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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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마음과 육체 간에 존재하는 관계는 매우 밀접하다. 그 중 하나가 병에 걸리면 다른 하나가 동정하게 된다. 마음의 상태는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있는 것보다 건강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이 고통당하고 있는 질병의 대부분은 정신적 우울에서 온다. 슬픔, 걱정, 불만, 후회, 죄책감, 불신 이 모든 것은 생명력을 저하시키고 쇠약과 죽음을 초래한다.

때때로 질병은 상상력에 의하여 생기고, 때로는 악화된다. 만일 병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만 했다면 건강하게 지났을 뻔한 많은 사람들이 일생 동안 환자로 지낸다. 많은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위험에 노출될 때마다 병에 걸릴 것으로 상상하기 때문에 그들이 기대하는 그대로의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 많은 사람들은 오로지 상상적인 원인에서 생긴 질병 때문에 죽는다.

용기, 희망, 믿음, 동정, 사랑은 건강을 증진하고 수명을 연장시킨다. 만족한 정신과 즐거운 마음은 몸에 건강을 주고 심령에 힘을 준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 된다(잠 17:22).

질병의 치료에 있어서 정신적 영향의 효과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올바르게 활용만 하면, 이 영향은 투병(鬪病)을 위한 가장 효과적 기능 중 하나가 된다.

정신을 지배함

242 그러나 악에 대한 가장 효과적 기능 중 하나에 해당되는 정신치료의 한 형태가 있다. 이른바 과학이라고 부르는 그 방법을 통하여 한 사람의 마음이 다른 마음의 지배를 받게 됨으로써 약한 자의 개성이 강한 자의 정신에 흡수당한다. 그리하여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의지를 따라 행동하게 된다. 그러므로 생각의 질이 바뀌어져서 건강을 주는 힘이 전달되고 환자들이 질병을 저항하고 정복할 수 있게 되는 것으로 주장한다.

그런 치료법은 그것이 가진 참 성격과 경향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이 환자들에게 유익을 주는 수단이 되는 것으로 믿는 사람들에 의하여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소위 과학이라고 불리우는 그것은 거짓 원칙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본성과 정신에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것은 생명과 구원되시는 분에게로 인도해주지 않는다. 사람들의 마음을 자기 자신에게로 이끄는 자는 능력의 참 근원되신 분에게서 사람들이 분리되도록 지도한다.

어떤 사람이 그의 마음과 의지를 다른 사람의 지배에 맡겨 그 사람의 손에서 수동적인 기구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다. 어떤 사람도 자기의 개성을 다른 사람의 개성에 흡수시켜서는 안된다. 그는 어떤 다른 사람을 치료의 근원으로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받은 인간의 존엄성을 소유한 그대로 하나님 자신의 지배를 받아야지 어떤 인간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당신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기를 바라신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을 취급하실 때 개인적 책임의 원칙을 인정하신다. 그분께서는 개인의 자주성을 권장하고 개인적 지도의 필요를 깨우쳐 주고자 하신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을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기를 바라신다. 그러나 사단은 이 목적을 좌절시키기 위하여 활동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의지하게 하고자 노력한다. 243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께서 떠나갈 때, 시험하는 자는 그들을 자신의 지배 아래 둘 수 있다. 그는 인간을 지배할 수 있다.

마음이 마음을 지배한다는 이론은 사단이 자기 자신을 주역(主役)으로 소개하고, 마땅히 신본주의의 철학이 있어야 할 곳에 인본주의의 철학을 강요하기 위하여 창안해 냈다. 그리스도인으로 공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모든 오류 중에서 이것보다 더 위험한 기만이나, 사람을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키는 더 확실한 방법은 없다. 비록 그것이 아무 해가 없을 것처럼 보일지라도, 만일 환자들에게 적용되면 그것은 그들을 회복시켜 주지 않고, 파멸시켜 줄 것이다. 그것은 다른 마음의 지배를 받기 위하여 굴복당한 마음과 지배하는 마음을 소유하기 위하여 사단이 들어갈 수 있도록 열어 준다.

이처럼 악한 마음을 가진 남녀들에게 주어진 힘은 참으로 무섭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약점과 어리석음을 이용하여 사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좋은 기회를 주겠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약하고 병든 마음의 지배를 통하여 더러운 정욕과 이득에 대한 탐욕을 충족시키는 수단을 발견할 것인가!

우리에게는 인간성이 인간성에 의하여 지배받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 의사는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사람들을 교육시켜야 한다. 그는 환자들에게 심령과 육체의 치료를 위하여 인간을 바라보도록 가르치는 대신에, 그분께로 나오는 모든 사람을 온전히 구원할 수 있는 분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창조하신 분께서는 마음의 필요를 아신다. 하나님은 치료해 주실 수 있는 유일의 분이시다. 244 마음과 육체가 병든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자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분께서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고 말씀하신다(요 14:19). 이것이 우리가 환자들에게 제시해주어야 할 생명이다.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를 회복해 주시는 분으로 믿고, 그분과 협력하고, 건강법칙을 완전히 순종하고, 그분을 두려워하는 중에 완전한 성결을 얻고자 노력할 것같으면 그분께서 당신의 생명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어야 한다. 우리가 그런 방법으로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제시해 줄 때, 우리는 하늘에서 오는 귀중한 능력과 힘을 나누어 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육체와 심령을 치료하는 진정한 과학이다.

동 정

마음에서 생긴 병을 다룰 때는 큰 지혜가 필요하다. 비탄에 잠긴 병든 마음, 낙망 중에 있는 마음은 부드러운 치료가 필요하다. 많은 경우에 혹종의 가정 문제는 구강 궤양처럼 바로 심령을 잠식하고 생명력을 약화시킨다. 그리고 때때로 죄에 대한 자책감이 체질을 서서히 약화시키고 마음의 균형을 깨뜨리는 경우가 있다. 그런 부류의 환자들은 부드러운 동정으로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의사는 제일 먼저 환자의 신임을 얻고 그 다음에는 그들에게 위대한 치료자를 가르쳐주어야 한다. 만일 그들이 믿음으로 참된 의사이신 예수님께로 인도되어 그분께서 그들의 사정을 맡아 주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면, 그것이 그들에게 심령의 해방과 때로는 육체의 건강을 준다.* 동정과 기지(機智)는 냉랭하고 무관심한 방법으로 하는 가장 기술적인 치료가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유익을 환자들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이 때때로 입증될 것이다. 의사가 무관심하고 부주의한 태도로 병실을 방문하여 별반 관심없이 앓는 사람을 쳐다보고, 크게 주의할 필요가 없는 상태인 듯한 인상을 말이나 행동을 통하여 남겨 놓은 후 환자 자신이 마음대로 생각하게끔 버려 둔다면,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그 환자에게 해를 준 것이다. 그의 무관심으로 생긴 의심과 낙망은 때때로 그가 처방해 주는 좋은 치료의 효과를 무효로 만들 것이다.

245 만일 의사들이 고통으로 마음이 겸허해지고 의지력이 약화된 사람, 그리고 동정과 보증의 말을 듣고자 갈망하는 사람과 입장을 바꾸어볼 수 있다면, 그들은 그의 감정을 더욱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환자들을 위하여 보여 주신 사랑과 동정이 의사의 지식과 합해 지면, 그 의사가 나타나기만 해도 축복이 될 것이다.

환자를 다룰 때 취하는 솔직한 태도는 환자의 신뢰심을 일으켜 주므로 회복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고통을 주고 있는 병의 성격과 원인을 환자에게 숨기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하는 의사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사실을 말함으로 환자를 흥분시키고 낙담시킬 것을 두려워하여 회복에 대한 거짓 희망을 가지게 하고, 위험에 대하여 경고를 받지 않은 채 환자가 무덤으로 내려가도록 허용하기까지 될 것이다. 그런 모든 처사는 현명하지 못하다. 환자에게 그가 직면하고 있는 위험을 남김없이 다 설명해 주는 것이 반드시 안전하거나 최선의 길이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이 그를 놀라게 하여 회복을 지연시키거나 방해가 되게 할 수도 있다. 병이 주로 상상적인데 기인된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사실을 다 이야기해 줄 수는 없다. 그런 사람들 중 대부분은 이성(理性)적으로 판단하는 힘이 약하고 자제력을 발휘하는 습관이 이루어져 있지 않다. 그들은 특별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들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관하여 사실이 아닌 많은 것들을 상상한다. 그들에게는 그런 일들이 실제적인 것으로 인정됨으로 그들을 간호하는 사람들은 끊임없는 친절과 불굴의 인내와 기지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 만일 그런 환자들에게 그들 자신에 관한 사실을 그대로 말해 준다면, 어떤 사람들은 감정을 상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낙심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요 16:12). 그러나 모든 경우에 사실을 다 말하지 못할지라도 속이는 것이 결코 필요하거나 정당하지는 않다. 의사나 간호원은 얼렁뚱땅해서 넘어가면 안된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과 협력할 수 없는 곳에 두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환자들의 신임을 잃어버리고 그들의 회복에 가장 효과적인 인간의 도움 중 하나를 포기해 버리고 있다.

246 의지력은 마땅히 귀중히 여겨져야 하리만큼 여겨지지 않고 있다. 의지가 각성되고 올바른 지도를 받을 수 있게 하라. 그리하면 그것이 전신에 힘을 나누어 주고 건강을 유지하는데 놀라운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은 질병을 취급하는데 있어서도 또한 힘이 된다. 의지력이 올바르게 발휘되면, 그것은 상상력을 지배하고 정신과 육체의 질병을 다같이 저항하고 극복하는데 강력한 수단이 될 것이다. 의지력을 활용함으로써 환자들이 스스로 생명에 대하여 올바른 관계를 확립할 때, 그들은 그들의 회복을 위한 의사의 노력에 보다 잘 협력할 수 있게 된다. 원하기만 하면 회복될 수 있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병들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완쾌되어 행복해지기를 바라신다. 그러므로 그들은 완쾌하고자 결심해야 한다. 때때로 환자들은 단순히 병에 굴복당하지 않는 상태로 편안하게 있음으로써 병을 저항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아픔과 고통을 초월하여 그들의 힘에 알맞은 유용한 일을 해야 한다. 그렇게 활동하고 공기와 햇빛을 마음껏 이용함으로 많은 쇠약한 병자들이 건강과 힘을 회복할 수 있다.

치료에 대한 성경의 원칙

건강을 회복하거나 보존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성경 말씀에 교훈이 기록되어 있다. “술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 부자연스럽고 불건전한 자극제로 말미암아 생기는 흥분과 망각, 저급한 식욕과 정욕의 방종 등을 통하여는 참된 치료와 육체나 심령의 회복이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환자들 가운데는 하나님도 소망도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충족되지 못한 욕망, 병든 정욕, 그들 스스로의 양심의 가책 등으로 고통을 받는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생명을 잃어버리고 있으며, 장차 얻을 생명에 대한 희망도 없다. 환자들을 돌보는 사람들은 그 환자들에게 천박하고 흥분적인 방종을 허용함으로 유익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결코 생각하지 말라. 247 그러한 것들이 그들의 생애에 저주가 되어 왔다. 굶주리고 목마른 영혼들이 그런 것에서 만족을 얻고자 노력하는 동안 주림과 갈증은 계속 될 것이다. 이기적 쾌락의 샘에서 물을 마시는 사람들은 속임을 당하고 있다. 그들은 유쾌한 기분을 힘으로 오해한다. 그리하여 흥분이 끝나면 고무되었던 그들의 마음도 사라지고 그들은 불만과 낙담에 사로잡히게 된다.

한결같은 평안, 진정한 마음의 안식은 오직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바로 그 근원에 속한 것을 말씀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요 14:27). 이 평안은 그분께서 당신 자신과 상관없이 주시는 어떤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평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받아들임으로써만 그 평안를 받을 수 있다.

그리스도는 생명의 샘이시다.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분에 대하여 더욱 분명한 지식을 소유하는 것이다. 그들은 하늘의 치유력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어떻게 온 몸을 맡길 것인지 끈기 있고 부드럽게, 그러면서도 진지하게 배울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사랑의 햇빛이 어두운 영혼의 밀실을 비출 때, 불안한 염려와 불만은 사라지고, 흡족한 기쁨이 정신에 활력을 주고, 육체에 건강과 힘을 줄 것이다.

우리는 고통이 많은 세상에 살고 있다. 어려움과 시련과 슬픔이 하늘 본향으로 가는 길에 내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어려움을 미리 생각하기 때문에 인생의 짐을 배나 더 무겁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248 만일 그들이 역경이나 실망을 당하게 되면 그들은 모든 것이 파멸될 것처럼 생각하고 그들이 당하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로, 그들이 분명히 궁핍해 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처럼 그들은 불행을 자신들에게 자초하고 그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늘을 던진다. 생애 그 자체가 그들에게는 짐이 된다. 그러나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그들의 생각의 경향을 바꾸는데는 단호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바꾸는 일은 가능하다. 이생과 내생을 위한 그들의 행복은 그들의 마음을 즐거운 것에 고정시키는데 달려있다. 그들로 하여금 상상에 불과한 어두운 장면에서 눈을 돌려 하나님께서 그들의 앞길에 뿌려 놓은 은혜를 보게 하고, 또한 그것들을 초월하여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바라보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시련에 대비하여 도움의 길을 마련해 주셨다. 광야를 여행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마라의 쓴 물가에 왔을 때, 모세는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여호와께서는 어떤 새로운 대책을 마련해 주지않으셨다. 그분께서는 바로 곁에 있는 것에 주의를 끌게 하셨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하나의 관목을 샘에 던져 넣게 하심으로 그 물을 깨끗하고 달게 만드셨다. 그렇게 되자 백성들은 그 물을 마시고 원기를 회복하였다. 온갖 시련 속에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찾으면, 그분께서는 우리를 도와 주실 것이다. 우리는 눈이 열려 그분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 치료의 약속을 분별하게 될 것이다. 성령께서는 슬픔을 제거해 줄 모든 축복을 이용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실 것이다. 우리의 입술에 닿아 있는 모든 쓴 잔을 위하여 우리는 치료의 나무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어려운 문제들과 불안하게 예상되는 미래를 보고 마음이 괴롭고, 무릎이 떨리고, 머리가 숙여져서는 안된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나의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로 더불어 화친할 것이니라”고 말씀하신다(사 27:5). 자신의 생애를 하나님의 지도와 그분을 섬기는 일에 완전히 바치는 사람들은 그분께서 돌봐 주시지 않는 어떤 처지에 결코 놓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경우에 처하든지 그분의 말씀을 행하는 자들이 될 것같으면, 우리는 우리의 길은 지도해 주시는 인도자를 갖게 된다. 우리가 아무리 난처한 문제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는 확실한 상담자(相談者)가 있다. 249 우리의 슬픔과 사별(死別)의 고통과 외로움이 아무리 극심할지라도 우리에게는 동정깊은 친구가 있다.

우리가 무지함으로 실족할 때, 구주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 우리는 홀로 있다고 결코 생각할 필요가 없다. 천사들은 우리의 친구들이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이름으로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보혜사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하나님의 도성으로 가는 길에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정복할 수 없는 어려움이 없다. 그들이 피할 수 없는 위험들은 없다. 하나님께서 치료의 길을 마련해 주시지 않는 슬픔이 없고, 비애가 없고, 인간적 약점이 없다.

아무도 스스로 자포자기하여 낙심하고 실망할 필요가 없다. 사단은 그에게 가까이 와서 “너는 절망적인 상태에 놓여 있어, 너는 회복될 가망이 전혀 없어”라고 말함으로써 가혹하게 암시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그대에게는 희망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힘으로 승리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당하고 있는 어려움이 심령과 육체를 아무리 억압하고 있을지라도,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고자 기다리고 계신다.* 스스로 인성을 취하신 그분께서는 인간의 고통을 어떻게 동정하실지 아신다. 그리스도는 각 영혼들과, 그 영혼들의 특수한 필요와 시험을 아실 뿐만 아니라 심령을 괴롭히고 어렵게 만드는 모든 환경을 아신다. 그분께서는 동정어린 친절로써 고통하는 모든 영혼들에게 당신의 손을 뻗고 계신다. 가장 크게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그분의 동정과 긍휼을 가장 많이 받는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마음 속에 동정을 느끼시며, 우리의 어려움과 난처한 문제들을 가져 와서 당신의 발 앞에 놓기를 바라신다.

우리 자신들을 바라보고 우리의 감정을 살펴 보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하면, 원수는 믿음을 약화시키고 용기를 꺾어 버릴 어려움과 시험을 줄 것이다. 우리의 감정을 면밀하게 살펴보고 우리의 감정이 발휘될 길을 제공하게 되면 회의심이 용납되고 우리 자신이 어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250 유혹이 그대를 엄습하고 근심과 걱정과 어두움이 그대의 심령을 둘러싸는 것처럼 보일 때, 그대는 그대가 마지막으로 빛을 본 그 곳을 바라보라.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그리고 그분께서 돌봐 주시는 보호 아래 안식을 얻어라. 죄가 마음을 지배하고자 싸울 때, 죄책감이 심령을 억압하고 양심을 억누를 때, 불신이 마음을 가리울 때, 그리스도의 은혜는 죄를 정복하고 어두움을 몰아내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구주와 교통함으로 우리는 화평의 영역에 들어가게 된다.

치료의 약속

“여호와께서 그 종들의 영혼을 구속하나니 저에게 피하는 자는 다 죄를 받지 아니하리로다”(시편 34편 22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잠 14장 26절)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이사야 49장 14-16절)

251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불들리라.”(이사야 41장 10절)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이사야 46장 3, 4절)

감사와 찬양의 정신보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더욱 잘 증진시켜 주는 것은 없다. 우울하고 불만스런 사상과 감정을 물리치는 것은 기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의무이다. 만일 우리가 하늘과 연결되어 있다면, 슬퍼하는 사람들의 대열에 끼어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동안 내내 탄식하고 불평하면서 걸어갈 수 있을까?

끊임없이 불평하는 한편, 즐거움과 행복을 죄처럼 생각하는 자칭 그리스도인들은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천연계에 있는 모든 우울한 장면에서 일종의 애상적(哀傷的) 쾌락을 즐기는 사람, 아름답고 싱싱한 꽃들을 따는 대신 죽은 잎들을 찾는 사람, 웅장한 산 봉우리와 녹음(綠陰)이 덮여 있는 계곡에서 아름다움을 찾지 못하는 사람, 천연계를 통하여 들려주는 즐거운 음성에 대하여 감각의 문을 닫아버리는 사람, 그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광명, 곧 치료하는 광선을 가지고 떠오르는 의(義)의 태양을 소유할 수 있지마는 우울한 것과 어두운 것만을 스스로 모으고 있다.

때때로 그대의 마음은 고통으로 구름이 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그 고통스런 것을 생각하려 하지 말라. 그대는 예수님께서 그대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안다. 그분께서는 그대의 약점을 이해하신다. 그대는 단순히 그분의 품 안에서 쉼으로 그분의 뜻을 행할 수 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말로써 표현할 때 그것들이 용기를 얻고 강화되는 것이 하나의 자연법칙이다. 252 말이 사상을 표현할 때, 사상이 말을 따라 형성되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더욱 많이 표현하고, 우리가 분명히 받고 있는 축복, 곧 하나님의 큰 자비와 사랑의 축복 안에서 더욱 더 기뻐하면, 우리는 더 많은 믿음과 더 큰 기쁨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253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감사함으로 얻는 축복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고, 유한한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할 수도 없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보좌에서 흘러나는 물을 마시기 때문에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로 기뻐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입술을 길들여서 비할 데 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자. 우리는 우리의 심령을 길들여서 소망을 갖게 하고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흘러나오는 빛에 거해야 한다. 우리는 하늘 왕의 자녀들이며, 만군의 여호와의 아들과 딸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자. 하나님께 말없이 순종하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5). 우리는 난관과 어려움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성호를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생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데 대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자. 날마다 새로운 축복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자비로운 보호임을 믿고 우리의 마음 속에서 찬양이 흘러나오게 하자. 그대는 아침에 눈을 뜰 때, 하나님께서 밤 동안 그대를 보호해주신 것을 감사하라. 아침과 낮과 밤에 감사의 마음이 향긋한 향기처럼 하늘에 상달되게 하라.

누군가가 그대에게 기분이 어떠냐고 묻거든, 동정을 얻기 위하여 무엇인가 슬픈 것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대의 믿음의 부족과 슬픔과 고통에 대하여 말하지 말라. 유혹자는 그런 말을 듣기 좋아한다. 그대가 우울한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그대는 그 유혹자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를 극복하려면 사단의 큰 힘에 사로잡혀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때때로 그의 능력에 관하여 이야기함으로 우리 자신을 그의 손에 맡긴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관심을 하나님의 관심과 결부시키기 위하여 오히려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에 관하여 이야기하자. 비할 데 없는 그리스도의 능력에 관하여 말하고, 그분의 영광에 대하여 이야기하자. 천천 만만의 하나님의 천사들은 구원의 후사가 될 사람들을 섬기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 그들은 죄악에서 우리를 지켜 주고, 우리를 멸망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는 흑암의 세력을 물리쳐 준다. 254 우리에게는 매 순간 감사하되 우리의 앞길에 어려움이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감사해야 할 이유가 있지 않는가?

찬양하라

찬양과 감사를 노래로써 표현하자. 시험을 받을 때는 우리의 감정을 말로써 나타내는 대신에 믿음으로 감사의 노래를 하나님께 드리자.

찬미 찬미 복 주신 구세주 예수 산과 들아 사랑을 전하라 경배 경배 정성을 다하여 경배 천군 천사 주 이름 높이세 목자같이 우리를 지키시고 종일 품에 안아 주시리니 후렴: 찬미 찬미 높으신 예수를 찬미 찬미 찬미 영원히 부르세 찬미 찬미 복 주신 구세주 예수 우리 대신 죽음당하셨네 구주 예수 우리게 영생 주시니 경배 경배 겸손히 절하세 사랑 사랑 우리의 죄지시고 한량없는 깊으신 참 사랑 찬미 찬미 복 주신 구세주 예수 노래 소리 하늘을 울리네 예수 구주 영원히 다스리시니 면류관을 받들어 드리세 우리 구주 세상을 이기시고 영광 중에 다시 오시리니 노래는 우리가 실망을 물리치기 위하여 언제나 사용할 수 있는 무기이다. 우리가 그와 같이 구주의 임재의 햇빛을 받고자 마음을 열 때, 우리는 건강과 그분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55 여호와께 구속함을 받을 자는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저희를 구속하사 동서남북 각 지방에서 모으셨도다.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사를 말할지어다.

그 성호를 자랑하라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심이로다.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 얽은 줄을 끊으셨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 107:1, 2, 105:2, 3, 107:9-15, 42:11)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이 명령은 우리에게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일까지도 우리에게 유익이 될 것이라는 보증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손해가 될 수 있는 일에 대하여 감사하라고 명령하지 않으실 것이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께서 환란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두른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256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귀가 막힌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새 노래 곧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시 27:1, 5, 6, 40:1-3, 28:7)

환자들의 회복에 가장 뚜렷하게 방해가 되는 한 가지 것은 자기 자신들에게 주의를 집중시키는 일이다. 많은 환자들은 그들이 자기 자신들로부터 주의를 돌려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고 돌봐 주어야 할 필요가 있는 그 때에 모든 사람이 자기들에게 동정을 기울이고 자기들을 도와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때로 고통당하고, 슬퍼하고, 낙심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를 드린다. 그렇게 하는 것은 참으로 올바른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흑암에 싸여 있는 마음에 빛을 비추어 주고 슬픔에 잠겨 있는 마음을 위로해 주시도록 기도 드려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을 당신의 축복의 통로로 내어 주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 우리는 슬픔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드리는 한편, 그들에게 자기들보다 큰 어려움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도와 주기 위하여 노력하도록 권장해야 한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도와 주기 위하여 노력할 때 그들의 마음에서 어두움이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위로를 받은 그 위로로써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자 할 때 축복이 우리에게 돌아온다.

이사야 58장은 육체와 심령의 질병을 고쳐 주는 처방이다. 만일 우리가 건강과 생애의 진정한 기쁨을 원하면 우리는 이 성경 말씀에 기록된 법칙을 실천해야 한다. 주님께 가납될 봉사와 그 축복에 대하여 그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257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와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같을 것이라.”(사 58:7-11)

선행(善行)은 친절을 베푸는 사람과 받는 사람에게 다 같이 유익을 줌으로 이중(二重)의 축복이 된다.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병든 몸과 마음을 치료해 주는 가장 좋은 약 중 하나이다. 의무를 잘 감당했다는 생각과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제공해 준데 대한 만족감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가볍고 기뻐질 때, 즐겁고 고무적인 힘이 온 몸에 새 생명을 가져다 준다.

환자들은 끊임없이 동정을 요구하는 대신에 동정을 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대 자신의 연약함과 슬픔과 고통의 짐을 자비로운 구주께 갖다 맡겨라. 구주의 사랑을 향하여 그대의 마음을 열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로 흘러가게 하라. 모든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과 저항하기 힘든 시험을 당하고 있다는 것과, 그대가 그 짐들을 덜어 주기 위하여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대가 누리고 있는 축복을 감사하고, 그대가 받고 있는 보호에 대하여 감사의 마음을 귀중한 하나님의 약속으로 가득히 채우고, 그 보고(寶庫)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이 될 말들을 꺼낼 수 있게 하라. 그렇게 되면 그대의 주위에서는 유익하고 고무적인 분위기가 감돌 것이다. 258 그대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는 것을 그대의 목표로 삼으라. 그리하면 그대는 그대의 가정에 속한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똑 같이 도움이 될 길을 발견할 것이다.

건강이 좋지 못하기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관심을 쏟은 나머지 자아(自我)를 잊어버릴 것같으면,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보다 더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봉사함으로 주님의 명령을 따를 것같으면, 그들은 “네 빛이 아침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라는 선지자의 약속이 옳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마라와 엘림

오늘은 엘림, 종려수(棕櫚樹)와 우물이 있는 곳,사막 길에 지친 몸에 휴식을 주는 서늘한 그늘이 깔려 있다.

어제는 마라, 바위와 모래만으로 이루어진 곳,그늘 한 점없이 메마르고 황량(荒凉)한 골짜기 그러나 그 둘은 같은 사막 안에 있으며,열풍(熱風)은 쓸쓸한 이곳으로 불어닥치며,골짜기의 얕은 언덕들은 그것들을 똑 같이 안고 있다.

변함없는 산들은 그것들을 똑 같이 둘러싸고 있다.

이 세상도 그와 같은 곳.

지나간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그와 같은 과정을 거쳐온 것을 나는 기억한다.

쓴 것과 단 것, 슬픔과 기쁨, 그것들은 서로 이웃해 있을 뿐,그나마도 그것들은 다만 하룻 길을 사이에 두고 있을 뿐이다.

때때로 하나님은 쓴 맛을 단 맛으로 바꾸어 주시고,때때로 그분은 서늘한 샘물이 솟아나게 하신다.

때때로 주님은 구름기둥으로 가리워 주시고,때때로 축복의 종려나무 아래로 이끌어 주신다.

그러나 그것이 다 무슨 상관이 있으랴? 오래지 않아 마라도 엘림도 다 지나가고,이곳 사막의 샘물과 종려수도 없어지고,우리는 마침내 하나님의 도성에 안착할 것이다.

아, 행복의 땅, 쓸쓸한 언덕 저편,그곳에는 영원토록 솟아나는 샘물이 있다.

오, 거룩한 낙원, 하늘 저편.

그곳에서 우리는 방황하는사막의 여행을 끝낼 것이다.

― 호라티어스 보나 ―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259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뜬 세상에서 내 영혼이 하늘의 영광 누리도다.

후렴: 이것은 나의 간증이요 이것은 나의 찬송일세 나 사는 동안 거침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온전히 주께 몸바치니 기쁨과 즐거움 한량없네 하늘의 천사 내려와서 인애의 말씀 전하도다.

온전히 주께 몸바치니 행복과 평화가 넘치도다.

깨어서 주를 고대하며 그 사랑 속에 잠기도다.

― 패니 제이. 크로스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