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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팔이 되어줄게 ②] 전지은 학생의 네팔 봉사활동 수기

2023.02.10 조회수 1,675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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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 글로벌 미션 봉사대 네팔 활동 수기

<전편에 이어> 그렇게 다사다난했던 둘째 날 일정이 지나고, 네팔에서의 사흘째 아침이 밝았다. 이날은 아침밥을 든든히 먹어야 했다. 첫 일정이 네팔 청년들과의 축구 경기였기 때문. 나름 국가대항전 A 매치다.

카트만두에는 PMM선교사로 파송된 목사님께서 운영하는 ‘SDA 직업훈련센터’가 있다. 많은 현지인 청년들이 이곳에서 공부하며 생활하고 있는데, 전날 우리에게 축구 대결을 하자는 ‘도전장’을 내밀었다. 물론, 우리 일행은 흔쾌히 수락했다.

나는 공놀이에 소질이 없어서 제대로 경기에 임하지는 못했지만, 첫날 방문한 학교에서의 배구 경기와 셋째 날 축구 경기를 통해 네팔 학생, 청년들의 엄청난 파워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감독이라면 당장이라도 영입하고 싶은 인재가 한두 명이 아니었다. 결과는 아쉽게도 우리의 패배. 다친 사람 없이 즐겁게 경기를 마치고 우리는 직업훈련센터 건물로 돌아왔다. 곧바로 한글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봉사대의 보완점을 또하나 발견했다. 수업의 난이도를 잘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간단한 회화와 K-POP 노래를 배우는 시간이었는데 곧잘 따라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수업 내용이 너무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시야에서 놓쳤다. 마치 브레이크는 밟지 않고 직진만 하는 것처럼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가 부족했다.

한글 수업이 끝나고 직업훈련센터에서 식사를 대접해 주었다. 네팔식 파스타와 오렌지 주스, 후식으로 오렌지까지 진수성찬이었다. 멋진 전경을 볼 수 있는 테라스에서 근사한 식사를 했다. 나는 아무래도 그 파스타가 입에 아주 잘 맞았나보다. 이 글을 쓰면서 그 맛이 자꾸만 생각난다.

축구 경기를 할 때 먼저 팔짱을 끼며 친근하게 다가와 준 청년들, 이미 파스타를 가득 담았지만, 조금이라도 더 배식해 주려던 청년, 작은 귤을 갈라 더 큰 쪽을 나눠 주던 청년, 당장 없는 물품도 바로 사서 챙겨주던 청년 등 나는 이곳에서도 받기만 했다. 내가 경험한 네팔 사람들의 친절함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정해진 한도도 없다.

좋은 추억을 남긴 직업훈련센터 일정 이후, 네팔의 시골 마을인 쿤타베시(Kuntabesi)로 향했다. 쿤타베시로 가는 여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이 있다. 16명을 태우고 네팔의 포장되지 않은 고부랑길을 능숙하게 주행하던 운전기사님이다. 사고가 안 나는 게 이상할 정도로 좁고 험한 길이었다. 내가 이제껏 경험해 본 도로 중 최악의 조건이었다. 그런데도 기사님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유자재로 운전대를 휘감았다.

덕분에 우리는 예정시간보다 일찍 현장에 도착했다. 약간의 휴식을 가진 뒤 쿤타베시교회로 이동했다. 교회로 가는 길 역시 험한 산길이다. 그 흔한 가로등조차 없고 돌과 바위가 가득 박힌 모래길이었다. 우리를 안내하기 위해 교회에서 한 여학생이 내려왔다. 혼자 갔다면 지루하고 힘들었을 길을 네팔 학생과 대화하며 금방 올라갔다.

능숙하지 않은 나의 영어 실력을 잘 받아주고 기다려 주던 학생 덕에 용기가 생긴 것일까? 도착하자마자 마치 교회의 일원이 된 것처럼 익숙하게 느껴졌고, 그곳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곧바로 친구도 사귀었다.

네팔어로 ‘기쁨’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어여쁜 친구 쿠시(Kushi)였다. 네팔에서 만난 가장 밝은 얼굴이라 기억에 깊게 박혀있다. 쿠시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우리 일행을 따뜻하게 반겨줬다. 만나면 안부를 묻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노래 부르고, 말씀을 듣고 저녁식사 때는 고봉밥을 대접받으며 교회의 온정을 느꼈다.

다음 날 저녁에는 바네파(Banepa)로 이동해 현지 교회를 방문했다. 이곳에서 한국 문화의 밤 행사가 이뤄졌다. 우리 봉사대가 준비한 줄넘기로 단체줄넘기 놀이를 했다. 바네파교회 사람들과 우리 봉사대가 섞여 마치 오래 본 동네사람처럼 줄넘기를 하고, 음료와 간식을 나눠 먹던 장면이 생생하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 껴안은 채 사람들이 줄넘기하는 모습을 구경해서 그런지 쌀쌀해진 네팔 날씨를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로 따뜻했다.

바네파교회에서의 한국 문화의 밤을 끝으로 공식적인 봉사 일정을 마쳤다. 모든 활동을 마치고 공항으로 이동하던 차에서 친구 한 명이 내게 질문을 했다. 네팔에서 만났던 사람 중 누가 제일 기억에 남느냐고. 나는 이 질문에 딱 한 사람만 정할 수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정할 수 없다. 네팔에서 만났던 모든 사람과 그 상황을 기억하고 싶다.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각 사람들이 우리 봉사대와 나에게 베푼 따뜻한 정은 너무나도 깊숙이 와 닿았다. 아마 죽을 때까지도 쉽게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우리가 낯선 만큼 네팔 사람들도 우리가 낯설었을 것이다. 그러나 네팔에서 마주친 인연들은 내가 한 발자국만 다가가도 그 이상을 내게 다가와 줬다. 내가 봉사에 임하고 노력한 것에 비해 너무나도 순수하고 깊은 진심들을 전해 받았다. 하루의 끝에 체력을 다 써 힘들어도 봉사대 사람들과의 즐거운 추억과 네팔에서 만난 인연으로 인해 내 마음은 감사와 사랑으로 가득 채워졌다. 그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아니라, 친구로 남았다. 그들이 언제까지나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웃던 그 모습 그대로, 그 미소가 오래 지속되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2주간의 희로애락을 끝내고 한국에 온 지도 벌써 시간이 훌쩍 흘렀다. 돌이켜 보면 나에게 있어 네팔에서의 여정은 감사함의 연속이었다. 사람들과 풍경으로부터 심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참 많은 것을 받았다. 바쁜 일상 속에서, 안락한 일상 속에서 많은 것을 잃었던 내게 이번 네팔 봉사는 자신감과 여유, 공동체 의식, 감사 그리고 따뜻한 사랑을 심어줬다.

네 팔이 되어주기 위해 떠나기로 결심한 2개월의 봉사대 여정 중 만난 모든 사람들은 오히려 나에게 ‘내 팔’이 되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