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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운 개인전 ‘고향회귀의 노래 5’展, 인사동 리더스 갤러리수에서 29일부터

2010.12.22 조회수 3,586 삼육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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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김성운 교수(삼육대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가 2010년 12월 29일부터 2011년 1월 4일까지 10번째 개인전인 “고향회귀의 노래 5” 展을 리더스갤러리秀(인사동 소재)에서 그 동안 각고 끝에 제작한 신작 22점을 전시한다. 김교수는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길목에서 우리그림, 우리정서의 정겨움을 만끽하는 기회를 가지기를” 권유한다.   

 

빛의 기도로 승화시킨 고향의 노래
                                                            

글/ 이 종 상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고향 텍스트의 비표상적 중첩
  김성운 화백은 교수로서, 또는 화단의 중견작가로서 누구보다 확고한 자신의 조형언어를 확고히 구축하며 한국화단과 교육계를 이끌어가고 있다.  한국미술의 국제화를 위해 설립한 (사)세계미술연맹의 부이사장으로 설립 초기부터 깊이 관여하며 활동하고 있어 나와는 서요한 회장을 통해 깊은 인연을 맺어 온지 오래다.   김화백은 독실한 신앙생활을 예술 속에 실천하며 도종환 시인과 함께 시화전을 개최, 불우청소년들을 말없이 도우면서 “예술도 나누면 아름다운 사회로 갈 수 있다”는 사랑나눔의 예술철학을 보여 줌으로써 많은 작가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고향회귀의 노래 5》에서는 작가의 트레드마크인 ‘고유의 굵은 윤곽선’을 유기(遺棄)하는 미학적 모험을 감행했다. 평소 후학들에게 “작가는 궁극적인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사지를 절단하는 순교적 영성과 세속에 타협하지 않는 형극의 인내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하며 스스로 이를 실천하는 작가로 알고 있다.     
   그의 ‘버리는 작업’에는 분명한 미완의 철학이 숨겨져 있다. 이런 미완(nonfinito)의 완성은 바로 ‘텅빈 충만’을 의미하며 역설적이게도 ‘중첩(overlapping)’이라는 비표상적 조형언어를 통섭한반전의 메비우스 띠처럼 미완을 전제로한 반복이 함의되어진 모(矛:창)와 순(盾:방패)의 작업이다. 우리 농경문화의 정서적 기호로서 ‘소’를 중심으로한 수구초심의 향리적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핵심적 형상언어의 한 부분을 컴퓨터로 확대하여 이를 조형화시킴으로써 여러 대상의 화면이 유기적으로 반응하게 하여 복합적이고도 미묘한 스토리텔링을 추구하고 있음을 읽게 된다. 이리하여 로직한 디지털의 도움을 받은 비표상은 서로의 긴밀한 결합(intimate union)과 선택, 또는 비선택의 페토스를 형성하여 화면을 탈형식, 비정형으로 데포르메 시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이번 작품의 소재들은 이미 존재했던 고향의 이야기들이지만 그것은 마음과 기억 속에 존재할 뿐, 실제는 존재하지 않는 비표상적 익명성(anonymity), 곧 잔상의 간접체험을 실험하고 있는 것이다. 기호학의 함의를 바탕으로 드로잉 된 궁극의 기표로서 간명한 조형과, 어딘가 있을법한 익명의 초동들, 그밖에 등장하는 엑스트라들의 수수덤덤한 무표정, 무기교 등은 신비로운 은폐를 통해 더 많은 것, 더 깊은 것들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자연과 인간의 이상향
  헤겔은 “모든 민족은 그들의 가장 드높은 생각들을 예술 안에 담는다”고 했다. 나는 2006년도에 김성운 화백의 소를 소재로 그려진 한국정서의 작품이 미 의회도서관에 소장되어있는 것을 보았다. 당시 우리민족의 전원적 정서를 가장 잘 드러낸 대표작가의 작품으로 담당 큐레이터에 의해 엄선되었다고 들었고 이후 그는 한국의 정서로 세계적 조형어법을 찾기 위한 작업에 확신을 갖고 지속적으로 우리 자생적 미학 찾기에 천착(穿鑿)하고 있다.  
  한국적 농경사회에서의 소는 인간과 거의 동격인 가족 개념에 다름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소 그림은 단순한 소재로서의 소가 아닐 터이다.  해서 그의 그림에는 소와 인간이라는 관계가 그의 작품 속에 내재되어 소년, 소녀들과 일상의 가족들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여기서 관계란 주객의 상대적 개념이 아닌 일치의 대대적 개념으로서의 관계, 즉 연기론의 통섭을 통한 소통과 일치를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소는 서로 대화와, 노동의 나눔과 원효가 소등에 올라 앉아 기신론을 썼다는 말처럼 목가적 탑승과 취식이 있고 소싸움을 즐기는 유희가 있어 인간과 감정을 교감하는 선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나는 동란 때 사다리로 피란을 가서 공동묘지 옆에 있던 도살장으로 끌려가며 말없이 울던 암소를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여 육식을 즐겨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자신의 운명을 예견하고 죽음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동물을 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소가 웃겠다”는 속담처럼 인간의 행동거지가 가소로워 소가 웃는 기만을 감히 소 앞에서 저지를 수가 있겠는가? 이처럼 그의 소그림에는 노동하는 소보다는 노동 후에 한유로운 휴식이나 아이들과 평화롭게 놀아주는 소그림이 대부분인 이유가 따로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의 작품 속에 소는 고즈넉한 한 폭의 산수화처럼 한국인의 문화유전적 DNA로,  산이요 들이며 강물이 되는 우리일상의 환경이고, 자연의 무대가 된다. 그의 소는 단순한 소재로서의 소가 아니라 때로는 주연으로 때로는 조연으로 자리하고 있고 아이들의 등장은 인간의 가장 순수하고 소박한 시절로의 회귀와 신앙적 으로 죄 사함을 갈망하는 함의를 지니고 있음이리라.
  그렇다! 그는 그 옛날 오염되지 않은 자연과 인간의 순수한 이상향, 무릉도원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소와 아이들, 구름, 산, 강, 나무, 들꽃, 열매, 초가, 원두막, 왜가리 등과 흙색의 소와 푸른 초원이 조화롭게 배치된 향토색 물씬 풍기는 전원의 화면이 더욱 그 화의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소를 주제로하여 ‘한국의 자생미학’을 표현하려 노력한 점은 비록 같을 지라도 안토니오 폰타네지의 목가적 풍경화 범주의 개연적 소그림이나 아니면 이중섭, 양달석의 시대상황적, 도전적 반항과 현실도피적, 반어법 맥락인 소그림과 분명히 구별되는 것이다. 내가 60년대 초의 국전에 소그림으로 4.19혁명의 주역세대로써 시대변혁을 암시했던 웅변이 숨겨진 그림과도 다른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함도 물론이다.  

 

 성경을 우리 정서로 승화.
  <도성 입성>, <애굽 피난>, <탄생하심>, <선한 사람>은 예수의 생애와 성경이야기를 모티브로 접근한 성화(聖畵)로서 작가 자신의 신앙적 염원을 한국적 소재를 차용해서 그렸다. 나귀나 말, 낙타 대신 소를 적용하고 등장하는 인물들을 모두 한복으로 코디네이션하여 한국적 아이덴티티를 흥미롭게 상승시킨다. 또한 성경의 역사 공간인 이스라엘의 건축물은 한국 성곽, 기와집, 초가집으로, 이집트의 피라밋은 중국 계림의 산으로 나타내고 예수님과 레위인, 바리새인, 동방박사 세 사람 등에게는 양반복식인 도포를, 제자들, 백성들, 아이들은 평민복을 착용시켜 기독교문화의 토착화를 시도한다.
 
  그의 그림에서 전반적으로 흐르는 경향은 주님이 인간에게 주신 카리스마적 은총보다는 아카페적 사랑이 온 화면을 적시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모정을 나타내기 위하여 어미 소와 송아지의 내리사랑을 은유하고 있는 것과 하늘과 소통이라도 하려는 듯이 위로 향하는 미루나무의 신앙적 상징이 그것이다. 그리고 작가 고유의 특화된 조형어법인 ‘흩날리는 빛 조각’들은 조물주가 창조한 천연계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 내면에서 침잠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겠다. 흔히 성화를 “빛의 기도”라고 말하듯이  ‘빛’이 의미하는 생명, 시간, 에너지에 감사하며 행복한 작업을 하는 김성운 화백의 성화는 고흐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  운보의 그것과도 다른 색다른 영성을 자아내게 하는 작품으로 이후 작가의 다양한 성화 시리즈 창작을 은근히 기대하게 하고 있다.  


  그의  《고향회귀의 노래 5》 전시회의 성공을 기원하며.
         2010년 12월    이 종 상(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