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칼럼

[힐링이 있는 그림 이야기] 회색과 검정의 배열 (화가의 어머니)

2019.07.05 조회수 5,567 커뮤니케이션팀
share
김성운 교수의 <힐링이 있는 그림 이야기>
숭고한 희생과 감동, 모정으로 힐링 하다

매년 ‘가정의 달’이 올 때마다 생각나는 그림이 있다. 1934년 제1회 미국 ‘어버이날’의 우표 그림으로 채택된 바로 이 ‘화가의 어머니’이다.

필자는 3년 전,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된 이 그림을 보고 가슴이 답답했던 적이 있다. 왜냐하면 “왜 이 화가는 자기를 낳아 주고 길러 준 어머니를 이렇게 무감각하고 권위적이며, 몰인정하게 그렸을까?” 하는 불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휘슬러는 이 그림을 그리기 전에 이미 약속한 연인 관계의 젊은 모델을 그리려고 준비했다. 그리고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다. 바람맞고 심기 불편한 휘슬러는 ‘꿩 대신 닭’이라고 집에 계신 어머니 안나 휘슬러를 모델로 그림을 그린다. 정면도 아니며 앙다문 입이 강조된 고집스러운 어머니를 표현했다. 제목도 생뚱맞은 ‘회색과 검정의 배열’이라고 명명했다. 그는 ‘다정스러운 어머니’보다 ‘조화와 균형 등 조형 이론과 유미주의 사조’에 충실했다. 그래도 조금은 미안한지 부제로 ‘화가의 어머니’라고 써넣었다.

▲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 회색과 검정의 배열(화가의 어머니), Arrangement in Grey and Black No. 1: Portrait of the Artist’s Mother), 144.3 x 162.5cm. Oil on Canvas, 1871, 오르세 미술관.

휘슬러의 어머니는 아들의 남다른 미술 재능을 일찍이 알아보고 상트페테르부르크 황실 미술 학교에 입학시킨다. 그러나 휘슬러는 돌아가신 아버지처럼 군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의 염원을 무시하고 몰래 미국 사관 학교에 입학한다. 3년을 다니다 유급 판정을 받아 중도 포기한다.

어머니는 퇴교 조치된 철없는 아들에게 희망을 놓지 않고 프랑스로 미술 유학을 보낸다. 그녀는 남편 없이 혼자서 유학 비용을 대느라 힘겨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아들을 지원한다. 젊은 휘슬러는 교육열 높은 극성스러운 어머니가 매우 싫었다.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화가 활동을 했으나 ‘조안나’라는 여인에 빠져 허덕일 때 어머니는 아들을 미국으로 다시 데려온다.

미국에서 4주 동안 그린 이 ‘영혼 없는 그림’은 영국 왕립 아카데미에 출품하게 되면서 갑자기 뜨게 된다. 모든 사람이 이 그림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찾아내며 눈물을 흘렸다. 그림의 행간에서 ‘어머니의 희생’을 간파한 것이다. 반듯하고, 엄격하며, 검소한 흑백 옷의 어머니는 말없이 자녀를 뒷바라지한, 천생 잔소리쟁이 ‘나의 어머니’라는 공감이 우러나온 것이다. 평단에서 별로 조명받지 못한 말썽꾸러기 괴짜 화가 휘슬러는 이 어머니 그림 덕분에 부와 명예를 쥔 성공한 화가가 되었고, 미술사의 한 장을 장식하는 위대한 화가가 되었다. 프랑스는 이 기념비적인 그림을 거액에 사들여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했다.

이 그림은 지금까지도 세상의 모든 자식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이 그림을 본뜬 동상의 동판에는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존재다.”라고 새겨져 있다.

김성운
화가, 아트앤디자인학과(Art& Design) 교수, 디자인학 박사,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졸업, 개인전 20회(한국, 프랑스, 일본 등) 국내·외 단체전 230회, 파리 퐁데자르·라빌라데자르갤러리 소속 작가, 대한민국현대미술전 심사위원, 한국정보디자인학회 부회장, 재림미술인협회장, 작품 소장 : 미국의회도서관, 프랑스, 일본 콜렉터, 한국산업은행 등

위드인뉴스 http://www.withinnews.co.kr/news/view.html?smode=&skey=%BB%EF%C0%B0%B4%EB&x=0&y=0&page=2&section=1&category=5&no=18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