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강연2

본문보기

87장-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87장 -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329 자존심 있고 그렇게 뽐내는 허식을 가졌던 유대 나라는 허식적인 무화과나무로 상징되었다. 이 나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빼앗겼기 때문에 자기가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아무런 권리도 없는 선함과 덕을 가지고 있다고 교만하게 주장했다. 그분은 분명히 이 약속들을 자발적인 순종과 연관시키셨으며, 그분의 백성이 그분의 계명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이 지시하신 길에 행할 때에 이것을 성취시킬 것이었다.

이 교훈은 모든 시대,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들을 위해 주어졌다. 진리와 고결함으로 계명을 지키는 모든 사람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규율 아래 있다는 것과 그들의 일시적이고 영적인 승리를 그분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세상에 드러낼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와 인정으로 그분의 백성들은 비록 진리를 위해 핍박으로 고통 당할지라도 안전하다. 그분의 선하심과 은혜의 부유함은 그들의 보호와 구원이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메마른 무화과나무로부터 모든 사람이 주의해야 할 비유를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계명의 길에 행하는 사람들은 열매가 풍성한 풍요로운 무화과나무와 같을 것이다. 이 나무는 허식적인 잎만 있고 열매가 없었기 때문에 저주를 받았다.

유대인들은 교만한 백성이요, 경건과 지식과 선함을 뽐냈다. 그러나 열매가 보이지 않았다. 만일 그들이 자아 부정과 선함과 자비, 동정을 행하는 열매 맺는 모본을 세상에 보이고, 또한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그분의 모든 계명을 순종함으로 그분의 사업에서 고결함을 보였다면 세상은 그들의 빛이 선행에서 비취는 것을 보았을 것이며, 그들은 회심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유일한 참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해 그들에게 주어진 그분의 위대한 사랑과 풍성한 축복을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을 것이다. 이방인 세계의 어두움은, 스가랴 9장에 나타나 있듯이 유대 나라의 소홀함에 그 원인이 있다. [스가랴 9장 12-17절 인용]. 온 세상은 위대한 구속의 경륜의 계약에 포함되어 있다.

[이사야 62장 1-3절, 11, 62장 10-12절, 예레미야 31장 10-12절 인용] 곡식과 포도주는 은혜와 풍성함의 상징이다.

그분의 계명에 대한 불순종의 온갖 습관과 세상에 대한 일치로부터 그들을 순결하게 하고 깨끗하게 하기 위해 여호와께서 보내신 기별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과, 도움을 위해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계명을 순종하는 길에 행하며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개혁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악행을 고칠 수 있는 신령한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330 그러나 분명히 회개하고 여호와를 찾으면서도 자신이 행하는 악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은 스스로 실망할 뿐 아니라 그들의 행로가 상징이나 비유로 그들 앞에 제시될 때 그들은 여호와를 실망시켜 드렸기 때문에 부끄러움과 슬픔을 느낄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의 행로에 희망을 걸고 신뢰했다. 그들은 한 백성으로서 훈계를 받았으나 그 훈계를 부르게 된 악행을 버리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지혜와 힘의 다함이 없는 샘물이시다. 모든 세대를 통해 그분의 지정한 방법으로 그분은 인간 조력자들과 그분의 백성들을 위한 원천을 일으키신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대리자들은, 만일 그들이 말라 버린 무화과나무가 행한 것으로 표상된 것처럼 여호와를 속이지 않는 한 기만하는 자로 입증되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갈급하시다. 그분은 그들이 마땅히 맺어야 할 열매에 대해 갈급하는 한 백성을 나타내신다. 그러나 분명히 풍요한 무화과나무로부터 열매를 받지 못하고 계신다. 영적인 필요는,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은혜와 의로 구하고자 그분의 생명을 서약한 백성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채워지지 않았다.

여호와께서 영적인 깨우침에 있어서 지식과 이로움을 지닌 백성들과 함께 하시고, 또한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나누게 될 때 그들은 열매 맺는 가지가 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받았으며, 열매를 맺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손안에서 그리고 성령의 감화 아래, 그들은 분명한 결과로 힘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계속적으로 세상 앞에 영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일시적인 면에서도 하나님의 위대한 선하심을 나타낸다. 그들은 이길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리가 그들과 함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주신 모든 구원과 축복은, 그분이 주실 더 많고 부요하며 늘어 나는 축복의 분명한 보증으로서 기억의 방에 생생하게 보존되어야 한다. 여호와의 축복은 그분의 백성들의 필요에 적합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모든 계명에 순종함으로 정하신 방법 안에서 구원받게 될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분의 아들을 희생으로 주셨다. 사람을 구원하고, 자신의 강한 손으로 그분의 백성을 구함으로 자신의 목적을 증거 하시며, 모든 사람을 초청하셔서 자신의 펼쳐진 팔을 의지하도록 하신 후에 그분은 인류의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 하늘의 모든 자원들을 사용하실 것이다. 그분의 백성들은 그분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활용하고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함으로 그분의 이름을 창대 하게 할 것이다. 그분께서는 모든 약속을 성취하실 것이다. “내가 그들로 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케 하리니 그들이 내 이름을 받들어 왕래하리라”(슥 10:12).

331 예레미야가 그의 예언서 32장에 기록한 기도는 주의 깊이 생각해야 한다. [예레미야 32장 16-23절 인용] 고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구주가 오신다는 약속은, 지옥의 문이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백성들을 대적하여 이길 수 없다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최고의 보증이었다. 교회는 멸망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교회로부터 그분의 능력을 통해 그분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생명의 왕이 나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구름 기둥으로 덮여 있을 때,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하신 모든 말씀에 충성되고 참되게 남아 있었다면 그분은 그들에게 모든 대적들 위에 승리를 주셨을 것이다.

[예레미야 36장 1-7절 인용]. 이 장은 반복되는 역사적 기록이다. 경고를 받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주의 깊이 읽어 보자. [예레미야36장 22, 23, 27, 28, 32절 인용].

주님의 봉사 사역이 마쳐지는 장면의 사건들은 성경상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경험에서 바로 동일한 곳을 지나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그들의 경계를 위해 기록된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로부터 교훈을 배우는데 신중하지 않은 것같다.

[고린도전서 10장 1-12절 인용].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로서, 경계를 받는 것을 거절하며 그분이 주신 기별을 물리치고 우리 행로의 분명한 결과를 회피하며 고대 이스라엘이 행한 것처럼 동일한 불신의 길을 걸을 수 없다.

예수님의 한 가지 큰 부담과 슬픔은, 전지 하신 눈으로 그분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보신 것이었다. 그분은 자신을 위해 울지 않으셨다. 그분은 자신이 당할 배신과, 시련과 배척, 대적의 손아귀에서 구원받기 위해 울지 않으셨다. 정죄되실 수 없는 분, 빌라도가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요 18:38)고 선언한 그분에게 가장 잔인한 죽음이 정해졌다. 그분의 눈물은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오랜 고통과 기나긴 인내의 자비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자신을 두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그 나라의 몰락을 가져 온 마지막 사건이었다.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가로되 저희가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 하고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쫓아 죽였느니라”(마 21:37-39).

332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나라를 나타낸다. 종교 국가로서 교만한 우월성으로 눈에 띄는 유대인들은 허식적인 잎으로 뒤덮인 무화과나무와 같았다. 그들은 관을 쓴 제사장들이 조석으로 희생을 드리며 봉사하는 가운데, 그들의 종교적인 예식과 전통, 부한 성전을 가지고 있었다. 종교 생활의 외적인 증거는 풍성하였다. 그 나무는 잎으로 덮여 있었다. 그들은 소비자였으나 생산자는 아니었다. 그들은, 그분이 자신들에게 주신 모든 사랑과 관심과 은혜로운 자비에 대해 여호와께 되돌려 드리는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했다.

잎은 풍성하였다. 그러나 이 겉으로만 드러난 잎은 무엇을 가리고 있었는가? 교만과 헛된 영광과 이기심이었다. 거기에 예식과 기계적인 음악은 많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말하자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얼굴에 녹색 잎으로 과시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분의 영광을 위한 아무런 열매도 맺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올리브 산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다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오늘날 그리스도인 교회는 어떻게 서 있는가? 하나님의 약속과 조화되는 가운데 모든 영적인 유익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들의 특권이다.

[신명기 10장 12-18절, 11장 13-15절, 4장 5-9절 인용].

이 땅에 있는 모든 교회들은 그분의 옛날 백성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다루신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의식적인 예배는 그들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다. 진리는 오래 전통과 거짓으로 포장되어 왔다. 여호와께서 경고의 기별과 함께 그분의 종을 그들에게 보낼 때 그들은 성경을 연구하면서 경고를 생각해야 했다.

그러나 양떼의 목자들은 기별을 받아들이는 대신,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온 심각하고 경성 하게 하는 경고를 정죄하기 위해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세상에 주어진 경고의 마지막 기별에 어떤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거절하고, 마땅히 되었어야 할 교회의 상태에 대하여 그들의 교회를 인정하지 않는 모든 것을 거부하려고 했다. 그들은 마음의 모든 논쟁적인 힘을 사용했으며, 자신들의 결론으로부터 있음직한 큰 가능성과 능력으로 생각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와 조화를 이루기 위해 그들의 교리적인 견해를 바꾸도록 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어떤 빛이나 증거를 찾기 위해 스스로 성경을 듣거나 연구하기를 거부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로다”(요 5:39).

오늘날 교회는 세상의 습관과 행습으로 돌이켰다. 그들은 더 이상 특별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표자인 거룩한 백성들이 아니다. 사도는 말하였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 바라”(롬 13:1, 2).

333 하나님의 교회와 연관된 목회자들과 모든 사람들은 이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그들이 드릴 만한 봉사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자신들의 몸을 드리지 않으면, 비록 그들의 이름이 교회의 책에 기록되어 있을지라도 어린양의 생명책에는 기록되지 않기 때문이다.

마취성 담배를 사용하는 교인들을 보시며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 정결케 할지어다”(사 52:11). ­1912년 원고 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