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뷰

[청춘의 독서] (2) 이태은 건축학과 교수

2019.04.02 조회수 5,887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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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육대학교 홍보팀이 인터뷰 기획 ‘청춘의 독서’를 연재합니다. 우리 대학 교수님들이 청춘 시절에 품었던 고민과 의문, 희망 혹은 사랑 같은 것들을 ‘독서’라는 화두로 풀어보는 인터뷰 코너입니다.

코너 이름인 ‘청춘의 독서’는 유시민 작가의 동명 저작에서 따왔습니다. 하지만 기획 의도는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p.141)는 문장에 보다 가까운 것 같습니다.

청춘은 느닷없이 지나가 버렸지만, 교수님 인생에 여전히 깊고 뚜렷한 흔적으로 남아있는 ‘책’에 관해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답을 삼육대학교 구성원 모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이 사소한 대화가 삶의 갈림길에 선 우리 대학 청춘들에게 작은 길잡이가 될 수 있길 소망합니다. ─ 편집자 주

Q. 교수님께 독서란 무엇인가요?

A. 나에게 독서란 ‘다른 인격과의 만남’입니다. 디자이너로서 영감을 얻는 두 가지 원천이 있는데, 하나는 독서이고, 하나는 여행입니다. 그중에서도 독서는 저자의 인격과 만나는 것입니다. 좋은 책의 저자는 자신의 인격이 투영된 글을 쓰고, 그 글은 나에게 말을 겁니다. 그 과정에서 감동을 받고 마음이 열리고 지식과 지혜를 얻는 것이지요. 독서를 통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가장 훌륭한 스승들을 만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독서란 다른 인격과의 만남인 셈입니다.

Q. 건축을 전공하셨습니다. 대학 시절엔 어떤 책을 읽으셨나요?

A. 저는 아이러니하게도 읽지 말아야 할 책을 먼저 읽었고, 그 책 때문에 정반대의 진로를 향해 걸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에 처음 들어가서 유명한 불가지론자인 버트란드 러셀 경의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자연히 나의 청춘은 불가지론으로 기울어졌지요.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같은 책을 읽고 기독교인 친구들을 꽤나 괴롭혔던 기억이 납니다. ‘만물이 원인이 있어야 한다면 신은 누가 만들었는가’라는 제1원인론에 대한 부정을 참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성경을 읽게 되었는데,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THAT I AM)’라는 신의 말씀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전공 분야에서는 <근대건축은 왜 실패하였는가>라는 피터 블레이크의 예리하고 날카로운 비평집을 정말 가슴 시원하게 읽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반대로 근대건축에 매료당하고 말았지요. 청춘시절 저는 지금의 제 건축이나 삶의 방향과는 정반대의 책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것들이 다른 자극을 줬고, 지금의 저를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 청춘시절의 이태은 교수.

Q. 청춘시절이니 문학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A.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같은 연애소설이나,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많이 읽었습니다. 셰익스피어와 헤밍웨이, 괴테, 헤세, 알렉상드르 뒤마 필스의 작품들을 즐겨 읽었던 기억도 납니다. 특히 폴란드 작가인 헨리크 시엔키에비치의 <쿠오 바디스>를 참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그 외에도 독특한 취향이 있었는데, 미래소설이나 사이언스 픽션(SF)을 광적으로 탐독하기도 했지요. 아더 C. 클라크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유년기의 끝> 등은 종교적 백 그라운드를 가진 나의 상상력을 우주의 심연 너머로 향하게 했습니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충만한 SF 단편들,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 알프레드 엘튼 반 보그트, 알프레드 베스터 등도 매력 있는 작가들이었습니다.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젊은 건축가에게 이 SF 소설들이 큰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Q. 건축을 연구하고 가르치시는 교수지만, 건축가로서 여러 작품을 설계하셨습니다. 특히 우리 대학 백주년기념관, 신학관, 체육관, 디자인관, 솔로몬광장 등을 설계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중 가장 애착이 가는 건물은 무엇인가요?

A. (우리 대학 건물 중) 첫 번째로 설계한 건물이 바로 지금 제가 앉아 있는 디자인관이고, 마지막이 백주년기념관입니다. 그래서 이 두 건물이 애착이 갑니다. 디자인관은 아주 혹독한 설계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대학 정원이 갑자기 늘어나게 되면서 당장 겨울방학 4개월 안에 건물을 짓지 못하면 강의실 대란이 일어날 상황이었습니다. 또 공사비를 최대한 적게 사용해야 했고, 건축학과와 디자인학과 학생들이 사용할 건물이기에 독특성도 가져야 했습니다.

여러 고민을 하다 PEB공법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건물이 힘을 받는 부위에 따라 부재의 사이즈를 다르게 하는 공법인데, 경사진 부분을 디자인으로 활용해 공사비를 15% 정도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우리 대학에서 가장 저렴한 공사비로 시공한 건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백주년기념관은 당시 행정부가 건축물의 외관을 고전적으로 만들어달라는 요구를 해서 건축가로서 많은 갈등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현대건축에 고전적인 요소를 집어넣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백주년기념관도 가급적이면 현대적인 건축물로 짓고 싶었지요. 하지만 대중들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것 같습니다. 주변 사립대학 건물들이 고전적인 형태를 많이 취하고 있으니, 영향을 받고 기억에 남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약간 절충적인 방법으로 설계를 했습니다. 삼육대의 미래를 상징하는 ‘유리’라는 박스 위에 삼육대의 역사를 상징하는 ‘돌’이라는 박스를 결합시켰습니다. 백주년기념관에서 실제 건물을 사용하는 부분은 유리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하지만 외관은 100주년이라는 상징성을 표현하기 위해 서양 고전건축의 열주, 코니스에서 모티프를 차용했습니다. 그렇게 행정부와 대중을 만족시키고 저의 콘셉트도 구현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가장 많은 기도로 만들어진 건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건축물을 설계할 때는 해당 건물이 들어서는 공간과 그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 역사나 문화, 철학 등을 고려한 개념 규정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대학의 주요 건물들을 많이 설계하셨는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삼육동’이라는 공간은 어떤 심성(心性)을 가진 공간일까요? 건축가로서 어떻게 공간을 규정하고 건축을 하셨습니까.

A. 삼육동은 독특한 장소입니다. 과거 이곳은 왕가의 땅이었고, 아주 훌륭한 소나무들이 많이 들어서 있는 땅이었습니다. 그리고 문화재가 가까이에 있기에 문화재보호구역이기도 하고, 생태보전지역이기도 합니다. 바로 뒤에는 군부대가 있어서 군사시설보호구역이고, 또 녹지보전지역(그린벨트)입니다. 아마 거의 모든 규제를 다 받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그런 규제 때문에 삼육동의 환경이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큰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간은 인간을 닮고 인간은 공간을 닮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삼육동의 건축공간은 위압적이지 않고 조용하며 겸손하고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면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을 존중하고 자연과 조화되고 자연을 더 자연스럽게 만드는 공간과 형태를 지녀야 진정한 삼육동 건축이 아닐까요.

▲ 이태은 교수의 연구실에 붙어 있는 백주년기념관 설계도. 아래에는 그의 또 다른 작품인 솔로몬광장 조감도가 눈에 띈다.

Q. 최근 건축을 바라보는 세간의 인식이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건축이라는 것이 개발시대에 단순히 건물을 올리는 성과 위주의 건설을 넘어서 이제는 공간에 대한 이해나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회문화적 가치들을 고민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 말을 하는 건축가가 인기 예능프로그램에 나오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도 하죠. 앞으로 우리 건축문화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또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건축이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건축’과 ‘건설’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건설회사의 규모가 더 크다보니 건설이 훨씬 더 큰 개념이라고 오해하지만, 사실은 건축이 더 상위의 개념입니다. 건설은 건축을 구현하는 하나의 도구이지요. 건축은 건설과 디자인을 넘어서는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개념입니다. 프랑스의 건축법은 “건축은 문화를 표현하는 것”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앞으로의 건축문화는 건축이 삶의 환경과 백 그라운드일 뿐 아니라, 스토리텔링의 대상으로서 사람들의 추억 속 일부가 될 것입니다. 또한 건축은 과학과 기술과 예술이 총체적으로 표현된 한 나라의 문화적 척도가 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좋은 건축이란 사람에게 기쁨을 주고 유용하며 경제적이어야 합니다. 미와 기능, 구조 및 경제가 균형진 트라이앵글을 이루면서 인간과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건축이 좋은 건축입니다.

Q. 그렇다면 교수님은 어떤 건축물에 사시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아파트에 삽니다.(좌중 폭소) 실제 많은 건축가가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주거를 결정한다는 것이 건축가 자신에게만 달린 것이 아니고, 아내나 가족들의 필요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집사람이 ‘매우 강력하게’ 주장해서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웃음)

Q. 건축은 그것을 이용하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기에 인문학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건축가로서 통찰을 얻기 위해 요즘은 주로 어떤 책을 많이 읽으시나요?

A. 근래에는 시집이나 기도문을 많이 읽습니다. 건축과 시는 참 닮았고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시의 콘셉트와 건축의 콘셉트가 비슷합니다. 시는 언어로서의 구조체계와 리듬감, 상징체계를 갖습니다. 이는 건축의 구축 방법과도 매우 흡사합니다. 시집은 건축가인 저에게 굉장한 영감을 줍니다.

그런 측면에서 앞으로 시적인 건축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건축가가 60살이 되면 이제 건축을 조금 알 것 같다고 하고, 70살이 되면 경지에 오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 나이가 70쯤 됐을 때 ‘건축의 시인’으로 불리면 좋겠다, 그런 꿈을 갖고 있습니다.


이태은 교수의 ‘추천 책’


<스페인은 건축이다>
김희곤 저, 오브제
김희곤 선생은 우리 대학 겸임교수로도 오래 계셨습니다. 스페인 마드리드대학에서 유학하면서 스페인 건축에 크게 매료되어 이 책을 쓰게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여행 책에서는 볼 수 없는, 건축가로서 아주 정교하고, 정서적이고, 문학적인 시선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전공자가 아닌, 일반 대중을 위해 쓰여 졌기에 학생들에게 매우 유익한 책이 될 것입니다. 어떻게 동서양의 문화를 융합시켜서 스페인만의 하이브리드 건축을 만들어 냈는지, 그런 건축물에 세계가 얼마나 열광하는지 잘 설명하고 있는 책입니다.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강신주 저, 동녘
여러 철학자의 사상과 훌륭한 시인들의 작품을 병치시키면서 연관성을 기술해나가는 매우 독특한 책입니다. 흔히 인문학을 ‘문(文)·사(史)·철(哲)’이라고 하는데, 문과 철을 연결시킨 아주 좋은 책입니다. 저의 시 선생이셨던 고(故) 장청 시인께서 이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해주셨는데 그래서 그런지 더 애착이 가고 읽으면 읽을수록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의 아들 예수>
칼릴 지브란 저, 박영만 역, 프리윌
레바논 시인 칼릴 지브란이 쓴 책입니다. 오래 전부터 애독하는 책이고, 아이들에게도 꼭 읽으라고 권해주는 책입니다. 기독교인이 아닌 시인이 기독교인보다 예수를 훨씬 더 잘 이해하고 세밀한 면들을 기술했습니다. 특별히 그 아름다운 문체가 우리 청춘들의 마음에 깊은 감동과 좋은 정서적 영향을 줄 것입니다.

[시리즈 연재]
[청춘의 독서] (1) 김용선 아트앤디자인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2) 이태은 건축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3) 봉원영 신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4) 한금윤 스미스학부대학 교수
[청춘의 독서] (5) 윤재영 사회복지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6) 서경현 상담심리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7) 김정미 유아교육과 교수
[청춘의 독서] (8) 박정양 음악학과 교수
[청춘의 독서] (9) 김성운 아트앤디자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