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칼럼

[김나미 조명탄] 작고 섬세한 디테일이 주는 감동

2021.11.26 조회수 1,634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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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미 삼육대 스미스학부대학 교수]

‘영성은 벗은 신발을 바로 놓는 데서 시작된다.’

오래전 들은 말이지만 잊지 못할 추억이 담겨 있다. 대학 시절 많은 교회가 연합으로 진행하는 큰 행사에 스태프로 참여했다. 메인 행사 장소는 참가자들이 신발을 벗고 실내화로 갈아 신어야 하는 곳이었다. 수백 명이 참여했기에 1층 입구는 혼잡 그 자체였다. 미처 신발장에 들어가지 못한 신발들이 전쟁의 폐허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행사 진행을 돕기 위해 중간에 잠시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한 남학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혼란 그 자체인 수많은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하며 질서를 찾아주고 있었다. 나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작지만 소중한 봉사의 현장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드디어 깔끔하게 정리를 마친 남학생이 일어나 얼굴을 돌렸을 때 마음에 맑은 울림이 전해졌다. 왜냐하면 그는 그 행사의 총책임을 맡은 학생대표 신학생이었고, 수많은 스태프가 그를 돕고 있었는데도 기꺼이 허드렛일을 가장 소중한 일처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까이 간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고, 나의 우문에 대한 그의 현답이 바로 이 말이었다. 그는 자신의 스승인 신학과 교수님이 목회의 기본은 가장 작은 일을 충실히 하는 것이라고 늘 강조하셨다며 겸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래전 경험한 추억 속에서 작은 ‘디테일’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보석처럼 빛난다. 요즘은 크고 규모 있고 핵심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작은 디테일에서 상황이 달라지고 결정이 바뀐다. 사람들은 오히려 디테일에 공감하고 매혹된다. 디테일에서 창의성과 개성이 돋보이고, 거기에 진정성이 숨어 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다양성과 이미지가 중시되는 세상에서 우리의 마음은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작고 섬세한 일에 대한 관심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세상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에서 만들어지며, 세상의 큰일은 반드시 작은 것에서 만들어진다(天下難事, 必作于易, 天下大事, 必作于細)’라는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구절이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쉬운 일, 작은 일이 바로 돼야 큰일 중요한 일이 제대로 된다. 작고 섬세한 디테일에 대한 관심은 기본과 원칙을 소중히 하는 것이 포함된다. 그리고 그 속에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소중히 여기는 따뜻한 배려도 담겨 있다. 상대방의 관점에서 보고 공감해야 보이는 것이 작고 섬세한 디테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작은 디테일을 살피는 마음속에는 정성이 가득 들어 있다.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 단번에 생각할 수 없고 오래 지켜보고 깊은 마음을 헤아려 봐야 알 수 있는 정성과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성실하고 진정성 있는 봉사가 들어 있어 우리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에는 작고 섬세한 디테일의 감동이 맛깔나게 표현돼 있다. 얼마 전 이 시가 탄생한 비화를 알게 됐다. 나 시인이 초등학교 교장으로 일할 때 아이들을 위해서 쓴 시다. 특별히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아니라 그와는 거리가 먼 아이들을 위해 쓴 글이다. 풀꽃 그리기 수업 시간에 제대로 관찰하지도 않고 제멋대로 그려오는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얘들아, 풀꽃도 자세히 보면 예쁘고 오래 보면 사랑스럽단다”고 여러 차례 잔소리를 했지만 그래도 건성으로 대답하는 아이들에게 “얘들아, 너희들도 그래”라고 이야기해 줬던 일화가 그대로 시가 된 것이다. 오늘 하루 나도 나 시인의 그 애틋하고 따스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싶다.

국방일보 https://kookbang.dema.mil.kr/newsWeb/20211126/1/BBSMSTR_000000100134/view.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