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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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약한 사람이 강한 사람으로

88 제자들의 경력을 보면 베드로보다 그리스도의 교육법을 잘 예시하고 있는 사람도 없다. 대담하고, 잘 다투고, 자신감이 넘치며, 지각이나 행동이 예민하고, 금방 복수하고 금방 용서하는 성질을 가진 베드로는 때때로 잘못을 거듭하여 견책을 받았다. 그러나, 그리스도께 대한 그의 충정과 헌신도 다른 성질 못지 않게 강했다. 이 때문에 인정과 칭찬을 받을 때도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특별한 사랑과 인내를 가지고 이 성급한 제자를 다루심으로 그의 자만을 견제하시고, 그에게 겸손과 순종과 신뢰를 가르치고자 노력하셨다.

그러나, 그가 배운 것은 그 교훈의 일부분뿐이었다. 자신에 대한 믿음은 근절되지 않았다.

마음이 무거울 때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눈을 열어서 당신이 당하시는 시련과 고난을 보게 하려고 애쓰셨다. 그러나, 그들의 눈은 닫혀 있었다. 그것을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지 못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겁이 난 베드로는 자기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 16:22)라고 간구하였다. 그가 한 이 말은 열 두 제자의 생각과 감정을 대표했다.

이리하여, 그들은 위기가 점점 가까이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신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 다만 왕국의 영위(榮位)가 자신들에게 배정될 것을 기대하면서 자부심과 경쟁심으로 나날을 보냈다.

베드로의 경험은 모든 제자들에게 교훈이 되었다. 자기를 의지하는 자에게 있어서 시련은 패배를 의미한다. 그리스도라 할지라도 완전히 버리지 아니한 죄의 확실한 결과는 어찌할 수 없으시다. 그러나, 파도가 베드로를 휩쓸어 버리려고 할 때에 그리스도의 구원의 손길이 펴졌던 것처럼, 큰 물결이 그의 영혼을 횝쓸려고 하는 이 때에도 그분께서는 그를 구원하기 위해 사랑을 베푸셨다. 89 베드로는 파멸의 끝에 서서도 계속 교만한 말을 함으로써 점점 더 벼랑 쪽으로 나아갔다. 그에게는 “네가 …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눅 22:34)는 경고가 거듭 주어졌다. 그는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눅 22:33)라고 맹세하듯 말했다. 이것은 그의 사랑하는 마음과 슬픈 심정을 고백하는 말이었다. 그 마음을 읽으신 예수님께서는 당장은 진가가 나타나지 않지만 신속히 임할 암흑 가운데서 희망의 빛이 될 수 있는 말씀을 베드로에게 주셨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1, 32).

“내가 너를 위하여 …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시던 구주의 말씀이 베드로의 심령을 붙드는 지주가 된 것은 그가 재판정에서 주님을 부인하는 말을 하고 연민과 사랑과 슬픔으로 가득한 그분의 눈길과 마주친 때였다. 그 순간 그는 구주에 대한 사랑과 충성심이 되살아나, 전에 그분께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시던 동산으로 달려갔다. 거기서 그는 그리스도의 고민의 핏방울로 적셔졌던 잔디 위에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죄를 미리 아셨으나 그를 절망 가운데 버려 두지 아니하셨던 것이다.

만일 베드로를 바라보시는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는 눈길 대신에 견책하시는 눈길을 보내고, 그의 죄를 미리 말씀하실 때에도 희망의 말씀을 함께 주시지 않으셨다면, 그를 두른 암흑이 얼마나 짙었겠는가! 후회로 고민하는 심령의 절망이 얼마나 깊었겠는가! 고뇌와 자아 혐오 속에서, 무엇이 그로 하여금 유다가 갔던 길로부터 돌아서도록 붙들 수 있었던가?

90 당신의 제자가 그 고뇌를 경험하지 않게 할 수는 없으셨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홀로 그 괴로움 속에 버려 두지 않으셨다. 그분의 사랑은 용기를 잃게 하거나 못본 체하는 그런 사랑이 아니다.

사람은 그 자신도 죄가 많으면서 시험에 빠져 있는 자와 허물이 있는 자에 대해 관대하지 못한 태도를 갖는 경향이 있다. 남의 마음을 읽어 볼 수도, 또 그 마음속의 투쟁과 아픔을 알 수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의 견책, 치유를 위한 타격, 희망을 속삭이는 경고에 대해 배워야 할 것이다.

재판정에서 예수님을 본 것도, 십자가 옆에 서 있던 것도, 그리고 열 두 제자 중에서 제일 먼저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간 것도 요한이 아니었다.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보내신 기별 중에 언급된 이름도 요한이 아니고 베드로였다. 천사는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막 16:7)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갈릴리 해변에서 제자들과 만나셨을 때, 베드로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17)는 질문으로 세 번 거푸 시험을 받은 후에, 열 두 제자 중 하나로서의 지위가 회복되었다. 그는 할 일을 부여 받았다. 그는 주의 양을 먹여야 했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마지막 개인적인 명령으로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요 21:22)고 하셨다.

이제 베드로는 그 말씀의 참뜻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 가운데 어린아이를 두시고 그같이 되라고 말씀하신 교훈을 그는 이제야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연약함과 그리스도의 능력을 완전히 깨달은 베드로는 그분을 신뢰하고 순종할 준비가 되었다. 그리스도의 힘으로 말미암아 그는 주를 따라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한때 십자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였던 제자가 희생과 수고의 경험을 마쳐 갈 즈음에는 복음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겼다. 전에는 주님을 부인했으나 지금은 그분께서 돌아가신 방법으로 죽는 것을 매우 큰 영광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91 베드로의 변화는 하나님의 자비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이적이었다. 크신 교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평생 동안 배워야 할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