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강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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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장-성령의 사역과 침례가 필요함

22장 - 성령의 사역과 침례가 필요함

[1891.9.26.안식일. 캘리포니아 힐즈버그, 캘리포니아 장막회에서 한 엘렌G.화잇의 설교]

171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와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사도행전 1장 3절, 12절). 그리고 우리는 다른 곳에서 이 말씀을 읽는다. “저희가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 가”(눅 24:52). 자, 무엇이 그 기쁨을 주었는가? 그 까닭은 그들의 주님이 그들을 떠나시기 때문이었는가? 아니다, 그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분이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이었으며, 성령이 그들 위에 임하신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분은 알다시피 어떤 일정한 시간이 될 때까지 그들에게 예루살렘에 머물라고 명하셨다. 그 때는 언제였는가? 성령이 그들 위에 오실 때까지였다. 우리는 모두 우리 교회에서, 장막회에서, 모임에서, 우리 가정에서 하나님의 백성들 위에 성령의 임하시는 것에 대해 너무 적게 말한다. 성령이 어떤 분인가에 대해 여기 요한복음 14장에 설명이 주어져 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26절).

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그들과 함께 계시는 동안 그것을 받지 못하고 영접할 수 없었는가? 실수하는 자들과 진리에 대해 흑암 중에 있는 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나오는 잘못된 사상 때문이다. 바리새인과 유대인과 서기관과 율법사들은, 인간의 계명을 교훈으로 가르쳤다­주의하라, “하나님의 계명이” 아닌, “사람의 계명”이었다.

이 “계명들은” 매우 확대되었고, 그들은 율법사와 교사들로부터 성경의 잘못된 이해를 아주 많이 들었기 때문에 너무 혼동되어 사단의 고안인 신비주의의 오류에서 진리를 분리하기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고, 거짓으로부터 참을, 가짜로부터 진짜를 분간하기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172 그리고 그들이 구주께서 의미하신 정확한 사상을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진리와 진리의 의미를 계속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구주께서는 완전하고 오, 완전한 빛과 지식이셨으며, 그분은 이 완전함을 그분의 제자들에게 전하기를 매우 갈망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 16:12).

사랑하는 친구여 나는 그대에게 말하기 원한다. 그리스도의 두 번째 나타나심 바로 직전에, 그대는 이 땅과 섞이어 이 세상과 섞이고, 그대의 사업과 근심과 어려움이 그대에게 가득하여 세상적인 것이 최상이 되었고 하늘의 것은 땅의 것에 복종되었다. 이것은 제자들에게도 있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진리의 적용이 있어야만 했으며, 그들이 그때까지 가지고 있지 않은 특별한 거룩한 깨우침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분은 보혜사 성령이 오실 때, 그분이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기억나게 하실 것이며, 그들의 이해가 펼쳐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엠마오로 가는 사람들을 만나셨을 때,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수고하는 사람, 자기들같이 여행하는 모습만을 보았다. 그러나 그분은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그리고 그분은 그들이 왜 슬퍼하며, 그런 슬픔으로 대화를 나누느냐고 물으셨다. 그들은 이 낯선 분에게 물었다. 당신이 예루살렘에 우거하면서 근일 거기서 된 일을 홀로 알지 못하느뇨? 그리스도, 능력이 많으신 분, 권세가 강하신 선지자를 악한 손이 잡아서 십자가에 못박았음이니라. 그러자 그리스도께서는 성경을 그들에게 펼치시고 모세와 선지자로부터 시작하셨다. 173 그분은 바로 이어서 하나님의 그리스도, 자신의 그 역사를 추적하기 시작하셨고, 드러난 모든 것이 거기 성경에 기록된 것을 그들에게 보여 주셨으며, (예언을)그들이 이해하도록 펼치셨으나,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제자들이 머무를 곳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그리스도를 강권하여 그들과 함께 머물게 하였고, 떡을 떼실 때에 그분은 자신을 그들에게 나타내셨다. 그들은, 그분이 떡을 떼시는 중에 바로 그 흔적­그리스도의 방법­을 보았으며, 그 때에 보라, 그분의 십자가의 무서운 자국을. 그리고 그분은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이제 그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말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눅 24:32). 그들 속에서 마음을 뜨겁게 한 것은 무엇인가? 그들의 믿음을 깨우친 것은 성경 안에 있는 조명하는 능력이었다.

우리가 겸손한 심령으로 성경을 연구할 때, 성경에 펼쳐진 단순함 안에서 진리를 바로 붙잡을 때, 그것을 사실과 진리로 믿을 때 심령은 뜨거워질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점화되어, 마음으로부터 우리는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냐?”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계속해서 알 것이다. 그들이 성경을 연구하는 기관 안에 있을 때, 눈물은 얼마나 흐를 것이며, 심령 안에 어떤 기쁨이 있을 것인가! 거기에는 흥분의 요소는 조금도 없고, 단지 청중들에게 펼쳐진 진리의 고귀한 보석에 의해 얻어진 것만 있을 뿐이다.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우리의 표준으로 원한다.

174 그것은 왜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지 못하는가? 자, 나는 그 이유를 그대들에게 말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마 6:24)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는 다른 하나에게 대적한다. 그대들이 아무리 오래 신앙을 공언했다 하더라도 심지어 20 년이나 혹 40 년이 되었다 할지라도, 만일 그대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면, 그대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세상의 영이 들어와서 마음을 사로잡고 모든 주의를 빼앗는 것을 허용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도 모르는 것이다.

누가 마음을 그대에게 주셨는가? 그분은 하나님이시다. 어떤 권리로 그대는 날마다 시간마다, 주마다, 달마다 해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도적질하는 것을 범하는가. 무슨 권리로 그대는 이성의 은사와 지성의 선물을 취해서 그 지성과 이성을 대부분 그대 자신의 세상적인 유익을 위해 투자하는가?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한다.

우리 기관의 신뢰받는 자리에 있는 그대들은 자아 중심적이 되었다. 그대는 이 안에 상업적인 일을 들여 왔다. 신뢰의 자리에 서서 책임을 진 사람들은 너무 크고 무거운 부담에 매여 있어서 멈추어 기도할 수 없다. 그대는 그리스도의 말씀,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요 15:5)를 생각해야 한다. 그대의 봉사에서 그리스도를 제외하면 그대는 거룩하고 속된 불을 분간할 수 없다. 오, 그들은 생애의 염려로 너무 차 있어서 그들 자신이 기도할 수 없게 한다. 하나님 앞에 그들의 위치는 무엇인가? 그대는 계속 그대 자신에게 부담과 염려와 어려움으로 채워서 (속된 생애를) 살게 된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자, 그대가 예수님께 물어 보지 않고 가서 계속 서투른 일, 어설픈 일과 이 세상 것에 집중되어 사업적인 분야­이생의 일시적인 것과 우리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에 의해 흡수되고 조절되는 그대의 애정으로 일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우리에게 영원의 순간이 되는 것을 일시적인 것으로 취급하면 언제가 가장 편리할 때인가? 175 그대가 집회에 가면, 그대는 세상적인 염려와 육체적이고 영적인 압박 가운데 하나님으로부터 뇌의 신경력을 도적질하였기 때문에 깨어 있을 수 없다. 그대는 우리 하나님의 도성을 기쁘게 하는 생명의 샘에서 마시지 않았다. 그대는 레바논의 눈에서 마시지 않고, 골짜기의 독 있는 샘에서 마셨다. 그리고 그대가 결핍된 것은 신앙이다. 이것은 그대가 반드시 가져야 할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 많은가에 대한 질문이 있었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4). 왜 그런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13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 그들은 찾을 필요가 없다. 그들은 투쟁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세상의 조류에 휩쓸리기만 하면 된다. 그들은 격언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표준을 지니고 있고, 세상의 영을 가지고 있다. 성도(saint)와 죄인(sinner)의 구분은 없어져 버렸다.

만일 하나님께서 일찍이 나에 의해 말씀하셨다면, 우리 기관에 개혁이 없고, 우리 모든 교회를 통해 개혁이 없으며, 그대의 눈이 성령의 침례에 의해 열려져 있지 않으면 그대들은 유다와 같이 분명히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대는 유다가 은 삼십에 그분을 판 것처럼 그대의 주님을 바로 팔 것이다. 왜냐하면 사단이 그의 유혹과 함께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의 유혹은 뇌물이다. 만일 네가 나에게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내게 주겠다는 것이다. 176 그리고 자신이 충성스럽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귀한 영혼을 사단에게 팔 것이다. 이익이 있고 영원한 세대를 통해 살아 있을 것들은 작게 생각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대는 세상을 티끌이라고 말하면서 그 티끌을 세상이라고 부른다. 그대는 이런 것에서 최상권을 추구하며 그 티끌을 바로 그대 앞에 취한다. 그리고 세상적인 관습과 세속적이고 원칙적이 아닌 거래가 들어오고 원칙이 지탱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원칙이 유지되는 것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는 하나의 시야도 없이 자아의 영광을 첫째로 삼아서 불경건한 야망이 지배하고 있다. 그대는 그대 자신과 이 티끌은 바로 그대와 하나님 사이에 두고 그대의 인식 속에 영원을 가져가지 않는다.

형제 자매들이여, 우리는 지체 없이 지금 정신을 차리는 것이 좋겠다. 우리는 하나님의 활기 있게 하시는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도록 부르짖는 것이 좋을 것이며, 우리의 영적인 무감각을 치료해 주시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전적인 일어남이 없고 그대가 하나님께 부르짖고 그대의 행로를 바꾸기 시작하지 않으면, 그대는 믿지 않는 자와 같이 분류되거나, 혹은 죽어 있는 동안 살 이름을 갖게 되는 입장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대의 영향은 세상에서 살아 있는 저주이다. 그대의 공언 때문에 그대는 사람들을 사망과 지옥의 길로 이끌며 하나님께서 심판에 그대에게 정해 놓으신 결과로 그대는 법정을 보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대의 사정을 영원히 결정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에 한 목적을 위해 있다. 여기에는 구원받아야 할 영혼들이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 올라가야 할 음성이 있다.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이것은 무엇인가? 그 문제는 무엇인가? “내 백성에게 고하라,”­오, 이것은 하나님의 공언하는 백성들인가?­“그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사 58:1).

177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은 양심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이 죽어 있다. 영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자아에 대해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양심은 부활을 필요로 한다. 필요한 것은 종교가 무엇이냐 하는 것을 아는 것이며, 하늘의 하나님과 산 연결을 갖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그분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읽는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그 때에 거기에 지식이 있다. 나는 그대들에게 묻는다. 왜 그대들은 기도에 그렇게 조금 시간을 바치며, 그대들이 영생을 잡을 수 있도록 그 안에 주어진 인도를 따른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말씀을 연구하며 성경에 그렇게 적은 시간을 바치는가? 그대는 그대 자신과 권속들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데 왜 그렇게 부담을 적게 느끼는가? 왜 그대는 예배의 형식만을 만드는가? 그대들 중 많은 사람들은 만일 그리스도께서 그대들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면 대단히 놀라게 될 것이다. 그대들은 그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대들은 그것을 계산하지 않고 있다. 그대들은 형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대들의 많은 기도는 그대들 머리 이상으로 더 높이 올라가지 않는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대들의 죄를 회개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그대들의 죄를 자백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 때 유쾌하게 되는 날이 이를 것이며 주께서 예수님을 보내실 것이다(행 3:19, 20 참조).

자, 이번 집회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가르쳤고 말하였으며, 그분이 우리 죄를 얼마나 부담 없이 용서하셨는지를 말하였다. 이 모든 것이 그렇다. 갈바리의 십자가에 매달리신 분은 완전한 구주이셨으며, 그대의 정죄가 들어 온 곳도 바로 그곳이다. 희생의 무한함과 완전함 때문에, 그리고 그대의 영적인 가난과 영적인 죽음이 간직되고 있기 때문에, 그대는 복음 가운데 그대 앞에 놓여진 소망을 붙잡지 못하고 그대를 위해 이루어 진 위대하고 무한한 희생으로 그대 자신에게 유익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 회계의 날 그대는 하나님께 어떤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178 영혼들의 회심을 위해 일하는 선교사의 정신을 받지 않았다고 그대는 어떤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책임진 자리에 있는 그대들 중 어떤 이들은 어떤 영혼이라도 그대들 아래에 놓이면 그대들은 종종 독재를 나타낼 것이다. 그대들은 마치 그것이 사람이 아니고 자신의 것인 양 하나님의 재산을 요구한다. 그리고 심지어 말 못하는 피조물의 고결함을 상처 나게 하는 식으로 그들에게 명령한다. 이 정신이 하늘에 가고자 하는 정신인가? 이 정신이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는 분과 함께 거할 수 있는 그런 것인가? 나는 그대에게 말하는데 아니다. 지배하는 것으로 자신을 높이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니고데모에게 그가 가져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신 거듭남을 경험하며 전적으로 완전히 회심해야 한다.

신앙은 개인적인 문제이다. 우리는 단체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교회 책에 우리 이름이 있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며, 우리는 숫자로 구원받지 않는다. 문제는 그것이 내 영혼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 순복하였는가? 누가복음 10장을 보자. 그리스도께 시험으로 주어진 것을 읽어보라.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사에게 대답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이 점에 대한 것을 모두 읽어보자) 나는 하나님께 회심했는가? 그분의 변화시키는 능력이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들었는가? 나는 친절한가? 나는 그리스도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사단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께 공손하며 그분의 재산인 영혼들 안에서 책임을 지고 있는가? 나는 다정한가? 나는 인내하는가? 나는 부드러운가? 나는 그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영혼에 대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정결함이며 우리가 필요한 것은 사랑이다. 우리는 그대들의 상사병 같은 감상주의가 아니라 사랑으로 역사하며 영혼을 정결케 하는 믿음을 원한다. 우리는 오늘날 그것­예수께서 우리를 향해 가지시고 희생의 제단에 놓으신 사랑, 한 사람으로서 그분이 세상에서 멸망당하는 영혼을 위하여 돌아가시며 희생하실 수 있는 사랑을 가지고 있는가? 179 그분은 자신을 온전하고 완전하며 완벽한 제물로 드리셨다. 그분은 세상이 있기 전에 그분의 아버지와 함께 가지셨던 영광을 버리셨다. 그분은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가 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으며, 우리의 허물을 인하여 찔리셨고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상하셨고,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동역자로서 무엇을 하였는가? 우리는 자아를 부정했는가? 우리는 십자가를 높였는가? 우리는 멸망당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주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이루어져야 할 일에 강렬한 관심을 나타냈는가? 하나님께서 유한한 자에게 맡기신 가장 위대한 일에 비례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데 강렬하고 신실한 열망을 나타내는 것이 우리의 사업이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무관심한 것인가? 왜 그렇게 믿음이 없는가? 왜 그렇게 세상적인 마음이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현재의 모습으로 주님을 평안히 만날 수 있는가?

뽐낼 만한 이유가 있는 어떤 사람이라도 있는가? 자신이 아주 적절하고 큰 달란트를 지녔다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이라도 있는가? 누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었는가? 그것들은 그리스도께로부터 그에게 온 것이다. 그렇다면 그대는 그것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대는 이 달란트를 이용하여 세상에 경건과 자아 부정과 자아 희생을 나타내고 있는가? 만일 그대가 이것을 하고 있다면 그대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품성에서의 그리스도와 같은 것, 신앙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성령의 강림이다. 그것을 그대들의 집회에서 말하라. 그것을 그대의 가정 안에서 말하라.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라. 그러나 그대에게 말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영혼을 세상적인 생각, 불결한 생각, 감각적인 생각, 더러운 생각과 악행을 이루는 것에 대로를 만든 사람에게는 임하지 않는다.

180 우리는 죄인에게 세상 죄를 짊어질 수 있는 한 분을 가리킨다. 그분은 세상을 그분의 의로 덮지 않으시고, 죄인들이 회개하고 그들의 품성의 옷을 씻고 어린양의 피로 자신을 희게 할 때까지 그것을 짊어지신다. 그리고 자아를 벗어버린 심령은 다른 것을 위해 준비된다. 그것이 성령의 유입(流入)이다. 그 때에 그대는 이것을 더 이상 억제할 수 없다. 그것은 밖으로 나올 것이다. 그대는 억압당하고 고통 당하는 자들을 위해 일하기 시작한다. 그대는 자아를 잊을 것이다. 자아는 높여지지 않으며, 그대는 자아를 잊고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감취어 질 것이다. 자아가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감취어 질 때, 그리스도의 영이 대화 가운데 흘러나올 것이다.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5).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대를 아버지 앞에 흠없이 제시하실 수 있을 때, 그 문은 열릴 것이며 그대는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의 영혼이 흠이 있고 영혼이 점이 있다면 그 기록이 거기 있을 것이며, 그대는 그것을 심판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깊이 운행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여기에서 육신과 영혼이 하나님에 의해 성화 되는 것이다. “네 마음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삼분의 이가 아니고 사분의 일이 아니고­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분 자신의 신령한 품성으로 사람에게 오지 않으셨다. 그분은 자신의 신성을 인성으로 옷입으셨다. 그분은, 그대가 그분을 볼 수 있도록 이 세상에 그분의 인성과 긍휼하심으로 오셨다. 만일 그분이 천사의 빛이라도 가지셨다면 그대는 그분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의 본성을 취하고 계시며, 우리를 위해 일하고자 이 세상에 바로 우리에게 오시며,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것을 모든 영혼에게 가르치시기 위해 오신다. 181 이제 우리 모두는 그렇게 하고자 하면 그분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그분을 믿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섯은 현명하고 다섯은 어리석은 열 명의 처녀로 대표되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했다. 그들은 종교인들이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그들 중 반은 그들의 심령, 등잔에 은혜의 기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그대들에게 그대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등잔 그릇에 기름으로 표상된 하나님의 성령을 모시고 있는지 질문하기를 시작하라고 간구한다. 여기에 빛이 있다. 그대들은 진리, 그대들에게 제공된 귀한 진리의 보석­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영광스럽게 진리가 펼쳐진 것을 가지고 있다. 주님의 오심은 그대들 앞에 제시되었다.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이 주제는 마땅히 해야 할만큼의 절반도 주지되어 있지 않다. 준비는 필수적이다. 하나님께서는 멈추어야 할 어떤 시간도 주지 않으셨다.

어떤 사람은 말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다른 나라에 선교사를 보내기 위해 돈을 모는 것은 쓸모 없다. 왜냐하면 시간이 너무 짧아 그것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것이다. 그대는 그대의 돈을 대화재의 큰 날 그것을 불살라 버리기 위해 남겨 두는 것보다 그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하나님께 십일조를 바쳐야 한다는 아주 적은 책임감도 느끼지 못하는 수천 명의 사람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것으로 장사하여 배가할 수 있도록 주께서 그들에게 빌려주신 그분 자신의 달란트를 주님께 돌려 드리기를 거부한다. 그분은 그대를 이름으로 아신다. 그분은 그대들의 모든 이름을 그분의 기록에 가지고 계신다. 그분은 동전까지 총계를 아시며 그분이 빌려주신 돈을 그대가 얼마나 많이 도적질했는지를 아신다. 182 그분은 그대 자신의 생계를 위한 양을 주시고 아주 적은 양에 그분의 손을 대신다. 그러나 그대는 하나님께서 그대로부터 돌려 받으시는 것이 있어야 함을 알지 못하고, 그분이 그것에 대한 권리가 있음을 보지 않으며, 그래서 그대는 그것을 다 이기적으로 사용하고 하나님의 보고를 도적질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과 이것을 계속 도적질하는 것을 금하신다. 그대가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분명한 진리를 볼 수 없다는 것은 이유가 없다. 단지 그것은 그대가 바로 그대의 앞에 악한 심령의 이기심을 가지고 있으며 보기를 원하지 않고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 받게 될 때가 오고 있다. 그대가 하나님께 도적질한 것을 회개하고 다윗이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 참조) 라고 말한 것처럼, 주님의 것으로 그분에게 오지 않는다면, 모든 도적질한 행위, 주님의 십일조를 사유한 것이 헤아려질 것이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식탁에 앉을 때 그분은 이 섭리를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것이 온다. 비와 햇빛, 이슬, 그리고 우리에게 복이 되는 모든 것을 그분이 우리에게 주셨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매우 강퍅하고 이기심으로 가득 차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알지 못한다. 다 그렇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우리 중에 많은 이들이 기쁨으로 그분 자신의 것을 주님께 돌려 드리며 기꺼이 그것을 바친다. 우리는 다윗이 한 것처럼 기꺼이 그것을 드린다. 주님의 것을 우리는 기꺼이 주님께 바칠 뿐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해 온 사람이 있다면 그대들은 말할 것이다. “나는 그것을 성경에서 볼 수 없다.” 아니다, 그대는 볼 수 있다. 그대는 하나님께 거짓말한다. 그대는 볼 수 있다. 그대의 경우가 제시되었으며 말라기서 안에 상세히 나와 있다. 그대는 그것을 볼 수밖에없다. 왜냐하면 그대가 추론하는 능력이 있다면 그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는 보기를 원치 않으며 그대의 이기심이 죽지 않도록 그대는 마음이 눈먼 것을 고취시키며, 그리스도께서 안에 들어오셔서 그대를 지배하셔야 한다. 나는 심판을 생각하고 있다. 나는 십일조와 헌물을 하나님께 도적질하면서 빚을 지고 하나님께 서기를 원치 않으며, 내 이름이 불려질 때 그분이 내게 “너는 저주로 저주받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내 주님으로부터 듣기를 원치 않는다. 나는 그분에게서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말을 듣기를 원한다.

183 이제, 우리는 왜 우리가 더 많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 의아해 한다. 그대는 교회와 가정에서 성경 연구 반을 시작하며, 하나님 앞에 자신을 겸손하게 하고, 그분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고 통곡하며 남김 없이 그대 자신을 그분께 드린다. 그리고 그대는 방해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발견한다.

그분은 말씀하신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무엇이 문제인가? 오, 그대는 그분을 듣지 못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주께서 “이것은 내 것이다. 내 것을 다오. 그대는 나머지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내게 내 몫인 십일조와 헌물을 달라”고 말씀하실 때 듣지 않는다. 그래서 그분은 두드리시고 두드리신다. 그러나 그대는 그분을 듣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인가? 세상의 소음이 그대의 귀에 울리고 그대는 듣지 않기 때문이다. 그대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성령이 그대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도록 충분히 멈출 수 없다. 영혼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서 버릴 수 있고 여기 캘리포니아에서 여러분이 꿈꾸지 않은 그런 개혁이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도와주실 것이다. 그대들은 그대들 마음을 관통할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며, 많은 영혼들이 그분께 회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될 것이다.

그들이 내게 일시적인 재화의 손실을 말할 때, 나는 이것을 느낀다. 그것은 영혼은 아니다. 그러나 한 영혼의 손실은 온 세상보다 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막 8:36, 37). 그대는 이 질문에 그대의 창조주께 어떻게 답하겠는지 생각하라,지체하지 말고 지금하라.

이제 우리는 영원을 인식하도록 하자. 날마다 하나님을 위해 살도록 하자. 184 우리는 언제 우리 생애의 기간이 끝나고 그분이 오셔서 “그대의 청지기직에 대한 계산을 내놓으라”고 말씀하실 지 모른다. 우리 각자는 해야 할 사업이 있다. 나는 그대들에게 그분이 언제 이 세상에 오실 것인지 말할 것이다. 그분의 왕국의 복음이 세상의 모든 지역에 전해진 후이다. 그래서 그대들은 서두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민족과 방언과 나라에 복음을 전파하는 우리의 의무를 이행하는 데 충실하도록 우리를 도우실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우리의 책임감을 우리가 일깨우도록 도우실 것이며, 우리 자아로부터 이기심의 모든 요소를 제하여 버리도록 도우실 것이며, 꽃이나 깃털, 혹은 몸치장에 돈이 소비되지 않도록 도우실 것이다. 그대들은 그것을 할 수 없다. 그것은 영혼을 희생하는 것이 될 것이다. 자아를 섬기는 데 그대가 사용하고 있는 시간을, 그대는 성경을 펴서 그대 주위에 진리 밖에서 거의 죽게 된 멸망당하고 있는 영혼들을 깨우고자 하는 데 쓰기를 원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영혼이 선교사가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돌아가셨다. 그대는 목회자를 바라볼 필요가 없다. 그대들은 그들이 짐을 지고 있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그 짐을 지고 있으며, 아주 많은 사람들이 무덤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이유는 그대들 중 어떤 사람들이 지기를 거절한 짐을 그들이 지고 갔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대들이 자신들의 영혼에 떠맡지 않을 짐을 지고 간다. 만일 그대들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영혼을 깨끗하게 보존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완전한 거룩함을 이루어 하나님 앞에 육체와 영혼의 온갖 더러움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한다면, 그대들의 목회자들은 그들이 나아가고자 하는 곳에 있을 것이며, 그대들의 기도는 추수 장에서 예리한 낫같이 그들을 뒤따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유혹이 그대를 열광시켰으며, 세상이 그대를 무감각하게 만들었고, 세상은 그대를 마비시켰다. 우리는 세상을 넘어서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한가지로 사랑스러운 분, 그리고 만인 중의 으뜸이신 분 그분에게 우리의 눈이 고정되기를 바란다.

185 형제들이여, 우리는 그대들이 하나님께 순복하고자 하는지 알기를 원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대를 위해 하실 수 있는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는지 알기를 원한다. 우리는 그대들이 온 하늘­단지 그것을 생각만 해 보라!­ 모든 하늘이 한 선물 안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대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생각하는지 알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주셨을 때 그분은 그와 함께 하늘의 가장 풍성한 보물을 주신 것이다. 그대가 그분과 합력 하기만 하면 이것은 그대의 것이다. 그분은 온 하늘을 주셨다. 그분은 그 한 선물 안에 모든 하늘을 주신 것이다. 온 하늘이 우리의 지배하에 있다. 온 하늘을 우리는 주장할 수 있다. 목회자들이 수고하러 나아갈 때, 그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힘으로 나아간다. 나는 자아를 신뢰하지 않는다. 나는 내 유한한 능력을 신뢰하지 않으며,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분으로부터 나온 변치 않는 약속을 가지고 있다.” 그 때에 그대는 능력의 결핍이 없을 것이다. 더 이상 어떤 확신을 그대는 원하는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그대는 이것을 믿는가? 그대는 이 약속을 믿는가?

우리는 너무 세상적이었으며, 세상적인 것들을 말해 왔다. 우리는 영원이 우리의 인식으로부터 떨어져 나갈 때까지 일상적이고 세상적인 것들에만 우리의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그것을 안으로 가져 올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전에 결코 해본 적이 없는 것처럼 우리가 분기하는 것을 도우실 것이다. 나는 그대에게 말하는데, 이것은 개인적인 일이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며 “저 사람들은 품성에 결함이 있다. 저들은 이렇고 이렇다” 라고 말하지 말라. “그것이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나는 베드로를 말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요 21:22). 그분은 베드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말씀하셨으며, 그 때에 베드로가 요한을 가리키면서 말한다.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자, 이제 그대들은 자신들의 눈을 하나님의 영광에만 고정시켜라. 눈을 한 곳에만 고정시킨다는 것은 무엇인가? 186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그대가 세상은 그대의 인식에서 떠나가게 하고 영원한 실재가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정에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도우신다.

나는 이제 성도가 무엇인지 그대에게 말하기를 원한다. 하늘의 성도는 그가 자신의 가정에서 가족에게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과 꼭 같은 것이다. 그가 가정에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는 교회에서도 그리스도인이다. 그는 하늘에서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이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우리를 시련 중에 두셨다. 그것은 그대에게 어떻게 상관이 있는가? 그대는 시험에서 이기고자 하는가? 그분은, 그대 안에 품성의 어떤 결점이라도 있는지 그대를 입증하고 시험하시기 위해 그대 주위에 상황을 놓으신다. 거기에 어떤 타락함이 있거나, 어떤 세속성이 있든지, 사단적인 경향이 있다면, 그분은 그대를 이런 방법으로 문제에 노출시키고 또 다른 방법으로 문제에 부딪치게 하셔서 이런 점과 저런 점에서 그대를 시험하신다. 우리는 시험받고 입증되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얼마나 될 것인가? 만일 그대가 그리스도의 영을 가지고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모든 영혼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상사병 같은 감상주의가 아니고, 저열한 열정이 아닌 것이다. 그것과는 전혀 같지 않은 것이다. 그대는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것과 같이 사랑할 것이다. 그대는, 청년이나 성인들에게 그들이 걸림돌이 되거나 길에서 물러나거나 불순한 생각을 향한 통로가 되는 경우를 만들지 않도록 신중하게 영혼들을 위한 그 부담을 지기를 원할 것이다. 영혼이 우리를 지으신 분 하나님 앞에 펼쳐지고 깨끗하게 보존되는 환경을 만들라.

아, 방탕의 죄, 그것은 끔찍한 것이다! 그것은 여기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있다. 그들은 그들의 영혼을 더럽히면서도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어떤 이들은 죄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들은 어떤 범죄가 영혼의 성전을 더럽히고 하나님께 죄가 되는지 알지 못한다. 187 그러나 나는 그대에게 왕의 대로를 정결케 하라고 요청한다. 그분의 말씀 안에 있는 귀한 기별, 성경 진리의 큰 빛을 가지고 있는 여기 캘리포니아에 있는 우리 교회들에는 막대한 책임이 놓여져 있다. 그것은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얼마나 큰 책임인가! 그것은 그대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을 대표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 영혼의 고결함 가운데 서야 한다. 만일 그대가 하나님께 신실할 것 같으면 자아는 못 박히게 될 것이다. 자아는 죽어야 하며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 안에 사셔서 그분은 우리의 부르심의 소망이 되셔야 한다. 우리는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대표할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인인가?” 하고 진지하게 물어라. 만일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나는 내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볼 것이다. 그분 안에 나의 영생의 소망이 집중되어 있다.

사람들에게 목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는 모든 사람들은 모든 불법과 온갖 더러움으로부터 자신의 심령을 깨끗케 할 것이며, 어린아이들처럼 심령의 정결한 목적으로 하나님께 나아 오며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볼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 중에 행하실 것이다. 우리는 지금 영예의 그릇이 되라는 자비의 초청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므로 우리는 늦은 비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다. 우리 모두가 해야 할 것은 그릇을 깨끗이 하고 바른 편에 서서 하늘의 비를 받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며, “늦은 비가 내 그릇에 내리게 하소서. 셋째 천사와 연합하게 하는 영광스러운 천사의 빛이 내게 비취게 하소서. 이 사업에 한 분야를 제게 주소서. 저로 하여금 선포하게 하소서. 저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와 동역자가 되게 하소서.” 라고 하면서 계속 기도하는 것이다. 그대에게 말하는데, 이렇게 하나님을 찾을 때, 그분은 그대에게 은혜를 주시며 언제나 그대를 높이실 것이다. 그대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대는, 그대가 못 박힐 특별한 때가 오고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매일 매시간 자아는 죽어야 한다. 188 자아는 못 박혀야 한다. 그리고 신실함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시험이 올 때 영원하신 팔이 그대를 두를 것이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그대 주위에 불 벽을 쌓아서 그대를 구원할 것이다.

그 때에 그대의 모든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는 것은 아무 선함도 행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영혼의 운명이 결정되기 전에 이루어져야만 한다. 자아가 못 박혀야 할 때는 지금­해야 할 일이 있을 때이며 맡겨진 모든 가능성이 어느 만큼 사용될 때이다. 우리가 그릇의 더러움을 비우고 완전히 정결하게 해야 할 때는 지금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거룩함을 이루어야 할 때는 지금이다. 이것이 지금 바로 이 순간 우리의 일이다. 그대는 위대한 일이 이루어질 어떤 특별한 시간을 기다리지 말라. 그 때는 지금이다. 나는 오늘 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집회에서 나간 뒤, 그가 하나님께 복종하기까지 한 주일이나 한 달, 혹은 일년을 고대하다가 로랜드 자매에게 한 것처럼 차들이 그를 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대들은 지금 복종할 준비가 되었는가? 그대는 그것을 볼 때 바로 그대의 죄를 버려야 하며 점차로 극복하겠다고 지체하지 말아야 한다. 그대는 조금씩 조금씩 죄에 굴복되려고 시도한다.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 초청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라.

오 내 영혼이여, 왜 오늘 저주받은 것으로부터 떠나지 않는가? 죄는 내 주님을 못박았다. 왜 그것을 혐오함으로 떠나지 않는가? 왜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것을 사랑하지 않으며 그리스도께서 미워하신 것을 미워하지 않는가? 그분은 그대가 그분을 통해 승리자 이상­그렇다, 그 이상­이 될 수 있도록 충분한 섭리를 이루어 놓으셨다. 그렇다면 그대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대는 그리스도께서 두 번째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을 원하는가? 그대는 그것을 가질 수 없다. 그대는 갈바리를 바라보아야만 한다. 그대는 믿음으로 피를 취해서 그것을 발라야 한다. 그대는 그 안에서 씻어야만 한다. 그대는 이미 뿌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해져야만 한다. 그것은 그대를 완전히 깨끗케 할 수 있다.

189 나는 그분을 사랑한다. 그분이 먼저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나는 그분을 사랑한다. 그분은 내 심령을 깨뜨리셨다. 그분은 그것을 깨뜨리셨으며, 그것은 깨어지지 않으면 아무 것에도 좋은 것이 되지 못한다. 그대의 심령은 깨어지지 않으면 어떤 것에도 좋은 것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순복하도록 도우신다. 여기에서 이루어져야 할 사업이 있다. 교회 안에는 이루어져야 할 사업­위대한 사업이 있다. 그대들은 전에 결코 사랑해 본 적이 없는 것처럼 사랑해야 한다. 그대들은 전에 결코 기도해 본 적이 없는 것처럼 그분께 기도해야 한다. 그대들은 전에 결코 그분을 찾아 본 적이 없는 것처럼 그분을 찾아야 한다. 그대는 말틴 루터가 한 것처럼 그대를 괴롭히기 위해 수도원의 독방에 가려고 하는가? 이 질문이 발해졌다.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내 맏아들을 바칠까?”(미 6:6-8 참조). 하나님께서 번제와 희생을 요구하시는가? 그분은 말씀하신다. “내 영혼은 그것들로 가득하다.” 그것은 이것들이 아니다. 그것은 뉘우치는 심령이며, 그대가 겸손히 행하는 것이며, 공의를 행하며 자비를 보이는 것이다. 이것이 그대의 일이다.

지금 그것을 바로 잡으라. 왜 더 기다리는가? 왜 바로 그분의 말씀에 하나님을 택하지 않는가? 이렇게 말하라. “주님이여, 여기 제 자신을 드립니다. 이것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만일 사단이 그의 지옥 같은 유혹으로 오거든, 그에게 말하라. 아니다. 내 영혼 안에는 그것을 위한 곳이 없다. 내 영혼은 갈바리에 나타난 사랑으로 기뻐하고 있다. 나는 내 영혼 안으로 이 악의 어떤 것도 들어오도록 허용할 수 없다. 그것은 나의 주님을 못박는 것이다.

자 형제와 자매들이여, 우리는 신앙을 원한다. 우리는 성령의 침례를 원한다. 그대는 선교사를 위해 준비되기를 원한다. 그대들은 누가 부르심을 받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단은 그대들을 불신의 어두움에 항상 가두기를 원한다. 그는 그대들을 낮은 곳에 가두기를 원한다. 그는 그대들을 어두움과 죄에 가두기를 바란다. 그대들은 그 족쇄를 깨뜨리겠는가? 그대들은 자유롭게 갈 것인가? 그대들은 “나는 단순히 주님의 십자가에 매달릴 뿐입니다. 내 손에는 드릴 만한 가치 있는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하겠는가? 바로 내 자신, 그것이 그분이 원하는 모든 것이다. 그분은 그대 자신­그대가 있는 그대로를 원하신다.

190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보고 살도록 도우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심령이 그분을 신뢰하도록 도우실 것이다. 형제들이여, 그분은 잠시 후에 오신다. 여기에 슬픔과 어려움이 있다. 여기에 한 형제가 류머티슴과 고뇌로 고통 당하며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다. 형제여 저기에 쉼이 있다. 잠시 후에 저기에 안식이 있다. 우리는 그분을 있는 그대로 볼 것이며, 우리는 그분과 같이 될 것이다. 편히 쉬라, 하나님의 나라에서 편히 쉬라. 좀 더 계속하라. 고통은 잠시 더 계속될 것이며, 거기에 행복과 부요함의 영원이 있다. 그것이 그대가 원하는 것이다. 의의 면류관은 승리자를 위한 것이다. 그대들 모두 이것을 생각하라. 아침에 그것을 생각하며, 오늘 나는 그것을 바라보아야만 한다. 나는 그것을 위해 달려야 한다. 나는 그것을 위해 경주를 경주해야 한다. 그리고 그 면류관은 내가승리자가 된다면 나의 것이다. 그러나 만일 내가 승리하지 못하면 그리고 사단이 정복하게 되면 나는 그 면류관을 잃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그것을 차지할 것이다. 우리는 영생의 면류관을 위해 노력하지 않겠는가? 만일 우리가 하늘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늘을 얻으면 모든 것을 얻는 것이다.

나는 예수님 안에서 비할 데 없는 아름다움을 본다. 나는 그분이 우리에게 제시하신 것보다 더 큰 어떤 상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보다 더 위대한 어떤 상급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살기를 원한다. 나는 그분의 영광만을 바라보는 눈을 원한다. 우리 모두­아침과 정오와 저녁에­우리 자신을 우리 것이 아니라 그분의 재산으로 하나님 앞에 바치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자. 오늘 그대는 내일의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대는 단지 오늘만의 믿음을 가지고 있다. 내일 그대는 그 때에 오는 믿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오늘, 내가 그분의 것인가? 오늘 나는 그분의 영을 증거 하였는가? 오늘 나의 이름이 하늘의 위대한 대언자의 입술에서 나오고 있는가? 191 오늘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늘 천사들과 조화를 이루며 행하고 있는가? 하늘의 지적 존재자들은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 안에서 인간에게 비취고 있을 때 진리의 지식의 빛을 가져오기 위해 일하고 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동역자인가? 문제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그대가 주일 전체를 통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였기 때문이다. 그대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며, 그대는 그분의 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회심하도록 도우신다. 그대들 중 얼마는 찔림을 받고 말할 것이다. “나는 저런 직설적인 설교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대가 행하지 않으면 나는 어쩔 수 없다. 거기에는 어떤 이들이 있다.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그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사 58:1). 형제들이여, 우리는 그대들 모든 영혼의 도움을 원한다.

시온의 벽에 있는 파수꾼으로부터 오는 말씀은 무엇인가?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사 21:12). 모두가 오고 있다. 파수꾼은 경고의 기별을 주어야 한다. 벽에 있는 모든 파수꾼은 경고를 높여서 그것을 백성들에게 선포해야 한다. 백성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냥 앉아서 파수꾼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그들은 자기 차례가 되어, 나팔 소리를 듣고 그것을 높이 교회를 통해 기별을 울려야 한다. “파수꾼이여 이리 오시오 이리 오시오”하고 부르지 말라. 왜냐하면 이 기별이, 이 경고가 여기 우리 교회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그대 자신이 주라. 왜냐하면 그대는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대 자신이 그것을 주라. 왜냐하면 그대는 빛의 통로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온전히 불타는 말씀을 취해서 그것들을 백성들에게 주라. 그것이 그대가 해야만 할 일이다. 누가 가장 큰 자가 될 것인가에 대해 말다툼하는 대신, 불일치와 투쟁 대신에 하나님께서 그대들을 회심하도록 도우신다. 그대가 필요한 것은 어린아이와 같이 되는 것이다.

나는 하늘을 원한다. 그대는 그것을 원하는가? 우리는 그것을 원하는 만큼 모든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믿음만큼 그것을 보게 될 것이다. 주께서 오고 계시며 그분은 문 앞에 이르셨다. 우리는 일할 시간이 조금밖에 없으며, 만일 우리가 세상이 이 안에 들어오고 우리의 모든 주의와 모든 재정을 흡수하도록 한다면, 심판 때에 어떻게 “들어 오라,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말이 그대들에게 말해지겠는가? 192 그대들의 충성됨과 신실함이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그대들의 농장에 있는가? 그것은 일하는 중에 그대의 손에 있는가? 그대는 거기에서 충실할 수 있다. 그러나 그대는 다른 해야 할 것이 있다. 경고 받아야 할 세상이 있다. 구원받아야 할 세상이 있다. 회심하여야 할 죄인이 있다. 그대가 졸고 있는 동안 죄인은 멸망당하고 있다. 사단은 그의 가라지를 뿌리고 있다. 그대는 그대의 교회 안에서 크게 깨어 있기를 원한다. 온 하늘은 그대를 향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왜 그대는 자신을 향해 관심을 가지지 않는가? “문을 열어라 내가 들어 갈 것이다” 라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그것을 열겠는가? 그대는 그분을 안에 들어오시도록 할 것인가? 그대는 열심을 내고 그대의 타락과 사랑의 결핍과 냉담함과 무관심을 회개하겠는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예수님이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그분의 사랑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품성의 고취와 고상함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미래의 어떤 기간까지 기다리지 않고 자아에 대해 죽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희생하기를 원한다. 오, 나는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이 너무 늦지 않을 것에 대해 매우 감사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게 되어 나는 너무 감사한다. 나는 그분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정결케 해 주실 수 있음을 인해 매우 감사한다! 내가 그분의 축복을 소망할 수 있음에 대해 아주 감사한다. 나는 지금 그분 안에서 감취어 질 수 있어서 매우 감사하며, 그분의 빛을 받을 수 있고 그것을 다른 이에게 전하는 것에 대해 감사한다. 주께서 그분의 성령으로 우리에게 호흡하시고 우리의 살아 계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자라나게 하실 것이다. 우리는 이 구원을 오늘 원한다. 우리는 그것을 기다리기를 원치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불신으로 그리스도를 밀어내기를 원치 않는다. 우리는 그분이 그렇게 하도록 우리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분을 의지하기를 원한다. 그분은 말씀하신다­자 들어보자, 나는 그 말씀을 모두 그대들이 듣기를 원한다­“나의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로 더불어 화친할 것이니라”(사 27:5).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 1:18). 193 그대는 오겠는가? 그대는 믿을 것인가? 그대는 그분이 그대와 변론하시도록 하겠는가? 그대는 신실한 창조주께 하듯이 그분께 그대의 영혼을 지키도록 바치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얼굴의 빛 안에서 살도록 허락하시며, 마침내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게 될 것이다. “높이 올라 오라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 지어다.” 그 즐거움은 무엇인가? 죄인들이 회심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그것이 즐거움이다. 우리가 가서 일하고 실망의 무게로 파괴되어 낙담한 불쌍한 영혼을 도울 수 없을 것인지 보라. 그대가 그리스도께 어떤 영혼을 인도할 수 없는지 보라. 그대는 자신이 보기에 마땅한 그 이상으로 크게 보이지만, 그러나 어떤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없는지 보라. 그리고 그대가 어떤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면서 그대는 자신이 보기에 점점 작아져서 마침내 그대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대가 이렇게 느낄 때, 그 때에 그리스도께서 그대에게 모든 것이 되실 것이다. (이 후에 제단으로 부르심이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반응했다. 1891.10.12 시조의 보고서를 참조하라). ­1891년 원고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