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칼럼

[힐링이 있는 그림 이야기] 야유(夜遊)

2020.08.11 조회수 2,199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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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운 교수의 <힐링이 있는 그림 이야기>
탈속적 여유와 쉼, 힐링 산수

1813년 7월, 어느 무더운 여름날 다산 정약용은 귀양지 강진에서 딸의 혼사 소식을 접했다.

그는 ‘매조도’라는 그림을 그려 남양주 본가로 보냈다. 그는 딸의 혼인식에 함께하지 못하는 깊은 자책감과 슬픔을 그림으로 치유하고자 했다. 안타까운 부정(父情)의 그림을 받은 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오늘날 ‘매조도’를 보면 딸의 눈물자국 흔적이 있는 듯하다. 이처럼 극한 슬픔과 고행 속에서도 예술을 통한 힐링 이야기는 많은 이에게 감동을 준다.

신형범은 무더위와 분주함, 각박한 세상사와 싸우는 현대인에게 한 폭의 시원한 그림을 보내왔다. 시원한 청색 톤의 폭포 그림이다. 화제는 야유(夜遊), 즉 ‘밤과 노닐다’이다. 동양에서 그림을 보는 관점은 과학적인 분석을 거부 하고 함께 ‘노니는’ 입장을 취한다.

동양화에서 세(勢)는 기의 호흡이 있어 집중적으로 취할 것만 표현하고 ‘노닐면’ 저절로 균형과 의미 전달이 이루어진다는 이론이다. 그래서 서양의 원근법 따위는 불필요하다. ‘야유’는 시간적으로 밤이므로 모든 색과 세미한 형태는 소멸된 상황이다. 그러나 직하하는 폭포의 현현한 물빛은 주변을 밝게 비추고 있어서 최소한의 형상이 드러난다.

작가는 남다른 필력으로 세를 기축하고 공략했다. 용오름 같은 폭포는 신과 인간을 잇는 기(氣)의 튜브이다. 신형범은 그림의 상하 두 곳에 人(사람 인), 木(나무 목)을 합자한 쉴 ‘休(휴)’ 자를 텍스트화 하여 ‘세속을 떠난 여유와 쉼’을 의도적으로 암시하고자 했다. 그의 유유자적(悠悠自適)한 그림은 마음을 비운 무아지경에서 보아야 제대로 읽을 수 있다. 절벽, 폭포, 나무, 정자, 선비, 강아지로 이루어진 최소한의 자연 소재는 안식, 평화, 고요, 행복 등 많은 힐링 요소를 우려내고 있다.

미술평론가 정민영은 “소박하다. 빈틈없이 조율된 구도를 통해 작가의 갈망을 적절히 집약, 견고한 이미지를 간취해 낸다.”라고 했다. 신형범은 종이, 먹, 오일스틱의 반복 착색으로 탄생된 독특한 질감으로 은은한 분위기와 그림의 격조와 가치를 더했다. 신형범의 탈속적 회화는 현대인에게 휴식, 안식, 활력소를 선사하며 더불어 자기 성찰과 명상을 하게 만드는 힐링적 힘이 있다.

글 김성운
화가, 삼육대학교 아트앤디자인학과 교수, 디자인학 박사,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졸업, 개인전 20회(한국, 프랑스, 일본 등) 국내·외 단체전 230회, 파리 퐁데자르·라빌라데자르갤러리 소속 작가, 대한민국현대미술전 심사위원, 한국정보디자인학회 부회장, 재림미술인협회장, 작품 소장 : 미국의회도서관, 프랑스, 일본 콜렉터, 한국산업은행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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