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강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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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장-세상적인 정책과 원칙의 위험:순종과 의와 연합을 위한 호소

70장 - 세상적인 정책과 원칙의 위험:순종과 의와 연합을 위한 호소

[1902.6.19.캘리포니아 세인트 헬레나 요양원 채플 퍼시픽 유니온 의료 선교사 협의회에서 한 엘렌G.화잇의 이른 아침 설교]

204 세상과 결합하는 것은 우리의 많은 백성들이 그들의 인내를 잃게 하고 있다. 나는 이 문제를 깊이 느낀다. 왜냐하면 이것이 주님에 의해 끊임없이 내 앞에 놓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해 동안, 세상적인 정책이 많은 우리 기관의 경영에 침투하고 있는 것이 반복적으로 여러 번 내게 제시되고 있다. 그리고 70년 대 초기와 그보다 앞서서 주어졌고 출판된 증거들을 읽을 때,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위험이 얼마나 분명히 지적되었으며, 시초부터 바른 방법이 얼마나 분명히 개략 되었는지를 보면서 나는 대단히 놀랐다.

그러나, 그렇게 분명히 설명된 방법은 뒤따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권면이 주어지지 않은 것처럼 행동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께서 우리를 높이시며 우리를 위해 위대한 일을 하시리라고 기대한다. 만일 우리가 자신들을 그분이 하실 수 있도록 그분에게 연결시킨다면 참으로 그분은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이기심의 실을 피륙에 짜 넣는 한 우리를 도와주시지 않을 것이다.

바른 원칙에서 벗어남. 우리 백성들 중에­더러는 반대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많은 사람들에 의해­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사업과 연관되어 사업에서의 자신의 분야가 성공적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을 최선으로 만들기 위해 예민하고 날카로우며 고의적으로 되려는 감정이 있다. 이런 생각을 의뢰하기를 계속하는 사람들은 심판의 때 자신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있을 곳을 발견하지 못할 때 비통하게 실망하게 될 것이다. 거짓 원칙들은 하늘에서 결코 통할 수 없을 것이다. 이기심의 실은 지상에서 그분의 일 가운데 하나님의 사업 중 어떤 부분에도 끼여들지 못할 것이다.

세상적인 정책이 우리 기관의 경영에 파고들었다. 이것은 배틀크릭에 있는 우리 출판소를 거의 훼파시켰다. 하나님은 모든 것에서 처음과 최후와 최선이 되지 못하셨다. 인간적인 판단과 인간적인 생각이 모든 것을 이끌고 지배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적인 평가에 있어서 약삭빠른 존재로 여김을 받고자 하는 야망이 있는 사람들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대열에서 책임 있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야망을 품고 있다. 하나님의 사업은 지금 그러한 것보다 우리에게 더 큰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205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 어떤 면에서든지 성경의 원칙에서 벗어난 자들은 자신들을 하나님과 분리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사업에 세상적인 정책이 들어오지 않도록 단호해야 한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종들과 사단의 종들은 빛과 어두움처럼 서로 구별되어야 한다. 그들 사이의 경계선은 실패가 없어야 한다.

현대 진리의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일찍이 그들의 책임을 알아야 할 때가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지금이다. 비록 아무라도 그의 형제들과 무관하게 행동해서는 안되겠지만, 각자는 그 자신의 상태, 곧 자신의 정확한 의도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각자가 자신에게 해야 할 질문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떠한가?”라는 것이다.

바른 원칙이 왜곡된 것은 갑자기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주의 천사가 내게 이것을 상징으로 보여 주었다. 그것은, 우리 형제들을 세상적인 정책을 확고히 하도록 이끌어서, 마치 도적이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 와 은밀히, 그러나 분명히 하나님의 사업의 정체를 없애면서 생기게 되었다.

하나님께 바르게 속해야 할 자리를 사람들의 마음이 차지했다. 그 사람의 지위가 어떠하든지, 그가 얼마나 높임을 받든지 상관없이 그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자리에 계시다면 행하실 것과 같이 행동해야 한다. 그가 행하는 모든 사업과 그의 말과 그의 품성에서 그는 그리스도와 같아야 한다.

사람은 분명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반대되게 하나님의 사업을 수행하도록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의 길과 자신의 생각에 따라 나아가는 것이 특권인 것처럼 생각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 점점 더 많이 습관화되어 왔다.

복음의 정신과 반대되는 제약 수주일 전, 나는 배틀크릭의 한 인쇄물에서 나를 놀라게 한 글을 보았다. 그것은 배틀크릭의 어떤 재정도 다른 종류의 사업을 건설하거나 지원하기 위해 미시간 주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조정을 인정하시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오스트레일리아­새로운, 미개척지­에서 투쟁하고 있을 때, 여호와께서는 내게 명하시기를, 미국에서 배틀크릭 요양원이 사업을 특징짓는 것보다 더 많이, 새로운 지역에서 특징지을 요양원을 건립하는 데 도움을 주도록 배틀크릭 요양원에 요청하게 하셨다. 그러나 여호와의 요청에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내가 배틀크릭에 있는 기관의 수익에 관한 제한에 대해 이 글을 읽었을 때, 나는 우리가 오스트레일리아에 있을 때 왜 이 기관들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206 그런 제한은 복음의 원칙과 조화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에게 복음을 세상 끝까지 들고 나아가라고 명하셨다. 그분은 복음의 축복을 유대나 어떤 한 나라에 국한시키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사업에는 평등성이 있다. 우리는 배틀크릭에 있는 의료 기관을 세우는데 도움을 주었으며, 그 초창기 때 부드럽게 양분을 주었으며, 이제 이 기관이 강하게 되었으므로 오스트레일리아에 유사한 기관이 세워질 수 있게 우리를 도와주도록 경영자들에게 호소가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형제들이 사업의 여러 면에 있어서 조직과 경영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고, 그런 이기적인 정책이나 계획이 아무 곳에도 자리잡지 못하도록 하자.

잘못된 원칙들은 버려야 함 주 여호와께서는 우리 중에 들어 온 세상적인 영으로부터 우리가 자유로워지도록 매우 부지런한 노력을 기울일 것을 기대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어떤 지역성에 호의를 보이기 위해 큰 요양원을 세워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해하기를 갈망하신다. 왜냐하면 이것은 다른 지역에 매우 많은 요양원을 세우는데 드는 돈을 흡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의료 기관이 매우 많은 지역, 아주 많은 장소에 세워지기를 원하시며 진리가 들어가는 많은 나라에 건설되기를 원하신다.

주 여호와께서는 개혁을 요청하신다. 믿는 자들이 세상적인 원칙을 받아들인 모든 곳에서 그분은 경고의 음성이 올려지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말씀하신다.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그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 우리는 한 백성으로서 또한 한 개인으로서 우리를 좁은 반경 내에 매우 많이 받아들이도록 이끄는 잘못된 원칙들과 야심있는 계획들을 버려야만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길에서 계속 전진하며 견고하고 견실하게 행하는 것을 배우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언젠가 비슷한 이익을 갖게 될 다른 지역의 필요에 맞추어 모든 기관을 세우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의 사업은 어떤 면에서도 인간적인 제약으로 제한을 받아서는 안된다. 이루어진 많은 야심적인 계획과 정책들이 그분에 의해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분은 한 곳에서 많은 유익을 얻는 것에 관계가 없으시다. 그분은 필요한 다음의 기관을 세우는데 도움이 되도록 모든 기관이 서기를 원하신다. 진리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들을 진리로 이끌고 오는 책임이 놓여져 있다.

기관을 세우는 데도 이것은 똑같다. 어떤 사람이나 어떤 기관도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의 원칙이 너무 한정되어서 범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한정되어 있는 것같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자유롭게 해주시기를 바라신다. 밤중에 나는 멍에가 씌워지는 사람을 본 것 같았다. 207 그리고 권세 있는 한 분이 오셔서 모든 멍에를 부수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런 멍에를 만들지 않았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의 독립적인 것에 서도록 하며, 어린 아이 처럼 겸손하게 남아 있도록 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이 그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고 새로운 지역에 보내진 일꾼들을 지탱하기를 바라신다. 친절한 친구들에 둘러 싸여 편안한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새로운 지역에 일하는 나가는 자아 희생적인 일꾼들에게 그들은 자족하기 위해 스스로 일해야 한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형제 자매들이여, 그대들이 먼 지역에 보내는 선교사들은 종종 그들의 사업에 끊임없이 방해하고자 계획하는 대적들 중에 일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진리가 알려져 있지 않은 선교 지역에 호의적이지 않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는 형제들에게 자족하라고 하기보다는 국내에서 일하는 일꾼들에게 자족하라고 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하나님께서는, 미국에 있는 일꾼들에게 해외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 일꾼들 편에 준비하고 서기를 원하시며 그들이 수행하고 있는 모든 사업을 지지하기를 촉구하신다. 그들이 일어나 서기 위해 여호와께로부터 교육을 받을 때, 이 나라에 사업에서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너그러운 도움을 그들에게 줄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한다.

정의와 의로운 원칙에 대한 호소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가 하늘이 땅에서 먼 것 같이 멀게 인식되고 있다. 속히 오실 구주를 만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그들의 의무는 전적으로 잊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제 정신으로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영원한 세계의 경계에 살고 있는 지혜로운 존재들처럼 행동하기를 원하신다.

하늘의 왕국을 위해 스스로 준비하는 것으로 그대가 다른 사람을 준비시키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성경은 말한다.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많은 사람들이 도덕력이 약하다. 많은 이들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특권과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교훈을 받을 기회를 결코 갖지 못하였다. “경계에 경계를 교훈에 교훈을…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라.”

하나님께서는 이런 교육을 받은 사람들에게 무거운 책임을 지워 주셨다. 그들은 기도에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그들의 판단이 최고라는 생각 대신에, 그들은 무섭게 두려움을 느껴야 한다. 그들에게 기도할 시간을 주지 못하고 영적인 형편에 대해 명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못하는, 그들이 잡을 수 있는 모든 부담을 모으는 대신에 그들은 그들의 창조주와 교제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하나님의 사업은 그분에게 매우 중요하며, 그분의 청지기라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분께서는 자신의 품성을 바르게 나타내기를 요구하신다. 그분 앞에 신중하게 행하는 자들만이 청지기직을 위해 적합하다. 그분은 그분의 품성을 적절하게 나타내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신다. 208 그들을 통해 그분의 뜻은 하늘에서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기도하도록 가르쳐 주신 기도를 매일 드리도록 하자. 그리고 그 날 동안에 이 기도대로 살도록 하자. 이 기도를 실행하는 것이 사람의 모든 의무이다. 그것의 원칙은 모든 바른 행위의 샘의 근원에 놓여 있다. 이 원칙의 매 구절을 실행하는 사람들은 지각 있는 사람들­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지배하시고 인도하실 수 있는­이 될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들어오면, 공의와 의의 원칙들이 온 존재에 스며들게 될 것이다. 나의 형제와 자매들이여, 그대들은 성령을 받았는가? 이 질문은 자신들의 손을, 하나님의 일꾼들의 움직임을 인도하는 선에 놓은 사람들에게 잘 질문될 것이다.

모든 하나님의 공언하는 제자들은 겸손하고 뉘우치는 정신이 필요하며, 높은 책임을 지고 있는 자들은 두 배의 겸손한 정신을 가져야 한다. 부주의하고 무관심한 대신,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큰 지혜를 받았고 다른 사람을 인도하는 법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대신에 많은 책임을 맡고 있는 이 사람들은 전에 간구해 본 적이 없는 것처럼 먼지 가운데 자신을 겸비하게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업의 대열에 있는 모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공의와 공평의 정신을 품은 것을 보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영적인 우리의 전쟁에 관해 부주의하고 무관심할 수 없다. 은혜의 사업이 먼저 가정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개인의 심령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 내게 제시되었다. 하나님과 그분의 율법에 관한 지식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녀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그들의 자녀들에 대한 그분의 교훈을 가르치는 것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부모들에게 주셨던 가르침은 이 시대의 부모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7-9).

하나님께서는 왜 그분의 율법에 관한 지식에 그렇게 특별하신가? 그 이유는 이것에서 멀어지는 것은 그것을 범하는 자들에게 뿐 아니라 그의 잘못 인도한 영향력을 통해 범죄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멸망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관계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관계는 어린아이가 그의 부모에 대한 관계와 같다고 하는 것이 내게 보여졌다. 하늘의 하나님은, 마치 사랑하는 부모가 자녀들을 보고 있는 것처럼그분의 백성들과 교회를 살피고 계신다. 209 그리고 우리는 어린 아이 처럼 어리석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기 위해 기꺼운 마음을 보일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려고 기다리시는 것에 관해 진정 그 시작도 모르면서 우리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기 의의 자리에서 내려 와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의 사업을 받들지 않겠는가? 우리는 기꺼이 그분에게 가르침을 받고 인도를 받지 않겠는가? 우리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걷기를 시작한다. 때가 되면, 우리는 견고한 걸음을 걷는 것을 배울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어느 때라도 부딪혀서 넘어질 수 있다. 높은 자로부터 낮은 자에 이르기까지 우리 각자는 무력한 어린이와 같은 영적인 연약함과 어려움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경험 있는 아이들이 서로에게 의존할 수 없고 그들의 부모를 의지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무력한 영혼을 어떤 인간에게 의지할 것이 아니라 구원할 수 있는 힘센 분을 붙들어야 한다. 사람의 정책은 무가치하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힘과 지도를 위해 하나님을 의존해야 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사업에서 높은 책임을 지고 있으면서 자신 스스로의 인간적인 지혜를 사용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교회를 위한 그의 사업은, 교회의 위대한 머리이신 분의 지혜를 신뢰하지 않는 한 아무 가치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경외함으로 움직이고 그분 앞에서 떨며 행하도록 요청하신다. 그분은 말씀하신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전능하신 분의 팔을 의뢰하고 그리스도의 대열에서 일하고 있는 한 우리는 안전하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의 팔을 잡고 있는 것을 느슨하게 하고 인간을 의지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크게 위험해진다.

바로 오늘날,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전에 결코 다다르지 못했던 높은 표준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날마다 우리는 “너희가 주 안에서 완전하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 위로 계속 위로 전진해야 한다.

연합 하나님의 사업은 그분의 일꾼들이 연합할 때 보다 빨리 전진한다. 연합에는, 다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생명이 있으며, 능력이 있다. 서로 연합하여 조화 있게 서로 일할 때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동역자”가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내가 믿는 견고함이다.” 그러나 이 연합은 세상이 견고함이라고 부르는 그런 것이 아니다. 형제들 사이의 연합은 그리스도와 하늘의 천사들과 함께 하는 견고함에서 비롯된다. 그런 견고함은 하늘에서 온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기도하시며 바라신 것이다. 21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 17:20-23).

빛 안에서 행함 만일 위로부터 주어진 빛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발자취를 한 걸음씩 따라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이 빛을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 그분은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시다. 하늘의 대주재,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아버지와 같으신 그분께서, 인간에게 가치를 주는 그분의 희생을 통해 타락한 존재들 곁에 서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그분은 겸손함으로 점차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들어 오셨으며,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경지에까지 이르셨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고통 당하시고 돌아가셨다. 십자가에 달리셔서 그분은 외치셨다. “다 이루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그분의 사업을 다 이루셨다.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해 화목 제물이 되셨으며, 그분을 믿는 믿음을 통해 우리가 정결해 질 수 있도록 하셨다.

만일 우리가 초창기부터 하나님의 권면 안에서 행하였다면 수천의 사람들이 더 현대 진리에 회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발에 구부러진 행로를 만들었다. 내 형제들이여,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도록 곧은 길을 만들어라. 아무도 어떤 다른 사람이 만든 구부러진 길을 따르지 않도록 하자. 왜냐하면 이렇게 함으로 그대 자신이 떨어져 나가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따를 수 있도록 이 구부러진 길을 평탄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 스스로 순종의 곧은 길을 걸을 것이라고 결심하라. 그대가 전능하신 분의 넓은 방패 안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라. 여호와의 품성이 그대의 생애에서 드러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신령한 모본을 따라 그대의 품성이 꼴 지어져야 하는 사업이 그대 안에서 성취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라. 전체적인 면에서 머리가 되시는 분의 지도에 그대 자신을 굴복시키라.

형제 자매들이여, 우리는 심판을 위하여 우리의 일을 하고 있다. 우리 예수님을 배우도록 하자. 우리는 매 순간 그분의 인도하심이 필요하다. 매 발걸음마다 우리는 물어야 한다. “이것이 내 위에 있는 사람의 길인가?” 하는 것이 아니고 “이것이 여호와의 길인가?” 라고 물어야 한다. 우리는 여호와의 길 안에서 행하고 있는지에 관해서만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참된 심령을 가진 자들, 그리스도의 은혜의 완전함 안에서 그분 앞에 행하기를 구하는 신실한 영혼들을 영화롭게 하시고 세워 주실 것이다. 그분은 겸손하고 떠는 한 영혼이라도 결코 버리거나 떠나시지 않을 것이다. 211 그분이 우리 심령 안에서 일하신다는 것을 믿을 것인가? 그리고 만일 우리가 그분이 그렇게 하시도록 허용한다면, 그분은 우리를 깨끗하고 거룩하게 하셔서 그분의 넘치는 은혜로 그분과 함께 하는 동역자가 되기에 적합하도록 하실 것인가? 우리는 예민하고 성화된 지각으로 그분의 약속의 강함을 알고, 우리가 가치 있어서가 아니라 산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주장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들에게 감사할 것인가?

순종의 대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사단의 고소하는 대상이 된다. 대적은 인간들을 죄로 이끌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일한다. 그리고 그는 그들의 과거의 죄 때문에 그들을 마치 자신의 노예인 것처럼 지옥 같은 잔인함을 그들에게 행사하도록 허락을 받는다. 이 사업에 대해 스가랴는 이렇게 기록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의 대표자­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다. 사단은 형제들의 참소자로서 밤낮으로 그분 앞에 서 있다. 절대적인 권력으로 그는 그들의 품성의 혐오스러운 특성을, 그리스도의 보호하시는 능력을 철회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로 제시하여, 자신이 범죄 하도록 한 그들을 절망하게 하고 멸망시키도록 허락 받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죄인을 위해 대속을 이루셨다. 우리는 믿음으로 우리의 보혜사가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다.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자신의 절대적인 시험으로 굴복되고 하나님의 충성으로부터 떨어지도록 인도한 자들에게 대적은 죄와 수치의 옷으로 옷입힌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빛이 되시고 보호자가 되시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불쌍하고 회개하는 사람들은 그대들이 듣는 것처럼 이 말씀을 듣는다. 이 말씀을 믿으라.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천사들)들에게 명하사(사단의 참소에 대하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고.”

더러운 옷은 벗겨졌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죄과는 순결하고 거룩하며 흠없는 하나님의 아들에게로 옮겨졌다. 그리고 전혀 가치 없는 사람이 죄로부터 깨끗케 되어 여호와 앞에 서 있으며 그리스도의 입혀진 의로 옷입었다. 아,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옷의 변화인가!

212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회개한 죄인을 위해 이보다 더한 일을 하신다.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수아에게 증거 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준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있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하리라.”

전망 우리는 영원한 세계의 경계에 서 있다. 어떤 이들은 말할 것이다. “화잇 자매여 그대는 어떻게 이것을 아는가?” 나는 이것을 땅에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안다. 이 심판은 남녀들로 하여금 정신을 차리도록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을 허락하시는 데 있어서 한 가지 목적이 있으시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지금 거의 매일 일어나고 있는 이상한 일에 있어서 그분이 행하시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영적인 마음을 갖기를 원하신다. 이미 그분의 심판은 이 땅의 거민들에게 떨어지기 시작하고 있다. 그분은 소위 방화 시설을 갖춘 대형 건물을 치실 수 있으며, 두 세 시간 안에 이것들은 아무 것도 아닌 양 땅바닥에 쓰러질 것이다.

우리는 앞에 큰 일을 가지고 있다. 죄악된 세상에 마지막 경고의 기별을 주는 일을 마치는 사업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서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그대들에게 사정하노니 아직 들어가지 못한 많은 곳들을 바라 보라. 남부 지역의 수백 만의 사람들을 보라. 누가 이들의 구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몇 곳에 기둥처럼 서 있는 대형 건물을 보라. 배틀크릭과 우리 사업의 다른 센터에서 보여지는 것을 증거 하라. 몇 곳에서 보여 지고 있는 것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과 재정을 생각해 보라. 그들 주위에, 사악함과 더러움으로 누워 있으며 소홀히 여김을 받고 있는 세상­경고를 받지 못한 채­이 있는데 우리 형제와 자매들이 동일한 지역을 계속 터벅거리고 다니는 것을 보라. 이것은 내게 두려운 장면이다. 우리는 멸망해 가는 세상에 얼마나 무서운 무관심을 나타내고 있는가!­1902년 원고 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