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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장-의복에 있어서의 단순성*

109장 - 의복에 있어서의 단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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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2 산상 설교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세상 사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고 훈계하신다. 그분은 명백하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마 6:24, 25, 28, 29).

이것은 의미 심장한 말씀이다. 이것은 그리스도 당시에도 적용되었고 우리 시대에도 적용된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들의 꽃들이 가지는 자연적인 단순함과 의복의 인공적인 장식을 비교하고 계신다. 그분은 솔로몬의 영광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지닌 꽃들 중의 하나와 비교될 수 없다고 선언하신다. 여기에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것을 행하기를 원하는 모든 자들을 위한 교훈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의복에 쏟는 염려와 애착을 아시고, 그것에 너무 마음을 쓰지 말도록 우리에게 주의를 주신다. 아니, 명령하신다고 하는 편이 옳다. 그분의 말씀에 유의하는 것은 중요하다. 솔로몬은 외적인 과시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지혜의 하나님과 계속 교제하는 일을 통해 그의 마음을 고상하게 하는데 실패했다. 외적인 아름다움을 얻으려고 하다 보니, 품성의 완전함과 아름다움을 무시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세상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영화롭게 하고자 꾀하는 중에 그의 품성의 영예와 고결함을 매도하였으며, 마침내 백성들에게서 가혹한 세금을 거두어 자신의 사치를 유지하는 폭군이 되었다. 그는 먼저 마음이 부패하기 시작하여 곧 하나님을 떠나 배교하였으며, 끝내는 우상 숭배자가 되었다.

우리 자매들이 의복을 입는 일에 있어서 단순성을 무시하고 세상의 유행을 좇는 것을 볼 때 염려스럽다. 593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감으로써,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떠나고 내적 단장을 소홀히 하고 있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그들의 의복을 불필요하게 장식하는데 마음대로 사용해도 좋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시간에 성경을 살펴서 예언과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교훈을 완전히 알게 되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자매들이 깨끗하고 간편한 옷을 입고 주님의 사업에 열심히 종사하는 것을 보실 때에 기뻐하신다. 그들은 능력에 있어서 부족하지 않으므로, 만일 이미 가지고 있는 재능을 올바로 사용한다면 그들의 유용성은 크게 증가할 것이다. 만일, 지금 쓸데없는 일에 허비되는 그들의 시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살피는 일과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설명하는 일에 전적으로 사용된다면, 그들의 마음은 진리의 보석으로 부요하게 될 것이고, 그들 자신은 우리가 가진 믿음의 이유를 이해하고자 기울인 그들의 노력으로 인해 강해지고 고상하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의 자매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전할 기회를 찾는, 성경을 사랑하는 양심적인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우리는 그들의 자아 희생적인 노력만으로도 많은 영혼들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자매들이여, 모든 사람들의 기록이 저울질 당할 때에, 그대들은 스스로의 생애를 돌이켜 보며 기쁨을 느낄 것 같은가. 아니면, 영혼의 내적 아름다움을 거의 무시한 채 인간의 외적 아름다움만 추구해 왔음을 깨닫게 될 것 같은가?

우리의 자매들은 구실을 달지 아니하고 자신들을 성경의 강단 위에 세울 만큼 충분한 열성과 도덕적인 용기를 소유해 왔는가? 사도는 이 점에 대해 매우 명백한 지시를 내리고 있다.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딤전 2:9, 10). 여기서,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도를 통하여, 금으로 치장하는 것을 명백하게 반대하는 말씀을 주신다. 금으로 치장해 본 사람들로 하여금, 남들이 그들의 이러한 점을 본받아 타락의 길을 걷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하게 하라. 594 그대의 손가락을 두르고 있는 반지는 비록 매우 소박한 것일지는 모르나 쓸데없는 것이며, 그것을 끼는 것은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

특별히 목회자들의 부인은 의복 문제에 있어서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교훈을 너무 오래 된 것이라서 주목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교훈을 제자들에게 주신 그분께서는 우리 시대에도 의복을 사랑함으로 말미암는 위험이 있음을 아시고, 우리에게 경고의 기별을 주신다. 우리는 이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는 현명한 자가 되겠는가? 의복의 사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끝은 아직 이르지 않았다. 유행이 끊임없이 바뀌고 있으며, 우리의 자매들은 시간과 비용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유행을 좇는다. 막대한 액수의 돈이, 시여자이신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할 때에도 의복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안식일 준수자들 가운데 세상의 영향에 굴복한 자들은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마지막 날의 위기가 우리에게 다가와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시련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공언하는 자들 앞에 놓여 있다. 그들의 믿음의 진실성이 입증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만, 허영, 쾌락 추구로 세상 사람들과 연합하면서도 여전히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자위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을 하나님에게서 떼어내어 세상의 자녀가 되게 하는 방종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그러한 본을 보여 주신 적이 없으시다. 자기를 부인하고 절제, 겸비, 성결의 생애를 사는 사람들만이 진정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며, 그러한 자들은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과의 교제를 즐길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불신자들에게 감화를 끼친다는 명목으로 세상 사람들처럼 옷을 입으나, 여기에서 그들은 유감 천만의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참된 감화력을 소유하고 있다면, 올바른 행동을 통하여 그들의 믿음을 보여 주고, 그리스도인과 세상 사람들과의 차이를 명백하게 하면서 그들의 공언하는 바를 생활에서 실천해야 할 것이다. 말과 의복과 행동이 하나님을 증거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거룩한 감화가 그들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끼쳐질 것이요, 불신자들까지라도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595 만일, 누구든지 진리를 위해 감화를 끼치길 원한다면, 공언하는 바를 생활에 실천함으로써 겸손의 모본 되시는 분을 본받아야 한다.

자만, 무지, 어리석음은 늘 함께 붙어 다니는 짝들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임을 공언하는 자들 사이에 나타나는 자만을 불쾌히 여기신다. 그들이 이 타락한 세대가 보여 주는 건전치 못하고 음란하며 사치스러운 유행에 영합하기 때문에, 그분은 모욕 당하신다.

유행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유행은 전제적인 여왕 노릇을 하면서, 자주 그의 신봉자들로 하여금 가장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것에 굴복하도록 강요한다. 그것은 까닭 없이 과세하고 에누리 없이 징수한다. 유행은 매혹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또, 가난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라도, 다시 말해 생명까지라도 바치면서 자기를 따르지 않으면 즉시 그들을 비난하고 조롱한다. 사단은 그의 계책이 아주 훌륭하게 들어맞는 것을 보며 의기양양해 하고, 죽음은 유행의 신당에 경배하는 자들의 건강을 해치는 어리석음과 맹목적 열성을 비웃는다.

우리의 자매들이 세상의 유행을 모방하느라고 그들의 거룩한 품성과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의무를 잊는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의 마음이 완고하다는 것 외에 달리 변명이 있을 수 없다. 이러한 노선을 통해서는 우리의 감화를 확대시킬 수 없다. 그 노선은 우리가 공언하는 바와 너무나 모순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가 우습게 보이게 된다.

우리의 자매들이 나타내는 자만과 세상에 대한 사랑 때문에, 진리에 대해 확신을 가졌던 많은 영혼들이 그것에 반대하는 결정을 내리고 있다. 설교된 교리가 분명하고 잘 조화된 듯 보였기 때문에, 청중들은 진리를 받아들이면 무거운 십자가를 져야 할 것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의 자매들이 옷 모양을 지나치게 내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들은 우리와 조금도 다름 없이 옷을 입지 않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공언하는 바를 참으로 믿는 자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결국 그들은 속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께서 곧 오시며 또 그 때 각 영혼의 운명이 영생이나 사망 중의 하나로 결정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현재의 유행을 따라 옷을 입는데 시간과 돈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믿음을 공언하는 우리 자매들이, 의복이 전하는 설교에 대해 너무 모른다!

596 우리의 말과 행동, 그리고 의복은 그리스도와 함께 모으기도 하고 쫓아 버리기도 하는 살아 있는 매일의 설교자들이다. 이것은 농담으로 흘려 버릴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의복 문제는 진지한 사고와 많은 기도를 요한다. 불신자들이라 할지라도 많은 수가 유행의 노예가 되는 것을 잘못이라고 느낀다. 그러나, 경건에 대한 고상한 고백을 하는 이들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옷을 입고 경박한 교제를 즐기는 것을 볼 때, 그들은 그러한 노선을 따르는 자신들이 전혀 잘못되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영감을 받은 사도는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 거리가 되었노라”(고전 4:9)라고 말하였다.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공언하는 자들이 매일 세상에 끼치는 영향을 온 하늘이 주목하고 있다. 나의 자매들이여, 그대들의 의복은 그리스도와 거룩한 진리를 위해 증거하거나 세상을 위해 증거하고 있다. 그대들의 의복은 어느 편을 위한 것인가? 우리 모두는 자신이 끼친 영향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 답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우리는 옷을 입는데 있어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부주의를 조장하지 말아야 한다. 복장을 알맞고 어울리게 하라. 비록 값싼 무명옷이라 할지라도 단정하고 청결하게 유지해야 한다. 만일, 주름 가장자리 장식을 달지 않는다면, 그것을 직접 만드는데 필요한 수고를 아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세탁하고 다리는데 드는 상당한 비용까지 절약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유행에 따라 옷을 입힘으로써 스스로 무거운 짐을 지는 가정들이 있다. 이 무슨 시간의 낭비인가! 어린아이들은 깔끔하고 깨끗한 옷이면 가장자리 주름이나 장식을 달지 않아도 아주 귀엽게 보인다. 이러한 의복을 세탁하고 다리는 일은 매우 손쉬우므로 부담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왜 우리의 자매들이 하나님께 응당 해야 할 봉사를 하지 않고 그분의 사업에 드려야 할 돈을 그분의 금고에서 도둑질하면서까지 이 세대의 유행을 섬겨야 할까? 첫째도 옷, 둘째도 옷만 생각하기 때문에, 시간이 낭비되고 돈이 허비된다. 교양을 쌓는 일이 무시되고 있다. 품성을 옷보다 덜 중요하게 여긴다. 온유하고 안정된 영혼을 장식하는 것은 그 가치가 무한하기 때문에, 경박한 일을 추구하는 중에 영혼을 아름답게 단장할 수 있는 기회를 잃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 중에도 가장 악한 것이다.

597 자매들이여, 우리는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하나님을 위하여 고귀한 일을 할 수 있다.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을 알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여성의 능력이 모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묻는데 집중되도록 하지 않으셨다. 여성들을 위한 보다 고상한 목적, 보다 웅대한 섭리가 있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계발시키고 배양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영혼들을 영원한 멸망으로부터 구원하는 위대한 사업에 그들을 사용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큰 불행은 어린아이들과 청년들에게 악영향이 끼쳐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세상에 나가자마자 유행의 요구 아래 들어가게 된다. 어린 자녀들은 그들의 구원에 대해서보다 옷에 대하여 더 많이 듣는다. 그들은 그들의 어머니가 성경보다 유행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본다. 그 어머니들은 교회보다도 포목점과 부인용 모자를 파는 상점에 더 자주 드나든다. 옷 모양을 내는 것이 품성을 가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된다. 좋은 옷이 더럽혀질 때마다 날카롭게 꾸짖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마음이 계속적인 긴장으로 괴팍하고 신경질적이 된다.

온전하지 못한 품성보다 더럽혀진 의복이 그 어머니의 속을 더 상하게 한다. 어머니가 자신의 구주보다 유행에 더 친숙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덕성보다 의복에 대하여 더 많이 듣는다. 어머니의 모본은 너무나 자주 그 어린 자녀들을 해로운 분위기 속으로 끌고 간다. 유행을 가장한 악이 자녀들 사이로 침입한다.

의복을 단순하게 입는 것은 지각 있는 여성으로 하여금 최상의 모습을 갖추게 할 것이다. 우리는 한 인물의 품성을 그가 입고 있는 의복을 보고 판단한다. 번지르르한 복장은 허영과 약점을 드러낸다. 정숙하고 경건한 여성은 정숙하게 옷을 입을 것이다. 고상한 취미와 교양 있는 마음은 단순하고 적절한 의복을 선택하는데에서 드러난다.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현세에서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증진시키며, 영원한 미래 속에서 흐려지지 않는 광택으로 빛날 장식이 있다. 그것은 온유하고 겸손한 영혼을 단장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에게 가장 좋은 의복을 입히라고 명령하신다. 유행을 섬기는 자들이 거울을 들여다 볼 때마다, 무시당한 영혼을 상기시켜 주어야 할 것이다. 598 그들이 화장을 하며 시간을 낭비할 때마다, 지력을 사용하지 않고 녹슬게 버려 둔 것을 견책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에, 생애의 모든 목적을 고상하게 하는 개혁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외관을 위해 금으로 장식하려고 애쓰는 대신, 정금보다 가치가 있고 홍보석보다 더 귀한 지혜를 얻는 일에 열성적인 노력을 보일 것이다.

유행의 제단에 경배하는 자들은 품성의 위력과 신체의 활력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위대한 목적이 없이 사는 관계로, 결국 아무런 가치 있는 일을 이루지 못한다. 우리는 좋은 옷을 입고 뻐기는 일에 정신이 팔린 여성들을 어디에서나 만난다. 여성다움의 의미가 축소되었다. 그들의 생각은 가련하고 비열한 자아에 집중되어 있다. 유행에 맞춰 옷을 입은 젊은 숙녀가 길에서 몇 명의 신사들 곁을 지나가자, 그들 중의 하나가 그 여성에 대해 몇 가지 물었다. 그러자, “그 여자는 자기 아버지 집에서 예쁜 장식을 만들고 있을 뿐 그 외에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라는 대답이 나왔다.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이들 무용한 장식품이 달리 옷을 만들고 입는 것을 모방하고 이를 좋게 여기는 것은 통탄할 일이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 여성들의 의복에 대하여 귀한 교훈을 주고 있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 자기를 단장하였나니”(벧전 3:3-5). 우리가 촉구하는 것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말씀의 명령에 순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그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인가?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할 것인가, 아니면 세상의 풍습을 따를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아니면 재물을 섬길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것과 정반대로 행하면서도 마음의 평안을 누리고 그분에게 인정받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599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고 권고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금과 진주와 값비싼 장식품으로 치장하는 세상의 풍습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좇고 있다. 너무나 양심적이어서 이러한 것들로 치장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편협하고 미신적이고 심지어 광신적인 자들로 간주된다. 그러나,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지시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지시는 무한한 지혜 그 자체이신 분에 의하여 선포되었기 때문에, 이를 무시하는 자들은 위기와 손실을 무릅쓰고 그렇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금하는 장식품들에 집착하는 자들은 마음에 자만과 허영을 품는다. 그들은 주목을 끌기를 몹시 좋아한다. 그들의 의복은 “나를 보고 칭찬해 주세요”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속성에 선천적으로 내재하는 허영이 방종으로 인해 꾸준히 증가한다. 그러나, 마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만 집중될 때에는 외모에 대한 모든 장식이 사라진다.

사도는 외적인 장식을 온유하고 안정된 영혼과 직접적으로 대조함으로써 후자의 상대적인 가치를 증거한다.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라.” 외적 장식에 대한 사랑과 온유하고 안정된 영혼의 은혜는 판연히 배치된다. 우리가 범사에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기를 추구할 때만 평화와 기쁨이 영혼 속에 있게 될 것이다.

의복에 대한 사랑은 품행을 위태롭게 하며, 정절과 침착함으로 특징 지어지는 그리스도인 여성상과 정반대의 여성을 만든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따른다고 공언하는 자들을 부끄럽게 여기신다. 우리의 어디가 그분을 닮았는가? 우리가 입은 의복의 어디가 성경의 요구에 부합하는가? 나는 백성들의 죄가 나에게 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나팔을 불어 분명하게 알릴 것이다. 수 년 동안, 나는 출판물로 혹은 강단에서 이 문제에 대하여 명백하고 분명하게 증거해 왔다. 나는 하나님의 온전한 권면을 선포하기를 회피하지 않았다. 나는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하지 않으면 안 된다. 600 세속성과 자만이 거의 온 세상을 휩쓸고 있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에게 다른 사람들처럼 행할 수 있는 구실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출 23:2)라고 말씀하셨다.

나의 자매들이여, 더 이상 자신들의 영혼과 하나님을 무시하지 말라. 그대가 뒤로 물러가는 주요 원인이 의복에 대한 사랑이라는 사실이 내게 보여졌다. 이것이 그대로 하여금 중한 책임을 소홀히 하게 한다. 그대는 하나님의 사랑의 불꽃을 거의 그대의 마음 속에 느끼지 못한다. 지체하지 말고, 뒤로 물러가게 하는 그 요인을 제거하라. 이는 그것이 그대 자신의 영혼과 하나님께 죄가 되기 때문이다. 죄의 기만성으로 인해 강퍅하게 되지 말라. 유행은 지성을 훼손시키며, 우리 백성들의 영성을 좀먹는다. 유행을 따르는 일이 우리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안에 널리 퍼지고 있으며, 우리 백성들을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키는 일에 있어서 다른 모든 세력들을 능가하고 있다. 우리 교회의 규율이 매우 불완전하다는 사실이 내게 보여졌다. 하나님의 말씀이 금하고 있는 옷 자랑이 성행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교회의 기강을 바로잡을 충분한 이유가 된다. 만일, 경고와 호소와 간청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계속하여 왜곡된 뜻을 따른다면, 그 마음이 그리스도와 합치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밖에 안 된다. 자아, 오직 자아만이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면서도 이렇게 하는 한 사람이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부터 떠나게 할 것이다.

교인들이 그들의 신앙과 모순되게 옷을 입도록 허용해 왔기 때문에, 우리는 한 백성으로서 무서운 죄를 짓고 있다. 우리는 즉시 일어나서 유행의 유혹에 대항하여 문을 닫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하지 않을 경우, 우리의 교회들은 타락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