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소식

겨울에 보는 따뜻한 고향그림 전시회, 김성운 교수의 [고향회귀의 노래 Ⅲ]전

2008.12.18 조회수 3,546 삼육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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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김성운(삼육대 미술디자인학부 교수)의 제8회 개인전이 [고향회귀의 노래 Ⅲ]라는 주제로 2008. 12. 24(수)~12. 30(화)까지 관훈동 인사아트센터 5층 제5전시실에서 열린다. 그 어느때보다 위축된 경기와 추운 겨울에 작가는 따뜻한 그림들을 들고 나와 우울한 도시인들에게 정감있는 위로의 고향 보자기를 풀어 놓는다.

작가 김성운은 ‘너와 나의 고향이라는 살아있는 감성발전소‘를 가동하여 부정적 세밑 분위기를 훈훈하게 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더하여
삶의 질이 저하되지 않고 더한층 업그레이드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림에는 항상 우리의 누렁소가 등장하는데 마침 2009년도가 소의 해 기축년(己丑年)이라 시의성 있는 주제로 관심을 받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8회째 개인전이며  ‘고향회귀의 노래 Ⅰ, Ⅱ’보다 좀더 진화된 조형어법과 두터운 질감, 원색 위주로 밝게 작업한 ‘행복한 봄(100호)’, ‘목동들의 가을(100호)’ 등 20여점이 전시된다. 전시될 작품은 모두 유화로 굵은 선안에 물감을 나이프로 밀어 넣는 독창적인 기법으로 생명과 자연과 인정의 고향이야기를 깔끔하게 재현하고 있다. 작가는 ‘조형적 잔소리 보다 직설적 절제미’를 강조했다고 했다.

한편 작가는 조선일보미술관에서 100여점의 대작 수채화로만 전관을 채운 관록을  가지고 있고 ‘Korean Games’ 등 9점이 세계 최대 권위의 미의회도서관에 영구 소장되기도 했다. 

일시: 2008. 12. 24(화)~12. 30(화)
초대: 2008. 12. 24(화) 오후 5시
장소: 인사아트센터(T.736-1020)
전화: 02)3399-1830, 017-260-7188

 

김성운의 그림에 대한 촌평 및 보도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과 자연의 빛깔, 우리가 되찾아야 할 순하고 착한 표정을 김성운의 그림에서 보았다. 그것은 인간이 돌아가야 할 평화롭고 따뜻하고 충만한 고향, 목가적이면서도 생명의 기운이 넘치는 우리 삶의 아키타이프였다. < 시인 도종환 >

그림 속에 언뜻언뜻 비치는 내 고향의 하늘 바람 나무 꽃들 그리고 인간적 인간이 오늘 내가 살아가는 힘이요 자부심이 되듯 김화백의 그림들이 오늘을 사는 도시인들에게 바로 생명력을, 바로 인간미를, 바로 자연미를 분출 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시인 신달자 >

항산(恒山) 김성운의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릴적 고향에서 소 먹이러 다니던 그 산천, 그 풍경들이 내 눈앞에 어린다. < 시인, 전 삼육대총장 남대극 >

누렁소가 있는 고향풍경을 정겹게 표현했다. < KBS >  

미술가로서 치명적인 실명위기를 극복하고 작품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작가 김성운은 누런 황소와 어린아이가 단골로 등장하는 따뜻한 그림을 그린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작가의 마음을 읽게 한다.
< MBC >

작가 김성운은 질박한 질감과 토속적인 색감으로 정겨운 고향이야기를 재현했다. < 교수신문 >

김성운의 그림은 중년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고향의 노래이며, 아날로그에 대한 그리움이다. 잠시 시간여행이라도 떠나 잠깐 잊었던 고향의 정경을 중계해주듯 생생하다.  < 미술평론가 김윤섭 >

그가 재현하는 시골풍정은 단순히 개인적인 추억에 의존하는, 회고적인 향수에 이끌린 결과가 아니다. 잊어버린 시간을 되살려냄으로써 팍팍한 인공의 도시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의 삶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지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 미술평론가 신항섭 >

 

작가의 글

너와 나의 고향이라는 살아있는 감성발전소 가동
김성운의 고향 회귀의 노래 Ⅲ에 대하여      
– 김성운(서양화가 / 삼육대학교 미술디자인학부 교수)

문학가들은 언어라는 물감을 통해, 화가는 조형이라는 언어를 통해 이야기하고 노래한다. 문학과 미술은 툴(Tool)만 다를 뿐 그 종착은 동일하다. 기호학자이자 언어학자인 소쉬르는 예술가들은 언어와의 합의를 통해 자의적 창의력과 상상력을 탐구한다고 했다. 주제에 접근하는 방법론을 시인과 소설가들은 언어와 그 내용으로 화가들은 조형과 그 미감으로 서로 대신(Stand for)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조형적 잔소리’보다 ‘직설적 절제미’를 선호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치면 오히려 못하다’라는 것을 화면에 실천한다. 이를테면 내 그림 속 주인공들의 얼굴에 찍은 점 3개는 어떤 표정으로 읽힐까? 보는 이의 심정에 따라 상이한 느낌을 주겠지만, 그것은 절제된 조형을 통해 메시지를 더욱 포괄적, 개방적으로 소통한다. 굵고 자유로운 윤곽선(Outline)은 사실보다 의미를 더욱 분명히 하고 흥미롭게 하는 데프로마숑(Deformation)이다. 이미 나의 뇌리 속에 담겨 있었던 영상을 한국적 형태미와 동심적 카타르시스로 스케치한 것이다. 

그림 속에는 반드시 수평선, 혹은 지평선이 있는데 이것은 단순히 화면을 분리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추억과 현실을 가르는 역할도 한다. 배경은 과거 추억의 무대(Stage)다. 항례 전면에 놓인 인물과 소는 현재의 나를 대입하도록 의도되었다.

평화롭고 따뜻한 고향 바람(風)과 기운(氣) 

고향 회귀의 노래 전시 시리즈 첫 번째, 두 번째 작품은 비(雨)라고 하고 혹은 빛(光)이라 하는 빗살 질감이 있었지만 세 번째인 이번에는 그것이 컽으로는 잘 인식이 안 된다. 바탕에 숨어있다. 질감으로만 남아 화면을 깊숙하고 건조하지 않게 한다. 그 대신 비는 이미 듬뿍 내려 실개천이 제법 푸르다. 이번에는 유화 특유의 반짝이는 결과 두터운 질감을 강조하여 한국의 ‘風’과 ‘氣’를 빚어내려고 했다. 계절의 향기를 실은 바람, 세월의 질곡을 승화시키는 위로의 바람 그리고 고향 추억의 편린을 머금은 달콤한 바람과 그림마다의 동세, 산하의 역동성, 계절의 기운, 사람의 정신 등등이 나이프 터치로 힘차게 휘둘렸다.

이번엔 밝고 화려한 원색을 적용했다. 금방 비에 씻긴 우리네 청아한 산하를 깨끗한 컬러로 옷입혔다.  박음질처럼 한땀한땀 박힌 색점들은 색동이다. 한국 고유의 색감각을 투영하고 또 오방색과 유화물감 튜브 그대로의 색, 눈부신 천연계의 원초적 색감으로 화면을 적셨다. 태고적 생명력 넘치는 원색의 향연이다. 

– 망각하고 있는 고향 서정을 반추(反芻)하며 동행하자   
나의 작업은 복고적인 아련한 ‘정지용의 향수’나 황순원의 ‘소나기’의 그 순진무구, 때 묻지 않은 소년과 소녀의 사랑, 그리고 모정과 동심을 반추하고 있다. 소설가의 그 ‘가슴’을 차용했다. 인물과 소는 동일 공간에 친근하면서 조화롭게 ‘동화된 가족’처럼 배치되었다. 옛날의 소는 가족 그 이상이었다. 흙빛 소를 모는 아이들은 마냥 신난다.  항상 가족애, 모정, 우정, 형제애 등 훈훈한 사랑이 소와 더불어 목가적(Pasteral)으로 서술된다. 

하늘로 힘차게 치솟는 푸른 포플러 나무는 옛날 신작로 옆의 추억도 생각나게 하지만 그것은 ‘건강과 생명과 양식을 내려주신 창조주에 대한 감사’하는 의미의 조형 소스(Source)다. 나의 시도는 노예적이거나 귀족적이지는 않고 따듯한 중간자의 ‘휴머니티’를 향해 질주한다.

나의 그림의 겉을 보면 영락없는 아날로그다. 그러나 요소요소마다 중요한 작업들은 디지털이 지원했다. 나의 작업과정은 디지털 카메라, 인터넷 자료, 각종 지면 자료를 스캐닝하여 저장하였다가  다람쥐 도토리 찾아 먹듯 하나하나 창고에서 꺼내 창작 의도대로 수많은 썸네일스케치를 한다. 그것을 스캐닝하여 스케치한 것을 다시 보완하여 드로잉한다. 스캔하고 출력하고 프린트해서 분석하고 재조립하여 컴퓨터로 확대하여 밑그림을 완성하고 채색 중간중간 작품을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하여 컬러를 모니터로 반영해 본다. 이러한 디지털만의 기능과 힘을 빌어 구도와 조형요소를 첨삭하여 화면을 보다 풍요롭고 완성미 있게 다듬는다. 7번의 바탕색과 12번의 칠하고 마르는 과정에서 음식을 숙성시키듯 공을 드린다. 기도한다. 그리고 무수한 잡념을 지운다. 칠보 보석 유약 채우듯 물감을 채우면서 도자기 굽는 것처럼 기다린다. 그러면서 청국장같이 깊은 맛을 우려내려고 아주 오랫동안 연마한다. 그렇게 해서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으로 들어가야만 자족한다.

춘풍추상(春風秋霜)!  인고의 작업으로 자아를 자극하고 극한 노동으로 시달리게 하면서 태클을 걸어서 작업했다. 그 과정의 작가는 수도승이나 진배없다. 남에게 조금이라도 감동을 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쪼록 이번 시도가 팍팍한 현대인으로 하여금 도시환경에서 벗어나 망각하고 상실한 고향에 대한 기억과 정서를 환기시켜 동시대를 사는 ‘감성동기’로서 동행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