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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장-실제적 경건*

30장 - 실제적 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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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 오클랜드에 있는 친애하는 형제 자매들에게; 나는 그대들에게 편지를 쓸 마음이 간절하다. 나는 꿈 가운데서 그대들과 이야기하고 있는 나 자신을 거듭거듭 발견한다. 그럴 때마다 그대들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그러나, 어떤 일이 닥칠지라도, 그것이 그대들의 도덕적 용기를 약화시키고 그대들의 믿음을 냉랭한 형태로 전락시키지 않게 하라. 자비하신 예수님은 풍성하게 축복하시고자 준비하고 계신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과 열렬한 기도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기뻐하는 경험을 얻을 필요가 있다. 우리들 중 누가 저울에 달려져 부족함이 드러날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인간 대리자로서의 우리에게 맡겨 주신 고상한 책임을 저버리는 자가 되지 않기 위하여 우리 스스로 깨어 있고, 우리의 본성의 거룩하지 못한 가장 작은 충동에 대해서도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나간 시대에 당신의 백성들에게 주신 경고와 징계를 연구하여야 한다. 우리에게는 빛이 부족하지 않다. 우리는 우리가 피해야 할 것과, 그분께서 우리에게 지키라고 말씀하신 요구 조건들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옳은 것을 깨닫고 실천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악을 행하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보다 육신적 마음에 더욱 적합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의 믿음에 의하여 끌려가고자 하는 믿음 없는 자들이 항상 있을 것이다. 그들은 진리에 속한 체험적 지식이 없으므로 성화시키는 진리의 능력을 그들 자신의 심령에 느끼지 못하였다. 각 교인들은 그들의 생애와 성품이 하나님의 위대한 의의 원칙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조용하고 열렬하게 살펴보는 일을 그들의 과업으로 삼아야 한다.

주님께서는 캘리포니아와, 특별히 오클랜드에 있는 그대들을 위하여 큰 일을 이루셨다. 그러나, 그대들이 믿음과 일치되는 행동을 할 것 같으면, 그분께서 즐겨 이루고자 하시는 일이 더 많이 있다. 205 하나님께서는 불신을 풍성하게 축복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을 살펴보라. 그리고, 그것이 그분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것의 시작에 불과함을 알라.

성경을 상고하라

우리는 성경에 대하여 우리가 지금껏 평가하고 있는 것보다 더욱 높은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성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는 성경 속에 있는 것을 깨닫기 위하여 성경을 연구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그 말씀은 마치 직접적인 음성으로 전달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실제적으로 전달해 주신 것이다. 우리는 그 교훈을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그 귀중함을 알지 못한다.

우리들 주변에는 어디에나 활동하고 있는 악한 천사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육신적 시력으로 그들의 존재를 식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밝혀진 그대로 그들의 존재가 실제적임을 마땅히 생각해야 할 만큼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성경 가운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전혀 없을 것 같으면, 사람들은 성경책을 연구하는 중에 교만과 자부심으로 우쭐해질 것이다. 사람이 진리의 모든 면을 다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최선의 일이 아니다. 그가 그 모든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도 성경의 모든 부분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자고하거나 자기 외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가 이해하고 있는 것과 꼭 같이 그것들을 알려 주는 것이 자기의 의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적 교만을 버리도록 하라. 나는 모든 종류의 영적 교만을 갖지 못하도록 경고하는 데 나의 음성을 높이는 바이다. 오늘날 교회에는 영적 교만이 많다.

오늘날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진리가 처음으로 성경상 진리로 발견되었을 때 그 진리는 얼마나 이상하게 보였으며, 그 진리를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전하면서 우리가 당할 수밖에 없었던 반대는 얼마나 강한 것이었던가. 그러나, 순종심이 많고 진리를 사랑하는 일꾼들은 얼마나 열렬하고 성실하였던가! 우리는 참으로 특별한 백성이었다. 우리는 수도 적고 재산도 없고 세속적 지혜와 명예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믿었고 강하여졌고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하여,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두려움을 주었다. 206 피차간에 나누는 우리의 사랑은 확고하였고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사이에 나타나서 병자들이 고침을 받았다. 그리고, 조용하고 흐뭇하고 거룩한 기쁨이 있었다.

그러나, 빛은 계속해서 증가하였지만, 교회는 거기에 비례해서 발전하지 못했다. 훌륭한 금은 점차적으로 빛을 잃게 되었고, 무감각과 형식주의가 들어와서 교회의 힘을 무능하게 만들어 버렸다. 하나님 백성들의 충분한 특권과 기회는 그들을 전진시키고 향상시켜 순결하고 거룩하게 이끌지 못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맡겨주신 양쭝들을 충실하게 활용할 것 같으면, 그 양쭝들은 크게 증가할 것이다. 많이 준 곳에는 많은 것을 요구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빛을 성실하게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자들, 그리고 극기와 자아 희생의 길에서 높고 고상한 위치에 서는 자들은 세상에 빛을 전하는 빛의 통로가 될 것이다. 전진하지 않는 자들은 하늘 가나안의 경계(境界)에서까지도 후퇴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믿음과 행위는 받은 바 진리의 빛과 전혀 일치되지 않음이 나에게 계시되었다. 우리는 반신 반의의 믿음을 가져서는 안 되며, 사랑으로 역사하고 영혼을 순결케 하는 완전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그대들이 그분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시기를 요구하신다.

개인적 독립

한 가지 점을 경계해야 하는데, 그것은 곧 개인적 독립이다. 그리스도의 군대에 속한 군사로서, 여러가지 분야의 사업에 있어서 행동상 협조가 이루어져야 한다. 어떤 사람이든지 성경 교리가, 우리들 가운데 있는 다른 사람들이 그 문제에 관하여 다른 의견을 주장함으로 논쟁을 야기시킬 것을 알고 있을 때는 독자적으로 일을 시작하여 그 성경 교리를 우리의 출판물을 통하여 제시할 권리가 없다. 초기의 재림교인들은 그렇게 하였다. 각 사람이 자기 자신의 독자적 판단을 따르고 기발한 사상을 제시하고자 노력하였으므로, 마침내 그들 사이에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을 반대하는 일 외에 협조적 행동은 없었다. 우리는 그들의 모본을 따라서는 안 된다. 각 일꾼들은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어 행동해야 한다. 207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피차 독자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힘을 얻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 힘을 절약해 두었다가 고상하고 중요한 행동에 발휘해야 한다. 그것은 무의미한 활동에 낭비되어서는 안 된다.

연합에는 힘이 있다. 우리의 출판소들과 다른 기관들 사이에 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 만일, 이런 연합이 있을 것 같으면 그 기관들은 힘이 있을 것이다. 사역자들 사이에 분쟁이나 알력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사업은 한 지도자 그리스도에게 감독을 받는 하나의 사업이다. 간헐적이요 발작적인 활동이 손해를 끼쳐 왔다. 그 활동들이 아무리 정력적일지라도, 그것들은 별반 가치가 없다. 왜냐하면, 부작용이 분명히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꾸준하게 인내력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실천하기 위하여 계속적으로 살펴야 한다.

하나님께서 성품을 살펴보심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하여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무엇임을 알아야 한다. 형제 자매들이여, 우리는 유행의 물결을 따라 떠다녀서는 안 된다. 우리가 현재 해야 할 일은 세상에서 나와서 분리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거룩한 감화력이 그의 인간적 활동과 함께 끊임없이 작용하고 있었다. 에녹처럼 우리도 강하고 생기 있고 활동적인 믿음을 가지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과 동역자가 될 수 있는 유일의 방법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조건들에 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죄 가운데서 죽어야 한다. 우리는 하늘 집에 적합한 사람들이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우리의 품성 가운데 어떤 도덕적 변화가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중에 그대들에게 말한다. 우리는 찬란한 진리의 빛이 우리 주변을 온통 비추어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결핍되고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한 채 생활할 위험이 있다.

율법과 복음을 순종하노라고 수만 번 공언하면서도 여전히 범죄의 상태에서 살아갈 수도 있다. 진리의 요구 조건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분명한 방법으로 제시 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은 여전히 변화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은밀한 가운데 죄를 좋아하고 범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진리가 그들에게는 진리가 아닐 것이다. 208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이 진리로 거룩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주의 사랑은 그들의 저속한 정욕을 제어하는 데 있어서 강권하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거룩한 위치에 서 있으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진리를 기만적으로 취급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과거의 역사를 통하여 알게 된다. 그들은 “분노와 다툼이 없이”(딤전 2:8) 하나님께 거룩한 손을 들 수 없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지 않으시는 이유이다. 진리가 그들의 마음에 전혀 새겨지지 않았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롬 10:1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막 12:30). 그렇게 하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지금껏 결코 이렇게 하지 않았으며, 지금도 여전히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의 회개는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사도는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말한다(골 3:1, 2). 마음은 사람의 요새이다. 거기에서 생명이나 사망의 물이 흘러나온다. 마음이 순결해지기 전에는 성도의 교제에 있어서 어떤 몫이라도 담당하기에 부적당하다.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영혼을 생각하지 않고 죄 가운데 머뭇거리고 있는 자들을 모르실 것인가? 각 사람의 생애에 있는 가장 은밀한 것까지 목격하는 증인이 있지 않았던가? 나는 어떤 남자들이 여자들과 소녀들에게 하는 말 곧 아첨하는 말, 속이고 홀리는 말들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사단은 영혼들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이 모든 방편들을 사용한다. 그대들 중 어떤 사람들은 이와같이 그의 도구로서의 역할을 해 왔다. 만일 그렇다면, 그대들은 심판의 때에 그러한 일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천사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께 결코 바쳐지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 안에 거하지 않으신다. 진리가 거기에 없다 그 장소는 죄와 기만과 거짓으로 점령되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어지지 않고 실천되지 않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과 교회들과 나라들에서 역사하고 있는 사단의 현실적 활동은 예언을 연구하는 모든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 끝이 가까왔다. 우리의 교회들은 각성해야 한다.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 모든 교인들의 마음에서 체험되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의 깊은 활동을 보게 될 것이다. 209 죄의 용서만을 초래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돌아가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죄를 제거해 버릴 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회복시키고, 다시 아름답게 만들고, 멸망의 상태에서 개조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기에 적합하게 만들기 위하여 무한한 희생을 치르셨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로써 우리의 믿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정신을 풍부하게 소유하기 위하여 큰 열망이 나타나야 한다. 왜냐하면, 그 속에 교회의 힘이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분리시키고자 애쓰는 자는 사단이다. 사랑, 아, 우리는 하나님과 상호간에 대한 사랑을 얼마나 적게 소유하고 있는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진리의 말씀과 정신은 우리를 세상과 분리시켜 줄 것이다. 진리와 사랑의 불변의 원칙이 마음과 마음을 결합시켜 줄 것이다. 그리고, 연합의 힘은 간직하고 있는 은혜와 진리의 양에 비례될 것이다. 우리 각 사람들이 거울, 곧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들고 그 속에 하나님의 품성이 비쳐지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주어진 위험 신호와 경고들을 등한히 하지 않도록 유의하자. 이런 경고에 유의하지 않고 품성의 결함들을 극복하지 않을 것 같으면, 그 결함들이 그것들을 간직한 자들을 정복시키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오류와 반역과 공공연한 죄에 빠지게 될 것이다. 최고의 표준에까지 올라가지 못한 마음은 때가 되면 한때 그것이 간직하고 있던 것을 보존할 힘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벧후 3:17, 18).

영성과 능력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때에 한 백성을 택하셔서 당신의 율법을 보존하도록 맡기셨다. 이 백성은 수행해야 할 어려운 과업을 언제나 맡게 될 것이다. 210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계 2:2, 3). 악이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키는 데는 많은 근면과 끊임없는 투쟁이 요구될 것이다. 엄격하고 공정한 원칙이 실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신앙의 외관만 갖춘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넘어뜨리기 위하여 노력하는 한편 자기 자신들을 높이고자 몰래 활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 예수님께서는 감람 산 위에서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마 24:12). 그분은 높은 영성의 상태에서 떨어진 계층에 속한 사람들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그런 말씀들이 엄숙하고 철저히 살펴보는 능력으로써 우리의 마음에 감명이 되게 하자. 우리가 믿노라고 주장하는 진리의 위대함에 적합한 열성이 어디 있으며, 하나님께 대한 헌신은 어디 있는가? 세상에 대한 사랑과 매력적인 어떤 죄에 대한 애착은 거룩한 사물에 관하여 기도하고 명상하기를 좋아하는 마음을 빼앗아 버렸다. 형식적인 종교적 봉사는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어디 있는가? 영성은 사라져 간다. 이와 같은 마비 상태, 이처럼 슬픈 퇴보가 계속되어야 할 것인가? 진리의 등은 은혜의 기름이 보충되지 않음으로 깜박거리며 어둠 속으로 빠져 들어가야 할 것인가?

나는 모든 목사들과 우리의 사역자들이 내게 제시된 그대로 이 문제를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자부심과 자만심은 영적 생명을 죽이고 있다. 자아를 높이고, 자아를 화제로 삼고 있다. 아, 이러한 자아가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사도 바울은 말했다(고전 15:31). 이 교만하고 오만한 자만심과 자아 만족에 도취된 독선이 심령을 채우고 있을 때, 예수님이 거하실 자리는 없다. 자아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영혼의 성전 전체를 점령하고 있는 한편, 예수님께는 열등한 장소가 주어진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처럼 적은 일밖에 하실 수 없는 이유이다. 만일, 그분께서 우리의 활동에 역사하실 것 같으면, 도구에 불과한 사람은 그 모든 영광을 자기 자신의 영리함과 자기의 지혜와 자기의 능력에 돌릴 것이다. 211 그리하여, 그는 바리새인들처럼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눅 18:12)고 말함으로써 자찬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자아가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질 때는 그것이 그처럼 빈번히 표면에 나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의 마음과 일치될 것인가? 우리는 실제적 경건을 더욱 중요시하고, 기계적 장치를 덜 중요시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스도의 종들은 마치 그리스도와 천사들의 눈앞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 그들은 우리 시대의 요구를 깨닫기 위하여 노력하고 거기에 응할 준비를 할 것이다. 사단은 시험해 보지 않은 새로운 방법으로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군대를 지도하는 장교들이 무능해서야 되겠는가? 무슨 이유로 그들이 본질적으로 가진 어떤 기능을 사용하지 않고 버릴 것인가? 이루어져야 할 큰 사업이 있다. 그런데, 그 사업을 행함에 있어서 어떤 조화로운 행동이 부족하다면, 그 이유는 자아를 사랑하고 자부심을 가지는 까닭이다. 우리가 그 사업 위에 우리의 표적과 특징을 남기지 않고 주님의 명령을 이행하고자 유의할 때만 우리는 능률적으로, 또한 조화를 이루어 일하게 된다. 천사는 “연합하라, 연합하라”고 말하였다.

실제적 신앙 안에 머무름

나는 거룩한 일에 봉사하는 그대들에게 실제적 신앙 안에 머물라고 권유하는 바이다. 부드러운 양심과, 진실하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심령의 슬픔과, 죄에 대한 깨달음을 어쩌면 그렇게 보기 드물까. 그것은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성령이 크게 역사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구주는 야곱이 본 사닥다리이며, 그 밑바닥은 땅에 닿아 있고, 맨 위는 가장 높은 하늘에 닿아 있다. 이것은 정해진 구원의 방법을 알려 준다. 만일, 우리 중 어떤 사람이 최종적으로 구원을 얻는다면, 그것은 마치 사닥다리의 발판을 단단히 밟는 것처럼 예수님을 굳게 붙듦으로써 이루어질 것이다. 믿는 자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지혜와 의와 성화와 구속(救贖)이 되신다. 어떤 사람도 원수를 정복하는 것이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거나 자신이 담당한 노력 없이 높이 향상되어 썩지 않을 유업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뒤를 돌아다보면 현기증이 나고, 붙든 손을 놓아 버리면 죽게 된다. 212 이기기 위하여 끊임없이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자는 별로 없다. 그들은 그들의 근면성을 이완시킨다. 그 결과로 그들은 이기적으로 되고 방종하게 된다. 영적 각성이 요긴하다는 것이 고려되지 않고 있다. 인간적 활동에 있어서의 열성이 그리스도인 생애에 실천되지 않고 있다.

진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굳게 서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그대로의 진리를 가지고 있지 않는 자들에게 무서운 타락이 나타날 것이다. 순간적인 부주의가 사람을 돌이킬 수 없는 파멸 속으로 빠뜨릴 수도 있다. 한 번의 죄는 두번째의 죄를 짓도록 이끌어 주고, 두번째의 것은 세번째의 죄를 지을 길을 마련해 준다. 그리하여, 계속적으로 죄를 짓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충성된 사자들로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기 위하여 그분께 끊임없이 간구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의무의 길에서 단 한 치라도 벗어나면, 우리는 멸망으로 끝나는 죄의 길을 따라갈 위험에 빠지게 된다. 우리 각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다. 그것은 오직 한 길에서만 얻는 희망이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붙들어 매고 그분의 품성의 완전함에 이르기 위하여 모든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죄를 경하게 여기고 자신의 행위와 상관없이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는 신앙은 다만 죄인에게, 하나님께서는 그가 죄로 알고 있는 것을 계속 범하고 있을지라도 그를 받아 주실 것으로 믿도록 권장해 준다. 이것은 현대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어떤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이다. 진리는 생애와 분리되어 있다. 진리가 영혼을 각성시켜 회개시킬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그대로의 진리가 캘리포니아에 있는 어떤 사람들의 생애에는 결코 들어가지 못하였음을 나에게 보여 주셨다. 그들은 성경상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결코 변화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의 마음이 그들이 받아들인 진리를 통하여 거룩해지지 않으면, 그들은 가라지와 함께 묶여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산 포도나무의 가지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귀중한 포도송이를 맺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 55:6, 7). 213 많은 사람들의 생애는 그들이 하나님과 산 관계를 이루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들은 세상의 수로(水路)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그들은 사실상 그리스도와 아무런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그들은 오락을 좋아하고, 이기적인 사상과 계획과 희망과 야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는 구실 아래 원수를 섬긴다. 그들은 엄한 주인에게 속박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이 택하는 이와 같은 속박이 그들 스스로를 자원하여 사단의 종이 되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거짓된 사상, 곧 아이들을 제지하면 해롭다는 사상은 수많은 사람들을 파멸시키고 있다. 만일, 그대들이 지키지 않을 것 같으면, 사단은 분명히 자녀들을 소유해 버릴 것이다. 그들이 신앙심이 없는 자들과 사귀도록 권장하지 말라. 그들을 그런 교제에서 떠나게 하라. 그런 자들에게서 스스로 나와서 그대들이 주님 편에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 주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주장하는 자들이여, 그대들은 단순히 집회에 참석해 있을 동안뿐만 아니라 시간이 존속하는 한, 표준을 높이지 않겠는가? 그대들은 주님 편에 서서 마음의 목적을 다하여 그분을 섬기지 않겠는가? 만일, 그대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분명한 요구 조건을 버릴 것 같으면, 그대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대들이 죄를 벗어 버리고 산 믿음을 활용할 것 같으면, 가장 풍성한 하늘의 축복이 그대들의 소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