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뽑은 기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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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신앙 부흥과 개혁을 위하여 엘렌G.화잇 여사가 호소한 가장 뛰어난 것으로는 “교회의 필요”라는 제목으로 1887년 3월 22일호 리뷰 앤 헤랄드지에 게재되었던 것이다. 이 기사의 내용은 주로 A.G.다니엘스 대총회장이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라는 책을 저술하기 위하여 준비한 재료들 가운데서 수집한 것이다. 1926년과 1937년에 인쇄되어 나온 책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에 보면 이 기사의 내용의 전부가 “부록”에 나타나 있다. 그러나 1941년 이후로 나온 재판 가운데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초판의 “부록”에 포함되었던 내용들이 다소 빠져 있다. 장기간에 걸친 노력과 추적(追跡) 끝에 수집한 이 기사의 전모를 제3장에서 다루게 되었다.

신앙 부흥 직후에 새로운 체험을 맛본 자들의 영혼 속에서 전개될 의의 세력과 악의 세력간에 치열한 영적 투쟁이 따를 것에 대하여 제3장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배틀크릭 대학에서 일어난 놀라운 신앙 부흥과 그 뒤를 이어 여러 달에 걸쳐 일어난 사건들을 배경으로 하여 엘렌G.화잇 여사는 이 중대한 문제를 다루었다. 여기에 나타난 영적 투쟁의 요소들은 교회의 신앙 부흥을 위한 모든 노력 가운데 나타나고 있다.

제3장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엘렌G.화잇 여사 자신이 참여한 여러 번에 걸친 신앙 부흥 집회에서 청중들의 반응을 보인 체험들이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묘사들은 화잇 여사가 복음 교역자들에게 보내는 권면들과 별도로 영혼 구원에 관한 교훈을 어떻게 실천해 나갔는가 하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화잇 여사가 친히 기록한 이런 체험들의 대부분은 문제 표현이 간결한 일기의 형식으로 여사의 일지(日誌)에 나타나 있다. 대중의 호응을 얻기 위하여 여사가 묘사한 유창한 필치는 배틀크릭에서부터 시작하여 유럽과 호주에까지 파급되었으며 그 여파는 또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이 기록의 내용 가운데는 다소 반복된 부분들이 없지 않으나 각기 문제마다 독자에게 진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충분한 내용이 있다. ― 편찬자

121 우리들 가운데 있어야 할 참된 경건의 부흥은 우리의 모든 필요 중에서도 가장 심각하고 가장 긴급한 것이다. 이러한 신앙 부흥을 일으키는 것이 우리의 첫째 사업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의 축복을 받기 위한 열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바 하나님께서 당신의 축복을 우리에게 베풀고 싶지 않으시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축복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세상의 부모들이 저희 자식들에게 좋은 선물을 주고 싶어하는 그 이상으로 당신께 구하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시려고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축복을 허락하시는 약속에 대한 조건들을 성취시키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며 그 조건들이란 죄에 대한 자복, 겸비, 회개 및 열렬한 기도이다. 신앙 부흥은 오직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서 기대할 필요가 있다. 신자들이 하나님의 성령을 받지 못하는 한 저들은 말씀의 설교를 이해할 수 없으며 성령의 권능이 저들의 심령을 감동시킬 때에만 들은 설교가 무익한 것이 되지 않을 것이다. 성령께서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을 따를 때 우리집회에 참석하는 자들은 확고한 분별력을 활용함으로 귀중한 경험을 얻게 될 것이며 가정에 돌아가서 건전한 감화력을 발휘할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122 옛날의 기수(旗手)들 곧 고대의 신앙의 선구자들은 기도로서 하나님과 씨름한다는 것과 성령의 부어 주심을 받는다는 의미가 무엇임을 잘 알았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활동 무대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으며 누가 올라 와서 저들의 뒤를 이을 것인가? 현재 성장하고 있는 세대들의 상태는 어떠한가? 저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진정으로 회개하였는가? 우리는 하늘 성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업에 대하여 각성하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 자신이 일깨기 이전에 교회에 어떤 강력한 능력이 임하기를 기다리고 있는가?혹시 우리들은 교회 전체가 부흥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는가? 그러한 때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교회 안에는 회개하지 않은 자들이 있으며 열렬하고 힘있는 기도에 연합하지 않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개별적으로 사업에 투신하여야 한다. 우리는 더욱 많이 기도하고 말은 더욱 적게 하여야 한다. 죄악은 관영하며 신자들은 참 뜻과 능력이 결여된 경건의 모양만 가지고 만족하는 일이 없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심중을 열심히 살피고 죄들을 버리며 악한 습성들을 고친다면 우리의 영혼은 헛된 일에 마음이 들뜨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불신하게 될 것이며 우리의 능력은 하나님께 있다는 영속적인 의식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는 밖에서 침투해 오는 세력보다도 안에서 공격해 오는 세력을 더욱 두려워해야 한다. 힘과 성공에 대한 장애물은 세상에서 받는 것보다 교회로부터 받는 편이 더욱 크다. 불신자들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 보다도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에게, 저들의 모순이 없는 생애, 경건한 모본 및 활동적인 감화력으로서 저들이 대표하고 있는 사업을 증진시키고 영화롭게 하는 것을 기대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얼마나 자주 진리를 옹호한다고 공언하는 자들이 진리의 발전에 대하여 가장 큰 장애물들임을 스스로 증거하였는가! 불신 사상을 만족시키고 의혹을 나타내며 흑암을 즐기는 것은 악한 천사들이 나타나도록 장려하고 사단의 계획을 성취시킬 길을 여는 것이다.

영혼들의 대적 마귀는 인간의 생각을 읽도록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예리한 관찰자이며 들리는 말들을 주의하여 생각하며 행동들을 주의 깊게 보고 그의 권세에 자신들을 맡기는 자들의 경우에 알맞는 시험거리들을 능숙하게 응용한다. 123 만일 우리가 죄악적인 사상과 감정을 억제하고 그것을 말과 행동으로 나타내지 않는다면 사단은 경우에 알맞는 그럴듯한 시험 거리들을 준비할 수 없으므로 패배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자제력의 결핍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자주 영혼들의 원수에게 문호를 개방하는가! 그릇된 감정을 지배하기 위한 노력이 거의 없고 사단에게 이용 거리가 될 모든 말을 억제하는 노력이 없으므로 세상 사람들도 부끄럽게 여길 분열과 알력이 보편적으로 교회 안에 존재하고 있다. 이간질하는 감정이 싹트자마자 사단의 검열을 받기 위하여 문제들은 사단의 앞에 나열되고 교회를 분열시키며 파괴시키기 위한 그의 뱀과 같은 지혜와 재능을 활용할 기회를 사단에게 주게 된다. 모든 알력이 생길 때마다 손실이 크다. 갈라진 두 파의 개인적 친구들은 저마다 두둔하는 정신을 가지고 편을 들며 결과적으로 사이가 멀어진다. 내분이 일어난 집안이 제대로 설 리가 없다. 비난과 그것에 대한 공박은 사태를 위태롭게 하며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사단과 그의 천사들은 그처럼 뿌린 씨의 수확을 거두기 위하여 맹렬히 활동한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광경을 바라보며 조롱하면서 “자, 이 교인들이 서로 미워하는 꼴을 보라! 이런 것이 신앙이라면 우리들은 아예 원치 않는다”라고 소리지른다. 그러면서 저들은 자신을 바라보고 만족한 기분으로 저들의 경건치 못한 품성을 대견스럽게 여기게 된다. 이리하여 저들은 개전(改悛)의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굳어지게 되고 사단은 자신의 성공으로 기뻐 날뛰게 된다.

대 기만자는 시련에 버틸 힘이 없고 끊임없는 기도와 산 믿음으로 경계하지 않은 모든 영혼들을 위한 자신의 간계를 놓고 있다. 우리는 목사들과 그리스도인으로서 거치는 돌을 길에서 제거하기 위해서 노력하여야 한다. 우리는 모든 장애물을 치워버려야 한다. 우리는 죄를 자복하고 모든 죄를 버림으로 주님의 길을 예비하여야 하며 주님께서 우리 집회에 참석하셔서 당신의 풍성하신 은혜를 나누어 주실 수 있게 하자. 이 세상과 육신과 마귀는 정복해야만 한다.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세상과 짝함으로 그 길을 예비할 수 없으며 다만 당신의 도움을 힘입어 우리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을 묶어 놓은 매혹적인 세상의 감화력을 끊어 버릴 수 있다. 우리는 개인에 있어서나 단체에 있어서 잔인하고 단호한 원수의 끊임없는 유혹에서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없으며 다만 예수님의 능력을 힘입음으로써만 시험을 이겨낼 수 있다.

124 모든 교회 신자들이 세상 사람들 앞에 끊임없는 빛을 비추게 하여 “이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은 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세상 사람들로부터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세상을 본받는 길에서 완전히 돌아서는 것과 모든 악의 모양을 버리는 일은 가능한 일일 뿐만 아니라 반드시 실천에 옮김으로 반대하는 자들에게 조롱할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비난을 받게 될지라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비난이 되어야 하며 우리 자신의 죄나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받는 비난이 되지 않도록 매우 조심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앞길의 모든 장애물을 제거해 버림으로 주님께서 시들어가는 교회와 뉘우침이 없는 신자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실 수 있도록 하는 것 만큼 사단이 두려워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단이 자기의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세상 끝날까지 작거나 크거나 간에 또 한 번의 큰 각성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단의 계책을 모르는 자들이 아니다. 사단의 세력을 물리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의 영을 위한 길이 예비 될 때에 축복이 임할 것이다. 사단이 하늘의 창문을 닫아 비가 땅에 내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그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내리는 축복의 소나기를 내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한 일이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그러진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으로 저희 죄를 자복하고 버리며 믿음으로 주님의 허락들을 주장한다면 악한 사람들과 마귀들은 하나님의 사업을 방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당신의 백성들이 모인 자리에 주님께서 임재하시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공개적으로나 은밀하게 영혼을 위협하는 모든 유혹과 모든 반대하는 세력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는 말씀에 의해 성공적으로 물리칠 수 있다.

우리는 자복과 회개로서 우리의 죄들이 먼저 심판을 받아야 할 대속죄 기간 중에 살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당신의 목사들로부터 무기력하고 열의가 없는 증거를 받지 않으신다. 그러한 증거는 현대 진리의 구실을 할 수 없다. 이 시대를 위한 기별은 하나님의 교회에게 꼴을 먹일 수 있는 때에 알맞는 식물이어야 한다. 125 그러나 사단은 점차적으로 이 기별의 능력을 빼앗아 신자들이 여호와의 날에 설 준비를 하지 못하도록 노력하여 왔다.

1844년에 우리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조사 심판을 시작하셨다. 죽은 의인들의 생애가 하나님 앞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그 일이 끝나면 살아있는 자를 위한 심판이 집행될 것이다. 이 엄숙한 순간이야말로 얼마나 고귀하고 얼마나 중대한가! 우리들 각자의 심판 문제는 하늘 법정에서 미결 상태에 놓여 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육체 가운데 있을 때 행한 행위에 따라서 심판을 받아야 한다. 상징적인 성소 봉사에 있어서 대제사장이 지상 성소의 지성소에서 속죄하는 행사를 거행할 때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저희 영혼을 스스로 괴롭혀야 하며 저희 죄가 대속을 받고 저희 죄들을 도말함 받기 위하여 자복하여야만 하였다. 하물며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에서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탄원하고 계시며 최종적이고도 되풀이할 수 없는 판결을 각자에게 언도하게 되는 이 대속죄 기간에 처한 우리에게 향한 요구가 추호라도 덜할 수 있을까?

이 두렵고 엄숙한 때에 우리의 상태는 어떠한가? 아, 슬프다. 교만, 위선, 속임수, 의복에 대한 애착, 천박한 정신, 오락 및 으뜸이 되고자하는 욕망이 교회 안에서 용납되다니! 이러한 모든 죄들은 정신을 흐리게하여 영원한 사물들을 식별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우리가 현재 이 세계 역사의 어느 단계에 놓여 있는지 분명히 깨닫기 위하여 성경을 열심히 탐구하여야 할 것이 아닌가? 이 때에 우리들을 위하여 성취되고 있는 사업에 관하여, 이 속죄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 우리가 죄인으로서 차지해야 할 위치에 대해서 좀더 밝히 깨달아야 할 것이 아닌가? 만일 우리가 자신의 영혼의 구원에 관하여 진정한 관심이 있다면 우리는 결정적인 변화를 일으켜야만 한다. 우리는 진정한 참회의 정신으로 주님을 찾아야 하며 깊은 회오(悔悟)의 태도로 죄들을 자복하고 죄 없이함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이 이상 더 유혹을 받는 입장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은혜의 시기의 끝을 향해 신속히 다가서고 있다. 우리 각자의 영혼이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설 것인가?”라고 묻게 하라. 언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고 우리의 심판 문제가 최종적으로 결정될는지 우리는 모르고 있다. 과연, 최종 판결이 어떻게 날 것인가! 126 우리가 의인으로 간주될 것인가 아니면 악인의 수에 끼게 될 것인가?

교회는 분발하여 자신의 타락한 상태를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여야 한다. 파수꾼은 깨어 있어야 하며 분명한 나팔 소리를 내야 한다. 우리는 정확한 경고를 선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에게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그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사 58:1)고 명령하신다. 신자들의 관심을 집중시켜야 한다. 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모든 노력이 헛된 것이 될 것이다. 비록 하늘의 천사가 내려와서 저들에게 말할지라도 그의 말들은 마치 죽은 송장의 귀에다 대고 하는 말과 같을 것이다.

교회는 분기하여 활동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영은 교회가 길을 예비하지 않는 한 결코 임하시지 않을 것이다. 마음을 열심히 살피는 일이 먼저 앞서야 한다. 연합하는 정신으로 끊임없이 기도하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허락들을 주장하여야 한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몸에 베옷을 걸칠 것이 아니라 영혼의 깊은 겸비가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자축(自祝)하고 자고(自高)해야 할 아무런 마땅한 근거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 있으신 손 밑에 우리들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그분께서는 참된 탐구자들을 위로하시고 축복하시기 위하여 나타나실 것이다.

우리 앞에 해야 할 사업이 있다. 그 사업에 종사할 것인가? 우리는 신속히 일해야 하며 끈기 있게 전진해야 한다. 우리는 여호와의 큰 날을 위해서 예비하고 있어야만 한다. 우리에게는 낭비할 시간이 없으며 이기적인 목적에 종사할 시간이 없다. 이 세상은 경고의 기별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전하기 위하여 개인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셨으며 모든 사람은 자신이 담당해야 할 분야가 있고 우리들은 자신의 영혼의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서는 이 사업을 등한히 할 수 없다.

아,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성령을 슬프시게 하여 떠나게 할 것인가? 그대들이 주님을 모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복되신 구세주를 문 밖에 세워 둘 것인가? 그대들은 예수께서 그대들에게 지라고 명하신 멍에를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지나친 안락을 추구함으로 영혼들로 진리에 대한 지식이 없이 멸망하도록 버려 둘 것인가? 127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야만 한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벧전 5:8). ― 리뷰 앤 헤랄드, 1887년 3월 22일.

많은 신자들의 심령 가운데 신령한 생명의 호흡이 끊어진 듯이 보인다. 이 사실은 나를 매우 슬프게 한다. 세상과 육체와 마귀에 대하여 공격적인 전쟁을 유지하여 오지 못했다. 우리가 빈사 상태의 그리스도인 정신, 세상에 속한 이기적이며 탐욕적인 정신, 경건치 못한 일에 세상과 짝하고 거짓된 정신에 주파를 건네는 이러한 정신 상태에서 어떻게 기운을 낼 수 있을 것인가?-결코 그럴 수 없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진리의 원칙에 확고부동하여야 하며 처음에 품었던 우리의 신뢰심을 끝까지 붙잡고 나가야 한다. 우리는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롬 12:11)겨야 한다. 우리의 주님은 오직 한 분이신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주님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는 그분에게서 우리의 지혜를 받아야 하며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우리의 성실성을 보존해야 하고 온유한 마음과 참회하는 정신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하며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하여야 한다.

우리 교회들에 설교가 큰 비중을 차지하여 왔다. 신자들은 성령 대신에 단상의 열변을 의존하여 왔다. 저들에게 부여된 신령한 은사들은 무용지물로 여겨졌으며 사용되지 않은 채 점점 그 기능을 미약한 상태로 약화시키고 있다. 목사들이 새로운 개척지로 나가게 되는 경우에 신자들은 뒤에서 교회의 책임들을 짊어져야 하며 저들의 능력은 활용함으로 증가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허약성에 대하여 목사들과 신자들에게 무거운 책임을 추궁하시면서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 3:15-18) 고 말씀하셨다. 128 하나님께서는 신령한 신앙 부흥과 신령한 개혁 사업을 요구하신다. 이 일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미지근한 자들은 점점 더 주님께서 싫어하시게 될 것이며 마침내는 저들을 당신의 자녀로 인정하시지 않게 될 것이다.

신앙 부흥과 개혁 사업은 성령의 조력을 힘입어 이루어져야 한다. 신앙 부흥과 개혁 사업은 별개의 것이다. 신앙 부흥이란 영적 생애를 소생 및 부흥시키는 것이며 정신력과 마음의 힘을 일깨워주고 영적 사망에서 부활하는 것을 의미한다. 개혁 사업은 재조직, 사상과 이론의 변화 및 습관과 제도의 개선을 뜻하는 것이다. 개혁 사업은 성령으로 말미암는 신앙 부흥과 연결되어 있지 않는 한 의의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신앙 부흥과 개혁사업은 각기 맡은 분야를 수행하여야 하며 사업을 수행하는 가운데 이 두 가지를 잘 혼합하여야 한다(1902년 2월 25일, 리뷰 앤 헤랄드).

주님께서 여러 가지 방법과 기구들을 이용하여 당신의 계획들을 수행하실 것을 나타내는 광경을 나에게 보여주셨다. 주님께서 당신의 웅대하시고 거룩한 영혼 구원 사업을 위하여 쓰실 인물들은 가장 고상한 재능을 가졌거나 상당한 교육을 받은 자들만이 아니다. 주님께서는 단순한 매개물들을 사용하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업을 발전시킴에 있어서 별로 유리한 조건들을 가지고 있지 못한 자들을 사용하실 것이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단순한 매개물들을 사용하심으로 재산과 토지를 가진 자들을 진리의 신앙으로 인도하실 것이며 이러한 자들이 주님의 사업을 발전시키는 일에 주님의 조수들이 되도록 감화를 받게 될 것이다(서신 62, 1909년).

129 1893년에 배틀크릭 본부에 있는 우리 기관들 가운데 현저한 신앙부흥 운동이 있었으며 성령께서 역사하신 많은 증거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신앙 부흥을 뒤따라서 많은 축복을 상실하게 된 사건들이 일어났다. 이 유감스러운 사건에 관련된 경험과 권고의 말씀들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가치 있는 교훈이 될 것이다. ― 편찬자 배틀크릭에 하나님의 영이 크게 임하신 이후에 대학교의 상태를 보아, 큰 영적 빛이 비쳐지는 때에는 영적 흑암이 상응(相應)하여 따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사단과 그의 막강한 악의 세력들은 진지를 구축하고 하늘로부터 주시는 것-잠자는 상태의 활동력을 소생시키고 자극하여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것을 나누어주기 위한 결정적인 행동을 하게 하는 은혜의 소나기-을 무력하게 하려고 온갖 힘을 기울여 모든 영혼을 공격하고 있다. 만일 모든 영혼들이 각성하여 나누어주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부여하신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급해 주는 일에 즉시 착수했다면 저들은 더욱 많은 빛을 받았을 것이며 더욱 큰 능력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단 한 사람만을 위하여 빛을 주시는 것은 아니지만 빛을 받은 자가 그 빛을 발산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며 그 감화력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신령한 신앙부흥과 성령의 부어 주심이 있는 모든 시대마다 영적 암흑과 편만한 부패가 뒤따랐다. 130 하나님께서 배틀크릭에 기여하신 기회와 특권과 축복을 감안해 볼 때 교회는 너무나도 바람직한 사업의 발전을 이루지 못하였으며 하나님의 축복은 저들이 하나님께서 성경에 지시한 대로 빛을 활용할 때까지 더욱 많은 빛을 미리 주시지 않으실 것이다. 맑고 뚜렷한 광선으로 비추어야 할 빛이 도덕적인 흑암 속에서 점점 흐려지고 있을 따름이다. 하나님의 진리의 침투적인 능력은 경건과 열성과 이기심이 없는 노력으로 진리의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려는 자들의 인간적인 협력에 달려 있다(원고 45, 1893년).

지난번 총회(1893년) 와 대학에서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았던 일에 관하여 나에게 보내온 글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 글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받은 축복을 감당하지 못할 때에 정신들이 혼돈을 일으키고 하늘에서 빛으로 주신 것을 한갖 흥분의 현상으로 간주해 버리는 경향을 엿볼 수 있었다. 이 문제에 관하여 일반적인 견해가 그릇되었음을 볼 때 나는 마음에 슬픔을 금할 수 없었다.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한낱 광신의 일종으로 판단을 내림으로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시게 하는 일이 없도록 매우 조심하여야 한다. 그러나 만일 배틀크릭이나 그 외의 많은 지방에 있어서 뚜렷하고 틀림이 없는 한계에서 증거되지 않는 한 우리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영의 역사하심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성령의 역사하심의 결과에 대하여 사람들이 혼돈을 일으킨 것을 보고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지난 49년 동안의 경험을 통해서 이런 일들을 많이 보아왔고 하나님께서는 현저한 방법을 통하여 일하시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무도 감히 이것은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게 하라. 성령의 역사하심이야말로 우리들이 믿고 간구하도록 위임을 받았으며 그 까닭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부모가 저희 자식에게 좋은 선물을 주기 원하는 것 이상으로 더욱 기꺼이 성령을 주시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 인간이 부릴 수 있는것이 아니며 성령께서 인간을 부리시고 사용하신다. 나는 하나님께서 학교의 학생들과 교회를 풍성하게 축복하신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131 분명히 큰 빛과 성령의 부어 주심이 있는 기간 후에는 일반적으로 깊은 흑암의 시기가 따르기 마련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인간에게 작용한 성령의 깊은 감동을 무력하게 하기 위하여 원수가 자신의 모든 기만하는 세력을 투입하여 활동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시험 경기나 축구 경기에 뛰어들고 저들이 오락 문제에 열중할 때, 사단은 그 때를 하나님의 성령께서 인간을 꼴짓고 사용하는 모든 감화력을 무력하게 할 좋은 기회로 여기고 개입하였다. 만일 교사들이 저희 자신에게 맡겨진 의무를 감당하고 저희 책임을 인식했다면, 그리고 저들이 하나님 앞에서 도덕적인 독립성을 지키고 진리를 사랑하는 정신으로 성화된 과정을 따라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주신 재능을 사용했다면, 저들은 하늘에 이르게 하는 발전의 사다리 꼭대기에 계속해서 오를 수 있는 신령한 능력과 거룩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저들은 세상의 빛이 되시는 주님께 감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빛 가운데 행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성령의 감화력에 대하여 무익하게 여기고 가볍게 말하며 시간을 낭비하기란 쉬운 문제이다. 빛 가운데 행한다는 뜻은 빛이 지시하는 길을 따라 계속해서 향상하는 것이다. 만일 축복을 받은 자가 받은 축복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부주의하며 깨어 기도하지 않는다면, 또한 그가 십자가를 높이고 그리스도의 멍에를 짊어지지 않는다면, 따라서 그가 오락을 사랑하며 으뜸이 되고자 하는 투쟁으로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소모한다면 하나님을 첫째와 최선과 종국의 목적으로 삼지 않게 될 것이며 사단은 그의 영혼속에 침투해 들어가 자기 멋대로 그의 생애를 주관하려 할 것이다. 사단은 저들이 하는 것보다 더욱 열심히 제구실을 할 수 있으며 영혼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교묘한 책략을 꾸며놓을 것이다. … 배틀크릭에 하나님의 영의 역사하심이 있은 뒤에 일어난 결과들은 광신주의 때문이 아니었으며 축복을 받은 자들이 저들을 흑암에서 건져내어 당신의 놀라우신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주님께 대하여 마땅히 돌려야 할 찬송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환하여졌을 때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임을 알지 못할 것이며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도 모를 것이다. 왜냐하면 저희들 자신에게 부어주신 성령을 그릇되게 적용하고 잘못 해석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에 대하여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존중히 여기지 않는 자를 존중히 여기시지 않으실 것이다. 빛 가운데 사는 자들은 저들이 빛을 받은 후에 빛 가운데서 행하는 경험이 미숙한 영혼들에게 이런 것들을 가르쳐야만 한다. 132 나는 이 문제에 대하여 좀더 충분히 설명할 시간을 갖기 원하나 나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다(서신 58, 1893년).

최근에 나의 마음은 어떤 문제들로 강하게 격려를 받아 왔으며 그 문제들에 관하여 글*을 쓰라는 성령의 강권하심을 받게 되었다. 주님께서 하늘의 창문을 그대에게 자비롭게 여시고 축복을 부어 주셨는가? 아! 이때야말로 증가된 빛를 따라 일하며 그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함으로 교사들과 학생들에게 하나님의 고귀하신 은총을 보존하는 방법을 교육해야 할 때이다. 하늘의 빛을 받은 적이 있는가? 무슨 목적으로 그 빛이 주어졌는가? 빛은 의의 실제적인 활동을 통해서 발해야 한다. 풍성한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더욱 깊고 열렬한 경건심을 나타내 보이며 저들이 하나님의 어린 양의 보혈로 사신 바 되었다는 절실한 느낌을 가지고 주님께서 입혀 주시는 구원의 두루마기를 입는다면 과연 저들이 그리스도를 나타내지 않을 것인가?

운동 경기와 시상과 그리고 권투 장갑을 사용하는 일 등은 사단의 속성을 본받게 하는 사단의 지시를 따라 교육하고 훈련한 것이 아니었는가? 만일 저들이 나에게 보여진 것처럼 슬픈 표정으로 저들을 바라보시는 갈바리의 인자, 곧 예수님을 볼 수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러한 것들은 분명히 그릇된 품성을 기르게 하며 자비롭게 베풀어 주신 거룩한 능력의 작용에 대하여 반작용을 하는 것이다.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사업은 그리스도를 나타내며 빛을 반사하고 도덕적인 표준을 높이는 일이다. 하나님께 헌신한 말과 감화력으로 부주의하고 방종한 자들에게 하나님과 영원한 세계에 대하여 생각하도록 강권하는 일이다. 세상 사람들이 영원에 대한 생각을 저희 계산에서 기꺼이 몰아낼는지는 모르나 실제적인 생애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들이 있는 한 그렇게 쉽사리 영원에 대한 생각을 지워버릴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신자는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께 연결시키는 황금 고리가 되며 흑암에 묻혀 있는 자들에게 빛을 전달해 주는 통로가 된다. 133 신자가 그리스도와 연결된 데서 끊어질 때 사단은 그를 포위하여 말과 정신과 행동으로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도록 유인할 기회를 포착하게 되며, 그같이 하여 그리스도의 품성이 그릇되게 해석되는 것이다. 나의 형제여, 과도한 오락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를 잘못 전할 우려가 있지 않을까? 나는 그대에게 묻고 싶다. 주님께서 배틀크릭을 위하여 당신의 풍성한 은혜를 베푸셨을때 천부의 재능들을 향상시킬 방법을 이 영혼들(학생들)에게 지도할 수 있었던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자들이 그 자리에 있었는가? 학생들은 운동경기나 오락으로 인한 흥분과 선동적인 감정을 느끼기 보다는 모범적이며 유익된 노동을 함으로 천부의 재능을 계발시켜야 한다. 오락이나 운동과 같은 소일 거리는 저들이 불원간 겪게 될 시련의 광경들을 위한 준비를 도와줄 정신과 마음과 태도를 향상시켜 주지 못할 것이다. 신앙 생애에 따르는 피상적인 경건은 풀무불의 시련을 받을 때에 완전히 소멸해 버릴 것이다.

주님께서는, 자기 자신의 모본이 끼치는 감화력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는 교사들을 원하신다. 저들은 더욱 열심히 기도할 필요가 있으며 질서 정연한 생애, 경건한 대화 및 살아 있고 결정적인 기독교 사상에서 빚어진 확신들은 열매 있는 수확을 위하여 심을 진리의 씨와 치료하는 광선으로 오실 의의 태양을 위하여 마음밭을 준비시킨다는 것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 앞에 그대들의 의를 비추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고 말씀하셨다. 교회는 말로 하는 경건이 아닌, 생애와 품성에 미치는 진리의 능력으로 실제로 변화되고 성화된 모습을 나타내 보임으로 세상에 빛을 비추어야 한다.

이 때는 장난이나 놀이의 분위기에서 청소년들을 교육하기에는 너무나도 미구에 닥칠 위기의 징조들로 가득 차 있는 시대이다(서신 46, 1893년).

주님께서는 당신의 성령을 그대들에게 부어 주시기 위하여 은혜를 베푸셨다. 장막집회와 우리의 여러 기관들을 위하여 놀라운 축복을 주셨다. 134 빛과 진리와 권세를 가진 하늘의 사자들이 그대들을 방문하였으며 하나님께서 그대들에게 이처럼 축복하시는 것을 이상한 일로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택하신 백성을 어떤 방법으로 당신께 복종케 하시는가? 그것은 오직 성령의 권능에 의한 것이며 성경을 통하여 성령께서 인간에게 말씀하시며 인간의 마음을 진리로 감동케 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에 보혜사를 반드시 보내 주실 것을 당신의 제자들에게 약속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요 16:7, 8, 13-15) 고 말씀하셨다.

성령의 결핍과 율법과 율법의 영원한 의무에 대한 영성의 부족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하신 이 약속의 말씀을 깊이 깨닫지 못하였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노라고 공언한 자들은 저들과 하나님 사이에 있는 관계를 밝히 깨닫지 못하였으며 다만 그 의미의 윤곽을 흐릿하게 이해할 뿐이다. 저들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당신의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막연하게 깨달을 뿐이다. 저들은 거룩한 율법의 주장이 얼마나 고상한 수준에 미치고 있다는 것과 율법의 교훈들을 얼마나 밀접하게 실생활에 적용해야 될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저들은 기도와 회개와 그리스도의 말씀을 실행에 옮긴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이며 얼마나 긴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헌신의 특징을 인간에게 나타내 보여 주시는 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직무이다.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영혼이 깨우침을 받고 품성이 새롭게되며 성화되고 고상하게 된다.

나는 성령의 깊으신 운행을 통하여 성령께서 방문하시는 사업의 특성에 대하여 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135 또한 나는 성령의 방문을 받은 영혼들이 당면하게 될 위험과 그 이후에 저들이 받아야 할 원수의 맹렬한 공격에 대하여 한 광경을 보게 되었는데 그 원수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무력하게 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기울일 것이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전파되고 증거하게 된 진리가 하늘의 빛을 받은 자들의 생애를 순결하지 못하게 하고 성화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저들 안에서 영광을 받으실 수 없도록 만들려고 노력할 것이다.

만일 빛을 신성하게 보존하지 않고 사람들이 그 빛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면 큰 영적 빛을 비추어야 할 기간은 영적 암흑의 기간으로 전환될 것이다. 사람들이 거룩한 감동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룩한 터를 차지하지 않을 때에 하나님의 영께서 주신 감동은 인간의 정신에서 그 자취를 감출 것이다. 영적 지식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자들은 하나님의 참된 샘 곁에 서서 은혜롭게 열려 있는 구원의 샘물을 마시고 또 마셔야 할 것이다. 저들은 결코 신선한 샘의 근윈에서 떠나서는 안 될 것이며 하나님의 선하심과 깊으신 사랑의 표현에 대하여 고마움과 사랑으로 부풀어오른 심령을 가지고 계속적으로 생수를 마시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아, 이 성경 말씀이 모든 영혼에게 얼마나 깊은 의미를 주고 있는가!-”나는 세상의 빛이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 8:12, 6:35). 이러한 상태에 도달한다는 것은 그대들이 빛과 사랑의 근원을 발견하고 언제 또는 어떻게 보충을 받으며 계속적으로 빛과 사랑을 그대들의 영혼에 적용함으로 하나님의 허락의 말씀들을 활용할 수 있게 될 수 있는지를 배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요 6:36). 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 많은 사람들의 생애를 통해서 성취되었는데 주님께서는 저들에게 진리에 대한 깊은 지식을 주셨고 주님의 자비와 동정과 사랑의 품성을 보여 주셨으나 저들은 진리를 깨달은 후에 불신의 사상으로 주님을 배반하였기 때문이다. 저들은 하나님의 영의 깊은 감동하심을 보았으나 신앙 부흥 기간 후에 항상 이르러 오는 사단의 교활한 유혹이 이르러 왔을 때 저들은 유혹에 대하여 피흘리기까지 저항하지 않고 죄와 더불어 싸우지 않는다. 136 만일 저들이 깨달은 고귀한 진리를 올바로 활용했더라면 원수에게 정복당한 많은 자들이 오히려 유리한 지점에 설 수 있었을 것이다. 저들은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빛을 반사해야 한다. 또한 저들은 성령의 거룩한 계시에 일치하여 일하며 활동해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에 저들은 큰 손실을 당하게 된다.

학생들이 장난끼와 들뜬 정신에 빠졌다. 저들은 경기와 놀이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저희 마음 가운데는 주님께 대한 생각이 완전히 사라졌다. 예수께서는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그대들 가운데 서서 아,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 (눅 19:42)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요 6:36)라고 말씀하셨다. 사실 그렇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그대들에게 나타내셨으며 성령께서 그대들의 마음을 감동케 하셨을 때에 깊은 감화를 받았다. 그러나 그대들은 이러한 거룩한 감명들을 잃어버리기에 알맞은 길을 따라갔으며 승리를 거두지 못하였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그대들은 그리스도께 나아오기 시작하였으나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았다. 그대들은 주님을 저버렸으며 하나님께서 그대들에게 주신 크신 은총과 축복들에 대한 과거의 인식을 말끔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오락에 대한 문제가 송두리째 그대들의 정신을 차지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의 엄숙한 방문을 받은 후에라도 그대들은 열렬한 정신으로 이 문제를 토론하여 모든 장벽들을 물리쳐 버렸다. 그대들은 경기와 놀이에 열중한 나머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막 14:38)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마땅히 차지하셔야 할 자리가 그대들의 경기와 놀이를 위한 정열에 빼앗기고 말았다. 그대들은 성령의 안위하심 대신에 그대들의 오락을 선택하여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 6:38, 39)고 말씀하신 주님의 모본을 따르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의 정신은 저희 자신의 인간적인 욕망과 취향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되었으며 그러한 일들에 방종하는 습관으로 저들은 성경의 참된 의미를 깊이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137 많은 사람들은 저들이 그리스도를 따름으로 세상 사람들이 기꺼이 즐기는 쾌락과 방종을 부인하도록 당부를 받으므로 저희 생애가 침울하고 울적한 것이 될 줄로 상상하고 있다. 산 그리스도인은 보이지 아니하시는 주님을 실제로 보는 것처럼 생활하기 때문에 그의 마음에는 기쁨과 평화가 가득차게 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참된 성품을 닮기 원하는 자들은 거룩한 성품의 동참자가 되고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였기 때문에 저들 안에 영생의 요소를 갖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요 6:39, 40)고 말씀하셨다.

모든 신령한 생애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유래한 것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요 1:12)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뚜렷한 결과는 무엇인가? 그 결과는 우리들이 하나님과 함께 동역자들이 되는 것이다. 그대들 자신의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또는 불신자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생애로 인도할 자격을 얻기 위하여 해야 할 중대한 사업이 있다. 예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아무렇게나 믿는 것을 말함인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영혼을 사랑하고 순결케 하는 믿음이어야 한다)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요 6:47, 48, 51, 53, 54, 63-65).

138 예수께서 이 말씀들을 하셨을 때 권위와 보장과 권세를 가지시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그런 방법으로 당신 자신을 나타내실 때마다 성령의 깊으신 감동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으셨다. 그러나 보고, 듣고, 축복의 시간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은 저희 갈 길로 돌아갔으며 주님께서 저들에게 주신 빛을 금방 잊어버렸다.

영원한 보화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관하시도록 맡기신 바 되었고 당신께서 원하시는 자에게 주며 당신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저들에게 제공된 고귀한 은혜를 많은 사람들이 그처럼 쉽사리 잊어버림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주님께서는 당신을 믿고 바라보며 당신 안에 거하는 자들에게 천국의 보화를 나누어주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는 것을 강탈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으셨으며 당신께서 원하시는 자들에게 천국의 보화들을 베풀어 주시는 일에 억제하시거나 통제하실 줄 모르신다. 주님께서는 아첨과 박수 갈채를 좋아하는 세상의 위인들을 높이시거나 영화롭게하지 않으시며 당신을 사랑하고 섬기는 택하신 특별한 백성을 부르시고 당신께 나아와 구하기를 바라신다. 또한 주님께서는 저들에게 생명의 떡을 주실 것이며 생명수 곧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주실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가득 쌓인 보화들을 이 세상에 가지고 오셨으며 당신을 믿는 모든 자들을 당신의 후사들로 삼으셨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자들에게 내릴 보상이 클 것을 말씀하셨다. 성경에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고전 2:9)고 기록되었다(리뷰 앤 헤랄드, 1894. 1. 30.).

우리의 영적 재능을 증가시키기 위하여 빛 가운데서 행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큰 사건을 고려하여 우리 자신의 영혼을 준비하기 위하여 경계하는 마음으로 일하여야 하며 등불의 심지를 다듬어 잘 타오르게 해야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신랑의 오심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의 필요성을 권고해야만 한다. 139 살피는 일과 활동하는 것이 함께 병행돼야 하며 믿음과 행함이 연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품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하심을 본받아 조화를 이루고 잘 균형진 것이 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명상의 생애를 살지 않는다면 우리의 빛은 점점 흐려질 것인데 우리에게 빛을 주신 것은 우리가 그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기 위함이며 우리가 빛을 많이 나누어 주면 줄수록 우리의 빛은 점점 더 밝아질 것이다. 만일 이 세상에서 우리가 정열을 기울여 해야 할 한 가지 일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이다. 이러한 종류의 사업은 우리에게 개인적인 경건성을 소홀히 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1)는 권고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다.

하나님의 영광만을 바라본다는 것은 그대들의 마음에 역사한 결과를 나타내 보이며 그대들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에 굴복케 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하나님의 영광만을 생각하는 목적의 단일성을 의미한다. 세상 사람들은 대학교, 위생병원, 출판사 및 배틀크릭의 교인들에게 있었던 신앙 부흥의 결과적인 영향이 어떠한가 알기 위하여 그대들을 살피고 있었다. 그대들은 매일의 생애와 품성 가운데 어떤 증거를 나타내었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대들 모두가 최선을 다하기를 기대하시며 그대들 자신을 즐겁게 하거나 영화롭게 할 것이 아니라 그대들의 모든 길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당신의 은혜의 선물을 통하여 그대들에게 주신 빛과 특권을 따라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바라신다. 주님께서는 그대들이 하늘의 지적 존재자들 앞에 그리스도의 은혜의 능력을 증거하고 세상 사람들 앞에 산증인이 되기를 기대하신다. 주님께서는 혹시 그대들이 당신의 풍성한 축복을 무가치하고 가벼운 문제로 여기는지 혹은 값비싼 보화로 여겨 경건한 두려움으로 그 축복을 다루는지 아시기 위하여 그대들을 시험하셨다. 만일 모든 신자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사를 다루었다면 이 사업이 하나님께 속한 사업인 만큼 각자의 책임의 분량을 따라 마치 주인의 돈을 가지고 부지런히 장사한 종의 냥쭝처럼 받은 은혜는 배로 늘어날 것이다.

140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의 충성심을 시험해 오셨으며 당신께서 위탁하신 고귀한 축복을 저들이 어떻게 활용하는지 보기 위하여 시험하셨다. 이 축복은 하늘 법정에 계신 우리 중보자이시며 대변자이신 주님께서 주신것이다. 그러나 사단은 빛과 축복을 흑암과 저주로 만들기 위하여 자기가 침투할 수 있는 어떤 통로이든지 항상 기어 들어오려고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축복이 어떻게 저주로 변할 수 있는가? 인간에게 빛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설득하거나 품성을 변화시키는 일에 효과적인 빛을 세상 사람들에게 증거하지 않음으로 축복을 저주로 바꾸어 버릴 수 있다. 성령의 감동에 흠뻑 젖음으로 인간은 거룩한 대리자들과 협력하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바칠 것이다. 그러한 영혼은 고귀한 승리를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멍에를 멜 것이며 자기의 책임을 감당하고 그리스도의 편에서 활동할 것이다. 그는 마치 그리스도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빛 가운데서 행할 것이다. 그에게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는 성경 말씀이 성취될 것이다.

인간의 선악에 대한 장황한 기록과 함께 또 다른 한 해가 영원 속으로 흘러갔다. 하늘로부터 그대들에게 비추이는 빛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백성으로서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찬양을 나타내 보이기 위하여 주신 것이며 일어나 빛을 발하도록 그대들을 준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대들은 산 증인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만일 큰 빛을 받아들인 백성들에게 거룩한 신임장을 제시함으로써 고상하고 거룩한 품성을 형성하려는 노력을 세상 사람들 앞에 증거하지 않는다면, 오늘날 일반적인 교회들이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고도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지 못할 것이며 하나님의 진리는 세상 사람들 앞에서 확대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저들이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한 것처럼 하나님의 뚜렷한 능력에 대하여 오직 먹고 마시며 놀기 위하여 일어나는 것 정도로밖에 깨닫지 못한다면 주님께서 어떻게 풍성하고 은혜로운 능력을 당신의 백성들에게 맡길 수 있을 것인가? 만일 저들이 밝혀진 하나님의 뜻에 대하여 거의 모든 면에 정반대되는 행동을 취하고 부주의, 경솔, 이기심, 야심, 교만을 드러내며 주님 앞에서 타락한 길을 걷는다면 주님께서 저들에게 어떻게 다시 성령을 부어주실 수 있을 것인가?

141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가장 값진 축복을 준비하고 계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저들이 흑암에서 저희를 불러내어 신비한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대하여 찬미하는 생애를 통해서 고귀한 은사를 다루는 방법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 축복을 베풀어 주실 수 없으시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1, 2). 그리스도 앞에 있는 즐거움의 일부는 성령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당신의 진리를 옹호하는 것을 바라보는 즐거움이었으며 당신의 형상을 모든 추종자들의 생애와 품성에 판박이게 하는 것이었다.

거룩한 지적 존재자들은 저들이 율법을 크게 하고 존귀케 하려고 노력할 때에 인간 대리자들과 협력하신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며 영혼을 회개케 한다. 세상 사람들은 바로 회개한 영혼 안에서 산 증거를 보게 된다. 그렇다면 하늘에 계신 주님께서 일하실 장소를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주님께서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의 마음 속에 한 자리를 발견하게 될 것인가? 주님의 순결하시고 사심이 없으신 자선이 인간에게서 어떤 반응을 얻게 될 것인가? 주님의 제자들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의 품성 가운데서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인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인간 대리자들로부터 흘러나오는 양선과 진리의 시냇물에서 당신 자신의 동정과 사상이 쏟아지는 것을 발견함으로 그리스도께서 찬양과 영광을 받으실 수 있을 것인가?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을 복되게 하시기 위하여 하늘의 자원들을 부어주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 3:9).

하나님의 풍성하신 축복이 겸비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축복을 받아들이는 자들을 위하여 해주는 것이 무엇인가? 축복을 소중히 간직하였는가? 축복을 받은 자들은 저들을 흑암에서 불러내어 신비한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주님을 찬양하는 생애를 나타내 보이고 있는가? 형제들 가운데는 효과가 그처럼 좋았고 가장 깊은 감사를 돌려야 할 사업에 대하여 벌써부터 의심하는 자들이 더러 있다. 142 저들은 그 사업을 광신주의의 일종으로 바라보고 있다.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경솔하게 말하거나 행동하는 자들이 없다면 오히려 놀라운 일일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주님께서 순수한 축복을 주시는 일을 행하실 때마다 하나님의 참된 사업을 무기력하게 만들기 위하여 위조물이 출현한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극히 조심하여야 하며 하나님 앞에서 겸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들은 영적 안약을 바름으로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하심과 난폭한 방종이나 광신주의를 불러일으키는 영의 역사를 분간하여야 한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20). 참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자들은 주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함을 받게 될 것이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남녀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은 사랑과 순결로써 사람들을 감동시킬 것이며 저들의 품성 가운데 우아함이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이 하늘의 풍성한 축복을 남용하였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도 세상의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교회들을 돌보시고 또한 교회들을 축복하신다는 사실을 부인해야 할 것인가? 어떤 의혹과 불신의 사상일지라도 이 사실을 의심해서는 안 될 것이며, 그대들이 의심한다면 매우 위험한 영역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마음 문을 열고 하늘의 은사를 받아들이려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신다. 그러나 저들은 후일에 저들이 마치 속임을 당한 것처럼 생각케 하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아야 된다. 저들이 “나는 어두움에 갇힌 듯하고 의혹에 억눌려 있으며 지금처럼 사단의 세력이 강력하게 나타난 적이 없었으므로 내가 잘못 깨달은 것이 분명하다”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하라. 나는 그대들에게 조심하도록 경고하는 바이다. 단 한 가지의 의혹적인 표현의 씨라도 심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확고한 교리가 심령 가운데 실제적인 접촉을 이루도록 그대들을 위하여 역사하였다. 그대들에게 축복을 주신 것은 건전한 실천과 올바른 품성 가운데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스도께서 고라신과 벳새다를 견책하신 죄는, 만약 저들이 증거의 권세에 복종하였더면 진리를 확신할 수 있었던 그 증거를 거역한 죄였다”(마 11:21 참조). 14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죄는 저들 앞에 전개된 천국의 사업을 불신의 흑암 속으로 몰아넣어 저들에게 안정된 믿음을 줄 수 있었던 증거를 의심한 죄였고 저들이 소중히 간직했어야만 할 거룩한 사물들을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으로 취급한 죄였다. 사람들이 원수가 바로 이러한 문제에 개입하여 활동하도록 허락함으로 하나님에게서 나온 선과 그분께서 주신 풍성한 축복을 어떤 사람들이 마치 광신주의로 여기게끔 인도한 사실을 생각할 때 나는 두려움을 금할 수 없다.

만일 이러한 태도를 고집한다면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다시 빛을 주실 때에 저들은 하늘의 빛을 받아들이지 않고 “1893년에 나는 꼭 같은 느낌을 가졌었는데 그 때에 내가 신뢰하는 분들이 그것은 광신주의에 속한 것이라고 하였다”라는 말을 할 것이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은 자들로서 성령의 역사를 광신주의로 받아들이는 입장을 택할 때에 저들은 장차 하나님의 영의 역사하심을 비난하며 세미한 음성의 호소에 대하여 그 마음이 닫혀질 것이 아닌가? 예수님의 사랑은 불신의 사상에 대항하여 방벽을 쌓은 자들에게 나타날 것이며 저들에게는 견제하는 힘을 가하지 않으실 것이다. 천국의 풍성한 은혜를 주셨으나 그 은혜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고맙게 깨닫는 대신에 거절해 버리고 만다. 사람들은 의에 이르기 위하여 마음으로 믿었으며 구원에 이르기 위하여 한때 죄를 자복하기도 하였으나 유감스럽게도 축복을 받은 자들이 하늘의 지적 존재자들과 협력하지 않았으며 의로운 행실로써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리뷰 앤 헤랄드, 1894. 2. 6.).

144 엘렌G.화잇 여사는 공중 봉사에서 매우 효과적인 호소를 하여 성공적인 반응을 얻었다. 여기에 게재한 것은 여사가 상황이 다른 여러 환경과 처지에서 사용한 방법들을 몇 가지 소개한 것이다. ― 편찬자

배틀크릭에 있는 교회 집회에 참석하였다. 아담의 타락이 불행과 사망을 가져오고 그리스도께서 겸비하신 생애와 죽음을 통하여 생명과 영생을 얻게하셨다는 문제를 가지고 약 1시간 동안 자유롭게 말하였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는 일 곧 영혼과 몸과 정신의 전적인 성화의 필요성에 관하여 청중에게 권고하고 싶은 간절한 심정을 느꼈다. 모세의 죽음과 그가 바라본 약속의 땅 가나안의 광경에 대하여 말하였다. 그 회중 가운데는 깊은 감동이 있었다. …그날 저녁 집회 때에 우리들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나오도록 호소하였다. 열세 사람이 앞으로 나왔다. 모두가 주님을 위하여 간증하였다. 이것은 실로 훌륭한 일이었다(1868년 1월12일 일기에서).

하루 종일 집회가 열렸다. 나의 남편은 오전 시간을 썼고 앤드루스 형제는 오후 시간을 썼다. 나는 그 뒤를 이어서 오랜 시간 동안 말하였는데 그 집회들을 통해서 진리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 날부터 하나님을 섬기는 생애를 시작하라는 탄원을 하였다. 145 우리들은 주님을 섬기는 일에 새 출발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나아오도록 호소하였다.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앞으로 나왔다. 나는 사단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바로 새 출발을 하도록 영혼들에게 탄원하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해서 하였다. 한 어머니가 자기 아들에게 가서 울면서 간청하였다. 그 아들은 매우 난폭하고 완고하며 불복종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때에 나는 일어나서 D형제에게 자녀들의 길을 가로막지 말라고 간청하였다. 그 때에 그는 일어나서 그날부터 새 출발을 하겠다는 결심을 표명하였다. 모든 사람들은 그의 결심을 듣고 기뻐하였다. D형제는 매우 훌륭한 사람이다.

E자매의 남편이 그 후에 일어나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간증하였다. 그는 영향력이 큰 인물이며 변호사이다. 그의 딸도 구도자의 명단에 그 이름이 있었다. D형제는 우리들의 뒤를 이어서 자신의 간절한 탄원을 회중 앞에서 말하였다. D자매 역시 저희 자녀들에게 호소하였다. 우리 모두가 힘을 합하여 간청하였으며 끝내 저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 모두가 앞으로 나왔다. 아버지들과 모든 아들들이 호소에 응하였으며 다른 아버지들도 저들의 모본을 따랐다. 이날이야말로 기쁨으로 충만한 날이었다. E자매는 그날이 자기 일생 중에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고 말하였다(1868년 2월 19일 일기에서).

나는 오후에 베드로후서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시간을 썼다. 나는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다. 한 시간 동안 시간을 쓴 후에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다 앞으로 나오라고 하였다. 30대와 40대의 사람들이 아무런 흥분된 감정을 보이지 않고 조용히 앞으로 나와서 앞자리에 앉았다. 나는 저들에게 하나님께 전적으로 항복하는 문제에 관하여 말하였다. 우리들은 앞으로 나온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 시간을 가졌는데 매우 귀중한 기도 시간을 갖게 되었다. 침례를 받기 원하는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일어 섬으로 뜻을 표하라고 요구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일어났다(1873년 6월 9일 일기에서).

나는(버지니아주의 스탠리에서) 요한복음 17장 3절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시간을 썼다. 주님께서는 성령의 능력을 나에게 크게 부어 주셨다. 집회 장소는 청중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주님을 더욱 열심히 찾으며 주님께 전적으로 헌신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나오라고 호소하였다. 잠시 동안 단 한 사람도 움직이지 않았다. 얼마 후에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나왔으며 죄를 자복하는 간증을 하였다. 146 우리들은 매우 은혜스러운 기도 시간을 가졌으며 모두가 마음을 찢고 울면서 저들의 죄를 자복하였다. 아, 그 때의 감정은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1890년11월 9일 일기에서).

안식일과 일요일에 가진 모임은 매우 귀중한 집회였다.* 주님께서는 특히 일요일 오후의 설교 시간에 나에게 축복하셨다. 설교가 끝날 무렵에 그리스도인이 되기 원하는 모든 사람들과 하나님과 산 연합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앞으로 나오도록 초청하는 호소를 하였다. 우리는 죄의 용서를 받기 위하여 또는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을 얻기 위하여 함께 기도하였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하나의 새로운 경험이었으나 저들은 주저하지 않았다. 온 회중이 모두 일어선 듯이 보였으며 오히려 다 같이 앉아서 주님께 함께 간구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죄를 버리고 가장 열렬한 정신으로 하나님을 찾는 일에 종사하기 위한 굳은 결심을 온 회중이 나타내 보인 것을 바로 이 자리에서 볼 수 있었다. 기도가 끝난 이후에 115명이 간증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물에 관하여 순수한 경험을 나타내 보여주었다(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외방 선교 사업의 역사적인 개요, 173).

우리는 크리스챠니아에서 두 주일을 보내는 동안 교회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였다. 주님의 영께서는 아주 단순한 증언을 하도록 나에게 감동을 주셨다. 특히 우리의 마지막 집회에서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원하는 사람들이 철저한 성품 변화가 있어야 할 필요성에 대하여 증거하였다. …나는 저들에게 깊은 회개와 자복 그리고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감미로운 정신을 쫓아 버린 모든 죄들을 버려야 할 필요성을 권고하였다. 그 후에 주님의 편에 결정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원하는 자들은 모두 앞으로 나오라고 호소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반응을 보였다. 몇 사람의 간절한 죄의 자복이 있었으며 열렬한 간증들도 있었다(리뷰 앤 헤랄드, 1886. 10. 19.).

147 스위스의 바즐에서, 지금으로부터 고상한 표준에 도달하기 위하여 아주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은 기립하도록 요청하였다. 모두 일어섰다. 우리는 이를 계기로 하여 저들을 하나님과 천국의 사상으로 인도할 수 있고 저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충성되고 참된 십자가의 군병이 되기 위하여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기를 바랐다(1885년 11월 22일 일기에서).

안식일 오후에 우리들은 사교적인 집회로 다시 모였다. 모인 사람들에게 내가 잠시 동안 다시 말하고 있을 때 주님의 축복이 나에게 임하였다. 빈자리가 없이 좌석이 찼으므로 여분의 의자들을 들여놓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들었다.

나는 하나님의 종들의 기도를 원하는 사람들은 앞자리로 나오도록 초청하였다. 모든 낙심자들과, 주님께 돌아와 주님을 열심으로 찾기 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 기회를 적절히 이용할 수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신속히 앞으로 나와 빈자리를 차지 하였으며 온 회중이 앞으로 나올 기세를 보였다. 우리는 저들에게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 앉아 다 함께 주님께 우리의 죄를 자복함으로 주님을 찾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며, 주님께서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일 1:9)라는 말씀으로 약속하셨다고 말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깊은 감동 가운데서 빠른 속도로 이어서 간증하였으며 저들의 심령이 성령의 감동을 받은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우리 집회는 오후 2시에서 5시까지 계속되었으며 5시가 되자 여러번에 걸친 열렬한 기도를 올린 후 집회를 끝냈다(1887년 2월 20일 일기에서).

[1895년] 5월 25일 안식일에 우리는 북 핏쯔로이의 우리 신자들이 모이는 공회당에서 귀중한 집회를 갖게 되었다. 그 집회가 있기 여러 날 전에 나는 그 안식일에 설교해야 할 것을 알고 있었으나 뜻밖에도 심한 감기에 걸리게 되었고 목소리가 완전히 쉬어버렸다. 148 나는 가급적 그 약속을 사양하고 싶었으나 이것이 오직 한 번밖에 없는 기회이므로 “어떤 일이 있든지 나는 사람들 앞에 나서리라. 나는 분명히 주님께서 열렬한 기도를 응답하실 것이며 완전히 목쉰 음성을 고쳐주셔서 사람들에게 기별을 전할 수 있게 하시리라고 믿는다”고 말하였다. 나는 하늘 아버지께 다음과 같은 허락의 말씀을 제시하였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9-13) …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한 것이다. 나는 간구하였으므로 사람들에게 나아가 설교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믿었다. 나는 성경절들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막상 설교를 하려고 일어섰을 때 선택한 성경절들을 나의 기억에서 완전히 잊어버렸으며 베드로후서 1장에 있는 말씀으로 설교하도록 감명을 받았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은혜의 가치를 증거할 수 있는 특별한 자유를 나에게 주셨다. …나는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맑고 능력 있는 음성으로 설교할 수 있었다.

설교가 끝난 후에 나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주님께 저들 자신을 완전히 바치기 원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나오라는 호소를 하게 되었다. 이어서 하나님의 종들의 기도를 원하는 사람들도 그 뜻을 표명하라고 부탁하였다. 약 30명이 앞으로 나아왔다. 이들 중에는 F형제들의 아내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처음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오고 싶은 뜻을 표명하였다. 이 두 여인이 취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나의 심령은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나는 그 때에 비로소 내가 왜 그처럼 열렬한 초청을 호소하도록 감동을 받게 되었는지 연유를 깨닫게 되었다. 처음에 나는 주저하였으며 나와 내 아들 밖에는 아무도 그 집회의 형편을 도울 사람들이 없을 때, 호소하는 일을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마치 누가 나에게 말을 한 것처럼 어떤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쳐갔다. 나는 스스로 “너는 주님을 믿을 수 없느냐?”고 물었으며 곧 이어서 “주님, 저는 당신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나의 아들은 그 순간에 내가 호소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으나 그 역시 위급한 사태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가 이 때처럼 큰 권능과 깊은 감동을 가지고 호소하는 것을 과거에 결코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는 폴크헤드 형제와 쌜리스뷰리 형제들을 앞으로 나오도록 불렀으며 우리들은 다 같이 무릎을 꿇었다. 149 나의 아들이 먼저 기도를 인도하였으며 주님께서는 분명히 그의 호소하는 말을 지어주셨다. 그는 마치 하나님의 면전에서 기도하는 것 같았다. 폴크헤드 형제와 쌜리스뷰리 형제도 역시 열렬한 탄원을 하였으며 그 때에 주님께서 나에게 기도할 음성을 주셨다. 나는 처음으로 진리를 위하여 대중들 앞에 서게 된 F자매들을 기억하게 되었다. 성령께서 그 집회 가운데 계셨으며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깊은 감동을 받게 되었다.

집회가 끝난 후에 많은 사람들은 강단 앞으로 나왔으며 내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나에게 간청하였다. 나는 그러겠노라고 선뜻 응답하였다. F자매들이 나에게 소개되었으며 나는 저희 마음이 매우 부드러워진 것을 발견하였다. 그 두 자매들 중의 한 어머니는 현재 진리를 받아들였으나 과거에는 가장 과격한 반대자였고 만약 자기 딸이 안식일을 지키는 자가 될 경우 집에서 내어쫓겠다고 위협하였다. 그 어머니는 자기 딸이 마치 가족에게 수치 거리가 되는 존재처럼 바라보았다. F부인은 때때로 자기는 결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부인은 장로교회 신자로서 성장하였으며 그는 교회에서 여자가 설교한다는 것은 매우 못마땅한 것으로 생각하도록 교육을 받았다. 따라서 그의 생각으로는 여자가 설교하는 것은 예의 범절의 한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었다. F부인은 다니엘스 목사와 콜리스 목사의 설교를 재미있게 들었으며, 저들이 매우 총명한 설교자들이라고 생각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여자의 설교는 듣지 않으려 하였다. 그의 남편은 자기 부인이 화잇 자매의 지도를 따라 회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내가 호소를 하면서 하나님께 가까이 할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은 다 앞으로 나오라고 권고하였을 때 놀라웁게도 이 자매들이 앞으로 나왔다. 어린 자식을 잃어버린 한 자매는 어떤 호소를 들을지라도 결코 앞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결심했으나 주님의 영께서는 너무나 강력하게 그의 정신에 감동을 주셨으므로 감히 거부할 수 없었다. …나는 두 자매의 귀한 영혼이 저희 남편과 더불어 진리에 순종하도록 하신 하늘 아버지의 사랑스러우심에 대하여 깊은 감사를 느끼게 되었다(리뷰 앤 헤랄드, 1895. 7. 30.).

150 나는 거룩한 언약으로 저들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기를 원하며,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앉은 자리에서 일어서도록 초청하는 호소를 하였다. 집회 장소는 인파로 가득하였는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어섰다. 저들 중에는 우리와 믿음이 같지 않은 사람들도 참석했는데 그들 중 몇 사람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열렬한 기도로써 저들에게 주님을 증거하였으며 우리들은 성령께서 그 자리에 임재하신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들은 분명히 승리를 쟁취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원고 30a, 1896년).

나는 기도주일 동안에 5회에 걸쳐 보조원들, 간호학교 학생들 및 의사들에게 설교하였으며 저들이 나의 설교를 통해서 많은 감화를 받게 된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대학교에서 두 번 설교하였다. 지난 목요일 프레스캇 교수는 나를 학교로 초청하였다. 나는 학교에 가서 기도하였으며 학생들로 가득찬 큰 학교 교회에서 설교하였다. 나는 마음 놓고 설교 할 수 있었으며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겸비와 희생에 대하여, 우리들을 위하여 준비하신 하늘의 보상, 최후의 승리 및 그리스도인이 되는 특권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증거하였다.

프레스캇 교수는 일어나서 무슨 말을 하려 하였으나 그의 가슴은 너무나 벅차서 사람들 앞에 서서 울 뿐 약5분 동안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후에 그는 몇 마디 말을 하면서 “저는 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얼마나 기쁘게 생각하는지 모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계속해서 약 5분 동안 말한 뒤에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간증할 기회를 주었다. 그 때에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 간증을 하였으나 그들 가운데 한 무리가 아직도 마음에 아무런 결정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하여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과 하나님의 가납하심을 받은 증거를 갖지 않은 모든 사람들에게 앞으로 나오라고 호소하였다. 그 자리에 참석한 온 회중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 때에 우리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받은 감동을 표현할 기회를 주었으며 잠시 후에 우리들은 기도 시간을 가졌고 주님의 축복이 모든 심령에 임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들은 두 그룹으로 나누어 두 시간 이상 간증 시간을 계속하였으며 주님의 영께서 놀라우신 방법으로 그 집회에 임하셨다. 종교적인 신앙에 관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던 불신자들도 몇 사람이 신앙적 생애에 관하여 순수한 체험을 얻게 되었다. 151 호소하는 일과 간증하는 일을 통해서 점차적으로 깊은 체험을 얻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역사하고 계시며 우리들이 주님의 길을 신속히 예비하면 그만큼 우리들을 위한 당신의 능력을 안전하게 나타내실 수 있으실 것이다(서신 75, 1888년).

[1900년] 12월 21일 금요일, 나는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그 곳에서 기도 주일을 보냈다. 나는 안식일 오후에 그곳에 있는 교회에서 설교하였는데, 내 몸이 너무 허약하여서 두 팔로 몸을 지탱하기 위하여 강도상에 매달리다시피 하였다. 나는 주님께 신자들에게 설교할 능력을 달라고 간구하였다. 주님께서는 나의 기도를 응답하셨으며 나에게 능력을 주셨다. 나는 요한계시록 2장 1절로 5절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마음 놓고 내 힘껏 설교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영의 깊은 감동이 나에게 임하였으며 신자들도 증거하는 기별을 듣고 깊은 감명을 받게 되었다. 설교가 끝난 다음에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헌신하기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앞으로 나오도록 초청하는 호소를 하였다. 많은 수의 신자들이 반응을 보였으며 저들을 위하여 기도를 올렸다. 앞으로 나온 여러 사람들은 최근에 재림 기별을 들은 사람들로서 결심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주님께서는 저들에게 선한 감동을 주사 든든하게 하시며 저들 자신을 주님께 전적으로 바치기를 바란다. 아, 나는 얼마나 간절히 영혼들이 회개하는 것을 보며 저들이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찬양하는 노래를 듣기 원했던가!

일요일 오후에 나는 우리들의 신앙을 갖지 않은 많은 청중에게 설교하였다. 나의 능력은 새로운 힘을 입게 되었으며 나는 강도상을 붙들지 않고도 사람들 앞에 설 수 있었다. 주님의 축복이 우리 위에 임하였으며 내가 설교할 때에 육체의 능력이 증가되었다. 안식일에 행한 것처럼 신령한 도움을 얻기 원하는 사람들은 다 앞으로 나오도록 초청하는 호소를 하였으며 저들의 신속한 반응을 보게 되었을 때 우리들은 기쁨을 금치 못하였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기도로써 당신을 찾을 때에 매우 가까이 접근하신다(리뷰 앤 헤랄드, 1901. 2. 19.).

11월 10일 안식일 나는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하였으며 듣는 귀와 깨닫는 마음을 가진 신자들로 가득찬 교회에서 설교하였다. 152 …내가 설교를 마친 후에 콜리스 목사는 예수님께 자기 자신을 바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앞으로 나오라고 초청하는 호소를 하였다. 그 때에 신속하고도 기쁜 반응이 있었으며 거의 2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앞으로 나왔다는 말을 들었다. 어른, 젊은이 및 어린이들이 남녀 구별없이 앞자리로 밀면서 나왔다. 주님께서는 모든 교회마다 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기뻐하실 것이다.

집회 장소가 비좁아서 다수의 사람들이 앞으로 나올 수가 없었다. 그러나 생기 도는 얼굴들과 눈물이 어린 많은 눈들은 “저는 주님의 편에 설 것입니다. 지금부터 저는 열심을 내서 고상한 표준에 오르려고 노력할 것입니다”라는 굳은 결의를 증거해 주었다(리뷰 앤 헤랄드, 1901. 2. 12.).

나의 형제 자매들이여, 주님을 찾을 수 있을 때에 찾으라. 저들에게 주어진 시간과 기회들을 낭비한 사람들이 주님을 찾지 않은 저들의 과오를 후회할 때가 올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대들이 이성(理性)의 궤도와 사업의 노선을 지키기를 바라신다. 또한 주님께서는 그대들이 우리 교회로 나아가 주님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기를 원하신다. 따라서 우리 주님께서는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특별한 집회들을 계획하여 이 마지막 경고의 기별에 대한 진리를 저들에게 가르치기를 기대하신다. 그대들을 기꺼이 받아들일 장소들이 있을 것이며 저들을 돕기 위하여 오는 그대들에게 감사할 영혼들이 있을 것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그대들이 이 사업을 굳게 붙들고 나갈 수 있도록 주님께서 도와주시기를 바란다. 그대들은 이 사업을 붙들고 나가겠는가? 그대들은 앉은 자리에서 일어섬으로 그대들이 하나님만을 바랄 것을 증거하겠는가? (회중이 모두 일어섰다.)

(기도를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이시여, 감사합니다. 당신의 백성이 이 자리에서 보여준 서약의 표시를 받아 주시옵소서. 저들에게 당신의 영을 부어 주시옵소서. 저들의 생애 가운데 당신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기도 하옵나이다. 저들이 진리의 말씀을 전할 때에 우리들로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1909년 5월 18일, 대총회 회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