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강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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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장-그리스도인이 되는 특권

47장 - 그리스도인이 되는 특권

[1886.9.19.영국 그림스비에서 한 E.G.화잇의 설교]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1-3).

여기에서 사랑의 사도는 타락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우리에게 나타내려고 애쓰고 있다. 그는 이 놀라운 사랑을 표현하기에 충분히 넓고 깊은 말을 찾을 수 없다. 그리고 그는 세상에 대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일컬어질 만큼 하나님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는지 보라고 촉구한다. 우리가 이 사랑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가? 갈바리의 십자가를 쳐다봄으로써 바라볼 수 있다. 십자가로부터 오는 빛은 타락한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가지신 사랑을 나타낸다. 요한은 “보라 어떠한 사랑인가” 라고 한다. 갈바리의 사람을 바라 보라. 아버지와 동등하신 그분을 바라 보라. 하늘의 대 주재를 바라 보라. 영광의 왕을 바라 보라.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그분은 그에게 우리를 위해 자발적인 제물로 주셨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는 아버지의 놀라운 겸손을 보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많이 거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우리가 살 수 있도록 그분의 사랑하는 유일한 아들을 죽도록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시야에서 잃어버린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하는 독자를 붙들지 아니하고 우리를 위한 자발적인 제물로 주신, 그분의 타락한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에 그대들의 주의를 끌고자 한다. 그리고 그분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 많이 거저 주시지 않겠는가?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 인류는 소망 없는 비참함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리고 구속의 경륜은 이것보다 앞서 있었다. 그 때, 하나님의 아들은 그분의 왕관을 버리고 아버지의 보좌를 떠나서, 인성으로 옷입으시고 사람의 본성을 스스로 취하시고, 사람들 중에 하나의 인간이 되기로 동의하셨다. 그분은 간고를 많이 겪으며, 질고를 아는 자가 되셔서, 우리의 허물을 인하여 찔림을 받고 우리의 죄악을 인해 상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요한과 함께,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매우 비천하게 되어 낮은 계층에 속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그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분은 타락한 인류를 위해 구속의 계획을 짜신 분 중의 한 분이시다. 우리가 가진 모든 축복들은 이 근원 되신 분,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엄청난 희생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은혜를 나누는 가족들의 모임에 앉을 때, 이 모든 축복들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32 사람이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쫓겨난 것은 죄의 결과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에 개입하셔서 값을 치르셨고, 그분의 공로를 통해 사람은 하나님의 총애를 다시 받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요단강 둑에 머리를 숙이셨을 때, 밝은 빛이 빛나는 금빛 비둘기 같이 그분에게 내려 와,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는 음성이 들렸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읽지만, 그 중요성을 취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우리에 대한 그것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같다. 그것들은 그대가 사랑하는 자 안에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긴 사람의 팔로는타락한 인류를 안으시고, 신의 팔로는 전능하신 분의 보좌를 붙잡으셔서 땅과 하늘, 타락하고 유한한 사람을 무한하신 하나님과 연합시키신다. 그리고 하늘과 분리되었던 이 땅은 다시 하늘과 연합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늘과의 교통이 열렸으며, 타락한 사람은 하나님의 총애를 다시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서 예수께서는 시험의 광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그분에게 에덴 동산의 아담과 하와에게 이르러 왔던 것보다 백배나 큰 시험이 놓여졌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시험을 견디실 것인가?

사단은, 아담이 걸려서 넘어진 똑같은 면에서 식욕의 시험을 가지고 나아 온다. 그리스도께서는 40일을 밤낮으로 주리셨다. 인류는 퇴화되어 왔으며, 점점 더 연약해졌다.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사람이 스스로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을 보셨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 세상에 오셔서 사람이 승리를 얻을 수 있도록 신령한 힘을 주셨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단의 첫 번째 시험이 식욕이었으며, 그는 그분을 정복하려고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아담이 타락한 그 자리를 통과해야 했으며, 그의 치욕적인 타락을 구속하셔야 했다. 그분은 매번 사단을 이 말씀으로 대하셨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사람들이, 이 말씀을 심령에 간직하고 그들의 생활 속에서 실천한다면, 오늘날 우리는 달라진 세상의 형편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기심이 적어질 것이며, 세상에 대한 사랑이 적어지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더 많을 것이다. 그분은 사람에게 달란트를 맡기셔서 그가 진리와 그리스도의 지식을 이 땅의 모든 나라에 전하도록 하셨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았다면, 그들은 결코 타락하지 않았을 것이며, 생명과에 대한 권리를 잃지 않았을 것이다. 33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모든 사람들은 이제 에덴 본향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제 질문은 이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생각을 영원한 관심이 있는 일에 고정되며 하나님과 조화되어 일할 것인가? 구원의 잔을 받는데 있어서 우리 편에 어떤 겸손이 있는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살아나신 구주를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겸손이 아니다. 우리는, 그 희생을 생각하며, 사람을 위해 잡을 수 있도록 하늘에서 내려 온 유일한 줄을 잡고 있는가? 우리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에게 놓여질 수 있는 가장 큰 높임이다. 우리는 모두 하늘을 원한다. 그대는 하늘을 잃을 수 없다. 그대는 천국의 문이 그대에게 닫히도록 할 수 없다. 그대는 하늘, 영원한 생명을 원한다.

그렇다면, 그것을 얻기 위해 그대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대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순종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주제를 사용하도록 주신 유일한 도덕적 표준이며 규율이다. 그분은 규율과 법령을 가지고 계시며, 사람들은 이것을 순종해야 한다. 아담과 하와는 이것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낙원을 잃었다.

그분은 말씀하신다. “그 계명을 행하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영어 성경)”(계 22:14). 그러므로 거기에는 얻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생명 나무에 나아가는 권리다. 생명 나무에 나아가는 이 권리는 아담과 하와가 그들의 범죄 이후에 동참하기를 거부당했던 그것이다.

이제, 영원한 유익과 영혼의 구원에 관한 것보다 어떤 것을 입으며, 어떤 집에 살며, 무엇을 먹고 마셔야 할 것인지에 대해 얼마나 많은 연구가 있을 것인가? 이런 것들은 속히 지나갈 것이다.

우리는, 흑암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성경을 펼쳐 보이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능력을 가지고 찾기를 원한다. 거기에는 실망한 사람들에게 행복과 소망과 평안이 있다. 우리는 이 땅의 평범한 것들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을 주고 전념할 수는 없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우리 앞에 주어진 약속을 붙잡는 믿음을 원한다.

우리가 우리 영혼을 잃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우리는 결코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한 영혼은 이 땅에서 쌓은 모든 금은보다 더 가치가 있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음으로 멸망당할 세계를 생각해 보라. 영원한 것들은 그들에게 별 매력이 없는 것같다. 그들에게 매력이 있는 것은 이 땅의 사물이다.

그러나 그대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지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대가 그것을 만들었는가? 아니다. 그것은 하늘의 하나님께로부터 오며, 그분은 다시 그대에게서 그것을 요구하실 것이다. 그대는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주신 이성의 선물로 무엇을 했는가? 그대는 성경을 연구했으며, 주님께 그대의 영혼을 맡겼는가? 34 우리는 하나님께서 받아 주실 정도로 섬기기 위해 이 집을 어떻게 지켜야 할 것인가를 이해하기 원한다.

우리는 갈바리를 기억한다. 우리는, 사람에게 영광스러운 승리를 주시기 위해 광야에서 시험을 견디고, 전쟁터에서 실신과 창백함과 배고픔을 견디신 분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성과 건강을 희생하여 식욕에 방종 하는 시험에 빠질 때, 우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책임 하에 그리고 자신을 위하여 승리자가 되도록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사단을 정복하셨는지를 기억한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마음에 두기를 원한다.

그대들은 아무도 누가 속히 병상과 죽음의 침상에 눕게 될지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대들이 준비되어 있는지를 알고 싶다. 우리는 그대들이 모든 죄악의 점과 흠으로부터 자신과 영과 몸을 깨끗이 하기를 애쓰고 있는지를 알고 싶다. 우리는 그대들이 불멸의 충만한 소망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다.

나는 예수님 안에서 비할 데 없는 아름다움을 본다. 나는 내가 질 수 없는 어떤 시련도 말하지 않으며, 내가 할 수 없는 어떤 자아 희생도 말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위해 돌아가신 분을 본다. 그리고 그분은 나를 위해 헛되이 돌아가지 않으셨다. 나는 내 자신을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놓을 것이며, 위로부터 오는 바른 지지를 가질 것이다. 나는 세상이 내게 말하는 것을 연구하지 않으며, 내 연구는 주님, 제가 어떻게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까? 하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이 세상에서 나의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가? 나는 내 주변의 귀한 영혼들을 어떻게 구원할 수 있을까?

여기에 이런 말씀이 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나는 영원한 영광의 가치를 원하며, 고통을 당하시고 갈바리에서 수치스런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을 보기를 원한다. 나는 그분의 발에 면류관을 내려놓고 황금하프로 온 하늘에 아름다운 음악을 가득 채우고 싶다.

우리가 최후의 승리자라면, 우리에게는 싸워야 할 전쟁이 있으며, 영과 육이 싸우며, 육과 영이 다투는 것을 볼 것이다. 승리를 외치게 될 것은 우리다. 우리의 정욕적인 마음은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순종하기를 거절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켰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의 모본이시다. 시련이 올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강한 돕는 분에게 달려가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홀로 이 전투를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그분은 이 암흑의 세상에 흑암의 왕과 싸우기 위해 오셨으며, 그분이 “다 이루었다”고 하셨을 때 하늘에는 기쁨이 있었다. “그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린아이가 이 땅의 부모에게 오듯이 그리스도께 가라.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들어주실 것을 믿으라. 그분은 말씀하신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35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는 산 믿음을 키우기를 원한다. 우리는 우리의 눈을 이 땅의 아름다움으로부터 돌이켜 하늘과 하늘의 사물에 중심을 기울이기를 바란다. 우리는 이 세상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끼여 들기를 원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으로 향한 눈을 원한다. 우리는 하늘과 그것의 축복을 말하며 그것을 잃는 것은 큰 상실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그렇게 아름답고 원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이 땅에 가져오자. 그것을 그대의 가족에게로 가져 와서 그대의 자녀들을 이 땅을 위해 살지 말고 미래에 영생을 위해 살도록 가르치라. 그대는 그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들의 경험에 예수님이 짜여지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그들의 악한 욕구를 예수님께서 극복하도록 도우시는 것을 가르치라.

나는 가르쳐야 할 자녀들이 있으며, 나는 그들이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얼마나 힘들게 투쟁해야 하는지를 안다. 나는 때로 사단이 그들에게 악을 행하도록 시험할 때 그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안다. 우리는 우리의 매일의 생애에 실재적이고 살아 계신 예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한다. 그때에 우리는 자녀들을 가르치고 훈련할 수 있으며, 평안이 우리 가정에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나는 아브라함이 자기 권속들에게 명했으며, 자녀들로 하여금 자기를 따르도록 한 것을 안다.

아브라함과 같이 자녀들에게 명하고 권속들에게 그들을 따르라고 하는 것이 이 세대의 부모들에게 하기를 원하는 사업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나는 그가 그의 자녀들과 권속들에게 주님의 길을 지키기 위해 그를 따르도록 명령할 것을 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계명을 가지신 것을 알았으며, 그는 그것을 지킬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법을 가지고 계신 것을 알았으며, 그는 그것을 순종할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그것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며, 자녀들이 그렇게 하도록 허용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끄럽게 여기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예수님께 수치를 돌리는 많은 방법이 있다. 자아에 대한 사랑, 세상에 대한 사랑, 우리가 먹는 것, 우리가 마시는 것, 우리가 어떤 수단으로 옷입을 것인가 등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신뢰하기만 하면 우리를 위해 마련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대가 예수님 안에 기다리도록 자신을 교육시키기만 하면 이 모든 것들은 지나 갈 것이며, 그대는 주위의 모든 이들에게 빛을 반사할 수 있다.

이제, 이런 것들을 말하고 그것들 위에 거하는 대신에, 그대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의 낙원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성도들에게 주어진 부와 영광으로 향하게 하자. 이것이 우리의 집이 된다면, 왜 우리는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는가? 만일 그대가 하늘 찬양대에 가담할 것이며, 하늘에서 하나님의 찬양을 노래 할 것이라면, 그것을 여기에서 왜 노래하기를 배우지 않는가? 그대가 그것을 여기에서 배우지 않는다면 그대는 결코 거기에서 그것을 부르지 못할 것이다. 그대는 하나님께 얼마나 많이 찬양하고 있는가?

그대는 왜, 영생에 대한 우리의 소망이 집중되어 있고, 우리에 대한 큰사랑을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신 것으로 나타내신 예수님을 말하는 것을 자신에게 가르치지 않는가?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다.

36 그대는 세상이 예수님을 어떻게 취급했는지 안다. 세상은 예수님을 취급한 것보다 더 낫게 그대를 취급하는가? 그대가 생애를 예수님께 확정하면, 그대는 세상에 빛을 전하는 자의 특권을 갖게 된다. 왜 그런가? 그대는 그분을 품성 안에서 대표할 것이며, 그대는 “그분을 보라”고 말할 것이다. 교훈과 모본으로 그대는 그리스도를 대표한다. 그리고 그분은 그대를 그분의 형제로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나는 이 세상에서 남녀들이 내게 줄 수 있는 칭찬보다 하나님의 인정하심을 더 감사한다.

나는 예수님을 사랑한다. 나는 그분 안에서 비할 데 없는 아름다움을 본다. 나는 그대 앞에 갈바리의 사람을 높이 든다. 나는 그대가 그분과 친숙해지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대가 매일의 생애에 그분을 모신다면, 여기에서의 작은 문젯거리들은 시야에서 잃어버릴 것이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 안에는 쉼이 있다. 그리고 만일 그대가 불평하고 걱정하는 영혼들을 본다면, 그 이유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분의 주름살과 여분의 매질은 그들이 예수님을 모시는 것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그분은 말씀하신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그대는 그대의 눈을 하나님께만 고정시킨다면,-시간의 반은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나머지 반은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이 낮은 곳에서 작은 하늘을 가질 수 있다. 그대가 하나님을 위하여 산다면, 그분은 영원한 그분의 팔을 그대 밑으로 펼치셔서 말씀하실 것이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

그대는 이것을 믿는가? 나는 이것이 사실이라고 증거할 수 있다. 내 과거의 경험으로 나는 작은 하나의 시련도, 작은 하나의 슬픔도 없을 것이라고 증거할 수 있다. 왜냐하면 바울이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 4:17, 18). 우리는 영원한 유익이 되는 것을 보기를 원하며, 우리의 합리적인 능력으로 만든 것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할 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공중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들려질 때 가지고 갈 수 없는 쓸모 없는 것과 그것들을 강화하기 위해 애쓰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배워야만 된다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교훈-심령의 온유함과 겸손함을 배우기 원한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도성에 풍성하게 들어감을 원하며, 하나님의 생명과 같은 생명을 갖기를 원한다. 만일 우리가 그분의 뜻을 행한다면 우리 앞에 하나님께서 쌓아 놓으신 것과 비교할 때 모든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마지막 날에는 두 무리만 있을 것이다. 하나는 오른편에 다른 하나는 왼편에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한 편에게 말씀하신다. 37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 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 25:34-36).

그리고 그들이 묻는다. 주여, 우리가 언제 이 일을 했으며 어떻게 봉사했습니까? 그 때에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다. “너희가 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40절). 그러나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41절).

첫 번째 부류는 그리스도를 자신들이 품성에 짜 넣었으며, 자기들이 한 것에 대해 알지 못했다.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 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는 것은 축복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인간들과 자신의 관심을 함께 나누시는 것을 본다. 그분은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돌이켜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리고 그들이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라고 물었다. 그 때에 이런 대답이 온다.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큰 자가 아니라 지극히 작은 자에게 이다.

우리는 매일의 생애에 그리스도를 모시기 원한다. 배고픈 자를 먹이지 않고 벗은 자를 입히지 않고 병든 자를 찾지 않은 자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그들이 자아 방종의 학교에서 자신을 교육하고 훈련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들이 자신의 능력을 하나님께 바쳤다면 소유할 수 있었던 하늘과 영원의 축복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분은 그대에게 능력을 주셨는가? 그것을 그분에게 드려라. 그대의 모든 몸과 정신은 하나님께 속했다. 그것을 그분에게 드려라. 먹고 마시고 옷입는 데 있어서 이 세상의 쾌락에 그대의 온 시간을 바치는 대신에, 그것을 하나님께 드려라.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주신 빛을, 하나님께 영혼을 데리고 오는 데에 사용하라. 다니엘이 말한 것을 기억하라.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오, 그대는 그것이 목회자들에게 속한 것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실례를 무릅써야 하겠다. 그것은, 그들이 얼마나 연약하든지 모든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속한 것이다. 그대는 그대에게 주어진 빛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대는 세상에 그분을 대표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그대의 생애에 모셔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더 많은 예수님이며 더 적은 자아이다.

38 잠시 후에 우리는 그분의 아름다움 가운데 왕을 볼 것이다. 사업은 끝나고 우리는 이 말씀을 듣게 될 것이다. “자녀들아 좀 더 높이 올라 오라. 도성 안으로 들어가서 생명과로 나가는 권리를 얻으라. 그리고 비할 데 없는 예수님의 아름다움을 보라.” 그대는 거기에 있을 것인가? 영광의 면류관이 그대의 이마에 씌워질 것인가? 의의 흰옷이 그대에게 입혀질 것인가? 우리는 생명과를 먹을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거기에 있도록 하실 것이다. 그대는 이것을 잃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오늘밤 여기에 있는 여러분을 축복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영혼 안에 들어오셔서 여기 여러분의 주위에 비취신다. 그리고 그분이 빛 안에 계신 것처럼 여러분도 빛 안에서 행하기를 바란다. ­1886년 원고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