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뽑은 기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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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주님의 사자인 엘렌G.화잇 여사는 병고의 고통이 어떠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셨다. 그의 유년 시절의 희망은 거의 생명을 앗아 갈 뻔한 아홉 살 때의 사고로 말미암아 완전히 꺾이고 말았다. 그는 또한 네 아이를 낳아서 기르던 중 두 아들을 여읠 수밖에 없었던 슬픈 경험도 맛보았다. 반평생의 공중 봉사의 생애를 살면서 과부의 몸으로 지내셨다. 그는 또한 오래 끄는 질병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병고로 신음하는 자들, 죽음에 직면한 자들, 나이가 많은 노인들 및 사별을 당한 자들에게 보낸 그의 격려의 기별들은 자기 자신의 경험에서 친히 느끼고 알고 있는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것들이었다.

아무도 거룩한 섭리의 신비성에 대하여 설명할 수 없으나 시련과 고통 중에서 하나님을 신뢰하였던 자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획들을 추진해 나가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화잇여사께서도 이 사실을 아셨으며 1892년에 가졌던 여행의 경험 중에서 매일 매일 간단한 일기의 형식으로 자기의 경험을 기록하였다. 그 일기의 내용을 보면 낯선 외국 땅에서 근 10개월 동안 자신이 병고로 신음하던 경험을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기도하고 기름을 바른 것에 대하여 아무런 반응이 없이 치료되지 않았을 때 겪은 그의 실망과 생사간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요지부동의 신앙이 그 일기 가운데 나타나 있다.

화잇 여사께서 여러 환경에 따라 보내신 개인적인 기별들은 고통을 당해야 할 자들에게 위로가 되게 하기 위하여 기록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 어째서 당신의 백성들이 오랜 기간 동안 질병의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왜 저들이 고통스러운 병상에서 고달픈 생활을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의문들을 풀어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본 편에 묘사된 것과 같은 성질의 경험들을 겪고 있는 자에게 위로와 격려가 이를 것이다. 비록 반복되는 점들이 다소 있으나 그것은 가급적 여러 경우에 처한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의 기별을 주기 위한 목적에서 그리한 것이다.―화잇 저서 출판위원회

221 그리스도의 참된 목사는 계속적인 발전을 해야 한다. 그의 생애에 비친 “오후의 햇빛은 아침의 햇빛보다도 열매를 무르익게 하고 생산력을 풍부하게 해준다. 그 햇살은 서산에 넘어가기 이전까지 그 범위와 광도(光度)에 있어서 계속 증가할 뿐이다. 목회 사업에 종사하는 나의 형제들이여, 나태함으로 녹이 슬어서 버림을 당하기보다는 국내(미국)에서나 외국 선교지에서 힘든 일을 하다가 죽는 편이 훨씬, 정말 훨씬 나을 것이다. 난관들에 봉착하여 당황하지 말라. 연구의 생활이 없이, 발전함이 없이 무위(無爲)로 만족감에 빠지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탐구하여 무지한 자들에게 가르칠 문제들을 찾아낼 것이며 하나님의 양무리들에게 꼴을 먹이라. 충분한 자료들을 준비하여 그대들은 주님의 말씀의 창고에서 새 것과 옛 것들을 소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대들의 경험은 10년, 20년 혹은 30년으로 국한될 것이 아니라, 매일 살아있는 경험으로써 때에 따라 알맞는 양식을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앞을 바라보고 뒤를 돌아보지 말라. 과거의 경험을 더듬기 위하여 회상에 잠기는 노예가 되지 말라. 그러한 과거의 경험들이 그대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가? 물론 지난날의 모든 선한 경험들을 소중히 여기는 반면에 그대들이 지금의 삶에서 더욱 밝고 더욱 신선한 경험을 얻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과거에 그대들이 한 일에 대하여 자랑하지 말고 현재 그대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나타내 보이라. 222 그대들의 말보다도 그대들의 행실이 그대들 자신을 찬양하게 하라.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바위시라 그에게는 불의가 없도다”(시 92:13-15) 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확증하라. 계속적인 활용에 의해서 마음과 정신을 젊게 가지도록 하라(리뷰 앤드 헤랄드, 1886.4.6).

나는 오랫동안 신앙 생활을 하여 온 자들이 과거에는 시련과 역경을 잘 견딜 수 있었으나 노약기(老弱期)가 이를 때에 자제력을 잃는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이상 더 예수님을 그대들의 구세주로 모시지 않기로 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늙어서 백발이 될 때에 얼마든지 더러운 정욕을 나타내 보여도 상관없다는 말인가? 한번 이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대들은 모든 세속적인 일에 그렇게 하듯이 이 문제에 대해서 좀더 이지적인 판단력을 사용해야 한다. 그대들은 자기를 부인해야 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그대들의 첫째 의무로 삼아야 한다. 그대들의 평화를 침해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용납하지 말 것이다. 침해를 받아야 할 아무런 필요가 없다. 거룩한 생애에 있어서 계속적인 성장과 계속적인 발전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야곱이 본 사닥다리로서 그 밑이 땅에 닿았고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다. 그대들은 오르고 또 올라서 영원한 왕국에 닿을 때까지 계속 이 다리를 올라가야 한다. 사단처럼 닮아가고 인간의 본성처럼 타락해야 할 아무런 핑계거리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신앙적인 특권의 높은 표준을 우리들에게 제시하셨으며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권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엡 3:16-19)신 것이다(리뷰 앤드 헤랄드, 1889.10.1).

223 오후 2시 반에 나는 뉴욕의 아담스 센터에 만장한 청중을 향하여 설교하였다…. 우리들은 이 기회에 하나님의 나이 많은 종들을 만나게 되어 무한히 기뻤다. 우리들은 셋째 천사의 기별이 전하여지기 시작한 때로부터 프레데릭 휠러 목사와 친숙히 지내왔으며 그는 지금 거의 80세에 가까와지고 있다. 또한 우리들은 지난 40년 동안 H.H.윌콕스 목사와 췌이스 O.테일러 목사를 사귀어왔다. 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노령의 기수들에 관하여 나이가 말해 주는 것이 있다. 만약 우리들이 끝날까지 충성한다면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시들지 않는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다.

노령의 기수들을 무용지물로 여기고 한편으로 제쳐놓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존재들이다. 저들은 사도 요한이 행한 것과 같은 사업의 일익(一翼)을 담당할 수 있다. 또한 저들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1-7).

이 말씀은 사도 요한이 거의 100세에 가까왔을 때에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한바 기별의 정신이며 생명이다. 기수들은 저희 손에 든 깃발을 굳게 붙잡고 있다. 224 저들은 전신 갑주를 벗을 때까지 진리의 깃발을 저희 손에서 놓지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씩 옛날 전사(戰士)들의 음성은 사라지고 있다. 저들이 서 있던 자리는 텅 비어 있다. 우리들은 저들을 더 볼 수 없으며 비록 저들은 죽었으나 아직도 말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저희가 이루어 놓은 사업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몇 사람 안 되는 남아 있는 노령의 순례자들을 부드럽게 대하며 저들이 이루어 놓은 사업을 인하여 저들을 높이 평가하자. 비록 저들의 능력은 쇠퇴해지고 약화되고 있으나 저들이 하는 말은 매우 가치있는 것이다. 저들의 말들을 고귀한 증언처럼 다루어야 한다. 청년들이나 새로운 교역자들이 백발이 성성한 사람들을 멸시하거나 어떤 면으로든지 냉담한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되며 오히려 일어나서 저들을 위하여 복을 빌어야 할 것이다. 자기 자신들이 이러한 노장들의 일을 이어 받아 같은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제일 처음으로 기별을 선포한 자들을 위하여 우리 신자들의 마음 가운데 더욱 뜨거운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기를 바란다(원고 33, 1890).

S.N.해스켈 목사에게 주는 경고의 말씀 해스켈 목사여, 비록 그대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전부 이행하고자 열망하고 있기는 하겠으나 그대가 다년간 진리를 증거할 수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자비와 은혜로 말미암아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하게 했다는 것을 기억하라. 젊은 다른 사람들이 짊어질 수 있는 짐들을 그대 혼자서 짊어져서는 안 된다.

생활 습관을 형성함에 있어서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은 그대의 의무이다. 그대 자신의 육체적·정신적 및 영적 능력을 사용하는 일에 그대는 현명해야 한다. 여러 가지로 다양하고 복잡한 경험들을 거친 우리들은 우리 자신들의 능력을 보존하기 위하여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모두 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주님의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우리들 자신의 위치에 서 있도록 허락하시는 한 주님을 위하여 일할 것이다.

이 사업에는 노령의 교역자들 곧 하나님의 사업에 다년간의 경험을 가진 자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저들은 많은 사람들이 광신주의에 빠지고 거짓 교리에 미혹되며 참된 빛을 비추려는 모든 노력을 거부하는 것을 친히 목격하였다. 225 참된 빛을 흑암 속에 비추어 침투해 들어오는 미신들의 정체를 밝힘으로써 판단력을 혼란케 하거나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남은 백성들에게 순결성 그대로 전해야 할 기별을 무력하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시련을 겪은 많은 하나님의 종들은 예수님 안에서 이미 잠들어 버렸다. 우리들은 지금 이 날까지 생존해 있는 자들의 도움을 크게 감사히 여기고 있다. 우리들은 저들의 증언을 귀중하게 여긴다. 요한일서 1장을 읽고 비록 그대들에게 많은 허물들이 있으나 당신을 위하여 아직도 증거할 수 있게 하신 주님을 찬양할 것이다….

우리들은 현재(1902년) 생존해 있는 초기의 교역자들을 쉽사리 손꼽아 헤아릴 수 있다. 우라이아 스미스 목사는 출판 사업의 시초부터 우리들과 같이 있었다. 그는 나의 남편과 함께 일하였다. 우리들은 항상 그의 이름이 리뷰 앤드 헤랄드지 편집자들 명단 위의 맨 꼭대기에 기재되어 있는 것을 보기 원하였는데 그의 이름을 맨 위에 올려놓는 것은 마땅한 일이었다. 전쟁이 한참 치열할 때에 사업을 시작하였고 용감하게 싸운 자들은 지금껏 저들이 굳게 붙잡아 온 것을 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저들은 가장 심한 궁핍이 지나간 후에 사업에 참여한 사람들에게서 존경을 받아야 한다.

나는 스미스 목사에 대하여 아끼는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출판 사업에 관여된 나의 필생의 과업은 그의 일생과 한데 묶여 있다. 그는 청년 시절에 우리들에게 왔으며 편집인으로 채용할 충분한 자격과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처럼 탁월하고 신령한 진리로 가득 찬 그의 글을 리뷰지에서 읽을 때마다 나는 얼마나 기뻐하였는지 모른다. 나는 그러한 글들을 쓰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나는 스미스 목사에 대하여 강렬한 동정심을 느끼며 지도적인 편집인의 이름으로서 항상 그의 이름이 리뷰지에 기재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하기를 원하실 것이다. 몇 해 전에 그의 이름이 두 번째로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나의 마음이 몹시 상하였다. 또다시 그의 이름이 맨 위에 적혀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울었으며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였다. 스미스 목사의 오른손에 펜대가 쥐어 있는 한 하나님께서 뜻하신 그대로 그의 이름은 항상 맨 윗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다. 만약 그의 오른손이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을 잃을 때에 그의 아들들이 그의 글을 받아 쓰게 해야 할 것이다.

나는 J.N.로프보로우 목사가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아직도 자기의 재능과 은사를 사용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는 폭풍과 시련 속에서도 충실하게 일하였다. 226 스미스 목사, 나의 남편 그리고 나중에 우리들과 합세한 버틀러 형제와 그대 자신(S.N.해스켈)과 더불어 로프보로우 목사는 “태초부터 …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일 1:1-3)고 말할 수 있다.

우리들은 G.I.버틀러 목사가 또다시 적극적인 봉사 사업에 나선 것을 볼 때 하나님께 만족감과 고마운 뜻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은빛나는 백발은 인생에 따르는 시련들이 무엇임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증거한다. 우리들은 그가 다시 한 번 우리 대열에 참가하게 된 것을 환영하며 우리들은 그를 가장 귀한 일꾼들 중의 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

주님께서 젊어서부터 기별을 증거하여 온 형제들이 신체와 정신과 영적 능력을 보존하는 일에 관하여 지혜롭게 되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란다. 나는 주님께서 그대들에게 이지력을 주셨다는 것과, 그대들이 몸의 건강에 미치는 법칙들을 이해하고 그 법칙들을 순종할 결심을 하기를 주님께서 바라신다는 것을 전달하라는 지시를 주님으로부터 받았다. 이러한 건강 법칙들은 하나님의 법칙들이다. 주님께서는 모든 선구적인 교역자들이 자기 자리를 지키기를 바라시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또는 영적으로 타락하여 가며 강한 악의 물결에 의해서 실망에 휩쓸려가는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에 자기의 맡은 부분을 다하기를 바라신다. 나의 형제들이여, 주님께서는 그대들이 투쟁의 마지막 순간까지 전신 갑주를 입고 있기를 바라신다. 그렇다고 해서 경망한 행동을 하거나 과로하지 말 것이며 휴식 기간을 취할 것이다.

호전적인 교회가 승리하는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주님께서는 시련을 겪은 당신의 종들이 생존하여 있는 한 절제에 대한 개혁을 주장하기를 바라신다. 절제의 깃발을 휘날리라. 모든 일에 있어서 엄격한 절제를 실천하도록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건강 법칙에 기꺼이 순종하는 챔피언이 되게 하라. 하나님의 진리를 위하여 굳건히 서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계 14:12)라고 새겨진 깃발을 백성들 앞에 높이 들라….

아직도 옛날의 기수들이 몇 사람 생존하고 있다. 나는 우리 형제 자매들이 이러한 선구자들을 존경하고 우대하기를 갈망하고 있다. 227 우리들은 시련들이 무엇임을 아는 인물로서 이 선구자들을 그들에게 소개하는 바이다. 나는 모든 신자들이 기별의 초기에 중대한 역할을 하고 많은 시련과 역경과 심한 궁핍을 이겨낸 인물들을 존경하게 하라는 지시의 말씀을 받았다. 이러한 인물들은 백발이 되기까지 사업에 종사하였다. 오래지 않아 저들은 저희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진리를 전파하는 일에 일생을 바친 당신의 종들이 충성되고 진실하게 서서 율법을 지지하는 증언을 하기를 바라신다.

시련을 많이 겪은 하나님의 종들이 일하기 어려운 곳에 있도록 해서는 안 된다. 일하기 매우 어려울 때에 저희 주님을 섬겼고 궁핍을 견디었으며, 아직도 신자들의 수가 적을 때에 충실하게 남은 자들은 언제나 존경과 대우를 받아야 할 것이다. 나중에 진리 가운데로 들어온 자들이 이러한 말들을 유의하게 하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영혼들이 이 경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라신다(서신 47, 1902).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나이 많은 종들이 자문 위원들로서 활약하기를 요구하시며 청년들에게 위기를 대처하는 방법을 가르치기를 바라신다. 나이 많은 교역자들은 사도 요한이 행한 것처럼 실제적인 경험에 대한 산 증언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충성된 교역자들이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계 14:13)라는 말씀을 듣고 안식을 취할 때에 우리 학교들 가운데서 군기를 집어 들고 그것을 새로운 지역에 세울 수 있는 남녀들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노령(老齡)의 기수들이 교역하는 동안 저희의 수고로 도움을 얻은 자들은 저들을 돌보고 존경해야 한다. 저들에게 무거운 책임을 맡기지 말라. 저들의 충고와 권고의 말들을 감사히 여기라. 저들을 마치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는 부모들처럼 대우하라. 과거에 사업의 필요성을 예측한 교역자들은 모든 책임을 저들 스스로 지는 대신에 젊은 남녀들의 어깨에 메워주며 엘리야가 엘리사를 교육한 것처럼 저들을 교육하라.

다윗은 그가 받은 바 신령한 교훈과 지도를 위해서 “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셨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사를 전하였나이다”(시 71:17)라고 감사의 찬사를 올렸다. 228 기별의 역사 가운데서 무거운 짐을 지고 곤란을 겪은 자들은 저희가 젊었을 때에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1:29)고 저들을 초청하신 분이 같은 주님이시며 과거에 주님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진리의 빛을 주시며 오늘날의 젊은 청년 남녀들에게도 기꺼이 가르치시는 주님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무거운 책임을 진 사람들이 일에서 벗어나 잠시 동안 쉬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충성된 교역자들은 모든 과중한 부담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만 교육자들로서 저들이 할 수 있는 그 사업을 고맙게 여겨야 한다. 주님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저들의 노력에 협력하실 것이다. 저들은 씨름하는 일들을 젊은 교역자들에게 맡겨야 할 것이다. 장래 사업은 든든한 청년들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 사업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우리 주님의 지배 하에 있다. 주님께서는 기회가 있는 사람들에게 일할 자격을 주실 수 있으며 또한 주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전쟁을 싸워 줄 수 있는 자들을 일으키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결코 당신의 사업을 운수에 맡기시는 일이 없다. 이 사업은 위대하고 엄숙한 사업이며 전진해야 할 사업이다.

주님의 사업에 몸을 바친 원로 교역자들이 무거운 책임들을 짐으로 남은 기력을 소모하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젊은 일꾼들은 저들이 할 수 있는 한 모든 책임을 짊어져야 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용감하게 싸워나가야 한다. 주님께서는 가장 지혜로운 인간이 아무리 큰 관심을 보일지라도 당신의 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어떤 사업을 선택해야 하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신다. 청년들의 마음 가운데 당신의 영을 불어넣으시고 당신을 위하여 큰 장애물들을 대항하여 싸우도록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다소 사람 바울을 감동시키셨고 그는 천국의 계시로 나타난 진리를 위하여 자기에게 위탁된 모든 능력을 가지고 자기를 마땅히 지지했어야 할 배교자들을 대항해서 싸웠다. 오늘날의 하나님의 종들도 바울이 당면했던 것과 같은 동일한 난관들을 겪게 될 것이다. 과거에 이러한 경험을 가진 자들이 현대 진리의 깃발을 휘날리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인물들이 진리를 방어할 수 있는 자들이다. 저들이 계속해서 배우는 자들이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율법을 옹호하시기 위하여 저들을 사용하실 수 있다.

229 나이 많은 교역자들은 저들 자신이 모든 책임과 모든 부담을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들 앞에는 계속적으로 새로운 선교 지역들이 열리고 있다. 젊은 청년들은 성경 말씀을 많이 알고 오랫동안 말씀을 행하여 오고 진리를 실제적인 생활로 옮겼으며 매일 매일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다니엘처럼 주님을 찾는 노련한 교역자들과 연합해야 한다.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자기의 탄원을 하나님께 올렸다. 그는 모략에 능하신 주님께서 지혜와 능력의 근원이심을 알았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그대로의 진리 곧 좌우에 날선 성령의 검은 다니엘의 전쟁 무기였다.

하나님을 저들의 유일한 신뢰자로 삼은 사람들은 말과 정신과 원칙 면에서 저들과 관련된 청년들에게 모본을 보일 것이다. 이처럼 충성된 하나님의 종들은 저들 자신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줄로 묶여 있기 때문에 청년들과 연결을 맺어 사랑의 줄로 묶어야 할 것이다(리뷰 앤드 헤랄드, 1900.3.20).

사랑하는 G.I.버틀러 형제에게 … 나는 백발이 되기까지 주님을 섬기는 사업에 종사한 노병(老兵)들이 계속해서 진리를 밝히 증거함으로, 믿음 안에 있는 젊은 청년들에게 과거에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기별이 매우 중대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과거 경험은 추호도 그 효력을 상실한 일이 없습니다. 나는 성경의 모든 말씀을 인해서 주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들의 어려운 체험에서 뒤로 물러서지 않을 것입니다.

그대는 그대 자신의 능력 한도를 넘어서 일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장차 우리들의 경험이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게 될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대와 내가 그리스도를 섬기는 생애 가운데서 늙어가면서 주님의 뜻을 수행할 때에 가장 고상한 가치와 가장 열렬한 관심을 보일 수 있는 경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심판이 이 땅 위에 임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전적인 충성심으로 일해야 하며 다른 사람들을 전진하게 하고 향상하게 하는 일을 돕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230 우리들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도록 합시다. 머뭇거리는 자들과 지쳐 있는 자들에게 언제나 격려의 말을 해줄 수 있도록 준비합시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와 동행할 때에만 안전하게 행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그대의 용기를 꺾는 일이 없게 해야 합니다. 충성심을 가지고 일하기 위하여 그대에게 접촉해 오는 자들을 도우십시오.

나는 장차 어떤 교회 집회가 있을 때에 그대를 만나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대와 나는 오랫동안 신앙 생활을 하여 온 자들 중에서도 가장 연로한 축에 듭니다. 만약 우리들이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생존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들은 맡은 일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며 성화된 위신을 가지고 우리들의 전신 갑주를 벗을 날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최선을 다하여야 하며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의 생명을 오랫동안 부지하게 해 주신 데 대하여 나의 마음은 감사의 뜻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의 오른손은 아직도 떨지 않고 성경 진리에 대한 문제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직도 화잇 자매의 손은 백성들에게 필요되는 교훈의 말씀을 찾기 위해 움직일 수 있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말해 주십시오. 나는 또 하나의 구약 성경 역사에 관한 책*을 거의 완성해 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대를 축복하시고 소망과 용기 가운데서 그대를 지켜주시기를 바랍니다(서신 130, 1910).

사랑하는 S.N.해스켈 형제에게 나는 그대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 이상으로 무리하게 일하지 않기를 그대에게 간곡히 권유하고 싶습니다. 그대는 계속적으로 힘든 일하는 것을 삼가야 하며 그대 자신을 안정된 상태에 둘 수 있어야 합니다. 그대는 낮에 잠자는 시간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처럼 휴식을 취할 때에 좀더 맑은 정신을 가질 수 있으며 그대가 하는 말들은 더욱 강한 설득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봉사할 때 그대의 전부를 틀림없이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신령한 지식을 얻기 위하여 성령을 받아들이고 성령의 지도를 따라 주님을 아는 지식에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시하는 곳으로 나아가며 주님께서 명하신 일을 행하여야 합니다. 여호와를 기다리십시오. 주님께서 그대의 능력을 소생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대나 나의 경우에 있어서 반드시 계속적인 긴장감에 싸여 있을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바에 대하여 계속적으로 복종해야 할 것이며 주님께서는 당신의 언약을 우리들에게 나타내 보여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의 친밀함이 경외하는 자에게 있음이여 그 언약을 저들에게 보이시리로다”(시 25:14). 우리들은 하나님의 신비 곧 하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보다 깊은 교훈을 얻게 될 것입니다. 231 우리들은 거룩한 아름다움에 싸이신 임금에 대한 계시를 받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남아 있는 안식이 우리 앞에 열릴 것입니다. 우리들은 얼마 있지 않아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만드신 그 도성, 우리들이 그처럼 오랫동안 말해 오던 거룩한 도성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서신 78, 1906).

사랑하는 S.N.해스켈 자매에게 그대가 더 이상 활동할 기력이 없고 몸에 쇠약한 현상이 뚜렷이 나타날 때에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요구하시는 전부는 다만 당신을 신뢰하라는 것뿐입니다. 진정한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그대의 영혼을 보호해 주시도록 위탁하십시오. 하나님의 자비는 확실한 것이며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한 것입니다. 영원토록 진리를 보존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자기의 소망을 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허락의 말씀들을 굳건히 붙잡고 놓지 마십시오. 만약 그대가 고귀한 허락의 말씀 가운데 있는 값진 보장을 쉽사리 기억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에게서 그 허락의 말씀들을 듣도록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의 입술로 말씀하신 이 허락들 가운데 당신의 자녀들을 돌보시는 사랑과 동정과 깊은 관심이 표명되어 있으며 그 허락들은 충만하고 사랑스러우며 든든한 보장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출 34:6, 7)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 고통당하는 자들을 위하여 깊은 동정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주님의 용서를 받기에 너무나 크다고 할 만한 죄들이 어떤 것입니까? 주님께서는 자비로우시며 무한하신 주님의 자비는 정죄하는 것보다도 용서하기를 더욱 서두르시고 더욱 기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은혜로우셔서 우리들의 그릇된 점만을 바라보고 계시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구조를 알고 계시며 우리들이 진흙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무한하신 동정심과 자비를 가지시고 우리들의 모든 타락한 상태를 고쳐주시며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값없이 우리를 사랑해 주십니다. 당신의 빛을 거두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 빛을 우리들에게 비추어 주고 계십니다.

나의 자매여, 그대의 의가 되시는 예수님을 항상 신뢰하시렵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그대에게 너그럽게 베푸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대의 마음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대는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대에게 참는 성품과 진실한 성품을 주실 것이며 불안한 감정을 극복할 수 있는 안정된 성품을 주실 것입니다. 232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감미로운 성령의 감동으로 그대의 마음을 뜨겁게 해주실 것이며 연약한 상태에 있는 그대의 영혼을 소생시켜 주실 것입니다. 이 세상을 거쳐가는 순례자와 나그네로서 우리들은 더 좋은 나라, 저 하늘나라를 찾아가기 위하여 며칠만 더 묵으면 될 것입니다. 우리들의 가정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대의 영혼을 하나님께 완전히 신뢰하고 맡겨야 할 것입니다. 그대의 모든 무거운 짐들을 주님께 또 맡기십시오.

아, 얼마나 여러 번에 걸쳐서 그대의 마음이 구세주의 용모의 아름다움으로 감동을 받았으며 주님의 품성의 사랑스러움으로 매혹되었고 주님께서 당하신 고통에 대한 생각으로 그대의 마음이 누그러지게 되었는가! 지금 주님께서는 그대가 전적으로 당신을 의지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나는 그대에게 항상 위로가 될 성경 몇 절을 여기에 적어 볼까 합니다.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그 노가 쉬었고 또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사 12:1-3) (서신 14b, 1891).

233 1891년 말에 엘렌G.화잇 여사는 대총회의 요청에 호응해서 호주에 새로 시작된 사업을 강화하기 위하여 호주로 가게 되었다. 체류 기간은 9년간이라는 긴 세월이었다. 화잇 여사는 그 곳에 도착하자마자 고통스러운 병에 걸리게 되었고 그 병은 오래도록 낫지 않았다. 다음의 내용은 그가 병고를 이겨낸 그의 굳센 정신을 보여 주는 글이다. 화잇 여사께서 이런 경험을 통하여 배우신 교훈들을 마음에 새겨둘 것이다.―편찬자 매번 편지를 쓸 때마다 내 손으로 1백 내지 2백 페이지를 썼으며 그 대부분이 침대 위에서 베개를 등에 괴고 절반은 누운 자세로, 절반은 앉은 자세로 썼거나 불편한 의자에 앉아서 몸을 간신히 버틴 채 쓴 것이었다.

엉덩이 부분과 척추의 밑 부분에 심한 통증이 있었으므로 앉아 있기가 매우 고통스러웠다. 미국의 위생병원에 있는 것과 같은 안락 의자를 이 나라(호주)에서 살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30불을 주고라도 선뜻 샀을 것이다. 내가 바른 자세로 앉아서 머리를 들고 있기란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니다. 나는 의자 뒤에 푹신한 베개를 고이고 누운 듯한 자세로 기대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나의 현재 상태이다.

그러나 나는 전혀 실망을 느끼지 않고 있다. 나는 그날 그날 버틸 수 있는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잠을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길고 지루한 밤 시간을 나는 대부분 기도하는 시간으로 보냈으며 모든 신경이 비명을 지를 정도로 고통을 줄 때, 나 자신이 미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가 생길 때, 그리스도의 화평하심이 내 마음 속으로 스며들어와 감사와 찬송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234 나는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도 또한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떤 날 밤에는 세 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하였고 또 며칠 동안은 네 시간 그리고 대부분은 한 시간 혹은 두 시간밖에 자지 못하였다. 그처럼 길고 어두운 호주의 밤 동안에도 모든 사물이 빛처럼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으며 나는 하나님과 더불어 감미로운 교제를 즐겼다.

내가 처음으로 절망적인 상태에 빠져 고통을 받고 있을 때에 나는 넓은 바다를 건너온 것을 깊이 후회하였다. 내가 왜 미국에 있지 않았던가? 내가 왜 비싼 댓가를 지불하며 이 곳에 와 있어야만 하는가? 나는 여러 번 이불에 머리를 파묻고 실컷 울어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호사스러운 눈물 속에서 오랫동안 투정을 부리지 않았다.

“엘렌G.화잇, 그대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대총회가 가라고 결정한 곳으로 가는 것을 그대를 위한 최선의 길로 알고 그 명령에 따르는 것을 그대의 의무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호주로 온 것이 아닌가! 과거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 라고 나는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왜 그대는 거의 버림을 받고 실망한 자처럼 생각하고 있는가? 이것은 바로 원수 마귀의 작용 때문이 아닌가?”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라고 말하였다.

나는 그 즉시로 눈물을 닦으면서 “이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이 이상 더 어두운 면을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살거나 죽거나, 나를 위하여 돌아가신 주님께 나의 영혼을 보존해 달라고 위탁할 것이다”라고 나는 말하였다.

그 때로부터 나는 주님께서 범사에 원만한 처리를 해줄 것을 믿었고 절망적인 8개월 동안 나는 추호도 낙담하는 마음이나 의혹을 품지 않았다. 지금 이 문제를 돌이켜볼 때에 그러한 경험이 이 나라와 미국에 있는 당신의 백성들의 유익을 위한 주님의 크신 계획의 일부였으며 또한 이것은 나 자신의 유익을 위한 보배로운 경험이었다. 왜 혹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생각하는지 말로 설명할 수는 없으나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나는 비록 병고 가운데서나마 행복하다. 나는 하늘 아버지를 신뢰할 수 있다. 나는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는 밤이나 낮이나 항상 나를 살펴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분이 계시며 마음 속으로부터 깊은 감사의 뜻이 흘러나오므로 나의 입술로 주님을 찬양할 것이다(서신 18a, 1892).

235 기도하고 근신하였으나 즉시로 낫지 않았다.

1892년 5월 21일, 몹시 고통스럽고 거의 한잠도 이루지 못한 밤이 지나갔다. 어제 오후에 나의 부탁을 받고 A.G.다니엘스 목사 부처, G.C.테니 목사부처, 스톡튼 형제 및 스미스 형제가 우리 집에 왔으며 주님의 치유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우리들은 열렬한 기도회를 가졌으며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큰 축복을 받았다. 통증은 매우 완화되었으나 나는 회복되지 않았다. 나는 성경의 모든 말씀을 따르는 데 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였으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나를 고쳐 주시리라는 것을 믿고 주님께서 능력을 발휘하시기만을 기다릴 것이다. 나의 믿음은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요 16:24)라는 허락의 말씀을 굳게 붙잡았다.

나는 주님께서 우리들의 기도를 들으셨다고 믿었다. 나는 병고에 사로잡힌 이 고통에서 즉시 풀려나기를 바랐으며 나의 제한된 판단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처럼 생각되었다. 우리들의 기도회 시간에 나는 큰 축복을 받았으며 “나는 너의 구속자라, 내가 너를 고쳐주리라”고 나에게 주신 보증의 말씀을 꼭 붙잡을 것이다.

1892년 6월 23일, 또 다른 밤을 지새웠다. 나는 세 시간밖에 자지 못하였다. 그 전처럼 통증이 심하지는 않았으나 불안하고 신경 과민 상태에 있었다. 잠을 청해 보려고 애썼으나 정신이 더욱 또랑또랑해질 뿐 잠을 청하려던 노력을 포기하고 말았으며 나의 모든 관심을 주님을 찾는 일에 집중시켰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라는 허락의 말씀이 나에게 얼마나 보배로웠는지 모른다. 나는 오직 주 예수께서만 주실 수 있는 위로와 화평을 얻기 위하여 가장 열렬하게 주님께 기도하였다. 나는 주님의 축복을 얻음으로 비록 고통 중에서나마 자제력을 잃지 않게 되기를 원하였다. 나는 단 한순간도 감히 자기 자신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베드로가 자기의 눈을 그리스도에게서 떼는 그 순간이 그가 바로 물에 잠기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가 자신의 위기를 깨닫고 예수님을 바라보며 “주여 나를 구하소서 내가 죽겠나이다”라고 예수님께 외쳤을 때 죽어 가는 영혼을 구원하시려고 항상 준비하고 계신 거룩한 손은 그를 붙잡았으며 그는 구원함을 받았다….

나는 집안에서 매일 화평을 구하고 그 길을 따라야 한다. 236 비록 몸은 고통스러우며 신경 조직은 약화되었을지라도, 우리들은 마음대로 짜증내는 말을 하거나 우리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들이 조급한 성격을 용납하게 되면 하나님의 영을 우리들의 마음에서 몰아내게 되며 사단의 속성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우리들이 이기심, 악한 생각 및 악한 말을 위한 변명거리를 구상할 때에 우리들은 악으로 영혼을 교육하고 있는 것이며 만약 우리가 이런 일을 계속한다면 시험에 넘어가는 습관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 때에는 우리가 사단의 터전 위에 서게 되고 정복을 당하며 허약하게 되며 용기를 잃게 될 것이다.

만약 우리들이 우리들 자신을 신뢰한다면 우리들은 틀림없이 실패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4).

우리들이 맺어야 할 열매들이란 어떤 것들인가?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 23).

내가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깊이 명상할 때에 나는 영혼을 하나님의 사랑 안에 보존시키는 일에 등한히 한 죄를 더욱 깊이 느끼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협력이 없이는 아무 일도 행하지 않으신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을 때 주님께서 우리들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 가운데서 우리들 자신을 보전하는 일을 태만히 해도 좋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 아니었다. 그리스도와의 산 연합을 통하여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가 됨으로써 우리들은 허락의 말씀들을 믿고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계속적으로 보다 큰 능력을 얻어야 한다. 구세주를 바라봄으로써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함을 입는 자의 마음을 변화시키거나 신뢰심을 흔들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러한 자들이 사소한 일들에 정신이 팔려서 될 것인가? 그의 상상력이 자기 자신에 대하여 집중해서 될 것인가? 작은 일들로 인해서 자기의 마음의 화평이 깨지도록 허용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스도께서 그 마음에 거하시는 자는 기꺼이 즐거워 할 것이다. 그는 악한 것을 생각지 않을 것이며 예수님께서 위하여 죽으신 모든 영혼들을 알고 계시며 올바르게 평가하신다는 보증으로 만족한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사람을 정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오빌의 순금보다 희귀케 하리로다”(사 13:12)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이 영혼의 갈증을 풀어주며 우리들로 조심하고 경계하게 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용서해 주셨으므로 우리들도 다른 사람들을 선뜻 용서해 주어야 한다.

237 인간의 행복은 모든 영혼들이 그리스도와 같은 참된 예의를 실천하는 그 능력 안에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행복을 얻도록 도와주는 것은 찬란한 재능들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며 다만 매일의 의무를 양심적으로 수행하는 데서 얻어지는 것이다. 친절한 표정, 겸손한 정신, 만족한 기질, 흔들리지 않는 심지(心志), 다른 사람들의 복리를 위한 성실한 관심 등 이러한 모든 것들은 그리스도인 생활에 도움을 주는 요소들이다. 만약 예수님의 사랑이 마음에 가득 찬다면 이 사랑은 생애를 통해서 나타날 것이다. 우리들은 자기의 주장을 고집하거나 완고하고 이기적인 억지로써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려는 무모한 결심을 나타내 보이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육체적인 건강은 정신적인 건전성에 달려 있다.

가령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이 무시를 당했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의 능력과 자격에 비하여 높은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였을 때, 그는 자기 자신을 가상적인 희생자로 만들게 된다. 그는 불행한 사람이 되지만 결국 누구를 원망해야 할 것인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친절과 우호적인 성품이 비정한 성품의 저주를 지닌 어떤 훌륭한 기민성보다도 그를 더욱 높일 것이다(원고 19, 1892).

1892년 6월 26일, 길고 지루한 밤 시간이 지나고 새벽 동이 틀 때에 나는 기뻐하였다. 내가 잠을 이룰 수 없을 때 결코 조는 일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나를 영원토록 살피고 계신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나의 마음에는 감사한 뜻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이 당하는 모든 고통과 슬픔에 대하여 잘 알고 계신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 생각인가?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통을 주님께서도 당하셨다. 우리 친구들 중에 더러는 인간적인 비애와 육체적인 고통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다. 저들은 병을 앓아보지 않았으므로 병을 앓고 있는 자들의 기분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연약함에 대한 기분을 친히 느끼실 수 있다. 그분은 위대한 의료선교사이시다. 주님께서는 당신 스스로 인성을 쓰셨으며 공의와 자비를 조화시키시기 위하여 자신을 새로운 신의 섭리의 선두에 두셨다(원고 19, 1892).

1892년 6월 29일. 잠에서 깨자마자 나는 이렇게 기도하였다. 238 “예수님, 오늘도 당신의 어린 이 자식을 보호하여 주옵소서, 당신의 보호하시는 날개 아래 저를 품어 주소서, 저를 건강하게 하여 주시고 산 포도나무의 열매 맺는 가지가 되게 하여 주소서.”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고 말씀하셨다. 우리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또한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일들을 할 수 있다.

천사들의 존경을 받고 하늘 합창대의 음악을 들은 자는 이 지상에 살고 있을 때에 어린이들이 슬퍼하는 것을 보고 언제나 연민의 정을 느꼈으며 그들의 슬픈 이야기를 항상 들어주려고 하였다. 그는 때때로 어린이들의 눈물을 닦아주었으며 주님의 부드러운 동정의 말씀으로 저들을 격려해 주었을 때 어린이들의 슬픔은 가라앉는 듯하였고 저들의 괴로움을 잊어버리게 해주는 듯하였다.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신 때에 비둘기의 형상으로 그 위에 임한 것으로 표상된 성령은 주님의 품성의 온화하심을 나타낸 것이었다(원고 19, 1892).

1892년 6월 30일. 몹시 괴로웠던 밤을 간신히 지새웠다. 비록 나는 계속해서 큰 고통을 느꼈으나 나의 구세주께서 나를 버리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예수님, 저를 도와주셔서 제 입술로 당신을 욕되게 하지 않도록 하여 주옵소서. 나에게서 불친절한 말이 나오지 않게 해주소서”(원고 19, 1892).

1892년 7월 6일. 나는 나의 모든 두려워하는 것들과 당황하는 모든 문제들을 주님께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하여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나는 주님의 날개 밑에서 든든한 보호를 받는 것처럼 생각된다. 한번은 신앙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청년에게 “그대가 섬기는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가?” 그 때에 그 청년은 “제가 섬기는 하나님은 너무나 크셔서 광대 무변한 우주에 가득 차시고 한편 너무나도 작으셔서 인간의 모든 성화된 마음 속에도 거하신다”고 대답하였다.

오, 보배로우신 구세주시여 저는 당신의 구원을 바라나이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시 42:1). 나는 예수님에 대하여 보다 밝은 계시를 갈망하고 있다. 나는 주님의 흠없는 생애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즐기며 주님의 교훈에 대하여 명상하기를 좋아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는 말씀을 얼마나 여러 번 반복하여 읊었는지 모른다.

언제나 내 몸은 통증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나는 그리스도인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불평을 하지 않을 것이다. 건강에 해로운 고역스런 환경에서 계속적으로 일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피할 수 있게 하는 경고의 수단으로써 고통에 대한 교훈을 주신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확증을 나는 얻었다 (원고 19, 1892).

239 1892년 7월 7일. 주님께서는 당신의 은혜를 통해서 중요한 서신들을 쓰게 하시기 위하여 나에게 기력을 주신다. 때때로 형제들이 권고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나를 찾아온다. 나는 이 지루한 병고가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뚜렷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나는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밤에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예수님께서 나를 바라보고 계신 것처럼 생각되었다. 이사야 51장은 나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보배로운 말씀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모든 짐들을 짊어지신다. 나는 소망과 확신을 가지고 이사야 51장을 읽는다(원고 19, 1892).

1892년 7월 10일. 나는 새벽 5시에 에밀리(에밀리 캠벨은 화잇 여사의 여행 동반자겸 비서였다)를 깨워서 난로에 불을 지피게 하였고 옷을 입혀주도록 부탁하였다. 나는 다른 날 밤보다도 한결 편히 잠을 이룰 수 있었던 것에 대하여 주님께 감사하였다. 내가 자지 않고 있는 시간 동안에는 기도와 명상을 하였다. 왜 나는 건강 회복의 축복을 받을 수 없는가? 내가 호주에 온 사실이 하나님의 불쾌하심을 사게 된 원인으로서 오랜 기간 동안에 질병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나는 결정적으로 “아니다. 이런 의심을 해서는 안 된다”라고 대답하였다. 미국을 떠나기 이전에 나는 때때로 생각하기를 지금 내 나이에 이처럼 과로로 쇠약해진 상태에서 먼 나라로 여행하는 것을 주님께서는 나에게 요구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나는 과거에 나 자신이 받은 분명한 빛이 없을 때에 그렇게 하기로 노력하여 온 것처럼 대총회의 결정에 순종하였다. 내가 호주에 와서보니 이 곳에 있는 신자들의 상태가 나의 도움을 반드시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나는 이 곳에 도착한 이후로 여러 주일 동안 과거에 비할 수 없는 열심을 기울여 일하였다. 개인적인 경건의 필요성에 관하여 백성들에게 전해야 할 말씀을 받았다….

나는 현재 호주에 있으며 주님께서 내가 있기를 원하시는 곳이 바로 이곳임을 나는 믿는다. 나는 고통이 심하다는 핑계로 패배의 후퇴를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며 나는 주님의 자녀라는 복된 보장을 주셨다. 240 의의 태양이신 주님의 밝은 광선에 의해서 어두움은 물러가게 되었다. 우리 인간이 당하는 모든 고통을 친히 겪으신 주님 외에 내가 당하는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자가 누굴까?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고 시험당한 자를 구원하는 방법을 아시는 주님 말고 내가 누구에게 나의 사정을 호소할 수 있을까?

내가 병 회복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할 때에 주님께서는 아무런 응답을 하시지 않는 듯하였고 나의 정신은 거의 실신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그때마다 사랑스런 구세주께서는 나에게 당신의 임재하심을 기억하게 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대는 자기 자신의 피로 그대를 사신 주님을 신뢰할 수 없는가? 나는 내 손바닥에 그대의 이름을 새겼노라”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 순간 나의 영혼은 주님의 거룩하신 임재로 말미암아 힘을 얻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나 자신을 스스로 일으켜 세웠다(원고 19, 1982).

1892년 7월 14일. 여러 달에 걸쳐서 고통을 당하는 병고가 나를 떠나지 않고 있을 때에 기도의 응답으로 즉시 병이 회복되지 않을 때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후 12:9)는 허락의 말씀은 나의 경우에 있어서 성취되었다. 내 입장에서 볼 때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통증이 나를 엄습하는 시간들은 내가 기도하는 시간이 되었으며 나는 내 슬픔을 호소할 분이 누구인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는 무한한 능력을 의지함으로써 나의 연약한 힘을 보강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밤낮으로 하나님의 허락의 견고한 반석 위에 서게 되었다.

나의 심령은 사랑스러운 신뢰의 정신으로 예수님께 향하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임을 알고 계신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라고 하신 이 허락의 말씀을 내가 주장하지 않았더라면 그 괴로웠던 밤들은 너무나 외롭고 쓸쓸한 밤들이었을 것이다(원고 19, 1892).

나는 고통과 신음과 절망 속에서 큰 시련을 겪고 있었으나 이러한 모든 시련 속에서도 나는 황금보다 더 가치 있는 귀중한 경험을 얻었다. 241 처음에 내가 호주와 뉴질랜드에 있는 교회들을 방문해야겠다는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었을 때 나는 미국을 떠나 먼 나라를 방문하는 것이 과연 나의 의무일까라는 심각한 생각에 머무르게 되었다. 내가 당하는 고통은 매우 통렬한 것이었다. 잠을 이룰 수 없던 그 많은 밤 시간 동안에 우리가 미국을 향해서 유럽을 떠나게 된 이후로 겪은 모든 경험들을 거듭거듭 반복해서 회상해 보았으며 그것은 근심과 고통과 무거운 책임을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었다. 그 때에 나는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고 물어보았다.

나는 지난 몇 해 동안의 역사와 주님께서 나에게 하라고 맡기신 사업을 신중히 검토해 보았다. 주님께서는 단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키신 적이 없었고 때때로 주님께서는 뚜렷한 방법으로 당신 자신을 나에게 나타내 보이셨으며 과거의 경험에서 내가 불평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오히려 나의 모든 경험을 통해서 귀중한 일들이 황금의 실처럼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주님께서는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알고 계셨고 주님께서 친히 나에게 가까이 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마치 주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해주셔야 한다는 식으로 하나님께 지시를 내리는 태도를 취하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하였다. 고통과 절망의 심정이 찾아든 시초에 나에게 불복종의 정신이 있었으나 오래되지 않아 나의 병고가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반은 누운 자세로 또 반은 앉은 자세로 하여 불구가 된 손들을 사용할 수 있었으므로 심한 고통 속에서도 많은 글들을 쓸 수 있었다. 나는 이 나라(호주)에 온 이래로 이만한 크기의 종이로 1, 600페이지에 달하는 글을 써 왔다.

지난 9개월 동안 허다한 밤들을 나는 두 시간 정도 잠을 이룰 수밖에 없었으며 때때로 어두운 절망 가운데 싸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기도하였으며 하나님께 가까이 나감으로써 감미로운 깊은 위로를 느낄 수 있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약 4:8).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오실 것임이로다”(사 59:19)라고 하신 허락의 말씀이 나에게 성취되었다. 나는 주님 안에 있는 모든 빛 가운데 싸여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신령하게 접근하셨으며 나의 영혼이 하나님 안에 있었으므로 내가 받은 은혜가 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를 사랑하셨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주신 주님께 감사의 찬송으로 충만하였다. 242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딤후 1:12)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는 말씀을 벅찬 가슴으로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정복자로 나서게 되었고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되었다.

나는 나의 병고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밝히 파악할 수 없으나 주님께서는 가장 좋은 것이 무엇임을 아시므로 나의 진실하신 창조주이신 주님께 나의 혼과 몸과 영을 맡길 것이다.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2). 만약 우리들이 더 큰 믿음, 더 큰 사랑, 더 큰 인내 및 하늘 아버지에 대한 더욱 완전한 신뢰심을 갖도록 우리 영혼들을 교육하고 훈련시켰다면 우리들이 이 생애의 투쟁 속에서 날마다 더욱 큰 화평과 행복을 얻을 수 있었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예수님의 팔에 안기지 않고 떨어져서 우리들 스스로 애태우고 근심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조용히 기다리며 살피는 그러한 태도가 더욱 필요하다. 우리들은 감정적으로 느끼는 무엇이 없는 한 바른길에 서 있지 않다고 생각하며 우리들은 경우에 알맞는 어떤 표징을 계속 찾는다. 그러나 심판의 표준은 감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최선의 지식에 따라서 기록된 말씀에 동의할 때 어떤 특별한 만족감을 느끼든 못 느끼든 믿음으로 행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를 우리들의 희생 제물로 죽게 하시므로 우리들이 주님을 믿고, 주님 안에 소망을 두며, 추호의 질문이나 의심이 없이 주님의 말씀을 신뢰할 수 있도록 그처럼 위대한 사랑의 놀라운 증거들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신뢰하지 않을 때 우리들은 하나님께 욕을 돌리게 된다.

그대들에게 어떤 뚜렷한 느낌이 있든 없든 간에 계속해서 예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조용한 기도를 올리고, 주님의 능력을 붙잡으라. 마치 모든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에 상달되고 결코 실패함이 없으신 약속의 주님께로부터 응답을 받는 것처럼 즉각 전진하라. 비록 어떤 무거운 감정과 슬픔에 억압된 순간이라도 그대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향하여 운율(韻律)에 맞추어 노래하며 행진하라. 243 분명히 빛이 이르게 되고 기쁨을 맛보게 되며 안개와 구름이 깨끗이 거두어질 때가 올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은 암영(暗影)과 흑암의 압도적인 세력에서 벗어나 주님의 임재에 따르는 밝은 태양 광선을 쪼이게 될 것이다.

만약 우리들이 자신의 신앙에 대하여 더욱 많은 표현들을 한다면 우리들이 분명히 누리고 있는 축복들 곧 하나님의 크신 자비, 관용 및 사랑 가운데서 더욱 기뻐하게 되며 우리들은 매일 더욱 큰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는 세상 부모들이 자기 자식에게 좋은 선물을 주려는 것보다 더욱 기꺼이 성령을 주시려 하신다는 것을 하나님의 황태자이신 그리스도께서 확신과 권능의 말씀으로 우리들에게 전해 주시지 않았던가?

우리들은 매일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에 부합되는 다소의 감정이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하지 않으시고 희생 제물을 받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마치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감정과 신앙은 완전히 구분되어야 한다. 신앙은 감정에 의존하여 있지 않다. 우리들은 어떤 느낌이 있든 없든 간에 믿음으로 열렬히 하나님께 호소하고 우리들의 기도에 일치하는 생애를 살아야 한다. 우리들의 보장과 확증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으며 우리가 구한 후에는 의심이 없이 믿어야 한다. “오 하나님, 저는 당신을 찬미하고 또 찬양하나이다. 당신께서는 말씀을 성취하심에 있어서 저를 실망케 하신 적이 없나이다. 당신께서는 저에게 당신 자신을 나타내셨으며 저는 당신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당신의 것이 되었나이다.”

아브라함이 살핀 것처럼 충실하게 살피지 않을 때 까마귀들이나 먹이를 구하는 어떤 새들이 하나님께 드릴 그대들의 희생 제물과 헌물 위에 내려앉게 된다. 의심을 일으키는 모든 생각을 경계함으로써 어떤 언사로 말미암아 그날의 빛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흑암의 권세들을 떠받드는 모든 말들은 항상 빛을 쫓아버린다.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이 매일 우리들에게 나타나야 할 것이다.

하늘로 가는 우리들의 길은 어떠한가? 모든 유혹적인 편의가 제공되는 그러한 길인가? 아니다. 그 길은 분명히 좁고 불편한 길이다. 그 길은 투쟁과 시련의 길이며 환란과 고통의 길이다. 우리 대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이 싸워야 할 전쟁에 관하여 아무것도 숨겨놓지 않으셨다. 244 주님께서는 우리들 앞에 지도를 펴 놓으시고 가는 길을 보여 주신다. 주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 13:24)고 말씀하셨다. 또 주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요 16:33)고 말씀하셨다. 사도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호응하여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할 것이라”(행 14:22)고 말하였다. 이러한 말씀들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실망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모든 은혜의 생명, 모든 약속의 생명, 모든 의식(儀式)의 생명 그리고 모든 축복의 생명이 되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실체이시며 영광과 향기가 되시고 생명 자체가 되신다.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구속 받은 자들이 걷도록 펴놓인 지름길은 절망적인 흑암 속에 싸여 있지 않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로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8)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다면 우리들의 순례는 실로 외롭고 쓰라린 것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모든 기록된 허락의 말씀들을 한데 모아야 한다. 우리들은 해가 있을 때에 그 말씀들을 반복하고 밤에는 그 말씀들을 명상해야 하며 즐거워해야 한다.

“그날에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그 노가 쉬었고 또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지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그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온 세계에 알게 할지어다 시온의 거민아 소리를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사 12:1-6).

이 길이야말로 우리들이 여행하고 있고 여호와의 구속 받은 자들이 걸어가야 할 지름길이 아닌가? 245 이보다 더 훌륭하고 더 안전한 길을 준비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럴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받은 바 교훈을 실천해 나아가자. 우리들은 피난처로서, 사단의 화살에서 우리들을 막아주는 오른손에 방패처럼 구세주를 바라보자.

유혹들은 엄습해 올 것이며 온갖 염려와 암담한 실망이 우리들을 억압할 것이다. 마음과 육신이 실패하려 할 때에 누가 우리들을 영원하신 팔로 껴안아 줄 것인가? 누가 우리들에게 보장과 소망의 말씀을 기억하게 해주실 것인가? 성실과 진실로 구하는 자들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실 분이 누구인가? 우리를 당신의 의로 입혀주시고 죄에서 구원해 주실 분이 누구이신가? 누구의 빛이 안개와 짙은 구름을 거두어가고 우리들을 당신의 임재의 태양 광선으로 인도할 것인가? 아, 그렇게 하신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찬양하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과연 예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살아 계신 구세주이신가?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골 3:1). 우리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생명이 되신다. 우리들은 주님의 은혜로운 사랑을 힘입어 택함을 입었으며 양자가 되었고 용서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여호와를 존귀하게 받들자(서신 7, 1892).

246 메리 켈씨 화잇은 윌리암 C.화잇의 아내였으며 화잇 여사의 며느리였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열렬한 신자였으며 재능이 많은 교역자로서 리뷰 앤드 헤랄드, 패시픽 프레스, 스위스의 바젤 있는 우리 출판사에서 일하였다. 그녀는 유럽에 체류하고 있는 동안 폐결핵에 걸렸으며 그 병으로 3년 동안 고생하다가 33세의 젊은 나이에 콜로라도 주의 보울더시에서 운명하였다. 여기에 게재된 내용들은 그녀가 병으로 신음하던 마지막 해에 화잇 여사께서 보낸 서신들 중에서 발췌한 것이다.―편찬자

1889년 11월 4일 사랑하는 딸 메리에게: 우리들은 나의 사랑하는 딸인 너를 위하여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이 나에게 너무나 명확하고 뚜렷하여 매번 기도할 때마다 구세주께서 너를 당신의 품에 안고 계셔서 네가 주님의 품 안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는 듯하였다. 나는 너의 병에 대하여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다. 나는 주님께서 너를 위한 기도를 들으시고 너의 유익과 당신 자신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역사하실 것을 믿고 있다. 주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마 21:22)고 말씀하셨다.

나는, 우리들 앞에 파란 많은 생애가 놓여 있으며 우리들이 능력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의뢰하는 자들에게 선대하시며 저들은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의 경우에 합당한 선지자의 말씀을 생각하게 되었다. 247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 43:5).

사랑하는 메리야, 하나님 안에서 안정을 취하라. 참음으로 여호와를 기다리라. 주님께서는 도움이 필요될 때마다 너에게 즉각적인 도움을 주실 것이다. 여호와는 선하시다.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양하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당신을 신뢰하기를 바라시며 당신의 허락의 말씀들을 믿기를 원하신다. 다만 믿으라 그리할 때에 우리들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게 될 것이다(서신 71, 1889).

1889년 12월 6일 사랑하는 메리에게: 병으로 고생하는 나의 딸아, 우리들은 너를 잊지 않고 있다. 우리들은 매일 너를 위하여 가장 열렬한 심정으로 기도를 드린다. 나는 기도의 특권을 누리고 있다. 우리들은 A.D.올슨 형제, J.G.매티슨 형제, 그리고 그 외에 병으로 고통당하는 다른 사람들을 잊지 않고 있다. 우리들은 기도한다. 이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그 다음에 우리들은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지극하신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손에 겸손한 마음으로 너를 맡길 뿐이다. 예수님께 매달리고 주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라.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너를 극진히 보살피시고 너에게서 당신의 손길을 거두지 않으실 것이며 주님께서 친히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메리, 비할 데 없는 사랑으로 천국을 다스리시는 왕을 대면하게 되고 고통과 슬픔과 질병과 서러움이 없는 그 나라에 간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일까? 나는 우리들이 진정코 승리하게 될 것을 확신하며 하나님과 너의 영혼 사이에 대화가 이루어진 것을 확신하고 있다. 너는 거룩하신 주님의 임재하심을 바라보고 있으며 예수님께서 끊임없이 너를 도와주신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할 수 없다. 아, 주님께서는 너를 사랑하신다. 주님께서는 너를 사랑하실 뿐만 아니라 동정 어린 온유하신 심정으로 너를 바라보고 계신다. 단 한 순간도 주님을 의심하지 말라. 너의 문제를 온전히 주님께 의탁하고 주님께서 너의 영원한 관심사를 위하여 최선의 대책을 세워주시리라는 것을 믿으라 …

나는 너와 여러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매일 열심으로 기도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살아 계시고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신다. 나의 사랑하는 딸아, 위를 바라보라. 위를 바라보고 용기를 가지며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라. 주님은 너의 조력자이시며 너의 의원이시고 너의 구세주가 되신다(서신 75, 1889).

248 1890년 2월 12일 사랑하는 메리에게: 병들고 허약하며 외로워하는 모습, 나는 그러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너를 생각하고 있다…. 메리야, 너에게는 가장 사랑스러우시고 동정심이 깊으신 주님이 계신다. 의의 태양이신 주님께서는 너에게 빛을 비추시고 계시다. 위를 바라보라. 또 위를 바라보라. 나는 내 경우를 생각해 볼 때 무덤에 내려가서 쉬는 것이 그렇게 나쁠 것처럼 생각되지 않는다. 나는 몹시 피로하며 나 자신을 바라볼 때나 사단의 정신과 그의 활동을 생각해 볼 때 실망을 느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나는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화평을 발견한다….

나는 믿음으로 너를 예수 그리스도의 품안에 안겨준다. 주님께서는 너를 사랑하신다. 물론 나는 네가 예수님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서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내가 바라기는 그리스도의 보혈과 의를 겸손하게 의뢰하는 가운데 충만한 믿음의 보장을 가지고 주님께 가까이 나가도록 하라는 것이다. 너는 주님의 은혜의 선물로서 구원을 받아들였으며 주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허락의 말씀들을 믿고 있다. 예수님을 바라보라. 이것만이 나의 유일한 소망이며 위로가 된다. 주님께서는 너를 고통스러운 굴욕의 길로 인도하고 계신다. 너는 여러 직책을 맡아서 일해 본 경험이 있다. 주님께서는 매 발자국마다 너를 인도하여 오셨으며 깊고 또 깊은 골짜기를 따라 인도하셨으며 이 모든 경험은 오직 주님의 겸손한 생애를 본받게 하시기 위하여 당신과 밀접한 교제를 갖게 하시려는 까닭이었다.

나의 사랑하는 딸아 예수님께서 너와 더불어 동행하시지 않은 한 순간이라도 있었는가? 주님께서 모르고 계신 근심과 고통이 있으리라고 생각하는가? 주님께서 담당하지 않으신 죄가 있으며 십자가에 못박지 않은 한 가지 죄라도 있으리라고 생각하는가? 주님께서 동정하시지 않는 슬픔이 있을까? 주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허약하심을 체휼하셨다. 너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다는 것이 무엇임을 잘 알고 있다. 너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다. 용기와 자기를 부인하는 정신을 가진 너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정을 다 알고 계신다.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고통의 잔을 너에게도 한 잔 채워주셨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가벼운 한 끝을 너의 어깨 위에 얹어 놓으셨다. 주님께서는 그대의 영혼 위에 한 그늘을 던지셨다….

그대 자신을 예수님의 손에 의탁하라. 염려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것을 잊어버리고 계신 것처럼 생각지 말라. 예수님께서는 살아 계시며 너를 떠나지 않으실 것이다. 주님께서 너의 참모와 후원자가 되시며 너의 전위(前衛)와 후위(後衛)가 되시기를 기원한다(서신 56, 1890).

249 1890년 2 월 13 일 나의 사랑하는 자식에게.

주님께서는 너를 축복하시고 너를 위로하실 것이며 너에게 힘있는 위안과 주님 안에서 얻을 수 있는 화평을 주실 것이다. 또한 주님께서는 네가 복종하는 마음으로 당신의 팔에 안겨 쉬기를 바라시며 나는 주님께서 범사에 유익된 것을 베풀어 주시리라고 믿는다….

용기를 가지라. 계속해서 위를 바라보라. 예수님께서는 우리들 모두의 유일한 소망이시다. 주님께서는 너를 떠나시거나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허락의 말씀들은 매우 귀중하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허락의 말씀들을 굳게 붙잡아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그 허락들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서신 57, 1890).

1890년 5월 28일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나는 너희 모두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으며 너희 모두를 위해서 기도한다. 아, 만약 메리가 다소라도 회복된다면 내 마음이 얼마나 기쁠는지 모르겠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등불을 너희들 주위에 환하게 비추실 것이다. 시련과 고통에 처한 너희들에게 주님께서는 축복하실 것이며 힘을 주시고 의지가 되어주실 것이다. 구세주께서는 뜨거운 연민(憐憫)의 정을 가지고 계시며 부드러운 동정심과 사랑으로 가득 차 계신다. 충성된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영혼의 보존을 위탁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우리가 가진 소망은 얼마나 복된 소망인가? 이 소망은 시련과 고통이 증가하면 할수록 날로 강해지는 소망이다. 너희들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신 주님께 대하여 너희들의 신뢰심을 지금 나타내 보이라.

메리야, 하나님께 감사하라. 한 순간에 불과한 가벼운 고통은 너에게 훨씬 탁월하고 영원한 영광을 안겨 줄 것이다. 너는 네가 의뢰한 자를 네가 알고 너의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주님께서 능히 지켜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다. 너를 엄습하는 시련들이 가혹할는지 모르나 매 순간마다 예수님을 바라보라-싸우기 위하여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 안에서 편히 쉬기 위하여 바라보라는 말이다. 주님께서는 너를 극진히 돌보고 계신다.

우리들은 시련이 극심하면 극심할수록 우리들의 소망도 따라서 더욱 강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의의 태양이신 주님의 광선의 치료하는 능력을 가지고 너의 마음 속을 비춰주실 것이다. 어두운 구름 저 위에 있는 밝은 하늘, 의의 태양이신 주님의 빛을 바라보라. 시련의 폭풍 속에서도 붙잡을 닻이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하라. 우리들에게는 항상 살아 계시며 항상 유력한 중보자가 되셔서 하늘 아버지 앞에서 우리들의 모든 개인적인 사정들을 호소하시는 주님이 계시다. 250 영원한 보상의 기쁨은 무한한 댓가를 치르시고 사신 것이다.

주님께서 너희들을 위로하시고 힘을 주시며 축복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 내가 드리는 매일의 기도이다. 아, 우아하신 대왕의 모습으로 나타나실 주님을 보게 될 때에 그 날의 기쁨이 얼마나 클까? 우리들은 하나님의 풍성한 허락 안에서 쉼을 얻어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실망케 하는 일이 결코 없을 것이며 언제나 도움이 필요될 때에 우리들에게 즉각적인 도움을 베풀어주실 것이다(서신 77, 1890).

1890년 6월 16일 사랑하는 윌리에게: 나는 너희 모두들 때문에 염려스러우며 특히 사랑하는 메리로 말미암아 내 마음에 근심을 덜 수 없다. 나는 매일 밤낮으로 그를 위하여 기도한다. 나는 주님께서 그를 당신의 아늑한 품속에 보존하고 계신 것을 알고 있다. 메리는 지금 완전한 확신을 가지고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2)고 말할 수 있다.

나는 메리의 경우에 있어서 추호의 의심을 갖고 있지 않으며 조금도 불신하고 있지 않다. 그녀는 주님의 사랑하는 딸이다.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 도다”(시 116:15). 메리는 사도 바울과 더불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 8).

우리들의 영혼을 시련하는 시간에 구세주가 우리 편에 계시지 않는다면 우리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성도들을 섬기는 천사들은 생명이 마치는 순간에 우리 영혼들을 소생시키기 위하여 생명수를 마시게 하려고 우리들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께서 예수님 안에 잠든 자들을 무덤에서 일으키사 다시 살리시겠다는 약속이 있다. 나팔이 울려 퍼질 것이며 죽은 자는 생명의 부활을 얻게 되고 다시는 죽지 않을 것이다. 영원한 새 아침이 저들에게 이를 것인데 하나님의 도성에는 밤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메리는 온갖 시험과 시련 속에서 용감하게 싸웠으며 그녀는 자기의 최선을 다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 말과 행동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품성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였다. 그는 믿음 안에서 죽어가고 있으나 그의 업적은 생생하게 살아 남아 있다(서신 78, 1890).

251 메리안 데이비스 양은 1879년에 화잇 여사가 거느린 직원들의 일원으로 가담하였으며 미국과 유럽과 호주에서 근 25년 간 화잇 여사와 더불어 일하였다. 1903년에 폐결핵에 걸렸으며 그 뒤로 1년이 약간 넘는 세월을 병으로 신음하다가 필생의 사업을 마쳤다. 데이비스 양은 매우 충실하고 믿음직스러운 조력자로서 문장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여성으로 화잇 여사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여기에 실린 내용은 데이비스 양이 병으로 신음하던 마지막 두 달 동안에 화잇 여사가 동정과 희망과 권고의 기별을 보낸 서신들이다.―편찬자

1904년 8월 17일 사랑하는 매리안 데이비스 자매에게: 나는 집안에서 푹 쉬기를 원하고 있으나 또 어떤 집회에 참석하게 될는지 나 자신도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 처하든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살 길밖에 없습니다.

나는 주님께서 자매에게 힘을 주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자매가 회복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계속적으로 주님을 붙들어야 하며 자매의 손은 그리스도의 손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메리안 자매여, 그대는 결코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그대의 모든 문제는 주님의 손안에 있으며 치료하는 문제를 A 의사와 B 의사에게 맡겨야 하며, 저들이 그대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도록 기대해야 할 것입니다. 그대의 병이 현재의 증상보다 다소 호전된다면 다른 책들을 몇 권 보내려고 합니다. 음식을 취하는 것이 다소 고통스러울지라도 끼니를 거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음식을 멀리하면 할수록 그대의 몸은 점점 더 허약해질 것입니다…. 우리들은 혹시 주님께서 우리들의 요구를 어떻게 들어주시는지 묻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 아니던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대는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살아 있는 인간도 예수님께서 그대를 도울 수 있는 것처럼 도울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주님께서는 그대를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서신 378, 1904).

1904년 8월 24일 사랑하는 매리안 데이비스 자매에게: 단 한 가지의 근심거리도 그대의 마음 속에 깃들이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대가 병 중에 있다는 사실은 나의 마음을 얼마나 슬프게 하는지 모르지만 그대 스스로 자신의 건강 회복을 위하여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치료비에 관계되는 모든 재정 문제는 내가 해결해 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요즘 나의 건강은 매우 좋지 못하며 마차를 타고 짧은 거리를 겨우 여행할 정도입니다. 252 나는 감히 차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할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그대와 내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한 나의 집은 곧 그대의 집인 것입니다….

매리안, 집을 떠나 있을 동안 나는 음식 맛을 전혀 모르고 지냈으나 억지로라도 먹지 않으면 활동을 할 수 없겠기에 계속해서 끼니 때마다 먹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살기 위한 목적으로 입맛을 모르고도 억지로 먹었단 말입니다. 나는 이 곳에 온 이후로 다소 입맛을 회복한 듯합니다. 그대와 나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가지고 간절히 호소하였습니다. 우리들에게는 근심이나 염려가 없어야 합니다. 다만 주님께 전적인 신뢰를 가져야 합니다. 그대와 내가 꼭 해야만 될 일은 당신께 나와서 당신만을 의지하는 모든 영혼들을 구원하실 수 있는 주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대와 나에게 “내 손을 꼭 붙잡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대의 구세주가 되시며 나의 구세주도 되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에 대하여 올바른 생각을 하도록 그대는 힘을 얻어야 합니다. 그대는 주님의 영광을 선양하는 일을 위하여 그대가 할 수 있는 모든 기회들을 적절히 선용하는 가운데 즐거움을 누렸으며 하나님의 마지막 나팔 소리가 들릴 때에 그대는 하나님의 도성으로 인도될 것이며 우리들은 진정한 기쁨으로 그 나라에 영접될 것입니다.

매리안, 그대와 나는 사람들과 실제적인 접촉을 하는 가운데 저들에게 확고한 교리를 가르침으로써 저들이 영감을 받고 진리를 따라 생애하도록 노력해 왔습니다. “바른말을 본받아 지키”(딤후 1:13)는 것을 금, 은이나 모든 세속적인 매력보다도 더욱 귀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대는 진리를 사랑하여 왔습니다. 사람들이 구세주이신 우리 주님에 대하여 크게 등한히 하는 것을 보고 매우 가슴 아파 하였습니다. 아, 우리들은 하나님과 같은 성품을 가져야 합니다. 그대가 간절히 바란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진리를 떠나서는 진정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시 103:1) 진정코 그대와 나는 매일 감사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지나간 여러 해 동안 믿음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서 그대의 생명을 보존해 주신 것은 모두 주님의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그대의 연약한 상태 그대로 전적으로 자신을 주님께 의탁하십시오. 우리들은 인간 생애의 대원칙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어야 하며 우리 수중에 있는 하늘의 만병 통치약으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그대와 나는 거룩함, 자비, 진리 및 사랑이 뒤섞인 참된 교리의 형태를 가르치려고 무던히 노력하여 왔습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교리를 단순하게 제시하고자 노력해 왔으므로 영혼들은 사상과 거룩함이 연합된 신앙, 곧 마음 가운데 있는 단순한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253 우리들은 현세에서 인간의 명예와 영광이 되는 그리스도교를 나타내려고 노력하였으며 하나님의 도성, 곧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저택에 들어갈 수 있는 그분의 사랑스럽고 보배로운 구속자들이 되고자 준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찬양하십시오. 우리들은 함께 주님을 찬양하여야 합니다.

매리안, 무엇이든지 음식을 좀 들도록 노력하십시오. 왜냐하면 그대의 의사도 그것을 바라며 위대한 의료 선교사이신 주님께서도 그대가 음식을 들기를 바라십니다. M.J.넬슨 자매가 무엇이든지 그대가 요구하는 대로 음식을 준비해 줄 것입니다. 이 세상의 누구도 나만큼 그대가 건강이 회복되어 계속해서 일하게 되기를 바라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 비록 그대나 내가 주님 안에서 잠들어야 할 때가 올지라도 우리 몸이 요구하는 영양을 거부함으로써 생명을 단축시켜서는 안 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매여, 식욕이 있든 없든 음식을 들도록 할 것이며 건강 회복을 위하여 그대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건강 회복을 위하여 최선으로 노력할 것이며 만약 주님께서 그대에게 편히 쉬게 하는 것을 원하신다면 그대는 주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였으므로 거리낄 것이 없을 것입니다. 나는 그대가 기울인 모든 수고를 깊이 감사합니다. 매리안, 여호와를 찬양하십시오. 위대한 의원이신 예수님께서 그대를 고치실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서신 379, 1904).

1904년 9월 16일 사랑하는 매리안 자매에게: 나는 지금 그대에 관한 문제를 생각하고 있으며 그대가 번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내 마음은 슬픔에 잠겼습니다. 나는 힘껏 그대를 위로해 주고 싶습니다. 과거에 그대에게 도움이 요구될 때마다 고귀한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그대에게 즉각적인 도움을 주시지 않았습니까? 성령을 근심하게 해서는 안 되며 모든 염려와 근심을 버리십시오. 그대 자신이 과거에 이러한 말들로 다른 사람들을 권고하여 왔습니다. 그대처럼 병을 앓고 있지 않는 모든 형제 자매들의 말들이 그대에게 위로가 되고 주님께서 적절한 도움을 그대에게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만약 그대가 죽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면 공의롭고 자비하신 하나님의 손에 그대의 몸과 혼과 영을 전적으로 의탁하는 것을 그대의 특권으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상상하고 있는 것처럼 정죄의 감정을 품고 계시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그대를 사랑하고 계시지 않다는 그런 생각을 버리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베푸신 자비로운 섭리에 그대 자신을 아낌없이 맡겨 버리십시오. 주님께서는 그대가 당신의 초청에 유의하게 될 때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대는 결코 하나님께서 그대를 가혹하게 다루셔야 할 만한 어떤 그릇된 일을 저질렀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254 나는 그대에 대하여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대는 다만 주님의 사랑을 믿고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우리 마음에 어떤 의혹이나 불신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하여 몰지각한 태도를 취함으로 우리의 믿음에 혼란을 일으켜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겸비하게 하심으로 우리들 자신이 온유하고 겸손한 인물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와 사귀심으로 인간이 완전하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왕의 제복과 왕관을 벗어버리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자비의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이 세상에서 당신의 사랑에 대한 증거를 보이시기 위하여 완전한 생애를 사셨습니다. 당신을 믿지 않는 자들이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했던 일을 주님께서 성취하셨습니다. 하늘 궁전에서 최고 사령관이셨던 주님께서는 인간의 몸을 취하심으로 당신 자신을 지극히 낮추셨습니다. 주님의 생애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본의 생애였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하여 몰지각한 생각을 가지므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우리들의 믿음을 소멸시키지 않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슬픔과 비애를 아는 인간이 되셨습니다. 주님께 완전히 바친 인간의 마음은 거룩한 거문고가 되어 거룩한 음악 소리를 낼 것입니다(서신 365, 1904).

1904년 9월 26일 사랑하는 매리안 자매에게: 우리들은 다시 그대를 만날 수 있을 때까지 그대의 생명이 보존되고 죽지않고 살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대가 살든지 죽든지 예수님을 신뢰하십시오. 주님은 그대의 구주가 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십니다. 만약 그대가 예수님 안에서 잠들게 된다면 주님께서는 영원 불멸의 몸으로 그대를 다시 무덤에서 불러일으키실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주님께서 그대에게 화평과 위로와 소망과 기쁨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대의 전적인 신뢰를 예수님께 두십시오. 주님께서는 결코 그대를 떠나시거나 버리시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이름을 당신의 손바닥에 새기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매리안, 만약 그대가 나보다 먼저 이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우리들은 그 곳에 가서 서로 알아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현재 서로 보고 서로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그 곳에 가서도 서로 보게 되고 서로 잘 아는 사이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화평이 그대의 영혼 안에 분명히 깃들이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약속을 진실되게 지키시는 분이시므로 주님을 신뢰하는 일에 참되어야 합니다. 그대의 연약하고 떨리는 손을 주님의 든든하신 팔에 얹으므로 주님께서 그대를 든든히 붙잡으시고 힘을 주시며 격려해 주시고 위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지금 이 곳을 떠나야 합니다. 아, 내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그대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깊은 사랑의 뜻으로 이 편지를 씁니다(서신 382, 1904).

255 비록 우리들은 서로 먼 거리에 떨어져 있으나 우리들은 그대를 동정할 수 있습니다. 희망을 버리지 말고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눅 11:9)라는 약속의 말씀에 매달리라는 말을 나는 하고 싶습니다. 만약 치유의 능력을 발휘하시며 시작과 끝을 아시는 주님께서 당신의 자녀가 죽는 것을 허락하사 부활의 아침에 일어나게 하실지라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오, 하나님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말하십시오. 만약 그대의 아내가 고통 가운데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면 내세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마지막 나팔 소리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주님을 믿고 주님의 구원을 신뢰한 모든 자들을 불러일으키실 것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매여, 우리들은 그대를 위하여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대를 깊이 동정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의원이신 주님께 그대에 관한 문제를 호소하려고 합니다. 물론 과거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그대의 현재와 영원한 미래를 위하여 유익된 것이라고 여기실 때 얼마든지 축복하시고 병을 고쳐 주실 수 있는 주님의 손을 꼭 붙잡으십시오. 나의 형제 자매여, 그대들이 살아 있는 동안 이 고귀한 시간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보배로운 허락들을 그대들의 것으로 삼을 수 있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대들 두 분이 모두 죄의 온전한 사유하심을 겸손한 마음으로 구하고 있는 것을 나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든 죄에 대한 사유를 구하는 일은 그대들의 특권입니다. 불신의 사상에 빠지지 마십시오.

우리들의 고귀하신 구세주께서는 이 세상 죄를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바치셨으며 당신에게 나오는 모든 자들을 구원하시리라는 말씀을 약속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이 말씀 가운데 영생을 얻는 조건들이 있습니다. 그대가 살든지 죽든지 그 조건들을 따르면 소망을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혼을 구원하시는 구세주를 신뢰하십시오. 절망적인 그대의 영혼을 주님께 의탁할 때에 주님께서는 그대를 받으시고 축복하실 것이며 구원하실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전심으로 주님을 받아들이고 주님께서 그대가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생명의 면류관이야말로 그대의 가장 크고 가장 간절한 요구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 완전히 굴복할 때에 주님께서 그대를 모든 더러움에서 정결케 하실 것이며 귀한 그릇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그대들은 어린 양의 피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희게 될 것입니다. 그리할 때에 그대들은 승리를 얻게 됩니다…. 믿음 안에서 굳게 붙잡고 나가십시오(서신 45, 1905).

256 우리들은 그대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가족 제단을 쌓을 때마다 기도할 때에 그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는 밤에 자다가 깨어서 그대를 위하여 하나님께 호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아, 나는 그대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에 슬픔을 금할 수 없습니다. 나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축복이 그대에게 임하기를 기도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아무 위로가 없이 그대를 버려두시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이야말로 너무나 보잘것없는 세상입니다. 나의 형제 자매여 예수님께서는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마 7: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대를 위하여 이 허락의 말씀을 가지고 탄원하였습니다….

나의 형제여, 어떤 날 밤 나 자신이 그대에게 몸을 기대어 이렇게 말한 것 같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고 몇 번의 통증만을 참으시면 됩니다. 몇 시간의 고통만 더 참으신다면 그 때에는 평안한 휴식, 복스러운 안식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대는 특수한 방법으로 화평을 찾게 될 것입니다. 모든 인류가 시험을 받아야 하고 시련을 겪어야 합니다. 우리들 모두가 고통의 잔을 마셔야 하며 고난의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쓰라린 형태로 모든 인간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긍휼히 여기는 것과 동정하시는 방법을 잘 알고 계십니다. 오직 주님 안에서 안식을 취하십시오. 주님께서는 그대를 사랑하시며 당신의 영원하신 사랑으로 그대를 구원하셨습니다. 죽기까지 충성할 때에 그대는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금 후로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자들은 시련의 의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은혜를 주시고 그대를 잊어버리지 않으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계 14:13). 용기를 얻으십시오. 지금 이 순간 그대와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부활의 아침에 만나게 될 것입니다….

나는 C 자매에게 위로의 말을 남기고 싶습니다. 나는 그 자매에게 격려하고 있었는데 그가 있는 방에는 하나님의 천사들로 가득 차 있는 듯하였습니다. 두 분이 모두 용기를 갖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그대들을 떠나시거나 잊어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서신 312, 1906).

257 계속해서 병고에 시달려 온 것이 마치 내가 맡아놓은 운명인 듯하였으며 한편 이러한 시련의 생애는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누그러지게 하는 감화력이 있어서 나의 마음 속에 있던 원한을 깨끗이 버리게 하였으며 그 자리에 동정과 사랑으로 가득 채워 주었다. 쓰라리고 아픈 사별*의 슬픔을 맛본 나의 생애는 구세주의 임재하심에 대한 고귀한 현시(顯示)가 따랐던 것이다. 나의 눈은 우리들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는 아름다운 천국을 향하게 되었다. 온 세상이 흑암으로 덮인 듯이 보일 때에 검은 구름 사이로 보좌로부터 비치는 광명한 태양 광선이 어두움을 몰아내는 듯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 중 아무도 말 못할 슬픔에 빠져 쓰라리고 가슴 아픈 고통을 겪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약속의 무지개를 바라보며 우리가 받은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반사하기를 원하신다.

아, 복된 구세주께서는 눈물로 눈이 가리워 당신을 바라보지 못하는 많은 영혼들의 곁에 서 계신다. 258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단순한 믿음으로 당신께 매달리고 당신의 지도를 애원할 때에 우리들의 두 손을 꼭 붙잡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우리들의 특권이다. 만약 우리들이 위로와 평강을 마음에 받아들인다면 우리들은 주님의 위대하신 사랑의 심령속에 거하게 될 것이다(리뷰 앤드 헤랄드, 1844.11.25).

자식을 잃은 어머니에게 주는 위로: 그대가 자식의 죽음을 맛본 경험을 말할 때 얼마나 간절히 기도한 것과 그대의 의지를 하늘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굴복시킨 것, 그리고 모든 문제를 하늘 아버지께 의탁한 그대의 경험을 들을 때에 나의 모성애는 감동을 금할 수 없었다. 나도 한때 그대가 지금 겪고 있는 것과 같은 경험을 맛보았다.

나의 맏아들이 열 여섯 살이 되었을 때 그는 병에 걸려 눕게 되었다. 그의 병세는 매우 악화되었으며 그는 우리들을 자기 침대 옆으로 불러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아버지, 어머니, 맏아들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괴로운 경험일거에요. 만약 주님께서 나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부모님을 위해서도 저는 회복될 거에요. 그러나 나 자신의 유익과 주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나의 생명을 끊으신다면 나의 영혼을 위하여 복된 일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아버지, 혼자 가셔서 기도해 주세요. 어머니도 따로 가서 혼자서 기도하셔요. 그렇게 할 때에 부모님이 사랑하시고 제가 사랑하는 구세주의 뜻에 따라서 기도의 응답을 받을 거에요.” 그 아이는 우리들이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므로 연민의 정에 빠져 주님께서 보시기에 합당치 않은 것을 우리들이 간구하지 않을까 하여 염려하였다.

우리들은 아들이 요구하는 대로 기도하였으며 우리들의 기도는 모든 면에 있어서 그대가 올린 기도와 같은 내용의 것이었다. 우리들은 아들이 회복되리라는 아무런 증거를 받지 못하였다. 아들은 우리 구세주이신 예수님께 모든 것을 완전히 신뢰한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아들의 죽음은 우리들에게 말할 수 없이 큰 타격을 주었으나 그의 죽음이야말로 사망으로 거둔 승리가 되었는데 그것은 곧 그의 생명이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숨겨졌기 때문이었다.

맏아들이 죽기 이전에 나의 갓난 아기가 죽었다. 우리들은 기도하였으며 주님께서 우리들의 갓난 아기를 살려주시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우리들은 죽은 아기의 눈을 감겨 줄 수밖에 없었으며 생명을 주시는 주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영광의 부활로 일으키실 때까지 예수님 안에서 잠재울 수밖에 없었다.

259 그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종으로서 36년 동안 내 곁에 있던 나의 남편이 세상을 떠났으며 나는 홀로 남아서 일하게 되었다. 그는 예수님 안에서 잠자고 있다. 나는 그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를 보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았는가! 나는 그의 권고와 지혜의 말을 얼마나 안타까이 바랐는지! 하나님의 사업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방법을 알려는 지혜를 위하여 나와 함께 기도 드리는 그의 음성을 얼마나 듣기 원하였는지!

그러나 주님께서는 나의 모사가 되어주셨으며 또한 주님께서는 그대의 사별한 슬픔을 견디게 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실 것이다.

그대는 그대의 어린 자식의 구원에 관하여 질문하였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곧 그대가 받을 응답이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눅 18:16).

다음의 예언의 말씀을 기억하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받기를 거절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네 소리를 금하여 울지 말며 네 눈을 금하여 눈물을 흘리지 말라 네 일에 갚음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의 최후의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경내로 돌아오리라”(렘 31:15-17).

이 허락의 말씀은 곧 그대의 것이다. 그대는 주님 안에서 위로를 받고 신뢰하여야 한다. 주님께서는 환란의 때 이전에 많은 어린이들을 미리 잠재우신다는 말씀을 나에게 가끔 지시해 주신 적이 있다. 우리들은 죽은 자식들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들은 죽은 자식들을 만날 것이며 하늘나라에서 저들을 알아보게 될 것이다. 그대의 신뢰심을 주님께 두고 두려워하지 말라(서신 196, 1899).

화잇 여사의 쌍동이 자매의 아이가 죽었을 때 보낸 위로의 글: 우리들의 가장 간절했던 소망이 가끔 꺾이는 때가 있다. 우리들이 사랑하는 식구들이 죽음으로 헤어지게 된다. 우리들은 영원히 잠든 저들의 눈을 감겨주며 무덤에서 장사하고 다시는 저들을 못보게 된다. 260 그러나 소망은 우리들의 정신을 버티게 한다. 우리들은 영원히 헤어지는 것이 아니며 예수님 안에서 잠든 사랑하는 식구들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저들은 원수의 땅에서 부활하게 될 것이다. 생명을 주시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다. 헤아릴 수 없는 거룩한 천사들의 무리는 주님께서 오시는 길을 수행할 것이다. 주님께서는 사망의 사슬을 끊으실 것이며 무덤의 속박을 파하시고 사로잡혔던 보배로운 영혼들을 건강하고 불멸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무덤 가운데서 나오게 하실 것이다.

갓난 아이들이 불멸의 모습으로 땅속에서 나오게 될 때에 저들은 즉시로 나아와 어머니의 팔에 안기게 될 것이요, 저들은 다시 이별이 없는 재회의 기쁨을 맛볼 것이다. 그러나 많은 어린이들이 그 곳에서 어머니를 찾지 못할 것이다. 우리들은 어머니의 열광적인 승리의 노래를 듣지 못할 것이다. 천사들은 어머니가 없는 갓난 아기들을 받아서 저들을 생명 나무가 있는 곳으로 데려간다.

예수님께서는 갓난 아기의 작은 머리 위에 빛의 황금테로 만든 면류관을 씌우신다. 하나님께서는 “에버”(화잇 여사의 조카딸의 이름)의 사랑하는 어머니가 그 자리에 설 수 있게 하심으로 그의 아기가 작은 날개를 접고 어머니의 품에 안기는 것을 허락하실 것이다(청년지도자, 1858.4).

바다에서 자식들을 잃은 부모에게 보낸 위로의 글: 나는 그대들에 대하여 얼마나 많이 생각하였는지 모른다….

성경에 있는 위로의 말씀은 너무나도 위대하다. 병고로 신음하는 자. 사랑하는 식구와 사별한 자, 질병과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으로 가득 차 있다. 예수님께서 D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이 보였다. “나를 의지하라. 든든히 의지하라. 나는 너에게 버틸 힘을 줄 것이다. 나의 팔은 결코 너희를 실족케 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거칠고 어려운 길들을 헤쳐 나가도록 너희를 강하게 붙들어 줄 것이다. 오직 나를 신뢰할 때에 너희들은 안전하게 인도될 것이며 나의 팔은 든든하게 너희를 붙들어줄 것이다.”

아, 성경의 말씀은 얼마나 보배로운가! 성경의 진리는 골수와 기름진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들은 허락된 말씀의 빛을 깊이 생각할 것이며 그 가운데서 기뻐해야 할 것이다. 허락의 말씀들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은혜로운 음성으로 발표하신 것이다. 주님의 음성은 주님의 말씀 가운데서 우리들에게 들려온다. 나는 그대들이 용기를 갖기를 바란다.

그대에게 닥친 이 고통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대들은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생명을 삼킨 바다가 생명을 위협할 수 없는 그 때가 올 때까지 모든 것이 헤아릴 수 없는 신비 속에 그대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261 죽은 자들은 이미 주님의 소유물들이며 주님께서 당신 자신의 소유를 잘 처리하실 것이므로 그대들은 심령이 슬픔에 잠겨 있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주님의 사랑이 인간의 최고의 사랑보다 더욱 크며 예수님께서 저들을 사랑하시므로 저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바치셨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고 있다. 그러므로 저들로 하여금 저들의 주님 안에서 쉬게 할 것이며 모든 굶주린 영혼들에게 생명의 양식을 공급하기 위하여 그대들의 마음은 더욱 예수님의 말씀을 결정적으로 순종해야 할 것이다.

그대들이 어떠한 환경에 처하든지, 하나님의 섭리가 아무리 암담하고 신비하든지, 비록 그대들의 길이 깊은 물을 통과하는 것과 같을지라도, 사랑하는 식구를 잃어버리는 아픔을 거듭거듭 겪을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 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2)는 보증의 말씀이 여전히 우리들에게 들려 올 뿐이다(서신 32, 1893).

모친상을 당한 이에게 주는 위로 사랑하는 자매에게: 나는 그대의 모친상에 관하여 편지를 받아 보았으며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계 14:13)라는 말씀 밖에 없습니다. 그대의 모친은 너무나 장기간 동안 허약한 몸을 지탱해 왔습니다. 따라서 그대가 계속적으로 간호하여 온 생활은 너무나 고달픈 것이었습니다. 그대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보다 더 큰 슬픔을 안겨 주는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대 가까이 살고 있었다면 우리들은 그대에게 “잠깐 물러나서 휴식을 취하십시오. 그대의 의무는 너무나도 그대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고 있습니다. 주님을 신뢰하십시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대는 모친상을 당해서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은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들이 죽은 의인을 위하여 슬퍼할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를 위해서 슬퍼해야 된다는 사실을 말해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그대가 충만한 소망 가운데서 그대의 어머니를 안장하였으며 하나님의 나팔이 울려퍼질 때에 부활하게 될 것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사랑하는 식구를 무덤에 장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나의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 자매들, 나의 남편 및 나의 두 아들은 무덤에서 잠자고 있습니다. 우리 식구 중에 남은 자는 나의 언니 매리와 두 아들밖에는 없습니다(서신 98, 1903).

262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이에게 보낸 위로의 편지 사랑하는 형제에게: 우리들은 그대의 아내가 별세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그가 어떤 병으로 고생하였는지에 대해서 자세한 소식을 들은 것은 없습니다.

우리들은 심심한 동정의 뜻을 표합니다. 주님께서 그대를 위로하시고 당신의 은혜를 베푸시며 그대가 지나친 슬픔으로 기력을 완전히 상실하지 않도록 기도 드리는 바입니다. 우리들의 소망이 약속된 유업을 향하고 있음을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그의 구원이 가까웠고 멀지 않은 장래에 있을 것에 대하여 주님께 감사합시다.

그대의 아내가 어머니로서 자기의 책임을 충실히 이행한 어린 자식들을 바라볼 때 그녀가 자식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엡 6:4)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기뻐해야 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그대에게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을 팔에 안으시고 축복하신 복된 구세주께서 그대의 자녀들을 버리시거나 위로함이 없이 그대를 떠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지금 그대에게는 이중적인 책임이 놓여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리스도의 양 우리에 있는 어린 양들을 거느린 자들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어린이들을 상냥하며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다루므로 어리고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 언제나 안전한 길에 행하도록 지도를 받게 되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어린이들아, 화잇 아줌마는 너희들을 사랑하고 있으며 주님께서 너희들을 당신의 어린 자녀로서 사랑하시므로 아줌마는 너희들을 축복해 달라고 구세주에게 간구할 것이다.

E 형제여, 그대가 그처럼 사랑하던 아내를 땅속에 묻을 수밖에 없을 때에 그대의 마음이 얼마나 슬펐을까를 나는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무엇이라고 말씀했습니까?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 14:12, 13).

우리들은 그대와 그대의 어린 자녀들이 계속적인 인내로 선행에 증진하여 그대들의 얼굴과 발걸음이 항상 하늘로 향하게 되기를 기도할 것입니다. 263 우리들은 그대가 어린 자녀들을 지도함에 있어 훌륭한 감화력과 성공을 나타냄으로 저들이 모두 생명의 면류관을 얻고 우리들을 위하여 준비해 두신 하늘 본향에 이르게 되며 그 곳에서 그대와 아내와 자녀들이 또다시 이별이 없는 행복한 재결합을 하게 되기를 기도할 것입니다.

깊은 사랑과 동정으로 이 글을 씁니다(서신 143, 1903).

아내와 어머니를 잃은 남편과 자녀들에게 사랑하는 형제에게: 나는 그대에게 무슨 말로 위로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대의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저에게 너무나도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나는 그 소식을 믿을 수 없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전혀 믿어지지 않습니다. 내가 지난 안식일 밤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시를 말씀해 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그녀가 인치심을 받은 것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와 땅 위에 섰으며 그가 144, 000인들과 함께 있게 될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우리들이 그녀를 위하여 슬퍼할 필요가 없으며 그녀가 환란의 때에 편히 쉬게 될 것을 보았으며 우리들이 그녀와 자리를 같이하지 못하고 구원의 반열에서 떨어지게 된다면 슬퍼해 마땅할 것입니다. 나는 그녀의 죽음이 훌륭한 결과를 가져올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자녀들이 다시 어머니를 만나기 위하여 F와 남은 자녀들이 예수님을 만나기를 준비하도록 경고해 드립니다. 오, 자녀들이여!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대들과 같이 계신 동안 그대들에게 들려준 충성된 경고에 유의함으로 어머니가 하나님께 드린 모든 기도가 땅 위에 엎지른 물처럼 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 준비할 때에 범사에 형통할 것입니다. 그대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고 그대들이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까지 하루도 쉬지 말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정신을 차리게 하시고 아내를 잃은 마음의 상처를 싸매어 주시도록 힘주시기를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와 같이하실 것이며 그대를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오직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소망이 없는 자들처럼 슬퍼하지 마십시오. 그녀는 잠시 동안 무덤에서 쉬게 될 것입니다. 그대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운을 내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그대는 잠시 후에 아내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축복이 그대의 가족과 그대에게 임하기를 쉬지 않고 기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태양이 되시며 그대의 방패가 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심한 고통과 시련 가운데 있는 그대의 옆에 서 계실 것입니다. 시련을 잘 참을 때에 그대는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주실 영광의 면류관을 다른 동반자들과 함께 받게 될 것입니다. 264 진리를 굳게 붙잡을 때에 그대는 아내와 더불어 영광과 영예와 불멸의 영생을 상급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서신 10, 1850).

과부된 여인에게 한 위로의 편지 사랑하는 자매에게: 우리들은 그대가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홀로 된 것에 대하여 깊은 동정을 표합니다. 나는 현재 그대가 당하고 있는 그러한 처지를 이미 체험하였으며 그 심정이 어떠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너무나도 많은 슬픔이 쌓여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비애와 눈물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식구를 잃은 사람들에게 “울지 마세요. 눈물을 흘리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말은 저들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우는 것은 죄가 되지 않습니다. 비록 몸이 허약하고 병에 걸려 여러 해 동안 신음하다가 세상을 떠났을지라도 우리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우리들은 때때로 사랑하는 식구를 사별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저들이 가졌던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는 그 때에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죽는다는 것을 엄숙한 사실로 생각하는 반면에 산다는 것이 더욱 엄숙한 사실임을 심사 숙고해야 합니다. 매일의 생애 가운데서 우리들이 감당해야 할 책임들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개인적인 관심사와 우리들의 언행은 우리들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어떤 인상들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보배로운 구세주이신 주님께서는 언제나 인간의 비애를 동정하고 계십니다…. 그대의 능력의 근원이신 주님을 의지하십시오(서신 103, 1898).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자에게 불행을 당한 나의 사랑하는 자매에게: 나 자신이 그대가 당한 불행 가운데 함께 슬퍼하고 있습니다. 비록 나는 남편을 이 세상에서 다시 만나보게 될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으나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과 그대 홀로 무거운 책임을 지고 남은 가족들을 돌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의 마음은 몹시 슬펐습니다. 우리들은 그대에게 깊은 동정의 뜻을 표하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대와 그대의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할 것입니다. 그대의 남편은 예수님 안에서 잠자고 있습니다. 265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 14:13).

하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시는 그 몸의 모든 지체들처럼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믿는 모든 자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대는 그리스도의 그늘 아래 거하여야 하며 주님의 평강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생각하십시오.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의 허락의 말씀들을 믿으십시오. 그대의 마음을 믿음직스럽게 간직하십시오. 주님께서는 그대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지주가 되실 것입니다. 주님에게 기대어 의지하십시오. 지나치게 슬퍼하지 마시고 다만 슬픔을 이겨내도록 하십시오. 그대에게는 너무나도 무거운 책임이 놓여 있습니다. 그대에게 결코 실망의 고배를 맛보게 하지 않으실 주님의 든든하신 팔을 의지하십시오.

나도 남편을 잃은 여인이며 그대가 겪고 있는 슬픔을 나의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예수님을 바라볼 때에 그대는 격려를 받게 될 것입니다. 매일 그대가 주님의 축복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매여, 주님께서 그대를 축복하실 것이며 버틸 힘을 주실 것입니다.

지금은 너무나 어두워 제가 쓰는 글조차 잘 보이지 않으므로 이만 글을 써야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대의 자녀들을 위해서 가급적 명랑하도록 노력하십시오(서신 167, 1905).

나는 너희들에게 몇 자 글을 써야겠다. 우리들은 이 순간 너희 집에 가서 너희들과 같이 울고 같이 무릎을 꿇고 기도드리고 싶다. 너희들 각자가 주님을 찾으며 주님을 섬길 마음이 있는가? 너희들은 어머니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일을 삼갈 때에 어머니에게 큰 축복이 될 것이다. 너희들이 주님께 마음을 바칠 때에 주 예수께서 너희들을 받으실 것이다. 너희 어머니가 모든 염려와 무거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라.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친히 아버지를 잃은 자들의 아버지가 되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너희들이 주님께 마음을 바칠 때에 주님께서 너희들에게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이 될 수 있는 능력을 주실 것이다. 만약 큰 아이들이 집안의 무거운 책임들을 많이 짊어짐으로 어머니를 도와주고 어린 동생들을 친절하게 다루며 어머니에게 염려를 끼치지 않도록 잘 타이른다면 주님께서는 너희들을 크게 축복하실 것이다.

너희 마음을 사랑스러운 구세주에게 바치고 오로지 주님께서 보실 때에 기뻐하실 일만을 행하라. 어머니의 마음을 슬프게 할 일은 어떤 일이든지 해서는 안 된다. 266 주님께서 너희들을 사랑하시고 너희들 각자가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만약 너희들이 이 지상에서 충실하다면 주님께서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실 때에 너희들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나게 될 것이며 재결합하는 가족이 될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서신 165, 1905).

남편을 잃은 여인에게 사랑하는 자매에게: G 자매를 통하여 그대의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주는 편지를 방금 받아 보았습니다. 나는 사랑하는 자매에게 깊은 동정을 표하고 싶습니다. 만약 내가 그대를 방문할 수 있는 위치에 살고 있다면 꼭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매여, 주님께서는 그대가 슬픔 가운데 깊이 빠져 있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싶습니다. 그대의 남편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여러 해 동안 더 오래 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처럼 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너무나도 자비스럽게 그를 보살펴 주셨으며 결국에 예수님 안에서 잠들게 하셨습니다…. 그대의 남편과 나의 남편은 평안히 쉬고 있습니다. 저들에게는 쑤시는 아픔이 없으며 고통이 없습니다. 저들은 편안히 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매여, 그대가 심한 고통과 슬픔 속에 빠져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슬펐습니다. 그러나 고귀한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는 살아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위하여 살아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그대가 당신의 사랑 안에서 위로 받기를 원하십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참새 한 마리도 하늘 아버지의 허락 없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나의 사랑하는 자매여, 주 안에서 위로를 받으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우리를 위하여」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벧전 4:1)는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 그대에게 하나님께 그대의 영혼을 의탁하라는 권고를 하고 싶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대의 조력자가 되시고 힘이 되시며 그대의 위로가 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우리들은 반드시 그리스도에게서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주님의 온유하심과 심령의 겸비하심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배우십시오. 그대가 하는 모든 말들은 그대가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와 사랑을 인정한다는 것을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가정에 있는 모든 식구들에게 위로와 축복을 주는 자가 되어 보리라는 굳은 결심을 하십시오. 감미롭고 순결하며 천국과 같은 분위기를 만드십시오….

영혼의 유리창을 하늘로 향하여 열고, 의의 태양이신 주님의 빛이 들어오도록 하십시오. 267 불평을 해서는 안 됩니다. 슬퍼하거나 울지 마십시오. 어두운 면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평강이 그대의 심령을 다스리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그대는 모든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이며 그대에게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은혜가 있다는 사실을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를 찬양하고 그분의 선하심과 능력에 대하여 말하십시오. 그대의 영혼을 둘러싸고 있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십시오.

투덜거리는 한탄의 말로 하나님을 욕되게 해서는 안 되며 마음과 혼과 음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범사에 밝은 면만을 바라보십시오. 그대의 가정에 구름이나 그림자를 몰고 오지 마십시오. 그대의 얼굴의 빛이 되시고 그대의 하나님이 되시는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이렇게 할 때에 모든 일이 얼마나 순조롭게 진행될 것인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대와 그대의 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서신 56, 1900).

나는 최근에 사랑하는 식구와 사별하는 경험 가운데서 영원한 세계의 매우 가까운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마치 크고 흰 보좌 앞에 서 있는 듯하였으며 그 곳에서 나의 생애를 누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나에게 자랑할 것이란 아무것도 없었으며 내가 내세울 수 있는 공로도 없었다. “오 나의 하나님이시여, 당신의 은총을 받기에는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가련한 인생입니다” 라고 나는 외쳤다. 나의 유일한 소망은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구세주에게 있다. 나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주창(主唱)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신뢰하는 모든 자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때때로 나의 가슴이 심한 고통으로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낄 때에 명랑한 얼굴 표정을 짓기란 나에게 있어서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슬픔이 나의 생활 주변을 온통 어둡게 하는 것을 용납하려 하지 않았다. 때때로 질병의 고통이나 사별하는 아픔은 흔히 우리들 자신을 한없이 슬픈 감정에 맡겨 버리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상상 외로 우리들은 깊은 슬픔과 괴로운 골짜기로 몰아넣는다. 나는 예수님의 도움을 힘입어 이 악에서 피할 결심을 하였다. 그러나 나의 결심은 엄격한 시험을 받아야만 하였다. 나의 남편의 죽음은 너무도 급작스런 이변이어서 나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의 얼굴에 사망의 징후가 떠올랐을 때 나의 슬픈 감정은 거의 걷잡을 수 없었다. 마음의 고통을 억누를 길이 없어 큰소리를 내어 울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몸부림이 나의 사랑하는 남편의 슬픔을 억제하지 못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답지 못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268 나는 하늘로부터 도움과 위로를 구했으며 하나님의 허락의 말씀들은 나에게 확증을 주었다. 주님의 든든하신 손은 나를 붙들어 버틸 수 있게 하였다. 한없이 슬퍼하고 애도하는 일은 죄가 된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 침착해야 하며 쓰라린 시련 가운데서도 명랑해야 한다.

우리들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사도들과 마지막으로 면접하시는 장면에서 용기와 견인성(堅忍性)에 대한 교훈을 배우도록 하자. 저들은 서로 헤어져야 할 순간에 놓여 있었다. 우리 구세주께서는 당신을 갈바리로 인도하는 피로 얼룩진 길에 들어서고 있었다. 주님께서 잠시 후에 통과해야 할 그 시련의 장면보다 더 괴로운 것은 없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말씀 가운데서 당신의 고난과 죽음을 예언하는 것을 들었으며 저들의 마음은 슬픔으로 무거워졌고 저들의 정신은 공포심으로 산란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순간에 소리내어 우는 것이 없었으며 슬픔에 못이겨 자포 자기하는 것도 없었다. 마지막 엄숙하고 중대한 시간에 우리 구세주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위로와 보증의 말씀을 들려주셨고 모두가 마음을 합하여 찬미를 불렀다….

역경과 시련이 우리를 둘러쌀 때에 우리들은 하나님께 피해야 하며 힘있게 건져내시며 강하게 구원하시는 주님께 확신을 가지고 도움을 기대해야 한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원할진대 그 축복을 간구해야 한다. 기도는 하나의 의무이며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찬미하는 것을 등한히 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들은 종종 모든 축복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감사의 뜻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들은 감사하는 정신을 배양할 필요가 있다. 우리들은 자주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대하여 깊이 명상하고 회고해야 하며 비록 우리가 슬픔과 고통의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다….

주님의 자비로우신 인애(仁愛)는 우리들에게 너무나 위대한 것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신뢰하는 자들을 결코 떠나시거나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만약 우리들이 우리가 당하는 시련들에 대하여 덜 생각하며 적게 말하고 하나님의 자비와 선하심에 대하여 더욱 많이 말한다면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이 침울한 감정과 환난을 훨씬 초월하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그대들이 마치 어두운 길에 들어서는 것 같고 바벨론에 잡혀간 포로들처럼 생각할 때에 버드나무 위에 그대의 거문고들을 걸어 놓고 즐거운 노래로 시련을 이겨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마 그대들은 “나의 전망이 암담할 때, 슬픔과 사별의 멍에가 나의 영혼을 억누를 때 어떻게 노래할 수 있겠는가?” 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세속적인 슬픔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안에서 발견한 전능하신 친구를 우리들이 빼앗겨서 될 것인가? 269 당신의 독생자를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이 계속적인 기쁨의 주제(主題)가 될 수 있겠는가? 우리들의 탄원을 은혜의 보좌 앞에 가져올 때 우리들은 감사의 찬미가를 부르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시 50:23)라는 말씀이 있다. 우리 구세주께서 살아 계시는 한 우리들이 끊임없는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것은 당연하다(리뷰 앤드 헤랄드, 1881.11.1).

핏케언섬에 있는 친구들에게 보낸 기별 우리들은 지난 목요일에 그대들이 깊은 슬픔에 잠겨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슬퍼하였다. 우리들이 사랑하던 J.R.마코이 형제의 가족들 중 여럿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에 우리들의 가슴은 메이는 듯 아팠다. 이번의 불행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사랑하는 식구들을 잃은 모든 분들에게 심심한 동정의 뜻을 표한다. 특히 사랑하는 자를 가슴 아프게 여읜 유가족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한다. 그러나 이 순간 우리들은 유일한 소망과 위로가 되시는 예수님을 그대들에게 가르쳐 드리고 싶다. 식구를 잃은 마코이 형제의 사랑하는 반려자이며 생명을 잃은 어린이들의 어머니도 사망의 침묵 속에 누워 있다. 우리들은 슬퍼하는 자들과 같이 우는 반면에 이 사랑스런 어머니와 딸, 그 곳 교회의 장로인 영(Y) 형제, 그리고 세상을 떠난 여러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였으므로 우리들은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

사도 바울의 말씀이 그대들에게 위로가 되기 바란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살전 4:13-18).

270 우리들은 인간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목적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음침한 곡성을 슬피 내는 이방인들과 같지 않다. 우리들은 마치 우리들의 친구나 친척들이 영원히 이별하게 된 것처럼 애곡하는 옷을 걸치거나 표정을 지어서는 안 된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외쳤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 14:12, 13).

예수님 안에서 잠자고 있는 사랑하는 자들의 경우를 위하여 사도 요한의 말씀이 얼마나 적절한가. 주님께서는 저들을 사랑하셨으며 저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한 말들과 사랑의 수고들은 기억될 것이며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반복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업에 바친 저들의 열렬하고 전적인 헌신은 다른 사람들이 본받을 수 있는 모본을 남겨 놓았는데 이는 성령께서 저들 안에 역사하사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저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셨기 때문이다(빌 2:13 참조).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 사랑하는 식구를 잃은 모든 영혼들에게 이 얼마나 보배로운 말씀인가!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의 안내자가 되시며 모든 환난 가운데서 우리들을 위로하시는 위로자가 되신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쓴 잔을 마시게 하실 때에 또한 우리들의 순종하며 기뻐하고 화평을 누리는 마음을 채워주시고 우리들이 순종하는 마음으로 “오, 주여! 저의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말하게 할 것이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이러한 순종으로 소망은 부활할 것이며 믿음의 손은 무한하신 능력의 손을 붙잡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

썩은 몸으로 묻힌 그 몸들이 썩지 않을 몸으로 일어나게 될 것이다. 271 굴욕 속에 묻힌 몸이 영광 가운데서 일어날 것이며 허약한 상태에 뿌려진 씨가 능력을 가지고 일어날 것이다. 육의 몸으로 묻힌 자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게 된다. 너희 가운데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죽을 몸들이 살아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자들을 당신의 것으로 주장하실 것이다. 죽을 육신 가운데 거하는 그리스도의 영의 소생케 하시는 능력은 모든 믿는 영혼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묶어 놓을 것이다. 예수를 믿는 자들은 저들의 생명이 하나님 안에 있는 그리스도와 함께 숨겨져 있으므로 당신의 마음에 거룩한 존재들이다. 생명을 부여하시는 분께서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로다”(사 26:19).

생명을 베푸시는 주님께서는 당신의 피로 사신 소유물들을 첫째 부활에 불러 내실 것이며 승리의 개가를 부르게 될 그 순간,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나고 천만 천사가 영원한 승리를 거둘 때까지 모든 잠자는 성도들은 안전하게 보존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각자의 이름을 아시는 저들을 마치 값진 보석처럼 보호하실 것이다. 생전에 저들 안에 있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품성의 참여자들이 되었으므로 저들을 사망에서 불러 내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이 하늘 아버지의 독생자이심을 주장하셨으나 사람들은 불신에 갇혀 있고 편견에 사로잡혀 있으며 거룩하고 공의로우신 주님을 부인하였다. 주님께서는 참람죄로 참소를 당하셨으며 잔인한 사형에 처하도록 정죄를 받으셨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망의 속박에서 벗어나셨으며 개선의 부활을 하셨고 빌려 쓴 요셉의 무덤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요 11:25)고 선언하셨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또다시 주님께 귀속되었으며 의인들은 예수님 안에서 자유를 얻어 무덤에서 나올 것이다. 저들은 세상을 유업으로 받으며 사망에서 부활할 가치가 있는 자들로 간주될 것이다. “그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마 13:43).

부활의 아침이야말로 얼마나 영광스러운 아침이 될까!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의 추앙을 받게 되실 때에 얼마나 놀라운 광경이 전개될 것인가! 주님의 굴욕과 고난에 참여하였던 모든 자들은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272 그리스도께서 사망에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님 안에서 잠든 모든 믿는 성도들도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갇혔던 감옥에서 나오게 될 것이다. 부활한 성도들은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고 외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망을 이기셨고 무덤의 속박을 끊고 나오셨으며 무덤 안에서 잠자는 모든 자들도 승리를 얻게 될 것이다. 정복자이신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저들도 무덤을 헤치고 나오게 될 것이다….

슬픈 사별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랑하는 자들이여,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이 사단의 유혹의 노리개가 되도록 버려두지 않으셨다. 그대들은 슬픈 심령의 마음문을 열고 긍휼히 여기시는 구세주로부터 위로의 말씀을 받아들이도록 하라. 예수님께서는 그대들을 사랑하신다. 의의 태양이신 주님의 밝은 광선을 받아들이고 위로를 받으라. 사망에서 부활하셔서 그대들을 위하여 중재하시려고 항상 살아 계신 주님께 감사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살아 계신 구세주이시다. 주님께서는 요셉이 새로 만든 무덤에 계시지 않는다. 주님께서는 부활하셨다. 진정 부활하셨다. 사별의 슬픈 고배를 마시는 순간에도 그대들의 모든 비애를 동정하시는 구세주가 계시다는 것을 인해서 기뻐하라. 주님께서는 나사로의 무덤에서 우셨고 슬퍼하는 자녀들의 그 슬픔을 같이 슬퍼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그대들의 모든 시련의 투쟁과 모든 고난과 생애의 혼란 속에서 하나님의 권고를 구하라.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길은 완전한 날을 향하여 달려가는 더욱 밝게 비취는 찬란한 광명과 같은 것이다. 매 단계마다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라. 위험하고 가파른 길을 기어 올라가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겸비와 믿음과 극기의 생애 가운데서 전진하고 의혹의 구름을 물리치라. 살아있는 자들은 그대들의 염려와 사랑을 필요로 하므로 절망적으로 슬퍼하지 말라. 그대들은 주님의 군대에 입대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용감한 병사들이 되라. 하늘 성소의 감미로운 향기처럼 하나님 앞에서 참회의 말과 감사하는 찬송을 올리라.

그대들은 실망할 때가 있을 것이며 그대들의 의지와 그대들의 방법에 거절당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대들을 사랑하신다는 보증을 주셨다. 풀무불이 그대들 위에서 타오를 때가 있을 것이나 그것은 그대들을 소멸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순물을 걸러내어 일곱 배나 더 정련(精鍊)된 순금으로 만들기 위하여서이다. 하나님께서 그대들에게 밤에 부를 노래들을 주실 것을 기억하라. 273 흑암이 그대들을 에워싸는 듯이 보일 때가 있을 것이나 그대들은 검은 구름들을 바라보지 말라. 가장 캄캄한 검은 구름 저 위쪽에는 언제나 비치는 밝은 하늘이 있다. 주님께서는 모든 영혼들에게 주실 빛을 가지고 계신다. 소망과 화평과 기쁨을 향하여 마음 문을 열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1)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각자가 해야 할 특별한 사업을 준비하고 계시며 우리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기신 사업을 훌륭하게 수행해야 한다. 우리들 편에서 다만 한 가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우리들의 눈이 계속적으로 예수님께 고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려는 유일한 목적을 망각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전신 갑주를 벗고 사망의 잠을 자기 위하여 부름을 받을 때에 우리들에게 맡긴 책임에 대하여 답변할 준비를 하지 못하게 되는 일이다. 단 한 순간이라도 그대들 자신이 무한한 댓가를 치르고 사신 그리스도의 소유물들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며 그대들은 주님의 소유로 되어있는 그대의 정신과 몸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나는 슬픔을 당한 자들에게 부활의 아침에 소망 가운데서 안위함을 받으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대들이 마시고 있는 물이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라에서 마신 물처럼 쓴 물일지는 모르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으로써 그 물을 달게 하실 수 있다. 모세가 슬픈 난관에 처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려운 사정을 주님께 호소하였을 때 주님께서는 어떤 새로운 구제책을 제공하지 않으셨으며 저들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에 저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주님께서 창조하신 어떤 덤불이나 작은 나무를 물에 던져서 그 샘물을 달고도 맑게 하였다. 이 일이 이루어졌을 때 고통 당하는 백성들은 안심하고 기쁜 마음으로 그 물을 마실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상처에 바를 수 있는 향유를 예비하셨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으며 그 곳에는 의사가 있다. 그대들은 과거에 없던 열심을 나타내어 성경 말씀을 연구하지 않겠는가? 모든 위기에서 지혜를 얻기 위하여 주님께 간구하라. 시련을 당할 때마다 그 난관에서 벗어날 길을 보여달라고 예수님께 호소하라. 그렇게 할 때에 그대들의 눈은 구제책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거룩한 말씀 가운데 기록된 치료의 약속들을 그대들의 형편에 적응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원수가 그대들을 한없는 애도와 불신의 함정에 빠뜨릴 수 없게 될 것이며 그 대신에 그대들은 주님 안에서 믿음과 소망과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274 성령께서는 그대들에게 투철한 식별력을 주심으로써 모든 축복을 발견하게 되고 점유하게 될 것인데 그 축복은 슬픔에 대한 해독제가 될 것이며 그대들의 입에 떨어진 어떤 쓴 물방울도 달게 하는 한 나무 가지의 역할을 할 것이다. 모든 쓴 물방울은 예수님의 사랑과 혼합될 것이며 쓴 물에 대한 불평을 하는 대신에 그대들은 슬픔 속에 뒤섞인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달아 그 슬픔은 누그러지고 거룩하며 성화된 기쁨으로 변할 것이다.

나의 맏아들인 헨리 화잇이 죽어 가는 순간에 그는 “고통의 침상은 우리들이 예수님의 임재하심을 느낄 수 있는 고귀한 장소이다”라고 말하였다. 우리들이 쓴 물을 마시지 않으면 안 될 때에 쓴 것에 대한 생각을 돌이켜 보배롭고 광명한 허락의 말씀들을 생각하라. 시련 속에서도 주님의 은혜는 인간의 영혼에게 보장을 줄 수 있고 우리가 임종(臨終)의 침상 곁에 서서 그리스도인이 훌륭하게 이겨내는 고난과 죽음의 골짜기를 목격하게 될 때 우리들은 활동할 힘과 용기를 얻게 되고 예수님께 영혼들을 인도하는 일에 있어서 실패하거나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서신 65a, 1894).

가장 큰 슬픔을 이겨낸 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가장 힘있는 위로를 주고 어디를 가나 밝은 햇빛을 비추는 자들임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한 자들이야말로 쓰라린 고난을 통해서 세련되고 성품이 유연하게 된 자들이다. 역경이 저들을 엄습하였을 때 저들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심을 잃지 않았으며 다만 주님의 보호하시는 사랑에 간절한 마음으로 의뢰하였다. 저들은 하나님의 부드러운 돌보심에 대한 산 증인들이며 하나님께서 밝은 빛뿐만 아니라 어두운 흑암도 만드셔서 우리들의 유익을 위하여 단련시키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빛이시며 주님 안에는 어두움이 없다. 아, 보배로운 빛이 되시는 주님! 다 같이 그 빛 가운데서 살도록 하자! 슬픔과 한탄과는 작별을 고하라. 항상 주 안에서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1877년 10월, 건강 개혁자 제12권, No.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