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칼럼

[시론] 대학, 꿈꾸는 영웅들의 요람

2022.08.30 조회수 1,762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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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헌 삼육대 신학과 교수]

순조가 조선의 23대 국왕으로 등극한 지 10년째가 되던 해인 1810년, 베네수엘라 출신의 시몬 볼리바르는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에 맞서 독립운동을 전개했고,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와 볼리비아를 통합한 대콜롬비아공화국을 수립했다. 볼리바르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남미 전역에서 스페인의 지배를 몰아내고 ‘라틴아메리카 연방’을 세우는 꿈을 꿨다. 그는 그것을 실현시키지 못했지만 그 꿈은 20세기에 체 게바라에게 전수됐다.

아르헨티나의 의대생이었던 체 게바라는 모터사이클을 타고 남미 전역을 순례하면서 볼리바르가 꿈꿨던 라틴아메리카 연방의 설립을 삶의 목표로 삼았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그는 과테말라의 진보 정부를 도우러 달려갔고,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을 이끌었다. 그 후 그는 볼리비아의 밀림으로 들어가 열정적으로 활동하다가 죽음으로 생을 마감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인간으로 추앙된 그의 꿈에 내포된 궁극적 텔로스(Telos, 목적)를 다시 생각해보자.

그가 꿈꿨던 것은 사랑과 평화와 번영이었고, 그것은 바로 유토피아를 향한 인간의 희망과 맞닿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희망을 “잠자고 있지 않는 인간의 꿈”이라고 정의했다. 그가 정의한 것처럼 인류의 역사 속에서 희망은 꿈꾸는 영웅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계승됐다. 유토피아를 향한 희망의 원리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로 이어졌고, 그 후에도 계속해서 성 프란체스코, 토머스 모어, 에른스트 블로흐에게로 이어졌다. 이처럼 희망의 원리는 매 시대마다 인류의 정신 속에서 구현되고 전승돼 왔다. 그리고 그들의 꿈이 실현되는 사건 속에서 위대한 역사가 만들어졌다.

그 희망의 역사는 지금도 실현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4차 산업혁명과 이에 따른 기술인본주의가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에 물질문명은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희망의 원리에 부합하는 것 같지는 않다. 문명이 고도화될수록 우리는 지속가능한 사회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경제적 양극화의 심화, 기후변화와 생태 위기, 바이러스의 역습과 팬데믹으로 인한 공포, 경쟁과 갈등과 분노의 사회화 등 어느 것 하나 해결하기 쉽지 않은 과제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가 지속가능한 개발 목표를 세워 놓고 지구적인 연대를 구축했지만 상황이 호전되고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희망의 원리를 잊어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더 정확히 말해 희망의 원리를 구현하기 위해 당당히 나서는 꿈꾸는 영웅들이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위기의 시대에 대학의 역할이 새삼 중요해진다. 대학의 모든 교육은 전공 지식 속에 지속가능성을 통합하는 시대적 대의를 추구해야 한다. 모든 전공과 학문은 희망의 원리를 적용한 것이어야 한다. 이 같은 학문을 희망의 학문으로 명명해보자. 희망의 인문학, 희망의 사회학, 희망의 과학, 희망의 기술 등과 같이 말이다. 지금 우리 학생들은 희망의 원리를 적용한 희망의 학문을 배워야 한다. 그들이 그 속에서 희망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면 그들은 희망을 추구하는 꿈꾸는 영웅들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과 교수 공동체는 우리 학생들에게 그런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거듭된 교육부 장관의 낙마 소식을 접하면서 희망의 원리를 따라 지속가능한 삶을 추구하는 진정한 지도자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다시 한 번 절감한다. 이럴수록 우리는 희망의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희망의 원리를 전파하는 꿈꾸는 영웅들이 출현해주기를 고대하게 된다. 이 시대에 대학은 우리 사회에서 ‘잠자고 있지 않는 인간의 꿈’을 실현할 꿈꾸는 영웅들을 찾을 수 있는 희망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방학을 마치고 새 학기가 시작되면 모든 대학 캠퍼스가 꿈꾸는 영웅들의 요람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한국대학신문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532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