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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장-교인이 되는 의무*

83장 - 교인이 되는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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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3 사랑하는 형제들에게:신체의 모든 다른 지체들이 연합하여 온몸을 이루고 각 지체가 온몸을 주관하는 머리에 순종하여 각자의 직책을 수행하듯이, 그리스도 교회의 교인들은 하나의 균형진 몸 안에 연합하여, 온몸이 성화된 머리에 복종해야 한다.

교회의 발전은 그 교인들의 그릇된 행동 때문에 지연된다. 교회와 연합하는 것이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기는 하나, 그것이 한 개인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거나 구원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에게서 분리되어 있으면, 우리의 이름이 교회의 녹명책에 올라 있을지라도 우리는 하늘에 들어갈 자격을 얻을 수가 없다. 우리는 그분과 하나가 되어 일하면서 세상에서 그분의 충실한 대표자가 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요일 3:2). 우리는 늘 이 거룩한 관계를 마음 속에 기억하고, 하늘 아버지의 사업에 불명예를 초래할 일은 전혀 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의 신앙 고백은 매우 고상한 것이다. 안식일을 준수하는 재림신도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준행하며 구속주의 오심을 기다리노라고 공언한다. 하나님께 성실한 소수의 사람들에게 가장 엄숙한 경고의 기별이 위탁되어 왔다. 우리는 말과 행동으로, 우리에게 놓여진 그 큰 의무를 인정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어야 한다. 우리의 빛을 아주 분명하게 비춤으로 우리가 매일의 생애에서 하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한다는 것과, 우리가 하늘과 연결되어 있고 예수 그리스도와 유업을 같이 나눌 상속자이며, 그분께서 능력과 큰 영광으로 나타나실 때 우리가 그와 같을 것임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눈에 보이는 교회의 교인으로서, 그리고 주님의 포도원의 일꾼으로서의 개인적 책임을 느껴야 한다. 444 우리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연약한 형제들이 우리를 도와 주도록 고대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귀하신 구주께서 우리 자신을 그분에게 연합시키고, 우리의 약점을 그분의 능력과, 우리의 무지를 그분의 지혜와, 우리의 무가치함을 그분의 공로와 연합시키도록 초청하셨기 때문이다. 우리 중 아무도 중립적 위치에 설 수는 없다. 우리의 영향은 주님을 위하거나 반대하는 것 중 어느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한 활동적인 매체가 아니면 원수의 활동적인 매개체가 된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모으거나 흩어 버리는 자가 된다. 진정한 개심은 근본적인 변화이다. 마음의 흐름과 정서의 경향 자체가 바뀌어야 하며, 생애는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새롭게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한 백성을 인도하심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진리의 토대 위에 완전히 연합하여 서도록 한 백성을 인도하고 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딛 2:14)시려고 당신 자신을 세상에 주셨다. 이 정결케 하는 과정은 교회를 모든 불의와 부조화와 다툼의 정신에서 깨끗하게 하고, 헐어 버리는 대신에 세우게 하고, 그들 앞에 놓인 큰 사업에 그들의 정력을 집중시키기 위하여 계획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모두 믿음으로 연합하도록 계획하신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그리스도께서 드리신 기도는, 당신이 하늘 아버지와 하나가 된 것처럼 제자들이 하나가 되어, 세상이 하늘 아버지께서 당신을 보내신 것을 믿게 해주옵소서 하는 것이었다. 이 가장 감동적이고 놀라운 기도는 각 시대를 거쳐서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이르러 왔다. 그분께서는,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로 위함이”(요 17:20)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은 그들의 생애를 통하여 이 기도에 부응하고자 얼마나 열렬하게 애써야 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교회와 맺은 관계의 신성함을 깨닫지 못하고 교회의 제재나 징계에 순종하기를 매우 싫어한다. 그들이 취하는 행동은 그들이 연합된 교회의 판단보다 그들 자신의 판단을 더 높이고, 교회의 음성에 반대하는 정신을 고무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키는 일에 주의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445 교회에서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자들도 다른 사람들과 공통된 결점을 가질 수 있고,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는 경솔하게 취급될 수 없는 권위를 그들에게 주었다. 부활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당신의 교회에 능력을 위탁하셨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요 20:23).

교회와 맺은 관계를 경솔하게 끊어 버려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길이 장애를 받거나 그들의 주장이 생각만큼 지배적인 영향을 나타내지 못할 때 교회를 떠나겠다고 위협한다. 사실상, 교회를 떠남으로 그들 스스로가 가장 큰 손해를 입게 된다. 왜냐하면, 교회의 영향이 미치는 경계를 넘어감으로 그들은 스스로를 세상의 유혹에 완전히 내놓게 되기 때문이다.

전심 전력하는 지지자들

각 신자는 교회와 연합하는 일에 전심 전력해야 한다. 교회의 번영이 그의 첫번째 관심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와 자신과의 관계에서 자신보다 교회에 더 유익되게 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그가 없을 때 훨씬 더 좋아질 것이다. 모든 사람의 힘으로 하나님의 사업을 위한 어떤 일이 이루어진다. 많은 돈을 쓸데없는 사치에 낭비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식욕은 만족시키면서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재물을 드리는 것은 큰 부담으로 여긴다. 그들은 교회가 부여하는 모든 특권의 유익은 기꺼이 받으려 하면서도, 그 비용은 다른 사람들이 지불하도록 놔두기를 좋아한다.

사업의 발전에 참으로 깊은 관심을 느끼는 자들은 언제 어디서 그 사업에 자금이 필요하든지 간에 그 사업에 자금을 투자하는데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또한 서로 화평하고, 분열되지 않은 연합체로서 완전한 조화를 이루어 움직임으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그들의 품성에 드러내는 일을 엄숙한 의무로 생각해야 한다. 그들은 그들의 개인적 판단을 몸체인 교회의 판단에 양보하여야 한다. 446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만을 위하여 산다. 그들은 스스로 홈이 없다고 자부하면서 대단히 만족스럽게 자신의 생애를 바라보지만, 사실상 그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분의 명백한 말씀에 노골적으로 반대되는 생애를 하고 있다. 외형적 준수는 인간의 영혼의 절실한 필요를 결코 충족시켜 줄 수 없다. 그리스도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것만으로는 사람을 시험하는 심판의 날에 서게 하는데 충분하지 못하다. 하나님을 믿는 완전한 신뢰, 어린아이처럼 그분의 약속을 믿는 의존, 그리고 그분의 뜻에 완전히 헌신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백성이 확고하고 진실한지 시험하고 모든 불의에서 그들을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당신의 백성을 고난의 풀무 가운데서 연단하셨다.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이 더 이상 받을 수 없는 가장 심한 시험을 견딘 후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천사를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이 믿음의 위대한 행동이 아브라함의 품성을 눈부신 광채로 빛나게 한다. 그것은 주님을 믿는 그의 완전한 확신, 곧 어떤 것이라도, 비록 약속의 아들이라도 그분께 아끼지 않고 드릴 수 있는 확신을 강력하게 예시해 준다.

예수님께 바치기에 너무 아까운 것은 없다. 우리가 그분께서 우리에게 지키도록 맡겨 주신 재물의 달란트를 그분께 돌려드리면, 그분께서는 더 많은 것을 우리의 손에 넣어 주실 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한 우리의 활동은 모두 그분에 의하여 보상을 받게 될 것이고, 그분의 이름으로 우리가 완수한 의무마다 우리의 행복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게 하시고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심히 사랑하시는 아들을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도록 내어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 아버지와 연합되셨지만, 인간을 구원하고 그들을 서로 연합시키기 위하여 그처럼 큰 희생을 치르셨다. 그렇다면, 그 연합을 보존하기 위하여 그분을 따르는 자들이 치르는 어떤 희생을 지나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연합된 교회의 증거

세상이 하나님의 교회 안에 완전한 조화가 있음을 보게 되면,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위한 강력한 증거가 될 것이다. 447 불화, 좋지 못한 의견 차이, 교회의 사소한 문제 등은 우리의 구속주께 욕을 돌리게 된다. 이 모든 일들은 자아가 하나님께 굴복되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교회의 음성에 순종하면 피할 수 있는 것들이다. 불신은, 개인적 자립이 우리의 가치를 증진시키고, 옳고 적당한 것에 대한 우리 자신의 견해를 교회의 결정에 양보하는 것은 연약한 행동이라고 시사한다. 그러나, 그러한 감정과 견해를 갖는 것은 안전하지 못하며, 우리를 무정부 상태와 혼란에 빠지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연합과 그리스도인 우정이 하나님의 사업에 필요함을 아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그것을 명하셨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오직 연합에만 힘이 있음을 결론적으로 입증한다. 개인적 판단은 교회의 권위에 굴복되어야 한다.

사도들은 엄격한 연합의 필요를 느끼고, 이 목적을 위하여 열렬하게 일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로 형제들을 권면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0).

그는 또한 빌립보의 형제들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1-5).

로마의 형제들에게 그는 편지하였다.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마음과 한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롬 15:5-7). 448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롬 12:16).

베드로는 널리 흩어진 교회들에 편지하였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3:8, 9).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바울은 말한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 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고후 13:11).

할 수 있는 대로, 그대는 형제 자매들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대는 자신을 하나님께 굴복시키고, 완고한 마음과 흠잡는 기질을 나타내지 말아야 한다. 그대는 그대 자신의 정신을 버리고, 그 대신 사랑스런 구주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손을 위로 뻗어 그분의 손을 잡으라. 그 접촉은 그대에게 전류가 통하게 하여, 그분 자신의 비할 데 없는 품성의 아름다움으로 그대를 충전시켜 줄 것이다. 그대는 그분의 사랑에 그대의 마음을 열고, 그분의 능력이 그대를 변화시키고, 그분의 은혜가 그대의 힘이 되게 할 수 있다. 그러면, 그대는 선을 위한 강력한 영향력이 될 것이다. 그대의 도덕적 힘은 품성에 대한 가장 엄밀한 시험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그대의 성실성은 순결하고 성화될 것이다. 그 때에, 그대의 빛은 아침 빛같이 빛나게 될 것이다.―1876, vol.4, P.63.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우리의 개성을 버리도록 요구하지 않고, 다만 우리 자신을 어느 정도 다른 사람의 감정과 방법에 적응시키도록 요구한다. 현세의 사물에 있어서 의견, 습관, 취미 등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 신앙의 통일체 안에 함께 모일 수 있다. 449 그러나, 그들이 불타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마음 속에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동일한 하늘을 그들의 영원한 집으로 바라보고 있다면, 그들은 가장 아름답고 현명한 친교를 나누게 되고 가장 훌륭한 연합을 이루게 될 것이다. 모든 면에서 동일한 경험을 가진 두 사람이 존재하는 일은 거의 없다. 어떤 한 사람의 시련이 다른 사람에게는 시련이 되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우리들의 마음은 언제나 친절한 동정을 베풀고자 열려 있어야 하며, 예수님께서 당신의 형제들에게 가지셨던 그 사랑으로 불타올라야 한다.―1876, vol.4, pP.65, 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