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뽑은 기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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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엘렌G.화잇 여사가 하나님의 사자로서의 자신의 사업과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당신의 섭리를 나타내신 경로들에 관하여 기록한 말씀들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큰 도움을 주며 흥미있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의 말씀들이 “가려뽑은 기별” 제 1 권에 수록되었다.

70년 간의 봉사의 생애를 통하여 화잇 여사는 영감(靈感)에 대하여 간헐적(間歇的)으로 여러 번에 걸쳐 문제를 다룬 적이 있었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은 1888년 5월에 쓴 “대쟁투”의 서론에 기록한 것이다. 물론 이 책에는 그 내용을 취급하지는 않았으며 “대쟁투”의 서론보다 더 일찍이 기록된 1886의 “성경에 대한 반대 이론들은” 이 책에 실었고 1888년의 가을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영감을 제 1장에서 다루었다. 영감설에 관하여 네번째로 중대한 기록을 남긴 것은 1889년에 출판된 “성경의 신비성 자체가 영감을 받은 증거임”이었는데 그 내용은 “교회증언” 5권 698-711에 실려 있다.

1913년에 재판으로 나온 소책자 “교회증언의 기록과 보급(普及)” 가운데 화잇 여사 자신의 사업에 대하여 여러 가지 설명이 있는데일찍이 기록된 증언의 말씀들에 대한 질문들과 비난에 대하여 화잇 여사가 답변한 것들을 “우리 길에 비취는 빛”의 줄거리로 삼아 제 1장을 꾸몄다. ― 편집자 주

15 지금 이 때야말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고 물어보아야 할 가장 적절한 때이다.

영적 흑암이 이 세상을 덮었으며 짙은 어두움이 백성을 가리웠다.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회의주의와 불신 사상을 나타내는 교회들이 많이 있다. 성경의 참된 사실과 진리를 의심하는 자들이 너무나 지나치게 많다. 인간의 추론과 인간의 추측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영감성을 약화시키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 신비주의의 구름에 둘려 가리워지고 있다. 짙은 안개 속에서 암초에 걸린 배처럼 아무것도 뚜렷하고 분명하게 구분되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마지막 날의 두드러진 징조들 중의 하나이다.

이 거룩한 책은 거룩한 특성에 속한 모든 것들을 어두운 구름과 짙은 흑암으로 덮어 씌우려고 악인들과 연합한 사단의 습격을 이겨내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기적적인 능력으로 이 거룩한 책을 오늘날의 형태로 보존하셨는 바, 이 책은 인간 가족들에게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을 보여 주기 위하여 주신 하나의 도표이며 안내서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소홀한 취급을 받아 왔으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성경에 대한 거룩한 지식을 갖고 있는 자가 너무나 적으며 성경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노라고 공언하는 자들 중에도 이 거룩한 지식을 가진 자들이 많지 않다. 16 대학 교육을 받은 학식 있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러한 목자들은 하나님의 양 떼들에게 꼴을 먹이지 않고 있다. 저들은 성경의 탁월한 진리들이 마치 땅을 파서 발견하는 귀중한 보석들처럼 숨은 보화들을 계속적으로 밝혀 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발한 자가 되려 하고 기록된 말씀보다 더 지혜로운 척하는 자들이 있는데 저들의 지혜야말로 어리석은 것이다. 저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미리 앞서서 놀라운 것들, 즉 하나님의 거룩한 섭리와 목적을 이해함에 있어서 저들 자신이 얼마나 뒤져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사상들을 발견한다. 여러 세대를 통해서 인간에게 가리워진 신비들을 해명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마치 사람이 깊은 진흙 구덩이에 빠져서 발버둥치는 것과 같으며 자기 자신을 구해 낼 수 없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저들이 빠진 진흙 수렁에서 기어 나오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과 같다. 이것은 성경의 모순들을 저들 스스로 시정하려고 마음 먹은 사람들을 가장 적절하게 묘사한 말이다. “주님께서 이런 뜻으로 말씀하셨을 것이다” 혹은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는 등의 제의로써 성경을 개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신중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면서 “성경을 베끼는 자나 번역한 사람들이 어떤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들이 있지 않았을까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이러한 일이 있음직하고 편협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이러한 가능성이나 우연의 일치에 대하여 주저하게 되고 걸려 넘어지게 되는데 이런 자들은 저들의 미약한 정신력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통찰할 수 없으므로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의 신비들을 쉽사리 곡해하게 된다. 사실상 저들은 단순한 정신의 소유자이면 신성(神性)에 속한 것을 받아들이고 식별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단순한 사실들에 대하여 너무나 쉽사리 곡해한다. 따라서 저들은 단순하고 아름다우며 자양분과 기름끼로 가득찬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성경을 베끼거나 번역하는 일에 실수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런 모든 실수들이 영혼을 위태롭게 하거나 어떤 자의 발이 걸려 넘어지게 하지 않을 것이며 그런 실수들로 말미암아 가장 밝히 드러난 진리가 난해(難解)한 것이 되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하신 말씀을 준비하는 일을 유한한 인간에게 위탁하셨다. 신구약 성경으로 꾸며진 이 말씀은 타락한 세계의 거민들에게 주신 안내서이며 후세에 남기도록 주신 것이며 지시하신 말씀들을 연구하고 순종할 때에 단 한 영혼도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17 영감으로 기록된 부분과 영감으로 기록되지 않은 부분을 인간의 한정된 표준으로 측정하므로 명백한 성경의 말씀을 가상적(假想的)인 난해 거리로 만들려고 생각하는 자들은 마치 엘리야가 세미한 소리를 들었을 때처럼 하나님과 거룩한 천사들의 목전에서 얼굴을 가리워야 할 것이다(왕상 19:12). 각 시대를 통해서 하나님과 거룩한 천사들은 인간에게 빛과 지식을 전해 주어 저들이 해야 할 것과 해서는 안될 것을 일러주며 저들에게 흥미 진진한 장면들을 전개시켜 주고 상징, 징조 및 예화로써 곳곳에 이정표를 두셨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집중하고 있는 위기들을 증거하셨으나 어떤 유한한 인간을 지정하여 숨은 신비들을 해명 시키거나 한 사람 혹은 어떤 분야의 사람들에게 영감으로 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최종적으로 판단할 자격을 아무에게도 주시지 않으셨다. 인간이 저들의 한정된 판단력으로 영감으로 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가려내기 위하여 성경을 시험해 보는 단계에 이를 필요가 있다면 저들은 이미 예수님보다 앞장 서서 과거에 예수께서 우리들을 인도하신 것보다 더 훌륭한 길을 예수님께 보여 주는 격이 되는 것이다.

나는 성경을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으로서 그대로 받아들인다. 또한 나는 성경 전체가 영감으로 된 말씀임을 믿는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비판할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일어날 것이다. 저들은 마치 우월한 지혜를 가진 증거로서 비판할 재료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폭로한다. 이러한 사람들 중의 대부분이 머리가 우수한 자들이며 학식이 있고 웅변과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저들의 필생의 과업은 성경의 영감설에 관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정하게 만드는데 있다. 저들은 다른 사람들도 저들과 같은 견해를 갖도록 영향을 주고 있다. 그리하여 사단이 본래 계획했던 것처럼 이런 일들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달되어 마침내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깊이 깨닫게 될 것이다.

형제들이여 우리들의 정신과 손이 성경을 비판하는 일에 관여하지 않도록 하라. 이 일은 바로 그대들이 하기를 사단이 바라는 것이며 주님께서 수행하라고 지적하신 사업이 아니다.

인류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살아 있는 말씀 곧 거룩한 성경을 과거에 각 시대를 통해서 하신 것처럼 당신의 책을 친히 돌보시게 해야 한다. 사람들은 계시로 기록된 어떤 부분들을 의심하기 시작하며 이 성경절, 저 성경절의 뚜렷하게 일치되지 않는 듯한 내용에서 약점들을 찾아낸다. 18 창세기로부터 시작하여 저들은 의심스럽다고 생각되는 점들을 포기하고 사단이 인도하는 대로 성서를 비판하는 일에 즐겨 따름으로 마침내 저들은 성경 전체를 의심할 만한 어떤 단서를 찾게 된다. 저들의 비판적인 기능은 활용하므로 예리하여지고 저들은 결국에 아무것도 확실히 믿는 것이 없게 된다. 그대들이 이러한 사람들과 이치를 따지려고 노력할지라도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저들은 조롱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성경까지도 웃음거리로 삼을 것이다. 따라서 저들은 기롱하는 자들이 되고 그대들이 저들의 잘못을 지적해 줄 때에 저들은 의외라는 듯이 깜짝 놀랄 것이다.

형제들이여, 말씀을 읽는 대로 그대들의 성경에 애착을 가지라. 그리고 성경 그 자체의 정당성 여부에 관한 그대들의 비판을 중단하고 말씀에 순종할 때에 단 한 사람도 잃어버린 바 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연구력은 저들의 유한한 정신과 제한된 이해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헤아려보려고 각 시대를 통하여 노력해왔다. 살아 계신 말씀의 근본이 되시는 주님께서 휘장을 제치시고 저들 앞에 당신의 지혜와 영광을 밝히 나타내 보이신다면 저들은 무가치한 존재로 움츠러들 것이며 마치 이사야처럼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사 6:5)고 있다고 외칠 것이다.

성경의 단순성과 명백한 표현은 비단 완전히 성숙한 사람이나, 지적으로 비범한 사람뿐만 아니라 무학자, 농사꾼, 어린아이까지라도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이 정신력에 따르는 큰 재능을 소유하였다면 아름답고 가치 있는 진리의 보화들을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 진리의 보화들을 자기의 것으로 삼을 수 있다. 사람은 또한 깨닫기 힘든 것들, 비밀에 속한 것들, 일생 동안 오랜 세월을 두고 연구함으로 가장 고상한 만족을 누리게 될 기이한 점들을 발견하게 될 것인데 아직도 이런 영원히 미치지 못할 무한한 연구 분야가 펼쳐져 있다.

학식이 없고 능력과 기회의 제약을 받아 성경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도 살아 계신 말씀 가운데서 마치 햇살처럼 분명하게 위안과 지도와 권고와 구속의 경륜을 찾을 수 있다. 자기 자신이 고의적으로 배우지 않기로 결심하지 않는 한 아무도 지식의 결핍 때문에 구원을 상실할 필요가 없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학식이 있는 사람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가련한 사람을 위해서도 성경을 준비하셨다는 사실을 감사히 여긴다. 성경은 모든 시대와 모든 계급의 사람들에게 적합한 것이다. ― 원고 16, (1888년 가을 미네소타 주 미네아폴리스에서 기록함).

19 인간의 정신은 다양하다. 교육과 사상의 배경이 서로 다른 정신은 같은 글에서도 서로 다른 감명을 받게 되며 한 사람이 기질과 교육과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에게 언어를 통해서 자기 마음 속에 있는 꼭같은 생각을 분명하고 뚜렷하게 전달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나 마음이 정직하고 올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모든 실제적인 목적을 위해서 자기의 뜻을 전달할 때에 단순하고 명백하게 전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가 교통하려는 상대자가 정직하지 못하고 진리를 깨닫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는 모든 면에 자기 말을 자신의 목적에 적합하도록 왜곡되게 사용할 것이다. 그는 자기 말의 뜻을 잘못 해석할 것이며 자신의 상상력을 악용하고 말의 참 뜻을 왜곡하며 불신의 정신으로 자신을 단단히 감싸고 말의 취지가 전부 틀렸다고 주장할 것이다.

나의 증언들을 오해하고 악용하려는 자들에 의해서 나의 증언들은 이렇게 취급을 받아 왔다. 저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말로 만들어 버린다. 저들이 출판된 글과 책들 가운데 있는 나의 증언들을 취급하는 꼭같은 방법으로 회의주의자들과 불신자들은 성경을 그렇게 취급한다. 저들은 악용하기 위한 저희 욕망을 따라서 성경을 읽으며 말씀의 참 뜻을 오용하고 고의적으로 왜곡한다. 저들은 성경이 모든 것을 증거할 수 있고, 모든 종파들이 각자 자기네 교리가 바르다고 주장하며 아주 상이한 교리들을 성경으로 증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성경의 저자들은 저희 사상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밖에 없었다. 성경은 불완전한 인간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이러한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 언어에 대한 인간의 이해력이 불완전하고 인간의 정신이 타락하였으며 진리를 교묘하게 기피하므로써 많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성경을 읽고 또한 이해하게 되었다. 성경 가운데 이해하기 힘든 점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대립적인 정치가들은 율법책 가운데 있는 율법의 요점을 가지고 논쟁하며 율법을 적용하는 문제나 율법 내용 자체에 있어서 서로 대립적인 견해들을 취한다.

성경은 단절되지 않은 계속적인 말씀의 고리를 잇는 형식으로 인간에게 주신 것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계승되는 세대들을 통하여 여러 가지 경우와 다른 장소에 따라 인간에게 감동을 줄 적절한 기회를 발견하실 때마다 부분적으로 주신것이다. 20 사람들은 성령의 감동을 입었을 때 말씀을 기록하였다. “처음에는 싹이 트며 다음에는 꽃이 피고 그 다음에는 열매를 맺는다.”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막 4:28)는 말씀이 있다.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바로 이러한 것이다.

성경 가운데서 항상 완전한 질서나 뚜렷한 통일성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이적들이 어떤 정밀한 차례를 따라 행하여진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한 신령한 계시가 요구되는 환경과 처지를 따라서 이적들을 행하신 것이었다. 성경의 진리들은 감추인 보석과 같은 것이다. 진리는 샅샅이 살펴보아야 하며 참담한 노력으로 캐내야 하는 것이다. 성경에 대하여 피상적인 견해만을 가진 자들은 저희 생각에는 깊은 지식을 가진 듯하나 실제로는 얕은 지식을 가진 자들로서 성경에 반대되는 점들을 말하며 성경의 권위를 무시한다. 그러나 진리와 의무에 일치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은 거룩한 감명을 받을 수 있는 마음 준비를 갖추고 성경을 연구할 것이다. 빛을 받은 영혼은 영적 통일성을 발견할 것이며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굵은 황금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보배로운 황금실을 찾아 나가는 데는 인내와 사색과 기도가 요구된다. 성경에 관한 날카로운 논쟁으로 말미암아 진리를 탐구하게 되었으며 드디어 진리의 귀중한 보석들이 드러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으며 많은 성도들의 기도가 상달되므로 주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깨닫게 해주신 것이었다.

성경은 어떤 장엄한 초인간적인 언어로 꾸며서 우리들에게 주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처하여 있는 그 위치에 이르시기 위하여 인성을 쓰셨다. 성경은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어야만 하였다. 인간에게 속한 모든 것은 불완전하다. 같은 말로써 뜻이 서로 다른 여러 가지 표현을 할수 있다. 각기 뚜렷한 사상을 표현함에 있어서 한마디 말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실제적인 목적을 위해서 주신 것이다.

사람들은 각기 특징이 다른 정신을 소유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사상의 표현들과 문장의 내용을 똑같이 이해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말씀이 저들 자신의 특수한 정신과 경우에 적합하게 이해한다. 선입 관념, 편견 및 감정 등은 성경의 말씀을 읽을 때에 이해력을 어둡게 하고 정신을 혼란케 하는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엠마오로 여행하던 제자들이 성경을 해석하는 데 있어 저들에게 혼란된 정신을 풀어 줄 필요가 있었다. 21 예수께서는 변장하신 모습으로 저들과 동행하셨으며 인간의 위치에서 저들과 이야기하셨다. 모세를 비롯하여 모든 선지자들에 이르기까지 예수께서는 당신 자신에 관한 모든 사실들을 저들에게 가르치셨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예언한 그대로 당신의 생애, 사명, 고통 및 죽으심이 성취된 것을 말해 주었다. 주님께서는 저들이 성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저들의 이해력을 열어 주셨다. 주님께서는 얼마나 신속히 얽히고 설킨 끄트머리들을 풀어주어 성경의 통일성과 거룩한 사실들을 나타내 보여 주셨는가! 오늘날 이 시대의 사람들은 저들의 이해력이 깨우침을 받아야 할 필요성이 얼마나 큰가!

성경은 감동을 입은 사람들로 말미암아 기록된 것이며 성경 자체가 하나님 자신의 사고 방식이나 표현 양식이 아닌 것이다. 성경은 사상과 표현에 있어 어디까지나 인간적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필자로서 대표되지 않으셨다. 사람들은 흔히 말하기를 어떤 표현은 하나님답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과 논리와 수사(修辭) 가운데 당신 자신을 두어 성경상 시련의 대상이 되게 하지 않으셨다. 성경의 저자들은 하나님의 필자들이었으며 하나님의 필촉이 아니었다. 여러 다른 저자들을 관찰해 보라.

성경의 말씀 자체가 감동을 받은 것이 아니라 감동을 받은 것은 사람들이었다. 영감은 인간의 언어나 표현 방법에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인간 자신에게 작용하는 것이며 그는 성령의 감화로 말미암아 그의 사상이 그 감화에 스며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언어는 개인적인 정신의 감명을 받게 된다. 거룩한 정신으로 물들여진다. 거룩한 정신과 의지가 인간의 정신과 의지에 혼합하게 되어 인간의 말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다 ― 원고24, 1886년(1886년 유럽에서 기록함).

한 나무에 여러 가지 모양이 있어 꼭 같은 모양의 두 잎사귀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이 다양성 자체가 나무의 전체적인 완성의 미를 장식해 준다.

우리들은, ‘성경 가운데 마태, 마가, 누가 및 요한이 복음서를 왜 다같이 기록할 필요가 있었을까, 왜 사도행전이 필요하며, 여러 종류의 편지서들이 왜 동일한 문제들을 다룰 필요가 있었을까’ 라고 질문할 수 있다.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바라신 꼭 그 방식대로 말씀을 주셨다. 주님께서는 여러 저자들을 통해서 말씀을 주셨으며 비록 동일한 역사를 다루었으나 각자의 개성을 따라 기록하게 하셨다. 저들의 증언들은 다 함께 한 책에 엮어졌으며 그것은 마치 사교 집회에서 갖는 간증과 같은 것이다. 22 저들은 동일한 문장의 형식을 따라 사물들을 증거하지 않았다. 각자가 자기 자신의 독특한 체험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다양성이 지식을 광범위하게 하고 심화시킴으로써 여러 종류의 정신들, 곧 각계 각층 사람들의 필요성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성경 가운데 표현된 사상들은 마치 쇳물을 녹여 주물에 붓는 것처럼 어떤 틀에 박힌 일률성으로 표현하여 단조롭게 들리도록 하지 않으셨다. 만약 틀에 박힌 일률성으로 성경이 꾸며졌다면 은혜와 특수한 아름다움이 상실되었을 것이다.

모든 사상들의 창조주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사상을 가지고 여러 다른 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시되 각자는 그 받은 바 감명을 서로 상반되는 모순이 없이 다른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우리를 당혹케 하거나 혼란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사실상 두 사람이 진리에 대한 견해를 꼭 같이 생각하며 꼭 같은 방법으로 진리를 표현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각자는 자기의 소질과 교육의 배경을 따라 깨닫기 편한 특수한 문제들을 생각하게 된다. 태양 광선은 여러 다른 사물들을 비추고 있으나 그 빛을 받는 사물들은 각기 다른 색깔들을 나타낸다.

주님께서는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당신의 사도들에게 진리를 주셨으며 성령께서 저희 정신을 계발시키는 분량에 따라 진리를 표현하게 하셨다. 그러나 그 인간의 정신이 억지로 어떤 틀에 끼이도록 바짝 죄어진 것이 아니다(서신 53, 1900년).

주님께서는 퇴폐한 감각과 둔하고 세속적인 식별력을 가진 인간들로 당신의 말씀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불완전한 언어로 인간에게 말씀하신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겸비하심이 나타난 것이다. 주님께서는 타락한 인류들이 현재 처하여 있는 위치에서 만나셨다. 성경은 말씀의 단순성에 나타난 완전성을 갖추었을지라도 하나님의 위대한 사상에 대하여 답변할 수 없는데 그 까닭은 무한대에 속하는 사상이 유한한 인간의 사상 전달의 수단으로 완전하게 표현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듯이 성경의 표현들이 과장되기는커녕 오히려 장엄한 사상 앞에 인간의 강한 표현들이 압도당하였으며 필자들이 하는 진리를 전달한다 할지라도 도저히 인간의 표현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죄인들은 다만 하늘 영광의 광채의 그늘만을 간신히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23 [배틀크릭] 장막교회와 대학에서 동일하게 영감에 대한 문제를 가르쳤으며, 유한한 인간들이 스스로 성경의 어떤 부분들은 영감으로 기록되고 또 다른 부분들은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는 등의 위험한 입장을 취하였다. 나는 리뷰지*에 실린 영감에 대한 기사가 주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 아닌 것과 대학에 있는 우리 청년들에게 저들이 가르친 것을 주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신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비판하게 될 때에 저들은 신령하고 거룩한 영역을 과감하게 밟는 격이 되는데 오히려 저들은 두려워하고 떨며 저희 지혜를 어리석은 것으로 간주하고 스스로 감추는 것이 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어떤 부분을 영감적인 것으로 선택하고 또 다른 부분은 영감되지 않은 것처럼 불신하는 태도로서 성경에 대한 판단을 내리도록 어떤 인간도 세우지 않으셨다. 증언들에 대하여도 같은 방법으로 취급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이 일에 함께 하지 않으신다(서신 22, 1889년).

24 캘리포니아주 쎄인트 헬레나 1906년 6월 14일 사랑하는 형제에게: 제가 남 캘리포니아에 있을 때에 형제가 보낸 편지를 받았습니다. 수 주일 동안 그 곳에 있는 우리 요양원 사업의 발전에 관하여 생각하는 일과 지진과 그 교훈에 관하여 제가 받은 계시들을 기록하는 일 때문에 시간과 힘을 바쳤습니다.

지금 저는 형제와 또 다른 이들에게서 받은 편지들에 대하여 답장을 쓰기로 했습니다. 형제의 편지 사연 가운데 어려서 받은 교육 배경의 감화로 증언들에 대한 전적인 신앙을 갖고 있음을 말하였으며 또 형제는 언급하기를 “저는 화잇 여사께서 공중 앞에서나 개인적으로 하신 모든 말씀과 어떤 환경과 처지에서 쓰셨든지 여사께서 쓰신 모든 서신은 마치 십계명처럼 영감으로 기록된 것임을 확실히 믿게 되었으며 그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라고 쓰신 것을 읽었습니다.

나의 형제여, 그대는 제가 쓴 글들을 열심히 연구하였으므로 제 글 가운데서 저 자신이 그러한 주장을 한 것을 결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며 또한 과거에 우리 사업을 이끌어 나가신 선구자들도 그러한 주장을 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대쟁투” 의 서문에 제가 기록한 것을 읽어보셨으리라고 믿습니다만 십계명과 성경에 관한 저의 기록이 영감에 관한 문제를 올바로 이해함에 있어 그대에게 반드시 도움이 되었어야만 할 것이었습니다. 25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저자로 가리키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인간의 손으로 기록되었다. 성경의 여러 책들이 각기 종류가 다른 문체로 기록되었으며 여러 저자들의 특성들을 나타내고 있다. 계시된 진리들은 모두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딤후 3:16)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말로 표현되었다. 무한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당신의 종들의 정신과 심령에 빛을 비추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꿈과 이상과 상징과 표상들을 주셨으며 진리가 계시된 사람들이 인간의 언어로 그 사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였다.”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고 당신의 손으로 친히 쓰셨다. 십계명은 근본적으로 신령한 것이며 인간의 작문으로 꾸며진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들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한 성경은 신성과 인성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연합은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사람의 아들이기도 하셨던 그리스도의 본성 가운데 존재하였다. 그러므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요 1:14)셨다는 말씀은 그리스도께 뿐 아니라 성경에도 적용된다.”

“각기 다른 시대에 계급과 직업이 현격하게 다르고 정신적 능력과 영적 재능이 엄청나게 차이가 있는 사람들로 말미암아 기록되었으며 성경의 모든 책들은 문체에 있어서나 표현된 문제의 특성 가운데 나타난 다양성에 있어서 폭 넓은 대조를 나타내고 있다. 여러 저자들이 서로 다른 표현 방법들을 사용하였으며 같은 진리이면서도 종종 어떤 저자는 다른 저자들에 비하여 매우 인상적으로 표현하였다. 여러 저자들이 다양한 면과 관련성을 가지고 문제를 다루었을 때 신중하고 경건한 학생은 그 가운데서 밝은 통찰력으로 근본적인 조화를 식별할 수 있으나 피상적이며 부주의하고 편견을 가진 독자들에게는 불일치한 모순이나 반대되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여러 사람들이 각기 표현한 만큼 진리도 그 다양한 면들을 나타내고 있다. 어떤 저자는 문제의 한가지 면에 대하여 더욱 식별력과 감상력에 잘 조화되는 점들을 포착하게 된다. 또 다른 사람은 또 하나의 다른 국면을 포착하고 각자가 성령의 지도를 따라서 자기 정신에 가장 강력하게 인상받은 것을 증거한다. 26 각자가 받은 진리 가운데는 서로 다른 면이 있으나 모든 진리를 통해서 완전한 조화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처럼 계시된 진리들은 전체적인 완전성을 이루기 위하여 연합하며 생애의 모든 환경과 경험 가운데서 인간의 요구에 순응하도록 적용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대리자들을 통하여 당신의 진리를 이 세상에 전달하는 것을 기뻐하셨으며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당신께서 친히 인간에게 자격을 주어 당신의 사업을 저들로 수행할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말할 것과 기록할 것을 가려내는 일에 인간의 정신을 지도하셨다. 비록 질그릇들에게 보화가 위탁되기는 하였으나 오히려 그 보화는 어디까지나 천국에서 온 것이다. 증언이 비록 인간 언어의 불완전한 표현을 통해서 전달되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그 증언은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증언이며, 하나님을 믿는 순종하는 자녀는 그 증언 가운데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거룩한 능력의 영광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이 문제와 완전한 조화를 나타내는 또 다른 나의 기록들은 1882년 6월 20일에 기록된 “멸시를 받은 증언들”이라는 기사 가운데서 찾아볼 수 있으며 이 내용은 또다시 교회증언 5권 제31호 62-84페이지에 수록되었습니다. 저는 형제에게 도움이 될까 하여 여기에 몇 단락을 인용하여 소개해 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아 만족에 빠진 태도로 저들이 진리를 옹호하여 온 장기간의 세월을 바라보고 있다. 저들은 현재 지난날에 받은 시련들과 저희 자신이 보인 순종으로 말미암아 마땅히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거에 하나님께 속한 사물들에 있어서의 이러한 순수한 체험은 저들이 성실성을 보존하지 못하고 완전에 이르기 위하여 전진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그들을 하나님 앞에 더욱 큰 죄인으로 만든다. 어제 인정받은 인간의 진실성이 그가 오늘 저지른 거짓된 행실을 속죄해 주지 못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화잇 자매는 그의 남편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가 말하는 증언들은 남편의 정신과 판단에 의해서 꾸며지고 있다’고 말을 하며 증언들을 무시하게 된 변명을 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저희 행동을 정당화시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거나 저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줄 수 있는 무엇을 나에게서 얻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27 그 때 이후로부터 나는 하나님의 회개케 하시는 능력이 교회 안에 보일 때까지 이 이상 아무것도 쓰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영혼에 무거운 짐을 지워 주셨다. 나는 그대들을 위하여 열심으로 수고하였다. 이 일로 인해서 나의 남편과 나 자신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루었는지는 오직 영원한 저 세상에서만 알게 될 것이다. 여러 해 동안 거듭거듭 주님께서 교회의 문제들을 보여 주셨는데 내가 왜 교회의 형편에 대하여 모르고 있었겠는가? 여러 번 반복된 경고들을 주셨으나 아직도 결정적인 변화가 나타나 보이지 않았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경고와 견책에 대한 증언을 그대들에게 보낼 때에 그대들 중 다수가 그 증언은 단순히 화잇 자매의 의견에 불과하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처럼 그대들은 하나님의 영을 모욕하였다. 그대들은 주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예언의 신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나타내셨는지 알고 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나에게 계시로 보여졌다. 나는 과거에 전혀 본 적이 없는 얼굴들을 보았으며 여러 해가 지난 후에 그 얼굴들을 보았을 때 나는 저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단잠에서 일깨워져서 과거에 나에게 전개되었던 문제들에 대한 생생한 감각을 가지고 잠자리에서 일어나 한 밤중에 편지들을 썼는데, 그 편지들은 위기 직전에 하나님의 사업이 큰 재난을 면하도록 대륙을 횡단하여 제 때에 도착하였다. 이러한 성질의 일들이 여러 해 동안에 걸친 나의 사업이었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어떤 과오들을 견책하고 책망하도록 한 능력이 나를 강권하였다. 지난 36년 간의 이러한 사업이 위에서 온 것일까 아니면 밑에서 솟아난 것일까? …”

“내가 콜로라도 주에 갔을 때 나는 그대들로 말미암아 정신적 부담이 너무 컸으며 허약한 몸을 간신히 이끌고 그대들의 장막 집회에서 읽어야 할 여러 페이지에 달하는 글을 써야만 하였다. 나의 몸은 매우 허약하였고 떨렸으나 새벽 3시에 일어나 그대들에게 글을 써야만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통해서 말씀하고 계셨다. 그대들은 혹시 이러한 교통이 한갖 서신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말할는지 모른다. 서신이었던 것만은 사실이나 나에게 보여진 것들을 그대들에게 보여 주기 위하여 하나님의 영께서 일러주어 기록한 것이다. 내가 쓰는 편지들과 내가 증거하는 증언들을 통해서 나는 주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신 것을 그대들에게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면에 단 한가지의 기사도 단순히 내 자신의 개인적 의견을 표현하기 위하여 글을 쓰지 않는다. 내가 쓴 서신과 증언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계시를 통해 나에게 보여주신 것으로서 이 계시는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고귀한 광선이다. …”

“그대들은 어떤 음성을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인정하겠는가? 그대들의 과오를 시정하고 그대들 자신의 행위를 진상 그대로 보여 주기 위하여 주님께서 어떤 능력을 예비로 남겨 두셨는가? 28 교회에 어떤 능력이 작용하고 있는가? 만약 그대들이 모든 불확실한 그늘과 모든 의혹의 가능성들이 완전히 제거될 때까지 믿기를 거부한다면 그대들은 앞으로도 결코 믿지 않을 것이다. 완전한 지식을 강요하는 의혹은 결코 믿음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믿음은 증거 위에 세워진 것이며 어떤 실증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다. 우리 주위에서 들려 오는 다른 모든 음성들이 반대 방향을 따르도록 우리들을 강권할 때에 의무를 다하라는 소리에 순종하도록 주님께서는 요구하신다. 어떤 음성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인지 구분하기 위하여 우리들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인간적인 성향을 거부해야 하고 정복해야 하며 협상이나 타협이 없이 양심의 소리를 순종해야만 하며 이렇게 하지 않을 때에 양심의 호소는 그치게 되고 의지와 충동만이 지배하게 될 것이다.”

“성령의 호소를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기로 작정함으로 성령을 저항하지 않은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말씀이 이르러 온다. 이 음성은 때로는 경고로서, 때로는 권고로서 또 어떤 때는 견책의 말씀 가운데서 들린다. 이것이 바로 당신의 백성에게 보내시는 주님의 빛의 기별이다. 만약 우리가 보다 더 큰 호소를 기다리며 더욱 좋은 기회만을 노린다면 빛이 거두어질 것이며 우리들은 흑암속에 남게 될 것이다. …”

“나의 형제들이여, 그대들이 빛 가운데서 행하기를 게을리 하므로 악을 행하여 흑암이 그대들을 덮어 씌웠다는 말을 해야만 하는 나의 심정이 괴롭다. 그대들은 지금 빛을 인정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정직하게 시인해야 한다. 그대들이 재미를 붙이던 의혹들과 하나님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않던 태만이 드디어 그대들의 식별력을 무디게 하였으므로 현재에 이르러 그대들에게는 흑암이 빛으로 변하였으며 오히려 빛이 흑암으로 변해버렸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에게 완전에 이르도록 전진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리스도교는 전진하는 종교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빛은 온전하고 충분하여서 우리들이 그 빛을 요구하기를 고대하고 있다. 주님께서 주시는 어떤 축복이든지 그 무한한 공급은 끝이 없으며 우리가 아무리 많이 가져 가도 바닥이 나지 않을 만큼 무진장 저장되어 있다. 회의주의 사상은 복음의 신성한 주장들을 농담과 조롱과 거부하는 태도로 취급한다. 세속적인 정신이 많은 사람들의 정신을 오염시키고 소수의 사람들을 지배할 것이다. 하나님의 사업은 오직 대단한 노력과 계속적인 희생을 통해서만 그 기반을 고수하게 될 것이나 결과적으로 최후의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다.”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은 ‘전진하라 그대들의 개인적인 의무들을 수행하라. 그리고 모든 결과들은 하나님의 손에 맡기라’는 것이다. 만약 우리들이 예수께서 길을 인도하시는 대로 전진한다면 우리들은 주님의 승리를 보게 될 것이며 주님의 기쁨을 같이 맛보게 될 것이다. 우리들이 승리의 면류관을 쓰려면 투쟁을 분담해야만 한다. 29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고난을 통해서 완전함을 이루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생애가 안락한 것이었다면 우리들은 쉽사리 태만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생애가 지속적인 극기와 고난과 자기 희생으로 일관하신 두드러진 특징을 지녔으므로 우리들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가 될 때 우리들은 아무런 불평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들이 세상의 빛이신 주님을 안내자로 모신다면 가장 어두운 길에서도 안전하게 걸을 수 있다. …”

지난번 주님께서 그대들의 상태를 나에게 보여 주셨을 때 그대들에게 주신 빛에 대하여 그대들이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주님의 진노가 그대들을 향하여 불타고 있으므로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그대들에게 명백하게 말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러한 말씀들을 나에게 해 주셨다. ‘그대들의 사업은 하나님께서 그대들에게 맡기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위대하신 교사의 말씀을 불순종하였으므로 그대들의 말도 듣지 않을 것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자기네 길이 저희 눈에 바르게 보이므로 오류들이 시정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저들이 듣든지 듣지 않든지 간에 내가 그대들에게 줄 견책과 경고를 저들에게 전해 주라.’ …”

이런 인용문들과 아울러서 교회증언 5권, 654-691페이지에 있는 “증언들의 본질과 감화력”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다시 연구해 보라.

그대가 인용한 증언 제31호[교회증언 5권 67] 의 내용은 정확한 것입니다. “내가 쓰는 편지들과 증언들 가운데 주님께서 나에게 나타내 보여주신 것을 그대들에게 증거하고 있다. 나는 지면에 단 한가지의 기사도 단순히 내 자신의 개인적 의견을 표현하기 위하여 글을 쓰지 않는다. 내가 쓴 서신과 증언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나에게 계시를 통해 보여주신 것으로 이 계시는 보좌로부터 흘러나오는 고귀한 광선이다.” 우리 잡지들이나 제가 쓴 많은 책들 가운데 있는 모든 기사들에 관하여 이것은 진실된 말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계명의 교훈 가운데 있는 말씀에 일치하여 지시를 받았습니다. 또한 저는 그리스도의 교훈 가운데서 말씀을 가려내는 일에 지시를 받았습니다. 내가 쓴 글 가운데서 취한 입장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치심과 일치하지 않습니까?

그대가 물어온 몇 가지 질문들에 대하여 저는 가부간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뜻이 잘못 해석될 수 있는 말들을 해서는 안 됩니다. 제가 이미 지시를 받아 왔거니와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기별들에 관하여 기만적인 주장들을 들으므로 때때로 저희 영혼들이 위험에 쌓이게 될 자들이 당할 위험을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30 제가 기록한 글에 관하여 많은 곡해들과 변전(變轉)과 거짓된 추리들을 통해서 저들은 저희 자신의 개인적인 불신을 변명하려고 노력합니다. 저는 의심, 회의주의 및 거짓된 추리의 안개 속을 걷고 있는 저의 형제들에 대하여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러한 형제들 중에 저들의 영적 시야를 어둡게 하고 있는 구름들을 몰아낸다면 권고의 기별로써 축복을 받게 될 것이며 사실들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밝히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감히 저들과 교통하려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께서 신비주의를 제거하실 때에 저에게 주신 기별 가운데서 과거에 저들이 경험한 것과 같은 완전한 위로와 믿음과 소망을 꼭같이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진리는 분명하게 승리를 거둘 것입니다. 사단의 기만에서 인류를 속량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바치신 주님께서는 졸고 계시지 않으시며 부단히 감시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양들이 낯선 자의 양들이 아니므로 그의 음성을 따르지 않고 돌아설 때 저들은 즐겨 따랐던 한 음성을 듣고 기뻐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귀중한 교훈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시기심이 많은 바리새인들은 만약 저들이 정당하게 받아들이기만 하였더라면 저들의 영적 이해력에 크게 도움이 되었을 그리스도의 행동과 말씀을 그릇되게 해석하였습니다. 주님의 선하심을 사모하는 대신에 저들은 주님의 제자들이 있는 자리에서 불경스럽게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마 9:11)고 주님을 비난하였습니다. 한마디의 답변으로 저들의 악독을 그 즉시로 깨우치실 수 있는 복되신 우리 구세주께 인사의 말을 건네는 대신에 저들은 제자들에게 말을 걸었으며 마치 악의 누룩처럼 저들이 크게 해칠 수 있는 점을 택하여 비난의 재료를 삼았습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못한 사람이었다면 당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의 마음을 든든히 붙잡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신뢰하였으므로 악한 비난자들의 교묘한 모욕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에게 책망을 퍼붓기 위하여 이 악한 비난자들은 거듭거듭 그리스도에게 가서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율법에 합당치 못한 일을 행하니이까”라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들이 우리 주님을 범죄한 자로 판단하였을 때 저들은 주님을 따르는 자들의 마음에 불신의 씨앗을 심기 위하여 주님께 말하지 않고 제자들에게 말하였습니다.

31 이처럼 저들은 의심과 분열을 일으키려고 활동하였습니다. 작은 무리들의 마음 가운데 의심을 품게 하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시도하였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선하고 은혜스리운 사업을 저지시킬 만한 어떤 것을 제자들이 바라보게 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성질의 작용이 오늘날의 참된 신자들에게도 미치게 될 것입니다. 주 예수께서는 마음을 읽으시며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과 당신을 믿는 제자들에 관하여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관심과 사상의 목적들을 식별하십니다. 남의 허물을 찾는 자들에 관한 저희 생각을 답변하여 말씀하시기를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마 9:12)고 말씀하셨습니다. 무례하고 오만한 바리새인들은 다른 사람들의 생애를 견책하는 일에 재빠르면서도 저들 나름의 경건성과 신성성을 주장하는 교만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서신 206, 1906년).

나는 어젯밤 계시 가운데서 나 자신이 우리 신자들이 모인 회중 앞에 서서 현대 진리와 현대 의무에 관하여 결정적인 증언을 하고 있었다. 말이 끝난 후에 많은 사람들이 내 주위에 몰려와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하였다. 저들은 이 문제, 저 문제, 또는 다른 문제들에 대하여 많은 설명들을 요구하였으며 그 때에 나는 “제발 한 번에 한 분씩 질문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분들이 저를 혼란케 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 때에 나는 저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호소하였다. “여러 해 동안 그대들은 주님께서 나에게 해야 할 사업을 주셨다는 많은 증거들을 보았다. 이러한 증거들은 과거에 있어서나 현재에 있어서 동일한 효력을 가지고 있다. 그대들은 이러한 모든 증거들을 인간의 불신에서 오는 어떤 제의 때문에 케케묵은 것으로 여기고 문질러 없애 버릴 것인가?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현재 당황하고 유혹을 받는 많은 자들이 과거에 풍부한 증거들을 가졌던 자들이며 진리를 생각하고 기도하며 이해할 수 있는 기회들을 가졌던 자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저들은 마지막 날의 미혹에서 저희를 건져내시기 위하여 주신 하나님의 경고를 거절하도록 저들에게 영향을 주는 궤변의 본질을 식별하지 못한다.

또 어떤 자들은 내가 선지자*라는 주장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시험에 빠졌으며 저들은 어째서 그러한 주장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32 나는 주님의 사자라는 지시를 받은 것 외에 어떤 주장도 내세운 일이 없으며 나는 젊었을 때에 당신의 사자가 되어 당신의 말씀을 받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분명하고 결정적인 기별을 전하도록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청년 시절에 “당신은 선지자입니까?”라는 질문을 여러 번 받은 적이 있다. 나는 그 질문에 대하여 답변하지 않았다. 나는 주님의 사자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선지자라고 부른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나는 이 칭호에 대하여 아무런 주장도 하지 않았다. 나의 구세주께서는 나에게 당신의 사자가 되라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지시하여 말씀하시기를 “너의 사업은 나의 말을 전하는 것이다. 이상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며 나는 젊은 너를 구별하여 실수하는 형제들에게 기별을 전하고 불신자들에게 말씀을 전파하며 바르지 못한 행동들에 대하여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펜과 음성으로 견책하도록 하였다.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권고하라. 내가 ‘나의 말’을 너에게 밝혀 줄 것이다. 진리의 말씀이 이상한 말로 들리지 않을 것이다. “단순성에서 오는 참된 웅변으로 펜과 음성을 통하여 내가 주는 기별을 학교에서 전혀 배우지 못한 자를 비롯하여 모든 자들에게 전할 것이다. 나의 영과 나의 능력이 너와 같이 할 것이다.”

“나의 방패가 너를 보호할 것이므로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 말하는 자는 네가 아니다. 경고와 견책의 기별을 주시는 분은 주님이다. 어떤 환경에서도 결코 진리에서 이탈하지 말라. 내가 너에게 줄 빛을 발하라. 말세를 위한 기별들은 책에 기록되어야 할 것이며 한때 빛 가운데서 기쁨을 누렸던 자로서 악의 유혹적인 감화에 이끌려 시험에 빠진 자들에게 증거하기 위하여 이 기별은 불후의 것으로 남게 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셨다.

왜 나는 선지자라는 주장을 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이러하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칭 선지자라고 담대하게 주장하고 있으며 이러한 자들은 주님의 사업에 수치 거리가 되고 있기 때문이며 나의 사업은 “선지자” 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 이상의 광범위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업이 처음으로 나에게 맡겨졌을 때 나는 이 무거운 짐을 다른 사람에게 지워달라고 주님께 간청하였다. 사업의 범위가 너무 거창하고 광범위하며 너무 깊으므로 내가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두려워하였다. 33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주님께서 나에게 수행하도록 맡겨진 사업을 성취할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나를 사용하실 여러 가지 방법들을 나에게 분명히 보여 주셨다. 계시들을 나에게 보여주셨으며 “만약 네가 이 기별들을 성실하게 전달하고 끝까지 참고 견딘다면 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될 것이며 생명강의 물을 마시게 될 것”이라는 허락의 말씀을 해 주셨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건강 개혁에 관한 큰 빛을 주셨다. 나의 남편이 하는 사업에 관련하여 나는 의료 선교인이 되어야만 하였다. 또한 나는 병자들을 내 집안으로 이끌어들여 저들을 간호함으로 교회를 위하여 모본이 되어야 하였다. 나는 이 일을 수행하였으며 여인들과 어린이들에게 활발한 치료 봉사를 하였다. 나는 주님의 임명하신 사자로서 그리스도인 절제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말하여만 하였다. 나는 이 사업에 충성된 마음으로 종사하였으며 많은 회중들 앞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가장 참된 의미에 입각한 절제 문제를 말하였다.

나는 언제나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에게 진리를 실천할 필요성에 대하여 권고해야 한다는 지시를 받았다. 진리를 실천한다는 것은 성화를 의미하는 것이며 성화란 주님께 봉사하기 위하여 모든 능력들을 배양하고 훈련하는 것을 뜻한다.

나는 억울한 대우를 받는 자들에 대하여 등한히 하거나 묵과 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을 받았다. 나는 특히 행정적인 권한을 가진 자들이 복음 교역자들에게 독단적이며 횡포에 가까운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하여 항의하라는 책임을 맡았다. 아무리 그 의무가 비위에 거슬릴지라도 나는 압제자를 견책하여야만 하였고 공의를 호소해야만 하였다. 나는 모든 우리 기관에서 공의와 정당성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을 증거할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자들이 연로한 목사들을 돌보지 않는 것을 발견할 때에 저들을 돌보아야 할 의무를 가진 자들에게 그 문제를 제시해야만 하였다. 저희 사업을 성실히 이행한 목사들을 잊어버려서는 안 되며 저들이 건강을 잃고 병약하게 되었을 때에 돌보지 않아서는 안 된다. 우리 합회들은 사업을 위하여 무거운 짐진 자들의 필요를 모르는 척해서는 안 된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으로 유배된 때는 그가 주님께 봉사하는 사업에 평생을 바친 후 노령에 이른 때였다. 34 그 외로운 섬에 있을 때에 그가 평생 동안에 가졌던 것보다 더 많은 횟수에 달하는 하늘과의 교통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결혼한 이후에 부모가 없는 자녀들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보여야만 한다는 지시를 받았으며 한동안 몇 아이들을 내 자신이 맡아서 길렀으며 그 다음에는 그 아이들을 돌볼 가정들을 찾아 주었다. 이처럼 나는 다른 신자들이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모본을 보여 주어야 하였다.

종종 여행을 떠나는 일이 있었으며 글 쓰는 일도 많았으나 세 살로부터 다섯 살에 달하는 아이들을 맡아 길렀으며 저들을 교육하였고 저들이 책임 있는 지위에 오를 인물이 되도록 훈련하였다. 때때로 나는 열 살에서 열 여섯 살에 이르는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와 저들의 어머니처럼 돌보아 주었으며 저들에게 봉사 사업을 위한 훈련을 시켰다. 우리 교회의 모든 신자들이 이러한 사업을 하는 것을 저들의 책임으로 느끼도록 이 문제를 우리 신자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나의 의무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내가 호주에 있는 동안에도 이와 같은 사업을 추진하였으며 온갖 유혹에 노출되어 저들의 영혼을 잃어버릴 위험에 있는 고아들을 나의 가정으로 이끌어 들였다.

호주에 있을 때에 우리들*은 그리스도인 의료 선교사들로서 활동하였다. 때때로 나는 쿠란봉에 있는 나의 가정을 병자들과 고통 당하는 자들을 위한 수용소로 만들었다. 배틀크릭 위생 병원에서 훈련을 받은 나의 비서는 언제나 내 옆에서 선교 간호사의 봉사를 하였다. 아무도 그의 봉사를 비난하는 자가 없었으며 우리들이 병자들과 고통 당하는 자들에게 보여 준 관심으로 말미암아 주민들의 신뢰심을 얻게 되었다. 얼마 후에 쿠란봉에 “건강 요양소”를 설립하게 되었으며 그 때로부터 우리들은 짐을 벗어버릴 수 있었다.

여선지자라는 주장이야말로 내가 결코 해본 적이 없는 주장이다. 비록 다른 사람들이 그 칭호로 나를 부를지라도 나는 저들과 다투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사업이 너무나 많은 분야에 관여된 것이므로 “사자(Messenger)”라는 명칭 외에 다른 것을 사용할 수 없으며 사자란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보내시는 기별을 전달하는 일을 하고 주님께서 명하시는 어떤 일이든지 맡아 수행하는 자이다.

35 지난번 내가 배틀크릭에 갔을 때에 나는 많은 회중들 앞에서 여선지자라는 주장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말하였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두 번이나 거론하면서 “나는 여선지자라는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라는 말을 매번 분명하게 하였다. 비록 이 말 이외에 다른 말을 했다고 할지라도 지금 이 순간에 모든 형제들이 이해해 주기 바라는 것은 내 말의 요지가 오직 내자신이 선지자 혹은 여선지자라는 주장을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는 점이다.

나는 어떤 형제들이 화잇 여사가 여러 해 전에 위생 병원의 숲속과 배틀크릭 교회 및 배틀크릭 근교에서 열린 장막 집회에서 말한 것과 똑같은 주장을 아직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궁금해 한다는 사정을 이해하고 있다. 나는 내 자신이 오늘날 전하고 있는 기별이 지난 60년의 공중 봉사 기간 동안에 전한 기별과 동일하다는 것을 저들에게 보장해 주었다. 그 여성(엘렌G.화잇)은 어린 소녀 시절에 맡은 사업을 아직도 주님을 위해서 동일한 봉사를 하고 있다. 그 여성은 동일한 “교사”에게서 교훈들을 받는다. 그 여성에게 주신 지시는 “내가 너에게 보여 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게 하라. 사람들이 받아서 읽을 수 있도록 내가 너에게 준 기별들을 기록하라”는 말씀이었다. 바로 이것이 그 여성이 수행하도록 노력해야 할 일이다.

나는 많은 책들을 저술하였으며 그 책들은 널리 읽혀졌다. 내 자신의 힘으로는 이 책들 가운데 진리를 증거할 수 없었으나 주님께서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나에게 도움을 주셨다. 지난 60년 동안에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교훈들을 내포한 이 서적들은 하늘에서 온 빛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철저한 조사에 따르는 시험도 견딜 수 있을 것이다.

나는 78세의 나이에도 아직 힘써 일하고 있다. 우리들은 모두 주님의 섭리 가운데서 살고 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의지하는 자들을 결코 떠나시거나 저버리시지 않으실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주님을 신뢰한다. 나는 내 자신을 주님의 보호에 맡겨 버렸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 1:12) ― 1906년 7월 26일 리뷰 앤드 혜랄드.

설교 도중에 나는 여선지자라는 주장을 하지 않았다는 말을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놀랐으며, 이 문제에 관하여 하도 여러 말들을 하므로 나는 설명하기로 결심하였다. 36 다른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여선지자라고 불렀으나 나는 결코 그러한 칭호를 취하지 않았다. 나 자신을 가리키는 칭호를 선정하는 것을 나의 임무로 여기지 않았다. 우리 시대에 자칭 선지자라고 담대하게 주장하는 자들은 종종 그리스도의 사업에 수치거리가 된다.

나의 사업은 이 명칭이 의미하는 것보다 더욱 광범위한 것을 포함하고 있다. 나는 나 자신을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기별을 전하시기 위하여 임무를 맡긴 사자로 여기고 있다(서신 55, 1905년).

나는 선지자의 특징에 관하여 가설적(假說的) 이론들을 늘어놓는 자들이나 선지자의 가상적인 사업에 관련된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을 가지고 씨름하고 있는 자들 때문에 나의 사업이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지시를 지금 받았다. 나의 임무는 선지자의 사업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그 한계를 넘어선다. 나의 임무는 불신의 씨앗을 뿌려 온 자들의 정신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더 큰 것을 내포하고 있다. ― 서신 244, 1906년(배틀크릭 교회의 장로들에게 보낸 것).

내가 계시를 받을 때와 받고 나서의 나의 상태에 관하여 시시로 질문들이 있을 때마다, 나는 주님께서 계시를 주실 필요가 있을 때마다, 나 자신이 예수님과 천사들이 있는 곳에 이끌려 가게 되며 세속적인 사물에 대하여는 완전히 잊어버리게 된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싶다. 나는 천사가 나에게 가리켜 주는 것 이상의 것을 보지 못한다. 때때로 이 지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들에 대하여 나의 주의가 이끌릴 때도 있다.

때때로 나는 먼 장래로 이끌려가서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광경을 바라볼 때가 있다. 그리고 나는 과거에 보여졌던 것처럼 또다시 보게 된다. 계시를 받고 난 후에 나는 내가 본 모든 것들을 즉시로 기억하지 못하며 내가 글을 쓸 때까지는 제시된 문제가 머리에 밝히 떠오르지 않는다. 글을 쓰려고 할 때에 계시에서 보여진 것과 같은 광경이 내 앞에 떠오르게 되고 나는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때때로 내가 계시에서 본 것들이 계시를 받고 난 후에 내 기억에서 사라지게 되며 나는 그 계시가 적용되는 한 무리 앞에 서게 되는 순간에 계시에서 본 것들이 머리에 확실하게 떠오를 때가 있다. 나는 계시를 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계시에 대하여 말할 때나 글을 쓸 때에도 전적으로 주의 영을 의지하게 된다. 37 주님께서 당신이 원하시는 때에 나로 계시에 대하여 말하고 글을 쓰게 하시려고 주님께서 친히 나에게 계시의 내용을 보여 주시지 않는 한 나에게 보여진 것들을 기억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Spiritual Gift 2권, 292, 293, 1860년).

내가 계시를 받으면서, 내가 본 것들을 기록할 때에 주님의 영을 전적으로 의존하기는 하나, 내가 본 광경들을 묘사할 때에 사용하는 언어들은 내 자신의 것이며 천사가 직접 나에게 말한 것만은 언제나 인용문의 표시로 따옴표를 한다(리뷰 앤드 헤랄드, 1867년 10월 8일).

“화잇 자매가 마치 이러한 문제들을 말할 권위를 가지고 있기나 한 듯이 그처럼 결정적으로 말하는 문제에 관하여 어떻게 잘 알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 있다. 내가 그처럼 말할 수 있는 까닭은 맹렬한 폭풍 속에서 검은 구름을 뚫고 번개가 번쩍이는 것처럼 혼란에 빠진 나의 정신에 그러한 사실들이 번뜩 머리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어떤 광경들은 여러 해 전에 나에게 보여진 것이므로 기억에 남지 않은 때도 있으나 교훈을 주실 필요가 있을 때이면 때때로 내가 사람들 앞에 서 있을 때에라도 마치 번개의 섬광처럼 예리하고 선명한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특수한 교훈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다. 그런 때마다 나는 내 머리에 번뜩이는 사실들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것은 내가 새로운 계시를 받아서가 아니요 과거 몇 해 전에 나에게 보여진 사실들이 내 머리에 강렬하게 회상되기 때문이다(The Writing and Sending Out of the Testimonies to the Church, 24).

배워야 할 교훈들이 많은 반면에 배워서는 안 될 것들도 너무나 많이 있다. 오직 하나님과 하늘에 속한 것만이 오류가 없다. 본래 가진 견해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리라, 또한 견해를 바꿀 기회조차 절대로 갖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마침내 실망하게 될 것이다. 우리들이 완강한 고집으로 우리들 자신의 사상과 견해만을 주장하는 한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기도하신 연합의 정신을 가질 수 없다(리뷰 앤드 헤랄드, 1892년 7월 26일).

무오설에 관하여 나는 결코 그것을 주장한 일이 없으며 오직 하나님께서만 절대로 오류가 없으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되시고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약 1:17)다. ― (서신 10, 1895년).

38 캘리포니아 위생병원 1909년 3월 5일 나는 남 캘리포니아에서 다년간 교역자였던 A형제로 말미암아 고민하고 있다. 그는 이상한 말들을 하였으며 나의 증언 가운데 일치하지 않는 모순이 있다고 하여 증언 전체를 부인하는 것을 보고 가슴 아파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지적하는 모순이란 내가 한 말 가운데 파라다이스 밸리 위생 병원의 병실 숫자가 틀렸다는 것이다. A형제가 남 캘리포니아에 있는 어떤 형제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병원에는 병실이 38개밖에 없는데 내가 40병실이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A형제는 이 점을 들면서 증언들에 대한 자신의 신뢰심을 전적으로 상실했다고 그 이유를 나에게 말해 주고 있다. … 파라다이스 밸리 위생 병원의 병실 수에 관하여 소식을 전한 것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계시로서가 아니라 단순히 인간적인 의견으로 말한 것뿐이었다. 과거에 우리 위생 병원들의 병실의 정확한 숫자를 계시로써 보여 주신적이 결코 없었으며 그런 일들에 대하여 내가 지식을 얻게 된 것은 그것들을 알 만한 사람들에게 물어 보아서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반적인 문제들에 관하여 말할 때에 내가 한 말 가운데 그러한 지식을 주님께서 주신 계시로서 알게 되었다든가 계시로 받은 것이라고 믿을 만한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 성령께서 주님의 사업에 관련된 기관들에 대하여 혹은 인간의 심령과 정신에 작용하는 하나님의 역사에 관하여 어떤 사실들을 나타내 보이실 때, 또는 과거에 성령께서 나를 통하여 이러한 사실들을 증거하셨을 때 주신 기별은 그 빛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빛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사람이 신령한 것과 일반적인 것을 혼동한다는 것은 커다란 실수이다. 이러한 경향의 흐름 속에서 우리들은 영혼들을 파멸시키기 위하여 원수가 활약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창조하신 모든 영혼에게 당신을 섬길 수 있는 능력들을 주셨으나 사단은 영혼들을 끊임없이 유혹하므로 이 봉사 사업을 어렵게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사단은 영적 식별력을 어둡게 하여 사람들이 일반적인 것과 거룩한 것을 구분하지 못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39 나는 평생을 통하여 주님께 봉사한 경험으로 이 차이점을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 나에게 기별을 주셨는데, 너는 일찍이 유한한 인간에게 맡겨진 일이 없었던 가장 고상한 사업을 위하여 네 자신을 헌신하라. 나는 너에게 고상한 포부와 능력과 그리스도의 사업에 대한 참된 사명을 줄 것이다. 하나님의 독생자의 생애와 죽으심으로 대가를 지불하고 사신 바 되었으니 너는 네 자신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화된 그대의 자녀의 마음과 봉사를 요구하신다는 기별이었다.

나는 하나님께 나 자신, 내 전체를 바쳤으며 하나님의 모든 요구에 순종하였고 그 때 이후로 나의 펜과 회중들 앞에서 말로 기별을 전하는 일에 내 평생을 바쳤다. 그러한 때마다 나의 말과 행동을 지배하는 이는 내가 아니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일에 대하여 말을 해야만 할 때가 있으며 일반적인 생각들이 차지하거나 일반적인 편지를 써야 할 때도 있으며 교역자들 간에 서로 주고받은 소식들을 옮길 때도 있다. 그러한 말들과 소식들은 하나님의 영의 특별한 영감을 따라 받은 것이 아니다. 어떤 때는 신앙적인 문제와 전혀 관련이 없는 질문들을 받고 이러한 질문들을 답변해야만 할 때가 있다. 또한 우리들은 가옥과 토지들, 물건 매매, 우리 기관들의 위치 및 그러한 위치에 따르는 유리한 조건들과 불리한 조건들에 관하여 서로 대화를 나누게 된다.

어떤 때 나는 여러 가지 이상한 문제들에 관하여 조언을 구하는 편지를 받게 되며 내가 받은 빛에 따라서 저들에게 조언의 편지를 쓴다. 사람들은 빛을 받기를 원치 않으므로 내가 지시 받은 권고를 저들에게 줄 때에 거듭거듭 반대하였으며 그러한 경험을 겪을 때마다 나는 가장 열렬한 심령으로 주님을 찾게 되었다(원고 107, 1909년).

40 나는 현대 진리를 주장하면서도 계시들을 무시하는 자들의 상태에 대하여 보았다. 여기서 말하는 계시는 하나님께서 진리에서 벗어난 자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선택하신 방법이다. 나는 저들이 계시들을 반대함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연약한 도구로 사용하신 벌레같은 인간을 대항하는 것이 성령을 거역하는 것이란 사실을 보게 되었다. 따라서 나는 그 도구에 대하여 반대하는 말을 하는 것은 사소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일이란 위험한 것임을 보았다. 나는 저들이 오류에 빠지는 경우 하나님께서 계시들을 통하여 저들의 오류를 보여 주시기로 하셨으나 저들은 계시들을 통하여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교훈들을 무시하였고 저들 멋대로 길을 택하도록 버린 바 되며 오류의 길로 달리고 마침내 돌아설 수 없는 지점에 이를 때까지 저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할 것에 대하여 보았다. 그 후에 환난의 때에 저들이 고뇌 속에서 하나님께 “주님이시여, 당신께서는 어찌하여 우리들이 바른 길을 찾아 이 때를 위하여 준비할 수 있도록 우리들의 잘못을 보여 주시지 않으셨나이까?” 라고 부르짖는 것을 나는 들었다. 그 때에 천사는 저들을 지적하면서 “나의 아버지께서는 가르치셨으나 그대들은 배우려 하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계시들을 통하여 말씀하셨으나 그분의 음성을 멸시하였으므로 그분께서는 그대들을 자신의 길에서 멋대로 행하도록 버려두셨다”고 말하였다(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을 자들에게, 1849년 1월 31일).

41 지난 반 세기 동안에 풍부한 도덕적인 감화력을 우리들에게 주셨다. 성령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경고와 교훈이 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셨으며 예언의 신에 대한 신자들의 믿음을 확증해 주셨다. 거듭거듭 반복하여 말씀이 이르렀는데 “나의 백성들이 주장하는 진리에 대한 저희 신앙을 확증하기 위하여 그대에게 준 것들을 기록하라.”고 하셨다. 비록 세월이 흐르고 시련을 겪었어도 우리들에게 주신 교훈은 취소되지 않았으며 다년간의 고통과 자아 희생의 경험을 통하여 증언의 진리가 확립되었다. 이 기별을 전하기 시작한 초기에 주신 교훈은 마지막 날까지 따라야 할 안전한 교훈으로서 고수해야 한다. 이 빛과 교훈에 대하여 냉담한 태도를 보이는 자들은 우리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여 주신 올무에 걸려 완전히 사로잡히게 되는 빛의 거부자들이 되리라고 한 그대로 올무를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만약 우리들이 히브리서 2장을 신중히 연구한다면 인간에게 주신 진리의 모든 원칙들을 굳건히 붙잡고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임을 배우게 될 것이다(리뷰 앤드 헤랄드, 1907년 7월 18일).

성령을 통하여 주신 증언의 진리를 도외시하고 악용하기 위한 온갖 가능한 노력들이 곧 나타나게 될 것이다. 우리들은 1846년 이래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분명하고 순수한 기별들을 준비해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한때 우리들과 같은 신앙으로 연합했던 자들로서 신자들에게 기묘하고 선동적인 것이 될 만한 새롭고 이상한 교리들을 찾아 헤맬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다. 저들은 온갖 그럴 듯한 오류들을 소개할 것이며 마치 화잇 여사에게서 들은 것처럼 신자들에게 전하여 영혼들을 기만하려 할 것이다. … 주님께서 주신 빛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은 증거된 교훈으로 아무런 유익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별들을 저들의 어두운 영적 안목을 따라 잘못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어떤 자들은 저희 믿음을 저버릴 것이며 저들에게 거짓됨을 지적해 준 기별의 진리들을 부인할 것이다.

42 또 어떤 자들은 증언들을 조롱 거리로 삼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다년간에 걸쳐 주신 빛에 대항하여 일할 것이며 믿음이 연약한 자들은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기별로 말미암아 큰 도움을 얻게 될 것이다. 비록 개인적으로 보내진 증언이 아닐지라도 저들은 바로 잡히게 될 것이며 명시된 죄악들을 피하도록 인도될 것이다. 주님의 영께서 교훈 안에 계실것이며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던 의혹들이 깨끗이 사라질 것이다. 마치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듯이 증언들 자체가 이미 주어진 기별들을 설명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잘못을 견책하는 기별들을 열심으로 읽고 저들이 구원받기 위하여 해야 할 일들이 무엇임을 배우게 될 것이다. 빛은 깨달음을 줄 것이며 1846년 이래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보내신 기별들 가운데 성경의 진리가 분명하고 단순하게 증거된 것처럼 성령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감명을 주실 것이다. 이러한 기별들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를 잡아야 하며 심령들을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서신 73, 1903년).

성경 말씀이 저희 생각에 유리하도록 공감을 주지 않으므로 어떤 사람들은 이 부분 혹은 저 구절이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등 성경 말씀을 비판하는 자리에 앉아 있다. 저들은 “거짓되이 일컫는”(딤전 6:20) 저들의 철학적 사상과 과학적인 지식에 성경 말씀을 조화시킬 수 없다. 또 다른 사람들은 전혀 다른 이유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의 어떤 부분들을 의심한다. 이리하여 많은 사람들은 원수가 예비한 길을 맹목적으로 걸어가고 있다. 사실상 성경에 대하여 일종의 언도를 내리거나 판단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의 어떤 부분을 비난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에 맡겨진 일이 아니다. 사람이 감히 이런 일을 하려고 생각할 때 사단은 영적 성장을 방해할 분위기를 조성하여 그 영혼이 그런 분위기에서 호흡하게 할 것이다. 사람이 자기 스스로 매우 지혜로운 줄로 생각하고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비평하려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지혜를 매우 어리석은 것으로 간주하실 것이다. 사람은 많이 배울수록 모든 것을 더 많이 배워야 할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가 제일 처음으로 배워야 할 교훈은 가르침을 받으려는 간절한 마음을 품는 일이다. 위대하신 교사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마 11:29)라고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비판과 비난의 정신으로 그대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가르쳐 왔으며 그대들 자신이 사단의 모본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43 그대들은 증언이 자신의 목적에 적합할 때에 마치 그대들이 믿는 것처럼 증언들을 취급하여 그대들이 보급하기 원하는 어떤 내용을 강조하는 뜻으로 증언들을 인용한다. 그러나 그대들 자신의 모순들을 바로잡기 위하여 빛을 주셨을 때 그대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그런 때에도 그대들은 빛을 받아들일 것인가? 증언들이 그대들의 생각에 상반되는 것을 말할 때에 그대들은 그 증언들을 매우 가볍게 취급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별이며 이 사업의 기초를 세우는 데 도움을 준 기별인 동시에 견책, 경고, 교정, 격려의 말씀으로 현재까지 사업을 지탱하여 온 이 기별들에 대한 신뢰심을 흔들어놓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의 정신에 독소 작용을 할 의혹의 말을 여기저기 늘어놓는 것은 어느 누구도 해서는 안 된다. 나는 증언의 길을 가로막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기별을 주셨으며 그대들이 듣든지 안 듣든지 그분의 음성이 울려 퍼질 것이라고 말해 주고 싶다. 그대들의 반대는 나에게 손상을 입힌 것이 아니며 다만 그대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경고와 교훈의 말씀을 주신 하늘의 하나님께 답변해야만 한다. 그대들은 죄인들의 길에 거치는 돌이 된 그대들 자신의 몽매함을 하나님께 답변해야 할 것이다.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사 8:20)리라. 마음에 작용하는 성령의 역사까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험해 보아야 한다. 성령의 감동으로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성령께서는 언제나 성경으로 인도하신다(대총회 일간 회보, 1891년 4월 13일).

B라고 이름하는 한 사람이 화잇 자매를 위하여 특별한 기별을 가지고 멀리 떨어진 미쉬간주에서 찾아 왔다. 그는 화잇 자매는 모세가 자치했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임명된 자이며 B라는 자기는 여호수아의 지위를 차지하도록 하나님의 임명을 받았다고 말하였다. 이처럼 사업이 계승되어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화잇 자매의 사업은 자기가 하는 사업과 연합해야 하며 우리들은 같이 능력 있게 진리를 선포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제멋대로 성경의 많은 부분들을 자기의 기별에 혼합하였으며 그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에게 적용된다고 생각하는 성경절들을 인용하였다. 44 내가 이 사업에 종사하여 오는 동안 이러한 사람들이 많이 일어났었다. 저들은 저희 생각에 하나님의 백성에게 적용될 만한 성경절들을 선택하여 그럴 듯이 꾸며 놓았다. B씨는 크고 강한 음성으로 자기가 선택한 성경절들을 읽었으며 그 성경절들은 백성으로서 우리에게 적용되는 말씀들이라고 하였다. 또한 그는 나도 그의 견해가 성경에 기초한 것이므로 옳다고 하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는 이 성경절들을 그럴 듯이 선택하여 꾸며 놓았으나 과거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처럼 성경 말씀을 왜곡되게 억지로 해석하고 있으며 내가 보기에는 그대가 적용하는 것처럼 그 성경절들이 그러한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대나 다른 모든 미혹된 사람들은 한결같이 힘있는 어떤 성경절들을 적당히 배열하여 자기네들의 견해에 맞도록 적용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하거나 그릇되게 적용할 수 있으며 사람들이나 어떤 사물들을 공공연히 비난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기별을 거부한 자신의 기별을 받아들이기를 반대한 자들이 한때 취했던 입장을 옹호하면서 저들의 운명을 영원히 결정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내가 받은 많은 편지들을 통하여 나는 B와 같은 그런 여러 사람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는 주장을 하면서 우리 백성들로부터 다소간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닐 때, 이러한 사람들은 하늘에 근거를 둔 기별이라면 무엇이든지 포착하려는 태세를 갖추고 있다. 나의 대답을 간청하는 서신들이 쇄도해 온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서 주신 증언들을 제멋대로 취하여 저들의 상상을 따라 적당히 적용하며 연관성이 없는 문장들을 여기저기서 발췌하여 저희 뜻에 맞도록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리하여 불쌍한 영혼들이 갈피를 못 잡고 당황하게 되며 만약 저들이 받은 모든 기별을 순서를 따라 읽었다면 바르게 적용할 데를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며 혼돈되지 않았을 것이다. 화잇 자매로부터 받은 기별의 뜻으로 사용되어야 할 많은 증언들이 화잇 자매를 오전(誤傳)하는 목적에 사용되어 본래 화잇 자매의 정신이나 판단력에 전혀 일치하지 않는 일들을 찬성하는 것처럼 증언들을 오용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그의 사업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 화잇 여사가 말한 것에 관한 온갖 보고들을 사람들이 주고받는다. 그런 보고가 반복될 때마다 과장되거나 오전된다. 만약 화잇 여사가 무슨 할 말이 있다면 그가 말하게 할 것이다. 45 화잇 자매를 위하여 대변인이 되도록 부름을 받은 자는 한 사람도 없다. 제발 화잇 자매가 자기 자신의 기별을 책임지게 하라. 그에 대하여 보고하는 자를 통해 듣는 것보다도 그에게서 직접 듣는 것이 더욱 유익할 것이다(원고 21, 1901년).

그대들이 증언들을 의심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때에 저들에게서 잘못을 발견할 것이며 저들의 감화에서 다른 사람들을 멀리 떼어 놓도록 노력하고, 하나님께서 저들을 통하여 일하시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질 것이다. 그것은 다른 영으로 비롯된 것이다. 의혹과 불신은 조심스럽게 행하지 않는 자들이 품게 되는 것이다.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볼 때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한 성령의 증언들을 통해서 볼 때에 저희 생애가 하나님의 영의 시험에 견디지 못할 것을 가슴 아프게 의식하고 있다. 먼저 저들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복음의 순결한 원칙에 조화를 이루는 대신에 저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여호와의 큰 날에 설 수 있도록 선택하신 바로 그 방법들을 비난하며 그 가운데서 허물을 찾아내려고 한다.

성경의 원칙에 자신의 생애를 조화시키기를 싫어하며, 모든 사람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하는 회의적인 인물이 나타날 때에 하나님의 사업에 화합하지 않는 부류들이 얼마나 신속히 그에게 합세할 것인가. 진정으로 회개하고 진리에 기초를 둔 자들은 그러한 인물이 끼치는 감화나 가르침에서 아무런 즐거움이나 유익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품성의 결함이 있는 자들, 그 손이 깨끗지 못한 자들, 마음이 거룩하지 못한 자들, 생애의 습관들이 해이한 자들, 가정에서 불친절한 자들, 혹은 거래에 있어서 믿음직스럽지 못한 자들은 새로이 소개된 감흥에 분명히 말려들게 될 것이다. 사람의 인격의 척도와 그 사람이 가르치는 교훈의 본질을 밝히 파악하려면 그를 따르는 자들의 성품을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 것이다.

증언들에 대하여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는 자들은 성경에 대한 지식이 없는 자들이 성경에 대한 저들의 불신을 자랑하는 것처럼 거의가 증언들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이다. 46 저들은 증언이 저들을 정죄한다는 것과 증언을 거부할 때에 저들의 죄악적인 생활에서 일종의 안전감을 얻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오류와 불신 가운데는 정신을 당황케 하고 매혹시키는 요소가 있다. 바른길에서 떠난 우리들 자신의 과오를 변명하기 위하여 의문과 의혹을 가지고 불신을 품는 일은 진리에 대한 신앙과 그에 따르는 순종의 생애를 통해서 영혼을 순결케 하는 것보다는 훨씬 쉬운 일이다. 그러나 어떤 훌륭한 감화로 말미암아 한 영혼이 바른 길로 돌아서려고 할 때에 그는 마치 거미줄에 걸린 파리처럼 자기 자신이 사단의 그물에 걸린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자기 자신이 풀려나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느끼게 되고 교활한 원수가 쳐놓은 올무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한번 하나님의 영의 증언들에 대한 의혹과 불신을 용납했을 때 저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공언한 의견에 대하여 고집하고 싶은 강한 유혹을 받게 된다. 저들의 이론과 개념은 마치 검은 구름이 마음을 덮은 것처럼 저들 자신을 가두어 진리를 찬성하는 모든 증거의 빛을 받지 못하게 만든다. 무지로 말미암은 의혹의 방종, 교만 혹은 죄악적인 습관에 대한 애착은 거의 벗어날 길이 없는 속박 속에 영혼을 고정시킨다. 오직 그리스도께서만 그 속박을 깨뜨리는 데 필요한 능력을 주실 수 있으시다.

하나님의 영의 증언들은 등한시되어 온 그분의 말씀에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하여 주어졌다. 만일 지금 저희가 받은 기별들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면 성령께서는 저들의 영혼을 떠나실 것이다. 이 이상 더 어떤 좋은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실수하는 자들을 깨우쳐 저들 자신의 진상을 스스로 보게 할 수 있을까?

증언들에 대한 신앙을 약화시키는 영향들을 감싸는 교회들은 허약하며 비틀거린다. 어떤 목사들은 신자들의 관심을 저들 자신에게 이끌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목사들의 어떤 잘못을 시정하기 위하여 노력을 기울일 때 저들은 독립적인 자세로 물러서면서 “나의 교회는 내가 하는 모든 수고를 찬성합니다”라는 말을 한다.

예수께서는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요 3:20)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 47 증언들 가운데는 저들이 범하고 있는 바로 그 죄들을 지적한 말씀이 있으므로 저들은 그 증언의 말씀들을 읽고 싶어하지 않는다. 젊었을 때부터 계속적으로 증언들을 통하여 경고와 견책들을 받은 자들이 있는데 그로 말미암아 저들이 빛 가운데서 행하고 저들의 생활을 개혁하였을까?-전혀 그렇지 못했다. 저들은 아직도 같은 죄들에 방종하고 있으며 전과 같은 품성의 결함들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죄악들이 하나님의 사업을 망치고 있으며 교회에게 저들의 악한 감명을 주고 있다. 이러한 신자들 특히 지도적인 입장에 있는 자들이 바로잡히지 않으므로 교회에 질서를 세우시려는 주님의 사업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증언들을 통해서 저희 생애와 품성에 아무런 감화를 입히지 못하면서 증언들을 믿노라고 공언한다. 그러한 사람의 결점들은 종종 견책을 받으나 그 견책에 주의하지 않으므로 자제력을 잃고 악행에 굳어질 때까지 방종하여 점점 악화된다. 그런 자는 과로하거나 자기 약점이 노출될 때 자신이 정복하지 못한 품성의 결함을 능가할 도덕적인 능력을 갖지 못하게 된다. 그러한 성품의 결함들이 가장 강한 성격들로 변하여 그를 지배하게 된다. 그를 시험하여 물어보라. “하나님께서 여러 해 전에 증언들을 통하여 그대의 품성 가운데 있는 이런 점을 견책하신 일이 없는가?”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내가 이런 일들에 대하여 그릇되다는 것을 지적한 기록된 증언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왜 그대는 아직도 이러한 그릇된 습관들을 고치지 못하였는가?” 라고 물어 보면 그는 또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나는 견책한 자가 실수를 범했다고 생각하였다. 내가 깨달을 수 있었던 점은 받아들였다. 그러나 내가 깨달을 수 없었던 점은 그 기별을 준 자의 의견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고 견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떤 경우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이 깨달아 고치기를 바라는 바로 그 성품의 결함들을 저들이 고치기를 거부할 경우 저들의 생명을 희생시킬 때가 있다. 저들은 빛의 통로가 되기 위하여 생애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이 살기를 원했으며 저들에게 의에 대한 교훈을 가르쳐 당신께서 받으실 만한 봉사를 하기 위하여 저들의 체력과 정신력을 보존케 하실 수 있었다. 만약 저들이 하나님의 권고를 받아들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만큼 온전한 인물이 되었다면 저들은 진리를 발전시키기 위한 유능한 일꾼들이 될 수 있었을 것이며 우리 신자들의 애정과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높은 위치에 설 수 있었을 것이다. 48 그러나 저들은 하나님께서 저들이 저희 자신을 알고 있는 것보다 저들을 더욱 잘 알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으므로 무덤 속에서 잠자고 있다. 하나님의 생각은 저희 생각과 다르며 하나님의 길은 저들의 길과 다르다. 이처럼 편벽된 사람들은 어디서 일하든지 저희 성벽을 따라 사업을 이끌어 나아갔다. 저들의 운영 방침에따라 지도받은 교회들은 크게 약화되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견책하시는 까닭은 저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능력을 힘입어 저들이 강하게 되고 균형이 잡힌 정신과 성품을 갖게 되기를 바라신다. 그렇게 될 때에 저들은 하나님의 양떼들에게 모본이 될 것이며 교훈과 모본으로 신자들을 천국으로 더욱 가까이 인도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저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거룩한 성전을 짓게 될 것이다(원고 1, 1883년).

빛을 가까이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저들 자신이 택한 길을 걷기로 작정한 자들은 불신과 순종의 사상을 조장할 어떤 요소들을 증언 가운데서 찾아내려고 할 것이다. 이리하여 분열 사상이 침투된다. 왜냐하면 증언들을 비판하도록 만드는 정신은 또한 저희 형제들을 비난 재료들을 찾기위하여 형제들을 살피게 할 것이다(원고 73, 1908년).

사단은 진리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하여 계속적으로 거짓된 것을 밀고나가고 있다. 사단의 최후 기만은 하나님의 영의 증언을 무력하게 만드는 바로 그러한 성질의 것이 될 것이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멸망하리라)”(잠 29:18). 사단은 하나님의 남은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참된 증언에 대한 신뢰심을 동요시키기 위하여 온갖 방법과 종류가 다른 매개물들을 통하여 교묘하게 활동할 것이다(서신 12, 1890년).

증언들에 대한 혐오감이 일어날 것인데 이것은 사단에게 속한 정신이다. 증언들에 대한 교회의 신앙을 동요시키는 것이 사단의 책략이 될 것인데 그 이유는 이렇다. 만일 하나님의 영께서 주시는 경고와 견책과 권고들을 귀담아 듣는다면 사단은 자기의 기만술을 펼 수 있는 길을 마련할 수 없으며 자기의 기만 속에 영혼들을 묶어둘 수 없기 때문이다(서신 40, 1890년).

49 켈리포니아 요양병원 1906년 7월 8 일 사랑하는 형제에게: 주님께서 저에게 위탁하신 사업의 성격을 판단할 수 있고 그 사업의 중요성을 능히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들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증언들을 저울질하는 저들의 기준인 것입니다.

저의 교사께서는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증언들의 특징을 판단하고 분석하며 정의(定義)하는 일을 맡기시지 않으셨다는 것을 이 사람들에게 말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일을 꾀하는 자들은 분명히 결과적으로 큰 과오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저희 맡은 사업에 충실하기를 바라십니다. 만일 저들이 주님의 길을 따른다면 주님께서 저에게 위탁하신 사업이 인간의 고안(考案) 으로 꾸며진 사업이 아님을 밝히 식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업의 초기에 그랬던 것처럼 저들이 증언들을 신중히 읽기만 한다면 증언의 근원에 대해서 혼란을 일으킬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50 하나님의 영의 도우심으로 기록된 많은 서적들은 증언들의 특징에 대하여 산 증거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기별을 받은 초기의 경험에서 하나님의 영은 우리들 소수의 무리가 모인 자리에 임하셨으며 저는 계시를 받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놀라운 빛과 증거를 주셨으며 거룩한 위로와 소망과 기쁨을 주셨으며 주님께 대한 찬양의 소리가 우리들의 입에 끊일 사이가 없었습니다.

저의 남편은 살아 있는 동안에 조력자로 일하였으며 제가 받은 기별을 발송하는 일에 상담자로 도왔습니다. 우리들은 널리 여행하였습니다. 때때로 밤 시간에 빛을 받게 되었으며 어떤 때는 큰 회중이 모인 자리에서 낮에 빛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저에게 시간이 있고 일할 능력이 있을 때는 제가 받은 계시 가운데 주신 교훈들을 제가 직접 성실하게 기록하였습니다. 그 후에 우리들은 함께 검토해 보았으며 제 남편은 문법상의 모순들을 교정하였으며 필요 없는 반복들을 삭제하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수신자(受信者)들에게 정성스럽게 서간체로 써서 보내거나 인쇄할 것은 인쇄업자에게 넘기곤 하였습니다.

사업이 확장됨에 따라 출판물을 준비하는 일에 다른 사람들이 저를 협력하였습니다. 제 남편이 돌아간 후에는 충실한 조력자들이 저를 도와주었으며 저들은 증언들을 베껴 쓰는 일과 출판에 넘길 원고들을 준비하는 일에 불굴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조력자들 중에 제가 기록한 기별의 뜻을 바꾸거나 저들 마음대로 어떤 내용을 추가하도록 묵인했다는 소문들이 돌았으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호주에 있을 때에 제 아들 W.C.화잇은 다른 형제들이 그에게 맡긴 많은 책임에서 벗어나 주님께서 저에게 맡기신 사업에 협력하도록 더욱 많은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주님께서 저에게 지시하셨습니다.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부어줄 것이며 그에게 지혜를 주리라”는 허락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제가 미국으로 돌아온 이래로 주님께서 W.C.화잇을 나의 조력자로 주셨으며 이 사업을 위하여 주님께서 그에게 당신의 영을 주실 것이라는 통보를 저는 여러 번 받았습니다.

51 주신 교훈을 증거하기 위한 적절한 시기와 방법을 아는 데 있어서 많은 지혜와 확고한 판단력과 성령의 깨우치심이 요구됩니다. 견책을 받은 자들의 정신이 강력한 속임수에 빠져 있을 때에 저들은 자연히 증언을 거부할 것이며 그러한 항거적(抗拒的) 태도를 취함으로 그 후에 저들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기가 더욱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이 사업의 초기에 있어서 주님께서 기별을 주시는 순간에 그 자리에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형제들이 참석해 있을 경우 우리들은 다 같이 머리를 마주하여 백성들에게 교훈을 전달할 가장 좋은 방법에 대하여 서로 상의하였습니다. 때때로 기별 중의 어떤 부분들은 회중 앞에서 읽어주지 않기로 결정할 때도 있었습니다. 또 어떤 때는 견책을 받은 자들의 요청에 따라 저들의 과오와 위험들을 지적하고 견책한 내용의 글을 다른 사람들도 유익을 받도록 읽어 준 적도 있었습니다.

종종 견책의 증언들을 읽어 준 후에 충심으로 죄를 고백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 우리들은 마음을 합하여 기도하였으며 주님께서는 저희 죄들을 고백한 자들에게 용서하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증언들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풍요한 축복이 우리 회중에 임하였습니다.

신령하신 모사께서 때를 따라 저에게 기별을 주실 때마다 저는 성실하게 그 기별을 받아 기록해 두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제가 기록한 어떤 부분들은 사업의 긴급한 현실적 필요에 응하기 위하여 기별을 받은 즉시로 발송한 적도 있습니다. 또 다른 부분들은 그 증언들을 사용할 적절한 시기가 이르러서 환경의 여건들이 적절한 시기임을 저에게 증거로 나타내 보여 줄 때까지 보류해 두기도 합니다. 때때로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의사들과 목사들 가운데 증언들을 저버리는 경향이 심해졌으므로 저는 저들의 손에 증언들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고 정복한 바로 그 정신에 굴복하므로 저들은 정신과 마음의 문을 열고 원수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거짓된 행로를 따르며 기만적인 계획 밑에서 수고하므로 저들은 증언들 가운데서 실제로 있지도 않은 엉뚱한 것을 읽게 될 것이며 저들이 귀를 기울여 온 거짓된 증거와 일치한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52 저들 자신의 점화(點火) 로 피운 불빛 속에서 증언들을 읽으므로 저들 자신이 기만당하고 다른 사람들을 기만할 것입니다.

어떤 때는 이런 일도 있습니다. 매우 윤곽이 뚜렷하며 결정적인 견해들을 받아 기록한 후에 그것을 즉시로 발송하지 않고서 견책을 받을 자들에게 먼저 개인적인 서신을 써서 저들의 정신을 변화시켜 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만약 이러한 노력들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할 때에 저들이 증언들을 듣건 혹은 기별의 진실성을 부인하건 간에 책망과 견책으로 가득 실린 기별들을 저들에게 보냅니다.

만일 과오를 지적당한 자들이 저들의 잘못을 고백한다면 원수의 마력(魔力)은 여지없이 깨어지고 말 것입니다. 저들이 회개하고 저희 죄들을 버린다면 하나님께서는 미쁘시고 의로우시므로 저희 죄를 사하실 것이며 모든 불의에서 저희를 깨끗게 하실 것입니다. 죄를 사유하시는 구세주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저들의 더러운 두루마기를 벗기시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히실 것이며 저희 머리에 아름다운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이 악에서 돌이키지 않는 한 크신 심판의 날에 설 수 있는 성품을 계발할 수 없습니다.

때때로 개인적인 생애 가운데 숨겨져 있는 부정한 것들이 제 앞에 공개될때가 있으며 견책과 경고의 기별을 보내라는 명령을 받게 됩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이 원수의 거짓된 학문에 귀를 기울이므로 저의 사업을 마치 거짓 선지자의 사업처럼 비난할 것이며 증언이 마치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된 말씀으로 변화시킬 우려가 있는 것처럼 해석할 것이라는 기별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사단은 졸지 않고 깨어 있으며 과거에 주님의 사업에 참여했던 자들로서 저들 스스로 사단의 꾀임에 넘어간 어떤 사람들은 주신 기별을 그릇되게 이용하는 일에 선동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저들은 견책의 말씀을 듣기 싫어하고 권고의 말씀을 듣지 않고 저들 멋대로 나가 저들이 맡은 일들을 행할 것이므로 교회에게 주신 기별들을 잘못 해석하여 많은 사람들의 정신을 혼란케 만들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께서 저를 선택하신 이상 제가 전해야 할 기별을 받았을 때 저는 그 기별을 전파해야만 합니다. 주님께서는 불신의 심령 속에 있는 모든 오해들을 바로잡는 일을 저에게 맡겨주신 것은 아닙니다. 53 유혹하는 마귀의 제의들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문이 열려 있는 이상 어려운 난관들이 점차로 증가하게 될 것입니다. 빛을 향하여 그 앞으로 나오지 않는 자들의 심령은 불신에 이르도록 꾀임을 받을 것입니다. 만일 나의 시간과 능력이 그러한 문제들 때문에 모두 소모된다면 그것은 다만 사단의 목적을 받드는 격이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저에게 “증언들을 전하라. 그대의 사업은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견책하는 일과 그리스도의 의를 증거하는 일이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기별을 받은 초기에, 한때 버틀러 장로와 할트 장로는 증언들에 관하여 마음에 혼동이 생긴 일이 있었습니다. 저들은 크게 번민하는 가운데 괴로워하면서 울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동안 저들은 저희 자신이 당혹에 싸이게 된 까닭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들의 불성실한 언행에 대하여 까닭을 말하라는 추궁을 받게 되자 할트 장로는 하는 수 없이 그 이유가 하나의 소책자에 관련된 것임을 밝혔습니다. 그 소책자는 화잇 자매의 계시들의 내용을 다룬 것인데 저들이 아는 견지에서 몇몇 계시들이 그 책자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이 형제들은 많은 회중들 앞에서 사업에 대한 저들의 신뢰심을 잃고 있다고 강력하게 말하였습니다.

저의 남편은 할트 장로에게 그 소책자 한 권을 건네주면서 표지에 인쇄된 것을 읽어보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는 “엘렌. G.화잇 여사의 신앙적 경험과 이상에 대한 묘사”라고 읽었습니다.

잠시 동안 침묵이 흐른 후 저의 남편은 우리들의 재정적인 형편이 몹시 어려워서 처음에는 작은 소책자를 인쇄할 능력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설명해 주었으며 충분한 자금이 생길 때에 계시의 내용들을 충분히 설명한 큰 책자를 출판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였습니다.

버틀러 장로는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았으며 제 남편의 설명을 다 듣고 난 후에 그는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이고 기도합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때에 여러 사람들이 기도하였으며 울면서 저들의 죄를 자복하였습니다. 그러한 경험들은 희귀한 것이었습니다.

버틀러 장로는 “화잇 형제여, 저를 용서하십시오. 저는 우리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빛의 일부를 화잇 형제가 우리들에게 숨기고 있는 줄로 오해하였습니다. 화잇 자매여,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놀라운 방법으로 온 회중에 임하였습니다(The Writing and Sending Out of the Testimonies to the Church, pp.3-9).

54 캘리포니아 위생 병원 1907년 10월 23일 사랑하는 형제, (F.M.) 월칵스에게: 저는 형제가 보낸 편지를 잘 읽었습니다. 어떤 자매가 화잇 자매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자기가 차지하기 위하여 선택함을 입었다고 생각하는 것에 관하여 저는 “그 자매가 정직한 여성일는지는 모르나 분명히 꾀임에 빠져 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 남편이 돌아가신 지 약 1년 후에 저의 건강은 매우 허약해졌으며 얼마 오래 살지 못할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힐즈버어그 장막 집회에서 저는 많은 사람이 모인 천막에 인도되었습니다. 제가 누워 있던 긴 안락 의자에서 저는 저를 일으켜 세워 연단에 설 수 있도록 부축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저는 신자들과 작별하는 몇 마디의 인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말을 시작하려 할 즈음에 하나님의 능력이 저에게 임하였으며 온 몸에 전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회중 가운데 있는 많은 사람들은 제가 몹시 병약한 상태에 있음을 보아서 알 수 있었으며 저의 얼굴과 손에는 핏기가 전혀 없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을 시작했을 때에 청중들은 제 입술과 얼굴에 빛이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으며 저를 위하여 한 이적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저의 약했던 몸이 완전히 나았으며 저는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 경험이 있은 이 후에, 여러 나라에서 주님을 위하여 증언들을 전하게 하시려고 저를 일으키셨으며 사업을 위하여 주님께서 저에게 은혜와 능력을 주실 것이라는 빛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 아들 W.C.화잇이 저의 조력자와 상담자가 되어야 하고 주님께서 그에게 슬기로운 정신과 건전한 마음을 주시리라는 것을 저에게 계시로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그를 인도하실 것이며 그가 성령의 지도와 안내를 깨달아 알 것이므로 진리에서 이탈하지 않을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저에게 다음과 같은 보장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주님께서 그대를 택하여 수행케 하신 사업에 그대를 홀로 두시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에게 진리를 단순한 그대로 사람들에게 증거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진리의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힘을 주실 것이며 그분께서 그대를 인도하고 계시다는 확실한 증거를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성령을 주실 것이며 당신의 은혜와 지혜와 보호하시는 능력을 그대에게 주실 것이다. 55 … “여호와께서 그대의 교사가 되실 것이다. 그대는 기만적인 세력들을 만나게 될 것이며 그 세력들은 범신론과 기타 불신적인 형태 등 여러모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대를 인도하는 대로 따를 때에 그대는 안전할 것이다. 내가 나의 영을 그대의 아들에게 부어 줄 것이며 사업을 수행할 능력을 그에게 줄 것이다. 그에게는 겸비의 미덕이 있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사업의 중요한 부분에 쓰시려고 그를 선택하셨다. 그는 이 목적을 위해서 태어났다.”

이 말씀을 처음으로 주신 것은 1882년이었으며 그 때 이 후로 그에게 지혜의 은사를 주셨다는 보장의 말씀을 여러 번 주셨습니다. 최근 제가 번민에 싸여 있을 때에 주님께서는 “나는 그대를 위하여 내 종 W.C.화잇을 주었다. 그대에게 조력자가 되도록 나는 그에게 판단력을 줄 것이다. 나는 그에게 지혜롭게 일을 처리하도록 재능과 이해력을 줄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저의 사업에 도움이 될 다른 성실한 조력자들을 주셨습니다. 저의 많은 강론들은 기록되고 출판물로 사람들에게 읽혀져 왔습니다. 제가 일하여 온 장기간의 경험을 통해서 밤에 저에게 보여주신 계시들을 나날이 기록하여 왔습니다. 권고와 견책과 격려의 많은 기별들이 개개인들에게 발송되었으며 교회를 위해서 받은 기별들은 정기 간행물이나 책으로 출판되어 여러 지방과 나라에 보급되어 왔습니다. … 사업은 계속적으로 전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제가 기록한 것들을 사람들이 읽게 하기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불원간에 몇 개의 새로운 책들이 출판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일할 능력을 상실한다 하더라도 저의 성실한 일꾼들이 사업을 추진해 나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 마지막 날에 살고 있는 우리 백성들은 풍부한 빛을 받아왔습니다. 저의 생명이 오래 지탱되든 안되든 간에 저의 기록들은 계속적으로 말할 것이며 세월이 지속되는 한 그것들이 해야 할 사업은 전진할 것입니다. 저의 기록들은 사무실 안에 수북히 정리되어 있으며 비록 제가 오래 살지 못할지라도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이 말씀들은 계속 살아서 백성들에게 증거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기력은 아직도 남아 있으며 저는 더 많은 유익된 사업을 계속하려고 합니다. 56 제가 주님께서 강림하시는 그 날까지 살게될는지 모르며 비록 그 때까지 살지 못한다 할지라도 저는 “지금 이후로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계 14:13)는 말씀이 저에 대하여 보증의 말씀이 될 것을 믿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에 대한 보증과 제가 매일 그분의 지도하심과 안내하심을 받을 수 있게 하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저는 받은 기별을 기록하는 일로 매우 분주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른 새벽과 밤늦게 저는 주님께서 보여주신 문제들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 사업의 임무는 백성들이 주님의 날에 설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허락은 확실한 것입니다. 때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은 일하며 깨어 살피고 주 예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들은 확고 부동한 신앙과 용기를 가지고 항상 주님의 사업을 이끌어 나가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들의 모든 소망은 그리스도 안에 그 근거를 둔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이 세상의 역사가 전개되는 그대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정밀하게 관찰하고 있습니까? 저들이 받은 경고의 기별에 대하여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생애가 세련되고 정결하게 되며 거룩하신 분의 모습을 반사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가장 큰 관심이 되어 있습니까? 바로 이렇게 하는 것이 어린 양의 피로 씻고 희게 함을 입을 무리 가운데 속해야 할 모든 영혼들의 체험이 되어야만 합니다. 저들은 그리스도의 의의 대열에 참가해야만 합니다. 저들의 이마에는 주님의 이름이 기록되어야 합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 가운데서 즐거워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백성의 이름들을 당신의 손바닥에 새겨 놓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의지하는 어떤 영혼에 대해서도 결코 당신의 관심을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교회 신자들에게 하나님께 철저한 헌신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말해 주어야 합니다. 모든 영혼들이 저들의 희생함으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라. 우리들에게는 매일 매시간마다 복음의 축복이 요구됩니다. 주님의 능력과 임재하심과 사랑에 대한 모든 증거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행복은 하나님께 대한 영혼의 바른 행동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처럼 귀한 생각을 주신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생각의 표현과 나타내는 행동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최근에 받아서 기록한 증언들보다 더욱 밝히 백성들에게 증거된 것들은 과거에는 결코 없었습니다. 57 하나님께서는 이 증언들을 연구할 중요성에 대하여 우리 신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도록 권고하라는 명령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연구하는 그 일이 지금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제가 남아서 더 일을 하게 되든지 혹은 예수께서 오실 때가지 무덤 속에 잠자고 있든지 간에 이 기별들은 영구적으로 존속될 것입니다.

저는 지금 형제들에게 말합니다.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말씀들을 전하십시오. 착한 행실의 열매를 맺으십시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있”(요 3:36)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라도 속이기 위하여 온갖 수단이 채택될 것이나 주님께서는 틀림없이 당신의 사업을 보호할 것입니다(The Writing and Sending Out of the Testimonies to the Church, pp.10-16).

증언들의 사용 때와 장소는 고려되어야 함 증언들에 관하여 단 한 가지도 무시하거나 물리쳐서는 안 되며 다만 때와 장소는 고려되어야 합니다. 단 한마디의 증언이라도 계제에 맞지 않게 소개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신 빛을 부적당하게 사용할 우려가 있으므로 어떤 문제들은 보류하여야만 합니다. 아무리 사소한 문제를 다룬 것일지라도 모든 것이 중요하며 적절한 시기에 증언들이 전달되어야 합니다. 지난날에 증언들을 출판하기 위하여 넘기기 이전에 신중하게 준비 작업을 하였습니다. 아직도 이러한 신중성을 유지하며 증언을 처음 받아 기록한 후에 철저히 검토해 봅니다.

저들에게 하나님의 독생자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고 말하십시오. 저들 앞에 성경 말씀을 제시하십시오. 진리의 말씀을 그릇되게 해석하고 그릇되게 증거할 자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저들의 눈은 어두워졌으며 저들은 사단이 저들을 위하여 꾸며놓은 표상들과 해석들을 진열해 놓았으며 화잇 자매가 말한 증언에 대하여 전혀 엉뚱한 의미의 해석을 붙일 것입니다. 마치 유다가 죄의 편에 서서 그리스도를 따른 것처럼 사단도 자기 자신이 그리스도의 자녀처럼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허위 진술을 일삼는 사단의 학교에서 저들 자신을 교육하였습니다. 스가랴 3장을 보면 그러한 자들에 대한 묘사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당신의 교회만큼 하나님께 더욱 사랑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사단은 인간의 정신에 작용하였으며 기만적인 방법으로 꾸준히 거룩한 믿음을 배신하도록 역사할 것입니다.

58 편찬과 출판 책을 저술할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며 자신의 구상력을 따르고 자신의 작품들을 출판하며 우리 출판사의 추천을 받은 양 주장하는 자는 반드시 이 저서 가운데 이 세상에 파종할 풍성한 가라지들이 있음을 저는 확신합니다. 심지어는 우리 신자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으며 저들이 원하는 어떤 문제를 가지고 신자들에게 감동을 줄 목적으로 저의 기록들을 이용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해 달라고 간곡히 호소해 올 때도 있습니다.

제가 이러한 문제들을 말씀드리는 데는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비록 저들이 제안하는 것처럼 선한 의도로서 증언들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저는 그런 방법으로 증언들이 이용되는 것을 감히 허락할 수 없습니다.

비록 제가 이런 제의를 해 온 사람들이 지혜로운 방법으로 묘사한 것처럼 모험적인 일을 능히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잘 안다고 하더라도 저들이 제시하는 방법으로 저의 기록들을 사용하는 것은 추호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만일 증언들을 그런 방식으로 이용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길 것을 고려해야만 합니다. 저자의 마음에 감동을 줄 만한 어떤 문제들을 지지하기 위하여 증언들을 사용할 때에 저들이 발췌한 부분이 증언의 근본적인 의도와 전혀 다른 감명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The Writing and Sending Out of the Testimonies to the Church, pp.25, 26).

59 엘렌G.화잇의 “그리스도인 경험과 계시들에 대한 묘사”, “경험과 계시들에 대한 보충 기록”, “신령한 은사” 1권 등 제일 먼저 나온 엘렌G.화잇의 이 세 책이 1882년에 재판(再版)된 후에(오늘날에 와서 이 세 권을 합하여 “초기문집”을 만들었다.). 어떤 기사의 완결성, 재판된 책 속에 나타난 어떤 기록 및 그보다 먼저 출판된 기사의 중요성에 관하여 심각한 질문들이 있었다. 화잇 여사는 1883년에 이 질문들에 답변하였으며 그 답변이 바로 본장에 취급한 내용이다. “닫힌 문” 의 가르침에 대한 참고적인 말씀을 하였다. “닫힌 문”의 의미에 대한 또 다른 참고문은 ”각 시대의 대쟁투”, 429-432(영문)페이지에 있다. ― 편집자 주 아이오아주의 마리온 시(市)에 사는 C 라는 사람이 최근에 출판한 것으로서 16페이지에 달하는 소책자가 있는데 그 표제를 “화잇 여사의 초기문집과 후일에 나온 출판물들에 대한 비교”라고 하였다. 바로 이 책이 나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 저자는 말하기를 처음에 인쇄된 나의 초기에 받은 계시들 중 어떤 부분들이 엘렌G.화잇 여사의 “초기문집” 이라는 이름으로 최근에 출판된 책에서 삭제되었으며 그 이유는 삭제된 부분들이 가르치는 교리들을 현재 우리 신도들이 거부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자기 자신이 추측한다는 말을 하였다.

따라서 그는 “초기문집”을 내가 제일 처음으로 받은 계시들에 대한 완전한 재판물인 것처럼 고의적으로 속이고 있으며 제일 처음에 기록한 내용에서 약간의 어휘만을 바꾸어 놓았을 뿐이라고 우리들을 비난하였다.

삭제되었다고 말하는 그 부분들을 하나 하나 논평하기 전에 몇 가지 사실들을 언급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60 내가 제일 처음으로 받은 계시들이 소책자*로 출판되었을 때 그 책의 부피는 적었으며 금방 매진되었다. 몇 해 후인 1851년 “엘렌G.화잇의 그리스도인 경험과 계시들”이라는 큰 책이 나왔는데 그 가운데는 추가된 내용들이 많이 있었다.

출판 사업의 초기 역사에 있어서 출판소의 소재지가 너무나 자주 이동되었고 나 자신이 메인주에서 텍사스주로, 또 미시간주에서 캘리포니아주로 거의 쉴 사이 없이 여행하였으며 넓은 대륙을 17회나 횡단하였으므로 나는 처음에 출판된 책들을 거의 다 잃어버리고 말았다. 지난 가을 캘리포니아주의 오클랜드시에서 “초기문집”을 출판하려고 결정하였을 때 미시간주에 편지를 띄워 “경험과 계시들” 1권을 보내 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처럼 책을 빌려 받았을 때 우리들은 제일 처음에 출판된 초기의 계시들에 대한 정확한 사본을 입수(入手)한 줄로 생각하였다. 이리하여 “초기문집”의 서론에도 밝힌 것처럼 원본의 어휘들을 약간 수정하여 재판하게 되었다.

나는 여기서 우리 신자들 중에 누구든지 1851년 이전에 출판된 것으로서 단 한 권의 소책자나 내가 처음 받은 계시를 전체적으로 다룬 소책자들 전부를 가진 분이 있으면 지체하지 말고 즉시 나에게 보내 준다면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을 말해 두고 싶다. 나는 그 책이 재판되는 즉시로 돌려보내 줄 것을 약속한다.

내가 처음에 출판된 내용 가운데서 단 한 가지라도 삭제하려 한다는 것은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며 오히려 과거에 인쇄된 나의 모든 기록들을 공중 앞에 전부 제시하는 것을 큰 만족으로 여길 것이다.

여기에 또 한 가지 밝혀야 할 사실이 있다. 나는 내 이름으로 출판된 것으로 되어 있는 모든 책들에 대하여 다 책임을 질 수는 없다. 최초로 받은 계시들이 처음으로 출판될 즈음에 내가 쓴 것처럼 주장하는 여러 가지 기사들이 나타났으며 그것들을 마치 주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신 것처럼 꾸며 놓았다. 그러나 그 가운데는 내가 믿지 않은 교리들을 찬성하는 내용이 있었다. 이것들은 컬티스씨가 편집하여 신문 형태로 발행한 것이다. 61 그가 어떤 제목으로 글을 썼는지 지금 내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염려와 수고로 보낸 오랜 세월이 흘러간 지금에 와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거의 잊어버렸으나 아직도 그 가운데 명시되었던 중요한 요점들만은 기억하고 있다.

이 사람은 나의 펜으로 기록된 기사들을 취하여 전체를 변조시켰으며 곡해하도록 꾸며 놓았다. 그는 연관성이 없는 말들을 여기 저기서 뽑아서 연결하면서 그 가운데 자기 자신의 견해도 삽입하였으며 마치 나에게 직접 받은 것처럼 내 이름을 붙여 놓았다.

이러한 기사들을 보자마자 우리들은 그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들의 놀라움과 불찬성을 표명하였으며 나의 증언들을 그릇되게 해석하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금하였다. 그에게서 답변이 왔는데 그는 자기 마음에 내키는 대로 출판할 것이라고 하였으며 내가 본 계시들은 자기가 출판한 그대로의 뜻을 내포하고 있음이 분명한 줄로 자기는 알고 있다고 하였고 만약 내가 주님께서 주신 기별들을 기록하였다면 틀림없이 자기가 주장한 대로일 것이라고 답변을 보내왔다. 또한 그는 덧붙여서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계시들을 주신것이라면 자기 마음대로 그 계시들을 이용할 자격이 있다고 말하였다.

아직도 이런 인쇄물들이 더러 떠돌고 있으며 마치 그것들이 나에게서 온 것처럼 소개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런 것들에 대하여 아무런 책임이 없다. “초기문집” 가운데 있는 기사들을 내 자신이 읽어 보았다. 1851년에 출판된 “경험과 계시들”이 우리가 현재 소유하고 있는 초판(初版)이며 우리들이 이보다 더 일찍이 나온 인쇄물이나 소책자 가운데 추가된 부분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는 만큼 누락된 부분이 있다고 말하는 점들에 대하여 나는 책임을 질 수 없다.

C 라는 사람이 언급한 첫 인용문은 1847년에 출판된 것으로서 24페이지의 소책자로 되었으며 “적은 양무리에게 보내는 소식”이라는 제목으로 된 것이었다. 이 가운데 “경험과 계시들”에 누락된 부분이 기록되어 있다.

“저들이(1844년 운동에 믿음을 버린 자들) 다시 제 길에 들어서서 도성으로 향하여 나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버리신 세상의 모든 악인들 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저들은 모두 차례차례로 쓰러졌다.”

나는 여기에 전후의 문맥을 자세히 소개하여 분명한 뜻을 밝히고 싶다.

62 “내가 가족 제단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내게 임하여 나는 점점 높이 올라가서 어두운 세상 위에 아주 높이 솟아오르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나는 돌아서서 세상에 있는 재림 신도들을 찾았으나 저들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 때에 한 음성이 내게 들리기를 ‘다시 보라 그리고 조금만 더 높이 보라’ 고 하였다. 이 음성을 듣고 나는 눈을 들어 세상 위에 높이 올려 뻗혀진 곧고 좁은 길을 보았다. 이 길 위로 재림 신도들이 그 길의 까마득한 끝에 자리 잡은 도성을 향하여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 길의 첫머리에 한 광명한 빛이 환히 저들의 뒤를 비추었는데 한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그 빛은 밤중소리라고 하였다. 이 빛은 그 길을 따라 줄곧 비쳤으며 저들의 발에 빛을 던져 주어 넘어지지 않게 하였다. 저들이 만일 저들 바로 앞에서 저들을 그 도성으로 인도하는 예수님께로 저희 눈을 고정시켰다면 저들은 안전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머지 않아 어떤 사람들이 피곤하게 되자 저들은 그 성에 벌써 들어가게 되기를 기대하였으나 그 도성은 너무 먼 곳에 떨어져 있다고 말하였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스러운 오른팔을 들어서 저들을 격려하시곤 하였는데 그분의 오른팔에서는 빛이 발하여 재림 신도의 무리 위에 휘날렸고 저들은 ‘할렐루야!’ 하고 외쳤다. 어떤 이들은 저들 배후에 있는 빛을 경솔하게 부인하고 말하기를 저들을 이와 같이 먼 곳으로 인도해내신 분은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였다. 저들 뒤에 있는 빛은 사라지고 저희의 발은 완전한 흑암 속에 빠지게 되었다. 저들은 비틀거리며 목표를 잃고 예수님을 그 시야에서 놓쳐버리므로 말미암아 그 길에서 떨어져 어둡고 사악한 저 밑의 세상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제일 처음에 기록된 원문 가운데 있었다고 말하는 다음의 내용은 “경험과 계시들”이나 “초기문집” 가운데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저들이(1844년 운동 때에 믿음을 버린 자들) 다시 제 길에 들어서서 도성으로 향하여 나아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버리신 세상의 모든 악인들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저들은 모두 차례차례로 쓰러졌다.”

위에 말한 내용의 글들은 닫힌 문에 대한 교리를 증거하는 것이므로 나중에 출판된 책에서 이것을 삭제하게 된 원인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에 있어서 우리들이 신자들로서 그동안 믿어오고 현재까지도 고수하고 있는 진리를 가르치고 있을 따름이다.

63 1844년 실망이 있은 후 한동안 다른 재림 신도들처럼 나도 이 세상에 대한 자비의 문이 영원히 닫힌 것처럼 생각하였다. 나의 첫 계시를 받기 전까지는 그런 입장을 취하였다. 우리들의 과오를 시정해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나에게 빛을 주셨으며 우리로 참된 진리를 깨닫게 하셨다.

나는 아직도 닫힌 문에 대한 교리를 믿고 있으나 우리가 처음에 생각했던 그런 조건에서가 아니며 나의 반대자들이 해석하는 그런 뜻에서 믿는 것도 아니다.

노아 시대에 닫힌 문이 있었다. 그 때에 하나님의 영께서 범죄한 인류를 떠나셨으므로 홍수로 멸망 당하였다. 하나님께서 친히 닫힌 문에 대한 기별을 노아에게 주셨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창 6:3).

아브라함 시대에도 닫힌 문이 있었다. 소돔의 거민들에게 자비의 탄원이 그치고 말았으며 오직 롯과 그의 아내와 두 딸만이 살아 남고 그 외의 모든 거민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불에 소멸되고 말았다.

그리스도의 시대에도 닫힌 문이 있었다. 하나님의 독생자께서는 그 시대의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마 23:38)고 선언하셨다.

마지막 날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흐름을 관망(觀望)해 보시면서 요한을 통하여 똑같은 무한하신 능력을 가지신 분께서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계 3:7)다고 선포하셨다.

나는 계시로 보았으며 아직도 1844년에 닫힌 문이 있었다고 믿고 있다. 첫째와 둘째 천사의 기별이 전하는 빛을 보고도 그 빛을 거역한 모든 자들은 흑암 속에 빠졌다. 하늘에서 온 기별의 선포에 참여하신 성령을 받고 빛을 받아들였으나 후에 저희 믿음을 저버리고 저희가 맛본 체험을 마치 미혹을 당한 것처럼 표명하여 하나님의 영을 거역한 자들은 성령의 호소를 더 듣지 못하였다.

빛을 보지 못한 자들은 빛을 거역하는 죄를 범하지 않았다. 하늘에서 온 빛을 멸시하는 부류에 속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영께서 미칠 수 없는 것이다. 64 내가 이미 말한 것처럼 이 부류 가운데는 기별을 듣고도 거절한 자들과 기별을 받기는 하였으나 나중에 믿음을 저버린 자가 다 함께 포함된다. 이런 자들은 경건의 모양을 취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할는지는 모르나 하나님과 산 연합을 갖지 못하고 사단의 미혹에 빠져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이 두 부류에 대한 광경이 계시로 보여졌는데 저들은 미혹된 길을 따르고도 그것을 빛이라고 선언하였으며 끝내 빛을 거역하여 온 세상의 악인들은 하나님께 대하여도 거역할 것이다. 빛을 보지 못한 자들에 대하여는 아무런 말씀이 없었으므로 빛을 거역한 죄는 없을 것이다.

C라는 사람은 내가 “닫힌 문”에 대한 교리를 믿고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1861년 6월 11일의 리뷰 앤 헤랄드에서 인용문을 발췌하였으며 11명의 유력한 신자들이 함께 서명하였다. 발췌된 인용문은 다음과 같다.

“그 당시 우리 앞에 놓여진 사업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거의 막연하고 애매한 것이었으며 윌리암 밀러를 주축으로 한 1844년의 재림 신도들의 무리가 믿고 있던 견해가 잔재(殘在)해 있었는데 그들의 견해란 세상을 위한 우리들의 사업은 이미 끝났으며 과거에 재림 신앙을 가졌던 자들에게 국한하여 기별을 전해야 할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런 신앙에 너무나 철저했기 때문에 어떤 신자 한 사람은 우리 기별을 완전히 포기할 뻔하였으며 그 기별을 전하면서도 자신이 1844년의 운동에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자신의 구원의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었다.”

이 인용문에 관해서 내가 추가해서 말해 두고 싶은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이 기별을 그 형제에게 줄 수 없다고 강경히 주장한 회의 장소에서 나는 계시를 통해서 증언을 받게 되었으며 그 증언의 내용은 그에게 하나님께 대한 소망을 가지고 예수님께 자기 심령을 전적으로 바치도록 격려해 주라는 것이었다. 그 때에 그는 증언을 듣고 그 자리에서 순종하였다.

“적은 양 무리에게 보내는 소식”이라는 책의 다른 부분을 보면 내가 신천 신지에 대하여 묘사하는 장면이 있고 내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 노아, 다니엘 등 그와 같은 많은 사람들” 즉 고대의 거룩한 사람들을 보았다는 기록이 있다. 내가 이런 사람들을 보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우리들을 반대하는 자들은 내가 영혼 불멸설을 믿게 되고 그 때 이후로부터 영혼에 대한 나의 견해를 변개하였다는 억측을 주장하였으므로 나는 그 인용절을 삭제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65 다른 억측들과 마찬가지로 여기에서 말하는 저들의 주장이 거의 진리에 가까운 듯하였다.

1844년에 나는 현재 우리가 믿고 있는 영혼은 불멸설에(the Nonimmortality of the Soul)관한 교리를 받아들였으며 이런 사실에 대하여 자서전(Life Sketches) 170, 171페이지[1880년판, 1915년판 49, 교회증언 1권, 39, 40]를 참고해 보면 알 수 있거니와 나는 결코 말로나 글로써 영혼 소멸설 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주장한 적이 없다. 만약 이 인용절 자체가 영혼 불멸설을 가르친다고 해서 삭제해 버렸다면 우리들은 다른 여러 부분까지라도 삭제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초기문집”의 13페이지[1882년판, 현재 영문판 17, 국문판 18] 에 있는 나의 첫 계시의 내용 가운데서 나는 잠시 동안 예수님 안에서 잠들어 있었던 형제들을 보았다는 말을 하였으며 14페이지[현재 영문판 18, 19, 국문판 18-21]에 나는 한 큰 무리가 저들의 믿음 때문에 큰 환난의 시련을 겪은 것을 보았다는 말을 하였다.

초기문집에 있는 두 인용절뿐만 아니라 “삭제된” 인용절에서도 영혼 불멸설을 가르치는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할 사실은 이런 계시들을 통해서 부활한 성도들이 하나님의 왕국에 모일 그 때의 광경을 내가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심판, 그리스도의 재림, 성도들이 새 땅에서 사는 모습 등이 나에게 전개되었다. 이러한 장면들이 이미 성취되었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을까? 나의 원수들은 순전한 “억측”으로 나를 기만자라고 비난하는 가운데 자극을 받은 저들의 정신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인용구 가운데 “나는 여러 개의 은 철사가 걸려 있는 두 개의 긴 황금 지팡이를 보았는데 그 은 철사에는 광채가 찬란한 포도 송이들이 매달려 있었다”는 내용이 있다.

나의 반대자들은 “광채가 찬란한 포도 송이들이 은 철사에 매달려 있다는 것과 이 은 철사들이 황금 지팡이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서투르고 유치한 표현”이라고 비웃고 있다.

이처럼 조롱하는 말로 나의 기록을 허위 진술한 자의 동기는 과연 무엇일까? 나는 포도 송이들이 은 철사에 접하여 자라고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나에게 보여진 그대로 광경을 묘사할 뿐이다. 66 포도 송이들이 은 철사나 황금 지팡이에 접하여 있기 때문에 자라고 있다는 형식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다만 그러한 광경으로 나타났다고 묘사했을 뿐이다. 누구나 평범한 대화에서 이와 흡사한 표현들을 매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황금 과일(Golden fruit) 이라고 말할 때 그 과일이 마치 값진 금속으로 된 과일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다만 황금의 모양을 보여준다는 뜻으로 그런 표현을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동일한 원칙이 나의 표현에도 적용되며 모든 오해를 제거해 버릴 것이다.

삭제된 또 하나의 다른 문구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자, 형제 자매들이여, 주님께 감사하자. 이 모임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들을 위한 특별한 집회이다.”

이 말 가운데는 현재 우리가 믿지 않고 있는 그런 내용은 하나도 없다. 우리 출판 사업에 관한 언급은 은혜의 시기가 끝나기 이전에 살아 있는 의인들이 하나님의 인을 받게 될 것과 이들이 하나님의 왕국에서 특별한 영예를 누리게 되리라는 우리들의 신앙을 증거할 것이다.

다음의 인용구는 “초기문집”의 25-28페이지(현재 영문판32-35, 국문판32-35) 의 내용 가운데서 누락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사람이 안식일에 대한 진리를 믿고 지켰으며 그날에 주시는 축복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후에 안식일을 포기하고 거룩한 계명을 범하였다면 저들은 스스로 거룩한 도성의 문들을 닫아버려 못 들어가게 될 것이며 그것은 하늘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계신 것과 같이 확실한 진리이다.”

넷째 계명에 대한 진리를 밝히 깨닫고 완전히 받아들였으며 순종에 따르는 축복을 받았으나 후일에 그 믿음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율법을 짐짓 범하는 자들은 만일 저들이 불순종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을 때 하나님의 도성의 문들이 닫혀질 것을 알게 될 것이다.

1851년에 출판된 “경험과 계시들”의 49페이지[초기문집, 영문판, 58, 국문판, 60]에 있는 다음과 같은 나의 증언이 거짓된 것임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인용된 적이 있었다. 67 “나는 예수님께서 지성소 봉사를 거의 끝내가는 것을 보았는데 아주 조금만 더 있으면 그 일이 끝날 것이었다.”

이 문제가 내 앞에 제시되었을 때에 그리스도의 성소 봉사 기간이 거의 끝난 것처럼 보였다. 나의 증언이 시사(示唆)한 것보다 시기가 더 연장되는 듯이 보인다고 해서 내가 거짓되다는 비난을 받아야만 옳을 것인가?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의 증언은 어떠했는가? 그들의 증언도 속이는 것이었는가?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은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들같이 하며”(고전 7:29, 30)라고 말하였다.

바울은 로마의 신자들에게 보내는 그의 편지서 가운데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 13:12)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랑하는 사도 요한을 통하여 밧모섬에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계 22:6, 7)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인류에게 보내는 저들의 기별을 통해서 때가 심히 가까웠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나에게도 항상 이처럼 기별이 전하여졌던 것이다. 이 기별을 받은 초기에 우리가 기대하였던 것보다 시기가 오래 연장된 것만은 사실이다. 우리 구세주께서 우리들이 기대했던 것만큼 속히 나타나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해서 주님의 말씀이 믿을 수 없는 것이 되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약속들과 경고들은 꼭 같이 조건적인 것임을 기억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이 지상에서 완성해야 할 사업을 맡기셨다. 셋째 천사의 기별은 전파되어야 하며 신자들의 정신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백성을 속죄하시기 위하여 들어가신 하늘 성소에 집중되어야만 한다. 68 안식일을 위한 개혁 사업은 전진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율법 가운데 갈라진 틈은 메꾸어져야 한다. 큰 음성으로 기별을 전파하여 지상의 모든 거민들이 경고의 기별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진리를 순종함으로 저들의 영혼을 순결케 하여야 하며, 주님께서 오시는 날에 그분 앞에 흠 없이 설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만일 재림 신도들이 1844년의 큰 실망 이후에 저희 믿음을 지키고 연합의 정신으로 밝혀지기 시작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며 셋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이고 성령의 능력으로 그 기별을 온 세상에 전파하였다면 저들은 이미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을 것이며 주님께서는 그들의 노력과 함께 큰 능력을 베풀었을 것이고 사업은 이미 끝났을 것이며 그리스도께서는 그 즉시 보상을 받아야 할 당신의 백성을 영접하시기 위하여 오셨을 것이다.

그러나 큰 실망의 뒤를 따른 의혹과 불안정한 시기 동안에 많은 재림 신자들은 저희 믿음을 저버렸다. 알력과 분열이 침투하였다. 대다수의 무리들은 말과 글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며 안식일의 개혁을 받아들이고 셋째 천사의 기별을 전파하기 시작하는 적은 무리를 반대하였다. 세상에 경고의 기별을 전하는 한 가지 목적만을 위해서 저들의 시간과 재능을 바쳤어야만 할 많은 사람들이 안식일 진리를 반대하는 일에 열중하였으며 그 대신 안식일 진리를 옹호하는 자들은 이 반대자들에게 답변하며 진리를 수호하는 일에 수고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처럼 사업은 방해를 받았으며 이 세상은 흑암 속에 남아 있게 되었다. 재림 신자들 전체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도리에 굳게 연합하였었더라면 인류의 역사가 얼마나 크게 변하였을 것인가!

그리스도의 재림이 지체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하도록 계획하신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가나안 땅으로 직접 인도하실 것과 그 곳에서 거룩하고 건전하며 행복된 백성으로 살 수 있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이 약속의 말씀을 처음으로 들은 자들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히 3:19)다. 그들의 마음이 불평과 반역과 증오심으로 가득 차 있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저들과 맺으신 당신의 언약을 성취시킬 수 없으셨다.

69 불신, 불평 및 반역이 40년 동안이나 고대의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길을 막은 것이었다. 동일한 죄들이 현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늘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지연시키고 있다. 두번 다 하나님의 허락에 모순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주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 가운데 있는 불신, 세속적인 욕망, 비헌신적인 정신 및 신자들 간에 있는 다툼이 죄와 슬픔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 우리들을 오랫동안 남아 있게 하는 것이다.

초판으로 나온 나의 책 가운데는 있으나 후일에 출판된 책 가운데는 누락되었다고 말하는 또 다른 두 개의 인용구들이 있다. 이 인용구들에 대하여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그러한 문구들이 포함되어 있는 책을 인수하게 될 때 그 인용문들을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장할 수 있으며 나 자신이 스스로 문맥의 전후 연관성을 이해할 수 있고 그 인용문들에 관하여 납득시킬 만한 설명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게 될 것이다.

나의 사업의 초기로부터 나는 많은 미움과 비난과 거짓된 증언으로 곤욕을 치루었다. 반역적이며 형식주의적이고 광신적인 무리들에 의해서, 비열한 오명(汚名), 중상모략하는 보고 등이 서로 경쟁이나 하듯이 다투어가며 수집되었으며 널리 펴져 나갔다. 소위 정통파 교회들이라고 자처하는 교회 목사들이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인들을 대적하기 위하여 사방을 두루다녔으며 화잇 여사를 저들의 화제로 삼았다. 말세의 기롱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파수꾼들이라고 공언하는 이러한 목사들에 의해서 이끌리고 있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 타락한 교회의 목사들 및 제일일 재림 신자들은 화잇 여사를 맹렬히 공격하는 일에 연합하고 있다. 이러한 싸움은 거의 40년 동안 계속되고 있으나 나는 저들의 비열한 언사, 비난 및 멸시에 대하여 마음놓고 언급할 자유마저 느낄 수 없다. 나를 기만자라고 의기양양하게 힐난하는 진리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몇몇 정직한 영혼들이 유혹에 빠지는 일만 없다면 나는 지금에 와서 저들과 대항하여 싸우지 않을 것이다. 정직한 자들의 심령을 도우려는 뜻에서 나는 현재 하고 있는 이런 항변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진리의 빛을 보고도 그 빛을 거부한 자들이나 저들 스스로 완전히 편견된 견해를 받아들이고 불신 사상으로 저들의 영혼을 단단히 감싼 그런 무리들에게 접근하려고 기대하지 않는다.

천국의 대주재이시며 하나님과 동등하셨던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33년동안 계셨으나 주님의 거룩하신 성품을 인정한 자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였다. 70 그렇거늘 하물며 나처럼 비천하고 무가치하며 덧없는 인생이 세상의 구세주께서 거두신 성공보다 더 큰 성공을 어떻게 바랄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이 사업에 처음으로 헌신하고 하나님께서 가라고 명하신 곳에 가고 백성에게 전하라고 주신 기별을 전하게 될 때 반대와 비난과 핍박을 반드시 받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로 인하여 실망하지 않았다. 만일 내가 인간의 칭찬이나 바랐다면 나는 오래 전에 이미 실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예수님을 바라보았으며, 흠이 전혀 없으신 분께서 중상하는 비방의 말로 맹렬한 공격을 받으시는 것을 보았다. 경건의 모양을 고도로 가장한 자들이 첩자(諜者)들로서 구세주께서 가신 길을 따라다녔으며 주님의 길을 방해하려고 전력을 다하여 노력하였다. 비록 주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이셨으나 당신의 원수들에게 저들이 응당 받아야 할 벌을 내리지 않으셨다. 주님께서는 저들에게 복수의 화살을 퍼부을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저들의 위선과 부패를 꾸짖는 날카로운 견책을 하셨으며 당신의 기별이 거절을 당하고 당신의 생명이 위협을 받을 때 조용히 그 자리를 피하여 다른 장소로 옮겨 그 곳에서 생명의 말씀을 전하셨다. 유약한 상태에서도 나는 나의 구세주의 모본을 따르려고 나의 최선을 다하였다.

바리새인들은 얼마나 열심히 그리스도께서 기만자라는 증거를 내세우려고 노력하였던가! 저들은 얼마나 열심히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그릇되게 증거하고 해석하기 위하여 책잡을 말을 살폈던가! 교만, 편견 및 정욕은 하나님의 독생자에 대한 증거를 받아들일 영혼의 모든 통로를 굳게 닫아버리고 말았다. 주님께서 저들의 악을 지적하시고 저들의 행위가 사단의 자녀들이 하는 행위를 드러냈다고 밝히셨을 때 저들은 분노하여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고 하면서 비난의 말을 퍼부었다.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모든 강경한 이론들은 거짓된 증거에 근거를 둔 말이었다. 스데반의 경우에 있어서도 그러하였으며 바울에게도 역시 그러하였다. 그러나 그릇된 편에 유리하도록 발언한 가장 무력하고 가장 신빙성이 없는 말들일지라도 영향을 끼쳤다. 왜냐하면 그런 말들이 참이기를 바란, 성화되지 못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었다. 71 그런 사람들은 불쾌하게 들리는 진리를 말하는 자들에게서 어떤 가상적인 모순이나 과오를 발견할 때에 트집을 잡으려고 열을 낸다.

허위를 탐하는 자들에 의해서 악한 억측들이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처럼 우리들을 에워쌀 때 놀라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를 반대한 자들은 거듭거듭 당신의 말씀의 지혜로 말미암아 어리둥절하게 되었으며 침묵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여전히 모든 뜬 소문에 귀를 기울였고 반대하는 질문을 가지고 또다시 주님께 맹렬한 공격을 가할 수 있는 핑계 거리로 삼았다. 저들은 저희 목적을 포기하지 않기로 굳게 다짐하였다. 저들은 만약 예수께서 당신의 사업을 지속하신다면 많는 사람들이 그를 믿을 것이며 따라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백성들에게 미치는 저들의 영향력을 잃어버리게 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까닭으로 저들은 어떤 비열하고 치사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저들의 악독한 계획을 성취하기 위하여 창피를 무릅쓰고 대들었다. 저들은 헤롯당을 증오하였으나 이 지상에서 그리스도를 제거하는 계획을 구상하기 위하여 저들의 철저한 원수들과 연합하였다.

바로 그러한 것이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오셔서 구원하시려는 인간이 그분께 보여준 정신이었다.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려 하고 진리의 기별을 이 세상에 증거해야 할 자로서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것보다 더욱 유리한 대접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나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견책하고 경고하며 격려하시기 위하여 주신 기별을 무력하게 만들려고 애쓰는 자들에 대하여 전혀 악의를 품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대사(大使)로서 나는 진리를 굳세게 수호해야 한다. 나를 반대하기 위하여 열광적으로 대열에 나선 자들이 어떤 자들인가? 저들이 순결하고 거룩한 믿음의 자녀들인가? 저들은 거듭났는가? 그들은 거룩한 성품의 참여자들인가? 저들은 예수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온유, 겸손한 정신을 나타내고 있는가?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20). 저들은 초대 교회의 제자들을 닮았는가, 아니면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책잡아 사로잡으려고 항상 감시하던 교활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닮았는가? 고대의 믿음을 반대한 옛 사람들의 날카로운 습성들을 살펴보라. 법관들, 제사장들, 서기관들 및 통치자들이 세상의 빛이셨던 그리스도를 대적하기 위하여 저들은 하나 같이 합세하였다.

왜 저들은 그리스도를 정죄하기 위하여 열중하였는가? 72 저들은 주님께서 가르치신 교리와 교훈을 사랑하지 않았으며 저들은 백성들의 관심이 그리스도께 이끌리고 저들이 섬겨온 이전 지도자들에게서 떠나는 것을 보았을 때 매우 불쾌해 하였다.

인간의 본성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조금도 변치 않았다. 나의 길을 막으려 하고 내 말의 감화력을 소멸시키려고 노력하는 자들은 저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수고하고 있다는 망상으로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말라. 저들은 다른 주인을 섬기고 있으며 저들이 행한 그대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사단이 존재하는 한 반역의 정신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단의 정신으로 자극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영을 분별하지 못할 것이며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계 22:11)는 명령의 말씀이 선포될 때까지 성령의 음성을 듣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기꺼이 나에게 주신 빛을 멸시하는 자들의 악의에 대항해야 할 것을 예상하고 있다.

진리를 알고자 하는 모든 정직한 자들을 확신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업의 거룩한 특징을 나타내는 충분한 증거를 주시는 것이 그분의 계획이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의심할 수 있는 모든 기회들을 결코 제거하시지는 않으신다. 의심하고 트집을 잡기 원하는 모든 자들은 그런 계기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의혹과 불신의 길에 저희 발을 들여놓은 자들을 불쌍하게 생각한다. 가능한 한 저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나 과거의 경험을 미루어 보아 저들이 빛을 찾아 돌아오리라는 희망은 거의 희박하다. 저들이 교만을 버리고 육신의 정욕에 속한 기질을 복종시키며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는 자들이 되지 않는 이상 아무리 많은 증거를 제시할지라도 저들에게 진리를 확신시킬 수 없을 것이다.

완강한 고집, 교만한 의견은 많은 자들로 하늘에서 온 빛을 거부하게 만든다. 저들은 자기만이 특히 좋아하는 견해와 성령에 대한 별난 해석들과 위험한 이단설에 집착하며 이러한 과오들을 바로 잡아주기 위한 증언을 들려줄 때 저들은 그리스도 당시의 많은 사람들처럼 불쾌하게 여기고 돌아설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는 자들의 품성과 생애가 얼마나 고결한가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며 이것이 저들에게 신임을 얻게 해 주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저들은 백성들에게 진리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식의 사고 방식은 나의 감정을 몹시 상하게 한다. 73 만약 어떤 추측이나 억측에 의해서 거짓 소문이 떠돌아다니고 그리스도의 대사가 된 자의 품성에 대하여 죄책이 전가(轉嫁)될 때 얼마나 불합리한 경신(經信)의 경향이 미치게 될 것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중상 모략을 과장하며 퍼뜨릴 준비를 하고 있는가! 그러한 자들이야말로 저들의 참된 성품을 드러낼 것이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요 8:47).

중상 모략과 비난은 예수 안에 있는 진리 그대로를 증거하는 자들에게 따라오는 보상이 될 것이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 죄에 대하여 분명한 증언을 전하는 자들은 당신의 이름으로 이 사업을 수행하도록 명하신 주님께서 당하신 것처럼 분명히 미움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저들은 교회의 원수이며 신앙의 원수라는 칭호를 받게 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하기 위한 저들의 노력이 열렬하고 진실할수록 경건치 못한 자들과 위선자들의 적의는 더욱 격렬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러한 대우를 받는다고 해서 실망해서는 안 된다.

우리들은 “못나고 어리석으며” 광신적이고 심지어는 미쳤다는 소리를 듣게 될는지 모른다. 그리스도께서 모욕을 당하신 것처럼 우리들에 대하여도 “저가 귀신들려 미쳤”(요 10:20)다는 말을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들이 수행해야 할 것으로 주님께서 주신 사업은 역시 우리들의 사업이다. 우리들은 인간의 칭찬이나 명예를 구하지 말고 공의롭게 심판하시는 주님께 우리들 자신을 맡기면서 사람들을 예수께로 향하게 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미약한 정도로나마 당신께서 받으신 비난을 받으며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는 자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알고 계신다. 주님께서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므로 시험 당하는 자들을 돕는 방법을 아실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 의롭다고 공언하면서도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에 의해서 나의 증언에 대하여 어떤 곡해가 있든지 나는 겸손한 마음으로 나의 사업에 정진할 것이다. 나는 격려와 견책과 경고의 목적으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증거하라고 말씀하신 것들을 말할 것이다. 이 지상에서의 나의 여생은 얼마 길지 못할 것이다. 나는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충성심을 가지고 나의 아버지께서 주신 사업을 수행할 것이며 나는 나의 모든 행위들이 여호와의 세밀한 검사에 합격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74 미시간주 배틀크릭 1874년 8월 24일 사랑하는 라프보로 형제에게: 저는 서신을 통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마일즈 그랜트 벌딕 부인 및 여러 사람들이 출판한 “위기”(Crisis) 라는 책에 실린 비난들이 거짓된 것임을 밝히고자 합니다.

1844년 시련기가 지난 후에 다른 형제 자매들과 함께 저도 그 때 후로 죄인들이 회개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회개하는 죄인들이 더 없을 것에 대한 계시를 받은 적은 절대로 없었습니다. 저는 분명하게 그리고 마음놓고 단 한 사람도 이 문제에 대하여 말한 저들의 비난들을 정당화시킬 만한 제 말을 들었거나 제 글을 읽은 적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늘 성소에 관한 고귀한 빛이 제 앞에 전개되고 열린 문과 닫힌 문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제가 계시에 관한 증언을 전하기 위해서 동쪽 지방으로 처음 여행할 때였습니다. 우리들은 주님께서 하늘 구름을 타시고 속히 오실 것을 믿었습니다. 저는 빛을 받아 보거나 거절해 본 적이 없는 자들을 위해서 이세상에서 해야 할 큰 사업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신앙적 견지에서 이 문제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제가 주의 오심이 더디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고 비난하였으며 특히 광신적인 신자들의 비난은 신랄하였습니다. 저는 1844년에 하나님께서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문을 여신 것을 보았습니다. 둘째 천사의 기별로 이 세상에 가져온 빛을 거역한 자들은 흑암 속에 빠졌으며 그 흑암의 어두움은 실로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저는 결코 이 세상이 멸망했다거나 영원히 저주를 받았다는 말이나 글을 남긴 적이 없습니다. 저 자신이 비록 죄인이기는 하나 어떤 환경에서도 어느 누구에게든지 이런 말을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이런 가혹한 표현들을 사용하는 자들을 위해서 견책의 기별을 전한 적은 있습니다(서신 2, 1874년).

75 사랑하는 자매에게: 자매께서는 “어떤 신자들이 화잇 여사가 이전에 기록한 것들 중에서 일부를 삭제하는 것은 부정직한 행위이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지적할 것이 있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말하는 자들이 과연 어떤 증거를 댈 수 있을까요? 저는 이전에도 이런 말들이 여러 번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아무런 증거가 없었습니다. “화잇 여사가 제일 처음으로 쓴 교회증언 1권을 보관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분명히 화잇 여사가 재림의 날과 시간에 대한 계시를 받았노라고 기록되었다. 이런 주장은 성경의 원칙에 어긋나는데 그리스도 자신도 그날과 그 시를 모르신다고 하셨고 하나님의 천사들까지라도 모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자매께서는 제가 처음으로 쓴 책에서 재림의 날과 시간에 관한 유일한 기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데 그것은 1844년의 시련기가 지난 후에 말한 것입니다. 그 기록은 “초기문집” 11, 27, 145, 146페이지[현재 영문판 15, 34, 285, 국문판 15, 34, 293]에 있습니다. 이 모든 내용들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직전에 그 날과 그 시가 선포될 것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같은 책 145페이지 [ 현재 영문판 285, 국문판 293] 를 펴서 그 장(章)의 처음부터 읽어 내려가면 하나님의 음성으로 성도들이 환난에서 구원받는 장면이 묘사된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자매께서 이 책을 갖고 계시지 않다면 한 권 구입하셔서 그 가운데 있는 기록들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 문장들은 처음에 출판된 책의 내용과 꼭 같은 것입니다. “하늘이 열렸다 닫혔다 하며 동요하였다.” “산들은 광야의 갈대처럼 흔들렸으며 바위 조각들은 사방으로 휘날렸다. 바다는 가마솥처럼 끓었으며 땅 위로 돌들이 튀겼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오실 날과 그 시간을 말씀하시고 그 백성들에게 영원한 언약을 선포하실 때 한 말씀이 끝날 적마다 온 세상에 메아리쳐 나갔다.”

위에 기록한 것은 그 문단의 일부입니다. 초판의 11, 27페이지[현재 영문판 15, 34, 국문판 15, 34] 의 내용도 같은 때를 시사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강림하시는 정확한 시기에 관하여 제가 본 전체의 묘사가 그 문장들 가운데 있습니다. 76 저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말씀하신 그 시기에 관해서 전혀 아는 것이 없습니다. 저는 그 시간의 선포를 들었을 따름이며 계시가 끝난 후에 그 시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 앞에 전개된 두렵고 엄숙한 사건에 대한 장면은 어떤 언어로도 묘사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모든 광경들은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생생한 실제였으며 이런 광경들이 사라지자 크고 흰 구름이 나타났으며 인자가 그 위에 좌정하고 계셨습니다(서신 38, 1888년).

나의 소녀 시절에 주님께서는 하늘의 영광을 나에게 보여주시는 것을 합당하게 여기셨다. 나는 계시 가운데서 하늘로 올라가게 되었으며 그 때에 천사는 나에게 “보아라!”고 말하였다. 나는 짙은 흑암 속에 있는 세상을 바라보았다. 내가 이 흑암을 바라보았을 때 나에게 엄습한 번민은 말로 형언할 수 없었다.

또다시 “보아라!”는 말이 들려 왔다. 그 때에 나는 또 다시 골돌하게 세상을 바라보았으며 이 흑암 속에 별과 같은 빛의 분출이 온통 산재(散在)해 있음을 바라보기 시작하였으며 그 때에 나는 빛이 점점 밝아지는 것을 보았고 이 도덕적인 흑암 전체에 별과 같은 빛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때에 천사는 “이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리스도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세상의 빛이며 만약 이러한 빛들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심판은 즉시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자들 위에 임하였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나는 이 빛의 작은 분출들이 점차로 밝아지는 것을 보았으며 동에서 서로, 북에서 남으로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것을 보았다.

때때로 이러한 빛들 중의 하나가 어두워지기 시작하였으며 또 다른 빛들은 꺼졌고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하늘에는 슬픔과 애통함이 있었다. 그리고 어떤 빛들은 점점 밝아졌으며 그 광명한 빛은 멀리까지 비쳤고 더 많은 밝은 빛들이 그 빛에 합세하였다. 그 때에 하늘에서는 큰 기쁨이 있었다. 나는 빛의 광선들이 직접적으로 예수님에게서 나와 세상에 있는 빛의 귀한 분출을 형성하는 것을 보았다 (복음교역자, 378-379, 1892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