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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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7 그리스도인 생애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많은 의미가 있다. 그것은 완전히 온순함과 인내와 온유와 친절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 덕성들이 필수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거기에는 또한 용기와 힘과 정력과 불굴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스도께서 정해주시는 길은 좁은 길, 극기의 길이다. 그 길에 들어가서 어려움과 낙망을 뚫고 전진하는데는 연약한 것 이상의 것이 요망된다.

품성의 힘

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곧 그들의 길이 순탄해지고 모든 장애가 제거되기를 기다리지 않는 사람, 기가 꺾인 일꾼들의 맥빠진 활동을 참신한 열성으로 고무시켜 줄 사람, 마음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뜨거워지고 손이 주님의 일을 하기에 강해진 사람들이 필요하다.

선교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어떤 사람들은 나약하고, 무기력하고, 풀이 죽고, 쉽게 낙심한다. 그들에게는 추진력이 결핍되어 있다. 그들은 어떤 일을 하는데 힘이 되는 적극적인 특성, 곧 열성이 타오르게 하는 정신과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성공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은 용기 있고 희망적이어야 한다. 그들은 적극적인 덕성뿐만 아니라 활동적인 덕을 계발해야 한다. 498 그들은 분노를 가라앉히는 부드러운 대답을 해야 하는 한편, 악을 저항하는 영웅적인 용기도 가져야 한다. 그들은 모든 것을 참는 사랑과 함께 그들의 감화력을 적극적인 세력이 되게 해 줄 품성의 힘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확고한 품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의 목적과 계획에는 분명한 형태와 일관성이 없다. 그것들은 이 세상에서 실제적으로 거의 이용할 수 없는 것들에 불과하다. 이와 같이 연약하고, 우유부단하고, 비능률적인 것들은 극복되어야 한다. 진정한 그리스도인 품성에는 어려운 환경 때문에 바뀌어지거나 굴복될 수 없는 확고부동함이 있다. 우리는 도덕적 줏대, 곧 우쭐해지거나 매수되거나 위협받을 수 없는 진실을 소유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사업을 위하여 준비하는데 필요한 모든 기회를 이용하기를 바라신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그 사업을 완수하는데 우리의 모든 힘을 다 쏟고 그 사업의 신성성과 무거운 책임감을 우리의 마음에 언제나 간직하기를 바라신다.

훌륭한 사업을 수행할 자격을 갖춘 많은 사람들이 적은 것을 시도하기 때문에 적게 성취한다. 수 많은 사람들은 마치 그들이 살아가야 할 큰 목적이 없고, 달성해야 할 높은 표준이 없는 것처럼 인생을 통과한다. 그렇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이 그들 스스로가 처해있는 위치를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무한한 값을 지불하셨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지불된 그 값에 따라 우리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기를 우리에게 바라신다.

낮은 표준에 도달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라. 우리는 도달할 수 있는 상태, 다시 말해 하나님이 바라시는 우리의 마땅한 표준에 도달해있지 못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고력을 주시되, 그것이 활동하지 않는 상태로 멈추어 있거나 세속적이고 비열한 것을 추구함으로 왜곡되는 반면 가장 높고, 세련되고, 거룩하고, 고상하게 계발되어 하나님 나라의 사업을 전진시키는데 이용될 수 있게 하신다.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의 마음에 의하여 움직이는 단순한 기계가 되는 일에 동의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생각하고 행동할 능력을 주셨다. 그러므로 그대는 지혜를 얻기 위하여 그분을 바라보고 주의 깊이 행동함으로써 책임을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이다. 499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주신 개성을 견지하라. 다른 사람의 그림자가 되지 말라. 주님께서 그대 안에서, 그대 곁에서, 그리고 그대를 통하여 일해 주시기를 기대하라.

그대가 충분히 배웠으므로 이제는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라고 결코 생각지 말라. 세련된 마음은 성숙한 사람의 척도이다. 그대의 교육은 일생 동안 계속되어야 한다. 매일 그대는 배우고 배운 지식을 실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대가 어떤 위치에서 봉사하든지 그대의 동기를 계발시키고 품성을 자라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대가 어떤 일을 하든지, 그 일을 정확하고 부지런히 하라. 안이한 일을 찾고자 하는 경향을 극복하라.

매일의 활동에 적용되는 같은 정신과 원칙이 온 생애에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정해진 분량의 일을 하고 고정된 월급을 받으며, 적응이나 훈련에 어려움없이 정확하게 맞는다는 인정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업을 하도록 부르시는 자들이 아니다. 그들의 육체적, 정신적, 도덕적 능력을 할 수 있는 대로 적게 쓰는 방법을 연구하는 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풍성한 축복을 받으실 수 있는 일꾼들이 아니다. 그들의 모본은 전염성이 있다. 사욕(私欲)이 지배적인 동기가 된다. 감시를 받을 필요가 있는 사람들과 그들에게 배당된 매일의 의무만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착하고 충성된 종들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자들이 아니다. 정력과 성실과 근면을 나타내고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일은 무엇이나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일꾼들이 필요하다.

500 많은 사람들은 실패가 무서워서 책임을 회피하므로써 무능해 진다. 그리하여 그들은 경험에서 얻는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되고 독서와 연구와 그 밖의 어떤 유리한 점에서 받는 교육도 그들에게 주어질 수 없게 된다.

사람이 환경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환경이 사람을 만들도록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환경을 일하는 도구로 이용해야 한다. 우리가 환경을 지배해야지 환경이 우리를 지배하도록 허용해서는 안된다.

유능한 사람들은 반대를 당하고, 난처한 일을 만나고, 방해를 받아 온 사람들이다. 힘을 발휘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됨으로써 그들이 당하는 장애들이 그들에게는 오히려 훌륭한 축복임이 입증된다. 그들은 자기를 의존한다. 그러나 투쟁과 난관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과 능력을 계발시켜 주는 확고한 신뢰심을 발휘하게 해 준다.* 그리스도께서는 하기 싫은 봉사를 마지못해 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일을 시간으로 계산하지 않으셨다. 그분의 시간과 마음과 심령과 능력은 인류의 유익을 위한 활동에 바쳐졌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나날을 일하는데 쓰셨고, 긴 밤 시간은 더욱 큰 일을 하기 위한 은혜와 인내력을 얻기 위한 기도에 바쳤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인성이 힘을 얻고, 온갖 기만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간악한 원수를 대적하고, 인류를 구원하는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무장을 갖추고자 강한 부르짖음과 눈물로써 하나님께 탄원하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일꾼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말씀하신다(요 13:15).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 말하였다(고후 5:14). 이것이 바울의 행동을 지배하는 원칙이었고 그의 동기가 되는 힘이었다. 그의 열성이 한 순간이라도 의무의 길에서 약해지면, 일단 십자가를 쳐다봄으로써 그는 마음의 허리를 새롭게 동이고, 자아부정(自我否定)의 길을 전진해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는 형제들을 위하여 활동할 때 부드럽게 해 주고 고취시켜 주는 능력을 가진 그리스도의 희생에 나타난 무한한 사랑의 표현에 크게 의지했다.

501 그의 호소가 얼마나 열렬하고 감동적인지 생각해 보라.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그대는 그분께서 얼마나 높은 곳에서 굽어보셨으며, 얼마나 심한 굴욕 속으로 내려오셨는지 안다. 그분의 발은 희생의 길을 밟게 되었고, 마침내 당신의 생명을 주시기까지 돌이키지 않았다. 하늘에 있는 보좌와 십자가 사이에는 그분을 위한 휴식이 없었다. 그분께서는 인간을 극진히 사랑하시기 때문에 온갖 모욕을 달게 받으시고 모든 능욕을 견디셨다.

바울은 우리에게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라고 권면한다. 그는 또한 다음과 같은 정신을 가지라고 우리에게 명령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였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4-8).

바울은 그리스도의 굴욕이 알려지고 이해되게 하고자 심히 열망하였다. 그는 만일 사람들이 하늘의 왕께서 겪으신 놀라운 희생을 생각하게 된다면 이기심이 그들의 마음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 사도는 죄인들을 위한 구주의 놀라운 희생에 대하여 우리가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점들을 하나씩 헤아려 본다. 그는 먼저 사람들의 마음을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아버지 품에, 계실 때 가지셨던 지위를 생각해 보도록 이끄신다. 그는 그 후에 그분께서 당신의 영광을 버리시고, 자원해서 인간 생활의 비천한 상태를 취하시되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죽기까지, 곧 가장 굴욕적이고, 가장 역겨웁고, 가장 고통스런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시기까지 복종하셨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우리는 감사와 사랑이 없이, 그리고 우리가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느끼지 않고 이처럼 놀랍게 표현된 하나님의 사랑을 명상할 수 있겠는가? 502 그런 주님을 인색하고 이기적인 동기에서 섬겨서는 안된다.

베드로는 “너희가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라고 말한다(벧전 1:18). 아, 만일 은이나 금으로 인간의 구원을 살 수 있었다면,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라”(학 2:8)고 말씀하신 분께서 그 일을 얼마나 쉽게 성취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죄인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의 보배로운 피로써만 구속(球贖)될 수 있었다. 이 놀라운 희생을 감사하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에서 물러가는 사람들은 그들의 이기심 때문에 멸망받게 될 것이다.

일편단심

그리스도의 생애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그분의 사업, 곧 그분께서 성취하기 위하여 오신 위대한 구속사업에 종속적인 것으로 되었다. 그리고 그와 꼭 같은 헌신, 꼭 같은 자아부정과 희생, 꼭 같이 하나님의 말씀의 요구에 복종하는 것 등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야 한다.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특권을 받고자 갈망하게 될 것이다. 그를 위하여 하늘이 이루어 준 일을 명상할 때 그의 마음은 무한한 사랑과 경이로운 감사의 마음으로 감동을 받는다. 그는 자기의 능력을 하나님의 사업에 다 바쳐 헌신함으로 감사의 마음을 나타내고자 열망하게 된다. 그는 그리스도와 그분께서 사신 소유물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고자 갈망한다. 그는 수고하고, 어려움을 겪고, 희생한다.

진정한 하나님의 일꾼은 최선을 다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렇게 함으로 그의 주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모든 역량을 계발시키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그는 모든 의무를 하나님께 하는 것처럼 이행할 것이다. 그의 한 가지 소망은 그리스도께서 존경과 완전한 봉사를 받게 하는 것이 될 것이다.

쟁기와 제단 사이에 서 있는 수소를 묘사한 그림이 있는데, 거기에는 밭 이랑에서 일을 하든지 희생제물의 단 위에 바쳐지든지 “어느 것이나 할 수 있는 준비가 갖추어져 있다”는 글귀가 씌여져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참 자녀의 자세, 곧 즐거운 마음으로 의무가 요구하는 곳으로 가서 구주의 사업을 위하여 자아를 부정하고, 희생할 수 있는 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