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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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

하나님께서는 한 교사를 보내심으로 하늘의 가장 좋고 가장 큰 것을 사람에게 주셨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과 함께 앉으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지성소에 계시던 분이 인간이 되셔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인류에게 나타내시는 분으로 오신 것이다.

우리의 타락한 세계를 비추는, 하늘로부터 온 모든 빛은 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것이었다. 각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인류에게 선포한 모든 일꾼들에게 말씀하신 분은 바로 그리스도이셨다. 이 세상의 가장 위대하고 가장 고상한 사람들을 통하여 나타나는 모든 훌륭한 미덕은 다 그리스도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요셉의 순결과 덕행, 모세의 믿음과 유순과 인내, 엘리사의 확고 부동함, 다니엘의 고결함과 견고함, 바울의 열심과 자기희생,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비롯하여, 일찍이 이 세상에 생존했던 모든 사람들에게서 나타난 지적·영적 능력은 모두가 그리스도의 영광으로부터 나오는 빛줄기에 불과했다. 완전한 이상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어 왔다.

74 이 이상을 사람이 도달해야 할 유일 무이의 참된 표준으로 나타내기 위해, 다시 말해 사람이 각각 어떤 인물이 될 수 있는지, 그리스도를 영접한 모든 사람이 신성이 내재한 인성의 삶을 살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주기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오셨다. 그분께서 오신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어떤 훈련을 받아야 하는지, 또 이 땅에서 어떻게 원칙들을 실천하고 하늘의 생애를 살아야 하는지 보여 주시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의 최대의 선물은 인간의 최대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주어졌다. 빛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암흑이 가장 깊었을 때에 나타나셨다. 거짓 가르침으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이 오랫동안 하나님을 떠나 있었다. 세상의 교육 제도 아래에서는 인간의 철학이 하늘의 계시를 대신하였다. 사람들은 하늘이 준 진리의 표준을 거부하고 스스로 만들어 낸 표준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생명의 빛이신 그리스도를 떠나서 스스로 붙인 불꽃 가운데로 들어갔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자신들의 능력만을 의지하였으므로, 그들의 힘은 연약할 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운 표준에도 도달할 수가 없었다. 참된 미덕의 부족이 외관과 헛말에 의해 보충되었다. 가식이 본질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때때로, 진리의 근원이 되시는 분을 지적해 주는 교사들이 나타났다. 그럴 때마다 바른 원칙들이 제시되었으며, 사람들의 생애가 그 능력을 실증해 주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지속적인 감명을 주지 못하였다. 죄악의 흐름을 일시 정지시켰을 뿐, 그 타락의 진행을 막을 수는 없었다. 개혁자들은 암흑을 비추는 빛처럼 나타나기도 하였으나 그 암흑을 몰아내지는 못하였다. 세상 사람들이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요 3:19)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때는 인간성이 밑바닥에까지 다다르려는 순간이었다. 사회의 기반이 위태롭게 되었고, 생활은 허위와 허식에 빠져 있었다. 75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가지지 못했던 유대인들은 마음을 마비시키고 영혼을 파멸시키는 관습과 공론을 사람들에게 주었다.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예배가 사람이 만들어 낸 의식의 반복적인 진행으로 인해 결국 자신들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되고 있었다. 전세계에 걸쳐, 모든 종교 제도가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이끄는 힘을 상실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전설과 거짓말에 싫증이 난 나머지 생각하는 것이 귀찮아 불신과 유물론으로 돌아섰다. 그들은 영생을 염두에 두지 않고 오로지 현세만을 위하여 살고 있었다.

하나님을 인정치 않게 되자, 그들은 인류에 대한 관심도 없어졌다. 진실, 존경, 성실, 신뢰, 동정심 같은 것이 이 세상에서 사라져 가고 있었다. 심한 탐욕과 불타는 야심은 온 세상에 불신을 낳게 했다. 책임감, 약자에 대한 강자의 의무,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에 대한 관념이 무슨 꿈 이야기나 전설처럼 외면당했다. 일반 민중은 짐을 나르는 짐승이나 야망을 이루기 위한 도구, 또는 징검다리처럼 취급되었다. 부와 권력, 안일과 방종이 최고의 행복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체력의 저하, 지능의 퇴화, 영성의 사멸 등이 시대적 특징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의 악한 정욕과 목적은 그들의 마음에서 하나님을 몰아내게 했으며, 급기야는 그분을 완전히 잊어버림으로 더욱 대담한 악을 행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죄를 선호하는 마음에서 하나님을 마치 그들 자신과 같은 속성을 가진 존재로 파악했다. 이러한 생각은 죄의 힘을 더욱 강화시켰다. 사람들은 제멋대로 해석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그들과 같은 분으로 알았다. 다시 말해, 그분도 자신을 찬양할 목적으로, 자신의 즐거움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여러 가지 요구를 하시며, 또 그 이기적인 목적에 도움이 되는 자는 취하고 방해가 되는 자는 버리는 분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76 하층 계급에 속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그들의 억압자들과 똑같으나 다만 그 능력에 있어서 억압자들보다 더 강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관념을 기초로 각종의 종교 형태가 형성되었다. 그것들은 모두 강제와 착취의 제도였다. 예배자들은 그들이 목적하는 일에 하나님의 은혜를 확보하기 위해 예물과 의식으로 그분과 화친하려고 하였다. 마음과 양심에 아무런 감화도 끼칠 수 없는 그런 종교는 형식의 연속에 불과하였으므로, 사람들은 금방 싫증이 나서, 거기에서 무슨 이익이라도 얻게 되는 것이 아닌 한 그것에서 해방되기를 원하였다. 그리하여, 악은 억제할 수 없을 만큼 성하였고, 반면에 선한 것에 대한 인식과 욕구는 점점 희박해져 갔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했으며, 그들을 지배하는 악마의 힘에 감명 받았다. 전세계가 부패의 온상이 되고 있었다.

이제 인류에게는 한 가지 희망밖에 없었다. 그것은 이 불화와 타락의 덩어리 속에 새 누룩을 넣는 것, 다시 말해 새 생명의 힘을 회복시켜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다시 가지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지식을 다시 가지게 하기 위해 오셨다. 그분은 하나님을 아노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그릇된 교훈에 빠져 있는 것을 바로잡기 위해 오셨다. 또, 당신의 율법의 성격을 밝힘과 동시에 당신의 품성을 통해 성결의 아름다움을 나타내 보이려고 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축적해 두셨던 영원한 사랑을 가지고 세상에 오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율법을 곡해하도록 만든 모든 부당한 요구들을 일소하시면서 그 율법이 사랑의 율법, 곧 하나님의 은혜의 표현임을 강조하셨다. 그분은 이 율법의 원칙들을 순종할 때 인류는 행복을 누리게 되고, 동시에 그 사회도 안정을 가져 오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율법은 독단적인 요구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것은 인류를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와 방벽으로 주어진 것이다. 77 그 율법의 원칙을 받아들이는 자는 누구나 악으로부터 보호를 받는다. 하나님에 대한 충성심에는 사람에 대한 충성심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하여, 율법은 모든 인생들의 권리와 개성을 지켜 준다. 그것은 위에 있는 자가 압제하거나 아래에 있는 자가 불복종할 때 이를 방지한다. 그것은 현세에서는 물론 내세에서도 사람의 행복을 보증한다. 율법은 그것을 순종하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보장한다. 왜냐하면, 대개 그것은 영원히 존속될 원칙들을 나타내 보이는 까닭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한 원칙이 사람의 마음을 개심시키는 데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보여 줌으로써 그 가치를 실제로 증거하기 위하여 오셨다. 그분은 또한 이 원칙들을 전개시키고 적용시키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하여 오셨다.

당시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모든 사물의 가치가 그 외관으로 결정되었다. 종교의 내면적인 힘이 쇠하여짐에 따라 그 외면적인 허식이 성하게 되었다. 그 시대의 교육자들은 과장과 허세로 존경을 받으려고 노력하였다. 예수님의 일생은 이 모든 것들과 매우 현저한 대조를 보였다. 그분의 일생은 사람들이 소위 인생의 요긴한 일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얼마나 무가치한 것인지를 실증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너무나 보잘것없는 환경에서 탄생하여 시골 생활을 하셨다. 한 사람의 장인(匠人)으로 세상의 이름없는 근로자들처럼 미천한 생애를 사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과 환경 가운데서도 그 분께서는 하늘의 교육 계획을 따르셨다. 작은 일을 과장하고 큰 일을 경시하는 당시의 학교를 예수님은 찾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신 자료들을 통해 교육을 받으셨다. 유용한 일, 성경 공부, 천연계, 인생 경험, 다시말해 스스로 손을 내밀고 눈을 떠서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충분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교과서들을 통해 직접 배우신 것이다.

78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눅 2:40).

이렇게 준비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나아가셨다. 그분은 사람들과 접촉하시는 동안 끊임없이 상대에게 축복과 감화를 끼치고 그 마음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지셨는데, 그런 일은 세상에 일찍이 없던 것이었다.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자는 먼저 인간성에 대해 알아야 한다. 사람의 마음은 동정, 신앙, 그리고 사랑을 통해서만 감동을 받고 향상된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께서는 크신 교사로서의 자격을 구비하셨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일찍이 세상에서 그분처럼 인간의 심령에 대하여 완전히 이해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여기에서, 제사장은 보통 교사의 임무를 겸하였기 때문에 대제사장은 크신 교사를 뜻한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8).

그리스도만이 인간에게 닥치는 모든 불행과 유혹을 다 경험하셨다. 여인이 낳은 사람으로서 그분처럼 격렬한 유혹을 받고 세상의 죄와 고민의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분처럼 넓고 부드러운 동정을 가진 사람 또한 다시 없었다. 인간의 모든 경험을 맛보신 그리스도께서는 무거운 짐을 지고 유혹과 싸우는 사람들을 동정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으시고 그들과 함께 그 참 정상(情想)을 직접 경험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남에게 가르치신 대로 직접 실천하셨다. 그분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5)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요 15:10)켰노라는 말씀도 주셨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말씀은 당신의 생활 가운데서 완전하게 실천되어 힘이 있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교훈은 바로 그분의 모습 그대로였다는 사실이다. 79 예수님의 말씀은 그분 자신의 인생 경험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그 품성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분은 진리를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곧 진리이셨다. 그분의 교훈을 유력하게 만든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신실한 견책자이셨다. 그분처럼 악을 미워하고 두려움 없이 죄를 견책한 사람은 없었다. 그리스도의 존재 그 자체가 모든 신실치 못한 것과 비루한 것들에게 견책이 되었다. 그분의 순결한 빛이 발할 때, 사람들은 자신의 추함과, 생애의 목적이 얼마나 비루하고 허위적인 것인지를 깨달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끌어당겨 붙드셨다. 인류를 창조하신 그분께서는 인간의 가치를 이해하셨다. 그분은 악을 일컬어 당신이 축복하고 구원하시려고 한 사람들의 원수라고 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비록 타락하기는 했으나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할 특권을 다시 가질 수 있는 그분의 자녀의 모습을 보셨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 3:17). 그리스도께서는 타락과 고난 가운데 있는 인류를 보실 때에, 절망과 멸망밖에 볼 수 없는 그 곳에서 오히려 희망의 여지를 찾아내셨다. 그분께서는 구하는 마음이 있는 곳에는 어디나 향상될 기회가 있음을 인정하셨다. 시험을 받아 패배하고, 기가 꺾여 자포 자기한 영혼들을 예수님께서는 견책하는 대신에 축복으로 맞이하셨다.

산상 설교 가운데서 주신 축복들은 전 인류를 향한 그리스도의 인사였다. 그분께서는 산상 설교를 들으려고 모여든 군중을 보시는 순간, 당신이 지금 하늘에 계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버리신 듯하였다. 그분은 빛의 세계의 친근한 인사 방법을 사용하셨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입술에서는 마치 오래 닫혀 있던 샘에서 물이 솟아나듯이 축복의 말씀이 넘쳐 나왔다.

야심적이고 자기 만족에 빠진 세상의 총아(寵兒)들에게서 눈을 떼시면서, 그분은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당신의 빛과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은 복이 있는 자라고 선언하셨다. 마음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핍박을 받는 자들을 향하여 두 팔을 벌리시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말씀하셨다.

80 그리스도께서는 각 사람의 무한한 가능성을 인정하셨다. 그분은 사람이 당신의 은혜를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움(난외 주)”(시 90:17)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보셨다. 희망을 가지고 사람들을 보신 그리스도는 그 희망을 사람들의 마음에 불어넣어 주셨다. 신뢰를 가지고 사람들을 대하신 그리스도는 그들의 마음에 신뢰감을 넣어 주셨다. 그분께서는 사람의 참된 이상을 당신 자신의 생애에서 나타내시고, 그 이상에 도달할 수 있는 희망과 신앙을 사람들의 마음에 깨우쳐 주셨다. 그리스도 앞에서는, 멸시받고 타락한 영혼도 스스로 사람인 것을 깨닫고 자신이 그리스도의 관심을 끌 가치가 있음을 입증하려고 열망하였다. 거룩한 것들에 대하여 거의 죽은 듯이 무감각했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새로운 자극이 일깨워졌다. 절망 상태에 빠졌던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애를 살 기회가 주어졌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랑과 헌신의 띠로 사람들을 당신의 마음에 붙들어 매셨다. 또한, 그분은 같은 띠를 가지고 사람들 사이를 연결시키셨다. 그분에게 있어서 삶은 사랑과 봉사 그 자체였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 10:8)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하여 희생하신 것은 십자가 위에서만 하신 것이 아니다. 그분께서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행 10:38)실 때에 겪으신 매일의 경험은 바로 그분의 생활이었다. 이러한 생애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면서 사셨다. 사람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은밀한 곳에,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할 때에, 또 거기서 얼마 동안 살 때에는 그 행위가 고상한 결과를 나타내지만, 그 후에는 신앙이 쇠하여지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고, 그 평생사업이 좌절되고 만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일생은 하나님과 더불어 끊임없는 교제로 유지된 변함없는 신뢰의 일생이었으며, 하늘과 땅에 대한 그분의 봉사는 실패하거나 실족함이 없는 것이었다.

81 그리스도는 한낱 사람으로서, 당신의 인성에 하늘의 권능이 더해져 인성과 신성이 결합될 때까지 하나님의 보좌를 향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셨다. 그분은 하나님에게서 생명을 받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요 7:46). 이 말은 혹 그리스도께서 물질적이거나 지식적인 면에 대해서만, 또는 이론적이거나 사색적인 것들만 가르치셨더라도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마음만 있었더라면 여러 세기에 걸쳐 연구해야 할 비밀까지도 설명하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분은 과학의 영역에서도 세상 끝날까지 계속될 사람들의 연구와 발명에 자극이 될 만한 것을 암시하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호기심을 만족케 하거나 이기적인 야심을 자극하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추상적인 이론이 아닌, 품성의 발달에 요긴하고 하나님을 아는 능력을 크게 하며 선행의 힘을 더하는 그런 방면의 일을 다루셨다. 그분은 일상의 행위에 관련된 진리와, 사람을 영원한 것에 연결시키는 진리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그 말씀 또는 그 하신 일에 관한 인간의 학설을 연구하도록 하지 않으시고, 그분이 하신 일과 그분의 말씀, 그리고 그분의 섭리에 나타나 계신 그분을 바라보도록 가르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무한하신 하나님의 마음에 접촉하도록 하셨다.

“저희가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세가 있음이러라”(눅 4:32). 사람의 사고력을 깨우치고, 분발력을 불러일으키고, 지·덕·체의 모든 능력을 고양시키는 말을 이처럼 능력 있게 한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그리스도의 교훈은 그분의 동정심과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환영을 받았다. 그리스도의 가르침 중에는 어떤 생활 환경도, 사람이 경험하는 그 어떤 위기도 논의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한 환경과 위기에 처할 때 그분의 가르침의 원칙들은 반드시 교훈을 준다. 82 교사 중의 교사이신 그분의 말씀은 그분과 동역하는 자들이 세상 끝날까지 간직하게 될 지침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에게는 현재도 미래도, 먼 것도 가까운 것도 다 한가지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전 인류의 필요에 관심을 가지셨다. 그분의 심안(心眼)에는 사람의 노력과 업적, 시험과 싸움, 혼미와 위험 등의 모든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분은 모든 마음, 모든 가정, 모든 기쁨과 즐거움, 희망을 알고 계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전 인류를 위하여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전 인류를 향하여 말씀하셨다. 인생의 초창기에 즐거움을 누리는 어린이에게, 열중하며 무엇을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젊은이에게, 인생의 강장(强壯)한 시기에 책임과 노고의 무거운 짐을 진 장년들에게, 약하고 피로한 노인들에게, 요컨대 모든 세대와 모든 지역의 전 인류에게 그분의 기별이 전해진 것이다.

그리스도의 교훈 중에는 현세의 것과 내세의 것, 다시 말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리고 지나가 버리는 일상의 사건들과 내세의 엄숙한 문제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의 사물을 영원한 것들의 다음 자리에 두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세상 사물의 중요성을 경시하신 것은 아니었다. 그분께서는 하늘과 땅은 서로 연결된 것이며, 사람이 하나님의 진리를 아는 것은 그로 하여금 일상 생활의 의무를 더욱 잘 이행하게 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그리스도에게는 목적이 없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아이들의 유희, 어른들의 수고, 인생의 즐거움과 염려와 고로 등 모든 것은 인류의 향상을 위해 하나님을 나타내는 이 한 가지 목적에 사용되는 수단들이다.

그리스도의 입술을 통하여 나온 하나님의 말씀은 새로운 힘과 새로운 의미를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그리스도의 교훈은 피조물들을 새로운 빛 앞에 서게 했다. 천연계에, 죄로 인하여 잃었던 빛의 광채가 다시 한 번 비치었다. 83 인생의 모든 현실과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교훈과 하나님과의 교제의 가능성이 나타났다.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세상에 사셨으니, 이 세상은 그분의 사랑에 둘러싸였으며, 사람의 마음은 그분의 임재하심을 인식하게 되었다. 하늘이 사람들에게 내려왔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영원한 지식을 보여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 안에서 깨달았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모든 교육의 중심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 안에 있다. 구주께서는 오늘날의 교육 사업에 대하여 당신이 천 팔백 년 전*에 친히 이룩하신 사업에 대하여 하신 것과 동일한 말씀을 하신다.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계 1:17, 18).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계 21:6)고.

이처럼 크신 교사에게서 하늘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도 예수님과 관계가 없는 교육을 받으려고 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 지혜로우신 하나님을 떠나서 지혜로워지려 하고, 진리를 거절하면서도 진실하려고 하며, 빛이신 하나님을 떠나서 가르침을 구하려 하고, 생명이신 하나님을 떠나서 생존하려 하며, 생수의 근원이신 분을 떠나서 물을 담을 수 없는 깨어진 물통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더없이 우매한 짓이다.

보라, 그분은 아직도 우리를 부르신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 7:37, 38).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