 육체를 대항하여 싸운다. 이런 이유로 그리스도의 도우심이 필요하게 된다. 93 인간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능력과 연합되어 부르짖기를 참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7)라고 하게 된다.

올바른 신앙적 결과

만일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품성을 계발하고자 한다면 우리의 신앙 생애 가운데서 올바른 습관을 형성하여야 한다. 육체의 건강을 위해서 세상의 음식이 필요한 것같이 매일의 기도는 은혜 가운데서 자라나는 데 필수적이며 영적 생애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기도하는 가운데 자주 하나님께 대한 생각을 고상하게 하도록 힘써야 한다. 마음이 흔들리면 우리는 그 마음을 다시 강하게 한다. 끈질긴 노력으로 습관은 이것을 쉽게 성취할 수 있다. 우리는 일순간이라도 자신을 그리스도에게서 분리시키고서는 안전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우신 조건들을 지킴으로써만 그분이 우리와 동행하실 수 있게 할 수 있다.

신앙이 생애의 큰일이 되게 해야 한다. 이외의 다른 어떤 것이라도 이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져서는 안 된다. 우리의 혼과 몸과 영의 모든 능력이 그리스도의 싸움에 투입되어야 한다. 우리는 힘과 은혜를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하며, 그리하면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것이 확실한 것처럼 우리가 승리를 얻는 것도 확실할 것이다.

영혼의 가치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더욱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십자가 밑에서 회개하는 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평강에 대한 첫째 공과가 된다. 예수님의 사랑을 그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어머니의 사랑보다도 무한히 상냥하고 헌신적인 사랑이다. 영혼의 가치를 알려고 하면 살아 있는 믿음으로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하며, 이렇게 하여 영원한 세대를 통하여 구속받은 자들의 과학과 노래를 배우기 시작한다. 94 우리가 사용하는 시간과 재능에 대한 가치는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치루신 그리스도의 속죄의 대가가 얼마나 크셨던가를 생각하면 그것을 평가할 수 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애정과 봉사를 드리지 않음으로써 그분께 드려야 할 것을 드리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대해 얼마나 배은망덕함을 나타내게 되겠는가!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신 분께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을 너무 심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 3:21)고 제안하시는 불멸의 영광 앞에서 우리는 세상과 벗할 수 있겠는가?

전진하는 사업

성화는 전진하는 것이다. 베드로가 한 말 가운데 연속적인 계단이 제시되어 있다.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벧후 1:5-8).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 1:10, 11).

여기에 우리가 결코 실족하지 않을 확신을 주는 한 노정(路程)이 있다. 95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적 은혜를 얻기 위하여 더하기 법의 계획에 따라 일하는 이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성령의 선물을 그들에게 허락하시기 위하여 곱하기 법의 계획에 따라 역사하시리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베드로는 보배로운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벧후 1:2)라고 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땅에서 하늘에 이르는 더욱 빛나는 계단을 올라갈 수 있는 자는 누구든지 마침내 “영원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사 35:10)을 가지고 그 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도성에 들어가게 된다.

우리 구주께서는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을 요구하신다. 곧 그분은 우리의 가장 귀하고 가장 성결한 생각과 가장 순결하고 가장 열렬한 애정을 요구하신다. 우리가 진정으로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면 우리는 항상 그분을 찬양하는 마음을 품게 되고 우리의 입술로 그분을 찬양할 것이다. 우리의 유일한 안전책은 우리의 모든 것을 그분께 바치고 은혜와 진리를 아는 지식 가운데서 끊임없이 자라나는 것이다.

바울의 승리의 환호성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총을 크게 받아 거룩한 환상 가운데서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갔었는데 그곳에서 그는 그 영광을 나타내도록 허락받지 못한 장면들을 보았다. 그렇지만 이런 사실이 그를 교만하거나 자기를 신뢰하도록 하지는 않았다. 그는 계속적인 경계와 자기부정의 중요성을 깨닫고 분명히 선언하기를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라고 하였다.

바울은 진리를 위하여 고통을 당하였으나 우리는 그의 입술에서 나오는 아무런 불평도 듣지 못한다. 96 그는 노역과 근심과 희생으로 이루어진 자신의 생애를 회상하면서 말하기를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고 하였다. 하나님의 충성된 종이 외친 승리의 환성은 우리들의 시대에까지 계속되고 있다.“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5-39). 바울은 최후에 로마의 감옥에 갇혀서 하늘의 빛과 공기로부터 차단되고 활동적인 복음사업을 할 수 없게 되었으며 시시각각으로 사형선고를 기다리는 형편에 처해 있었지만 의심과 낙담에 굴하지 아니하였다. 그 이후의 모든 세대의 성도들과 순교자들의 마음을 격려한 숭엄한 믿음과 용기로 충만한 임종 시의 증언은 바로 그 음침한 감방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의 말 가운데는 우리가 여기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성화의 결과가 적절히 묘사되어 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키었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